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서 론
음식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일 뿐 아 니라 사회성을 고양하 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어떤 식재료를 사용하여 어떠한 식생활을 하는 것인지를 특징 지 워주는 것이 음식문화이다. 한 나라의 음식문화에는 그 나라 의 역사, 생활과 전통이 서려있다. 이러한 음식문화는 무형 의 유산이기에 조상들이 남긴 서적에 기록된 내용의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 이다. 음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 문헌은 당대의 사람들이 무 슨 식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방법으로 조리해 먹었는지를 알 려주는 것으로서 식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되며 한국 전통음식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핵심자원이다(Baek 2014).
현재 알려진 최초의 조리서는 1450년경에 편찬된「Sangayorok (山家要錄)」(Jeon 1450년경)이고, 1500년대에는「Suwunjapbang (需雲雜方)」(Kim 1540), 1600년대에는「Eumsikdimibang (飮食知味方)」(Andong Jang 1670년),「Yorok (要錄)」 (Anonymous 1680),「Jubangmun (酒方文)」(Anonymous 1600년대) 등이 있고, 1700년대에는 「Somunsasel ( 聞事 說)」(Lee 1720),「Sallimgyeonge (山林經濟)」(Hong 1715), 「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Ryu 1767) 등, 1800년대에는 「Gyuhapchongseo (閨閤叢書)」(Pingheogak Lee(憑虛閣 李氏) 1809),「Limwonsibrukgi (林園十六志)」 (Seo 1827),「Siuijeonseo (是議全書)」(Anonymous the late 1800s) 등, 1900년대에는「Buinpilgi (婦人必知)」(Pingheogak Lee (憑虛閣 李氏), 1915),「Choseonyorigebub (朝鮮料理製 法)」(Bang 1917),「Choseonmussangsinsikyorigebub (朝鮮 無雙新式料理製法)」(Lee 1924),「Choseonunyoribub (朝鮮 料理法)」(Cho 1934) 등이 있다. 최근 한식의 세계화와 더 불어 고문헌을 통한 전통음식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Cha 2012; Chung 2013; Park 2015). 특히「Jusiksiui (酒食是儀)」(Anonymous, the late 1800s),「Banchandeungsok (반찬등속)」(Anonymous, 1913),「Choi’s Eumsikbeop (최씨 음식법)」(The Womam of Haeju Choi’s Cran (정부인 해주 최씨), Previous 1660)과 같이 특정 가문 또는 지역의 알려 지지 않고 있었던 조리서의 식문화적인 의의에 대한 연구도 많아지고 있다(Cha 2012; Chung 2013; Lee et al 2014; Park & Lee. 2015).
「주식방문」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적으로, 현재 같은 이름으로 전해지는 책 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찬자미상의 고문헌이고, 다른 하나는 안동김씨 노가재(老家 齋) 김창업(金昌業)가문 소장의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 장본’에 기록된 음식은 ‘노가재본’과 유사하나 종류는 절반 정만 기록되어 있었다. 두 책에 기록된 내용은 아주 유사하 다. 비록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노가재본’의 축소판이 라고 하여도 1800년대 말경 집필된 ‘노가재본’과 달리 저술 년도가 1900년대 초반으로 시대적 차이가 있고, 음식명의 표 기법, 조리법 등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아니라 ‘노가재본 ’에 수록되어있지 않은 새로운 음식도 포함되어 있어 조선시 대 후기의 음식문화의 변화내용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국립중앙도서관소 장의「주식방문」의 연구 분석을 통해 1800년대 후반의 조 선시대의 조리법이 1900년대 초에 어떻게 변화해나가는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1900년대 초반 조선시대 음식의 조리법과 재료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여 전통음식문화 의 원형을 파악하는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II.연구 내용 및 방법
1.연구대상 문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주식방문」은 찬자미상 의 고문헌으로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보관되어 있으 며, 발행지역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표지에 정미년(丁未 年)으로 기록되어 있어 필사연대는 1847년이나 1907년 중 하 나로 추정된다(Fig. 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어떤 책을 등초했다고 했음을 볼 때, ‘노가재본’을 참고로 한 것으로 보 인다. ‘노가재본’은 18세기 말경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Chung 2013)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출간년도는 1907 년으로 추정된다.
책의 크기는 24.7×20.8 cm에 표지 포함 전체가 32쪽이고 본문은 30쪽이며, 한 쪽에 10행 20자 내외로 필사하였다. 사 란(絲欄: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여 그은 선)은 없지만 줄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음식명은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고 본문은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한글 고어로 기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필 체는 궁서체로 ‘노가재본’을 비롯하여「규합총서」,「시의 전서」,「주식시의」,「부인필지」보다 알아보기 쉽게 기록 되어 있어<Figure 1>, 기록한 사람이 궁녀출신의 여성인 것 으로 추측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책이름 앞에 정미년 2월에 필사하여 전하는 것이고, 소중 하니 잃어버리지 말고 두고 보라는 저자의 저술의도가 기록 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주식류로 죽 2종, 국수 2종, 만두 2종과 찬물류로 탕 9종, 찜 3종, 산적, 즙, 볶음, 구이, 편육 각 1종, 정과, 숙회, 편 각 2종, 김치 및 장아찌 3종, 떡 3종, 과정류 11종, 엿 1종, 장 담그는 법 2종 과 6종의 술 빚는 법의 총 51종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본 연구에 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음식들을 비슷한 시 대인 1800년대 후반 및 1900년대 초반에 출판된 문헌과 비 교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음식 및 조리법의 변화를 고찰 하 였다.
2.자료 분석 방법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주식방문」에 기록된 음식에 대 해 조선시대 후기의 조리서중 1800년대에 출간된 「규합총 서」,「시의전서」,「주식시의」등과 1900년대 초에 발간 된 「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등에 실린 동일 항목의 조리법과 비교 고찰하였다<Table 1>.
「규합총서」는 1809년 빙허각(憑虛閣)이씨가 쓴 가정백 과와 같은 생활 지침서로,「GanbonGyuhapchongseo (간본 규합총서)」(Pingheogak Lee (憑虛閣 李氏) 1869)로 요약되 고, 다시「부인필지」로 필사되는 등(Lee et al. 2010) 1800 년대에 많이 활용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조리서이다.「시 의전서」는 저자미상의 1800년대 말의 책으로 상·하 2편 1책으로 엮어져, 총 422가지의 음식이 수록되어 있다. 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집필 된 것이고(Cha 2012), 광범위한 조리법을 비교적 잘 분류 정리한 책으로 조선조 후기의 전 통 한국음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Lee et al. 2014) 문헌이 다.「주식시의」는 1800년대 말에 저술된, 대전을 기반으로 한 은진 송씨 가문의 책으로 충정도 지역의 음식문화를 살 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Cha 2012).
「부인필지」는 1900년대 초의 저자미상의 조리서로 「규 합총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회변천에 따라 변화된 내용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Lee et al, 2010).「조선요리제법」은 1917년에 발간된 신식조리법도 함께 수록된 조리서로서 355 종의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서양요리, 일본요리, 중국요리도 기록되어 있어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현대조리법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다(Lee et al. 2014).
본고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식문화를 연구하는 지킴이 회원과 함께 원문을 읽고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III.결과 및 고찰
1.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의 해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음식명은 순 우리말로 또는 한글과 한자를 병행하여 기록되어 있었다. ‘외담난법’ 과 같이 순 한글로만 기록된 음식이 29종, ‘생치김치법 生雉 沈菜法’과 같이 한글로 쓰고 한자어 제목을 같이 기록한 음 식이 19종, ‘져육장, 肉장’과 같이 우리말과 한자어를 병 행 기록한 음식이 3종 기록되어 있다.「시의전서」에서도 한 글과 한문을 병행하여 음식명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규합 총서」,「주식시의」,「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에서는 순 한글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Table 1>과 같이 45종의 음 식 조리법과 술 빚는 법 6가지를 합해 총 51종의 음식의 조 리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기록된 음식을 분류별로 보면 주식 류로 죽 2종, 국수 2종, 만두 2종과 찬물류로 탕 8종, 찜 5 종, 산적, 즙, 볶음 각 1종, 정과, 숙회 각 2종, 김치류 3종, 떡 3종, 과정류 10종, 엿 1종, 장담그는 법 2종 등 총 45가 지의 음식조리법과 6종의 술 빚는 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술 은 단양주는 없었고 이양주 4종, 삼양주 2종으로 총 6종이 기록되어 있다. ‘저육탕’, ‘계탕’, ‘약과’, ‘증편’은 2번씩 중복 기록되어 있었다. 이중 ‘저육탕’은 한글 이름은 ‘간막이탕’이 라 하고 한문으로 ‘ 肉湯’으로 기록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저육탕( 肉湯)은 일명 ‘北京豕豕湯’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조리법도 완전히 다른 동명이종(同名異種)의 음식이었다. 반 면, ‘계탕’, ‘약과’, ‘증편’은 조리법은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음식이었다. 또한 ‘간막이탕’, ‘달기회’, ‘저육편’, ‘북경수면 탕’, ‘양만두’와 ‘양소편’ 등은「주식방문」에만 기록되어 있 는 음식이었다. ‘간막이탕’은 돼지 아기집과 닭을 함께 넣고 끓인 탕이었는데 ‘간막’은 위창자관을 배벽에 고정하는 두 겹 의 복막으로, 소의 머리, 꼬리, 가슴, 등, 볼기, 뼈, 족, 허파, 염통, 간, 처녑, 콩팥 따위를 조금씩 고루 다 넣고 끓인 국을 ‘간막국’이라 하며 ‘간막탕’은 간막국의 잘못이라고 되어 있 다(Standard Korean dictionary 2016). 따라서 간막탕은 쇠 고기나 돼지고기 살, 뼈, 내장 등을 큼직하게 썰어 종류대로 한 토막씩 넣어 푸짐하게 뼈가 붙은 채 뜯어 먹게 담아낸 조 리법을 지칭한 것 같다. ‘달기회’는 ‘鷄膾’라는 이름과는 달 리 전유어조리법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일반적인 회 (膾)조리 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또한 ‘달기’는 평남, 황해에서 사용하는 닭의 방언이고, ‘간막이탕’이 간막국의 잘못이라는 사실과 함께 살펴본다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저술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 또 한 ‘편’으로 기록된 ‘저육편’, ‘증편’, ‘양소편’의 3가지 음식 중에서 ‘저육편’과 ‘증편’의 한자어는 便으로 동일하였고 주 재료와 상관없이 찜 조리법을 이용하는 음식이었다. 반면 ‘양 소편’은 한글로만 기록되어 있었고, 조리법을 보면 고음과 같 이 푹 익혀 만드는 음식이었다. 물과 함께 푹 고아 만드는 조리법도 넓은 의미의 찜으로 볼 수 있으므로 ‘편’은 찜에 해당하는 음식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기록된 찬물류 20종 중 호박선에 해당하는 ‘문주’를 제외하 고는 모두가 동물성 식품이 주재료인 것이다.
2.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의 내용
1)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주식방문」에 기록된 주식류 (主食類)
주식류로는 죽 2종, 국수 2종, 만두 2종 등 총 6종이 기록 되어 있었다. 이를 「규합총서」의 밥 3종, 죽 8종, 의이 2종, 미음 1종, 국수 5종, 만두 3종,「시의전서」의 밥 2종, 죽 7 종, 미음 1종, 의이 1종, 원미 2종, 떡국 1종, 국수 11종, 만 두 4종,「부인필지」의 밥 2종, 죽 2종, 국수 2종,「조선요 리제법」의 밥 8종, 죽 11종, 미음 5종, 암죽 3종, 국수 5종, 떡국 1종, 만두 2종이 기록된 것과 비교해볼 때 밥, 의이, 미 음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차이점이었다. 「주식시의」 에도 밥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그 이유에 대해 Chung (2013)은 늘 먹는 것이라 굳이 조리법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 로 판단하고 있지만 연구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식시의」에는 죽(3종), 국수(3종), 만두(4종)만이 기록되 어 있어 가짓수의 차이는 있지만 「주식방문」에 기록된 주 식류의 종류와 동일하였다.
「주식방문」에 기록된 주식류의 조리법은 <Table 2>와 같다.
(1)죽
죽은 ‘잣죽’과 ‘대추죽’ 2종류가 기록되어 있었다. ‘잣죽’은 동량의 잣과 백미를 사용하는데, 쌀을 불린 후 잣과 함께 갈 아서 쑤는 무리 죽으로,「시의전서」,「주식시의」,「조선 요리제법」에도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보편적인 죽이었 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잣과 쌀의 사용 양은 문헌마다 달 라서「시의전서」에서는 잣이 쌀보다 적게,「주식시의」에 서는 잣이 쌀보다 많게,「조선요리제법」과「주식방문」에 서는 동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추죽’은 대추와 팥을 동량 으로 사용하여 함께 고은 후 새알심을 넣어 끓이는 것이었다. 사용하는 재료는「주식방문」과「부인필지」에서는 대추와 팥을,「조선요리제법」에서는 팥, 대추 외에 쌀을 더 사용하 고 있었다. 음식명은「부인필지」와「조선요리제법」에는 ‘대추죽’이 아니라 ‘팥죽’으로 기록하고 있었으며, 조리법을 살펴보면 대추를 많이 넣으면 좋다고 하여 대추가 주된 재료 가 아닐 뿐 아니라 음식명도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국수
국수로는 ‘비빔국수’와 ‘북경수면탕(北京水麵湯)’ 2종이 기 록되어 있었다. ‘비빔국수’는 모든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 이 시대 가장 보편적인 국수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조리법은 양념한 고기, 미나리 등 국수외의 재료를 미리 양념하여 넣 어 비비는 것으로 동일하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른 조리서 보다 적었다. 「부인필지」에 서는 ‘국슈비빔’으로, 「조선요리제법」에서는 ‘국수비빔별 법’으로 기록되어 있고, ‘국슈비빔’으로는 고명이 다른 조리 법을 제시하고 있어, 비빔국수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명으로 석이, 계란 부친 것, 표고를 이용하 고 있었는데「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에서는 그 고명 이 다양해지고 있었다.
‘북경수면탕’은 일명 ‘져육탕’으로, 장국을 끓인 후 국수(水 麵)를 말고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 동량을 섞어 먹는 고기 가 많이 들어간 일종의 국수이다. 다른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음식이었다.
(3)만두
만두는 ‘양만두’와 ‘편수법’ 2종류가 기록되어 있는데, ‘양 만두’는「주식방문」에서만 기록되어 있었다. ‘양만두’는 밀 가루 대신 동물성 재료를 껍질로 사용한 것으로, 소의 내장 인 양( )을 얇게 저며 껍질로 이용하여 고기와 두부를 소로 사용한 것이었다.「조선요리제법」에는 양 대신 어류 즉, 민 어나 도미를 얇게 저며서 껍질로 이용하는 ‘어만두’가 기록 되어 있었으며,「부인필지」에는 만두가 기록되지 않았다. ‘편수’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껍질로 이용한 것이며 소 는 만두소와 같이 한다고 하여 양 만두와 동일한 재료를 이 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편수’를 ‘수교의’라고 하여 동일한 음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보통 ‘편수’는 네 귀를 모두 잡아 소가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수교의’는 소를 넣은 후 주 름을 잡아주는 것이다. 1800년대 후반 조리서인「시의전서」 와「주식시의」에서는 ‘슈교의’로 기록되어 있었고, 1900년 대 초반 조리서인 「조선요리제법」에는 ‘수교의’와 유사한 조리법의 음식이 ‘만두’로 기록되어 있어 만두에 대한 이름 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시의전서」,「주식시의」,「규합총서」,「조선요리제법」, 「부인필지」에는 다양한 밥, 의이, 미음의 종류가 기록되어 있는 반면, ‘국립중앙도서관소장본’에는 밥, 의이, 미음 등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점이 다른 조리서와 구분되는 점이었다.
2)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찬물류(饌物類)
찬물류로는 탕, 장, 찜, 구이/적, 회, 볶음, 즙 등 총 20종 이 수록되어 있었다. 반면「규합총서」에 기록된 찬물류는 탕(6종), 찜(16종), 선(1종), 신선로(1종), 전유어(1종), 포(3종), 구이(6종), 나물(4종), 족편(2종), 회(5종), 적(9종), 마른 찬(5 종) 등 총 59종이 기록되어 있었고, 「시의전서」에는 탕/국 (16종), 조치(4종), 전골(3종), 찜(15종), 선(6종), 느르미(1종), 전유어(5종), 생채(5종), 숙채(19종), 쌈(4종), 조림(9종), 초(1 종), 볶음(4종), 포(7종), 구이(12종), 무침(1종), 순대(2종), 묵 (3종), 족편(2종), 편육(1종), 회(14종), 적(13종), 마른 찬(7종), 두부(1종), 계란요리(4종) 등 총 159종,「부인필지」에는 탕 (4종), 찜(3종), 선(1종), 신선로(1종), 전유어(2종), 포(3종), 구 이(2종), 나물(2종), 족편(2종), 회(1종), 마른 찬(4종) 등 총 25종,「주식시의」에는 탕(3종), 전골(1종), 찜(10종), 볶음(2 종), 초(2종), 전(2종), 느르미(1종), 적/구이(4종), 숙채(3종), 회(3종), 숙육(4종), 전약(1종), 마른찬(3종), 계란요리(2종) 등 41종,「조선요리제법」에는 탕/국(30종), 신선로(2종), 찌개 (9종), 조림/지짐이(7종), 나물(17종), 무침(4종), 포(8종), 전(5 종), 적(4종), 찜(5종), 회(6종), 볶음/초(4종), 묵(1종), 마른찬 (5종) 등 107종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가장 적 은 가짓수의 찬물류가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된 찬물류 중에서 탕이 8종으로 가장 많았고, 국은 없 었다. 다음으로 찜, 구이/적. 회, 볶음, 즙, 장의 순으로 많았 다. 주재료와 조리법을 살펴보면 동물성재료를 이용한 음식 이 많은 반면 식물성 재료를 이용한 것은 김치정도였으며, 나물, 생채, 쌈, 선, 조림 등 식물성을 주재료로 하는 조리법 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중 ‘저육장’, ‘저육편’, ‘양소편’ 은「주식방문」에만 기록되어 있었다. ‘저육장’은 날고기를 먼저 기름에 볶다가 젓국에 끓여 먹는 일종의 탕이었고, ‘저 육편’, ‘양소편’은 찜에 해당하는 음식이었다. 또한 ‘양즙’은 육류를 중탕으로 푹 고아 만든 고음탕으로 무르게 푹 고아 서 만드는 음식의 이름을 각기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였다. 반면 ‘붕어찜’과 ‘떡볶기’는 다른 문헌에도 모두 기록되어 있어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음식임을 알 수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찬물류의 조리법은 <Table 3>과 같다.
(1)탕/장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탕과 장이 기록되어 있었다. 탕은 8 종류로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었고, 장은 ‘저육장’ 1종류가 기록되어 있었다.
「부인필지」나 「조선요리제법」에는 탕, 국, 찌개 등 국 물요리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 ‘국립중앙도서관 소 장본’에서는 탕 외에 국, 찌개는 없는 점이 특이하였다. 장은 ‘저육장’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리법을 보면 날고기를 기름에 볶다가 젓국에 끓여먹는 국물요리이다. 탕의 주재료는 모두 동물성으로 닭고기를 가장 많이 이용하였고 다음으로 돼지 고기, 게, 청어의 순이었다. 탕 조리법은 크게 2가지로 구분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주재료를 계란을 씌워 전유어처럼 지 진 후 장국에 끓이는 조리법으로 ‘게탕’, ‘굴탕’, ‘청어소탕’, ‘진주탕’이 이에 해당하였으며, 이중 ‘청어소탕’은 내장을 제 거한 후, 속을 채운 순대처럼 만든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주 재료를 푹 끓인 후 다른 재료를 넣고 끓이는 조리법으로 ‘간 막이탕’, ‘게탕’, ‘저육탕’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또한 장 국의 종류도 맹물(‘게탕’, ‘굴탕’, ‘간막이탕’), 간장국(‘진주 탕’, ‘계탕2’)에 끓이는 것과 장국에 계란(‘계탕1’, ‘진주탕’, ‘저육탕’)이나 가루즙(‘청어소탕’)을 타는 것 등 다양한 육수 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게탕’, ‘굴탕’, ‘청어소탕’과 ‘진주탕’은 재료를 계란을 씌 워 전유어로 지진 후 장국에 끓이는 조리법으로 다른 문헌 에서는 보이지 않는 조리법이었다. 「시의전서」의 ‘게탕’은 게의 누른 장과 검은 장을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였으나, 양 념하여 장국을 끓이는 것으로, 전유어를 부친 후 장국을 끓 이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는 다른 조리법이었다.
‘저육탕( 肉湯)’은 일명 ‘北京豕豕湯’ 으로 돼지고기를 찬 물에 삶은 후 건져내어 양념하고, 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거나 밥을 말아 먹는 것이고, ‘간막이탕’은 닭으로 기 본 국물을 낸 후 돼지 아기집, 석이,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 는 것이다. ‘계탕’은 2종류가 기록되어 있었으며 기본 조리 법은 유사하지만 사용하는 재료에서 차이가 있었다. 즉, 닭 을 기본 국물로 하는 것은 같으나 ‘계탕1’은 닭을 반으로 졸 인 후 계란, 파, 간장, 기름으로 양념한 후 한 소끔 끓이는 것이고, ‘계탕2’는 전복, 해삼과 배추줄기, 토란 등 다양한 재 료를 넣어 만든 것이었다.
이렇듯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찬물류 중 제일 많은 종류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탕일 뿐 아니라 조리법도 다양하였다. 또한 ‘간막이탕’, ‘굴탕’, ‘청어소탕’, ‘진주탕’, ‘저 육탕’은 다른 문헌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 음식이었다.
(2)편/찜
편은 ‘양소편’과 ‘저육편’이 기록되어 있는데 ‘양소편’은 고 음과 찜이 혼용된 음식이었고, ‘저육편’은 찜 조리법을 적용 한 음식이었다. 이들 음식은「부인필지」와「조선요리제법」 에 기록된 ‘편’에 속하는 ‘족편’, ‘제피수정’ 등의 음식이 고 기를 오래 고운 후 우러난 콜라겐을 이용한 묵과 같은 음식 과는 달리 육류를 푹 익혀 건져 먹는 오늘날의 편육과 유사 한 찜 그자체로 또는 고운 국물과 함께 먹는 음식인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는 ‘저육편’의 한자가 片이 아니라 便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찜도 주재료가 붕어, 전복, 가오리, 오골계 등 모두 동물성 이었으며, 찌기 전에 재료의 배를 가르거나 구멍을 내어 만 두소처럼 속을 넣어 만드는 것이 공통적인 전처리법이었다. 전처리 후 물을 자작하게 붓고 졸이듯 찌는 조리법과 수증 기로 찌는 조리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붕어찜’은 붕어의 속을 어만두처럼 채운 후 소량의 물로 자작하게 끓여 마지 막에 밀가루 즙과 계란을 풀어먹는 음식으로 「규합총서」, 「시의전서」,「주식시의」등의 1800년대 후반 조리서와「조 선요리제법」,「부인필지」등의 1900년대 초반의 문헌에 같 은 조리법으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의 보편적인 찜임을 알 수 있었다.
‘오계찜’은 물을 넣고 조리듯 찌는 법인데, 시루에 증기로 쪄도 좋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시대의 찜 조리법이 물과 함 께 푹 고아 만드는 조리법과 수증기를 이용하여 찌는 조리 법을 모두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구이/적
구이, 산적에 해당하는 음식으로 ‘잡산적’과 ‘문주법’이 기 록되어 있었다. ‘잡산적’은 쇠머리 골, 집신굴 같은 동물성 재료를 물에 데치고, 그대로 또는 양념을 한 후 꼬치에 꿰어 밀가루 묻히고 굽는 음식으로, 물에 데치는 전처리를 하는 것이, 날 재료를 양념하여 직화로 굽는「부인필지」,「조선 요리제법」의 구이 조리법과 다른 점이었다. 이러한 조리법 은 「주식시의」의 집노리미법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고기 외에 채소를 사용한 것이다. ‘집노리미’는「Yi’s Eumsikbeop (이씨음식법)」(Anonymous, the late 1800s)에 ‘즙느리미’로 기록되어 있고 채소의 종류가 더 많았으며 즙을 쓰지 않고 고명만을 얹는 음식이었다.「Eumsikbangmun (음식방문)」 (Anonymous, the late 1800s)의 ‘제육느르미’는 돼지고기를 저민 후 소를 넣어 말아서 지진 후, 느르미 즙을 얹은 음식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차 등(Cha & Yu. 2014)은 이러한 느르미 조리법이 18세기 이후에는 누름적의 형태로 바뀌어 졌다고 하였는데 비슷한 조리법의 음식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잡산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느르미 음식명과 조리법의 변화양상을 알 수 있었다.
‘문주법’은 호박을 손질한 후 껍질 부분을 칼로 베어 고기 로 소를 넣고 기름, 간장, 고추장을 바른 후 숯불에 굽는 것 이다.「시의전서」의 호박문주가 통 호박을 속을 긁어낸 후 소를 넣어 쪄 낸 찜 형태의 채소선인 것과 비교하면 껍질에 칼집을 내어 소를 넣는 것은 같으나 찌지 않고 굽는 것이 다 른 점이었다.
(4)회
회는 2종류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조리법이 서로 다른 음 식이었다. ‘낙지회’는 물에 데쳐 내는 숙회이고, ‘달기회’는 ‘鷄膾’라는 이름과는 달리 전유어와 같은 조리법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일반적인 회(膾)조리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초간장과 함께 먹는다. 반면「부인필지」,「조 선요리제법」에는 숙회와 채소를 함께 먹는 어채(화채)가 기 록되어 있었다.
(5)볶음
볶음은 ‘떡볶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떡을 도톰하고 짤막 하게 썰어 이용하고, 고기와 채소(미나리, 숙주)를 각각 양념 하여 따로 볶았다가 떡과 장국을 넣어 함께 볶는 것이다. 장 국을 따로 준비하였다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국물의 양이 요즘의 ‘떡볶기’보다는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석이, 박우거 지, 호박고지 등의 채소를 함께 이용하고 있어 떡 위주의 ‘떡 볶기’보다 영양상의 균형이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떡 볶기’도 ‘붕어찜’과 같이「시의전서」,「부인필지」,「주식 시의」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에 흔하게 이용 하였던 음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6)즙
‘양즙법’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 「시의전서」에만 기록되어 있었다. ‘즙(汁)’은 고기, 채소 등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물체에서 짜낸 액체나 농축액을 이르는 말로 예로부터 몸보신을 위해 먹어온 보양식이다. 현재의 ‘양즙’은 소의 양 ( )을 잘게 썰어 끓이거나 볶은 후 중탕하여 짜낸 액체 음 식이다. 「시의전서」의 양즙 내는 법도 양을 손질한 후 잘 게 썰어 볶는 조리법인데 비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양즙은 닭을 함께 사용하며, 닭 속에 미리 양념을 한 후, 양 으로 감싸서 항아리에 밀봉하여 중탕으로 무르게 조리하는 것으로 기존의 ‘양즙’ 조리법보다는 17세기 문헌인「음식디 미방」,「최씨 음식법」(Park & Lee 2015)의 양찜 조리법 과 같이, 양을 최대한 무르게 삶기 위해 항아리안의 틈을 빈 틈없이 메우고, 그 위를 헝겊으로 싸고, 넓은 그릇으로 덮은 후 진흙을 이겨 빈틈없이 바르는 방법을 활용하여 뭉근한 불 로 조리하는 음식이었다. 즉, ‘양찜’에서 ‘양즙’의 형태로 이 름이 변하는 ‘찜’과 ‘즙’의 중간형태의 음식임을 알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문헌에서와는 달리 배추, 무 등의 식물성 재료를 함께 활용하는 것도 다른 점이었다.
3)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염장식품 과 양념류
염장식품과 양념류로는 김치류 3종, 장류 2종, 엿 1종 등 총 6종이 기록되어 있었다. 반면「규합총서」에는 김치류(11 종), 젓갈(5종), 장류(10종), 초(1종), 기름(9종)등 총 36종, 「시의전서」에는 김치류(31종), 젓갈(3종), 장류(8종), 초(1 종), 기타(2종)등 총 45종,「부인필지」에는 김치류(7종), 젓 갈(3종), 장류(7종), 초(1종), 기름(6종)등 총 24종, 「주식시 의」에는 김치류(7종), 젓갈(1종), 장류(3종)등 총 11종,「조 선요리제법」에는 김치류(21종), 젓갈(4종), 장류(8종), 초(1 종)등 총 34종의 염장식품과 양념류 가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가장 적은 가짓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염장식품과 양념류 조 리법은 <Table 4>와 같다.
(1)김치류
‘국립중앙도관 소장본’의 김치류는 ‘생치침채’와 ‘외김치 속히 먹는 법’과 ‘외담는법’의 3종 이었다. 염장 발효식품의 재료로 주로 외를 이용하고 있었다.
‘생치김치’는 꿩고기와 외를 썰어서 기름으로 볶은 후 속 뜨물과 함께 한 소끔 끓인 후 파의 흰 부분을 양념하여 데친 후 썰어서 양념하여 먹는 것으로 ‘동치미국도 부어 먹으면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국물 없이 먹는 것인지, 끓여낸 속뜨물을 기본으로 넣고 동침이국도 부어 먹으면 좋 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규합총서」,「주식시의」 에는 꿩고기로 육수를 낸 동침이가 생치김치로 기록되어 있 음과 비교해볼 때, 동치미형태의 김치로 보이기도 한다. 다 만 꿩고기 육수를 낼 때 통째로가 아니라 썰어서 기름으로 볶은 후 속뜨물에 끓이는 것과 파를 양념하여 데쳐서 사용 하는 것이 다른 문헌과의 차이점 이었다.「규합총서」에는 생치채로,「부인필지」에는 ‘명월생치채’로,「조선요리제 법」에는 닭김치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후반의 보편적인 김치임을 알 수 있으며, 점차 꿩 대신 닭을 활용하여 만들게 됨도 짐작할 수 있다.
‘외김치 속히 먹는 법’은 어린 외를 잠깐 데친 후 찬물에 씻어 식힌 후 조기, 석이, 생강, 마늘 등 갖은 양념하여 외속 에 넣고 소금물 삼삼하게 풀어 끓인 후 식혀 부어 만드는 김 치이다. 오이소박이처럼 소를 넣어 오이지처럼 소금물을 끓 여 식혀서 부어 만든 것으로 김치와 장아찌의 중간 형태의 김치로 보인다.「규합총서」,「시의전서」의 장짠지와「주 식시의」의 장김치와 조리법이 비슷하다. 장짠지나 장김치는 어린오이 외에 무, 배추를 슬쩍 삶아 청장에 절이고, 파, 생 강, 송이저민 것, 전복, 청각, 고추붙이를 켜켜로 넣고 꾸미 많이 넣은 장을 달여 간 맞추어 타 부어 익히는 것으로 장이 아니고 소금을 사용한 것이 달랐다. 이름도 짠지와 김치의 두 가지가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었다.
‘외담는법’은 소금물을 끓여 식혀서 부어서 만드는 것으로 오늘날의 오이지 담그는 방법과 동일하여 김치보다는 장아 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1400년대의「산가요록」 의 ‘과저(瓜菹)’, 1500년대의 「수운잡방」의 ‘수과저(水瓜 菹)’, 1800년대의 「규합총서」의 ‘용인과지법(龍仁黃瓜沈菹 法)’,「주식시의」의 ‘용인과지’, 1900년대의 「부인필지」 의 ‘용인외지법’,「조선요리제법」의 ‘외지’와 동일하여, 1400 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장아찌임을 알 수 있다.
(2)양념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양념류는 장류 2종과 엿 1종이 기록되어 있었다.
‘청장’은 간장 담는 법과 같았다. 사용되는 재료는 메주, 물, 소금으로「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의 장 담는 법과 동 일하여 ‘청장’이 곧 간장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용되는 양을 살펴보면 메주1말에 물1동이는 같지만 소금 양이「시 의전서」의 7되보다 적은 5되를 사용하고 있었다. 소금 양이 적으면 필히 추운 겨울에 담아야 할 것으로 동짓달 초승에 담으라고 되어 있었다. 또한 메주를 빚는 시기, 장 담는 시 기와 떠서 달이는 시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체에 밭친 후 오 래 달이면 빛과 맛이 좋다고 하였다.
‘집장’은「주식시의」에서는 ‘집장’으로,「시의전서」,「부 인필지」,「규합총서」,「조선요리제법」에서는 즙장(汁醬) 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즙장용 메주는 청장용 메주와 달리 콩과 밀기울을 섞어 만들고 있다. 이는「시의전서」,「부인 필지」,「규합총서」,「조선요리제법」에서와 동일하다. 다 만 메주를 쑤는 시기는「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에서 는 가을,「시의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7월 이 좋다고 하였고, 띄울 때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는 북나무 잎,「시의전서」,「부인필지」와「조선요리제법」 에서는 콩잎을 사용하였다. 메주의 모양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주먹크기로,「부인필지」와「조선요리제법」 에서는 호두크기로 빚는다고 하였다. 메주를 띄워 가루로 만 들어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였지만, 메주가루를「주식방문」 에서는 가루와 소금만으로 반죽하는 반면,「시의전서」에서 는 찰밥과 간장을,「부인필지」에서는 좋은 간장을 넣고 반 죽하는 것이 달랐다. 또한 집장에 묻는 채소도「시의전서」 에서는 고추를 기름에 볶은 후 사용하고,「부인필지」,「조 선요리제법」에서는 외와 가지를 사용하는 반면 ‘국립중앙도 서관 소장본’에서는 가지, 외, 고추, 동아, 박 등 사용하는 재 료가 더욱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항아리를 밀봉하는 방법 은「부인필지」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자세하게 기 록되어 있었고, 온도를 관리하는 방법은 ‘국립중앙도서관 소 장본’에서만 언급되어 있어 다른 문헌에서보다 세세하게 조 리법을 전하고 있었다.
‘엿 고는 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고, 엿 2말에 엿기름의 양 이 8되면 넉넉하다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사용하는 엿기름의 양은 1말에 4되로,「규합총 서」의 1말 반에 비해서는 적은 양이었고,「시의전서」의 1 찻 되「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의 1되 반 보다 사용량 이 많은 점이 달랐다. 음식명은「시의전서」에는 엿 고는 법 으로,「주식방문」과 같았고,「규합총서」,「부인필지」,「조 선요리제법」에서는 광주 백당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문 헌에 기록된 엿 만드는 방법은 밥에 엿기름가루를 넣어 삭 혀서 자루에 짠 후 뭉근한 불로 오래 끓여 조청을 거쳐 엿으 로 만드는 것이었다.
4)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떡 및 과정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떡류 3종, 과정류 8종 등 총 11종이 기록되어 있었다. 반면「규합총서」에는 떡류(33종), 과정류(37종)등 총 70종,「시의전서」에는 떡류(53종), 과정 류(46종)등 총 99종,「부인필지」에는 떡류(18종), 과정류(13 종)등 총 31종, 「주식시의」에는 떡류(14종), 과정류(2종)등 총 16종,「조선요리제법」에는 떡류(44종), 과정류(15종) 총 59종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가장 적은 가짓수 가 기록되어 있었지만 「주식시의」와는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떡과 과정류의 조리법 은 <Table 5>와 같다.
(1)떡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증편’ 2종과 ‘대추단자’ 1 종의 총 3종류의 찌는 떡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치는 떡, 지 지는 떡과 삶는 떡은 없었다.
‘증편’은 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술을 넣고 따뜻한 곳에 서 발효 시킨 후 찌는 떡으로 비교하는 모든 문헌에 다 수록 되어 있어 이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떡임을 알 수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2종류의 증편이 기록되어 있는 데, 하나는 누룩을 넣고 하루 전에 미리 술을 만들어 익반죽 한 쌀가루에 첨가하여 발효하여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술이나 소주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었다.
「규합총서」와「주식시의」의 증편은 안에 소를 넣어 만 드는 반면, 「주식방문」의 증편은 소를 넣지 않고 위에 고 명만 얹어 찌는 것으로「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의 방 법과 유사함을 볼 때 증편 조리법의 변화가 보인다.
떡의 고명으로 대추, 석이, 잣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 식시의」와 동일하며,「규합총서」에서는 대추, 곶감, 잣을 사용하였다. 또한 증편의 한자어는 餠이 아니라 便으로 기록 되어 있는 것과 잘 부풀리게 하기 위해 불을 급히 때어야 한 다고 불의 세기에 대하여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다른 문헌 과 차별되는 점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대추단자’는 대추와 밤 을 잘게 썰어 다지고, 찹쌀가루와 섞어 반죽하여 찐 후 고물 을 묻혀 쓰는 떡으로 찐 떡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보통 ‘단 자’는 찐 떡을 다시 찧어 친 후 동그랗게 모양을 만드는 친 떡이다.「규합총서」,「시의전서」,「부인필지」와「조선 요리제법」에서의 단자의 조리법을 살펴보면 두 종류로 구분 할 수 있다. 하나는 재료를 쪄낸 후 절구에 찧어 모양을 만 드는 요즘의 단자와 같은 것으로 신검초단자, 밤단자는 등이 이에 해당하며, 재료를 달게 만들어 소를 넣어 쪄낸 후 고물 을 묻히는 방법으로「규합총서」,「부인필지」의 유자단자 와「시의전서」,「조선요리제법」의 석이단자가 이에 해당 한다.「주식방문」의 대추단자는 찐 다음 치는 과정이 보이 지 않고 그저 가루를 묻히는 단자로 후자의 방법에 해당한다.
(2)과정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과정류는 ‘유과류’, ‘유 밀과류’, ‘정과류’가 있었으며, 이중 ‘빙사과’, ‘강정’, ‘타래과’ 는 자세한 조리법 없이 반죽의 정도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 었고, ‘숙실과류’, ‘과편류’, ‘전약’, ‘다식류’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유과류’로 ‘감사과(甘砂果)’, ‘요화대’, ‘빙사과’, ‘강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감사과’는 쌀을 옥같이 하얗게 도정한 후 물에 침지한 후 가루 내어 설기처럼 반죽하여 찐 다음 낱낱이 개어 자주 뒤 집어 가면서 속이 조금 촉촉한 기운이 있도록 말린 후에 술 에 잠깐 적셨다가 지지는 것으로 ‘강정바탕’ 만드는 방법과 거의 같다. 다만 ‘강정바탕’을 만들 때에는 꽈리가 일 정도 로 찧는 공정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낱낱이 갠 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감사과’는 ‘甘’이 의미하듯 반죽 에 꿀물을 타서 달게 만든 유과였다.「규합총서」의 감사과 만드는 법에 강정과 같은 반죽을 사용한다고 하고, 강정 반 죽을 만들 때 꿀물을 첨가하도록 되어 있는 것과 동일하였 다. 또한 ‘감사과’에서 반죽 만드는 법을 제시하고, ‘빙사과’ 는 반죽을 되게, ‘강정’은 눅게 하여 만드는 것으로 기록하 고 있어, 세 가지 유과의 반죽하는 법은 동일한데 종류에 따 라 반죽의 되기를 달리하여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설명은 1800년대 조리서인「규합총서」,「시의전서」에 도 감사과 반죽은 강정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다.
‘요화대’는 반죽을 날물로 하고 반죽의 정도는 수제비반죽 같이 하는 것으로 다른 유과류의 반죽이 익반죽하여 백설기 처럼 쪄내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또한 방망이로 밀어 모 양을 만든 후 마를 만하면 기름에 스쳐 행주로 덮어 두어 실 이 늘어나면 제 몸에 감아 만드는 것인데 비슷한 이름인 ‘요 화삭’과는 조리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조선요리제법」의 ‘요화대’는 반죽에 설탕을 섞어 끓는 물에 반죽하여 강정처 럼 지져낸 후 고물을 묻힌 유과이다.
‘빙사과’는 조리법 없이 반죽의 정도만 기록하고 있었다. 「시의전서」에서는 ‘빈사과’라 하여 강정반죽을 팥알만큼 썰 어 기름에 튀겨낸 것을 버무려 목판에 고르게 펴놓았다가 굳 으면 썰어 쓰는 과정류로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 이와 비슷 한 것으로 보인다.
‘강정’도 조리법 없이 반죽을 눅게 하라고만 기록되어 있 었다. ‘감사과’와 ‘요화대’도 말릴 때 너무 마르지도 축축하 게도 하지 말라는 설명이 있는 것을 볼 때 유과를 만들 때 반죽의 정도가 매우 중요함을 짐작할 수 있다.
‘유밀과’로는 ‘약과법’, ‘연약과법’, ‘타래과’가 기록되어 있 었다. ‘약과법’에는 재료의 종류와 분량, 즙청하는 법만이 기 록되어 있었고, ‘연약과법’에는 재료의 종류와 양외에 만드 는 법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다.
‘약과’를 만드는 법은 재료를 반죽하여 밀대로 민 후 기름 에 지지고 식은 후 집청을 하고 잣가루 등을 뿌리는 것으로 다른 조리서의 방법과 동일하였다. 다만 사용되는 재료양은 각각 달라서 밀가루 1말에 ‘약과’는 꿀 2되, 흑당 1되, 기름 2되 5홉, ‘연약과’는 꿀 1되, 참기름 8홉, 흑당 5홉으로 차이 가 있었으며, 「시의전서」에서는 꿀 1보아, 기름 1보아, 술 (양주나 소주) 1보아, 펄펄 끓는 물 1보아를,「규합총서」와 「주식시의」에서는 참기름과 꿀이 각 3되씩을,「 부인필지」 에서는 꿀과 기름 1말과 소주,「조선요리제법」에서는 기름 과 꿀 각 1말씩이 사용되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소 주대신 흑당을 사용하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또한 ‘약과’의 성공여부는 반죽과 지지는 것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반 죽의 정도는 겨우 아우러질 정도만 뭉쳐 단단하지 않게 서 벅서벅하게 하라고 하고 있으며,「시의전서」에서도 너무 질 면 못쓰니 빠득빠득해서 뭉치기 어려운 정도로 반죽하라고 하고 있으며,「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에서는 급히 반 죽하라고 되어 있었다. 또한 지지는 불의 세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강하게도 약 하게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반면「시의전서」에서는 불 을 세게 하라고 되어 있었으며, 다른 문헌에서는 불의 세기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즙청할 때는 식은 후 물을 조 금 타서 적시거나(약과법), 반은 손에 묻히고 반은 그릇에 부 어 놓고 하는 것(연약과)이 특이하였다. 고명으로 계피가루 와 잣가루 외에도 후춧가루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조선 요리제법」에서 약과를 ‘과쥴’로 기록하고 있어 유과인 ‘강정’ 과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타래과’에 대해서는 꿀물에 반죽하여야 좋다고만 기록되 어 있었으며 구체적인 조리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정과’는 ‘동아정과’만 기록되어 있었는데,「규합총서」에 도 기록되어 있었다. 반면「시의전서」,「부인필지」와「조 선요리제법」에는 동아정과는 없고 대신 쪽, 생강, 연근, 귤, 인삼, 들쭉, 모과, 맥문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 동아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아정과’는 동아를 석회처리를 한 후 꿀에 졸여내는 음 식으로, ‘동아정과’는 늙은 동아를, ‘연동아정과’는 너무 어 리지도 세지도 않은 연한 것을 이용하여 만든다. 보통 동아 의 섬유질을 연화시키기 위해 석회를 이용하는데 여기서도 석회 물에 동아를 넣었다가 무르게 한 후 헹구어 조리에 이 용하고 있었다. 특히 ‘연동아정과’를 할 때 석회 물에 3일정 도 담군 후 조리하는 것으로 보아 ‘연동아정과’는 쇠지 않은 동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석회 물에 오래 담가두어 연화시 키는 조리법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정과의 색을 좋게 하려고 꿀물을 조절하여 활용하고 있었다. 즉, 빛 을 붉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졸임에 사용했던 꿀은 버리고 새로 꿀을 부어 졸인다거나 꿀물을 처음부터 넉넉히 넣고 나 중까지 조려야 빛이 좋다고 하였다. 이때 불의 세기는 너무 급하게 하지 않는다.
5)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주류(酒類)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6종의 주류가 기록되어 있는 데, 「주식시의」에도 가짓수는 6종으로 동일하였지만 기록 된 술의 종류는 송순주 외에는 다른 것 이었다. 반면「규합 총서」에는 57종,「부인필지」에는 19종의 주류가 기록되어 있었고,「조선요리제법」에는 주류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주류의 조리법은 <Table 6>과 같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되어 있는 술은 모두 양조 주였고 증류주는 없었다. ‘청명주’, ‘삼해주’, ‘백화춘’, ‘칠일 주’, ‘연일주’는 곡류와 누룩만을 사용한 순 곡주이고, ‘송순 주’는 약재인 송순을 사용한 약용주였다. 또한 양조주는 빚 는 법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주식방문」의 ‘청명주’, ‘백화춘’, ‘7일주’, ‘연일주’는 이양 주이고, ‘삼해주’와 ‘송순주’는 삼양주이고 단양주는 없었다.
빚을 때 사용하는 곡물의 형태는 ‘청명주’는 밑술과 덧술 모두 쌀을 그대로 쪄서 이용하는 반면 ‘백화춘’, ‘칠일주’, ‘연 일주’는 밑술은 가루로 하여 풀떼로 쑤고, 덧술용 쌀은 쪄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용하는 곡물의 종류를 살펴보면 ‘청명 주’, ‘백화춘’, ‘칠일주’는 밑술은 멥쌀, 덧술은 찹쌀을 사용 하였고, ‘연일주’는 밑술과 덧술 모두 멥쌀을 사용하고 있었 다. 또한 밑술을 빚을 때 누룩 외에 밀가루를 함께 넣고 있 었다. 10일 이내 익는 술을 급시주(急詩酒) 또는 순내양(旬內 釀)이라 하는데(Lee et al. 2007) ‘백화춘’과 ‘칠일주’가 이에 해당하는 술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되어 있는 술은 「임원십 육지」에도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송순주’는「규합총서」, 「시의전서」, 「주식시의」에, ‘삼해주’는 「시의전서」에도 기록되어 있었지만 ‘청명주’, ‘백화춘’, ‘칠일주’와 ‘연일주’는 본고에서 비교하는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이전 연 대에 저술된 다른 문헌에는 기록 되어 있어 해당 문헌과 비 교하여 고찰하였다.
(1)이양주
‘청명주’는 백미를 찐 후 누룩과 밀가루를 섞어 7일간 두 었다가(밑술) 찹쌀을 쪄서 누룩과 밀가루를 섞어(덧술) 21일 후 먹게 되는 이양주이다. 1600년대 말엽의「주방문」(Lee et al. 2013), 1700년대 후반의「임원십육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청명주는 찹쌀로 빚은 이양주로 알려져 있는데(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2016) 술 빚는 법의 차이 점을 살펴보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청명주’는 밑술 은 백미로, 덧 술은 찹쌀로 빚는 것이었으며, 「주방문」과 「임원십육지」에서는 밑술 곡물의 형태가 죽인데 비해 ‘국 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고두밥이었고, 혼합하는 재료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주방문」에서는 누룩과 밀가루 를 함께 섞어 빚는 방법이었고「임원십육지」에서는 누룩과 보리누룩을 넣어 빚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전체적으로 ‘국립 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청명주’ 빚는 방법은「주방문」과 동 일하나 사용하는 재료에 있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누룩과 밀가루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백화춘’은 백미를 가루 내어 죽으로 쑤고, 누룩, 밀가루, 좋은 술을 넣어 밑술을 빚은 후 3일 만에 고두밥, 누룩, 물 을 첨가하여 빚는 술로 밑술과 덧술 모두 멥쌀을 사용하였 다. 이는 「Juchan (주찬)」(Anonymous, Previous 1855)에 기록된 것과 빚는 방법이 동일하였으나 쌀: 밀가루: 누룩: 물 재료의 비율이 1말: 1되: 1되: 3병과 3되: 5홉: 5홉: 1병2되 로 차이가 있었다.「임원십육지」에서는 찹쌀로 고두밥을 쪄 서 누룩을 넣어 3일 만에 단양주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의 백화춘과는 이름만 동일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술 익는 기간이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주찬」에서는 합해서 10일 후에 먹는 것이라 하였고,「임원십육지」에서도 3일 만에 먹는 술이라고 기록 하고 있음을 볼 때 ‘백화춘’은 급시주(急詩酒)에 해당하는 것 으로 보인다.
‘7일주’는 이양주중 발효기간이 매우 빠른 술로 빚은 지 7 일 만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급시주에 해당한다. 7일주는 「산가요록」,「요록」,「음식디미방」,「임원십육지」,「조 선무쌍신식요리제법」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제조법이 각기 다르다.「주식방문」의 7일주는 백미를 가루 내어 죽으로 만 든 후 누룩 섞어 밑술을 빚은 후 3일째 찹쌀로 밥을 지어 첨가하는 이양주로서 재료의 양은 다르지만「요록」,「음 식디미방」의 방법과 동일하였다.
‘연일주’는 백미를 가루 내어 죽을 쑤어 누룩, 밀가루를 넣 고 버무려 삭힌 후 고두밥을 섞은 후 밑술과 치대어 빚어 2~3주후에 먹는 술이다.「주찬」의 ‘연일주’와 방법이 동일 하였지만 사용하는 재료의 양이 달랐다. 즉 백미: 밀가루: 누 룩: 물의 양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1말: 1되: 1되: 1 말인 반면「주찬」은 3되: 2되: 7홉: 5병으로 차이가 있었다.
(2)삼해주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에 시작하여 2월, 3월의 각 해일에 덧 담금을 하는 삼양주로서 조선시대 초기부터 기록 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춘주(春酒)이다(Lee SW, Bae SM 1991). 삼해주를 만드는 데는 많은 양의 곡식과 발효에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평민보다는 사대부이상의 가 문에서 즐겼을 것으로 예상되는 술이다(Park et al, 2011). 삼해주는 1500년대의 「수운잡방」을 비롯하여 1600년대의 「음식디미방」,「주방문」,「요록」, 1700년대의「산림경 제」,「Eumsikbo (음식보)」(The Women of Jinju Chung’s (숙부인 전주 정씨)1700s),「증보산림경제」, 1800년대의「시 의전서」,「주찬」,「규합총서」,「임원십육지」, 1900년대 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등 전 시대에 걸쳐 26종의 서 적에 37종류가 기록되어 있다(Lee & Bae 1991). 기록된 삼 해주의 숙성 시간, 사용하는 곡류, 곡물 처리형태, 빚는 법 등이 다양하다. 즉, 숙성시간이 1개월, 100일, 그 이상 등 다 양하며, 백미와 찹쌀, 죽, 밥, 떡의 형태 등 다양할뿐더러 빚 는 방법에 따른 이양주, 삼양주도 있고, 소주로 증류하여 만 들기도 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삼해주는 밑술과 덧술에 백미 (멥쌀)를 풀떼로 첨가하고, 삼양(三讓)을 할 때, 백미를 쪄서 첨가하는 것이다. 매번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함께 넣어 빚는 다. 「주식방문」에서는 모두 멥쌀을 사용하였으나,「임원 십육지」와 「시의전서」에서는 밑술은 찹쌀을 사용하였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1,2讓에는 백미를 3讓시에는 찹쌀을 사용하는 것이 달랐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본’과「수운잡방」,「음식디미방」, 「주방문」에서는 밑술, 덧술 모두 풀떼를 쑤어서 사용하는 반면「시의전서」에서는 밑술에서는 쌀을 가루 내어 의이로, 덧술 에서는 범벅으로 하여 사용한 점이 달랐다. 3번째 덧술 에서는 두 조리서 모 두 쌀을 그대로 쪄서 사용하였다. 또, 쌀의 양에 비해 누룩 과 밀가루의 양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방법이 더 적 은 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송순주’는 백미로 만든 풀떼와 섬누룩을 넣고 밑술을 빚 고, 이에 덧술로 찹쌀밥과 누룩을 버무린 것을 송순과 켜켜 로 항아리에 넣은 후 21일 만에 소주를 채워 14일 후 먹는 것으로 삼양 약용주에 해당한다. ‘송순주’는「규합총서」, 「주식시의」,「부인필지」에도 기록되어 있었으며, 빚는 법 은 대부분 삼양주이지만「주식시의」에서는 이양주였다. 빚 는 방법은 문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즉, 밑술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규합총서」,「시의전서」에서는 백미로 죽(풀떼, 이의)을 쑤지만 「주식시의」에서는 찹쌀로 밥을 지어 빚고 있었다. 덧술 할 때는「시의전서」에서는 범 벅으로, 다른 문헌에서는 밥을 지어서 하였다. 3번째 덧술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규합총서」에서는 소주를 첨가하 는 것이었고 「시의전서」에서는 쌀을 쪄서 첨가하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과「규합총서」 에서는 밑술은 멥쌀, 덧술은 찹쌀을, 「시의전서」에서는 모 두 찹쌀을 사용하는 것과 누룩의 사용량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훨씬 많은 양을 사용하였다.
송순의 처리방법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는 깨끗이 가려 사용하는데 비해「시의전서」,「규합총서」와「주식 시의」에서는 숨이 죽을 정도로 살짝 삶아 사용하고 있었다. 3번째 덧술은 모든 문헌에서 소주를 첨가하는 방법을 사용 하고 있었다.
6)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식품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식품은 쇠고기, 돼지고 기, 닭고기, 전복, 해삼 등 동물성 식품을 많이 이용하고 있 으며, 반면 두류, 과일류는 적게 이용하고 있었으며, 서류와 해조류는 이용하지 않고 있어 식물성 식품의 사용이 적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곡류로는 멥쌀과 찹쌀이 있었고, 가공품에 밀가루, 밀기울, 엿기름가루, 국수(수면), 누룩 등이 있었다. 채소류로는 외와 동아를 주재료로 이용하였으며 배추, 호박, 미나리 등 부재 료로 조금씩 이용하고 있을 뿐 자주 이용하는 재료는 아니 었다.
버섯류도 석이와 표고가 주된 사용재료였고, 그 외에는 송 이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과일류로도 대추와 밤만을 이용하 고 있어 전반적으로 식물성 재료를 적게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물성 재료로는 육류, 조류, 어패류, 알류 등의 이용이 많 았다. 육류로는 돼지고기, 소고기를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쇠머리 골, 돼지아기집 등 내장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특 히 양의 이용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고기라 하여 소인지 돼 지인지를 구분 않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조류에서는 닭을 가 장 많이 이용하였고, 살 뿐만 아니라 내장도 이용하고 있었 다. 계란도 다양하게 조리에 이용하고 있음이 특징적이었다, 또, 어패류로는 전복, 해삼, 굴을 많이 사용하였다.
양념류로는 파의 활용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간장, 생강, 마늘, 후추의 순이었고, 천초도 사용하고 있어 후추와 천초 를 같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간장은 초장, 간장, 양념간장, 장국 등으로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활용함 을 알 수 있었다. 기름의 사용도 많음이 특징적이었다.
당류로는 꿀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고 흑당, 조청은 사용하 였지만 설탕은 기록되어 있지 않음이 특징적이었다.
육수를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육수로 장국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속뜨물, 간장국도 사용하였다.
7)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조리방법
조리과정은 조리전조작과 가열조리조작으로 나누어 구분 할 수 있다. 조리전 조작은 계량, 씻기, 담그기(불리기, 우리 기), 썰기, 갈기, 젓기, 반죽하기 등의 물리적인 조작이고, 가 열조리 조작은 삶기, 데치기, 끓이기, 지지기, 부치기 등의 조 리법이 해당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조리방 법을 조리 전 조작법은 다음과 같다.
‘세척’은 식품에 묻은 더러운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씻 는 과정으로, ‘외 담을 때’ 물로 씻지 말고 흙을 깨끗하게 씻 으라고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담그는 조작’은 장아찌 를 만들기 위해 소금물에 담그기, 쌀을 불리기 위해 물에 담 그기, 연화시키기 위해 석회 물에 담그기, 석회 물을 제거하 기 위해 ‘우리기’를 이용하였다. ‘분쇄’는 곡식을 가루 내어 떡을 만들거나 유밀과를 만들고, 술 빚을 때 누룩을, 장 담 글 때 메주를 가루 내어 이용하였다. ‘압착’은 장아찌 담을 때 무거운 돌로 짓누를 때 이용하였고, ‘여과’는 장 가를 때, 술 거를 때 이용하였다. ‘반죽’은 증편, 과정류(감사과, 빙사 과, 강정, 타래과, 약과, 연약과), 편수와 집장 담글 때 이용 하였다. 증편을 만들 때는 송편반죽같이 하되 아래로 처지게 하여 되지도 질지도 않게 하며, 과정류를 만들 때는 빙사과 는 되게, 강정은 눅게 반죽하라고 하였다. 약과반죽은 겨우 어우러지게끔 하여 반죽한다고 하여 과정류의 종류에 따라 반죽을 달리 하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잘되고 못되고는 반 죽에 달려있다고 하여 반죽의 정도를 중요시 여김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를 넣은 후 찌거나 끓이는 음식이 많은 편이 었는데 찔 때에는 그대로 찌지만(생복찜), 끓일 때는 소를 넣 은 후 마감처리를 하였다. 처리법으로 소를 넣은 다음 실로 감거나 계란을 묻히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 를 넣은 후 실로 감아 마무리 하는 음식은 ‘양즙법’, ‘양만 두’, ‘오계찜’이었고, 계란으로 가루즙을 하여 붙이는 것은 ‘붕어찜’, ‘청어소탕’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음식의 조리방법은 끓 이기, 찌기, 데치기, 고기, 졸이기, 중탕하기, 쑤기의 습식가 열법과 볶기, 굽기, 지지기의 건식 가열법을 이용한 가열 조 리법(41종)과 장아찌, 장, 술 등의 비 가열조리법(10종)이 있 었다. ‘가열조리법’으로는 끓이기 10종, 찌기 8종, 졸이기, 고 기, 쑤기 각 2종씩, 데치기, 중탕하기 각 1종씩 있었다. 그중 끓이는 방법에서 맑은 국에 끓이기, 간장국에 끓이기, 계란 풀기, 가루즙 풀기 등 끓이는 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 었다. ‘굴탕’, ‘청어소탕’, ‘진주탕’ 등의 탕을 끓일 때 재료를 계란을 묻혀 전유어 부치듯 부친 후에 끓이는 방법도 기록 되어 있으며, 붕어찜에서 지질 때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때의 지지는 것은 기름에 지지는 것이 아니라 물을 자작 하게 넣은 졸이는 것을 지진다고 표현하고 있음도 알 수 있 었다. 끓이는 방법도 물이 반으로 줄 정도 까지 끓인다던가, 아기집을 오래 끓이면 물러지니 나중에 잠간 끓이도록 세세 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찜을 할 때 ‘저육편’에서 돼지고기를 반생반숙으로 익힌 후 양념하여 찌라고 하거나, ‘붕어찜’에서 물의 양을 너 무 많이 하면 맛이 없다고 하여 세세하게 주의사항을 기록 하고 있었다.
또한 조리할 때 불의 세기에 관하여서 언급한 것이 있었 는데, 정과를 만들 때 불을 너무 급히 다리지 말라거나, 양 즙을 만들 째 뭉근하게 불을 때라거나, 약과 만들 때 불이 너무 싸도, 떠도 못쓴다고 주의를 주는 것 등이었다.
‘건열조리법’에는 지지는 법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볶는 법이었다. 양념을 할 때도 기름을 이용하는 것이 많아서, ‘국 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특징 중의 하나가 기름의 이용이 많 은 것이었다.
양념을 할 때도 양념한 후 조리에 이용하는 법과 데친 후 양념하는 법의 두가지 양념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양념하는 법도 유장에 무치기, 갖은 양념하기, 그냥 양념하기 등 다양 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8)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Jusikbangmun (주식방문)」에 기록된 계량단위와 조리도구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각 음식들의 재료 및 분량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지 않았고, 계량도구에 대한 언급도 극히 부족하였다.
계량단위가 기록되어 있는 음식은 많지 않았다. 특히 주식 류나 찬물류에 속하는 음식의 조리법에는 즙을 제외하고는 계량단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반면 술, 장, 과정류 를 만들 때는 ‘홉’, ‘되’, ‘말’ 등의 계량기구와 재료의 양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음식방문」등의 다른 문헌에 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는 흔하게 먹는 주식이나 찬물류 를 만들 때는 별다른 주위가 없어도 큰 실패 없이 만들 수 있으나, 술, 장, 과정류처럼 자주 만들지 않는 음식일 경우에 는 특별히 배려를 하여서 계량기구와 재료의 양을 정확히 제 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술과 떡을 만들 때의 계량단위 에서만 ‘식되’와 ‘장되’로 구분하고 있었다.
‘가열하는 기구’로 솥, 냄비를 사용하였고, 열원으로 숯불 이 있었다. ‘거르는 도구’로는 체, 어레미를, ‘찌는 도구’로 어레미와 시루를 이용하였다. 체의 일종인 어레미를 이용하 여 찌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어 어레미의 용도가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항아리는 술, 김치를 담글 때와 ‘양즙’을 중탕할 때 사용하였다.
IV.요약 및 결론
1900년대 초반의 조리서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주식 방문」에 기록된 음식을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 에 저술된「규합총서」,「시의전서」,「주식시의」,「부인 필지」,「조선요리제법」과 비교 분석하고 식문화적인 의의 를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는 45종의 음식 조리법과 술 빚 는 법 6가지를 합해 총 51종의 음식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 었다. 이는「규합총서」138종,「시의전서」422종,「주식 시의」96종,「부인필지」123종,「조선요리제법」 355종에 비해 기록된 음식의 종류가 적은 편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주식에 일상으로 먹는 밥에 관한 기록이 없고, 당 시 쉽게 접할 수 없는 동물성 식품의 조리법이 많은 것으로 보아 평소에 먹는 일상의 음식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날에 먹 는 음식을 기록한 문헌으로 보인다. 이는 충남 대전의 은진 송씨의 전해오는 음식을 기록한 고문헌인「주식시의」가 특 별한 날을 위한 충남의 반가 음식으로서 가지는 봉제사와 빈 객접대 등 특별한 날의 음식에 대한 기록이라는 음식문화사 적인 의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주식류는 모두 6종으로 죽 2종, 만두 2종, 국수 2종이었으며, 밥과 미음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대추와 팥을 함께 사용한 ‘대추죽’은 1900 년대의「부인필지」의 팥죽과 재료와 조리법이 같아서‘국립 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조선시대 후기의 음식에 대한 기록임 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수는 ‘국수비빔’과 ‘북경수면탕’의 2 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중 ‘북경수면탕’은 음식명은 ‘탕’이 지만 조리법을 살펴보면 국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찬물류’는 총 20종이었는데 탕이 7종으로 가장 많이 기록 되어 있었고, 찜 3종, 구이, 편, 회 각각 2종씩, 즙, 볶음, 장 이 각각 1종씩 기록되어 있었다. 사용된 식품재료는 식물성 식품보다는 동물성식품이 주재료인 것이 다른 조리서와 크 게 차별되는 점이었다. 즉, 동물성 식품으로 돼지고기, 소고 기, 닭고기가 두루 이용하고 있었으며 머리골, 아기집, 양 등 의 내장과 계란도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진주탕’, ‘간 막이탕’, ‘저육편’, ‘양소편’과 달기회’의 재료는 모두 동물성 이었으며 다른 문헌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주재료로 이용하는 식물성 식품은 외와 동아뿐이었고, 그 외 배추, 호 박, 미나리 등을 부재료로 조금씩 이용하고 있었고, 버섯류 로는 석이, 표고 등, 과일류로는 대추, 밤만을 사용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식물성 재료를 적게 이용하고 있었다.
양념류로는 장 2종과 엿 1종이 기록되어 있었다. 장의 종 류로 청장과 즙장의 장류만 있었고 고추장, 젓갈, 식초 등의 다른 양념류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밖에 병과류로 떡 3 종, 유과 4종, 유밀과 2종, 정과 2종 등 총 11종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음청류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떡은 조리법이 서 로 다른 증편 2종류와 단자 1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기록 된 대추단자는 친 떡이 아니라 찐떡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삶은떡, 친떡과 지지는 떡은 없었다. 또한 6가지의 술 빚는 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단양주는 없었고 ‘청명주’, ‘백화 춘’, ‘7일주’, ‘연일주’는 이양주, ‘송순주’와 ‘삼해주’는 삼양 주였다. 이중 ‘백화춘’과 ‘7일주’는 술 익는 기간이 10일 이 내인 급시주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 기록된 조리방법은 찌거나 끓 이는 음식이 많은 편이었고, 끓일 때 다양한 육수를 활용하 고 있었고 음식에 소를 넣은 후 마무리하여 이용하거나 전 유어로 지진 후 끓이는 등 복합조리법이 많은 것이 또한 특 징적이었다. 또한 다른 문헌과는 달리 계량단위가 기록되어 있는 음식이 적었다.
이상과 같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주식방문」을 살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1800년대 「규합총서」「시의전서」,「주식시의」보다 1900년대 초반의「부인필 지」, 「조선요리제법」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1900년대 초기의 문헌임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후 기의 음식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고 문헌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동시대의 다른 문헌에서와는 달리 동물성 식재료의 사 용이 많은데, 이는 원본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노가재본’ 「주식방문」에서는 식물성 식품의 사용이 많은 것과 대조해 보아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셋째, ‘국립중앙도서 관 소장본’에만 나타나는 특정한 조리법과 음식이 있다는 것 이다. 탕의 종류가 다른 찬물류에 비해 많은 가짓수가 기록 되어 있었고, 조리법도 계란을 씌워 전유어로 지진 후에 장 국에 끓이는 방법이 나오는데 이전의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 는 조리법이었다. 또한 ‘간막이탕’, ‘북경수면탕’, ‘저육편’, ‘양소편’ 등은 다른 문헌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음식이 었다. ‘북경수면탕’은 국수와 돼지고기가 동량을 섞어 먹는 국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또한 ‘저육편’과 ‘양소편’은 찜의 조리법을 활용하고 있었고 한자이름도 片이 아니고 便으로 기록되어 있어 요즘의 편육과는 다른 음식이었다.
넷째, 일상으로 먹는 밥이나 찬물류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상의 음식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특별한 날의 음식에 대한 기록인 것 같지만 내용의 60% 이상이 주식과 찬물류에 해당하는 음식인 반면, 떡, 음청류 등 의례음식에 빠지지 않는 음식은 적게 수록되어 있어 매우 독특한 문헌 임을 알 수 있었다.
발간연대가 다른 동명의 「주식방문」과 출간시대의 차이 는 얼마 없지만 1800년대 후반을 거쳐 1900년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는 조리법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 로 조선시대 후반의 음식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 료임을 알 수 있었고 우리음식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도 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