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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3 No.6 pp.489-500
DOI : https://doi.org/10.7318/KJFC/2018.33.6.489

Modernity in the Korean Diet Considering the Film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yoJin An1, Young-mee Hwang2, Se-Young Oh1*
1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KyungHee University
2General Education Institute, Sookmyung Women’s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Se-Young Oh,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College of Human Ecology, Kyunghee University, Seoul, 02447, Dongdaemun-gu, Korea Tel: +82-02-961-0602 Fax: +82-02-959-0649 E-mail: seyoung@khu.ac.kr
October 2, 2018 October 26, 2018 December 11, 2018

Abstract


Since the late 19 century, the Choseon dynasty forcibly opened the door to western countries, including Japan. In addition, cultural propagation called ‘modernity’ caused subtle changes in dietary life. Based on the theory of colonial dual society, this study examined the dietary modernity in Kyungsung (mid 1930s~early 1940s) when 50 years had passed since the Open-Door policy. Three films, <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1934), <Sweet Dream>(1936) and <Spring of Korean Peninsula>(1941) (those made in 1930s~1940s) were analyzed. Twenty six scenes [14 scenes from <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 five scenes from <Sweet Dream>, and seven scenes from <Spring of Korean Peninsula>] related to the dietary life from films were chosen and classified according three criteria (degree of modernization, main influential countries, and benefit groups from modernization). The degree of modernization of all films was more than 80%. The average proportion of the countries that affected modernization were western (35%), western-Japan (28%) and Japan (20%). Approximately 33, 53 and 14% of the upper, middle, lower classes, respectively, benefited from diet modernization. The main places where modernized dietary culture could be enjoyed were cafes, western restaurants, tea rooms, and hotels. The main food or beverages that were considered as modernized dietary culture were liquor (especially beer), coffee, and western meals. People in Kyungsung in the mid 1930s~early 1940s experienced modernity in dietary life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social classes and these culture changes were generally accepted as a symbol of modernity.



일제강점기 영화로 본 근대성 양상 고찰
-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

안 효진1, 황 영미2, 오 세영1*
1경희대학교 식품영양학과
2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초록


    I. 서 론

    우리나라 근대화는 1876년 문호개방을 시작으로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기의 근대화(Lee 2015)와 수탈 측면과 주체 한 계 등의 논쟁이 있는 일제강점기 문명화 사업을 통한 근대 화(Kwon 2014), 1960년대 개발성장을 상징하는 조국근대화 (Kim 2012) 등 그 주체와 주력 분야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이중 일제강점 시기의 근대화는 일본을 위한 사회시설 근대 화를 주력으로 하여 일본 매개 서구식대중소비 문화전파가 이루어졌다.

    이 중 일제강점기 서구식 대중소비문화는 1920년대 중반 이후 ‘경성’에서 유행하였는데 이는 도쿄와 거의 동시에 이 루어질 만큼 동시성을 자랑하였다. 1920년대 세계흐름은 연 속성, 동시성을 띠고 있었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이 유럽을 돌아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이어졌고(Park 2011) 1920년대 말에는 미국영화가 일본에서 상영 후 불과 몇 달의 시차를 두고 조선에서 개봉되었으며(Kim & Kim 2005) 192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한 재즈에 대해 1929년Dongailbo(동아일 보)에는 “금일 유행하는 말 중에 가장 만히 들리는 쨔즈… 근래 귀를 어지럽게 하는 쨔즈…”(1929. 10.16)라고 표현하 였다. 이러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집단은 동시대 타인들과 분류되어 현대인, 모던인으로 인식되었다. 광복은 점점 요원 해지는 암울한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싫지만 그들이 향 유하는 근대화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은 한번쯤 동경의 대상 이 되었고 이러한 대상에는 식생활도 포함되었다.

    19세기 후반 문호개방 후 서양음식이 유입되었지만 접할 수 있는 계층은 왕실 등 상류층, 서양인을 자주 접하는 특정 부류에 한했고 대다수 백성들은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개화기 이후 강점기까지 서양음식, 커피, 술 등 서양음식(료)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서양식호텔, 서양식식당, 카페, 바, 다방 등 을 들 수 있는데 서양식호텔은 서양인이 주로 이용하였고 그 수도 매우 적었다. 1910년대 서양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YMCA그릴, 청목당, 조선호텔식당, 백합원그릴(Han 2001)로 가거나 서양음식, 술을 함께 제공하였던 서양요리집(Chae et al. 2012)으로 가야 했는데 그 수가 적었고(Kim 2002) 이 형태는 192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여성이 함께 하는 카페 로 변화되었으며 바는 여성이 시중을 드는 술집, 다방은 카 페, 바와 달리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커피, 차 등을 마시는 공 간이었으나 후반에 역시 퇴폐적 요소가 가미되기도 하였다 (Chae et al. 2012). 본격적으로 서양식이나 일본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 생긴 백화점 내 식당(Han 2001)이었으며 술, 여자가 위주였던 카페 수는 더욱 증가되어 1931년 경성 주요도로의 카페 수는 158여개, 1936년 134개, 1943년 194개로 늘어났다(Kim 2002). 달라 진 경성 음식문화는 잡지에도 나타나 1920년대 소개된 여름 음료가 보리수단, 원수봉 같은 전통음료라면 1930년대 음료 는 플레인, 아이스커피, 레모네이드, 오렌지쥬스, 스트로베리 에드, 밀크쉐이크 등이었다(Kim & Kim 2005). 즉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경험하기 힘들었던 음식을 제공하는 찻집, 술 집, 식당 등이 도시상점가(Kim 2002) 경성시가지에 즐비하 며 시각적, 후각적으로 경성인들을 자극했던 것이다.

    근대사회에는 신문, 잡지, 소설 붐이 일어났고 신문은 계 몽적 역할, 소설잡지는 대중문화 주도 역할을 하였다. 그러 나 소설은 영화출현 이후 대중문화 주도를 영화에게 넘겨주 었다. 특히 1926년 <아리랑>, 1935년 유성영화 <춘향전> 흥 행 이후 영화는 대중들의 정서와 미의식을 장악하며 대표적 대중문화로 부상하였다(Kim 1999;Kang 2011).

    1920, 30년대 경성문화에는 또한 ‘에로그로(エログロ, Ero- Gro)’ 분위기가 유행했다. 이 문화는 미국, 일본문화가 결합, 변화된 것으로 산업사회, 서비스산업, 대중사회로의 도입과 정에서 미국재즈, 댄스 등 대중문화가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소화시대 퇴폐적 풍조와 결합하여 여성성적매력이 과도하게 부각된 형태로 특히 1929년 대공황 이후 세계적으로 불안한 경제와 맞물려 사람들을 감각적 쾌락에 심취하게 하였다(Sho 2005;Chae et al. 2012).

    본고는 강점기 중반 이후 경성을 중심으로 변화된 음식문 화 근대성 고찰을 위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동시대에 제 작된 영화를 선택하였다. 그러한 영화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아니라면 표현하기 힘든 현실감이 녹아 있기 때문이 다. 근대기의 부산함과 기대감, 식민지의 암울함과 우울감, 왜곡된 식민지 근대인으로서 에로틱하고 기괴함을 배경으로 조선, 일본, 서양의 것도 아닌 변용된 음식 모습은 1930~40 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맞닥뜨렸던 혼란스러움을 비춰내고 있다고 보았다.

    일제강점기를 언급함에 있어 ‘근대화’를 접목하는 것은 민 감한 문제이다. 본고의 관점은 양극의 극단적 관점이 아닌 당시 사회는 일본인, 한국인으로 대별되어 차별되었다는 식 민지 이중사회론(Park 2011)에 기초하였으며 특히 근대화된 서구문화, 대중소비 음식문화는 경기도 경성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에 기초하였다.

    일제강점기는 이중 삼중으로 계층 지어진 사회였다. 특히 대중문화소비 향유에 있어서는 일본과 조선, 경성과 경성 이 외지역, 극소수 상류층과 지식인, 회사원, 소상인 등의 중류 층, 대다수 하층민, 뿌리 깊은 남자와 여자로서의 차별 등으 로서 이러한 다중적 계층의 차이가 개인이 느끼는 음식문화 에도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계층별 차이가 영화에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알아보는 연구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제강 점기와 일부 근대화 과정이 겹치는 시대를 겪은 우리에게 음 식문화 수용과 변용을 규명하는 데에 도움이 줄 것이다.

    II. 연구내용 및 방법

    1. 음식문화의 근대화 양상

    음식문화 혹은 식생활 근대화 양상을 고찰하기 위해서 근 대화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근대화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 렵다. 정치학적 의미로는 봉건체제에서 벗어나 대체적으로 입헌적 민주주의로의 이행(Lee 1999)을 말하며 경제학적 의 미는 빠른 속도의 경제 발전을 수반한 산업화, 자본주의 발 달, 사회학적 의미는 도시화와 개인 자유 확대, 사회전반에 걸쳐 옛것이 새것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Choi 2007). 공통 핵심 이념은 ‘발전’이라는 긍정적 의미이며 여기 서의 발전은 자본주의 세계질서로의 편입을 의미한다(Choi 1991).

    식생활에서 근대화된 모습으로는 일반적으로 철도, 항만 등 교역로 등 사회간접시설 혜택으로 활발한 식생활의 비지 역화, 농축산물 산업화공장식 기계제조 대량생산, 냉장시설 발달과 항만 발달 덕분의 육류섭취 증가, 식품산업과 상업적 가공 적용 등을 들 수 있다(Joo ed.). 이외 우리나라(조선)에 서는 개화초기 왕실 등 상류층 중심의 서양술, 커피 등 기호 식품 변화, 임오군란 이후 중국(청)인에 의한 호병집, 면집 등 중국요식업 출현, 개항지 부산을 중심으로 일본식 식재료 오뎅, 단무지 등 유입,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 한성 내 일 본요릿집 증가, 이외 양과자, 화양과자점, 조선식요릿집, 상 밥집, 국밥집, 목로술집 등 외식업소 증가 등 변화된 모습이 있었다(Yoon 2018).

    이 중 1880년대 초반 서양에게 문호개방 직후 상류층 중 심의 커피, 서양술 등 기호식품 유행은 식생활의 양면성인 보수, 진보적 측면을 반영한다. 외부로부터 문화전파가 일어 나도 생존을 위한 에너지제공이 목적인 주식보다는 사회 상 류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과시, 심리적 호기심, 미각적 즐거 움을 주는 간식기호식품에서 문화공존, 문화융합이 일어나기 가 쉽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우 문호개방 바로 직후에는 철 도, 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산업화된 공장 등이 들어서기에 무리가 있었으며 개방 직후에는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 외교 관 등을 통해 왕실 등 상류층, 서양교육을 받은 학생 등 사 이에서 서양식 식문화가 일부 유행하였다.

    우리나라 근대화 시작 시기는 전술한 바와 같이 관점에 따 라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1876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1882년 조미수호조규(朝美日好條規) 이후 일본 서양문물이 들어온 이후를 개화기로 보고 이 시기부터 정치, 경제, 사회 일부에서 조금씩 근대화 양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으나 1960년대를 근대화 시작시기로 보는 시각으로 본다면 100년 가까운 넓은 오차범위를 안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근대화 연 구에는 연도를 함께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고는 1930년대 중반~40년대 초반 경성인들의 식생활을 관찰하였다. 그 중 문호개방 이전과 비교하여 변화된 모습을 음식문화 근대화의 양상으로 간주하였다. 1930년대는 일제 강점이 정점에 오른 때로 1880년대 초반 서양음식문화가 왕 실 및 일부 상류층에게 소개된 후 혼란스러운 50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러한 혼란기에도 문화전파는 이어져 극소수가 누리던 희소성 있던 외국음식문화를 접할 기회가 점차 늘어 났으며 타국 특히 서양음식을 먹는 것이 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사회분위기는 1880년대와 1930년대를 비교하였을 때 반세기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는 다소 왜곡된 근대화 모습이며 앞서 언급한 근대화 공통핵심 이념인 ‘발전’ 견해에서 다소 동떨 어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유럽 음식은 ‘과학적 용어’ 를 사용한 우월한 것으로 표현되었으며(Rodrguez 2007) ‘근 대화’라는 자체가 서구세계에 기반한 기술과 체제로의 이행, 모방 과정이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반강제적으로 맺 어진 조일수호조규를 신호탄으로 물밀 듯이 이루어진 타국 문화전파 속에서 수 십년간 혼란스러운 정치, 사회, 문화 혼 란기를 겪어야 했던 당시 우리민족 상황을 고려하여야 할 것 으로 본다.

    2. 연구내용

    음식문화의 근대성 고찰을 위해 활용한 자료는 1930년대 제작된 영화였다. 현존하는 일제강점기 제작영화는 많지 않 지만 다음의 기준을 설정하였다. 첫째로, 일제강점기에 우리 나라 사람에 의해 제작된 영화, 둘째로 영화스토리가 1920~4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 셋째로 건수에 관계 없이 음식이나 음료, 식재료, 음식문화 장면이 있는 영화, 넷 째로 비교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 마지막으로 친일적 요소 등 정치적 내용이 과도하지 않은 영화 등이 선별 조건이었 다. 최종 선택된 영화는 <청춘의 십자로>(1934년 개봉), <미 몽. 부제. 죽음의 자장가>(1936년 개봉), <반도의 봄>(1941 년 개봉)이었으며 <청춘의 십자로>는 영화와 함께 Shin (2009)의 연구결과를 활용하였다. 영화에서 음식, 음료, 식재 료 관련 장면을 모두 추출하여 3가지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장면 앞뒤 흐름을 파악하여 장면이 상징하는 바를 1) 근대화 정도(전근대/근대) 2) 근대화 영향 국가(서구/일본/조선/서구 +일본/서구+일본+조선) 3) 근대화 혜택 대상(하층민/중류층/ 상류층 등으로 분류하였다. 이 외 영화에서 추출된 장면에 대 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추출된 특정식품이 나 장소를 검색어로 하여 동시대 발행 신문 중Maeilsinbo (매일신보),Dongailbo (동아일보),Hwangseongsinmun (황성신문)등을 활용하여 검색을 하였다.

    3편 영화에는 공통점, 차이점이 있었는데 공통점으로는 첫 째 경성이 주된 공간적 배경이었다는 점이다. 경성은 일본이 1920년대 중반 이후 도로, 상하수도, 주택, 병원 등 사회기반 을 근대화시킨다는 취지 하에 도시근대화에 공을 들인 곳이 다(Choi & Yae 2010). 각종 근대적 건물 및 대중소비, 유흥, 향락문화까지 유입된 곳이었다. 일본의 진심은 조선세력에 비하여 일본세력이 약세를 보였던 북촌으로의 진출과 조선 자본 잠식을 위한 것이었으나 가시적으로는 활기찬 근대적 문화도시로 탈바꿈되었다. 둘째 경성역이 중요장소였다는 점 이다. 1925년 10월 준공된 경성역은 일본이 대륙침략 발판 으로 심혈을 기울여 세운 건물로 근대적, 서구적 풍모로 장 안의 화제가 되었던 건물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붉은 벽 돌 근무로 2층에 있는 서양식 그릴은 당대명사들이 모이는 사교장이었다(Park 2015).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건물 외 양보다는 근대가 상징하는 ‘속도’를 상징하는 철로의 결집지 로서 의미가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3 편 모두 경성역이 배경인 것은 문호개방 이래 50년이 가깝 게 지난 시점에서 철도, 속도 등이 근대화의 상징으로 다가 왔다고 볼 수 있다. 세째 1930년대 경성 대중소비문화 상징 장소인 극장, 카페, 다방, 백화점 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932년이 되면 카페에 한번이라도 가보지 않은 남자가 없을 정도로 경성인의 생활 속에 자리잡았으며, 백화점의 약진을 두고 “좃코 낫분 것은 별 문제로 하고 어떠튼지 대세”라고 표현되었으며 “도시의 낮은 백화점이 지배하고 밤은 카페가 지배다”(Chae et al. 2012)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30년대 경성의 카페, 다방, 백화점은 소비문화의 꽃이었다. 이러한 장소는 장소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곳에 음식문화 근대 성이 존재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네째 전술한 에로그로 분위 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3편 영 화 모두 남녀애정이 주제이며 성적도구로서 여성의 과도한 부각, 보편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의 부자연스러 움 등이 흐르고 있었다.

    차이점으로는 첫째 제작연도와 친일적 요소로 각기 ’34년 (청춘의 십자로), ’36년(미몽), ’41년(반도의 봄)에 제작되었 는데 <반도의 봄>은 1940년 ‘조선영화령’ 공포 이후에 제작 되어 스토리가 3편의 영화 중 가장 친일적 요소가 강했다. 이는 원작이 일본주간지에 당선된 작품(https://terms.naver. com)이라는 점에서부터 친일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둘째 ’34년 제작된 <청춘의 십자로>는 무성영 화, 나머지 2개는 유성영화로 <청춘의 십자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이며 무성영화시대에서 토키시대로 전환되 었던 1934년 즈음(Jang 2012)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무성영 화로서는 거의 막바지 시기에 제작되었다. 1936년 제작된 <미 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이다. 영화의 간단한 정보를 <Table 1>에 제시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영화 3편에서 음식, 음료, 음식문화 관련 장면은 <청춘의 십자로>, <미몽>, <반도의 봄> 순으로 14컷, 5컷, 7컷, 총 26컷이었으며 각 영화별로 분석 결과를 기술하였다.

    1. <청춘의 십자로> - 근대화 양상의 시작

    <Table 2>는 <청춘의 십자로>의 장면을 본고 기준에 의거 분류한 것이다. ‘근대화 정도’는 근대 93% (13장면), 전근대 7% (1장면)으로 근대적 양상 장면이 높게 나타났다. ‘(전)근 대화에 영향을 준 국가’로는 서구 36% (5장면), 일본 29% (4장면), 일본서구 혼합형태 14% (2장면), 기타 14% (2장면), 조선 7% (1장면)이었다. ‘근대화 혜택대상’은 하층 50% (7 장면), 상류 50% (7장면)를 나타내었다<Table 2, Fig. 1>.

    경성부자인 장개철은 외양으로는 전형적인 모던보이이다. 모던보이, 모던걸은 1930년대 경성에 유행했던 신세대를 가 리키는 용어로 일본식 서구근대 대중소비문화를 옷, 머리, 언 어, 의식 등으로 표현했던 이들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뒤로 하고(Kim 1999; Chae & Yae 2010). 서구, 유행, 물질을 갈구한다는 냉소적 단어이기는 하나 1930년대 경성의 유행, 문화를 선도해 간 개성세대라 할 수 있다. 피식민지의 우울 하고 무기력한 문인, 예술가 등도 모던보이일 수 있고 장개 철과 같이 돈만 많은 난봉꾼들도 모던보이일 수 있었다.

    모던보이이자 난봉꾼이며 경성부자인 장개철, 그를 따르는 주명구를 둘러싼 장면에는 조선음식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 다. 맥주, 양주, 커피, 서양만찬을 카페, 요릿집, 레스토랑, 연 회장 등 당시 가장 모던한 곳, 에로틱한 곳에서 즐기는 모습 이 반복되는데 이러한 식문화는 전통식문화에서는 없던 유 형이었다. 특히 자주 등장했던 ‘맥주’는 영화가 개봉되었던 1936년 당시 이미 조선에서 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 었다. 영화에는 기린, 삿포로 맥주가 비춰지지만 이 외에도 이미 1900년도 초부터 광고되었던 것만 해도 1902년 혜비수 (현재의 Yebisu)(Hwangseongsinmun 5.19), 1910년 아사히, 삿보로(Maeilsinbo 12.18), 1912년 가부도(Maeilsinbo 9.29), 1914년 라거비어(Maeilsinbo 1.1), 1919년 사쿠라맥주 (Maeilsinbo 4.19) 등 일본제 여러 맥주가 광고되고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기 10년 전인 1925년 “올해 맥주계 경쟁은 삿 보로, 앵, 기린 맥주 3파전으로” (Dongailbo 5.30), 1933년 “조선내 맥주회사 경쟁 맹렬화, 맥주업계 대일본맥주, 기린맥 주의 세력…” (Dongailbo 1.11), 1933년 “조선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1/3을 경성인이 마셔” (Dongailbo 3.16)라는 기사로 만 보아도 조선 특히 경성에서 소비되는 맥주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카페나 연회장만이 아닌 요릿집에서도 한식 상에 함께 하는 술은 조선의 가양주가 아닌 맥주였다. 이 장 면을 서양일본조선이 혼합된 근대화로 간주하였는데 일제의 ‘주세법’으로 집집마다 가양주가 거의 사라진 자리를 외국술, 그 중 맥주가 대부분 자리잡은 것이다. 즉 맥주는 뿌리는 서 양이며 일본에서 대량생산되어 조선에 유입되어 소비된 3국 문화가 어우러진 근대를 상징하는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 었다.

    이와는 다르게 경성역 수하부로 일하는 영복과 친구들은 자주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선술집은 일본의 ‘‘다치노미 야(たちのみや. 立つ+む+屋. 서다+마시다+가게의 합성어. 立 ちみ屋)’ 가 들어온 것으로 단어 그대로 서서 술을 마시는 형 태였다.Dongailbo (동아일보)Maeilsinbo (매일신보) 에는 ‘선술집’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게재되었는데 두 신문을 합쳐 1939년까지 사건사고를 제외하면 약 40건에 가 까운 기사를 보였다. 카페, 바가 부유층, 중류층, 지식인들의 장소였다면 선술집은 서민층, 빈민층 등 대다수 조선인들의 술집이었고 때로는 돈이 없는 지식인들, 중산층들도 즐겨 찾 던 곳이었다.

    또한 선술집 술잔이 조선전통의 술잔이 아닌 일본식 평잔 이었는데 일본 술잔은 여러 종류이기는 하지만 조선의 전통 술잔과 가장 차이가 나는 형태 중 하나가 さかずき’ (사카즈 키, 杯)(https://kotobank.jp/word) 라고 하는 넓적한 접시 모 양으로 선술집에서 이 형태의 잔에 술을 마시는 것으로 묘 사되었다. 가난한 조선인이 다니는 술집에서조차 일본식술잔 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은 피식민지의 백성이 겪었던 핍박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선술집을 근대화된 형태라고 표 현하기에는 무리이나 문호 개방 후 타국문화 유입이라는 관 점에서 근대화로 포함시켰다. 또한 식사 장면에서도 개철, 명 구가 서양식 식당, 연회장에서 서양식, 일식, 한식이 혼합된 정식을 먹는 모습과 비교되게 영복의 식사장면은 전형적인 한국인 식사모습인 초라한 밥상에 큰 밥그릇, 숟가락 가득히 밥을 퍼서 먹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반드시 숟가락을 사용 하는 문화 자체가 한중일 식사형태 중 한식 특징이기도 하 지만 그보다 상차림의 차이가 가난한 조선인 청년과 상류층 을 대비되게 하였다.

    경성역 장면 중 소년들이 좌판을 어깨에 메고 무언가를 파 는 모습이 잠깐 비치는데 군것질거리가 무엇이었는지 정확 한 판단은 어려웠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관에서 소년들이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라무네 등을 팔았던 것으로(Kim 2008) 미루어 영화 상 소년들도 비슷한 간식거리를 팔았을 것으로 보였다. 엿 이외에는 특별히 단맛을 즐길 수 없었던 전통식에서 문호개방 후 가장 열광적인 사랑을 받은 맛은 단 맛이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단팥, 청나라의 호떡, 서구의 사탕, 아이스크림, 가배당 등은 모두 단맛이 지배적인 식품 들이었다. 1882년 의료선교사로 조선을 방문한 Horace N. Allen도Things Korean(Allen 1908)에서 “우유는 싫어하 면서 가당연유는 좋아하는 조선인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러한 단맛 소비 증가는 조선뿐만이 아닌 근대기 전 세계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선술집 장면에서 영복이 바나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어 떠한 의미에서 이 장면은 본 연구의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Maeilsinbo (매일신보),Dongailbo (동아일보)에서 ‘바나나’를 검색하면 1920년대(Maeilsinbo 1923.7.16)부터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쳐 300건에 가까운 기 사가 검색된다. 영양적 측면이나 바나나를 이용한 음식, 시 황, 관련 사건사고 등 주제도 다양한 편이다. 바나나는 芭蕉 實(파초실), 즉, 파초의 과실이며 이미 ‘파초’는 조선시대에 도 존재하였으나 다만 열대기후성 식물이므로 온대기후인 조 선에서 과실이 맺지 못했을 뿐이었다. 기사로 추론했을 때 1920년대 후반이후 조선 내에서 섭취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 이며 거의 전량 대만산이었고 일본을 통해 들여온 듯 했다. 1929년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온 바나나가 기차로 조선 전체에 수송되면서 부패가 심해 냉장수송을 계획 중” (Dongailbo 7.20) 이라는 기사가 실린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29년 전부터 조선에 들여왔다고 보인다. 문제는 가격인데 1930년Maeilsinbo (매일신보)8월 3일자에는 “바나나 최 상품 375g에 11전, 포도 최상품 375g 1원40전(140전), 수박 평균 20전”이란 기사가 실렸는데 바나나 375 g 정도이면 중 간정도의 크기 바나나 4~5개 정도로 한 송이 정도가 된다. 1930년 당시 바나나는 다른 과일에 비해서 저렴했으며 당시 전차비 5전과 비교해도 높은 가격이 아니었다. 현대와 비교 하면 버스비 1,500원의 2.2배인 3,300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영복이 먹지 못할 정도의 가격은 아니라는 것 이다. 식생활 근대화 특징 중 하나인 ‘식생활 비지역화’ (Chung et al. 2013)는 전파 초기에는 사회상류층이 중심이 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1920~30년대 조선에서의 바나나는 전파과정에서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할 수 있다.

    영복의 고향 회상 장면에서 동네우물에서 양철통으로 물 을 긷는 장면이 나온다. 1934년 농촌에서 공동우물의 우물 물을 긷는 것은 당연하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물에서 물 을 긷는다는 것이 아니라 물통이 ‘양철통’이라는 점이다. ‘양’ 철 통인만큼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고 문호개방 후 백성들 이 열광했던 것 중 하나가 성냥, 양목, 양철 등 일상용품이 었다(Kim 1999). 옹기로 된 물동이는 무거우며 나무통은 물 에 약했으나 양철은 가볍고 튼튼하여 대부분 즐겨 사용하였 다. 조선을 방문한 스웨덴 기자 Ason Grebst는 “가볍고 큰 양철통에 나무통이 완전히 밀려났다”고 하였다(Kim ed. 2005). 농촌의 가난한 집에서조차 양철통을 사용할 만큼 조 선은 이미 생활에 밀착된 부분, 일상생활에서 근대의 이기를 활용하고 있었다.

    영복과 마찬가지로 가난하지만 영옥, 영희가 경험했던 근 대적 식문화는 다르게 비춰졌다. 카페걸로 일하는 영옥은 자 신은 가난하지만 주변인은 자동차를 몰고 골프장을 다니는 상위 1%의 사람들이고 그녀도 양주, 맥주를 마시며 변화된 문화를 즐긴다. 그러나 가치관은 전근대적 사고관에서 벗어 나지 못해 경성에 올라온 목적 자체가 자신의 인생을 오빠 에게 의지하기 위해서였으며 위협적이기는 하였으나 장개철 에게 농락당한 후 그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는 전근대의 수 동적 여성이었다.

    영복의 애인 영희는 당시 첨단직업인 가솔린걸로 등장하 는데 1930년대 가솔린걸로 취업을 위해서는 18~19세 젊고 어여쁜 여성으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인텔리 여성이어야 했다(Sho 2011). 화려한 경성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카페걸이 된 수동적 에로틱한 여성상의 영옥에 비한다면 영희는 병든 아버지, 빚, 처녀가장이라는 불행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경 성에 집이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솔린걸이 된 적극적 여성상으로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연애를 하며 애인에게 일 본식 빵을 사랑의 증표로 건네고 쥬스, 서양식을 먹는 경험 을 하지만 장개철의 마수에 걸려들기는 영옥과 마찬가지이 다. 바로 이 장면에서 에로틱한 분위기의 매개체로 술, 양주 가 등장한다. 적어도 이 영화로 보아서는 1930년대 경성에 서 변화된 근대적 음식문화 경험을 위해서는 정체성이 전근 대에 머물러 있건 근대로 뛰쳐나왔건 여성 특히 젊은 여성 에게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된 과정으로 비춰졌다. 카 페, 바, 레스토랑에서 서양술, 서양식을 즐기는 경성부호 개 철과 건달 명구, 경성으로 상경하고 선술집에서 평잔으로 술 을 마시며 바나나를 먹는 가난한 영복, 경성 상경 후 타의로 카페걸로 일하며 서양술과 서양식을 먹는 수동적인 영옥, 가 난하기는 하나 적극적 태도로 가솔린걸로 일하며 일본식 간 식을 애인에게 건네는 경성여자 영희, 이들 젊은 남녀들은 자본, 지역, 성별 등 다층으로 분류된 다른 계층에서 같은 듯 다른 식문화 근대성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미몽> -향락적 근대화의 절정

    <Table 3>은 <미몽>에서 추출된 장면을 기준에 준하여 분 류한 것이다. 5개 장면으로 높지 않은 건수였으나 1930년대 경성 중류층 가정집과 중류층 주택가, 백화점, 호텔 등 1930 년대 중반 경성의 화려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또 한 3편의 영화 중 에로그로 분위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영 화이기도 하였다.

    5개의 장면을 ‘근대화 정도’로 분류하면 근대 80% (4장면), 전근대 20% (1장면)를 보여 앞의 <청춘의 십자로>와 비슷 한 양상을 보였다. ‘(전)근대화에 영향을 준 국가’ 분류는 일 본, 서구혼합 형태 40% (2장면), 서구 40% (2장면), 조선 20% (1장면)를 나타내었다. ‘근대화 혜택 대상’은 중류 80%, 상류 20%를 보여 <청춘의 십자로>와는 다르게 중류층이 누 리는 음식(료)문화가 많았는데 이는 영화 줄거리 상 주인공 이 중산층이며 주인공과 대비되는 다른 계층의 인물이 없었 던 점이 작용한 것으로 사료되었다<Table 3, Fig. 2>.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파격적인 캐릭터는 시종일관 근대 상 징성을 욕망, 허영 등 불편한 감정으로 점철시켜 표현시켰다. 애순의 허영은 백화점에서 옷을 구입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 나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16원’이라는 말에 ‘싸다’라는 이 유만으로 가장 비싼 옷을 구입한다. 당시 쌀 한가마니에 18~20원 하던 시절(Choi & Yae 2010)이었음을 감안하면 영 화에서 애순을 얼마나 소비지향적이며 향락적 여성으로 몰 고 갔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백화점 내의 맥주집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애순은 처음 만 난 남자와 거리낌 없이 맥주를 마신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 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나 이 영화가 개봉된 1936년보다 30년 전인 1907년Hwangseongsinmun (황성신문)10월 10일자에는 “… 맥주박람회에서 이 박람회를 구경한 부인에 게 맥주를 무료로 지급한다…”는 광고가 나올 정도로 맥주 는 이미 성별을 넘어선 술이었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이유 도 있으려니와 여성사회 진출이 증가된 1930년대 여성들의 평균적인 낮은 교육 수준이 전문직보다는 카페, 바에서 직장 을 잡는 여성을 증가시켰고 카페, 바에서 다루는 술은 기본 적으로 맥주가 많았다는 점 등으로 사회 통념상 맥주는 남 녀를 가리지 않는 술로 생각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한편 아내 와 다툰 후 남편은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기분을 달래 는데 1930년 중반 맥주는 카페, 바 등 전문주점만이 아닌 가 정에서도 구입 가능한 술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순이 집을 나간 후 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겸상으로 밥을 먹는 친구 모습이 부러워 집에 돌아와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맥주를 마시며 자신의 삶을 즐기는 엄마는 부정적인 근대여성, 딸과 함께 밥을 먹는 엄 마는 긍정적, 전근대적으로 표현시켜 전근대, 근대 모성애를 음식으로서 대비시킨 셈이었다.

    호텔에서 전화로 요깃거리를 룸서비스로 시키는 장면은 1930년대의 모습으로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애순은 첨 단의 대중문화, 사회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셈이었는데 문제 는 그 전에 벌여놓은 행동이었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박차 고 나온 유부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무책임한 모습 인데 영화에서는 애순의 이러한 행동을 개인의 비이성적 인 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향락적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회적 변화 모습을 여기저기에 배치시킴으로서 애순을 유혹에 잘 넘어가고 향락적이고 퇴폐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1930년대 대도시 경성에 거주하는 중류층 이상 기혼여성 중 남편에게 반기를 드는 여성은 백화점과 같은 소비지향적인 장소에서 거금을 사용하고 맥주를 마시는 여성으로 등가시켰다.

    한편 애순의 정부 창건은 세탁소 한 켠에서 궁색하게 세들 어 살며 한탕을 꿈꾸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동료와 술집 에서 양주를 마시며 한탕이 성공하기를 건배하고 호텔에서 지 내며 택시타기를 즐기는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모던보이 였다. <청춘의 십자로>에서 장개철과 같이 모던보이이기는 하 나 상위 1% 모던보이와 무일푼사기꾼의 모던보이가 대비되 면서 1930년대의 모던보이들은 결국 카페에서 맥주와 양주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로 느껴질 정도로 1930년대 영 화에서 카페에서의 맥주와 양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음 식문화 근대화 사례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나타났다.

    이 영화의 결말 부분이자 하이라이트는 무용발표회에서 본 남성무용수를 쫓아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경성역으로 질주 하는 애순의 모습이었다. 이 부분에서 음식 관련 장면은 나 타나지 않지만 영화만큼이나 근대 산물의 꽃이라 할 수 있 는 자동차가 사건의 중요 실마리로 등장하였다. 이미 과속으 로 달리고 있는 택시운전사에게 더욱더 속도 낼 것을 독촉 하는 애순은 속도로 상징되는 근대를 대변하고 있는 듯 잔 뜩 몸이 달아 있었다.

    지극히 우연이기는 하나 애순이 타고 있던 택시에 딸 정희 가 치이고 애순은 죄의식을 느끼며 평소의 성격대로 파격적 인 결말을 선택하는데 이 장면에서 ‘미몽’이라는 제목에 부제 로 ‘죽음의 자장가’가 붙여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괴기스 럽게 풀어헤친 머리로 “엄마도 따라가겠다”며 극약을 삼키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애순의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클라리넷 인지 오보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목관악기 독주로 브람스의 자장가가 기괴하게 흐른다. 흡사 공포영화와 같은 분위기는 1930년대 경성의 에로그로 코드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뉘우치기는 하였으나 가정으로는 돌아가지 않는(혹은 못하 는) 애순은 무책임하기는 하나 차라리 <청춘의 십자로>의 영 옥보다 근대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있 는 것이 아닌 애순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의지로 집을 나오고 자신의 의지로 남자를 선택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술 을 마시고 자신의 의지대로 생을 마감한다. 똑같이 맥주를 마셔도 <청춘의 십자로>의 여주인공처럼 억지로가 아닌 자 의로 마시며 그렇다고 당시 모던여성의 상징인 직업도 가지 고 있지 않던 주부였다. 1930년대 근대화의 이름으로 경성 에 유행했던 변화된 음식문화는 2년 전 영화에서의 영옥, 영 희와 마찬가지로 유부녀인 애순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는 하였으나 경험하고 즐기기에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던 점은 마찬가지였다<Table 4>.

    3. <반도의 봄>-중류층의 일상화된 일본식 근대화

    <Table 5>는 <반도의 봄>의 음식(료)관련 장면을 본 연구 의 기준에 준하여 분류한 것이다. ‘근대화 정도’는 근대가 100% (7장면)를 차지하였다. 앞선 2편의 영화보다 가장 후 에 개봉된 영향도 있고 영화줄거리가 ‘영화제작’이라는 중류 층 이상의 지식인들인 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전) 근대화에 영향을 준 국가’는 일본서구 혼합형태(2장면) 30%, 일본(2장면) 30%, 서구(2장면) 30%, 조선(1장면) 10%를 나 타내었다. 근소한 차이이지만 3편 영화 중 일본영향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전술한 대로 조선영화령이후 제작된 영화라는 점과 강점기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 민족 생활 깊 숙이 일본음식문화가 곳곳에 번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근 대화 혜택 대상’으로 보았을 때 중류층이 71% (5장면), 상류 층 29% (2장면)로 <미몽>에서와 같이 중류층 혜택이 높게 나타났다<Table 5, Fig. 3>.

    영화 전반부에 자신을 찾아온 정희와 정희오빠(영일의 친 구)를 집으로 데리고 가 냉면을 배달시키는 영일의 모습이 나온다. 냉면은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아지노 모도(味の素)를 대표되는 일본 화학조미료가 수입된 후 육류 없이 육수를 낼 수 있다는 점으로 더욱 유행한 대표적 음식 이기도 하다(Chung 2004). 더구나 ‘배달’이라는 유통방식은 외식의 근대화를 잘 반영하는 부분인데 신문 광고 혹은 기 사로 음식(료)배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1907년 한국축 산주식회사의 우유광고로 “…건강을 위해 우유를 마시는 것 … 엽서로 주문을 하면 신속배달이 가능하다…”(Hwangseongsinmun 9.21)는 광고와 이보다 한참 지난 1925년 Dongailbo (동아일보)5월 1일자에 “평양면옥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여 냉면집 사장가족이 전부 일을 하기는 하나 배 달은 할 수 없다”는 기사로 이러한 광고와 기사는 조선 땅 내에 배달이라는 형태가 탄생 혹은 부활했던 초반 모습을 나 타낸다고 볼 수 있다. 냉면과 같은 완전음식형태 배달은 1920년대 후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배달음식이 붐을 이 루었던 1930년대 경성에서 대표적 배달 음식은 냉면 이외에 소의 부산물과 뼈를 우려낸 대표적 서민음식 설렁탕이 있었 다(http://news.donga.com).

    이 영화에서는 음식(료)의 근대화 상징으로 맥주, 커피, 서 양음식이 자주 나왔던 다른 2편의 영화와는 달리 특이한 장 면이 있었다. 영화제작진들이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합숙 형 식으로 함께 사는 가정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반찬을 만 드는 장면인데 이를 위해 식재료를 구입하는 장면에서 ‘무우’ 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무가가 보통 흔한 무가 아닌 일본무 (왜무. 단무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무)를 사오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우연히 지나가던 채소트럭 에서 구입한 무우였는데 이 무가 조선 무가 아닌 일본 무로 설정되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식문화 특성상 가장 흔하고도 많이 섭취하는 채소는 배추와 무우인데 이러한 기 본적인 식재료마저 일본의 것을 먹어야 했던(혹은 그렇다고 영화로 표현해야 했던) 피식민지로서 비애를 느끼게 하는 부 분이기는 하지만 조선에 단무지 속칭 ‘다꾸앙’이라는 일본음 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사후 조치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과 ‘제물포조 약’ 이 체결되고 그 결과 일본인의 한성 진입이 가능해지고 일본인 약 300여명이 진고개에 거주하기 시작했던 때부터였 다. 이때부터 뎀뿌라, 단맛의 장아찌, 다꾸앙 등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니(Choi 2013). 단맛의 다꾸앙을 먹는 조선인들이 생긴 지는 40~50년이 된 셈이다. ‘왜무’ 구입이라는 사실 한 가지를 가지고 피식민지 백성으로서 어쩔 수 없이 구입해야 하는 비애로 해석할 지 문호개방 후 타국 식재료 구입가능 여건으로 해석해야 할 지는 관점의 문제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문호개방 즉, 근대화 과정이 있은 후에 일어난 일이 며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역사가 없었더라면 후자의 해석으 로 기울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제작진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집에 양념으로 간장 통이 놓여져 있는 모습이 비춰졌는데 간장통에 ‘萬’자가 적 혀 있는 것으로 보아 ‘깃코만 간장’으로 추정되었다. 우리나 라의 전통간장은 즉, 조선간장은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항아리에 보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식품이 산업화되면서 된장, 간장이 공장에서 만들어지 기 시작했는데(Han 2002; Joo 2015). 이러한 장유산업이 점 차 조선에 퍼져 일본식 양조간장을 먹는 조선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도 임시로 모여 산 것이 이유가 될 수 도 있으나 일본식 양조간장이 골마루에 나와 있는 모습은 당 시 보편적 가정집 모습일 수도 있고 영화 곳곳에 일본 문화 가 느껴지도록 소품을 배치한 스탭들의 정교한 계산일 수도 있다. 기본양념조차 일본 공장식 제조간장을 상용하는 모습 은 일본제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초 경성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였지만 실제 1915년 7월 14일Maeilsinbo (매 일신보)의 경(京)표간장을 시작으로 하여 1935~1938년 사 이에 Dongailbo (동아일보)에는 마루킹간장과 깃코만간 장이 10여회 이상 광고되었고 Maeilsinbo (매일신보)에 는 야마사간장 등 여러 일본제 제조간장이 광고된 것을 보 면 어느 정도의 소비도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무나 일본식 제조간장 경우도 <청춘의 십자로>의 ‘선술 집’과 같이 ‘근대화된 음식문화’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 을 수 있으나 타국문화수용, 공장 대량제조방식에 초점을 두 어 근대화된 음식문화로 포함시켰다.

    IV. 결론 및 요약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는 ‘근대성이란 서구와 일본의 것 이며 우리에겐 그것이 아예 없다’라는 현해탄 콤플렉스가 지 배적이었다(Jang 2012). 근대화는 이루어야 하나 그 방법은 서구 혹은 일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무기력한 절망적 비관 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판의 여지가 많기는 하나 당시의 시 대 분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본고는 지식층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인 영화인들이 만든 영 화에는 당시 지식층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근대성이 현해탄 콤플렉스든, 민족적 자각의식이든,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즐 거움과 편리함을 찾아가게 마련인 인간본연의 본성이든 어 떠한 방식으로라도 표현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연구 를 시도하였다.

    Fig. 4는 기준별 분석내용을 영화별로 나타낸 것이다. 모든 영화에서 80%이상, 평균 91%로 ‘근대’를 표현하고 있어 1930년대 영화에서는 음식문화로 ‘근대’를 지향했던 바를 알 수 있었다. 1920년대부터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식 대중 문화는 1930년대 들어서 경성을 중심으로 소비문화를 형성 하였고 영화에서도 음식(료)부분에서 근대적 모습 시각화에 공을 들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반도의 봄>은 전 장면이 근대화된 모습이었는데 이는 스토리도 영향이 있겠지만 3편 중 가장 나중의 영화라는 점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 었다.

    ‘근대화에 영향을 준 국가’로는 3편의 영화는 평균적으로 서구(35%), 서구일본 혼합(28%), 일본 20% 순으로 수치상 으로는 일본영향이 다소 낮기는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거 의 같은 비율 1/3씩 차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본고에서 서구형태로 넣은 ‘서양식식사, 양주’의 경우 도입과정을 엄 밀히 따지자면 일본을 거쳐 도입된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 이다. 다만 맥주장면과는 달리 해당 장면에서 일본문화가 두 드러지게 부각되지 않아 서구 형태로 포함시킨 것이며 이와 는 다르게 서구일본 혼합형태로 넣은 ‘맥주’는 일본에서 대 량생산되어 조선에서 자주 광고된 바가 매우 분명하고 영화 에서 일본제품임이 뚜렷이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통한 서구문물유입이 중요과제라고 생각했던, 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일본이 유도하였건 1920년대 중반 이후 경 성은 표면적으로는 일본을 매개로 한 서구식대중소비문화 유 입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과정에는 식생활도 포함 되어 있었고 비록 실제 상황은 아니지만 당 시대에 제작된 영화에 이러한 과정이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면 수가 많지 않아 수치로 유의적 결과임을 증명하기는 어려우나 가 장 초기에 제작된 <청춘의 십자로>는 서구영향이 36%, 일 본영향 29%, 1936년 제작된 <미몽>은 40, 0%, 41년 제작 된 <반도의 봄>은 30, 30%로 서구영향은 전 영화에서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일본영향의 경우 <미몽>에서 는 한 장면도 없었는데 이는 총 장면이 5건 밖에 되지 않아 단순 수치해석에 무리가 있으며 아울러 영화 자막이 일본어 로 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 마냥 일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영 화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근대화 혜택’ 은 3편의 평균은 상류층, 중류층, 하층민 순 으로 33, 50, 17%로 중류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청춘 의 십자로>에서 중류층 혜택이 없는 것은 스토리상 중류층 이 주인공이 없기 때문이며 같은 이유로 <미몽>, <반도의 봄 >에서는 하층민 혜택이 0%였다. 중요한 점은 음식문화 근대 화 혜택이 예상만큼 상류층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 중류층 이 나오지 않았던 <청춘의 십자로>를 제외하면 다른 영화에 서는 중류층 혜택이 압도적으로(80, 71%)가장 높았다는 점, 그리고 예상외로 하층민도 혜택을 받기는 하였으나 각 계층 에서 느끼는 질적인 면은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근대사회 의 주체가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는 시민이었던만큼 근대화 혜택이 도시생활의 기반이 되는 중류층에서 높게 번졌음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용면에서는 상류층, 중 류층의 서양식, 맥주, 커피, 카페, 호텔 등의 문화와 달리 하 위계층에서 느낀 음식문화에서의 변화된 모습은 물받이용 양 철통, 생계용 주전부리 좌판, 선술집 등 질적으로 저하된 모 습이었다.

    본 연구 제한점은 첫째, 영화 상 상류층이 즐긴 문화라 하 더라도 경성이라는 도시에서만 누렸던 문화였으며 둘째, 영 화 줄거리 상 차이로 인해 음식문화 근대성사례의 시대별 연 계점이나 상이점을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셋째, 영화줄 거리 상 전근대와 근대라는 상반된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전 근대근대 차이점이 실제보다 더 극명하게 차이날 수 있고 대 중문화 특성상 1920, 30년대의 대중소비문화의 향락적, 일본 의 퇴폐적문화가 실제보다 더 자극적으로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분석 영화 편수가 많지 않고 제작연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모두 10년 이내에 제작되어 시대별 변화를 추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당시 경성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주 력한 소비도시였으며 조선 전체는 일본 대 조선의 민족적 차 별. 양반 대 노비의 전근대적 계급체계가 아닌 자본에 의한 상중하층의 계층사회 차별, 남자 대 여자의 성별차별 등 이 중삼중의 차별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다중적 차별 속에서 싫 든 좋든 변화된 근대 문물을 각 위치에서 경험하였고 그러 한 경험 중에는 음식문화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본고는 귀중한 영화 3편을 통해 식민지와 근대기라는 2가 지 무거운 숙제를 안은 시대적 상황에서 당 시대인들이 겪 었던 음식문화 근대성 경험 과정을 엿보았으며 추후 새로운 영화 발굴과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2017년도 정부재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성과 학 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으로 한국연구재단과 한 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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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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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Sweet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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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Spring of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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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rehensive analysis of films

    Table

    Information films
    Description of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
    Description of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Sweet Dream>
    Leading actress and her modernity from film the <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 and <Sweet drean>
    Description of scenes dietary-related from film the <Spring of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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