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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2 No.6 pp.487-497
DOI : https://doi.org/10.7318/KJFC/2017.32.6.487

A Study on Radio Cooking Program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Kyou-Jin Lee*
Corresponding author: Kyou-Jin Lee Department of Food Nutrition and Biotechnology Kyungnam University 7 Kyungnamdaehak-ro Masanhappo-gu Changwon-si Gyeongsangnam-do Korea 82-55-249-251282-0505-986-2184aroma711@kyungnam.ac.kr
20170817 20171010 20171219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examine the 2nd broadcasting cooking program of Gyeongseong Radio from April 26th 1933, when the 2nd broadcasting for Koreans started, to December 1941. From its opening date, there were continuously regular cooking programs such as ‘Recipes’ and introducing ‘Japchae’. Analysis of names broadcasted in cooking programs included a total of 452 foods (328 types); specifically, 332 Korean foods, 71 Western foods, 24 Japanese foods, 18 Chinese foods, and seven other foods. Korean foods included 35 staple foods, 223 side dishes, 64 deserts, and 11 sauces. Western foods included seven soups, 25 main dishes, and 25 deserts. Main dishes included many deep-fried dishes, while diverse types of desserts were also introduced. In the case of Japanese food, there were many foods combined with Western food. Chinese food included many types of dumplings and fried rice, as well as many dishes using pork. Among people broadcasting cooking programs, there were 11 whose names were shown in the schedule, all of whom were recognized as the best cooking specialists and educators of the time.


일제강점기 라디오 요리프로그램의 특성과 내용

이 규 진*

초록


    I.서 론

    세계 최초의 방송 요리프로그램은 1923년 프랑스 라디오 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 요리프로그램은 1924년 첫 라디오 전파를 탔다(MM Pack). 미국 라디오 방 송 초기인 1922년에 여성소비자 분야 마케팅 전문가인 Frederick은 “Radio for the Housekeeper”라는 제목의 글에 서 라디오가 여성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주부들을 위해 살림과 요리법 등 교육적이며 정보를 제공하 는 프로그램을 매일 편성할 것을 제안했다(Michele 1997).

    한국 방송 요리프로그램의 시초는 일제강점기 라디오 방 송이다.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은 일본의 한반도 통치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1927년 2월 16일 서울 정동 1번지에서 호출 부호 JODK, 출력 1kw로 시작되었고, 일본어 방송과 한국어 방송을 3대 1의 비율로 편성하였다(Choi & Han 2004). 호 출부호 JODK는 일본이 ITU로부터 JO를 받은 후 도쿄가 AK, 오사카가 BK, 나고야가 CK로 개국한 다음 경성 방송 국이 네 번째 호출부호인 DK를 부여받았다. 경성방송 초기 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이 혼합된 형태였으나 그 후 1933 년 4월부터는 제2방송인 한국어, 제1방송인 일본어로 채널 이 이분화 되었다(Choi & Han 2004).

    일제강점기에 처음 시작된 라디오 방송은 당시로서는 최 첨단 미디어였고, 그 영향력은 “박인덕, 송금선, 김활란, 황 신덕 네 분은 선수격으로 방송하는 날 저녁이면 가정부인의 귀를 라지오통 옆에 끌어오고야 만다고 한다. (중략) 조선여 성아! 하고 부를 때면 설거지를 하던 여염집 부인들이 눈을 껌벅껌벅하며 라지오통 옆으로 달려오고야 만다고 한다.”라 고 라디오 청취 분위기를 전하는 1934년 11월 1일Samcheolli (삼천리)의 기사를 통해 짐작 할 수 있다.

    이렇듯 유명 여성연사들이 방송하는 날이면 주부들이 하 던 일을 멈추고 라디오 옆으로 달려온다고 묘사될 정도였기 에,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요리프로그램 역시 식생활에 상당 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경성 라디오 개국 초부터 요리프로그램이 있었으며, 한국인을 위한 제2방송에서도 정 규 요리프로그램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요리프로그램에 대 해서는 관련연구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기존 일제강점기 식생활에 대한 연구는 잡지와 강습회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먼저 1936년 4월부터 1940년 12월 사이 발행된 여성잡지Yeo-Sung (여성)에 나타난 식생활 연구 가 있다.Yeo-Sung (여성)에 소개된 조리법은 총 103종이 며, 한국음식 77종(74.8%), 서양음식 18종(17.5%), 중식 6종 (5.8%), 일식 2종(1.9%) 등 외국 조리법이 26개에 이른다 (Lee & Cho 2008). 그리고 1930년대 신식요리강습회를 연 구한 Lee(2013)에 따르면, 1930년부터 서울을 위시한 지방 주요도시에서 신식요리 강습회가 전개되었으며 ‘생활개선’이 라는 명분으로 중식, 일본, 서양음식 같은 외래 음식과 전통 적인 요리법을 개량한 조선음식을 강습회에서 소개하여 조 선사회 내에서 외래식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잡지 요리 기사, 요리 강습회 등은 우리 식생활의 변 화에 영향을 끼쳤으며 라디오 요리프로그램 역시 영향을 끼 쳤다고 볼 수 있다. Kim(2002)의 연구에 따르면, 경성방송 개국 초기 고용임 50인 이상의 기업에서 일하는 조선인 남 자의 평균 월소득이 22원 50전이고 이 무렵 쌀 한가마가 4~5원이었는데, 1930년 보급형 수신기가 50원 정도였으므로 라디오는 상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구입할 수 있는 최 첨단의 고급 뉴미디어였다. 따라서 한국인 라디오 등록대수 는 1927년 949대에 불과했지만, 이중방송이 시작된 1933년 6,401대가 되었고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라디오 보급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면서 주 청취자 층이 넓혀졌다.

    Maeilsinbo (매일신보)1934년 1월 20일 “라디오 청취 자 3만을 돌파”라는 기사를 보면, “2중 방송을 개시한 이래 약진적 발전을 보게 된 DK에서는 작년에 특히 지방의 라듸 오 보급에 힘을 쓴 관계로 18일 현재 청취자 3만명을 돌파 하얏다.(중략) 그 중에도 최근에 조선인측의 신입자가 점차 증가되어 신입총수의 3할 이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1935년부터 지방방송이 설치되기 시작하고 1937년 4 월 제2방송의 출력이 증강되어 전국적으로 방송청취가 가능 해지면서 비로소 100가구에 1대 이상이 보급되었다. 또한 청 취료와 전기요금도 인하되고 라디오 보급이 촉진되면서 1941 년 말 현재 100가구에 3대 이상이 보급되었다(Kim 2002). 이렇게 경성라디오 방송 청취자 증가와 더불어 라디오 요리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더욱 증가되었고 우리나라 식문화에 영 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일본의 서양식(西洋食) 수용방식을 연구한 Kim(2015) 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에도 1926년 시작한 NHK 라디오에 요리프로그램이 존재했으며 이 요리방송이 레시피와 함께 정 확한 분량을 제시하여 계량법을 도입하고 요리의 표준화가 이루어지는데 기여했다고 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인을 위한 제 2방송이 시작된 1933 년 4월 26일부터 전시체제로 접어들기 전인 1941년 12월까 지의 약 7년 8개월 동안 경성라디오 제2방송 요리프로그램 을 살펴보는 것이다. 방송에서 어떤 음식이 소개되었는지 살 펴보고, 방송을 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한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전혀 연구되지 않은 일제강점기 라디오 방 송 요리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라는 의의를 갖으며, 당시 요 리 프로그램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식 문화의 실체에 한걸음 더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이다.

    II.연구 내용 및 방법

    본 연구에서 다룰 시기는 한국인을 위한 제 2방송이 시작 된 1933년 4월 26일부터 1941년 12월까지 약 7년 8개월의 기간이다.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은 1927년 2월 16일부터 시 작되었지만, 이 시기 방송은 일본어와 한국어 이중방송(二重 放送)이었으며 일본인 위주의 방송이었다. 또한 경성방송국 개국 초는 일본에서도 방송초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편성방 침에 확고한 방침이 서 있지 않았고, 확립된 편성 방침 하에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못하였다(Choi & Han 2004). 따라서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방송인 제2방송이 시작된 1933년 4월 26일부터를 연구의 시점으로 정하였다. 그 후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전쟁을 확대 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은 보도 제일주의로 동경방송의 중 계를 강화하였고 전시통제체제를 유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 을 하였다(Choi & Han 2004).

    실제로 Maeilsinbo(매일신보)1941년 11월 6일 “주부 상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특별김치 담그는 법”을 방송한 이후에는 요리프로그램이 검색되지 않는다. 그리고 1942년 부터는 프로그램의 제목도 “전시(戰時)주부수첩”, “전시(戰 時) 가정시간”으로 바뀌었으며, “생활전(生活戰)에도 이기자” 라는 내용이 방송되었다. 이후에도 요리법은 찾아볼 수 없고 뉴스와 음악 위주의 편성으로 되었기에 연구의 종료 시점은 1941년 12월까지로 정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서 먼저 1933년 4월 26일부터 1941년 12 월까지 대상기간 동안의 라디오 방송편성표를 기본 자료로 채택하였다. 일제강점기 방송편성표를 가장 충실하게 볼 수 있는 자료는Maeilsinbo (매일신보)다.Maeilsinbo (매 일신보)는 총독부 기관지였기에 일제가 주관했던 라디오 방송을 잘 반영하여 비교적 충실하게 실었으므로 기본 자료 로 선정하였다. 처음에는 ‘라디오’ ‘JODK’ 등의 키워드로 검 색하였지만, 검색이 안 되는 날짜가 많아서 전체 신문 지면 을 직접 살펴보았다. 주로 3면이나 4면에 실린 라디오 편성 표를 통해 요리프로그램의 편성과 음식명, 방송을 한 인물 등 관련내용을 조사하였으며 부족한 부분은 Dong-A Ilbo (동아일보),Chosun Ilbo (조선일보),Choseonjungangilbo (조선중앙일보)등 다른 신문에 실린 방송 편성표와 대조 검토하였다. 이외에도 당시 잡지에 나타난 기사, 회고록, 방 송관련 자료 등 다양한 문헌연구를 통해 관련내용을 최대한 추적하여 다음의 연구 문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 1. 일제 강점기 라디오 요리 프로그램의 편성과 포맷은 어 떠하였나?

      • - 요리법 관련 정규 프로그램은 무엇이었으며 그 지속 성은 어떠한가?

    • 2. 요리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주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 는가?

    • 3. 요리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음식의 종류는 무엇이었는가?

      • -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의 비율은 어떠한가?

      • - 한식의 주식, 부식, 후식의 분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 - 당시 소개된 양식은 어떤 것이며 또한 일본화된 양식 은 무엇인가?

      • - 당시 소개된 일식과 중식의 종류는 어떠한가?

    III.결과 및 고찰

    1.요리 프로그램의 편성

    한국방송사에 따르면, “1933년 4월 26일 경성방송국이 이 중방송(二重放送)을 실시함에 따라 한국어방송과 일본어방송 이 분리되어 기구상으로 종래의 방송과(課)가 방송부(部)로 확장 승격되어 일본어 방송 전담부서인 제1방송과 한국어방 송 전담부서인 제2방송과가 생겼다. 제2방송 초대과장에는 윤백남이 기용되었다(Korean Broadcasting System 1977).”

    제2방송 초대과장 윤백남의 글을 통해 경성 라디오방송의 기본 방향과 편성지침을 알 수 있는데, “라디오 문화와 이중 방송”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조선에서 라디오 방송의 발 전을 위해서는 가정에서 라디오가 필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 주장하며, “요약하여 말하면 ‘주부를 잡아라’ 이것이 우리 조선에 있어서의 라디오 사업성공의 첩경이다(Maeilsinbo (매일신보)1933.1.10.)”라고 하였다. 또한 “이중 방송과 조 선의 문화”에서는 조선어 이중 방송과 함께 “1주일에 한 번 밖에 없던 강연 강좌가 매일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부인 계몽 운동적 가정강좌의 창설, 기타 부업 강좌, 가정 수공강좌, 그 날그날의 반찬을 참고적으로 알려드리는 요리법 방송 등의 각종 방송이 줄곧 연달아서(Chosun Ilbo (조선일보) 1933.1.14.)” 방송된다고 예고하였다. 이것은 제2방송에서 가 정주부를 중요한 청취자 층으로 생각했으며 가정주부를 위 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요리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시사한다.

    제2방송의 방송 체제는 “위안(음악, 연예), 교양(성년시간, 어린이 시간), 보도”로 나누었으며, 그 중 요리프로그램은 부 인들을 위한 성년시간에 속한 교양이었다(Society for the preservation of Korea Broadcasting historical sources 1994). 그리고 “二重放送(이중방송)이 실시된 첫해의 보도방 송프로그램의 시간별 편성순서는 (중략) 11시 5분에 비로소 한국어 제2방송으로 氣象通報(기상통보) 料理(요리)메모 日 用品時勢(일용품시세) 鮮魚都賣時勢(선어도매시세)가 20분간 방송(Korean Broadcasting System, 1977)”되었다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 주된 요리프로그램은 오전 11시 5분에 있었 던 “요리법” 혹은 “요리제법”이라는 명칭으로 방송된 프로 그램으로 경성 제2방송 개국일인 1933년 4월 26일부터 편성 표에서 확인된다. <Figure 1>에서 볼 수 있듯이 1933년 4월 26일자 매일신보 ‘今日의 라디오’에는 오전 11시 5분 “10킬 로 2중방송 개시기념 프로그람 제1일 2중개시 인사 한국방 송협회이사 박영선”에 이어서 “기상통보(氣象通報) 요리법 (잡채) 일용품시세”라고 되어있다. 즉 우리나라 경성 제2방송 요리 프로그램에서 첫 음식으로 소개된 것은 “잡채”이다.

    Lee(2013)의 연구에 의하면, 잡채는 조선시대 광해군 재위 시절에 처음 소개된 음식이며, 잡채라는 음식명이 처음 소개 된 조리서는 1670년Eumsikdimibang (음식디미방)이다. 경성 제2방송 요리 프로그램에서 첫 음식으로 잡채가 방송 되었던 1933년 전후 시기의 Dong-A Ilbo (동아일보)의 보도를 살펴보면, 당시 잡채는 상당히 인기 있는 음식이었음 을 알 수 있다. “경성여고보(京城女高普)에서 요리실습회를 개최”하여 학생들이 외부 손님들을 대접한 음식이었고 (1927.11.30), “부인의 알아둘 봄철요리법”이라는 제목의 신 문 요리기사에 소개되었으며(1930.3.6), “조선서양요리강습회 ”에서 강습 요리로 선정되었다(1933.3.17.). 또한 “조선요리로 는 본격적인 정월음식 몇 가지”에 꼽혔을 정도로(1937.12.21) 잡채는 인기 있는 음식이며 한국의 대표 음식이었기에 방송 요리프로그램에서도 첫 음식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었 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리(제)법”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편성된 것 으로 보인다. 단 신문에 실린 편성표를 통해서는 프로그램 제목만 확인될 뿐 어떤 음식이 방송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경 우도 많았다. 특히 1934년부터 1937년 상반기까지는 요리프 로그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 이름은 밝히지 않았고, 다시 구체적인 음식 이름을 확인 할 수 있는 시기는 1937년 6월 이후였다. 오전 10시 30분에 “요리제법”이라는 명칭으로 재등장했고, 편성표를 통해서도 가끔씩 음식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41년까지 10시 30분 “요리제법”은 계속 확인 되는데, 요일에 따라서는 “요리제법”이 아닌 “가정메모”, “위 생메모” 등이 편성되었고 그 경우는 요리가 아닌 다른 내용 이 방송되었다.

    또한 오전의 “요리제법”과 별개로 오후에 “가정부인강좌”, “가정시간”, “가정의 시간” 등이 있었는데,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오후 2시 25분등 변동이 있었다. 주제는 가정 전반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다가 드물게 요리법에 대한 내 용을 소개했다. 그런데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라 디오 프로그램의 편성은 전시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즉 요리 법과 같은 생활 밀착 프로그램보다는 일본 동경방송 중계와 뉴스 위주가 되면서, 4월 이후에는 오전에 있던 “요리법”이 없어지고, 오후 2시 30분 “가정시간”의 한 코너로 요리제법 이 통합되었다. 이렇게 축소되기는 했지만 연구대상기간 동 안 경성라디오 제2방송에서는 지속적으로 정규 요리프로그 램이 존재했으며, 방송 시간대는 주부들이 청취하기에 적당 한 오전 11시대와 오후 2시대 전후였다.

    2.요리 프로그램을 방송한 인물들

    경성라디오 제2방송 요리프로그램은 연구대상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방송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한 인물들 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편성표에서 이름이 밝혀진 이들 은 방신영, 조자호, 정순원, 윤덕희, 최춘복, 최이권, 서은숙, 현근, 배병화, 이원숙, 방인도 11명이었다. 이들의 직업, 방송 날짜, 프로그램명, 음식명 등을 정리하면 <Table 1>과 같다.

    Choseonjungangilbo (조선중앙일보) 1935년 2월 3일자 에 실린 편성표에는 “s 家庭講座(가정강좌) 基礎的 料理法(기초적 요리법)의 方式(방식) 梨花女專(이화여 전) 方信榮(방신영)” 이라고 하여 진행자 중에 방신영이 포함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Dong-A Ilbo (동아일보) 1934년 9월 19일 기사에 의하면 “조선요리는 이화전문가사 선생 방신영 여사: 선생은 조선요리제법이라는 큰 책을 지으 셨느니만치 조선요리에 대하야는 아무도 따를 이가 없는 분 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1930년대 유성기 음반에 실린 희 극자료를 소개한 Choi & Kim(1997)의 저서에서 일제시기 대표적인 만담가로 꼽히는 신불출이 출연한 ‘오케-삼중방송’ 이라는 제목의 악극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아나운서: 다음은 최신요리법강좌를 방송하겠습니다. 강사는 김치깍둑이 여자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시고 현재 콩 나물 여학교에 교장으로 계신 方메리야스양입니다. 시작하겠 습니다.

    方: 요새 신녀성들은 대개 밥을 짓다가 혹 삼층밥을 짓는수가 만치요. 우이는 설구, 가운데는 질구, 밋은 탓스니가 삼층이 안 야요. 이런 경우에 임시변통이 될만한 몃가지 수단이 잇으니, 이것이 곳 최신료리법으로서 첫대 욱어지나 콩나물을 집어넛 코 죽을 쑤어 잡수서요. 관계치 안습니다. 그러고 또 밥이 질 다고 야단을 치는 남편이 잇거든 살작 한번 웃고 롱을 붓치서 요. 에이그 질거든 나막신을 신고 잡숫구여. 그래보십쇼. 그래 도 종시 화를 내거든 슬그먼이 넓적다리를 꼬집어 보세요. 만 일 남편이 빙그레 웃거든 곳 맘을 노세도 좃습니다.

    아나운서: 方메리야스 양의 최신료리법강좌는 이것으로써 끗 이 낫습니다. (Choi & Kim 1997)

    이 글은 스케치(sketch) 형식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스케치 란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작품이나 이야기를 빌려와 변형 하는 일종의 패로디(parody)(Choi & Kim 1997)”이다. 즉 기존의 ‘요리법강좌’ 프로그램을 패러디 한 내용이라고 볼 때 “方메리야스 양”으로 그려진 인물이 방신영이 아닐까하 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국요리의 최고 전문가로 방신영이 꼽혔다면, 중국요리 전문가로는 정순원(鄭順媛)이 있었다.Dong-A Ilbo (동아 일보)1934년 9월 19일 기사에서 “중국요리대가 정순원 여 사: 선생은 일직이 중국에 가서 수십년 동안이나 중국인생활 과 요리에 젖어왔으며 특히 중국요리를 전공한 분입니다.”라 고 하였다. 정순원은 라디오 방송뿐만 아니라 중국요리강습 을 통해서도 많은 활동을 했는데 1939년 5월 15일에서 21일 까지 동아일보 본사 회의실에서 수강료 1원 50전, 70명 정 원으로 열렸던 중국요리강습회를 알리는 기사는 다음과 같다.

    지나요리강습이라면 정순원여사를 내놓고 할사람이 없을만큼 지나요리계에 대가(大家)인 것쯤은 누구나 다 아시는 바입니다. 지나요리라면 집에서 밥반찬을 비롯하야 큰 연회의 요리까지 차려내는 솜씨를 가졌고 그동안에도 이화전문학교와 식당을 경 영하야 그 솜씨를 발휘하였고 각처에서 수십 차례 강습회를 거 친 것만 해도 이 강습회에는 큰 수확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될 수만 있으면 집에서 값싸게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 것을 기 약하고 이 강습회를 여는 것입니다(동아일보 1939.5.10.).

    다음의 “서울 YMCA에 대한 기록”을 담은JoongAng Ilbo (중앙일보)1982년 7월5일 기사를 통해서 정순원에 대 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36년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던 중국요리강 습이었다. (중략) 강사는 중국본토에서 오래 있다가 귀국한 정 순원씨였다. 정씨는 중국에서 요리 실무를 경험했다기보다 흥 미를 가지고 연구했고 여기 중국집 정도에서는 전혀 구경할 수 없는 진기한 음식을 1주일 계속해 강의했다. 정씨는 독립투사 유가족으로 남편을 잃고 귀국해 YMCA에는 황신덕씨의 소개 로 인연을 갖게 되었다. 정씨는 중앙여고 가사교사로 오래 봉 직하다가 정년퇴직해 아직 서대문에 살고 있다(중앙일보 1982.7.5).

    위의 기사에 따르면 정순원은 독립투사인 남편과 함께 중 국본토에서 생활하다가 남편 사후에 귀국하여 중앙여고 가 사교사로 봉직하였고 서울 YMCA 등에서 요리강습을 활발 하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순종황후인 윤비와 이종 사촌간으로 알려진 조자호 는 1938년에 조선요리법이라는 조리서를 썼다. 1953년 종로 신신백화점에 국내 한과점 1호인 ‘한국다과점’을 냈고 1965 년 이화여대 앞에 ‘호원당’을 경영했다(Dong-A Ilbo (동아 일보)1996.4.3.). 조자호는 주로 경성 방송에서 오후 1시 15분에 방송되었던 ‘가정시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939년 과 1940년에 걸쳐 요리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1941년 4월 9일 “요리제법”시간에 “풋김치”에 대해 방송 한 최이권(崔以權)은 황해도 안악 출생으로 1930년 이화여자 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은사 백낙준과 혼인하였다. 조선 여자 기독교청년회 농촌계몽 지도위원으로 사회활동을 시작 했고 1934년 4월부터 연희보명학교 교사로 봉직했으며 해방 이후 YWCA의 대모로 불릴 만큼 사회봉사활동에 헌신했다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1939년 1월 25일 “각종 차 만드는 법”에 대해 방송한 조 기홍(趙圻烘)에 대해서는Thirty five years of Seongsin history (성신 35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 당 조기홍 선생은 1908년 11월 9일 서울에서 세 오라버니 밑에 외딸로 태어났다. 1924년 3월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를 졸업하고 1929년 3월에 일본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 가사 과를 졸업한 후 교육계에서 여성교육에 전념하였고, 1955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교육계를 시찰하고, 40년간을 여 성교육의 선구자로 한국가정학계의 지도자로 헌신하였다 (Thirty five years of Seongsi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1972).”

    방인도(方仁道)는Dong-A Ilbo (동아일보)1936년 3월 21일자 2면에 이화전문 가사과 졸업생 명단에 실려 있다. 그 리고 같이 졸업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이태영이 후에 Dongi-A Ilbo (동아일보)1981년 11월 21일 11면 회고한 글을 보면, 당시 영양학을 가르친 김호직 선생에게 메주에 대해 배웠는데, “그 때 배운 실력을 방인도와 함께 발휘하여 우리 기숙사 160명이 1년 동안 먹을 메주를 지하실 스팀위 에 올려놓아 1주일 만에 메주를 띄운 공적으로 강신환 사감 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일이 엊그제 같다.”라는 내용이 있다. 덕성여실(德成女實)은 1935년 4월 창립(Sixty years of Deokseong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1985)되었으며, 1941년 10월 30일 당시 이 학교에 재직 중이던 방인도는 ‘김 장담그는 법’에 대해 방송하였다.

    이원숙은 동덕고녀(同德高女)의 교사였으며Seventy years of Dongdeok history (동덕 70년사)에 따르면 재직기간이 1940년 4월부터 1942년 10월까지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Seventy years of Dongdeok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1980).

    윤덕희(尹德喜)는 경성 라디오에서 1938년과 1939년에 걸 쳐 계절별 요리와 더불어 “특종 물김치 담그는 법” 등을 소 개하였다. 윤덕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Dong-A Ilbo (동아일보)1925년 3월 24일자 “금상첨화 각교우등졸 업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7세 윤덕희가 나라(奈良)여자 고등사범학교를 우등 졸업했다는 내용이 사진과 함께 실렸 는데 같은 인물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 외 현근, 배병화에 대 해서는 관련 기록을 찾기 힘들다.

    초창기 녹음의 실태에 대한 한국방송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초창기의 방송은 전부가 생방송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말 제2 방송이 탄생한 1934년에 가서야 비로소 3분도 채못되는 알마 이드 녹음반(錄音盤)에 고작 논두렁의 개구리 우는 소리나 산 속의 뻐꾸기 우는 소리를 간신히 녹음 방송할 정도였다. 따라 서 30분 정도의 프로그램을 녹음하려면 알마이드 녹음반(錄音 盤)을 10장씩이나 써야했으며 그나마 부족한 기술에 앞뒤연결 이 잘 맞을리 없어서 실제로는 그런 장시간의 녹음이란 엄두 도 못낼 형편이었다(Korean Broadcasting System 1977).

    이러한 당시 열악한 방송환경 때문에 요리프로그램 역시 주로 생방송을 했다고 추측된다. 따라서 방송을 위한 인물들 을 섭외할 때 지역적인 분포가 고루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 다. 방송국에서 먼 지방에서 올 경우에는 며칠 동안 몰아서 방송을 하고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방송한 인물들의 활동반경은 주로 방송국이 위치한 서울 인근 지역으로 한정 되었으리라 추측되며, 직업군은 주로 교사, 교수, 요리전문가 였고 대부분 여성이었다.

    1930년대 신식요리강습회를 연구한 Lee(2013)는 강습회 강 사로 “조선요리는 방신영, 민혜식, 홍승원, 조자호, 손정규, 김규경, 김옥성 등이고 중국요리에서 정순원, 서양요리에서 겐소, 데이비스, 로스, 최활란, 최마리아 등이었으며 이들은 신문, 잡지에 요리법을 연재하거나 요리책을 저술한 전문가, 저명인사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생활개선을 주장한 인물들” 이라고 하였다. 이 중 방신영, 조자호, 정순원 등은 겹치는 인물로 이들은 라디오 방송뿐만 아니라 요리강습회, 요리책 저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3.요리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음식

    연구대상 시기인 1933년 4월 26일부터 1941년 12월 31일 까지 편성표에서 방송된 음식이름을 밝힌 프로그램을 분석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총 452회 328종의 음식이 방송이 되었는데, 한식은 332회(224종) 73.6%, 양식 71회(64종) 15.7%, 일식 24회(19종) 5.3 %, 중식 18회(14종) 4.0%, 기 타 7회(7종) 1.6%로 나타났다(data not shown).

    본 연구를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이 명칭만을 가지고 분류를 해야 했기 때 문에 특히 양식과 일식의 분류에 있어서는 고민이 있었다. 일식은 크게 ‘전통 일본식’과 서양음식을 일본화한 ‘절충식’ 으로 나눌 수 있다. 샐러드(salad)의 변형 발음인 ‘샐럿’, ‘샐 라드’, ‘샐넷’ 등은 양식에 넣었지만 양식의 영향을 받은 일 식, 즉 ‘절충식’으로 볼 수 있는 ‘사라다(サラダ)’는 일식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커틀릿(cutlet)의 변형 발음인 ‘캇트렛트’, ‘거트리트’, ‘갓트릿’ 등은 양식으로 분류하였다.

    1)한식

    332회 방송된 한식 224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Table 3>과 같이 분류를 하였다. 음식분류의 기본틀은 Kang(1987)Taste of Korea (한국의 맛)을 기본으로 하 되 효과적 분류를 위해 좀 더 세분화하고 일부 조정하였다. 예를 들어 ‘떡볶이’의 경우 Kang(1987)은 ‘찜’으로 분류했지 만, 방송 당시 조리서인 Bang(1934)의Joseonyorijebeop (조 선요리제법)에 근거해서 ‘볶음’으로 분류하였다.

    한식은 주식류 35회(16종), 부식류는 223회(161종), 후식류 는 64회(38종), 장류 11회(9종)였다.

    주식류 중에는 국수가 16회(4종)로 가장 많이 방송되었는 데, ‘국수비빔’이 7회이고 ‘밀국수’가 6회 소개되었다. 구체 적인 조리법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전통지식포탈(http:// www.koreantk.com)에 실린 조리서 중 연구시기와 비슷한 일 제강점기 조리서인 Bang(1934)의Joseonyorijebeop (조선 요리제법)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국수비빔’은 삶은 국수에 섭산적 고기, 파, 생강, 잘게 썬 김치, 채친 편육, 미나리 등을 넣고, “장국이나 혹은 맛잇는 김치국을 조금치고 무쳐서 그릇에 담고 맨우에 게란 채친것 을 뿌려서 상에 놓나니라”고 하여 국물을 약간 넣어 무친 비 빔국수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밀국수’는 밀가루와 생콩가루 를 섞어 만든 국수에 “맑은 장국을 붓고 오이 볶은 것, 섭산 적 만든 것을 이겨서 얹고 달걀도 황백미로 얇게 붙여 닷 분 길이로 가늘게 채 친 것을 얹어서 상에 놓는다”고 하여 국물 이 많은 국수형태였다(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a). 만두는 10회(5종)이었고 ‘편수’ 3회, 밀만두 3회, 어만두 2회 등으로 소개되었다. 밥은 6회(4종)로 ‘비빔밥’과 ‘굴밥’ 이 각각 2번씩 방송되었다.

    부식류 중 가장 많은 것은 국으로 31회(21종)였는데, ‘수 잔지’ 3회, ‘완자탕’ 3회 등이었다. '수잔지(水盞脂)'는 다시마 삶은 물에 채썬 제육, 버섯 등을 넣어 끓인 국으로 한국전통 지식포탈(http://www.koreantk.com)을 통해 살펴본 Bang (1934)의Joseonyorijebeop (조선요리제법)‘수잔지(水盞 脂)’는 다음과 같다.

    다스말 길고 좋은 것으로 정하게 빨아서 물에 삶아가지고 길 이 륙푼넓이 너푼으로 썰어서 다시 솥에 넣고 기름도 업는 연 한 살코기로 얇게 저며 잘게 썰어 간장과 호초 깨소금 파 익 인것 넣고 한참 주물러서 다스마를 함께넣고 다스마 삶은 물 을 붓고 끓이고 석이 표고 버섯 물에 불려 정하게 씻어가지고 골패쪽만큼식 썰어서 기름에 볶아 넣고 저육은 채썰어넣고 알 고명 붙인것 골패쪽만큼식 썰어놓고 끓이나니라 (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b)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국의 재료를 살펴보면, ‘갈비국’ 등 육류와 ‘해삼탕’, ‘대구국’, ‘조기국’ 등 어류, ‘아욱국’, ‘배추 국’, ‘감자국’ 등 채소, 그리고 ‘김찬국’, ‘미역찬국’ 등 해조 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아울러 찌개도 10회(9종)가 소개되어 국물 문화의 비중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Table 2>

    부식류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방송된 것은 김치였는데 24회 (17종)였고 ‘장김치’, ‘박김치’, ‘쌈김치’, ‘채김치’, ‘굴김치’ 등 다양한 종류가 방송되었다. 부식류에서 세 번째로 많이 방송된 전은 21회(15종)로 각종 채소와 더불어 해산물, 간이 나 등골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로운 재료를 사용하였다.

    후식류에서는 떡이 24회(20종)로 가장 많이 방송되었는데, 그 중 ‘주악’이 4회로 가장 많았다. 한과 22회(7종)는 ‘정과’ 와 ‘숙실과’가 주로 소개되었다. 음료 11회(5종)에서는 ‘식혜’ 가 4회, ‘수정과’가 3회 있었다. 장류는 11회(9종)이었는데 고 추장이 ‘멥쌀 고초장’, ‘보리 고초장’, ‘수수 고초장’ 등 다양 한 고추장이 소개되었다. 그 외 ‘어육장’, ‘벼락장’, ‘밀장’, ‘담 북장’ 등이 방송되었다.

    전체 한식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단일 음식으로는 ‘국수비 빔’이 7회, ‘밀국수’가 6회로 국수류가 방송에서 많이 소개되 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잡채’는 5회, 그리고 ‘당면잡채’가 따로 1회 있었다. ‘잡채’의 경우 재료에 당면이 들어갔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1921년Joseonyorijebeop (조 선요리제법)에서 잡채는 “당면(唐麵)을 물에 불려 삶아가지 고 썰어서 다 함께 담고 잘 섞어서 접시에 소복하게 담는다 (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c)”라고 하여 당면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1936년Joseonmussangsinsigyorijebeop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잡채’ 조리법 에는 “당면을 데쳐 넣는 것은 좋지 못하며(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d)”라고 하였다. Lee(2013)의 연구에 의하면 “오늘날과 같은 당면을 사용한 잡채는 1920년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당면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 잡채가 1940 년대의 조리서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면을 사용한 잡 채가 보편화 된 것은 1950년대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따라 서 이 시기 ‘당면잡채’와 구별되어 ‘잡채’로 방송된 음식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 밖에 ‘조기요리법’, ‘오이반찬’ ‘새우젓반찬’, ‘두부’, ‘굴 비’ 등 한식으로 추정되나 요리법을 알 수 없는 경우, ‘春菜 (춘채) 두가지’, ‘봄철요리 멧가지’, ‘여름榮養料理若干(영양 요리약간)’ 등 음식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는 표에서 제외 하였다.

    2)양식

    양식은 <Table 3>와 같이 스프류 7회(6종), 사이드 디쉬류 3회(3종), 주요리가 25회(21종), 후식류 25회(23종), 소스류 3 회(3종), 기타 7회(7종)으로 총 71회에 걸쳐 64종이 방송되 었다.

    스프류 7회(6종)는 ‘시금취숩(2회)’, ‘굴숩’, ‘콜-스프’, ‘감 자스-프’, ‘야채습’, ‘로서아 수프’였다. 시금치, 감자, 야채 등 채소류가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로서아(露西亞)란 러시아 를 의미하며 쇠고기와 양파, 양배추 등 각종 채소를 이용한 수프로 1934년Joseonyorijebeop (조선요리제법)에도 실 려 있다(Korea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 e).

    사이드 디쉬류 3회(3종)는 ‘포테토샐라드’, ‘닭고기샐넷’, ‘매쉬드 포테토’가 있었고 빵류 1회(1종)는 ‘메일레드’ 만이 소개 되었다.

    주요리류 26회(22종)는 튀김류, 구이류, 기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튀김류가 11회(8종)으로 가장 많았다. ‘굴후라이’가 3회, ‘정어리프라이’ 2회, 그 외 ‘조기프라이’, ‘토마토프라이’, ‘에그스푸라이’, 그리고 ‘포-크 캇트렛트’, ‘거트리트’, ‘연어 갓트릿’이었다. 이렇듯 양식에서 튀김음식이 많은데 비해, 앞 서 한식에서는 튀김 음식이 ‘닭간 튀긴 것’ 1회만이 소개되 어 두 음식의 조리법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구이류는 2회(2 종)으로 ‘로스트 치킨’, ‘조개크림구이’가 있었다.

    그 밖에 주요리로 볼 수 있는 기타류 12회(11종)는 ‘아라 사만두’, ‘캬베지의 고기쌈’, ‘카레-드.오이스타’, ‘佛蘭西式 굴 料理’, ‘크림캐배지’, ‘롤캬베취(2회)’, ‘옴렛’, ‘저멘캐베이지’, ‘스타흣트 토마도미-트’, ‘롤-프’, ‘豚肉 푸-카텐’이 있었다. ‘아 라사(俄羅斯)’ 역시 앞서 로서아(露西亞)처럼 러시아를 의미 하여 스프에 이어 러시아식 만두도 방송에서 소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재료로 양배추를 이용한 요리들이 많았고, ‘카레 -드.오이스타’, ‘佛蘭西式 굴料理’등 굴을 이용한 요리도 있었 다.‘롤-프’는 비프롤로 추정되며, ‘豚肉 푸-카텐’(フカデン)이 란 삶은 돼지고기 요리로 불어인 ‘fricandeau’, 즉 프리강도 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생각된다.

    후식류 25회(23종)는 케이크류 6회(5종), 음료류 4회(4종), 아이스크림류 3회(3종) 기타류 12회(11종)으로 다양하게 소 개되었다. 케이크류 6회(5종)은 ‘롤케익’, ‘훗트케익’, ‘구리들 케익(2회)’, ‘마-불 케익’, ‘앨노스폰지 케익’이었다. ‘구리들 케익(グリドル ケキ)’은 두꺼운 팬케익인 ‘griddle cake’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음료류 4회(4종)는 ‘플루-츠 폰치’, ‘오렌지 엑’, ‘소다수’, ‘펀치 스퀴어’가 소개되었다. 아이스크림류 3 회(3종)는 ‘커피-아이스크림’, ‘아이쓰캔듸’, ‘아이쓰크림’이었 다. 기타류 12회(11종)으로는 ‘가스타-드.제리’, ‘초코레-트’, ‘비스켓트(2회)’, ‘오렌지제리’, ‘페크트 레몬푸딩’, ‘ 넛’, ‘레 이쓰트도넛’, ‘레몬젤리’, ‘포테로싼사과과자’, ‘아이쓰 쓰쿠 키’, ‘풀레인판턴트’이 있었다.

    소스류 3회(3종)는 ‘부라운 소스’, ‘브네구렛드 소-쓰’, ‘매 요네스 소-쓰’가 소개되었다.

    그 밖에 ‘크레-드.웨스타’, ‘오란지아이’, ‘런치’, ‘언스퀘어’, ‘스트 ’, ‘포일드지깅’ 등이 있었는데, 서양식으로 추정되 나 어떤 음식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분류가 모호한 음식이 7개 있었다.

    3)일식

    근대 일본의 서양식 수용방식 연구에 따르면, 근대시기 서 양과 일본의 요리재료와 요리방식을 서로 혼용하는 ‘절충요 리’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오므라이 스’, ‘카레라이스’, ‘고로케’, ‘돈카츠’ 등이었다(Kim 2015).

    방송에 소개된 일식은 <Table 4>과 같으며 전통 일본식은 ‘노리마키’ 2회(1종), ‘스시’ 2회(2종)이 있었다. 스시는 일반 스시와 더불어 생선·야채 등 여러 가지를 잘게 썰어 섞은 뭉 치지 않은 비빔 초밥인 ‘고모꾸스시(五目)’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절충식은 라이스류 6회(4종), 덴푸라 4회(4종), 사 라다 4회(4종), 고롯케 3회(2종), 기타 3회(3종)이 있었다. 라 이스류 6회(4종)은 ‘옴을렛트 라이쓰(2회)’, ‘함라이스’, ‘비후 라이스(2회)’, ‘生鮮라이스’가 소개되었다. 사라다는 사과, 포 테토, 게, 생선 사라다가 소개되었다. 덴푸라는 에도기에 도 입된 튀김요리지만 역시 서양에서 유래된 음식이어서 절충 형에 포함시켰는데, 굴조개, 쇠고기, 채소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다. 그밖에 일본식 계란찜인 ‘차완무시[ちゃわんむ し]’, 삶은 콩이나 팥을 꿀물에 졸여 설탕에 버무린 과자인 ‘ 아마낫토 甘納豆 [あまなっとう]’ , 그리고 ‘스끼야끼[すきや き]’가 있었다.

    4)중식

    중식은 <Table 5>와 같이 만두류, 죽류, 밥류, 탕류, 그리고 생선, 두부, 육류를 이용한 음식들이 18회 14종 방송되었다.

    가장 많이 방송된 것은 만두류로 5회 방송되었고 4종류가 소개되었다. 밥류는 중국식 볶음밥인 ‘炒飯(초반)’이 2회 방 송되었고, 죽류는 게살계란죽인 ‘蟹粉蛋(해분단)’이 소개되었 다. 탕류는 ‘菜豆腐湯(파채두부탕)’, ‘碗湯(완탕)’, 육류요리로 는 ‘南煎丸子(난자완스)’, ‘東坡肉(동파육)’, ‘탕수육’이 있었 고, 두부요리로는 ‘鷄卵豆腐(계란두부)’, ‘鷄肉豆腐(계육두부)’ 가 소개되었다.

    5)기타

    그밖에 지금까지 소개한 한식, 양식, 중식, 일식에 속하지 않은 음식들은 7개로 ‘사과와 생강’, ‘鷄卵牛乳즙’처럼 요리 가 아닌 식재료명이거나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 분류 가 모호한 경우가 있었다.

    IV.요약 및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인을 위한 방송이 시작된 1933년 4 월 26일부터 1941년 12월까지 경성라디오 제2방송 요리프 로그램을 살펴보는 것이다. 요리프로그램에 방송된 음식명을 분석한 결과, 한식 332회 (224종), 양식 71회(64종), 일식 24회(19종), 중식 18회(14종), 기타 7회(7종)로 총 452회(328 종)가 방송되었다.

    한식은 주식류 35회(16종), 부식류는 223회(161종), 후식류 는 64회(38종), 장류 11회(9종)였다. 부식류 중 가장 많은 것 은 국으로 31회(21종)이었는데, 찌개도 10회(9종)이 소개되 어 한식에서 국물 문화의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김치는 24회(17종)이었고 ‘장김치’, ‘박김치’, ‘쌈김치’, ‘채김치’, ‘굴 김치’ 등 다양한 종류가 방송되었다. 후식류에서는 떡이 24 회(20종)로 가장 많이 방송되었는데 그 중 ‘주악’이 4회 소 개되었다. 한과 22회(7종)는 정과와 각종 숙실과가 많이 소 개되었다. 양식은 스프류 7회(6종), 주요리가 25회(21종), 후 식류 25회(23종)등이었다. 주요리류에는 튀김류가 많았고 후 식은 케이크, 음료, 아이스크림 등이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일식은 양식을 일식과 접목시킨 절충식인 ‘뎀뿌라’, ‘사라다’, ‘고롯케’ 등이 많이 소개되었다. 일본의 ‘절충식 음식’은 서 양음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산물로 서양음식으로 부터 일식에서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하는데 초점을 맞춘 음식들이 많았다. 중식은 만두류와 초반(炒飯)류가 많 았고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많았다.

    경성라디오 제2방송에서 요리프로그램을 방송한 인물들은 방신영, 조자호, 정순원, 윤덕희, 최춘복, 최이권, 서은숙, 현 근, 배병화, 이원숙, 방인도 11명이었다. 이들은 당대 최고로 꼽히는 요리 전문가이자 교육자들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통치를 경험하게 되면서 일본 음식, 그리고 일본을 통해 변형된 서양 음식이 섞여 들어와 한국 음식문화에 큰 변화가 생긴 시기였다. 이 시기 라디오 요리 프로그램은 조리법의 표준화와 확산, 조리 용어의 정착, 외 국음식 수용의 가속화 등 우리나라 식문화에 여러 가지 영 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감사의 글

    이 연구결과물은 2017학년도 경남대학교 신진교수연구비 지원에 의한 것으로 이에 감사드립니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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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dio of today

    Source: Maeilsinbo (1933.4.26. p 3)

    Table

    People who appeared in cooking programs on Kyungseong 2nd radio station
    Korean Foods that were introduced in the food program, Kyungseong 2nd radio station
    Western Foods that were introduced in the food program, Kyungseong 2nd radio station
    Japanese Foods that were introduced in the food program, Kyungseong 2nd radio station
    Chinese Foods that were introduced in the food program, Kyungseong 2nd radio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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