I. 서 론
식사는 인간사에서 항상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가치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식사는 또한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위한 매개체이기도 하였다. 여러 민족의 식사 관습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들은, 먹는 음식과 음식에 부여하는 의미, 식사의 관습 등은 문화에 따라 달라졌지만 모두 식사가 공동체를 결속하는 행위이자 의식이었다는 점에서 일관된 의견을 보였다(Counihan & Van Esterik 1997). 과거 전통사회에서 식사는 대부분 가족이나 마을처럼 서로 친근하고 결속력이 강한 관계에서만 이루어졌으며, 반대로 식사가 없어지는 상황은 종종 사회적 관계의 파괴를 의미했다(Turnbull 1972).
동시에 식사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나 문화가 반영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과거 인도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와 음식을 대하는 규범은 카스트에 따라 달랐다(Mayer 1960). 이러한 관습은 카스트 제도가 식사 규범에 반영된 결과였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연회도 여성은 참여할 수 없었으며 신분과 나이에 따라 식사 장소와 요구되는 예절이 달라져 고대 그리스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Strong 2005). 현대에도 식사 문화는 해당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여러 사회학적 연구에서 현대사회에서 음식 취향은 개인의 계층적 특성을 반영하고 동시에 계층간 질서의 유지에도 기여한다고 보고되었다(Bourdieu 1984;Ashley et al. 2014). 한국에서도 유교 문화가 식사에서의 남녀 구별과 독상 관습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며(Kim et al. 1997), 신분제적 특성이나 경제적 변화가 한국인의 식기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Chong & Hong 2008).
이런 점에서 볼 때, 식문화 연구는 특정 사회의 문화에 관한 연구이고, 문화가 사람들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이나 마을과 같은 공동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관행은 도시화가 진행된 최근에야 발달했기 때문이다 (Beardsworth & Keil 2010;Lee 2022). 외부에서의 식사는 공동체 내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과거의 식사에 비해 주로 상대적으로 덜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덜 자주 일어나며, 그만큼 식사비의 지불 방식은 공동체 내부의 식사에 비해 현대사회 일반의 사회적 상호작용 구조와 문화적 특성이 더욱 잘 느껴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더치페이와 같은 식비 지불 방식은 탈북민이 가장 이질감을 경험한 식문화 요소이기도 하였다(Jun & Shin 2021).
그렇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이 식사비 지불을 분담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는 현대 한국인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사회적 구조와 문화를 파악하는데 유용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외식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나타난 식사 방식이기 때문에, 식사비용의 지불에 대한 연구는 분야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이 여럿이 외식을 한 후 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담긴 의미를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을 통해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식사비용 지불 방식과 이에 대한 선호 및 인식에 반영된 현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을 종합적으로 이 해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1. 식사비 지불에 대한 국내연구
식사비용의 지불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이는 상점이나 레스토랑과 같은 외부 시설에서 상대적으로 덜 친밀한 사람들이 공동으로 식사에 참여하고 식사비용을 분담하는 식사 유형이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20세기에 와서야 두드러졌기 때문이다(Beardsworth & Keil 2010;Lee 2022). 그럼에도 일부 국내 연구에서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였다.
과거 한국에서 서민들은 또래끼리 물고기나 돼지, 닭 등을 잡아먹는 ‘천렵’이라는 행사를 주최했다. 이때 비용은 천렵의 주최자가 모두 부담하였다(Park et al. 2009). 이와는 일부 다르지만, 과거 한국인은 행사나 공동 지불과 같이 공동 부담이 필요한 경우, 계모임을 형성하여 계의 구성원들이 일정량의 회비를 납부하여 ‘곗돈’을 모은 후, 이 곗돈으로 공동비용을 지불했다(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1996). 이러한 계는 공동으로 식사하는 경우에 식비를 부담하는 기능도 수행했다(Cho 2014). 현대에도 회비를 거두어 식사비용을 지불하는 관습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에는 식사비용을 윗사람이 모두 지불하는 경우도 있으며, 나이가 많거나 경제력이 좋은 사람이 식사비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도 있다(Kim & Kim 2006). 이것은 우리 사회의 체면 문화와 연관성이 있다. 체면 문화는 타인의 의식이나 평가에서 유래한 자신의 지위나 신분에 대한 인식을 중시하는 문화이다(Choi 2000). 체면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자기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모든 식사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Choi & Yu 1992).
계나 체면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식비를 대신 지불하는 행위는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대학생의 식사비 지불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연구(Kim & Kim 2006)에서 대학생이 타인의 식사비를 부담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기대되는 규범이었다. 가령 남성은 ‘남자가 돈을 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의해 이성과의 식사에서 식사비를 전액 지불하고자 하였으며, 식사하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연령이나 지위가 낮은 경우에도 고연령자 혹은 고지 위자에 대한 사회적 기대로 인해 자신이 식사비를 지불하려고 하는 행동이 나타났다. 다른 연구(Kim & Yu 2018)에서 는 ‘밥약 문화’와 같은 규범적 요소가 타인의 식비를 부담하는 행동을 예측하였으며, 식사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의 사회자본이 타인의 식비를 부담하는 행동을 예측하였다.
한편, 현대 한국에는 식비를 인원수에 따라 나눠 각자 지불하거나 자신이 먹은 만큼만 지불하는 더치페이가 새로운 형태의 지불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더치페이는 젊은 세대에서 선호된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젊은 세대의 더치페이 선호는 식사의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Kim & Kim 2006;Lee 2023). 더치페이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자 대부분은 더치페이가 ‘합리적’이고 ‘간편’ 하다는 이유로 더치페이를 선호하였다(Lee 2023). 반면 서열이나 경제력이 높은 사람이 존재할 때, 애인이나 가족과 식사할 때는 더치페이를 덜 선호하였는데 이는 더치페이가 ‘인색하고’ ‘정이 없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식사비의 지불 방식은 한국인이 서로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문화를 반영하였다. 과거 한국인이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절에는 식사비용을 한 사람이 부담하거나 공적 조직을 통해 부담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혹은 체면을 차리고 지키기 위한 의도가 식사비용의 지불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현대에도 체면과 같은 사회적 규범이 식사비용 지불에 영향을 끼치지만, 동시에 현대에는 개개인이 자신의 식비를 분담하는 더치페이와 같은 지불 방식도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은 한국인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반적인 문화적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많지 않았고, 특히 식비 지불 방식에 초점을 둔 연구는 매우 적었다. 또한 특정 지불 방식에 대한 연구는 소수 있었지만, 실제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식사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II. 연구내용 및 방법
식사비 지불 방식은 식문화의 한 구성요소이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직접적으로 식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영역이기도 하다(Jun & Shin 2021). 이에 몇몇 연구가 식사비 지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나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많은 경우 식사비 지불보다는 다른 주제가 핵심 주제로 다뤄졌고(Choi & Yu 1992;Park et al. 2009;Cho 2014;Kim & Yu 2018), 소수의 연구만이 식사비 지불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Kim & Kim 2006;Lee 2023). 그러나 그러한 연구도 특정 식사비 지불 방식만 다루어 한국인의 전반적인 식비 지불 행동을 조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Choi & Yu 1992;Cho 2014;Kim & Yu 2018;Lee 2023). 한국인의 전반적인 식비 지불 행위를 조사한 연구는 K im & Kim(2006)의 연구가 거의 유일하였으며, 이 연구도 현재와 10년 이상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고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일반화가 힘들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한국인의 식비 지불 방식이 사회적 규범의 재생산과 관련된다는 점은 보여주었으나, 이것이 한국의 문화적 배경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4개의 연구를 통해 현재 한국인이 식사 후 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였다. 본 연구는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에서 나타나는 규칙성과 거기에 부여되는 의미에 관하여 깊이 있으면서도 일반화될 수 있는 이해를 목표로 하였으며, 때문에 질적 분석과 양적 분석을 혼용하여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과 거기에 부여된 의미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도모하였다. 또한 이러한 식비 지불 방식을 과거의 식비 지불 방식과의 맥락에서 논의하고 거기에 내재된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파악하여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행위를 전체 한국 문화의 맥락과 연결하고자 하였다.
연구 1, 2에서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질적 방법을 통해 한국인이 다양한 상황에서 선호하는 식사비용 지불 방식과 거기에 부여된 의미를 조사하였다. 연구 1, 2에서는 선행연구(Kim & Kim 2006;Kim & Yu 2018)와 유사하게 소수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이는 대학생 집단이 질적 연구를 진행하기에 접근성이 용이하면서도 심층적인 답변을 얻기에 적당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연구 1에서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실시하여,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식사비용 지불 방식과 그 의미를 알아보았다. 연구 2에서는 개방형 질문을 통해 다양한 지불 방식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진 인식을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이를 내용분석하였다.
연구 3, 4에서는 연구 1, 2에서 도출한 결과를 더 일반적인 표본을 대상으로 양적 방법을 통해 검증하였다. 연구 1, 2에서 도출한 결과는 한정된 집단을 대상으로 질적 분석만 실시하였기 때문에, 해당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연구 3, 4에서는 비교적 대표성이 확보된 표본을 대상으로 양적 분석을 실시하여 연구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연구 3에서는 연구 2에서 도출된 형용사를 사용하여 각 지불 방식을 묘사하는 형용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평정하게 하고, 이러한 평정치를 주성 분분석하여 각 지불 방식에 부여된 의미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4에서는 연구 1, 2의 표본이 젊은 세대였음을 고려하여, 나이든 세대에서의 지불 방식 선호도 젊은 세대와 비슷한지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에서 세대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식비 지불 방식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여기에 내재된 한국 문화적 특성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1. 연구 1
연구 1에서는 여럿이 식사하는 상황에서 적합하다고 인식되는 식사비용 지불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 참가자에게 가상적인 식사 상황을 제시한 후, 해당 상황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불 방식을 반구조화 방식으로 질문했다.
1) 방법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102명(남: 32명, 여: 70명)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설문을 실시하였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22.11세(표준편차=2.16)였다. 참가자들은 여러 식사 상황에 대하여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지불 방식을 기술하였다. 식사 상황은 전반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정기적 식사와, 모임을 예측하기 힘든 비정기적 식사 상황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정기적 식사에는 학교나 회사 등 공적 조직이 주관하는 공적인 식사(formal meal)와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인 식사(unformal meal)로 구분해서 제시했고, 연인과의 식사(meal with lover)와 친구와의 식사(meal with friends)도 제시했다. 비정기적 식사에는 업무상 식사(서로 업무관계자인 갑(甲)과 을(乙)의 1회성 식사, business meal), 지인과의 식사(meal with acquaintance), 친구와의 식사(meal with friends), 동창회/회식/동아리 식사(company meal), 경조사 후 식사(after-party meal)를 제시하였다. 참가자들에게 제시된 지불 방식은 식사비를 식사인원으로 나누어 부담하는 균등 지불(equal payment), 각자 자신이 먹은 만큼만 부담하는 개별 지불(individual payment), 회비를 거두어 지불하는 회비 지불(membership dues payment), 1명이 전액 지불하는 1인 지불(paid by single person), 모두 비용을 부담하되 1명이 더 많이 내는 차등 지불(differential payment)의 5개였다.
2) 결과 및 고찰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식사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선호하는 지불 방식이 <Table 1>에 제시되어 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참가자들은 지위 차이가 있는 공식적 식사에서는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전부 내는 1인 지불, 개별 지불, 균등 지불 순으로 선호했고, 비공식적이거나 친구와의 식사에서는 개별 지불과 균등 지불을 선호했다. 반면, 연인과 식사에서는 남자가 전부 내는 1인 지불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컸다. 2차를 하는 상황에서는 전반적으로 1차에 비해 회비 지불, 균등 지불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했다.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식사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선호하는 지불 방식이 <Table 2>에 제시되어 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참가자들은 업무상 식사, 지인과의 식사, 친구와의 식사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별 지불, 균등 지불, 1인 지불(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불)을 선호했다. 동창회나 회식과 같은 공식적인 경우에는 회비 지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컸고, 경조사 후 식사는 행사 주최자가 내는 1인 지불이 매우 많았다. 2차 상황에서는 1차에 비해 전반적으로 회비 지불, 균등 지불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참가자들은 여러 맥락에서 균등 지불이나 개별 지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참가자들은 균등 지불과 개별 지불을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정도로 선호하여, ‘더치페이’ 가 균등 지불과 개별 지불을 모두 포함한다는 기존의 보고와 일관되었다(Lee 2023). 동시에 참가자들은 동시에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두 지불하는 1인 지불 또한 선호했는데, 이것은 윗사람의 체면치레(Choi 2000)와 같은 위계적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한편 참가자들은 연인 관계에서 1차 식비를 대부분 남성이 지불하는 1인 지불 방식을 선호했는데, 이것 역시 남성에 대한 성역할 규범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Youn 2018).
2. 연구 2
연구 2에서는 연구 1에서 식별된 여러 식비 지불 방식에 한국인이 부여하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연구 1에서 여러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판단된 9가지 식사비 지불 방식을 선정하였다. 이후 대학생 참가자에게 가상적인 식사 상황을 제시한 후, 해당 상황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불 방식과 그 이유를 기술하도록 했다.
1) 방법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108명(남학생=37명, 여학생=71명, 평균 연령=22.28세, 표준편차=2.4)이 본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자들은 연구 1에서 제시한 식사 상황을 5가지로 축약하여 참여자에게 제시하고 각 상황에 해당하는 지불 방식을 선호 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를 질문하였다. 5가지 상황은 연구 1에서 연구 참가자에게 받은 피드백을 토대로 매우 빈번한 동료와의 만남(regular meeting with colleges, 7가지 지불 방식), 연인과의 매우 빈번한 만남(dating, 7가지 지불 방식), 업무상 드물게 만나는 경우(irregular meeting for business, 9가지 지불 방식), 선배나 상사를 드물게 만나는 경우(irregular meeting with supervisor or senior, 7가지 지불 방식), 소수의 친한 친구를 드물게 만나는 경우(irregular meeting with friends, 6가지 지불 방식)를 선정하였다. 9개의 지불 방식은 균등 지불(equal payment, 1/n로 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액수만큼 지불), 개별 지불(individual payment, 각자 사용한 만큼 지불), 회비 지불(membership dues payment, 회비를 걷어놓고 지불), 순환 지불(rotational payment, 번갈아 가면서 지불), 위계 지불(hierarchical payment, 상사/선배가 지불), 능력 지불(ability payment, 경제력이 큰 사람이 지불), 자원 지불(volunteering payment, 내고 싶은 사람이 지불), 남성 지불(male payment, 남자가 지불), 갑/을 지불 (Subordinate payment, 갑(甲)이나 을(乙)이 지불)이다. 참가자들은 특정 상황에서 각 지불 방식이 갖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특성을 개방형 질문을 통해 응답했다.
2) 결과 및 고찰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나 불호의 이유를 <Table 3>에 제시하였다. 여기서 보듯이 전반적으로 각 지불 방식의 긍정적 특성은 합리성, 공정성과 같은 공정성과 함께 친근감, 정, 배려와 같은 친밀성이 두드러졌다. 이때 어떤 방식이 공정성의 장점이 있으면 친밀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대로 어떤 방식이 친밀성의 장점이 있다면 공정성의 한계가 있었다. 또한 균등 지불과 개별 지불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서 유사하여 연구 1의 결과 및 기존의 연구(Lee 2023)와 일관되었다.
3. 연구 3
연구 3에서는 연구 2의 결과를 토대로,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부여하는 의미를 양적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 2에서 도출된 형용사를 중심으로 설문지를 구성하고, 참가자에게 각 형용사가 해당 지불 방식을 어느 정도로 잘 설명하는지 평정하도록 요청하였다. 이후 이 자료를 바탕으로 주성분분석을 실시하여 각 평정치가 보이는 패턴을 간략화하고, 각 지불 방식에 부여된 의미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 방법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인 390명(남: 118명, 여: 272명)이 연구 3에 참가했다. 연구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36.69세(표준 편차=13.36, 범위=16-68세)였다. 연구 참가자들은 연구 2에 서 도출된 6개 지불 방식의 특성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제시 받은 후, 그러한 형용사가 그 지불 방식을 얼마나 잘 묘사하는지 리커트형 7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로 평정했다.
지불 방식은 연구 2의 결과에 기초하여 선정하였는데, 균등 지불과 개별 지불은 유사성을 고려하여 ‘균등 지불’로 통합했다. 또한 다른 지불 방식에 비해 매우 한정적인 상황에만 적용되는 남성 지불과 갑/을 지불은 연구 3에서 제외했다. 최종적으로 연구 3에서는 6개의 지불 방식, 즉, 균등 지불, 회비 지불, 순환 지불, 위계 지불, 능력 지불 그리고 자원 지불을 조사하였다. 이후 참가자들의 평정치를 바탕으로 주성 분분석을 실시하였다. 이때 요인 부하량이 낮은 형용사는 제외하고 고유값(eigenvalue)이 1 이상인 요인을 선정했다.
2) 결과
주성분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반적으로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나 불호를 중심으로 2~3개의 요인 구조가 나타났다. 그 설명량도 모두 60%를 넘었다. 요인부하량 등 자세한 결과는 부록에 제시하였다.
(1) 균등 지불
균등 지불에 대한 요인 구조는 2요인으로 나타났고 전체 변량의 78.06%를 설명했다. 4개의 긍정적인 형용사로 이루어진 요인 1 (평균=5.55, 표준편차=1.20)은 균등 지불이 공정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특징을 반영하는 요인이다. 요인 2 는 4개의 부정적인 형용사로 이루어진 요인으로(평균=3.44, 표준편차=1.63), 균등 지불이 정이 없고 계산적이라는 특징을 반영한다. 이 두 요인은 r= -.33의 부적 상관을 보였다. 요인에 포함된 형용사를 고려하여 요인 1은 ‘거리감’, 요인 2는 ‘공정성’으로 명명하였다.
(2) 회비 지불
회비 지불은 3요인 구조가 나타났으며, 전체 변량의 77.46%를 설명하였다. 마음이 편한, 공평한, 계획적 사용이 가능한, 계산하기 편리한 등의 형용사가 요인 1 (평균=5.66, 표준편차=1.54)로 수렴했고, 부정적인 형용사 4개가 요인 2 (평균=3.01, 표준편차=1.32)로 수렴했으며, 친목을 돈독히 하는, 유대감을 느끼는, 정이 깊어지는 등의 형용사가 요인 3(평균=4.75, 표준편차=1.30)으로 수렴했다. 긍정적인 형용사를 포함한 요인 1과 요인 3은 서로 정적 상관(r= .59)을 보였고, 반대로 요인 2는 요인 1과 부적 상관(r= -.20)을 보였으며 요인 3과도 부적으로 상관(r= -.08)되었으나 그 크기가 크지 않았다. 각 요인은 ‘편리성’, ‘각박함’, ‘유대감’으로 명명하였다.
(3) 순환 지불
순환 지불은 2요인 구조가 나타났으며, 전체 변량의 82.25%를 설명하였다. 합리적인, 부담이 적은, 공평한, 갈등이 없는 등이 요인 1 (평균=4.23, 표준편차=1.43)로 수렴하였고, 정이 깊어지는, 정을 느끼게 하는, 인간적인 등이 요인 2 (평균=4.20, 표준편차=1.42)로 수렴하였다. 두 요인의 상관은 r= .47로, 각 요인을 ‘합리성’, ‘유대감’으로 명명하였다.
(4) 위계 지불
위계 지불은 3요인 구조가 나타났으며 전체 변량의 75.48%를 설명했다. 부정적인 형용사 4개가 요인 1 (평균 =4.30, 표준편차=1.15)로 수렴했고, 윗사람의 체면이 서는, 윗 사람의 권위를 지키는, 윗사람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등의 형용사가 요인 2 (평균=4.88, 표준편차=1.19)로 수렴하였으며, 정을 쌓은, 사이가 돈독해지는 등의 형용사가 요인 3(평균=4.15, 표준편차=1.25)으로 수렴하였다. 요인 1은 요인 2(r= -.10) 및 요인 3(r= -.16)과 부적 상관이 있었고, 요인 2는 요인 3과 r= .39의 상관을 보였다. 각 요인을 ‘불합리성’, ‘위계성’, ‘유대감’으로 명명하였다.
(5) 능력 지불
능력 지불은 2요인 구조가 나타났으며, 전체 변량의 64.10%를 설명하였다. 부정적인 형용사 5개가 요인 1 (평균 =4.05, 표준편차=1.25)로 수렴했고, 긍정적인 형용사 4개가 요인 2(평균=3.70, 표준편차=1.26)로 수렴하였다. 두 요인의 상관은 r= -.22로, 각 요인을 ‘위화감’과 ‘배려’로 명명하였다.
(6) 자원 지불
자원 지불은 2요인 구조가 나타났으며, 전체 변량의 72.92%를 설명하였다. 긍정적인 형용사 4개가 요인 1(평균 =4.66, 표준편차=1.21)로 수렴했고, 부정적인 형용사 4개가 요인 2(평균=4.05, 표준편차=1.31)로 수렴했다. 두 요인은 r= -.29의 상관을 보였으며, 각 요인은 ‘유대감/배려’, ‘불공 정‘으로 명명하였다.
3) 고찰
연구 3을 통하여 각 지불 방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6가지 지불 방식 중 균등 지불은 공평, 합리를 이유로 선호했고, 반대로 정이 없고 계산적이라는 이유로 기피했다. 반면에 다른 5가지 지불 방식은 정이 있고 친목 및 사이를 돈독히 한다는 이유로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회비 지불과 순환 지불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공정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성을 종합할 때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식비 지불 방식은 거기에 부여된 의미에 따라서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정이 없는 균등 지불과, 정이 있고 친목과 유대감을 도모하지만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나머지 지불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공평하지만 인간적이며 정을 돈둑하게 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회비 지불과 순환 지불은 그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4. 연구 4
연구 4에서는 3개의 각 상황에서 6개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젊은 세대(40세 미만)와 중년 세대(40세 이상)를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연구 1은 균등 지불에 대한 대학생의 높은 선호도를 보여주었으나, 조사대상이 대학생으로 한정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 4에서는 젊은 세대와 중년 세대를 모두 조사하였다. 그리고 두 세대를 비교하여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에서 세대차이가 존재하는지 조사하였다. 본 연구는 중앙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에 의해 승인되었다(승인번호: 1041078-20230704-HR-188).
1) 방법
설문조사는 한국인 201명(남성: 83명, 여성: 118명, 평균 연령=34.99세, 표준편차=13.02, 범위=15-65세)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하였다. 세대차이에 대해 조사한 선행연구(Choi & Jung 2023)를 참고하여 연구 참가자를 40대 이상 (중년 세대)과 40대 이하(성인 초 세대)로 구분하였다. 본 연구에서 40대 이하는 131명(65.2%), 40대 이상이 70명 (34.8%)이었다.
연구 참가자들은 제시된 3개의 가상의 식사 상황에서 6개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5점 척도로 평정하였다(1: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5: 매우 선호한다). 또한 연구 1과 비슷하게 가장 선호하는 지불 방식을 하나 선택하였다. 식사 상황의 경우, 연구 2에서 사용된 정기적 식사 상황과 비정기적 식사 상황을 포함하고, 다른 상황에 비해 더 특수한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된 연인 간 식사 상황을 포함 하였다. 그렇게 선정된 (1) 동료/친구와 함께 정기적으로 빈번하게 하는 식사, (2) 오랜만에 만난 친구/지인과 비정기적으로 드물게 하는 식사 그리고 (3) 연인과 식사하는 상황을 참가자에게 제시하였다.
연구자들은 수집된 자료를 통해 MANOVA를 실시하여 성인 초 세대와 중년 세대 사이에 각 지불방식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가 존재하는지 검증하였다. 이때 학력과 경제 수준 및 거주지를 통제하여 가외변인의 영향을 최소화하였다. 또한 1차 식사와 2차 식사에서 선호하는 지불 방식의 빈도가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지 검증하기 위해 카이제곱 검정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연구 1과도 비교하였다.
2) 결과
친구/동료와 자주 정기적으로 식사하는 상황에 대한 결과가 <Table 4>에서 제시되어 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균등 지불은 성인 초 세대(40대 이하)에서 더 선호하고, 회비 지불은 중년 세대(40대 이상)에서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세대차이는 1차 식사에서 선호하는 지불 방식에 대한 빈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 성인 초 세대는 연구 1과 마찬가지로 균등 지불을 상당히 선호한 반면 중년 세대는 회비 지불도 비슷한 정도로 선호하였다(χ2 (6, 1)=30.28, p<001).
친구/지인과 비정기적으로 가끔 식사하는 상황에 대한 결과는 <Table 5>에 제시되어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성인 초 세대가 중년 세대보다 균등 지불을 더 선호했다. 선호하는 지불 방식의 빈도에서도 성인 초 세대는 연구 1과 비슷하게 균등 지불을 더 선호했지만, 중년 세대는 회비 지불을 비슷한 정도로 선호했다(χ2 (6, 1)=22.01, p<01).
연인과 식사하는 상황에 대한 결과는 <Table 6>에 제시되어 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성인 초 세대가 중년 세대보다 균등 지불과 순환 지불을 더 선호했다. 선호하는 지불 방식의 빈도에서도 성인 초 세대는 균등 지불과 순환 지불을 더 선호했지만, 중년 세대는 여러 지불 방식을 고르게 선호하였다(χ2 (5, 1)=13.06, p<05).
3) 고찰
연구 4에서는 식비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와 인식에서 세대 간 차이가 있는지를 검증하였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성인 초 세대는 연구 1과 마찬가지로 균등 지불을 다른 지불 방식보다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대는 중년 세대에 비해 모든 상황에서 균등 지불을 더 선호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균등 지불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지불 방식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꽤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호는 공정한 가치를 중시하는 성인 초 세대(Lee & Kim 2022)에게 있어 ‘공정’하고 ‘합리’적인 균등 지불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일 수 있다(Lee 2023).
그러나 동시에 성인 초 세대와 중년 세대 모두 균등 지불을 제외한 다른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세대차이가 일관되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를 고려할 때 한국의 전통문화의 특성, 가령 공동체 의식(Cho 2014)이나 한국 사람의 정에 대한 속성(Choi 2000)은 지금도 두 세대 모두에서 중시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비록 성인 초 세대가 공정성 가치를 중년 세대에 비해 더 중시하기는 하지만, 기존 한국의 식문화적 관습이나 정서적 친밀함(정)의 중시 또한 세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II. 결과 및 고찰
본 연구는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과 그러한 방식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혼합한 4가지 경험적 연구를 실시하였다. 연구 1에서는 한국인이 다양한 식사 상황에서 선호하는 식비 지불 방식을 개방형 설문을 통해 알아보았다. 연구 2에서는 연구 1에 기반하여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식비 지불 방식을 선정하고, 각각의 지불 방식에 한국인이 부여하는 의미를 분석 하였다. 연구 3은 연구 2를 토대로 한국인이 각 지불 방식에 부여하는 의미구조를 주성분분석을 통해 조사하였다. 마지막으로 연구 4에서는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중년 세대를 대상으로도 조사하고 선호도에 세대차이가 존재하는지 조사하였다.
연구결과, 한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식사비 지불 방식 6개(균등 지불, 회비 지불, 순환 지불, 위계 지불, 능력 지불, 자원 지불)가 식별되었다. 균등 지불은 이전 문헌의 보고(Lee 2023)와 일관되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신 정이 없는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반면에, 나머지 지불 방식들은 정과 친목을 돈독히 한다고 인식되었으며, 이 중 위계 지불은 체면의 유지에도 기여하는 지불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지불 방식들은 회비 지불과 순환 지불을 제외하면 불공정하거나 불 편하다는 이유로 선호되지 않았다. 두 지불 방식은 공평하면서도 정이 가는 지불 방식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성인 초 세대가 중년 세대보다 균등 지불을 더욱 선호하였다.
식비 지불에 대한 이와 같은 특성을 한국인의 사회적 행위양식에 대한 사리 논리-심정 논리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Choi & Kim 1999). 사리 논리-심정 논리 모델은 한국인의 사회적 행위양식을 사리논리와 심정논리의 2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이론이다. 사리 논리는 주로 객관적인 현상과 이득과 관련된 상황에 적용하는 논리로, 개개인을 서로 분리된 개인으로 여기면서 공적이고 객관적이며 이해관계 중심의 법적, 원칙적 기준으로 현상을 해석한다. 반면에, 심정 논리는 상대방을 ‘우리’의 일부로서 내집단으로 여길 때 적용하는 논리로, 상대방과의 ‘마음 나누기’와 공감, 지지를 중시하여 이에 따라 개인적 관계의 입장에서 행동하게 된다. 전자는 공정이 중요한 반면, 후자는 정서적 친밀함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공정’이나 ‘합리’와 관련된 균등 지불은 사리 논리에 가까운 지불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과 관련되고 정서적 교류와 친밀함을 우선 시하는 나머지 지불 방식들은 심정 논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윗사람의 체면을 세우고’, ‘윗사람의 권위를 지키는’ 위계 지불은 한국사회의 체면 문화(Choi & Yu 1992;Kim & Kim 2006)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공정과 정서적 친밀함이 동시에 중시되는 회비 지불과 순환 지불의 경우, 회비 지불은 심정논리에 가까운 지불 방식을 선호한 중년 세대에서 선호되었다는 점과 집단 단위로 돈을 모아 지불한다는 면에서 계를 통한 지불(Cho 2014)과 유사하다는 점을 볼 때 심정논리적 행위양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반면 순환 지불은 사리논리에 가까운 지불 방식을 선호한 성인 초 세대에서 선호되었고 이전 보고에서 ‘더치페이’의 일종으로 인식되었다는 점(Lee 2023)을 고려할 때 사리논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종합하면, 균등 지불과 순환 지불은 사리 논리로 대표되는 공정 가치관을 반영한 반면, 위계 지불과 회비 지불, 능력 지불, 자원 지불은 집단 내 정서적 교류와 친밀함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한국 문화적 가치관(Cho 2014)을 반영한 지불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행위는 한국 문화의 사회적 행위양식이 반영된 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식문화는 한 사회의 문화가 반영되는 공간이며(Mayer 1960;Bourdieu 1984;Kim et al 1997;Strong 2005;Ashley et al. 2014), 식사비 지불 방식도 사회의 규범과 문화를 재생산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Kim & Kim 2006).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인의 식비 지불 방식은 타인과 상호작용할 때 공정을 중시하지만, 내집단과 상호작용할때는 정서적 친밀함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Choi & Kim 1999)이 반영된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지불 방식들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식사비를 지불하면서 공정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거나(사리논리) 정을 도모하게 만들어(심정 논리) 기존 한국 사회의 2가지 행위양식을 재생산하는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동시에 우리성 관계나 정(Choi & Kim 1999)으로 묘사되는 한국의 전통 문화적 요소가 현대 한국사회에도 남아있으며, 한국인들의 다양한 행동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근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연구 4에서 성인 초 세대는 중년 세대에 비해 사리 논리적 행동양식에 가까운 균등 지불을 더욱 선호하였다. 그러면서도 심정 논리에 가까운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세대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 1에서도 비록 젊은 세대는 많은 경우 균등 지불을 선호하였지만, 남성이 돈을 더 내는 것과 같은 식사비 지불 규범(Kim & Kim 200;6Youn 2018) 또한 대학생의 식사비 지불 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비록 사리 논리적 행동양식에 대한 선호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계(Cho 2014)나 체면 (Choi & Yu 1992;Kim & Kim 2006)과 같은 심정 논리적 행동양식도 여전히 한국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불 방식 선호에 대한 세대차이는 두 세대의 질적인 차이보다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가진 여러 문화적 특성에 대한 선호의 양적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문화를 새로운 문화가 대체하는 문화 동화보다, 새로운 문화가 우세해지면서 동시에 기존의 문화도 유지되는 문화 공존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현대 한국이 ‘서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 4의 함의에 비추어 본다면, 현대 한국에서 서구 문화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적 요소 또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연구 4에서 나타난 세대차이는 사회의 변화보다 연령 효과의 결과일 수도 있으며, 식비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의 차이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계(Cho 2014)나 체면(Choi & Yu 1992;Kim & Kim 2006)에 기반한 전통적인 지불 방식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현대에 나타난 더치페이 또한 ‘공정’하고 ‘ 합리’적인 지불 방식으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어(Lee 2023) 기존 연구와 일관되었다. 또한 Kim & Kim (2006)와 함께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이를 전체 사회의 맥락에서 다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Kim & K im (2006)가 사회적 규범의 영향력과 재생산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을 해석했다면, 본 연구에서는 식비 지불 방식을 사리논리와 심정논리라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한국인의 식비 지불 행위를 전체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 이해 하는데 도움을 준다. 본 연구는 ‘공정’과 ‘친밀’을 여러 식비 지불 방식에 내재한 문화적 가치로 제시하여, 식비 지불 행위에 담긴 한국 문화의 요소를 조망하는데 기여하였다.
공정과 친밀을 통한 식문화 이해는 아직 가설적 수준에 머무르나, 이러한 이해는 한국 식문화의 이해나 외식경영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사리 논리-심정 논리 모델은 본 연구에서 한국인의 식비 지불 행위를 설명하는 주된 이론적 틀로 사용되었지만, 이 이론이 한국 식문화를 설명하는데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을 외식소비(Lee 2011)나 식품 마케팅(Kim & Lee 2013)의 맥락에 적용한 연구는 일부 있었지만, 한국인의 식사행위를 사리논리와 심정논리의 시각에서 탐구한 연구는 거의 전무했다. 후속연구에서 한국의 식문화를 이해하는데 사리논리-심정논리 모델이 주요한 이론적 틀로 사용된다면, 한국의 식문화가 가지는 독특한 한국적 특성을 발견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식사 규범이나 방식이 내외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이론이 설명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문화적 특성은 외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Jin et al. 2016). 특히 최근 더치페이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계산 시스템이 더치페이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각자가 먹은 몫을 쉽게 계산하고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방안(Song et al. 2018)이 개발된다면 식사상황에서 공정 관련 행위양식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식사를 통해서 정을 도모하고 정서적 친밀함을 중시하는 고객의 경우, 반대로 식사 과정에서 서로 교류하고 의지하게 돕는 서비스가 적합 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 구성은 고객층의 세대와 식사 상황 등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진다. 먼저 본 연구는 참여자들에게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를 측정했다. 그러나 특정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 측정이 실제 식사할 때 지불하는 방식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연구의 결과로 실제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을 설명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다.
두 번째로, 본 연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편의 추출된 표본을 통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과연 특정 대학 재학 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한국인 전체에 일반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있다. 비록 연구 2와 3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편의 추출된 표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표본의 대표성을 확신할 수 없다. 보다 대표성이 있는 표본을 통한 후속연구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탐색적인 특성이 강하다. 때문에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해 폭넓은 이해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연구결과를 통해 특정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힘들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전체적 조망의 틀도 가설적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시한 여러 추론이나 설명은 후속연구를 통한 체계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 방식과 그러한 방식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혼합한 4가지 경험적 연구를 실시하였다. 연구 1은 반구조화 설문을 통해 다양한 식사 상황에서 선호하는 식비 지불 방식을 알아보았다. 연구 2는 연구 1에서 도출한 9개의 지불 방식 각각에 대하여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질문하여 거기에 부여된 의미를 조사하였다. 연구 3에서는 연구 2에 기초해서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관찰하기 쉬운 6가지 지불 방식을 선정하고, 보다 대표성이 있는 표본을 대상으로 각 지불 방식에 부여된 의미를 평정하게 한 후 주성분 분석을 통해 양적으로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연구 4에서는 여러 세대를 대상으로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여 세대차이가 존재하는지 조사하였다.
그 결과, 한국인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선호하는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으며, 여러 상황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사비 지불 방식 6개(균등 지불, 회비 지불, 순환 지불, 위계 지불, 능력 지불, 자원 지불)를 식별할 수 있었다. 균등 지불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신 정이 없는 방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정과 친목을 돈독히 한다고 인식된 다른 지불 방식과 대비되었다. 각 지불 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비교한 결과 균등 지불이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선호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인의 사회적 행동을 공정을 중시하는 사리논리와, 정서적 교류와 친밀함을 중시하는 심정논리로 구분하는 사리논리-심정논리 모델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본 연구는 한국인이 식사비를 지불하고 분담하는 방식을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을 통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한국 문화의 맥락과 연결한 기초적인 연구라는 의의가 있다. 식사비 지불 방식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식사비 지불 방식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조사한 연구는 드물었다. 본 연구는 한국인의 식사비 지불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이를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 보는 시각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러한 통찰이 식문화에 대한 다른 연구나 외식 서비스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