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조선시대 궁중에서의 다례는 사신 영접을 위한 다례와 궁 중 연회 다례, 그리고 왕실의 제사 형태로 나타난다(Suh 2004). 특히 궁중의 상례나 제례로 나타나던 다례 즉 제사는 「Gukjooryeeui (國朝五禮儀)」에 없는 예제이며, 중국 예제 와 달리 창의적인 독자성을 갖고 발전해왔다(Jung 2006).
조선 왕실의 제향 의식은 삭망다례, 절기다례, 기일다례, 능소다례, 조석 상식(上食), 주다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 다(Lee 2008). 조선 후기에 오면 왕실의 제사는 전반적 양상 이 달라져 상식을 하는 등 점차 성대한 제사로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Jung 2006). 제수와 진설은 유교제사의 실천적 맥 락에서 조상신에 대한 예후와 자손, 친족간 유대를 넓혀가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조선 왕실의 제사를 기록한 다례 발기(發記, 撥記, 件記)류 와 다례 등록(謄錄)류에는 다례에 오른 음식과 재료가 적혀 있다. 다례상에는 떡류, 실과류, 조과류, 화채·수정과류, 면· 만두류, 숙육·회·찜·탕·식혜 등 찬물류를 올렸다. 하 나의 제사상에 오른 음식의 구성은 찬안상이나 다소반과(茶 小盤果)와 같은 연회나 일상의 상차림과 유사했다(Han&Lee 2016). 이와 같이 왕실 가족의 제사는 의례적이기는 하지만 음식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면 궁중음식의 실제적이고 일 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Han&Lee 2016).
일 년간 지낸 다례를 묶어 책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Gyeongugung jehyang balgi (경우궁 제향 발기)」나 「Sakmangdalye-deungnok (朔望茶禮謄錄)」(Yejo, End of 1700s) 등이 있다(Jangseogak Royal Archive 1999).「경우 궁 제향 발기」는 경우궁(景祐宮) 즉 순조의 생모이자 정조 의 후궁인 수빈 박씨(綏嬪朴氏, 1770~1822)의 사당에서 지 낸 1년간의 명절삭망기신다례 음식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Sakmangdalye-deungnok(삭망다례등록)」은 영조의 후궁이 자 장조(莊祖,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 1696~1764)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인 선희궁의 1년간의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지낸 다례에 올린 음식내용을 기록한 것 이다.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기록된 조선 왕실 가족의 제사와 관련된 책 1권이 민가에 전해졌다. 이 책은 「Gabo jaedong jemuljeongnyechaek (甲午 齋洞 祭物定例冊, 갑오 재동 제물 정례책)」으로 순조(純祖, 1790~1834)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 (福溫公主, 1818~1832)의 1834년에 올린 다례 음식내용을 다 루고 있다.
조선시대 독자적으로 발전된 궁중 다례에 관한 음식연구 가 부족한 실정이다. 본 논문은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 에 기록한 공주의 다례의 종류와 음식내용을 분석해봄으로써 조 선 왕실 가족의 제사 다례음식의 특징을 살펴보고, 궁중음식 의 조리법 및 용어의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보 완, 발전적인 궁중음식문화 연구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문헌 소개 및 다례 대상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甲午 齋洞 祭物定例冊)」(이하 제 물정례책)은 한글 궁체로 적혀 있으며, 가로 27.5 cm, 세로 34 cm의 크기로 31장으로 되어 있다<Figure 1>. 갑오 즉 1834년(순조 34) 시월 이십육일 생신궁 다례를 시작으로 정 조·삼짇·단오·칠석·동지 등 명절, 묘소, 기신, 삭망, 섣 달의 납향 다례까지 1년간 행한 39종의 다례에 올린 음식과 재료목록이 적혀 있다<Figure 2>.
이 책은 순조(純祖, 1790~1834)와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년 음 10 월 26일~1832년 음 5월 12일)의 다례에 올린 음식내용을 다 루었다.
복온공주는 1824년(순조 24) 7살 때 정식으로 공주에 책 봉되어 13살 때인 1830년(순조 30)에 삼간택을 거쳐 부사과 (副司果)를 지낸 안동 김씨 김연근(金淵根)의 아들 김병주(金 炳疇, 1819~1853)와 혼인하였다. 소생이 없던 공주는 혼인 2 년만이 1832년(순조 32, 임진)에 15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2016).
「순조실록」 32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순조는 어린 딸의 죽음을 몹시 안타깝고 슬퍼했다. 복온공주가 졸서(卒逝) 하자 왕실에서 쓰던 관을 만드는 동원부판(東園副板) 1부를 보내고 예장(禮葬) 이외에도 필단(匹緞), 미포(米布) 등의 물 건을 보내고, 온갖 상수(喪需)는 미진하지 않도록 명하였다. 빈소는 본방(本房, 왕비의 친정 또는 공주집)에 마련하였고, 예조(禮曹)의 주관 하에 순조가 직접 공주의 집[主第]으로 가 서 성복(成服) 의례를 올렸다.
「Seungjeongwon Ilgi (承政院日記)」 순조 34년 5월 10일 에 보면 순조는 복온공주의 이번 기일부터 다례 관련 공상 및 음식[宣飯]과 의전(衣纏)을 호조(戶曹)의 의견에 따라 해 사(該司)에서 준비하지 않는 것에 동의했다. 복온공주가 죽 은 후 만 2년이 되는 대상(大喪) 전까지 궁궐 내 해당 관청 에서 복온공주의 다례를 준비한 것이다.
이 책은 복온공주의 남편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 1819~1853)의 5대손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 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궁체(宮體) 한글을 연구하고 한글 서 예를 보급한 근현대 서예가로 활동했던 김충현의 후손이 운영 하고 있는 백악미술관에서 이 책을 소장하고 있다. 백악미술 관 측에 따르면「제물정례책」은 1835년 순조가 딸 복온공주 가 숨진 뒤 사위에게 내려 보낸 제사물목집이라 하였다.
「제물정례책」의 표지에 적힌 ‘재동(齋洞)’은 복온공주가 살았고, 죽은 뒤 제사를 지낸 장소일 것으로 추측된다. 재동 (齋洞)은 서울 종로구에 속한 지명이다. 이 곳은 북촌(北村) 으로 왕의 종친과 외척 및 고급관료들이 살던 지역이다. 1866년(고종 3)에 대전에서 궁궐각처의 하급관료(궁녀, 내관) 들에게 분료(分料)한 내용을 수록한「Byeonginkeunjeonbullyodo (병인큰뎐분뇨도)」(Jangseogak Royal Archive 1999)에는 재동궁이 등장한다. 순종의 첫째와 셋째인 명온공 주와 덕온공주가 거주했던 죽동궁과 저동궁과 함께 등장한 재동궁은 복온공주가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제물정례책」은 복온공주가 죽은 뒤 2년 후 갑오년(1834, 순조 34)에 행한 일 년간의 다례를 기록한 것이다. 순조의 딸에 대한 애틋한 부정이 복온공주만의 제사정례를 만들어 지키기를 바랬던 특별한 지시가 아랫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완 벽한 일 년 열두 달의 다례에 올린 음식내용을 살펴볼 수 있 게 되었다.
1. 연구 조사 방법
본 연구는 「제물정례책」을 통해 조선 왕실의 제사 다례 음식의 특징을 살펴보고, 궁중음식의 조리법과 용어의 특징 을 분석하여 궁중음식문화를 이해하고 문헌적 가치를 찾고 자 한다.
첫째,「제물정례책」에 기록된 다례의 종류와 구성음식을 통해 복온공주에게 올린 1년간 다례의 특징을 살펴본다. 둘 째, 1년간 올린 다례의 종류와 각 다례에 올리는 음식의 선 택과 구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의 왕실 가족의 다례나 기록방식이 유사하게 쓰인 다례발기, 다례등록을 활 용하여 고찰한다. 마지막으로「제물정례책」에 기록된 음식 과 재료 및 기물을 통해 복온공주의 다례음식의 조리법 및 용어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 책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알 아보고자 한다.
왕실 가족의 다례 중 순조의 생모이자 정조의 후궁인 수 빈 박씨(綏嬪朴氏, 1770~1822)즉 경우궁(景祐宮)의 1년간의 다례를 기록한 음식발기인「경우궁 제향 발기」, 「Gyeongugungjeongmyo hyangsu-Geongi (景祐宮 丁卯 享需件記)」「Gyeongugung gyeongo hyangsu-Geongi (景祐宮 庚午 享 需件記)」, 그리고 기록방식이 유사한「삭망다례등록」, 「Byeoldalye-deungnok (別茶禮謄錄)」 등의 문헌을 참고한다. 음식의 조리법은 조선시대 고조리서 및 관련 문헌들을 참조 하여 고찰한다.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의 내용은 원본을 촬영한 궁중음 식연구원 소장 이미지를 참고하였으며,「경우궁 제향 발기」, 「경우궁 정묘 향수건기」,「경우궁 경오 향수건기」,「삭망 다례등록」,「별다례등록」의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 각 소장의 Micro film을 참조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1.「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에 기록된 복온공주의 다례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甲午 齋洞 祭物定例冊)」(이하 제 물정례책)에는 1834년(순조 34)에 죽은 복온공주에게 1년간 올린 39종의 다례 음식과 재료목록이 적혀 있다<Table 1>.
대부분 다례를 기록한 책을 보면 월별로 다례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 책에는 ‘갑오 시월 이십육일 생신궁 다례’와 이어 같은 날 ‘묘소 생신 다례’가 먼저 등장한다. 이는 복원공주 의 생신일에 궁과 묘소에서 지낸 다례이다. 그 다음부터는 1 월 초하루 정조(正朝) 궁다례를 시작으로 월별로 지낸 다례 를 기록했다.
1월 정조, 2월 한식, 3월 삼짇, 4월 팔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8월 추석, 9월 구일, 11월 동지, 12월 납향 의 명절다례를 지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다례를 지 냈다. 다만, 정조(1월 초하루), 추석(8월 보름)처럼 명절과 삭 또는 망일이 겹치는 날에는 명절다례만 지냈으며, 6월에는 명절과 상관없이 망다례를 지내지 않았다. 조선 후기 국가 상례의 준칙으로 활용되던 「Gukjosangnyebopyeon (國朝喪 禮補編)」에 보면 삭망이 별제(別祭)와 겹치게 되면 별제만 거행한다고 했다. 이러한 의례기준에 따라 복온공주의 다례 중 삭망이 겹치는 명절다례에는 명절다례만 지낸 것으로 보 인다.
복온공주의 기일인 음력 5월 12일에는 기신다례를, 생신일 인 음력 10월 26일에는 생신다례를 지냈다. 생신다례는 궁 과 묘소에서 각각 다례를 지냈다. 궁은 복온공주의 제사를 지냈던 재동궁을 지칭하며, 묘소는 복원공주의 묘를 말한다. 정조, 한식, 단오, 추석의 명절다례에도 생신다례와 마찬가지 로 궁과 묘소에서 각각 다례를 지냈다. 「국조상례보편」에 는 정조, 한식, 단오, 추석, 동지에는 산릉 즉 묘소에서 다례 를 지내는 의식이 나온다. 또한 「경우궁 제향 발기」에 보 면 한식에 묘소다례를 함께 지냈다.
5월 기신다례와 8월 추석에는 묘소다례에 진지를 겸향하 였다. 경우궁의 다례를 다룬 음식발기류를 검토해보니 기신 다례마다 항상 상식을 겸했다(Hansik Archive, 2014). 즉 진 지는 상식처럼 생전에 평상시에 드시던 음식상을 차린 것이다.
「경우궁 정묘 향수건기」와 비교해보니 경우궁의 다례 중 삭망다례는 달별로 기록하지 않고 통합하여 간단히 기록했 고, 정조·한식·단오·추석에 묘소다례를 지내지 않은 것 과 백종일에 다례를 지낸 것만 제외하면 일 년간 지낸 복온 공주의 다례와 정묘년에 지낸 경우궁의 다례 종류는 거의 같 았다.
2. 복온공주 다례별 음식 구성과 특징
「제물정례책」에는 각 다례의 명칭이 쓰여 있고 이어서 다 례에 올린 음식목록과 총 그릇수를 적어 놓았다. 한식, 단오, 추석의 묘소다례에 적힌 그릇수는 실제 그릇수와 약간 오차 가 있었으나, 나머지 다례에 적힌 그릇수는 일치하였다.
가장 많은 음식이 오른 다례는 생신 묘소 다례로 33그릇 을 차렸다. 그 다음은 기신 다례에 32그릇, 생신 궁다례 26 그릇 순이다. 명절다례는 정조 즉 정월 초하루에 궁과 묘소 에서 지낸 다례 25그릇, 4월 초파일에 올린 다례 20그릇을 올린 것을 빼면 나머지 한식, 삼짇, 단오, 추석, 동지, 납향 다례는 13~18그릇을 올렸다. 삭망다례의 경우 9~11그릇으로 명절다례보다 더 적은 음식을 차렸다. 묘소에서 다례를 겸해 올린 진지는 12~13그릇을 올렸다.
복온공주의 다례에 등장한 음식을 조리법별로 나누어 보 았다<Table 2>. 다례음식은 크게 병과류와 어육·채소음식, 떡·만두·죽 등 곡물음식, 그리고 장·꿀로 나뉜다. 병과 류에는 유밀과, 유과, 다식, 실과, 숙실과, 과편, 정과, 수정 과·수단·화채 등의 음청, 그리고 떡이 있다. 떡의 경우 고 임떡의 받침이 되는 시루병(증병)과 웃기떡에 해당하는 고물 병이 있다. 떡 중에 약식은 별도로 한 그릇에 올린 경우라 따로 구분하였다.
어육·채소음식으로는 절육, 포, 식해, 느름적, 전유화, 적, 편육·족편, 숙란, 만두, 찜, 초·볶기, 회, 채, 장과, 좌반, 탕이다. 대부분이 어육음식이며, 채소음식은 청포채·가지침 채·나물·침채 등 채에 속한 음식과 두탕, 토란탕이다. 장 과와 좌반, 나물, 침채는 묘소에서 다례를 겸해 올린 진지에 만 차려졌다.
곡물음식으로는 면이나 낭화, 국만두, 교아상화, 탕병 등 떡국이나 만두, 그리고 타락죽 등이 있다. 밥은 묘소에서 다 례를 겸해 올린 진지에만 올랐다. 장류로는 초장, 추청, 겨 자, 진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례에 올린 음식 구성과 특징을 살펴보았 다<Table 1, 2>. 가장 많은 음식이 오른 생신묘소다례에는 유밀과 1그릇, 강정류 1그릇, 다식류 1그릇, 실과류 3그릇, 과편류 1그릇, 각색정과 1그릇, 수정과 1그릇, 떡류 2그릇, 각색절육 1그릇, 초·볶기류 1그릇, 전유화 1그릇, 편육 1그 릇, 어육만두 1그릇, 회 1그릇, 느름적 1그릇, 찜 1그릇, 식혜 1그릇, 적류 1그릇, 탕류 4그릇, 면 1그릇, 만두 1그릇, 타락 1그릇, 장류 3그릇으로 총 33그릇이다. 강정, 다식, 실과, 떡, 전유화, 회, 적 등은 한 그릇에 1가지 음식이 아닌 2~10가지 음식이 함께 담겼다. 생신날 궁다례와 5월에 포함된 기신다 례는 생신묘소다례와 구성이 비슷하다.
정조·한식·삼짇·초파일·단오·유두·칠석·추석· 구일·동지·납향의 명절다례는 유밀과, 강정, 실과, 수정 과, 떡, 전유화, 찜, 회, 탕, 만두 또는 국수, 장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음식 구성은 생신이나 기신다례와 유사하나 그릇 수와 그릇에 담긴 음식가짓수는 그 보다 적었다.
경우궁(景祐宮) 즉 순조의 생모이자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綏嬪朴氏, 1770~1822)의 다례를 기록한 음식발기인 「Gyeongugung jeongmyo hyangsu-Geongi (景祐宮 丁卯 享 需件記)」(Jangseogak, Unknown period)와 비교해보니 경우 궁의 생신(탄일)·기신·명절·다례는 각각 40기·50기· 27기(단오, 유두)로 복온공주의 다례 보다 음식 가짓수는 많 았지만 음식 구성은 유사했다.
삭망다례의 음식구성은 명절다례 보다 더 간소했다. 복온 공주의 삭망다례는 실과, 떡, 전유화, 수정과, 포, 식혜, 탕, 면, 장 등 음식으로 이뤄졌으며, 유밀과, 강정, 다식 등은 포 함되지 않았다. 또한 망다례에는 떡이 오르지 않았다. 정묘 년에 올린 경우궁의 삭망다례음식을 보면 놉은 생것(실과) 2 기, 수정과, 증병.고물병, 매물 4기, 포, 식혜, 탕, 사발기, 추 청, 개자, 초장이다(Jangseogak Royal Archive 1999). 복온 공주의 삭망다례와 비교해보니 음식 그릇수가 더 적었으나 과자류가 제외되었다는 유사점이 있다. 선희궁(宣禧宮, 1696~1764)의 삭망다례로 추정되는 기록인 「Sakmangdalyedeungnok (朔望茶禮謄錄)」(Yejo, End of 1700s)의 경우 삭 망다례 음식은 19~20그릇이며, 다례대상을 알기 어려운 삭 망다례를 기록한「Sag-mangdalyebalgi (삭망다례발기)」 (Jangseogak, 1911)의 경우 10월 삭망다례에 27그릇이 올랐 다(Han & Lee 2016). 다례의 대상이나 시기에 따라 그릇수 나 음식의 구성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월의 기신다례와 8월 추석의 묘소다례에 겸향한 진지는 밥에 해당하는 진지와 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5월 기신다례 에 겸향한 진지의 찬 구성을 살펴보면 갱에 해당하는 두골 탕, 조치에 해당하는 양볶기와 붕어초, 구이와 숙편류 3그 릇, 나물 1그릇, 젓갈에 해당하는 각색혜 1그릇, 각색장과 1 그릇, 굴비·포육·어란·전복송편 등 좌반 1그릇, 침채 1 그릇, 장 1그릇이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에서 경우궁 의 기신다례에 올린 상식은 13그릇이며, 수라, 백어탕, 생치 숙, 암순찜, 잡산적과 족산적, 방어적과 연어적, 각색좌반, 각 색혜, 각색장과, 각색채, 과잔지, 침채, 진장이다(Korean Studies Library and Resource Center, 1999). 복온공주의 진지와 경우궁의 상식은 그릇수도 같으며, 음식의 구성도 거 의 일치했다. 또한 복온공주의 진지와 경우궁의 상식은 「Wonhaengeul-myojeongriuigwe (園幸乙卯整理儀軌)」(1795) 에 나타난 혜경궁 홍씨[慈宮]에게 올린 수라상의 음식구성이 비슷했다(Kim et al. 1989, Kyujanggak, photographic edition, 1994). 복온공주의 진지는 조선왕실 다례 중 상식처 럼 생전에 평상시에 드시던 음식상이며, 이 음식구성은 수라 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3. 복온공주 다례음식의 특징
1) 다례에 올린 음식
「제물정례책」에 기록된 음식마다 적힌 재료를 통해 음식 의 조리법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우나 음식의 형태를 추측 해 볼 수 있다. 복온공주 다례는 달마다 계절음식이 잘 나타 나 있다. 각 다례에 올린 시절음식과 함께 재료를 통해 조리 법을 유추하여 다례에 올린 궁중음식을 살펴보았다.
1월 정조(正朝)다례에 올린 탕병(떡국), 편볶이(떡볶이), 암 순(메추라기)전, 국만두, 당유자는 정월 초하루의 절식이자 제수이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경우궁 경오 향수건 기」에 보면 정조다례에 만두와 탕병이 나온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식(李植, 1584~1647)의 시문집인「Taekdangjip (澤 堂集)」(1674)에는 정조때 올리는 제물에 대해 언급하였다. 각 자리마다 병탕(餠湯, 떡국)과 만두탕(曼頭湯)을 1그릇씩 놓는다고 하였다. 이 두 음식은 민가에서도 정월 다례 제물 로 쓰였다. 편볶기의 재료로 “미(米) 2승-식승(食升), 우림(牛 林, 소의 엉덩이 부위 고기) 1전”이라 적혀 있다. 편볶기는 쌀과 고기가 주재료로 한 떡볶이로 볼 수 있다. 떡을 ‘편’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월에 가래떡을 만들어 떡국이나 떡산 적, 떡볶이로 해먹었다. 암순전과 당유자는 정묘년 수빈 박 씨 정조 다례에도 동일하게 올랐던 음식이다.
2월에는 송병 즉 송편을 올렸다. 송병의 재료는 쌀, 적두, 백청(꿀), 추청(꿀)으로 붉은팥소를 넣은 송편으로 추측된다. 「동국세시기」에는 2월 초하루에 콩을 불려 소를 만들어 솔 잎을 깔고 찐 송편을 언급하였다. 민간에서 노비송편을 2월 절식으로 즐겼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에 보면 수빈 박 씨의 한식 다례에 양색송병을 올렸다.
3월 삭다례에는 서여(薯) 즉 참마, 그리고 오미자병(오미자 편)을 올렸다. 서여와 오미자병은 4월 초파일 다례에도 올린 봄철 음식이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에 보면 수빈 박씨 의 삼짇 다례와 4월 팔일 다례에 서여병과 오미자병이 올랐 다. 오미자병의 재료는 녹말, 오미자, 연지, 백청(꿀), 추청이 다. 이 재료는 1902년 「진연의궤」에 기록된 오미자병의 재 료와 같다.「Chanbeop (饌法)」(Anonymous, End of 1800s) 에 나온 오미자편은 오미자국에 백청을 넣고 끓이다가 녹말 을 타서 죽을 쑤어 그릇에 담아 굳히며, 오미자국에 연지를 진하게 타야 빛깔이 곱다고 했다.
4월 팔일 다례에는 가지침채, 녹두느티시루병, 위어회, 청 포채, 수근강회(미나리강회), 창면 등 봄음식을 올렸다. 4월 부터 날씨가 더워지면서 따뜻한 탕국물 대신 깻국탕을 올렸 다. 4월 팔일, 5월 삭, 단오 묘소다례에는 깻국잡탕, 5월 기 신다례에는 임자국잡탕을 올렸고, 6월 유두다례까지는 탕국 물로 깻국을 이용하였다.
5월 단오때 궁과 묘소에서 지낸 다례에는 단오의 세시음식 인 제호탕을 올렸다. 수빈 박씨의 단오 다례에도 마찬가지로 제호탕을 올렸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오가 되면 궁중 내 의원에서 제호탕을 만들어 왕께 올리고, 그것을 가까운 신하 들에게도 나눈 시절음식이라 했다.
5, 6, 7월 다례에는 앵두, 살구, 자두, 진과(참외), 서과(수 박) 등 늦봄, 여름 과일류가 올랐고, 밀점병, 낭화, 보리수단, 보리송병, 교아상화 등 밀가루나 보리를 이용한 여름음식을 올렸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에 보면 수빈 박씨의 유두 다례에도 위에 언급한 과일과 음식이 유사하게 올랐다. 「동 국세시기」에 따르면 유두에 멥쌀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어 구슬처럼 만들어 꿀물에 넣고 얼음을 채운 수단을 만들어 먹 고 제사에도 쓴다고 했으며, 또한 밀가루를 이용해서 만든 각서(角黍), 상화병, 연병(連餠), 밀만두, 유두면 등은 유두의 시절음식이라 하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1975년 음력 6월 창덕궁 연희당에서 올린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는 진찬에는 오색수단, 맥수단, 낭화, 자두, 진과, 서과, 수상화 등이 올랐 다. 이 음식들은 복온공주의 5, 6월 다례에 등장한다(Kim et al. 1989, Kyujanggak, photographic edition, 1994). 같은 계절에 치룬 제례(祭禮) 중 하나인 다례와 가례(嘉禮)에 해당 하는 진찬(進饌)에 유사한 음식 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추석다례에는 동부인절미병, 청태백설고, 신율조리니, 송병, 토란탕 등 가을 절식을 올렸다. 9월에는 침수시(소금물 에 담근 감), 전율(밤조림), 10월에는 홍시, 백두나복증병(백 두고물을 올린 무시루떡), 국만두 등을 올렸다.
10월 복온공주의 생신때 궁과 묘소에서 지낸 다례에는 타 락이 제수(祭需)로 올랐다. 타락은 우유이다. 10월 초하루부 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내의원에서는 타락죽을 만들어 임금 께 올렸다. 타락은 보양식이자 10월의 시식이다. 그러나 다 례음식으로 타락이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다례 관 련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지와 납향이 포함된 11, 12월 다례에는 왜감자, 유자, 석 류 등 겨울 과일과 암순전, 생치각탕, 생치찜 등 메추라기, 꿩을 이용한 음식을 올렸다. 동지다례에는 동지절식인 전약 과 두탕을 올렸다.「경우궁 정묘 향수건기」,「경우궁 경오 향수건기」에 기록된 동지다례에도 전약이 나온다.「택당집」 에 의하면 동지(冬至)에 드린 제사상에는 각 자리마다 병(餠, 떡)과 두죽(豆粥, 팥죽)을 1그릇씩 놓는다고 하였다. 두탕(豆 湯)은 두죽(豆粥) 즉 팥죽을 말한다.「Yorok (要錄)」(1680s) 에는 두탕(豆湯)은 말린 팥가루로 탕을 끓이다가 멥쌀을 넣 어 죽을 만든 음식이라 했다.
복온공주 다례를 비롯해 궁중의 다례에는 계절이 바뀌며 달마다 올리는 시절음식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민속에 지 켜졌던 절식을 기본 제사상에 더하여 다례상을 차린 것이기 에「제물정례책」에 기록된 복온공주의 다례를 통해 사라진 절식의 정통을 찾을 수 있다.
2) 다례음식에 쓰인 기물
「제물정례책」에 음식마다 적힌 재료목록에는 식재료 외 에도 적곶, 띠실, 종이 등 필요한 물품들이 기록되어 있다.
묘소 생신다례에 올린 생률, 생대조의 재료부분에 ‘적곶 3 전’이 적혀 있다. 적곶은 산적을 꿸 때 꽂는 꼬치를 말한다. 느름적이나 어적, 간적, 전체수 같은 적에 적곶이 나오는 것 을 당연하겠지만 실과 재료부분에 적곶이 들어간 경우는 보 기 드물다. 과일고임을 할 때 꼬치를 꽂아 과일을 안정적으 로 고이려고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적곶은 정조 묘 소다례에 올린 석류와 왜감자에, 정월 망일 다례의 당유자, 유두다례의 자도, 추석 묘소 다례에 올린 적니, 포도, 조홍 세 가지 과일을 한 그릇에 담을 때도 적곳이 쓰였다.
정조 묘소 다례에선 석류와 왜감자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적곳 외에도 띠실이 사용되었다. 띠실은 적곳과 마찬가지로 과일을 고정하기 위한 기물로 생각한다. 적곳을 꽂아 과일끼 리 연결하고, 띠실로는 연결된 과일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둘 러 단단히 고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5월 기신 다례에 올린 일곱 가지 떡의 재료 중에는 종이명 과 장수 또는 가격이 나온다. ‘백지 1전, 장유지 3장, 안지 □장, 유지 2장, 백지 1전. 장지 3장’이라고 적혀 있다. 백지 (白紙)는 닥나무껍질로 만든 보통의 한지이며, 장유지(壯油 紙)는 들기름에 결은 두꺼운 종이를 말한다. 유지(油紙)는 기 름을 바른 종이, 장지(壯紙)는 두껍고 단단한 종이이며, 안지 (眼紙)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줄이나 눈금이 있는 종이로 추측된다. 이렇게 다양한 종이는 시루떡을 찔 때 시루밑에 깔거나, 조악의 기름을 빼기 위해 지진 떡 밑에 놓거나, 떡 을 고일 때 떡 사이에 끼우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다. 떡을 만들고 고일 때 다양한 종이가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백지와 장유지는 주방에서, 나머지 종이는 생방에서 가 져다 쓴 종이별 출처도 기록해 놓았다.
종이는 떡 외에도 다른 음식에도 등장한다. 추석 묘소다례 에 겸향한 진지에는 양볶기, 붕어초 아래 종이명과 수량 및 금액이 나온다. ‘장유지 3장, 백지 1전’이라 적혀 있다. 고조 리서에서 이 두 음식의 조리법을 살펴보았으나 종이의 사용 을 확인하지 못해 종이의 정확한 용도를 알기 어렵다.
3) 교아상화와 규아상
「제물정례책」에 보면 음력 6월 유두다례에 ‘교 상화’라 는 음식이 등장한다.
재료는 안심 1/2부, 계 1수 4전, 청과 70개 1냥, 우림 2전, 표고 5개 2전, 진말 5승(식승) 7전5분이다. 풀이해보면 소고 기 안심 분량은 반부, 닭 1마리에 가격 4전이고, 오이는 70 개에 가격 1냥, 소고기 삼각살의 가격 2전, 표고는 5개에 가 격 2전, 밀가루는 민가에서 쓰는 되박으로 5되에 가격 7전5 푼이다. 우림(牛林)은 삼각살이라고도 하며, 구이, 불고기 전 골용으로 많이 쓰는 지방량이 적은 소의 엉덩이 부위 고기 이다. 우림이라는 용어가 낯설지만 중국에서는 고기부위 명 칭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교아상화라는 음식을 재료로 추측해보자면 밀가루로 반죽한 만두피에 소고기 안 심과 삼각살, 닭, 오이, 표고가 소로 들어간 만두로 여겨진다.
교아상화는 지금의 만두를 의미하는 교아(교의)와 상화(霜 花)가 합쳐진 말이며, 이 음식명은 궁중음식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Byeoldalyedeungnok (別茶禮謄錄)」(Jangseogak, Unknown period)에 유월 유두다례에 ‘교 상화’가 나온다. 재료는 진말(밀가루) 5승, 안심 1부, 과자(오이) 300개이다. 두 문헌에 기록된 교아상화는 모두 유두다례에 제수였으며, 재료는「별다례등록」에 기록된 교아상화의 재료가 다소 간 략하나 유사했다.
조선시대 고조리서 중에 교아상화와 비슷한 음식을 볼 수 있다. 신창 맹씨 종가에서 내려오는 책인「Jasonbojeon (子 孫寶傳)」(Anonymous, 1600’)에 나오는「Choi’ Eumsikbeop (최씨음식법)」의 ‘교의상화’와「Eumsikbo (음식보)」(Anonymous, 1700’)의 ‘교의상화’ 등이 존재한다.「최씨 음식법」의 교의 상화는 밀가루반죽을 발효시키지 않고 얇게 민 만두피에 채 소로 만든 소를 넣은 것이고,「음식보」의 교의상화의 경우 「최씨 음식법」의 조리법과 같은데, 소에 꿩고기가 추가로 들어간 점만 달랐다.
이와 같이 교의상화나 교아상화의 조리법은 「Sangayorok (山家要錄)」(1460)의 ‘수고아(水羔兒)’,「음식디미방」의 ‘수 교 ’,「Siuijeonseo (是議全書)」(Anonymous, End of 1800s) 의 ‘수교의’와 유사하다. 모두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발효시 키지 않고 만두피를 만들고 소를 넣어 만든 만두형태이다 (Park 2015). 상화(霜花)는「Eumsikdimibang (음식디미방)」 (1670),「Gyuhapchongseo (閨閤叢書)」(1809) 등에서 보듯이 밀가루나 메밀가루에 술을 넣어 발효시켜 소를 넣어 찌는 음 식이다. 교아상화는 상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비발효 만두 피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상화와는 구분된다(Park 2015).
「동국세시기」에 유두의 절식으로 상화병과 함께 교아상 화로 보이는 음식이 등장한다. 잎모양으로 주름을 잡아[皺作 葉形] 오이소[苽]를 넣고 싸서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 먹으며, 유두날 시절음식이고 제사에 쓰기도 한다고 했다.
「제물정례책」의 교아상화는「동국세시기」에 나온 내용 처럼 밀가루 반죽하여 얇게 민 만두피에 오이와 함께 소고 기의 안심과 삼각살, 닭고기, 표고를 소로 하여 잎모양으로 주름 잡아 찐 만두로 추측된다. 이와 비슷한 조리법이 「Ijogungjeongyoritonggo (李朝宮庭料理通考)」(1957)의 ‘규 아상’이라는 음식으로 존재한다. 규아상은 밀가루로 반죽한 만두피에 절인 오이채, 볶은 쇠고기와 표고버섯으로 만든 소 를 넣고, 잣을 하나씩 넣어 만두를 빚어 담쟁이잎을 깔고 솥 에 쪄 한 개씩 참기름을 발라 그릇에 담고 초장을 곁들인다 고 했다(Han et al. 1957). 소를 넣고 양쪽자락을 맞닿아 붙 이고 윗부분에 주름을 잡아 빚으며, 그 모양이 해삼을 닮았 다고 하여 ‘미만두’라고도 한다(Hwang, 1994).
교아상화와 규아상은 동일한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음식 조리법이 구두(口頭)로 전해지는 과정 중 교아상화를 규아상 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표기하여 전달된 것으로 추측된다. 순 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의 지밀상궁인 김명길(金命吉, 1894~1983)상궁의 저서「Nakseonjae Jubyeon (樂善齋 周邊)」(1977)에는 제호탕(醍湯)이 제어탕으로 적 혀 있다. 이렇듯 당시 상궁들의 구술이 문자화되면서 잘못된 표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궁중음식으로 알려진 규 아상을 「진연의궤」 또는 「진찬의궤」에서 찾아볼 수 없었 으나「제물정례책」에 기록된 교아상화를 통해 규아상의 다 른 음식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고물병과 시루병
「제물정례책」을 보면 묘소에서 지낸 복온공주의 생신다 례에 올린 음식 목록 중 떡 부분에 10가지 떡 명칭이 나열 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한 그릇에 담았다는 표시가 있다. 그 표시 아래에는 재료가 적혀 있고, 재료 일부를 묶어 그 아래에는 ‘고물병’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고물병은 편편한 시루떡 위를 장식하는 웃기떡을 이르는 궁중용어로 볼 수 있다(Lee & Han 2016). 궁중의 매월 초 하루와 보름에 올린 다례음식과 재료목록을 수록한 「삭망 다례등록」에서 고물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등록의 후 반부에 나오는 재료목록에 시루병과 고물병으로 나눠 떡의 명칭을 구분하여 기록하였다(Lee&Han 2016). 시루병은 증 병(메시루떡)점증병(찰시루떡)설고병(설기떡) 등으로 멥쌀이 나 찹쌀의 가루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찐 편편한 시루떡 이며, 고물병은 잡과병·화전·자박병·가피병·단자류 등 으로 작은 크기로 색스럽고 화려하게 만든 떡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떡의 종류를 구분할 때 찌는 떡, 치는 떡, 빚 는 떡, 지지는 떡 등 만드는 법에 따라 분류한다(Kang 1997, Hwang 1991). 그러나 1800년대 말에서 1950년대까지 떡의 분류는 지금과 달랐다. 비교적 음식의 분류체계를 잘 갖추어진 책인 「시의전서」에는 편(떡)의 항목에 ‘각색편’ 과 ‘각색웃기’로 구분되어 있으며, 방신영(方信榮, 1890~ 1977)이 쓴「Urinara eumsing mandeuneun beop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7)에는 떡류를 나눌 때 편과 편웃기로 구분하여 기록했다. 떡을 쌓아 올릴 때 편편한 시루떡 종류 를 ‘편’이라 하고, 그 위에 올리는 색색의 작은 떡 종류를 ‘ 편웃기’ 즉 웃기떡이다. 고임떡을 만들던 시기까지는 떡의 종 류를 이와 같이 나누었지만 고임떡을 하지 않으면서 점차 떡 의 분류는 조리법별로 나누기 시작하였다.
민가에서는 떡의 종류를 나눌 때 각색편과 웃기떡으로 나 누었지만 궁중에서는 고물병과 시루병으로 구분하였다. 「제 물정례책」에서 적힌 고물병은 떡 중에서도 웃기떡에 해당하 는 떡의 재료를 묶어 표현해준 것이다.
4. 재료목록을 통해 본 제물정례책의 용도
「제물정례책」에는 다례의 음식마다 필요한 재료와 분량 또는 가격이 적혀 있다. 이런 기록 형태는 다른 등록이나 건 기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삭망다례등록」이나 「별다례등 록」처럼 별도로 월별 다례에 쓰인 재료목록 부분은 크게 ‘병미식승’과 ‘무역’이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각각 해당 재료 목록이 적기도 했다(Han & Lee 2016).
「제물정례책」에 음식마다 필요한 식재료나 물품목록 및 분량, 가격 등을 기입한 이유는 다례를 지내기 전 재료를 구 입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고하려고 작성했을 것이다.
단오 때 묘소에서 지낸 다례에 올린 음식 중 수단의 재료 목록에는 ‘용정미 삼승, 보리 나거든 잡 오리’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을 해석하자면 용정미는 쌀이므로 여기서 수단은 떡을 건지로 넣은 떡수단이다. 이어 보리를 언급한 걸 보면 당시 보리가 나올 때면 떡 대신 보리를 건지로 넣어 보리수 단을 하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5월 기신다례에 겸향한 진지상에 오른 붕어초의 재료에는 ‘굴그면 이미 면 삼미’ 라고 쓰여 있다. 이 내용은 붕어가 크면 2마리, 작으면 3마리로 쉽게 풀어볼 수 있다. 붕어를 구 입하러 갔을 때 붕어 크기를 보고 분량을 가늠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준 셈이다. 동지 다례에 오른 음식 중에 실과인 왜 감자의 재료부분에 작은 글씨로 ‘준시면 2냥’이라고 적혀 있 다. 왜감자 대신 준시로 대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제물정례책」은 당시 자주 반복되는 다례마다 재료를 구 입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참고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갑오 재동 제물정례책(甲午 齋洞 祭物定例冊)」 즉 조선 후기 순조 임금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가 죽은 뒤 2 년 후 갑오년(1834, 순조 34)에 행한 일 년간의 다례를 기록 한 것이다. 이 문헌을 통해 조선 왕실의 제사인 다례 종류와 음식의 특징을 살펴보고, 다례에 올린 궁중음식의 조리법 및 용어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에는 1834년(순조 34)에 죽은 복 온공주에게 1년간 올린 39종의 다례 음식과 재료목록이 적 혀 있다. 1월 정조, 2월 한식, 3월 삼짇, 4월 팔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8월 추석, 9월 구일, 11월 동지, 12월 납향의 명절다례를 지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다례 를 지냈다. 다만, 정조(1월 초하루), 추석(8월 보름)처럼 명절 과 삭 또는 망일이 겹치는 날에는 명절다례만 지냈으며, 6월 에는 명절과 상관없이 망다례를 지내지 않았다. 복온공주의 기일인 음력 5월 12일에는 기신다례를, 생신일인 음력 10월 26일에는 생신다례를 지냈다. 생신다례는 궁과 묘소에서 각 각 다례를 드렸다. 정조, 한식, 단오, 추석의 명절다례에도 생 신다례와 마찬가지로 궁과 묘소에서 다례를 지냈다. 5월 기 신다례와 8월 추석에는 묘소다례에 상식(上食)과 같은 진지 를 겸향하였다. 1년간 지낸 다례의 종류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경우궁(景祐宮)을 위해 정묘년에 지낸 다례의 종류와 유사했다.
복온공주의 다례 중 생신 묘소 다례는 33그릇으로 가장 많 은 음식을 차렸다. 그 다음은 기신 다례에 32그릇, 생신 궁 다례 26그릇 순이다. 명절다례는 정조 즉 정월 초하루에 궁 과 묘소에서 지낸 다례 25그릇, 4월 초파일에 올린 다례 20 그릇을 올린 것을 빼면 나머지 한식, 삼짇, 단오, 추석, 동지, 납향 다례는 13~18그릇을 올렸다. 삭망다례의 경우 9~11그 릇으로 명절다례의 음식 구성 보다 더 간소했다. 묘소에서 다례를 겸해 올린 진지는 12~13그릇을 올렸다.
복온공주의 다례 음식 구성의 조리법을 보면 유밀과·유 과·다식의 조과류, 실과·숙실과·과편·정과의 과일류, 수정과·수단·화채 등의 음청류, 시루병과 웃기떡에 해당 하는 고물병의 떡류, 절육·포·식해·느름적·전유화· 적·편육·족편·숙란·만두·찜·초·볶기·회·채·장 과·좌반·탕·침채의 음식, 그리고 곡물음식으로는 면이 나 낭화·국만두·교아상화·탕병 등 떡국이나 만두, 그리 고 타락죽, 두탕(팥죽) 등이다.
기신다례와 추석묘소다례에 겸향한 진지는 밥에 해당하는 진지와 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찬으로는 갱에 해당하는 탕 1 그릇, 조치 2그릇, 구이와 숙편류 3그릇, 나물 1그릇, 좌반 1 그릇, 침채 1그릇, 장 1그릇이다. 이 음식 구성은 정묘년 경 우궁의 상식과 거의 일치했으며, 그릇수도 같다.
복온공주의 다례에는 계절음식이 잘 나타났다. 1월에 탕병 (떡국)과 국만두, 2월에 팥소가 들어간 송병(송편), 4월에 청 포채, 수근강회(미나리강회), 창면, 임자국잡탕, 5, 6월에 제 호탕, 낭화, 수단, 교아상화, 9월에 토란탕, 10월에 타락, 11, 12월에 전약과 두탕 등은 「동국세시기」의 세시음식으로도 소개된 음식들이다. 복온공주의 5, 6월 다례에 올린 계절음 식이 음력 6월 창덕궁 연희당에서 베푼 혜경궁 홍씨의 회갑 연에 동일하게 올랐다. 다례음식으로 타락이 오른 건 이례적 인 일이다. 다른 다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민속에 지 켜졌던 절식을 기본 제사상에 더하여 다례상을 차린 것이기 에「제물정례책」을 통해 사라진 절식의 정통을 찾을 수 있다.
「제물정례책」에는 다례의 음식마다 필요한 재료와 분량 또는 가격이 적혀 있다. 음식마다 적힌 재료목록에는 식재료 외에도 적곶, 띠실, 종이 등 필요한 물품들이 나온다. 적곶 (꼬치)은 산적을 꿰거나 과일을 안정적으로 고이기 위해 사 용했으며, 과일에 적힌 재료 목록에 속한 띠실은 적곶과 마 찬가지로 과일을 고정하기 위한 물품으로 추측된다. 떡 재료 중에 백지·장유지·장지 등 여러 종류의 종이와 출처, 수 량, 가격이 나오며, 이런 종이류는 떡을 만들거나 고임을 할 때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6월 유두 다례에 등장하는 교아상화는 밀가루 반죽하여 얇 게 민 만두피에 오이와 함께 소고기의 안심과 삼각살, 닭고 기, 표고를 소로 하여 잎모양으로 주름 잡아 찐 만두로 추측 된다. 「동국세시기」의 유두 절식에 나오는 음식으로 재료 및 모양의 확인이 가능했으며,「이조궁정요리통고」에 나오 는 규아상과 동일한 음식이다. 음식조리법이 구두(口頭)로 전 해지는 과정 중 교아상화를 규아상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표 기하여 전달된 것으로 추측된다.
궁중의 떡을 구분하는 용어인 시루병과 고물병은 민가에 서 각각 각색편과 웃기(떡)을 말한다.「제물정례책」에서 떡 의 재료 일부 아래 ‘고물병’라는 단어가 적혀 있어 웃기떡의 재료를 표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료목록에 대체 가능한 재료나 크기에 따른 분량 등을 기 입한 것으로 보아「제물정례책」은 당시 자주 반복되는 다 례마다 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참고 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민가로 전해진 복온공주의 다례 기록이 적힌「제물정례 책」이 다례 관련 발기 또는 등록류와 같은 궁중 문헌과 더 불어 왕실 제사의 형식과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궁중음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제물정례책」에 기록된 다례음식의 조리법 검토를 상세히 다루지 못해 추가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다례 와 진찬(進饌) 또는 진연(進宴)간의, 그리고 다례에 겸향한 진지 또는 상식과 수라상 사이의 음식구성 등 좀 더 면밀한 비교분석이 차후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