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우리 식생활에서 수산물은 주요한 식량자원으로서 선사시 대 수렵, 채취의 시기부터 오랜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수산 물의 이용은 육류가 부족했던 우리민족의 중요한 동물성 단 백질과 무기질 등의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종류 도 다양하여 조선시대에는 50여종의 어류, 패류 및 해조류가 기록되어 오늘날 어획되고 있는 대부분의 종류가 등장하고 있다(Yoon et al. 2002). 농업이 시작된 이전부터 이용 되어 온 수산물은 조리, 가공법이 발달함에 따라 다양한 부식과 김치, 젓갈, 식해 등의 발효 식품으로 우리의 식생활을 풍요 롭게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농업에서 수산업으로의 전업, 어망사용 등 어업기술이 크게 발달하면 서 수산물이 계절과 세시에 따라 다양한 별미로 이용 되었 고(Yoon 2009), 허약함을 보하고 기운을 증강시키는 보양성 음식으로 활용 되었다(Baek & Choi 2004). 조선 사회는 성 리학적 규범을 관혼상제 등에 집중시켜 선현과 조상에 대해 제향을 중요시하며 제사가 빈번히 거행되었고, 제사에 필수 적인 제물의 수요는 증대되었고 제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 지하였다(Cha 2007).
조선시대는 식생활 문화의 과학성이 높아지고 그 문화 규 범이 정비되어 현대의 한식이 완성되는 시기로 농서와 지리 지의 간행, 각 지방의 산출 식품이 파악되었으며, 일상 식사 에서 식품구성의 원칙이 성립된 시기였다(Kim 2006). 조선 시대 기록물 중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전시대의 유일한 연대 기로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며, 조선시대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자료이다(Kang 2015). 또한 식생활 변화의 연 속성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료이기도 하다.
빅데이터는 단순 데이터 수집을 넘어서 가치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이다(Lee 2018). 빅데이터 특성이 다양 한 성질의 대량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데 이터 분석 재료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 제이다. 크롤링(crawling)은 컴퓨터내의 수많은 문서를 수집 하는 기술이며, 웹 환경에서의 각종 정보를 자동 수집하는 기술을 웹 크롤링(web crawling)이라 한다(Kim et al. 2017).
지금까지 조선시대 수산물에 관한 음식 문화사적 연구 동 향은 조선시대 중기 문헌을 바탕으로 한 전통 수산물음식 및 다양한 이용법에 대한 문헌고찰 연구(Hyeon & Kim 2008), 조선시대 어회 조리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Park 2020), 조선 시대 굴(石花) 생산과 활용양상(Kim 2019), 조선시대 임원십 육지(林園十六誌)에 수록된 어패류의 향약적인 특성과 효용 에 대한 고찰(Baek & Choi 2004) 등 주로 조선시대 조리서 문헌 고찰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전시대를 아우르는 조선왕 조실록을 자료원으로 하는 음식문화 관련 연구는 조선시대 수산업사 연구(Min et al. 2013;Kim 2018), 조선의 차 문 화 연구(Lee & Jung 2013), 조선시대 공문서와 왕실자료에 나타난 장류 연구(Ann 2012) 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조 선왕조실록 과학 계량적 분석을 통한 채소류의 통시적 고찰 (Kim 2021a)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과실류 특성 연구(Kim 2021b)가 시행됨으로써 방대한 데이터량을 단순 히 사례중심 연구만이 아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종합적이 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성과 의미들이 연구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수산물 현황과 가공식품 특성 분석 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조 선왕조실록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수산물 물종 현 황과 왕조별 기록 현황과 시대에 따른 수산물 특성들을 살 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음식문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대상
본 연구의 대상은 조선시대 전체 기간 27명의 왕과 518년 의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 1,968권 940책이 해당되었다. 보 통 역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을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명의 왕이 재임한 427년간의 기록 1,894권(卷) 888책(冊)으로 보 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이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기록물 74권, 60책은 일제 강점기 작성되었고 조선시대 실록 편찬 규례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Kim 2018). 하지만 본 연구 에서는 조선시대 전체를 대상으로 수산물 관련 기록을 분석 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전체 기간인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부 록까지 모두 조사 범주에 포함시켰다.
2. 연구 내용 및 방법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국사편찬위원회 웹 사이트(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에서 웹 크롤링 소프트웨어를 Python 언어로 제작하여 모든 한자와 한글 원문을 자동으로 수집하였다(Lee 2018;Kang & Park 2019). 이에 따라 구 현된 웹 크롤러가 웹 페이지를 차례대로 탐색하면서 정의된 규칙에 따라 실록의 정보를 수집하는 절차는 <Figure 1>과 같다.
해당 사이트에서 연도별 월별로 구분되어 있는 각각의 자 료들을 생성한 다음 필요한 문장을 찾고 이 과정에서 모든 페이지에서 URL을 추출하여 필요한 내용의 리스트를 생성 하였다. 웹 크롤러는 생성된 URL 리스트를 탐색하면서 필 요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였다. URL 파일과 구분 하여 데이터화 하면서 파일이 3개가 생성되게 하였으며 최 종 작업이 완료되면 모든 파일이 자동 저장되며 종료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Python 3.6.2로 웹 크롤러를 구현하였다.
웹 사이트는 모든 기록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4개 의 대분류로 먼저 나눈 뒤에 중분류로 40개, 소분류 174개 로 분류되어 총 3단계의 계층구조로 분류되어 있다. 수산물 관련 키워드를 추출하기 위하여 이러한 기록 분류체계 중 식 재료와 관련 가능성이 높은 경제-재정-공물과 진상, 경제-농 업-권농, 농업기술, 농작, 임업, 축산, 과수원예와 특용작물, 경제-재정-수산업-어업과 염업, 사회-식생활-주부식, 주류, 기 호식품, 사회-풍속-풍속과 연회 카테고리 내 기사에서 수산 물 관련 한자를 추출하였다. 추출된 수산물 단어 빈도는 전 체 자료 및 왕조별, 시대별 특성에 따라 분류된 자료에서 얼 마나 특정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빈 도가 높을수록 해당 단어가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핵심적 인 단어임을 의미한다.
3. 통계분석 방법
추출된 수산물 관련 키워드는 빈도 분석을 시행하여, 전체 자료에서 왕대별, 시대별 특성에 따라 단어의 빈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수집된 빈도는 단순 기술통계를 이용하여 집계하였으며 전체 데이터 중 차지하 는 비율은 백분율로 나타내었다.
III. 결과 및 고찰
1. 수산물 물종별 출현 빈도 및 왕대별 수산물 관심도
1) 수산물 물종별 출현 빈도
조선왕조실록에서 수산물 관련 단어 총 출현 빈도를 추출 하여 분류한 표는 <Table 1>과 같다. 수산물 총 출현 빈도는 9,536건 이었으며, 이 중 海物(해물)과 海錯(해착)은 해산물 전체를 가리키는 대표명사로 107건(1.12%) 기록되었고, 어 류는 27종 8,372건(87.79), 연체류는 3종 122건(1.28%), 패 류는 18종 213건(2.23%), 갑각류는 6종 188건(1.97%), 해조 류는 9종 534건(5.60%)으로 수산물 중 어류의 종류와 기록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다음이 해 조류, 조개류, 갑각류, 연체류 순으로 기록 빈도가 높았다.
세부 물종이 아닌 일반 물고기를 가리키는 魚物(어물), 乾 魚(건어), 乾魚物(건어물), 魚(어), 雜魚(잡어) 등의 단어들은 집합 명사로 분류하였으며, 이들의 기록은 7,916건으로 전체 어류의 94.6%를 차지하였다. 이는 구체적인 세부 물종보다 는 형이상학적인 단어로 기록한 성리학(性理學)적 사관(史觀) 에 의해 조선왕조실록 기록문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세부 물종이 표현된 수산물 중 담수어는 魚卽魚(즉어)와 魚付魚(부어) 로 기록된 붕어가 40건, 苽魚(고어)로 기록된 빙어가 4건, 松 魚(송어)가 13건, 魚連魚(련어)가 21건, 葦魚(위어)로 기록된 웅 어가 8건, 銀魚(은어)와 銀口魚(은구어)로 기록된 은어는 44 건, 黃魚(황어)는 16건으로 총 146건(1.74%)를 차지하고 있 다. 담수어 중 가장 기록 빈도가 높은 것은 맑은 물에서만 살며 산란전인 여름철에 그 맛이 가장 좋으며, 구이 등으로 많이 이용되나 회 맛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은어(銀魚)였다 (Yoon et al. 2002).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수어 종류는 江豚(강돈)으로 기록된 돌고래가 2건, 高道魚(고도어)와 古道 魚(고도어)로 기록된 고등어가 9건, 廣魚(광어)가 19건, 召介 魚(소개어)와 魚有魚(유어)로 기록된 다랑어가 5건, 大口魚(대 구어)가 115건, 白魚(백어)가 16건, 石首魚(석수어)로 기록된 조기가 34건, 秀魚(수어)로 기록된 숭어가 39건, 靑魚(청어) 가 64건, 河豚(하돈)으로 기록된 복어가 5건, 黃水魚(황수어) 가 2건으로 총 310건으로 어류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해 수어 중 가장 기록 빈도가 높은 것은 맛이 담백하며 국을 끓 이거나 구워 먹어도 좋고 어포를 만들어도 좋다고 자산어보 에 기록된(Jo 2016) 청어였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의 어 류 기록은 담수어(1.74%) 보다는 해수어(3.7%)의 비중이 높 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어업기술의 발달로 강이나 하천에서 잡는 담수어 보다 바다에서 포획하는 해수어 산출 이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Kim(2018)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 수산업 분야 기록 중 어구, 선박, 어로 장소에 같 은 어업활동에 관한 기록빈도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여 어업 기술 발달을 알 수 있으며, Lee(1985)는 조선시대 수산 물 분석을 통하여 조선 초기에 민물고기가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조선 말기에 해면어업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 였다.
연체류 중 두족류는 文魚(문어) 79건, 烏賊魚(오적어) 30건 으로 109건(89.3%)이었으며, 극피류는 海蔘(해삼) 13건 (10.7%)으로 극피류 보다는 두족류 기록이 많음을 알 수 있 다. 조개류는 蚌蛤(방합) 2건, 江瑤柱(강요주) 살조개가 2건, 生蛤(생합) 대합이 7건, 生紅蛤(생홍합)이 1건, 海蛤(해합)은 2건, 貝子(패자)는 6건, 石花(석화) 굴이 26건으로 총 46건 (21.6%), 陸螺(육라)로 기록된 우렁이 1건, 螺(라개)와 小 螺(소라) 등 소라류가 7건 총 8건(3.8%), 大鰒(대복), 鰒魚(복 어), 生鰒(생복), 圓全鰒(완전복), 引鰒(인복), 全鰒(전복), 花 鰒(화복), 灰全鰒(회전복) 등 전복류가 159건(74.6%)로 조개 류 중에서는 전복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는 조선시대 전복을 공납제 속에 편입시켜 진상품(進上品)으로 수취하는 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고 특히, 제주도에서는 전복을 전세(田稅)를 대신하여 수취하였으며, 진상품뿐만 아 니라 중국과의 교역품(交易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였기 때 문이다(Lim 2021).
갑각류는 生蟹(생해)와 蟹(해) 등 게를 표현하는 것이 103 건(54.8%), 蝦(하), 大蝦(대하), 紫蝦(자하), 白蝦(백하) 등 새 우를 표현하는 것이 85건(45.2%)으로 게와 새우는 거의 비 슷한 비율로 기록되어 있다. 해조류는 海菜(해채)와 海帶(해 대)와 같이 일반적인 해조류를 의미하는 것은 97건(18.16%), 藿(곽), 早藿(조곽)과 같이 미역을 뜻하는 단어는 313건 (58.6%)이었으며, 牛毛(우모) 우뭇가사리 42건, 海衣(해의)는 김을 뜻하며 33건, 黃角(황각)은 28건, 塔士麻(탑사마)는 다 시마를 뜻하며 20건, 山(매산)은 매생이를 뜻하고 1건으 로 기록되어 해조류 중 미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 을 알 수 있다. 미역은 전복과 함께 대표적인 제주의 특산품 이자 교역 품이었으며, 제주도 구휼품이었고 조선 후기 구황 식품으로 적극 이용되었다(Kim 2013).
2) 왕대별 수산물 기록 관심도(SII)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산물을 왕대별로 분류한 결과 가 장 많은 기록 빈도수를 생성한 왕대는 15세기 성종 1,941 (20.35%)건으로 가장 높았으며, 세종 1,197(12.55%)건, 세조 798건(8.37%), 16세기 중종 766건(8.03%), 18세기 영조 688 건(7.21%)으로 이들 5대 왕이 전체의 56.61%를 차지하였다. 다음으로 정조 664건, 연산군 553건, 숙종 460건, 선조 437 건, 고종 380건, 인조 265건, 명종 262건, 광해군 178건, 태 종 169건, 순조 168건, 단종 107건, 현종 106건, 효종 93건, 문종 84건, 예종 80건, 경종 78건, 순종 15건, 현종 11건, 인종 4건, 철종 4건, 경종 2건 순으로 나타났다<Figure 2>. 조선왕조실록 채소류 관련 단어 기록 빈도수는 18세기 숙종 과 영조시절이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냈으며(Kim 2021a), 과 실류 관련 단어 기록 빈도수는 16세기말 선조 때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Kim 2021b) 물종별로 시대적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지배계층들의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를 파악하기 위 해서는 단순 기록 출현 빈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Kim 2021a), 왕대별 재위 년 수와 기록된 기사수를 고려하 여 왕들의 수산물관심도(Seafoods Interest Index)를 수치화 하였다<Figure 3>.
조선시대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왕은 15세기 성종(0.101), 15세기 세조(0.089), 18세기 영조(0.081), 15세기 세종(0.078), 18세기 정조(0.065) 순이었으며, 그 다음 으로 숙종, 연산군, 중종, 예종, 선조 고종, 단종, 명종, 광해 군, 인조, 명종, 순조, 효종, 태종, 현종, 순종, 광해군, 태조, 인종, 현종, 경종, 철종 순이었다. 조선시대 왕대의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는 15세기 성종과 세조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 타났다. 이는 다른 물산과 마찬가지로 15세기는 8도 군현별 물산 상황을 현지 조사한 구체적인 기록물인 세종실록지리 지가 있기 때문이다(Kim 2017). 반면 Kim(2018)은 조선왕 조실록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수산업에 대한 왕들의 복합 관 심도 지수를 평가하였는데, 수산업 영향력이 가장 높은 왕은 17세기 현종이었고, 다음 순으로 15세기 성종, 16세기 중종, 연산군, 17세기 인조, 15세기 세종 등의 순서라고 하였다. 이 처럼 왕대별 수산 물종에 관한 기록 빈도수로 산출한 수산 물 관심도(SII)는 15세기에 높았고, 수산 제품뿐 아니라 어업, 염업, 양식업, 어로, 유통 등 수산업 전체를 지표로 산출한 수산업 집중도는 17세기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는 조선 초기 새로운 문물학을 수립하려는 노력과 조선 후 기 어업기술 발달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수산물관심도(SII)가 가장 높은 왕은 15세기 성종(成宗, 재 위 1469-1494)이다. 성종 대에 기록 빈도수가 높은 수산물들 은 물고기(魚) 1,563건, 대구어 31건, 숭어 16건, 광어 12건, 은어 10건, 문어 19건, 오징어 20건, 전복 59건, 게 8건, 새 우 12건, 김 17건, 다시마 19건, 미역 24건 등으로, 수산물 세부 물종별 출현 빈도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종 들이 기록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성종 1년(1470년) 2월 13일 戶曹兼判書具致寬來啓曰 魚箭 本以給官民 令備進上 且 以資生也 今宗親勢家冒占結造 以奪官民之利 有違立法本意 (호조 겸 판서 구치관이 와서 아뢰기를 어전(魚箭)은 본래 관 민에게 주어서 진상에 대비하고, 또 생업에 자뢰하게 하였었 는데, 지금 종친 세가에서 함부로 결조하여 관민의 이익을 빼앗으니, 입법한 본의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생활 수단인 어업((漁業)은 어량(魚梁)과 어전 (魚箭)으로 기록되는데, 하천에 교량과 같은 제방을 쌓고 통 발 같은 어류 포획장치를 설치하는 어량은 삼국시대부터 등 장하는데(Lee et al. 2019), 성종 대부터는 어량 대신 강이나 바다에 장목 등을 꽂고 그물을 달아 고기가 들어가도록 하 는 어전(魚箭)이라는 용어만 사용되어 어량에서 어전으로 용 례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즉, 15세기 성종 이후 어류 포 획법이 대량 포획법으로 어업기술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높은 수산물관심도(SII)를 갖은 왕은 15세기 세조 (世祖, 재위 1455-1468)이다. 세조대 물고기(魚)는 644건, 대 구어 24건, 문어 27건, 송어 4건 등이 다수 기록되었다. 세 조 4년(1458년) 9월 19일 承政院奉旨馳書咸吉道觀察使曰 進 獻文魚二百尾 鹿脯二百月廷 革達狗十口 須及正朝使之行 送于平 安道 (승정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함길도 관찰사에게 치서하 기를 진헌 할 문어 2백 마리와 녹포 2백 정, 달구 10구를 정조사의 행차가 이르기를 기다려 평안도로 보내라). 세조 6 년(1460년) 12월 6일 遣工曹參判宋處寬奉表如大明~第表祗謝 之 竝獻海靑二連文魚五百尾 (공조 참판 송처관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명나라에 가게 하였으니~다만 공경하고 감사 하는 정성을 표합니다. 아울러 해청 2련과 문어 5백 미를 드 립니다). 이처럼 문어는 지방에서 왕실에 공납하는 진상품이 면서 국가 간 교역품으로 귀한 수산물이었다. 15세기 세조대 에 수산물 관심도가 높은 이유는 집권 이후 진상품과 교역 품으로 쓰이는 수산물 대납을 전면 공인함으로서 세목이 대 폭 확대되었고, 대납가 상정을 통해 고을 간 부담량을 합리 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So 2017).
세 번째 높은 수산물관심도(SII)를 보인 왕은 18세기 영조 (英祖, 재위 1724~1776)이다. 영조 대 높은 기록 빈도를 보 인 수산물은 물고기(魚) 592건, 해삼 3건, 전복 14건, 게 14 건, 미역 42건이다. 영조 24년(1748년) 8월 5일 倭人以我船 失火 蔘幣焚燒殆盡 別賂海蔘十櫃 倭布三百匹 上以辭受兩難 問大臣 大臣請以授之萊府 以備不時之需 從之 (왜인이 우리 배가 실화하여 삼폐가 거의 다 타버렸다는 것으로 특별히 해 삼 10궤와 왜포 3백 필을 보내 왔는데, 임금이 사양하기도 곤란하고 받기도 곤란하여 대신에게 하문하니 대신이 동래 부에 주어 불시의 수요에 대비하게 할 것을 청하자 그대로 따랐다). 이처럼 외교상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하여 왜인들 은 그 보상과 예로써 해삼을 보내왔다. 해삼은 화폐 가치를 지닌 귀한 수산물로 고가의 진상품과 교역 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산어보에 의하면 해삼은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三 貨)라고 하였으며, 우리나라 동, 서, 남 바다에 거의 다 서식 하며 해삼을 잡아 말려 가지고 판다고 하였다(Lee 1985).
네 번째 높은 수산물관심도(SII)를 보인 왕은 15세기 세종 (世宗, 재위 1418-1450)이다. 세종 대 높은 기록 빈도를 보인 수산물은 물고기(魚) 827건, 어물 34건, 은구어 8건, 대구어 23건, 석수어 11건, 청어 22건, 문어 15건, 새우 29건, 석화 13건, 해채 32건, 미역 83건 등이다. 세종 19년(1437년) 5월 1일 魚鹽則不曠日月 不費財力 功省而利多 唯薄稅之外 無他 賦役, 故遊懶末作之徒 爭逐其利~漁水梁則咸吉 江原之大口魚 魚連魚 魚方魚 慶尙之大口魚 靑魚 全羅之石首魚 靑魚 忠淸之靑 魚 雜魚 京畿之雜魚 蘇魚 黃海之雜魚 靑魚 平安之石首魚 雜 魚 此其産之最多者也 而又他海産 取利亦多 (어염은 많은 시 일과 재력을 허비하지 아니하여, 공력은 적고 이익은 많은데, 적은 세가 있는 외에는 다른 부역이 없기 때문에, 놀고 게으 른 못된 무리들이 다투어 그 이익을 취합니다. 어량, 수량에 는 함길도와 강원도의 대구어, 연어, 방어, 경상도의 대구어, 청어, 전라도의 조기, 청어, 충청도의 청어, 잡어, 경기의 잡 어, 밴댕이, 황해도의 잡어, 청어, 평안도의 조기, 잡어 등은 이것이 그 지방에서 생산하는 가장 많은 것이고)하였다. 이 처럼 세종 대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통하여 8도 군현별 수산물산 상황을 현지 조사하여 공납의 근거자료로 활용하 였다(Kim 2017).
다섯 번째 높은 수산물관심도(SII)를 보인 왕은 18세기 정 조(正祖, 재위 1776-1800)이다. 정조 대 기록이 많은 수산물 종은 물고기(魚) 479건, 어물 12건, 황어 4건, 광어 3건, 대 구어 5건, 석수어 3건, 숭어(수어) 18건, 청어 9건, 굴(석화) 2건, 전복 19건, 게 26건, 김 6건, 미역 48건, 우무 6건이었 다. 정조 17년(1793년) 7월 29일 庚申 水原府 果川縣蟹貢 (수원부의 과천현에서 공물로 게를 바치는 것을 면제해 주었 다). 정조 14년(1790년) 7월 23일 湖西物膳朔膳 皆不封進 自 京廳代封 度支定例中 朔膳價米 乾秀魚價米名色 卽此也 (호서 에서는 물선과 삭선을 모두 올리지 않고 경청에서 대봉하고 있는데, 탁지에서 만든 규례 중에 삭선가미와 건수어가미라 는 명색이 곧 그것이다)하였다. 이처럼 공물로 다양한 수산 물을 바치는 폐단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조의 관심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정조대에 양역 개혁으로 인한 조세 수입의 감소를 보완하기 위하여 실시한 잡세의 폐단을 해결 하고자 하였으며, 조세 체제가 각 지방에 잘 적용되고 있는 지 큰 관심을 가졌다(Ahn 2018)는 연구결과와 일치한다.
2. 시대에 따른 수산물의 물종 현황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산물의 출현 빈도가 시대 에 따 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고자 물종에 따른 세기별 빈도 와 백분율을 분석하였다. 다만 1대 태조(1392-1398)와 2대 정종(1399-1400)대 데이터는 15세기에 포함시켰으며, 26대 고종(1900-1906)과 27대 순종(1907-1910)대 데이터는 19세 기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Table 2>. 수산물 관련 단어 기 록은 9,536건 중 15세기 4,789건(50.2%), 18세기 1,697건 (17.8%), 16세기 1,488건(15.6%), 17세기 984건(10.3%), 19 세기 578건(6.1%) 순으로 15세기 수산물 관련 물종 출현 빈 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에 따른 수산물 세부 물종 출현 변화를 상대적 비율 로써 살펴본 결과 수산물 전체를 가리키는 해물(海物), 해착 (海錯)과 같은 집합명사는 15세기 65.6%, 16세기 20.3%, 18 세기 9.4%, 19세기 2.8%, 17세기 2.0%였으며, 어류를 가리 키는 어(魚), 건어(乾魚), 건어물(乾魚物), 어물(魚物), 잡어(雜 魚)와 같은 집합명사는 15세기 62.3%, 16세기 16.5%, 17세 기 9.6%, 18세기 8.6%, 19세기 3.0%로 분포하고 있어 집합 명사의 기록은 조선시대 전반기에 매우 높은 출현율을 나타 냈다. 이는 조선 전반기 관조적 사유에 의해 표현되어진 성 리학적 자연관으로 세부 물종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세밀한 기록보다는 일반적 집합명사로써 식재료를 표현하고 기록하 는 경향성 때문이다(Han 2004).
15세기는 해수어 68.5%, 갑각류 55.5%, 연체류 55.2%, 해 조류 53.5%, 담수어 48.4%, 조개류 40.7%로 나타났다. 이처 럼 15세는 모든 세부 물종들이 다른 세기에 비해 높은 비율 을 나타내며 특히 해수어 기록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음을 확 인 할 수 있다. 15세기 세종 집권 후반기에 지속된 농지개간 으로 하삼도에서 서식하던 양생 금수류의 분포와 생산이 급 감하는 가운데, 수산물의 생산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Kim 2009). 이렇게 생산량이 증가한 수산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되어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였다. 15세기 농서인 「Sangayorok (山家要錄)」(Rural DA ed. 2004)을 살펴보면 건소어 법(乾小魚法)이 기록되었는데 칼로 등을 갈라서 소금을 뿌리 거나 참기름을 발라서 말리거나, 말린 상수리나무 잎으로 서 로 떼어놓고 펴서 음건하였다가 익혀먹으면 매우 맛이 있다 고 하였다.
16세기는 해조류 21.9%, 담수어 20.9%, 패류 15.5%, 갑각 류 15.3%, 해수어 12.5%, 연체류 5.6%로 나타나 해조류와 담수어 출현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6세기는 전란의 시대로 정상적인 어업이 제한되던 시대로써 쉽게 채 취와 수렵이 가능한 해조류와 담수어 활용이 증가한 것으로 사료된다. 1591년 임진왜란 피란시 식생활을 기록한 오희문 의 쇄미록을 살펴보면 천렵을 통하여 담수어 사냥하는 모습 이 빈번히 묘사되고, 미암가 식품수입내역 중 어패류 선물이 45%로 가장 많이 수입되어 육류보다는 어패류 사용이 보편 적이었고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Kim 2013).
17세기는 패류 12.9%, 갑각류 12.7%, 담수어 9.8%, 해수 어 6.9%, 해조류 5.8%, 연체류 2.8%로 패류와 갑각류 출현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특히 왕실에서 어패 류는 진상품으로 다양하게 식용되었으며, 병증을 치료하는 식이요법으로 활용되었다(Kim 2019). 1670년 「Eumsikdimibang (閨壺是議方)」(Han BR et al. ed. 2004)에서는 대합, 모시조개, 가막조개, 전복 손질법 및 맛있게 조리하는 법이 등장한다.
18세기는 패류 23.0%, 갑각류 15.8%, 연체류 12.9%, 해조 류 12.8%, 해수어 11.7%, 담수어 11.2% 비율로 17세기와 마찬가지로 패류와 갑각류 출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66년 유중림이 간행한「Jeungbosanlimkyungje (增補山林經濟)』(Yoon SJ ed. 2007)에 게 기르는 법, 게 저장하는 법, 술로 게장 담그는 법, 간장과 식초로 게 장 담그는 법, 간장으로 게장 담그는 법, 민간에서 게장 만 드는 방법, 게지짐 등 새우와 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 활용 법이 소개되고 있다.
19세기는 연체류 23.5%, 담수어 9.8%, 패류 7.8%, 해조류 5.9%, 갑각류 0.7%, 해수어 0.4%로 나타나 연체류 출현 비 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확인 할 수 있다. 1809년 빙허각 이 씨가 집필한「Kyuhapchongseo (閨閤叢書)」(Jung YW ed. 2008)에는 오징어, 문어, 해삼 명칭의 유래와 함께 조리법과 식이요법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800년대에 발간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식품 가공서인 임원십육지(林園十 六誌) 정조지(鼎俎志) 편에 수록된 어패류는 총 36종으로, 그 중 해삼은 海蔘(해삼)과 海鼠(해서)의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 으며, 금기사항 없이 이롭기만 한 생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Baek & Choi 2004).
3. 조선시대 수산물 가공식품 특성
조선왕조실록 속 수산물 가공식품 현황은 <Table 3>과 같 다. 조선시대 수산물 장기보존을 위한 가공법은 크게 건조법 과 염장법으로 나눌 수 있다. 건조법에 의한 수산물 가공은 전체 553건으로 38.06%를 차지하고, 소금을 이용한 염장발 효법은 891건으로 61.32%를 차지하였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의 수산물 기록이 공납물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장기보관이 용이한 건조법과 염장법이 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조 선 중기와 후기 조리서의 어패류 이용 현황을 비교한 Baek & Choi(2004)의 연구에서도 조선 후반기로 갈수록 조리서에 기록된 어패류의 종류와 조리법이 다양해지고, 어패류를 김 치에 첨가하거나 건어나 포 형태의 가공법이 많아졌다고 하 였다.
젓갈류는 조선왕조실록 수산물 가공식품 중 그 비중이 가 장 크다. 젓갈은 어패류와 그 내장을 소금에 절여 독특한 감 칠맛이 나도록 만든 저장식품으로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직 접 젓갈을 담지 않고 진상품으로 오른 것을 사용하였다 (Hwang 1980)고 한다. 광해 9년(1617년) 10월 9일 自本所 別爲求請其魚鹽 欲給其善造匠人矣 臨陂縣令朴安禮 石首魚及 白蝦 非但?卽造送 石首魚六百束 白蝦四十甕 其數甚多 捧用之意 敢啓 (도감에서는 바닷가의 몇 개 고을에 대하여 물고기와 소금을 특별히 청구하여, 잘 만든 장인에게 주려고 하였습니다. 임피 현령 박안례는 조기와 새우젓을 제때에 마 련해 보냈을 뿐 아니라, 조기는 6백 두름, 새우젓은 40독이 나 되어 그 수량이 매우 많습니다. 받아서 사용했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세조 14년(1468년) 7월 10일 丁卯 命宦官申雲 齎海菜四百束 乾水魚一百尾 石首魚一百束 乾廣 魚一百四十尾 黃魚 石首魚卵 芒魚卵 松魚各二缸 分贈于姜玉 金輔 (환관 신운에게 명하여 해채 4백 속, 마른 물고기 1백 미, 석수어 1백 속, 마른 광어 1백 40 미, 황어 젓, 석수어란젓, 망어란젓, 송어젓 각각 2동이를 강옥과 김보 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매우 다양한 수산물을 활용한 젓갈 음식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95년 궁중연회에 등장한 젓갈은 생복, 대합, 석화 등 패류 를 비롯하여 방어, 황석어, 청어 등 어류와 자하, 새우, 백하, 가는 새우, 게 등 갑각류 그리고 송어알, 대구알, 새우알, 명 태알, 대구알, 연어알, 조기알, 밴댕이알, 홍어알, 게알, 방어 알 등 알류와 조기아감젓(石魚牙甘)과 같은 생선 내장류 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젓갈류가 등장하여 총 28가지에 이 른다고 하였다(Lee 2010). 19세기 서유구 임원경제지에서 새 우젓이 팔도에 흘러넘칠 정도로 보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 다. 이시기 새우젓은 왕가나 궁가 등 특권층만 아니라 민초 들에게도 확대되어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수산물 가공식품 중 건조법을 이용한 포(脯)나 건어물(乾 魚)은 전체의 38.06%를 차지하는데, 추포( 鮑)와 같이 세 부 물종을 알 수 있는 기록물은 주로 공납품으로 사용되었 던 전복의 명칭이다. 세종실록 지리지 51권 지리지 전라도 제주목 土貢 ~全鮑 引鮑 槌鮑 條鮑 烏賊魚 玉頭魚 昆布 山 柚子木 二年木 榧子木 良馬 (토공이 전복, 인포, 퇴포, 조포, 오징어, 옥두어 등이요). 진상 품목은 크게 추복( 鰒), 조복 (條鰒), 인복(引鰒), 회전복(灰全鰒) 등의 전복과 함께 오징어 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추복이란 방망이로 두드려가면서 말린 전복으로 추포(槌鮑)라고도 일컫는다. 조복은 오리와 같 이 가늘고 길게 썰어 말린 전복으로 여겨지며, 인복은 납작 하게 펴서 말린 전복으로 건복(乾鰒)이라고도 칭한다(Lee 2002). 제주도 공물 상납은 주로 별진상과 별공물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생전복을 바칠 경우 운반과정에서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른 전복 형태로 바쳐졌다(Kim 2008).
수산물 가공식품 중 나머지는 찜(熟)과 회(膾)이다. 영조 31년 4월 2일(1755년) 命停嶺南生 熟鰒封進 時 海水忽然赤 濁 食海物者 多中水毒 統制使啓聞故也 (영남에서 봉진하는 생복과 숙복을 정지하라 명하였다. 이때에 바닷물이 갑자기 붉고 흐려져 해물을 먹은 자들이 수독에 중독되었다고 통제 사가 계문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진상품인 전복은 건조된 형태이외에도 생전복이나 찐 전복 형태로 진상되기도 하였 다. 하지만 수온이 상승하여 식중독 우려가 있을 때는 생복 과 숙복은 진상을 정지하라 명하였다. 성종 7년(1476년) 6월 12일 臣父寢疾歲餘 粥尙不入口 羸瘦骨立 一夕天雨 水漲前 溪 父忽語臣曰 欲嘗魚膾 然天寒水 其可得乎 時正月初六日 也 (신의 아비는 병이 나서 들어 누운 지 1년 남짓 되었는데, 죽조차 거의 먹지 못하니, 지쳐서 여윈 나머지 뼈가 드러나 게 되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물이 앞 개울에 넘쳐 흐르는데, 신의 아비가 갑자기 말하기를, 생 선회를 맛보고 싶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서 물이 얼어붙었으 니 그것을 어떻게 구하겠느냐 하였는데) 하였다. 어회는 12 첩 반상인 수라상의 별찬으로 차려졌고(Han 2015), 조선왕 실 연향을 기록한 진연의궤에도 어채가 기록되어 궁중의 잔 치음식으로도 이용된 귀한 음식이었다(Park 2020).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3월의 시식으로 웅어회, 4월 어채를 소개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지역마다 잡히 는 어류를 이용해 다양한 회 형태의 수산물 음식이 발달하 였음을 알 수 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조선왕조실록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수산물 물종과 왕대별 기록 현황과 시대에 따른 수산물 출현의 거시적 흐름과 특성을 파 악하여 조선시대 음식문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 고자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국사편찬위원회 웹 사이 트의 1대 부터 27대 왕까지의 모든 기록을 웹 크롤링 기법 을 사용하여 스크래핑 하였다.
웹 크롤링으로 수집한 실록의 기사 수 총 384,582건에서 추출한 수산물 총 출현 빈도는 9,536건 이었으며, 해산물 전 체를 가리키는 집합명사로 107건(1.12%) 기록되었고, 어류 는 27종 8,372건(87.79), 연체류는 3종 122건(1.28%), 패류 는 18종 213건(2.23%), 갑각류는 6종 188건(1.97%), 해조류 는 9종 534건(5.60%)으로 수산물 중 어류의 종류와 기록 빈 도수가 압도적으로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어류는 담수어 (1.74%) 보다는 해수어(3.7%)의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SII)가 가장 높게 나타난 왕은 15세기 성종, 15세기 세조, 18세기 영조, 15세기 세종, 18세기 정조 순이었다. 조선시대 왕대의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는 주로 15 세기와 18세기에 높았다. 기록된 수산물 가공식품의 특성은 가공법은 크게 건조법과 염장법으로 나눌 수 있었고, 건조법 에 의한 수산물 가공은 전체 553건으로 38.06%를 차지하고, 소금을 이용한 염장발효법은 891건으로 61.32%를 차지하였 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의 수산물 기록이 공납물품이 주를 이 루다 보니 장기보관이 용이한 건조법과 염장법이 주를 이루 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산물 분석을 통하여 어류 종류와 기록빈도수가 많음을 통하여 조선시대 식생활 문화에서 수산물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었고, 왕별로 수산물에 대한 관심도 지수는 크게 달라 지 도자의 정책이념에 따라 식량정책이 다른 양상으로 발전함 을 알 수 있었다. 수산물 세부 물종 중 어류 비중이 가장 높 았고 그 중 해수어 비중이 높음을 통하여 조선시대 수산업 기술의 발달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건조법과 염장법 등 수 산물 저장법 발달로 수산물의 안정적 수급이 이루어져 다채 로운 음식문화가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조선왕 조실록 속 수산물에 관한 기록들은 단순히 우연한 상황 속 물종의 나열이 아닌 당시대 수산물에 관한 인식과 소비 현 상 등 음식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