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서 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의례를 관혼상 제(冠婚喪祭)라고 하며, 이 의례문화는 유교와 성리학을 바탕 으로 하는 조선시대부터 출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중 제례(祭禮)는 유교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며, 조상 사후에 후손들에 의해 행해지는 효(孝)와 공경(恭敬)의 의식 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Jang 2012). 특히, 오늘날 이 제례의식의 유지는 16~17세기 이후 사족을 중심으로 형성 된 종가(宗家)가 구심점이 되어왔다. 이러한 종가가 봉제사 (奉祭祀)라는 가문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연스럽게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음식(제물, 祭物) 또한 발달하였다.
각 가문에서 만드는 제물들은 지역과 학파에 따라 큰 차 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배경으로 생겨난 용어가 바로 ‘가가 례(家家禮)’이다. 가가례는 제물과 진설이라는 의례적 요소에 의해 초래된 제례의식의 한 형태이며, 가문별로 각각의 제물 에 서로 다른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서 비롯된다(Kim 2006). 뿐만 아니라 가가례의 결과로, “남의 제사에 감 놓아 라, 배 놓아라 한다.”는 속담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 속담 은 현재까지 가문마다 가가례의 의미 성립에 근거가 되고, 다른 가문의 참견을 견제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수단으로서 표현하고 있다(Kim 2000). 따라서 진설하는 제례음식에서 지 역과 학파에 따른 특징과 경향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예학(禮學)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중심 으로 한 영남학파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로 분류된다. 여러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동인(東 人)의 영남학파는 영남 지역으로, 서인(西人)의 기호학파는 서울, 경기, 충청,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집 단의 지역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Kim(2008)은 영남학파 의 대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대표적 제물 인 갱과 도적을 통해 살펴본 가가례의 경향이 일부 가문에 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안동 지역으로 설정한 연구 범위 내 에서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지역보다 넓 은 학파적 범주에 속할 경우에는 공통된 경향이 보이지 않 는 사실 또한 밝혀냈다. 즉, ‘학파적 가가례’보다 ‘지역적 가 가례’가 우선되는 결론을 도출하였다(Kim 2008). 지역과 학 파는 종가의 제례음식 연구에서 중요한 분석 기준으로, 각 가문이 속한 지역과 학파의 구분에 따라 제례음식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다.
제례음식의 종류는 메(飯), 갱(羹), 면(麵), 편(), 편청(淸), 탕(湯), 적(炙), 포(脯), 전(煎), 숙채(熟菜), 침채(沈菜), 혜(醯), 실과(實果), 조과(造菓), 정과(正果), 제주(祭酒), 쌈, 회 등이 있다. 이러한 제물은 일상식(日常食)과 용어, 내용 측면에서 차별성이 뚜렷하고, 이 중 특정 제물은 가가례에 의해 각 가 문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띄는데, 대표적인 제물이 바로 ‘편 ()’이다. 편은 떡을 나타내며 다양한 종류의 떡이 한데 어 우러져 맛과 색이 조화를 이루는 제물이다. 떡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여 지역적 향토성이 뛰어난 음 식이기 때문에 종가의 제례음식 분석 기준에 따라 연구가 가 능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문헌 고찰을 위해 선정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종가의 제 례와 음식」은 제례의 의식과 음식을 기록한 문헌이며, 무형 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기초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 는다. 그러나 해당 연도의 조사 자료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 날수록 단편적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 다. 그러므로 현재 각 가문에서 조사 이후에도 동일한 조리 법으로 만든 음식이 전승되는지 여부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함 께 수행된다면, 가문에서 역사를 통해 내려오는 내림음식으 로서의 가치 탐색과 연도별 비교를 통해 다양한 분석이 가 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문헌 고찰을 통해 종가 제례음 식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후 현장 조사를 통해 가문의 음식 변천 과정을 비교·분석한다면, 고찰 문헌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헌에 소개한 가문을 지역에 따라 분류하 고 각 가문에서 사용하는 떡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편’의 고 임 순서와 조리법을 표와 그림으로 재정리하였다. 각각의 떡 은 고(古) 조리서와 조리법 연관성을 비교하여 역사적 검증 을 하였고, 임의로 종가를 선정하여 10여년이 지난 현 시점 의 고임 순서와 조리법을 비교·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 방 법은 종가 제례음식으로서 지역과 학파 간 ‘편’의 고임 순서 와 조리법 차이뿐만 아니라 가문 내 전승(傳承)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추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종가 제 례음식의 기초 자료를 고찰하여 다각도에서 분석한 본 연구 를 종가음식 연구의 한 단계 발전된 응용 자료로 제시하고 자 한다.
II.연구 내용 및 방법
1.고찰 문헌 선정
본 연구에서 문헌 고찰을 위해 선정한 자료는 종가의 제 례의식과 음식을 중심으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기획·발행한「종가의 제례와 음식」(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a, 2003b, 2003c, 2005a, 2005b, 2005c, 2005d, 2005e, 2006a, 2006b, 2006c, 2007a, 2007b, 2008a, 2008b, 2008c)이다. 2002년 조사를 시작하여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발행한 것으로 종가의 전 통제례 전반의 봉행과정과 제사음식의 종류, 조리법 등을 그 림과 사진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한문과 함께 한글을 쉽게 풀어씀으로써 종가 제례문화 실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 며 총 27 종가의 이야기를 16권으로 발간하였다. 이 문헌에 서는 우리 문화의 근본인 동시에 유교문화의 전승 주체인 ‘종가의 생활문화’에 주목하고 서구화 되어가는 문화적 변화 속에서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a).
2.종가 선정과 지역 분류
「종가의 제례와 음식」은 제례의 유형을 크게 ‘불천위제(不 遷位祭)’, ‘묘제(墓祭)’, ‘차례(茶禮)’로 분류할 수 있다. 소개 된 27 종가 중 1회 이상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祭物)로 ‘편’ 을 진설(陳設)하는 종가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최종 25곳을 선정하였다. 설날과 동지에 차례를 지내지만 ‘편’을 진설하 지 않는 ‘경주 이씨 초려 이유태(李惟泰, 1607-1684) 종가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c)’ 와 같은 문헌으로 ‘편’의 독특한 고임 형태와 조리법, 유래 에 관하여 Lee et al.(2015)가 연구한 ‘안동 권씨 충재 권벌 (權木發, 1478-1548)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e)’는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25 종가를 경 기, 충청, 호남, 영남 지역으로 분류하고 제사 유형을 정리하 였다<Table 1>.
경기 지역은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朴世當, 1629-1703)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b)(이하 ‘서계 종가’)’, ‘청주 한씨 서평부원군 한준겸(韓 浚謙, 1557-1627)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c)(이하 ‘서평부원군 종가’)’, ‘청송 심씨 청성백 심덕부(沈德符, 1328-1401)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7a)(이하 ‘청성백 종가’)’, ‘청송 심씨 안효공 심온(沈溫, 1375-1418)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7a)(이하 ‘안 효공 종가’)’, ‘장수 황씨 방촌 황희(黃喜, 1363-1452) 종가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b)(이하 ‘방촌 종가’)’, ‘전주 이씨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3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c)(이하 ‘오리 종가’)’, ‘진주 류씨 종중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c)(이하 ‘류씨 종중’)’으로 7곳이다.
충청 지역은 ‘광산 김씨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c)(이하 ‘사계 종가’)’, ‘파평 윤씨 명재 윤증(尹拯, 1629- 171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7b)(이하 ‘명재 종가’)’, ‘안동 권씨 탄옹 권시(權言思, 1604-1672)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6a)(이하 ‘탄옹 종가’)’, ‘의령 남씨 충장공 남이흥(南以興, 1576-1627)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7b)(이하 ‘충장공 종가’)’로 4곳 이다.
호남 지역은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이하 ‘고산 종가’)’, ‘진원 박씨 죽천 박광전(朴光前, 1526-1597)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6b)(이하 ‘죽천 종가’)’로 2곳이다.
영남 지역은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a)(이하 ‘학봉 종가’)’, ‘진성 이씨 퇴계 이황(李滉, 1501- 1570)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d)(이하 ‘퇴계 종가’)’, ‘풍산 류씨 서애 류성룡(柳成 龍, 1542-1607)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e)(이하 ‘서애 종가’)’, ‘안동 김씨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21)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6b)(이하 ‘보백당 종가’)’, ‘광산 김씨 농수 김효로(金孝盧, 1455-153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a)(이하 ‘농수 종가’)’, ‘서흥 김씨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1454-150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b)(이하 ‘한 훤당 종가’)’, ‘진주 정씨 우복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종 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a)(이하 ‘우복 종가’)’, ‘재령 이씨 갈암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이하 ‘갈암 종가’)’, ‘선산 김씨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a)(이하 ‘점필재 종가’)’, ‘월성 손씨 양민공 손소(孫韶, 1433-1484)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c)(이하 ‘양민공 종가’)’, ‘성산 이씨 응와 이원조(李源祚, 1792-1872) 종가(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6c) (이하 ‘응 와 종가’)’, ‘하동 정씨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종가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6a) (이하 ‘일두 종가’)’로 12곳이다. 떡 종류와 식재료를 부르는 명칭이 지역별 방언의 영향으로 서로 다른 부분은 문헌에 기 록된 그대로 인용하였고, 각 종가의 편의 형태를 이해하기 쉽 게 사진으로 옮겨 제시하였다.
3.현장 조사
최근 종가를 연구하는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문헌 고찰과 현장 조사를 병행하여 수행되고 있다(Ma et al. 2008; Lee et al. 2015). 문헌 고찰은 내용분석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연 구자 입장에서는 간접적으로 탐색하는 한계에 부딪칠 수 있 다. 그러나 현장 조사를 병행할 경우, 문헌을 통해 조사한 내 용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점과 종가 구성원의 입장에서 겪어왔던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가문을 바라보는 연 구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진다면 종부에서 다음 종부(며느리)로 구전 형식에 의해 전해지는 종가음식과 식문화를 해당 연도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특정 가문의 종가음식에 대한 연도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초기 연구의 바탕에는 이미 기록된 문헌들의 고찰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 다. 이렇게 되면 현장 조사 시, 나타난 유지 및 변화 현상과 그 원인까지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현재 시점 은 고찰한 문헌의 조사 시점보다 1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현 장 조사를 통해 ‘편’의 고임 순서와 조리법 현황의 비교·분 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사의 유형 중 4대가 지나도 위패를 옮기지 않는 ‘불천위 제’를 모시는 20곳 중 유형이 다른 4곳을 임의로 선정하여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역은 경기, 호남, 영남 지역이 해 당되며, 학파와 관련 없는 조선 전기 인물인 경기도 파주시 황희 선생의 ‘방촌 종가’, 지역과 학파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이는 전남 해남군 윤선도 선생의 ‘고산 종가’, 지역과 학 파가 동일하며 같은 학맥으로 연결된 경상북도 안동시 이황 선생의 ‘퇴계 종가’와 김성일 선생의 ‘학봉 종가’를 선정하였 다. 본 연구진은 2015년 제사일에 해당 종가를 직접 방문하 여 제례음식 ‘편’ 만드는 과정과 진설, 제례 봉행을 후손들 과 함께하였다. 또한「종가의 제례와 음식」의 ‘편’과 현재 의 ‘편’ 사이에 고임 순서 및 조리법 변화에 대하여 종가 구 성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사전 동의를 받아 녹음과 사진촬영을 병행하였다.
III.결과 및 고찰
1.떡의 연구
1)떡의 정의와 명칭 변화
떡은 조리 형태에 따라 “곡물의 분식 형태의 음식”으로 정 의하고 있다(Mang & Lee 1988). 여기서 ‘분식(粉食)’이란, “밀가루 따위로 만든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 ‘가루음식’ 으로 순화”로 정의한다(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a). 즉, 다양한 곡물 가루를 이용하여 조리법 을 달리한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시대 이후에 밀의 보급이 일반화되고 밀과 보리를 서로 다른 문자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식’ 은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병(餠)과 쌀, 기장, 조, 콩 등 곡 식 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이(餌)로 구분해서 사용하였다 (Kang 1997; Cha 2003; Kim et al. 2007; Kim 2010). 한 편, 우리나라에서 ‘분식’을 나타내는 명칭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고문헌의 기록을 살펴보았다<Table 2>.
1600년대 이전과 초반의 고서(古書)를 살펴보면, 1449년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Sangayolog (山家要錄)」(Han BR ed. 2011)은 병(餠), 1525년 성현(成俔)이 지은「Yongjaechonghwa ( 齋叢話)」(Lee DH ed. 2012)는 병(餠), 고(), 1610년 허 준(許俊, 1539-1615)의「Donguibogam (東醫寶鑑)」(Heo J 1610)은 병(餠), 허균(許筠, 1569-1618)이 1611년에 지은 「Domundaejag (屠門大嚼)」(Heo G 1611)은 병(餠), 고(), 1614년 이수광(李光, 1563-1628)의「Jibongyuseol (芝峰 類說)」(Lee SG 1614)은 병(餠), 고(), 이(餌)로 조리법과 주재료 종류, 부재료 상태에 따라서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고 (Won et al. 2008), 이러한 명칭은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자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이어 1600년대에는 비로소 새로운 한글 명칭 ‘편’이 등장 한다. 경북 영양군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 종가’의 정부인(貞 夫人)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집필한 국내 최초의 한 글 조리서인「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에는 ‘증편법’, ‘셩이편법(석이편법)’, ‘잡과편법’이 기록 되어 있다. 또한 최근 Park(2015)에 의해 최초로 소개된 충 남 아산시 ‘신창 맹씨 종가’의 종부 해주 최씨(海州 崔氏, 1591-1660)가 집필한 한글 조리서인「Choi’s Eumsigbeob (崔 氏 飮食法)」( Haeju Choi’s 1600s) (Park CL 2015)에도 ‘증 편’, ‘졀편(절편)’, ‘셕이편(석이편)’과 같이 ‘편’이 등장하며, 두 개의 조리서 모두 한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1600년 대 말엽에는 한글로 쓰인「Jubangmun (酒方文)」(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ed. 2010)에 ‘겸졀편법(겸절편법 )(겸절병, 兼節餠)’, ‘긔증편 (기증편)(기증병, 起蒸餠)’으로 한글 ‘편’과 함께 한자로 ‘병 (餠)’을 표기하였다.
1700년대에 숙부인(淑夫人) 진주 정씨(晉州 鄭氏)가 한글 로 편찬한「Eumsigbo (飮食譜)」(Sukbuin Jinju Jeong’s 1700s)에서도 ‘긔증편법(기증편법)’, ‘모피편법’, ‘잡과편법’과 같이 한글 ‘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 네 가 지 한글 조리서가 편찬되던 1600~1700년대 무렵에 ‘분식’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한글 ‘편’이 처음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1800년대에 또 다른 명칭으로 빙허각 이씨가 지은 「Gyuhab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s 1809)에서 ‘빙쟈 (빙자떡)’, ‘두텁 (두텁떡)’, ‘무오 (무떡)’과 같이 ‘ (떡)’이라는 한글 명칭을 사용하였다(Kang et al. 2000; Kim et al. 2007; Kang 2013). 이러한 한글 명칭 ‘’은 15세기 한글 창제 이후에 나온 최초의 불경언해서(佛經諺解 書)인 보물 745호「Wolinseogbo (月印釋譜)」(Sejo 1459)에 서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순 한글인 ‘’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18~19세기「Gyuhab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s 1809)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에 ‘떡’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Lee 1986). 이는 떡의 국어학적 변화로 볼 수 있으며 15세기 고문헌에서부터 사용된 ‘’의 초성(初聲) 합용병서(合用竝書)인 ‘ㅅㄷ’이 1933 년 제정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된소리 표기 통일 방법에 따라 ‘ㄷㄷ’으로 변하여 ‘떡’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Doopedia 2015; 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b). 1937년 방신영이 제8판으로 출간한「Joseonyolijebeob (朝 鮮料理製法)」(Bang SY 1937) 이후에 나온 조리서에는 모 두 ‘떡’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초성 합용병서 변화는 어문학계에서도 여러 학설이 제기되 고 있는 실정이며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한편, 떡 의 어원 변화에 대해서는 분야에 따라 연구자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식문화 학계에서는 떡이 시루에 ‘찐 것’을 기 본형으로 하기 때문에 동사 ‘찌다’가 명사화되어 “찌기→떼 기→떠기→떡” 순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Jeong 2003;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1). 따 라서 추후 ‘분식’에 대한 추가적인 명칭 변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15세기 세조가 쓴 문헌에 등장한 ‘’이 18~19세기 반가(班家)의 고 조리서에도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역으로 추적하여 언어학, 인문학, 식품학 등 학제 간 교차연구를 통해 심도 있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2)떡의 한글과 한자 사용
‘분식’의 조리 형태별 분류에 따라 시대별 사용하는 한자 가 변화하였으며, 현재는 일상에서 한글 ‘떡’, ‘편’을 주로 사 용하고 한자로 표기할 때는 ‘餠(떡 병)’, ‘(떡 편)’, ‘片(조각 편)’을 사용하고 있다<Table 2>. 일부 연구에서는 제례용 떡 을 가리켜 ‘편’이라 지칭하고 있지만(Yoon 1982), 이 명칭은 국어사전에 “떡을 점잖게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b). 따라서 제례음식으로서 떡을 총칭하여 부르는 것은 ‘편’을 좁은 의 미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편’은 한글 고 조리서에서 떡을 나타내는 순 한글로서 처음 전해졌다. 즉, ‘떡’과 ‘편’ 모두 같은 한글 표현으로 봐 야할 것이다.
한편, 단행본과 논문에서 한글 ‘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 는 연구자들은 한자와 함께 쓸 경우, 중국에서부터 전해진 ‘餠’을 표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나머지는 한국문화재보호 재단에서 편역한 «한국음식대관»(Kang et al. 2000)을 인용 하면서 ‘片’과 ‘’을 병용 표기하고 있다(Kim et al. 2007; Won et al. 2008; Kwon et al. 2014). 인용한 한자를 살펴 보면, 우선 ‘片’의 뜻은 ‘조각’을 나타내며 “납작한 조각, 아 주 작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떡에서 사용하는 웃기편의 종 류와 본편의 시루떡 한 켜씩을 하나의 조각으로 보고 사용 한 한자로 해석되며 Yoon(1982), Lee & Maeng(1987), Kang (2013)은 ‘片’만 사용하였다. 두 번째 ‘’의 뜻은 ‘떡’으로 한글 ‘편’을 한자화 한 것이다(Kim 2014). 한자어의 구조와 조어력에 대하여 연구한 Shim(1987)은 우리나라에서 중국 한자의 시대적 한계를 19세기 말까지 제한을 두고 있으며, 19세기 말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를 ‘바꾼 한자’와 ‘만든 한자’로 분류하였다. 이 중 ‘만든 한자’에 ‘’을 제시 하고 있다(shim 1987). 한편, Jang(2004)은 ‘편’의 사용을 보 다 세부적으로 ‘궁중언어’와 ‘반촌어’로 구분하여 설명하였 다. 1915년에 조선광문회가 편찬한 한자 자전인「Sinjajeon (新字典)」(Joseongwangmunhoe 1915)의 조선속자부(朝鮮俗 字部)에서 “편(): 병야(餠也) 견속서(見俗書)”라 하여 궁 중에서 기원한 ‘고유 한자어’로 추정하고 있으며, 반촌어는 ‘경칭어, 제례 용어’로 사용됨을 밝히고 있다(Jang 2004; Lee 2007). 이를 통해 앞서 설명한 고 조리서 중 반가 여성이 한 글로 집필한「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Choi’s Eumsigbeob (崔氏 飮食法)」(Haeju Choi’s 1600s)(Park CL 2015),「Eumsigbo (飮食譜)」(Sukbuin Jinju Jeong’s 1700s)에서 ‘편’의 사용을 이해할 수 있는 대 목이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종가의 제례와 음식」 문헌에서 제례 음식 떡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한글로는 ‘편’을 사용하면서 한자로는 ‘’, ‘餠’을 모두 표기하였다. 이와 같은 병용 표 기에도 독자에게 전달되는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 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인 국자(國字)라는 것과 궁중과 반가에서 사용한 기록이 있는 ‘’이 내용 전달에 적합할 것 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본 연구가 조선시대 반가에 해당하는 종가의 제례음식 중 떡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으므로 한글 은 ‘편’, 한자는 ‘’을 사용함으로서 명칭의 범위에 따른 이 해를 돕고자 한다.
3)떡의 분류
제사 상차림에 올리는 ‘편’은 크게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떡을 담는 제기(祭器)인 편틀 크기에 맞춰 본편을 아래에 켜켜이 쌓고, 위에는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잔편이라고 부르는 웃기편을 쌓는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 웃기편은 전라남 도에서 ‘웃찌지’(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c), 영남 지역에서 ‘웃깨이’, ‘웃깨’, ‘웃찌시’ 라는 방언형으로 부 르기도 한다(Ahn 2009). 이처럼 지역별 방언에 따라 부르는 용어가 다르며 웃기편의 경우 각 떡에도 방언형이 있다. 조 사 문헌에는 본편과 웃기편 외에 잔편으로 분류된 떡은 웃 기편의 일종으로 봐도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함께 묶어서 분류하였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c, 2006a). 따라서 ‘편’을 본편과 웃기편으로 나누고 해당되는 각각의 떡은 선행된 Jeong(1975), Hwang(1976), Yoon(1980), Mang & Lee (1988),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1) 연구의 분류 방법에 따라 찐 떡(증병, 甑餠, Steamed tteok), 친 떡(도 병, 搗餠, Pound tteok), 지진 떡(유전병, 油煎餠, Pan-fried tteok), 삶은 떡(단자병, 團餠, Boiled tteok)으로 분류하였다.
선정된 종가 25곳의 제례용 떡을 본편과 웃기편으로 구분 하여 지역별로 살펴보면 <Table 3>와 같다. 본편 중 시루떡 류에서 거피팥시루떡은 호남 지역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경 기지역 5곳, 충청 지역 4곳, 영남 지역 3곳으로 총 12곳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는 주재료 외에 부재료와 고명, 고물을 달리하여 대두콩시루떡, 거피녹 두시루떡, 맞편, 나물편, 쑥편, 당귀편 등 여러 시루떡의 종 류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종가에서는 본편으로 시 루떡 외에 증편, 인절미, 쑥떡을 사용하고 있었다. 웃기편은 조리방법에 따라 찌고, 찐 후 치고, 지지고, 삶은 조리법을 모두 사용하였으며 안에 넣는 소와 반죽에 사용되는 부재료 에 따라 송편과 경단은 각 4종류, 절편은 2종류로 나눌 수 있고, 인절미는 고물을 달리하여 2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지 역별 웃기편 특징을 살펴보면, 경기, 충청, 호남 지역은 전과 주악과 같은 특정 종류의 떡 외에 웃기편을 거의 올리지 않 았다. 반면, 영남 지역은 여러 종류의 웃기편을 쌓고 있었다. 특히, 전, 주악, 잡과편, 송편, 부편, 경단 순으로 사용이 가 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Table 3>.
2.문헌 고찰을 통한 ‘편’ 고임 순서 연구
1)경기 지역
경기 지역 종가의 ‘편’ 고임 순서는 <Table 4>에 제시하였 다. 2002년에는 의정부시 ‘서계 종가’, 시흥시 ‘서평부원군 종가’, 2006년에는 연천군 ‘청성백 종가’, 파주시 ‘방촌 종 가’, 광명시 ‘오리 종가’, 고양시 ‘류씨 종중’, 2007년에는 수 원시 ‘안효공 종가’가 조사되어 총 7 종가이다.
본편으로 거피팥시루떡을 사용하는 종가는 5곳으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 2곳 중 ‘서계 종가’는 콩고물인절미를 본편 으로 쌓고, 남은 인절미를 3.5 cm 크기로 자른 후 웃기편으 로 사용하였다. ‘오리 종가’는 예전에 멥쌀가루로 만든 거피 팥시루떡인 메편과 찹쌀가루로 만든 거피팥시루떡인 찰편을 사용하고 웃기편으로 전과 주악을 올렸지만, 조사 연도에는 번거로워 본편으로 쑥떡 1종류만 만들어서 사용한 것으로 나 타났다. 경기 지역 종가의 ‘편’ 고임 형태는 사각형이며 ‘편’ 을 찍어 먹을 수 있는 편청으로 꿀, 설탕, 조청을 사용하였 다. 또한 ‘편’을 고이는 편틀은 모두 사용하지만 크기는 ‘서 계 종가’, ‘서평부원군 종가’ 외에는 문헌상 알 수 없었다. 특 히, ‘방촌 종가’와 ‘류씨 종중’의 ‘편’은 유사한 고임 형태를 보이는데, 거피팥시루떡을 본편으로 쌓고 찹쌀가루로 만든 반죽을 지름 15~20 cm 크기로 넓고 얇게 펴서 위에 대추 채 썬 것, 미나리 잎으로 장식을 한 전을 올리고 주악 또는 송 편을 맨 위 중앙에 모아 올리는 형태를 띠고 있다. 경기 지 역은 웃기편 없이 본편만 쌓아서 제사를 지내는 종가가 대 부분이며, 웃기편을 올리는 경우에는 전, 주악, 송편을 사용 하여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충청 지역
충청 지역 종가의 ‘편’ 고임 순서는 <Table 5>에 제시하였 으며 총 4곳이다. 2003년에는 논산시 ‘서계 종가’, 2005년에 는 대전광역시 서구 ‘탄옹 종가’, 2007년에는 논산시 ‘명재 종가’, 당진시 ‘충장공 종가’가 조사되었다.
‘사계 종가’는 본편으로 거피팥시루떡(팥편)과 거피녹두시 루떡(녹두편), 멥쌀가루로 쪄서 만든 백편까지 쌓았지만 조 사 당시 일손 부족으로 방앗간에 주문하여 팥편과 녹두편만 쌓았다. 웃기편도 조악(주악) 1종류만 올리는데, 예전에 단자 와 전을 모두 올릴 때는 둥글납작하게 빚어 기름에 지진 전 을 본편의 뾰족한 네 모서리에 걸쳐 올리고 튀긴 조악(주악) 을 꽃봉오리처럼 가운데에 쌓은 후, 쪄내서 가늘게 채 썬 밤 과 대추 고물을 묻힌 단자를 안에 얹어 꽃씨라 불리는 ‘편’ 을 완성하였다. 과거에 쌓았던 고임 형태는 경기 지역의 ‘방 촌 종가’와 ‘류씨 종중’의 ‘편’과 형태적으로 유사했던 것으 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지역의 ‘명재 종가’는 콩가 루와 거피팥고물을 각 면에 묻힌 시루떡을 본편으로 높게 쌓 고, 웃기편으로 찹쌀반죽을 4 cm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대추 채를 十자 모양으로 올려 지진 웃찌지라 부르는 전을 쌓았 다. 그러나 조사 당시는 번거로워 고명으로 올리는 대추채를 올리지 않고 찹쌀반죽만 지져서 올렸다.
‘탄옹 종가’는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4:1 비율로 섞은 쌀 가루와 직접 만든 거피팥(팥편), 거피녹두(녹두편), 흑임자(흑 임자편) 고물로 만든 3종류의 시루떡을 각 27켜, 2켜, 4켜 쌓아 올리는 옛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웃기편은 찹쌀로 만든 화전을 1켜 올려 총 34켜의 높은 고임을 완성 하였다.
‘충장공 종가’의 본편은 거피팥시루떡을 13켜 올리고, 웃 기편으로 찹쌀반죽을 4 cm 크기로 빚어 대추 2개를 얹어 모 양을 낸 우찌지를 쌓는다. 준비한 본편과 웃기편 1종류를 쌓 아 완성하는데, 이는 논산시 ‘명재 종가’의 ‘편’에서 웃기편 을 부르는 명칭과 고임 형태를 고려했을 때 거의 유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충청 지역 모든 종가에서는 본편으로 팥, 녹두, 흑임자로 만든 고물을 쌀가루와 함께 켜서 만든 시루떡을 사용하고 있 었고, 경기 지역과 유사하게 전과 주악을 웃기편으로 사용하 고 있었다. 두 지역에서 웃기편으로 전을 사용한 종가를 비 교해보면 충청 지역 종가는 지름 4~5 cm 정도의 밤톨 크기 로 빚어서 지진 떡을 사용한 반면, 경기 지역 종가는 지름 7~20 cm의 넓이로 지진 떡을 사용하여 크기에서 차이가 있 었다. 충청 지역의 ‘편’은 시루떡 본편에 웃기편으로 전 또 는 주악 1종류만 올리는 것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호남 지역
호남 지역 종가 ‘편’의 고임 순서는 <Table 6>과 같으며 2003년에는 해남군 ‘고산 종가’, 2005년에는 보성군 ‘죽천 종 가’가 조사되었다.
‘고산 종가’에서는 본편으로 볶은 청태콩고물인절미를 4켜 쌓고, 웃기편으로 가문 내에서 기정떡이라 부르는 증편 2켜, 송편을 2켜 쌓아 진설하였다. 예전에는 본편으로 청태콩고물 인절미 올리기 전에 절편을 먼저 쌓고, 웃기편으로 주악도 올렸으나 조사 당시에는 모두 생략하였다. ‘편’과 함께 올리 는 편청은 꿀을 사용하였다.
‘죽천 종가’는 설기 9켜, 인절미 3켜와 절편을 쌓고, 웃기 편으로 지진 떡의 종류인 웃지지를 가운데로 모아지게 1켜 (9개) 쌓아 완성하였다.
4)영남 지역
영남 지역 종가의 ‘편’ 고임 순서는 <Table 7>과 같으며 총 12곳이 있다. 2002년에는 안동시 ‘학봉 종가’, 대구광역 시 달성군 ‘한훤당 종가’, 경주시 ‘양민공 종가’, 2003년에는 영덕군 ‘갈암 종가’, 고령군 ‘점필재 종가’, 2004년에는 안동 시 ‘퇴계 종가’, ‘서애 종가’, ‘보백당 종가’, 함양군 ‘일두 종 가’, 2005년에는 안동시 ‘농수 종가’, 상주시 ‘우복 종가’, 성 주군 ‘응와 종가’가 조사되었다.
‘학봉 종가’는 대두콩시루떡을 기본으로 하는 본편 12켜에 부재료와 고명을 다르게 해서 만든 쑥편과 맞편을 각 1켜 씩 쌓고, 웃기편으로 쑥경단, 송기송편, 부편, 잡과편, 국화전, 조 약(주악), 깨구리 순으로 각 1켜 씩 쌓아 총 높이가 44 cm가 되었다.
‘퇴계 종가’의 본편은 대두콩시루떡을 기본으로 하는 본편 11켜와 고명을 첨가한 맞편 1켜, 당귀잎을 넣은 당귀편 1켜, 녹두편 1켜, 웃기편으로 쑥경단, 부편, 잡과편 각 1켜, 송기 송편 2켜, 국화전, 조약(주악)을 각 1켜 씩 순서대로 쌓아 완 성하였다. 본편 중 본편이 1켜 적은 대신 녹두편이 1켜 추가 된 것, 쑥 대신 당귀잎이 들어간 것, 깨구리 대신 송기송편 을 1켜 더 쌓는 것 외에는 ‘학봉 종가’와 고임 종류와 켜 수 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애 종가’는 본편으로 대두콩고물편 7켜, 팥고물편(거피 팥시루떡) 4켜, 녹두편 2켜, 백편 1켜, 나물편 1켜를 쌓고, 웃기편으로 경단, 증편, 송기송편, 송편, 모시잎송편, 잡과편, 화전, 조약(주악)을 각 1켜 씩 쌓은 후 마지막으로 깨구리를 2켜 쌓아 ‘편’을 완성하는데 편틀을 포함한 전체 높이가 약 41 cm에 달했다.
‘보백당 종가’는 거피팥시루떡 15켜를 본편으로 쌓고 제사 를 약식으로 지낼 경우 웃기편으로 경단, 부편, 전, 잡과편, 조약, 쑥구리, 깨구리 중 3가지 또는 5가지 종류를 골라서 사 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당시는 쑥구리, 깨구리를 제 외하고 5가지 종류를 선택하여 경단, 부편, 전, 잡과편, 조약 을 각 1켜 씩 쌓아 총 20켜의 편을 완성하였다. 웃기편을 괼 때 대나무 8개를 한 면에 2개씩 묶어 떡이 쓰러지지 않게 고 정시켰다.
‘농수 종가’의 편은 본편으로 시루떡 11켜, 웃기편으로 분 류한 백편을 1켜 올리고 그 위에 경단, 부편, 전, 조약을 각 1켜씩 총 16켜 쌓았다. 조사 당시는 잡과편과 깨구리를 제외 하고 쌓았다.
다음으로 ‘한훤당 종가’의 본편은 대두콩시루떡, 백편, 찰 편 순으로 5켜 씩 쌓은 후 절편, 모시잎절편, 거피팥인절미, 대두콩인절미(콩고물인절미), 부편을 각 2켜 씩, 잡과편, 화 전, 거피녹두경단을 각 1켜 씩, 마지막으로 흑임자경단을 2 켜 쌓아 준비한다. 총 30켜를 쌓고 높이는 40 cm에 이른다. 이 종가의 특이한 점은 조사된 25 종가 중 유일하게 ‘편’의 진설방향이 다르다.「Salyepyeonlam (四禮便覽)」(Lee J(이 재, 李縡), 1844)과「Salyejibui (四禮集儀)」(Park MH(박문 호, 朴文鎬), 1922)에 나타난 진설방식 중 면서병동(西餠東) 은 “국수는 서쪽에 놓고, 떡은 동쪽에 진설하라.”지만, ‘한훤 당 종가’에서는 국수와 떡을 동시에 서쪽에 진설하고 있다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b).
‘우복 종가’의 본편은 쑥시루떡 9켜, 증편 3켜로 구성되며, 웃기편으로 송편, 잡과편, 깨구리, 전, 조약(주악), 부편, 쑥구 리를 사용하는데, 조사 연도에는 부편, 쑥구리를 사용하지 않 고 송편, 잡과편, 깨구리, 전을 2켜 씩 올린 다음 조약(주악) 1켜로 마무리 하였다. 본편은 방앗간에서 만들고, 웃기편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7:3 비율로 섞은 반죽을 사용하여 집 에서 직접 만들었다.
‘갈암 종가’는 조사된 종가 중 가장 넓은 사방 29 cm, 높 이 10 cm의 사각형 편틀에 9켜의 대두콩시루떡을 본편으로 쌓고 백편, 쑥절편, 경단, 부편, 송구송편(송기송편), 깨구리, 전, 잡과편, 주악을 각 1켜 씩 총 18켜를 쌓아 ‘편’을 완성하 였다. 이 종가의 중시조인 갈암 이현일 선생은 석계 이시명 선생의 셋째 아들로 국내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의 저자 안동 장씨 (장계향, 張桂香, 1598-1680)가 어머니이다. 이에 따라 영양 군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 종가’의 음식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지만(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 영덕군과 영양군 의 지역 향토음식의 영향, 각 가문의 내림음식 등 서로 미치 는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가문의 혼반관계까지 고려한 연대 적인 시각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점필재 종가’는 13켜의 거피팥시루떡을 사각형 유기로 된 편틀에 쌓고 웃기편으로 절편, 송기절편 각 2켜, 송편, 모시 송편, 송기송편, 잡과편, 주악, 전을 각 1켜 씩 총 23켜를 괴 어 올렸다. 본편의 거피팥시루떡은 겉에 두 가지 고물을 묻 혀 준비한다. 한쪽은 거피콩고물, 다른 한쪽은 거피팥고물이 다. 시루에 쌀가루와 두 가지 고물을 번갈아 켜켜이 쌓아서 쪄내면 겉이 서로 다른 고물로 쪄진다. 현재는 방앗간에서 떡과 고물을 전부 맡겨서 하고 있다. 두 면에 다른 고물을 묻혀 시루떡을 찌는 방법은 충남 논산시 ‘명재 종가’와 같다.
‘양민공 종가’의 편은 본편으로 대두콩시루떡 7켜, 웃기편 으로 절편, 쑥절편, 인절미 각 5켜, 송편, 쑥송편, 화전, 조악 (주악) 각 1켜 씩 총 26켜를 쌓아 그 높이가 30 cm가 되었 다. 이렇게 쌓은 ‘편’은 고위와 비위의 합설 제사이기 때문 에 제사상 동쪽과 서쪽에 각 1기씩 총 2기를 진설한다.
‘응와 종가’는 대두콩시루떡 5켜와 찰편 3켜를 본편으로 쌓 고, 부재료를 다르게 했지만 공통으로 팥소를 넣어 만든 3가 지 송편인 송편 2켜, 쑥송편 1켜, 송기송편 1켜를 괸다. 그 위에 증편과 전을 각 1켜 씩 올리고, 주악, 경단, 잡과편 3가 지를 1켜에 각 1/3씩 나눠 쌓았다.
마지막으로 ‘일두 종가’의 편은 본편으로 대두콩시루떡 2 켜, 찰시루떡 14켜를 쌓고, 웃기편으로 인절미, 쑥궁구리(쑥 구리), 조악(주악), 잡과편을 각 1켜 씩 총 20켜 쌓으면 그 높이는 42 cm가 되었다.
문헌에 소개된 영남 지역 종가는 총 12곳으로 모두 불천 위제를 모시는 가운데 ‘갈암 종가’는 길제로 조사되었다. ‘편’ 의 높이는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의 수에 따라 본편으로 사 용하는 시루떡의 켜를 조절하여 결정한다. 특히, 영남 지역 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본편으로 다양한 종류의 시루떡을 사 용하였으며, 웃기편은 22종류로 경기, 충청, 호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웃기편 6종류와 비교해보아도 상당한 차이가 있 었다.
3.문헌 고찰을 통한 ‘편’ 재료와 조리법 연구
1)본편
거피팥시루떡
거피팥시루떡은 물에 불린 팥을 거피한 후 체에 내려 소 금으로 간을 해 만든 거피팥고물과 쌀가루를 베보자기가 깔 린 시루에 반복해서 쌓아 켜와 켜 사이를 구분지게 찐 떡을 일컫는다. 문헌에서 이 떡을 사용한 종가를 지역별로 분류하 고 재료와 조리법을 표로 재정리하였다<Table 8>. 거피팥시 루떡은 종가에 따라 팥편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본편으로 경기 지역 5곳, 충청 지역 4곳, 영남 지역 3곳에서 쌓고 있어 사용 빈도가 가장 높았다. 직접 떡을 만드는 충청 지역 ‘탄옹 종가’를 제외하고 11 종가 모두 방앗간을 이용하 였는데, 안동시 ‘서애 종가’와 고령군 ‘점필재 종가’는 직접 만들다가 조사 시점 이전에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조리법이 기록된 종가를 중심으로 거피팥시루떡의 재료를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충청 지역의 ‘탄옹 종가’에서 찹쌀과 멥쌀을 4:1 비율로 섞어 사용하는 반면, 영남 지역 ‘서애 종가’와 ‘점필 재 종가’는 멥쌀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마다 쌀가루 사용에서 비율과 종류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리법은 “찜통 준비(베보자기)→(반복)[거피팥고물→쌀가루→ 거피팥고물]→찌기”로 요약할 수 있다.
고물로 사용하는 붉은 팥은 잡귀를 물리치는 주술적 의미 를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액을 막고 복을 빌기 위해 이사, 개업, 고사 등의 상징적 음식인 떡의 고물로 사용되어 왔다. 반면,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사용할 때는 팥을 물에 하룻밤 정도 불려 껍질을 완전히 제거한 후 하얀 팥고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다(Choi 2008).
대두콩시루떡
대두콩시루떡은 거피팥고물 대신에 대두콩으로 고물을 만 들어 쌀가루와 켜를 이루어 찐 떡이다. 이 떡을 사용하는 종 가에서는 대두콩시루떡 또는 본편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 었다. 경기, 충청, 호남 지역 종가에서는 이 떡을 사용하지 않았고 영남 지역 9 종가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able 9>.
9종가 중 3곳에서는 직접 떡을 만들고 있었으며, ‘서애 종 가’, ‘보백당 종가’, ‘일두 종가’도 직접 떡을 만들었지만, 몇 년 전부터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거피팥고물에서 대두콩 고물로 고물을 변경한 것 외에는 시루떡 조리법과 동일하다.
거피녹두시루떡
거피녹두시루떡은 삶아서 껍질 벗긴 녹두고물을 묻혀 만 든 찐 떡으로 충청 지역 2 종가, 영남 지역 2 종가에서 사용 하고 있었다<Table 10>. 충청 지역의 ‘사계 종가’는 방앗간 을 이용하였고, ‘탄옹 종가’는 찹쌀과 멥쌀을 4:1 비율로 섞 어 만든 쌀가루와 거피녹두고물을 켜켜이 쌓아 떡을 완성하 였다. 영남 지역의 ‘퇴계 종가’는 거피녹두고물을 아래에 담 고 찹쌀가루 사이에 밤과 대추를 고명으로 썰어 넣고 다시 고물을 덮어 쪄냈으며, ‘서애 종가’는 거피녹두고물 위로 멥 쌀가루를 쌓고 4등분 한 대추를 고명으로 가지런히 박은 후 다시 고물을 덮어 완성하였다. 같은 떡이라도 각 가문마다 사용하는 쌀가루의 종류, 고명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 조리법 일부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피녹두시루떡에 관한 고 조리서 기록은「Siuijeonseo (是 議全書)」(Lee HJ ed. 2004)에 ‘녹두편’, ‘녹두찰편’, Joseonmussangsinsigyolijebeob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에 ‘녹두 (녹두떡)’,「Joseonyolijebeob (朝鮮料理 製法)」(Bang SY 1937)에 ‘녹두떡’, ‘거피 녹두떡’, 「Joseonyolibeob (朝鮮料理法)」(Cho JH 1939)에 ‘녹두찰편’, 「Urieumsig (우리음식)」(Son JG 1948)에 ‘녹두편’이 있다.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쌀가루와 녹두고물만 켜켜이 쌓아 시 루떡을 완성하는데,「Siuijeonseo (是議全書)」(Lee HJ ed. 2004)의 ‘녹두편’과「Joseonyolibeob (朝鮮料理法)」(Cho JH 1939)의 ‘녹두찰편’은 대추와 밤을 고명으로 올려 ‘퇴계 종 가’의 거피녹두시루떡과 조리법이 동일하였다.
기타 시루떡
몇몇의 종가에서는 거피팥시루떡, 대두콩시루떡, 거피녹두 시루떡 외에 들어가는 고물과 고명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찰 편, 백편, 맞편, 나물편, 쑥편, 당귀편, 흑임자편을 본편으로 쌓고 있었다<Table 11>.
영남 지역의 3 종가에서 사용하는 시루떡인 찰편은 이름 에서 알 수 있듯이 찹쌀가루를 이용해서 만든다. 성주군의 ‘응와 종가’는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어 조리법은 알 수 없지 만, 콩을 고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대두콩시루떡을 찰편으 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이 종가에서 는 본편으로 시루떡과 찰편을 올리고 있는데 모두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어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두 개 모두 콩고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시루떡은 멥쌀가루, 찰편은 찹쌀가루로 다른 쌀가루를 사용하여 본편으로 함께 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종가에서 찹쌀가루와 멥쌀가루 를 함께 섞어 하나의 시루떡을 만드는 것과 달리 쌀가루를 구분하여 떡을 만들고 각각을 본편으로 함께 쌓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한훤당 종가’와 안동시 ‘서애 종가’에 서는 백편을 본편으로 분류하지만, 안동시 ‘농수 종가’와 영 덕군 ‘갈암 종가’는 같은 떡을 웃기편으로 분류하여 가문별 구분 차이가 있었다. 본편으로 사용한 두 종가의 백편 조리 법을 살펴보면, ‘한훤당 종가’는 찜통에 기름종이를 깔고 소 금과 설탕을 넣은 멥쌀가루를 1 cm 두께로 안친 후 대추채, 밤채를 뿌리고 기름종이를 다시 깐 후 이 과정을 반복하여 총 5켜를 쌓아 시루에 쪄낸다. ‘서애 종가’에서는 멥쌀가루 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기름종이를 깐 찜통에 2 cm 두께로 안친 후 일정한 간격으로 대추(씨 제거 후 4등분), 석이버섯 채를 가지런히 올려 베보자기를 덮어 쪄낸다. 백편은 언제부 터 만들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1800년대 말엽에 쓰 인「Siuijeonseo (是議全書)」(Lee HJ ed. 2004)에 처음 등 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고 조리서의 정확한 시기는 알려 져 있지 않지만 1800년대 말엽 당시 경상북도 상주시의 반 가 조리서로서 집안의 일상 음식, 제사나 잔치 음식, 제사 날 짜, 옷 염색법 등 의(衣)와 식(食)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내 용이 실려 있어 조선 말기의 식문화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자 료이다(Shin 2012). 이 문헌에 나온 백편의 조리법은 멥쌀가 루에 소금을 넣고 빻아 두께를 맞춰 안친 후 고명으로 네모 반듯하게 자른 대추와 가장자리에 잣을 5~6개 박고 석이채 또는 석이와 파래를 섞어서 드문드문 흩어 뿌려 쪄내는 방 법이다. 이후 1939년「Joseonyolibeob (朝鮮料理法)」(Cho JH 1939)과 1948년「Urieumsig (우리음식)」(Son JG 1948) 에서도 백편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Mang & Lee 1988).
백편은 위, 아래 고물을 묻히는 일반 시루떡과는 다르게 고물을 묻히지 않는 떡이다. 쌀가루와 고명의 조합으로만 맛 을 내기 때문에 고물이 없는 대신 쌀가루에 설탕 또는 소금 으로 간을 하여 만든다. 이는 고물을 사용하지 않는 오늘날 백설기와 같은 종류의 떡으로 볼 수 있다. 「Joseonmussangsinsigyolijebeob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 에 ‘백설고(白雪, 백설기)’라는 명칭으로 나오는데, 멥쌀가루 를 찧을 때 소금물을 넣고 시루에 안친 후 생률과 씨 제거한 대추를 잘라 고명으로 올려 찐 떡이다. 설탕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서애 종가’ 에서는 설탕 대신 소금만을 넣었고, ‘한훤당 종가’에서는 소 금과 설탕을 함께 넣어 만들었다.
시루떡의 또 다른 종류인 맞편은 ‘학봉 종가’와 ‘퇴계 종 가’에서만 사용하고 있으며, 그 조리법과 용어의 의미는 다 음과 같다. ‘학봉 종가’에서는 멥쌀가루(1말; 10되)와 찹쌀가 루(2되)를 8:2 비율로 섞어 “콩고물-쌀가루(1~1.5 cm)-고명 (대추채, 밤채, 검정 청태콩)-쌀가루(1~1.5 cm)-콩고물” 순으 로 켜켜이 쌓아 만들고, ‘퇴계 종가’의 경우 멥쌀만 사용하 여 쌀가루를 만들어 “콩고물-쌀가루(2 cm)-고명(대추채, 밤 채)-쌀가루(2 cm)-콩고물” 순으로 쌓아 쪄낸다. ‘맞편’의 ‘맞-’ 은 명사 앞에 붙어 ‘마주 대하여 하는’ 또는 ‘서로 엇비슷한’ 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써(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a) 쌀가루와 콩고물 켜를 위, 아래로 마주 보게 하고 사이에 고명을 넣어 쪄내는 떡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안동 지역의 떡을 조사한 Yoon (1982)의 연구에서 맞편은 꿀물을 넣은 쌀가루를 찜통에 안 치고 대추, 석이버섯, 밤, 무 등의 고명을 넣고 다시 쌀가루 를 놓아 만드는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유일하게 맞 편을 사용하는 안동 지역 ‘학봉 종가’와 ‘퇴계 종가’의 재료 및 조리법과 유사한 점으로 나타나, 지역 내에서 전해진 떡 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또한 맞편과 더불어 ‘학봉 종가’에 서는 쑥편, ‘퇴계 종가’에서는 당귀잎편이 각각 올라간다. 쑥 편은 데친 쑥을 곱게 다져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은 쌀 가루에 넣어 버무린 후 콩고물과 켜를 이뤄 쪄낸다. 당귀잎 편은 데친 당귀잎을 햇볕에 바짝 말려 믹서로 갈아 당귀잎 가루로 만들어 멥쌀가루에 섞은 후 쌀가루 위, 아래에 콩가 루를 뿌려 찐 떡이다. 이 조리법은 1827년「Imwonsibyukji (林園十六志)」-「Jeongjoji (鼎俎志)」(Seo YG 1827)의 ‘당 귀병방(當歸餠方)’에서 당귀잎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내어 멥 쌀가루와 섞어 만드는 조리법과 일치한다. 한편, ‘서애 종가’ 에서 본편으로 쌓는 나물편은 ‘학봉 종가’와 ‘퇴계 종가’의 맞편과 조리법이 같으며, 사이에 들어가는 고명이 ‘편’의 이 름처럼 상추, 팥잎, 무채와 같은 나물이 들어가는 차이점이 있다.
대전광역시 서구 ‘탄옹 종가’는 25 종가 중 유일하게 흑임 자편을 만들고 있으며,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4:1로 섞은 쌀 가루와 흑임자고물을 2 cm 두께로 켜켜이 쌓아서 만든다.
기타 본편
종가에서는 본편에 주로 사용하는 시루떡 외 증편, 콩고물 인절미, 청태콩고물인절미, 쑥떡을 각각 사용하고 있었다 <Table 12>. 우선 증편은 전남 해남군 ‘고산 종가’는 직접 만들었고, 경북 상주시 ‘우복 종가’는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 었다. 증편은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은 반죽을 일정 시간 발효시켜 찜통에 쪄낸 떡으로 반죽에 술을 넣음으로서 노화 속도가 느려져 쉽게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장성이 좋 아 여름철에 많이 만들어 먹는 떡이다(Yoon 2008;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b). 증편을 나타내는 명칭 은 지역마다 다른데 ‘고산 종가’에서는 기정떡으로 불린다.
이 종가의 증편 조리법은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은 묽은 반 죽을 아랫목에 담요를 덮어 발효시킨 후 3배 정도 부풀면 틀 (가로 20 cm, 세로 10 cm)에 담고 대추와 흑임자 고명을 올 려 쪄내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증편은 Mang & Lee(1988) 의 연구처럼 찐 떡으로 구분되는데 불에 올려 쪄내는 최종 단계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나 가열해서 쪄내 기 전에 술을 넣어 발효시키는 제조 과정을 기준으로 할 경 우, 부푸는 떡(Park 1994) 또는 발효 떡(Lee 1998)으로 분 류하는 경우도 있다. 증편 외에 누룩으로 쑨 죽 또는 막걸리 로 발효시켜 부푼 반죽으로 만든 떡의 종류로 고 조리서에 상화라는 떡이 기록되어 있다. 상화는 막걸리로 부풀린 밀가 루 반죽에 소를 넣어 쪄낸 떡으로 쌀가루로 만든 증편과 주 재료에서 큰 차이가 있다.「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 (Baek DH ed. 2006)의 ‘상화법’은 부풀린 밀가루 반죽에 채 썬 오이와 박, 가늘게 찢은 석이버섯, 표고버섯, 참버섯을 간 장으로 양념한 소를 넣어 만들거나, 바쁜 여름에는 거피팥가 루에 꿀을 섞어 만든 소를 넣고 쪄낸다. 또한「Buinpilji (婦 人必知)」(Lee et al. ed. 2010)의 ‘상화병’은 부푼 반죽에 거 피팥가루에 꿀을 섞은 소를 넣어 만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 다. 여기서「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을 편역한 Baek(2006)은 ‘상화법’을 같은 문헌에 나온 ‘만두법’과 차이가 있는 음식으로 보고 ‘상화법’은 찐만두, ‘만두법’은 군만두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문헌의 ‘상화법’ 는 찐만두보다 오늘날 밀가루와 물을 섞은 반죽에 막걸리 대 신 베이킹파우더나 드라이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후 안에 채소 또는 팥소를 채워 쪄낸 음식인 찐빵과 더 유사한 것으 로 사료된다. 이와 관련하여 Kim & Lee(1986)은 상화를 오 늘날 호빵의 일종으로 보고하였는데, 호빵은 특정 기업에서 상품화하기 위해 만든 용어로서 국어사전에 찐빵으로 표기 되어 있어(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a) 올바른 표현으로 정정(訂正)하고자 한다. 한편, 「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과 비 슷한 시기에 편찬된 한글 조리서인 Choi’s Eumsigbeob (崔 氏 飮食法)」(Haeju Choi’s 1600s)(Park CL 2015)에는 “막 걸리를 넣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채소를 넣고 어 레미에 담아 찐 후 초간장과 함께 내는 음식”으로 ‘교의상화 ’라는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음식은 Baek(2006)이 찐만 두라고 설명한「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의 ‘상화법’보다 오늘날 찐만두에 더 가까운 조리법 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반가 여성이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편 찬한 것으로 역사적 사료가 깊은 두 조리서에 유사한 명칭 으로 기록된 두 음식은 밀가루로 반죽해서 안에 채소 소를 넣는 공통점이 있지만, 주정으로 발효시키는 단계 여부에 따 라 오늘날의 다른 음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두 조리서에 실린 다른 유사 음식에 대하여 추가적인 고찰 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편찬 지역의 식문화가 담겨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비교와 대조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경기도 의정부시 ‘서계 종가’와 전남 보성군 ‘죽천 종가’는 콩고물인절미, 경기도 광명시 ‘오리 종가’는 쑥떡을 사용하 는데 모두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고산 종가’는 청태콩 고물인절미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조리법을 살 펴보면, 찹쌀가루에 물을 내려 찜통에 찌는 과정은 일반 시 루떡과 같다. 고물로 사용되는 청태콩을 볶아 껍질을 벗긴 후 가루로 만들어 준비한다. 찜통에 찐 떡을 넓은 쟁반에 청 태콩가루를 뿌려가면서 알맞은 두께로 손으로 늘려 모양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인절미는 충분히 불린 찹쌀을 쪄서 안반 이나 절구에 담아 떡메로 친 뒤 겉에 고물을 묻혀 만들어 친 떡으로 분류되는데(Yoon 1998), ‘고산 종가’의 청태콩고물인 절미는 떡메로 치는 과정 대신에 손으로 밀어 모양을 만드 는 조리법을 택하고 있어서 찐 떡으로 분류가 된다.
‘오리 종가’는 쑥떡을 만들어 사용하지만 문헌에 조리법은 나오지 않으며, ‘죽천 종가’는 절편을 방앗간에 주문해서 올 리고 있다. 절편은 Lee et al. (2015)가 연구한 경북 봉화군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에서도 시루떡 대신 잔절편이라 부르는 절편을 본편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2)웃기편
송편
송편은 떡을 찔 때 소나무의 솔잎을 이용한데서 비롯되었 다. 고문헌에는 ‘송병(松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멥쌀가루 로 익반죽한 후 속을 파서 소를 넣어 모양을 잡아 찐 떡이다 (Park 1994). 송편은 크게 흰송편(白), 쑥송편(靑), 송기송편 (赤)으로 반죽의 색을 다르게 하여 분류하고, 안에 들어가는 소의 종류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된다. 흰 멥쌀가루로 만든 떡 을 송편이라 하였고, 멥쌀가루 반죽에 송기(소나무 속껍질), 모시잎, 쑥 등을 넣어 색을 나타낸 떡은 기타 송편으로 분류 하여 <Table 13>과 <Table 14>에 종가별 재료와 조리법을 재정리하였다.
경기도 고양시 ‘류씨 종중’은 송편을 방앗간에 주문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경북 안동시 ‘서애 종가’는 설탕에 버무린 청태콩 소를 넣어 송편을 빚었다. 상주시 ‘우복 종가’는 찹 쌀가루 7, 멥쌀가루 3 비율로 섞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콩 가루와 검은 깻가루를 물엿과 섞어 만든 소를 넣어 찐다. 떡 을 쪄낸 후 참기름에 물을 섞어 떡에 발라 서로 달라붙지 않 게 준비한다. 고령군 ‘점필재 종가’는 찹쌀가루와 멥쌀가루 를 반반씩 섞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콩고물 소를 넣어 쪄 내 송편을 만든다. 이 종가는 (흰)송편 외에 색을 달리하여 적색의 송기송편과 청색의 모시송편을 만드는데, (흰)송편에 만 참기름을 바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주시 ‘양민 공 종가’는 거피팥고물에 꿀을 섞어 소를 만들고 멥쌀가루 반죽 안에 넣어 송편을 빚는다. 모양 빚은 것을 찜통에 솔잎 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송편이 서로 붙지 않게 쪄낸다. 다 익으면 물에 담가 솔잎을 떼어내고 참기름을 발라 준비한다.
이 종가는 웃기편으로 송편을 만든 가문 중 솔잎을 사용한 유일한 곳으로 나타났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함께 넣으면 솔잎 향과 모양이 송편에 베어 풍미가 깊어진다. 성주군 ‘응 와 종가’는 방앗간에 주문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송편으로 사용한 떡 종류는 송기송편, 모시잎송편, 쑥 송편이 있다. 송기가루는 송기를 물에 불려 푹 삶고 칼로 곱 게 다져서 반죽에 넣거나 그늘에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쌀 가루와 섞어서 사용한다. 모시잎과 쑥은 끓는 물에 한 번 데 쳐서 물기를 짜고 곱게 다져서 사용한다. 오늘날 송편은 명 절 또는 선물용 떡으로 인기가 좋으며 자색고구마가루, 단호 박가루, 백련초가루, 흑미가루, 녹차가루 등 천연식용색소를 활용하여 맛뿐만 아니라 화려한 색을 표현하여 송편을 만들 고 있다.
송편이 기록되어 있는 고 조리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8년「Buinpilji (婦人必知)」(Lee et al. ed. 2010)에 나오 는 ‘송편’은 부드럽게 하기위해 쌀반죽을 찐 후 쳐서 계피, 말린 생강가루, 호두, 잣가루를 섞은 소를 넣어 모양을 빚고 솔잎과 함께 쪄낸 후 참기름을 바르는 떡이다. 이 떡의 조리 법이 찌고, 치고, 다시 찌는 과정을 반복한 것으로 보아 「Joseonmussangsinsigyolijebeob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에 나온 ‘재증병(再蒸餠)’의 조리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재증병 조리법은 “송편을 만들 때 (쪄낸) 흰떡을 쳐서 송편을 빚고 다시 쪄내어 냉수에 씻어 먹으면 송편이 질기 고 단단하여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찌는 조리과정을 두 번 반복하고 치는 과정을 추가하여 식감을 조절한 것으 로 사료된다. 이 외「Gyuhabchongseo (閨閤叢書)」(Jeong YW ed. 2008)와「Siuijeonseo (是議全書)」(Lee HJ ed. 2004) 등에도 송편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웃기편으로 송 편을 사용하는 종가의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 기→찌기→참기름 바르기”로 종합해서 요약할 수 있다.
경단
웃기편으로 경단을 사용하는 종가는 총 9곳으로 모두 영 남 지역이며, 5곳에서 경단, 2곳에서 쑥경단, 1곳에서 흑임자 경단과 거피녹두경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Table 15>에 재료와 조리법을 재정리하였다. 경단은 찹쌀가루에 소 금을 넣고 익반죽하여 끓는 물에 삶은 후 여러 가지 고물을 묻혀 만든 떡으로 삶은 떡의 일종이다. 경단을 웃기편으로 올리는 종가 5곳은 경북 안동시 ‘서애 종가’, ‘보백당 종가’, ‘농수 종가’와 영덕군 ‘갈암 종가’, 성주군 ‘응와 종가’이다.
‘서애 종가’의 경단은 지름 4 cm 크기의 반죽에 거피팥고 물 소를 넣고 찐 후 대두콩고물과 거피팥고물을 겉에 묻혀 만들고, ‘갈암 종가’는 지름 4 cm 크기의 반죽에 방앗간에서 쪄온 검은콩과 노란콩에 꿀을 섞어 만든 소를 넣고 모양을 빚어 찜통에 쪄낸 다음 콩가루를 묻혀 만든다. 즉, 두 종가 의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기→찌기→고물 묻 히기”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보백당 종가’의 경단은 지름 5 cm 크기의 반죽을 빚어서 끓는 물에 삶은 후 콩가루를 겉 에 묻혀서 만든다. 또한 ‘응와 종가’의 경단은 다른 종가보 다 조금 작은 지름 2.5 cm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끓는 물에 삶은 후 거피땅콩 다진 것과 볶은 검은깨를 골고루 묻혀 완 성한다. 이처럼 찜통에 찌지 않고 끓는 물에 삶은 후 겉에 고물을 묻히는 경단 조리법을 두 종가에서 적용하고 있었다. 즉, 조리법을 요약하면 “익반죽 모양 빚기 삶기 고물 묻히기” 로 쪄서 만든 두 종가와 익히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농 수 종가’는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시 ‘학봉 종가’와 ‘퇴계 종가’에는 부재료 쑥을 넣어 반죽 색을 다르게 한 쑥경단이 있다. 삶아서 물기를 뺀 후 곱게 다진 쑥을 찹쌀반죽에 넣어 반죽을 청색으로 한 것 외 에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기→찌기→고물 묻히기” 순의 조리법으로 ‘서애 종가’와 ‘갈암 종가’의 경단 조리법과 같 았다.
‘한훤당 종가’에서는 흑임자경단과 거피녹두경단을 올리는 데 “익반죽→모양 빚기→찌기→꿀에 담그기→고물 묻히기” 로 고물을 묻히기 전에 꿀에 담그는 과정이 다른 종가의 경 단 조리법과 다르다. 이는 경단에 소를 넣지 않기 때문인 것 으로 보인다. 경단에 고물을 묻히기 전에 꿀을 바르는 조리 법은 1800년대 말 경북 상주시 반가 조리서로 알려진 저자 미상의 「Siuijeonseo (是議全書)」(Lee HJ ed. 2004)의 경 단 조리법과 같으며 여기에도 소를 넣지 않았다. 조리법으로 “경단은 찰가로 반 야 밤만치 부 여 물 을 살마 건저 발너 콩가로 무쳐쓰라(경단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밤 정도의 크기로 빚어 물이 끓을 때 삶아 건져서 꿀을 바르 고 콩가루를 묻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 조사된 25 종가 중 영남 지역 9 종가만 웃기편으 로 경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9 종 가의 경단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기→찌기→ 고물 묻히기”, “익반죽→모양 빚기→삶기→고물 묻히기”, “ 익반죽→모양 빚기→찌기→꿀에 담그기→고물 묻히기”로 소 의 유무, 익히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3가지 조리법으로 각 종가마다 차이가 있었다.
Lee & Maeng(1987)은 삶은 떡의 종류를 주재료에 따라 멥쌀가루로 만든 송편과 찹쌀가루로 만든 경단, 단자로 분류 하였다. 이 중 찹쌀가루로 만든 경단과 단자에 대하여 찹쌀 반죽을 둥글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고물을 묻히면 경단이 고, 삶은 후 치대어 속을 파내 소를 넣어 모양을 만든 다음 겉에 고물을 묻히면 단자라 하였다. 즉, 경단 조리법은 “익 반죽→모양 빚기→삶기→고물 묻히기”이며, 단자 조리법은 “익반죽→삶기→치기→소 넣기→모양 빚기→고물 묻히기” 로 치는 과정이 있는지 여부와 소의 유무에 따라 명칭의 차 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잡과편
잡과편의 ‘잡과(雜果)’는 “다식이나 떡을 만들 때, 함께 섞 는 곶감, 대추, 밤, 호두 따위의 여러 가지 과일”로 정의하 며, “짓이겨서 소로 사용, 채 쳐서 고물로 사용, 쌀가루에 섞 어서 사용”과 같이 다양한 조리방법에 응용이 가능하다(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a). 따라서 잡과편은 이러한 ‘잡과’를 ‘채 쳐서 고물’로 사용한 떡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경단과 마찬가지로 영남 지역의 종가 중 10곳에서만 웃기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재 료와 조리법을 재정리하였다<Table 16>.
우선 떡을 익히는 방법에 따라 분류해보면, 9 종가에서 찜 통에 넣어 찌는 조리법을 활용하였으며, 나머지 1곳은 삶아 서 만들고 있었다. 재료의 따라서는 소를 넣은 7 종가와 넣 지 않은 3 종가로 나눌 수 있다. 익반죽에 소를 넣어 만든 7 종가의 공통된 잡과편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 기→고명 묻히기→찌기→참기름 또는 꿀 바르기”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소를 넣지 않은 3 종가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 다. ‘우복 종가’는 찹쌀가루로 익반죽을 만들어 지름 5 cm로 빚은 떡을 삶은 후 다진 밤과 대추에 굴려서 완성한다. 삶은 후 고명을 묻히는 잡과편은「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 (Baek DH ed. 2006)의 소를 넣지 않고 삶은 후 고명을 묻 히는 ‘잡과편법’ 조리법과 같다. 원문을 보면, “ 되 게 라 지지 조악 치 사 라 닉게 마 에 곶감 과 밤 모니와 대츄 즛두드려 무쳐 쓰라(찹쌀가 루를 되직하게 반죽하여 지지는 주악떡처럼 썰어 익도록 삶 아 꿀에 곶감과 밤 삶은 것, 대추, 잣을 짓두드려 묻혀 쓰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복 종가’의 잡과편과「Eumsigdimibang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의 ‘잡과편법’ 조리법은 본 연구에서 요약한 경단의 조리 순서와 형태가 동일하며, Kang(2013)도 경단류로 구분하였다. 다음으로 경북 성주군 ‘응와 종가’는 소를 넣지 않는 대신, 크기를 2.5 cm로 작게 만들고 앞서 소개한 7 종가와 조리법과 같이 쪄서 만드는 것 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경남 함양군 ‘일두 종가’의 잡과 편 조리법은 찹쌀을 불려서 한번 찌고 물과 설탕을 넣어 한 번 더 찐다. 찹쌀이 완전히 익으면 기계에 넣고 치댄 후, 지 름 2 cm로 작은 크기의 떡을 만들어 석이버섯채, 밤채, 대추 채를 묻힌다. 찹쌀반죽이 완전히 익었기 때문에 겉에 묻힌 고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찜통에 넣고 살짝만 쪄낸다. 삶은 후 치대는 과정이 들어간 이 조리법은 소를 넣 지 않은 단자 조리법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잡과편은 익반죽에 소를 넣어 모양을 빚은 후 고 물을 묻히는 형태가 경단, 단자와 같다. 삶고 찌는 습열조리 방법으로 떡을 익히는 과정 또한 모두 일치한다. 그러나 경 단과 단자는 가루 고물을 묻히고, 잡과편은 채 썬 과실의 형 태를 고물로 사용하여 고물의 형태적 차이에서 구분이 명확 하다. 또한 오늘날 종가에서는 잡과편의 고물이 대추채, 밤 채, 석이채로 한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쉽 게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가지를 섞어서 사용하면 색 을 조화롭게 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 종 가에서 모두 고물로 사용하는 대추는 색이 강해 웃기편에 묻 혀 적색(赤色)을 표현하는데 그 활용도가 매우 높은 고물로 볼 수 있다.
부편
웃기편으로 부편을 사용하는 종가는 영남 지역 6곳으로 재 료와 조리법을 표로 재정리하였다<Table 17>. 이 6 종가 중 ‘농수 종가’는 방앗간에 주문해서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5 곳은 모두 동일한 조리법으로 부편을 만들고 있었다. 조리법 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기→고명 올리기→찌기→고 물 묻히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찐 떡으로 분류한다. 반죽은 4~5 cm 크기로 빚고 그 위에 고명으로 1/4 등분한 대추를 2 조각씩 올렸다. 소와 고물은 ‘학봉 종가’와 ‘갈암 종가’에서 대두콩고물을 사용하였으며, ‘퇴계 종가’, ‘보백당 종가’, ‘한 훤당 종가는 거피팥고물을 사용하였다.
부편은 위 6 종가 외에 Lee et al.(2015)이 연구한 경상북 도 봉화군의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에서도 웃기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종가의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대 두콩고물)→모양 빚기→고명 올리기(1/4 등분한 대추 2조각) →찌기→고물 묻히기(카스텔라→거피녹두고물)”로 영남 지 역 6곳 종가와 동일하였다. 부편은 고명으로 올리는 대추 2 조각이 떡을 상징하며 다른 떡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부편에 대한 고 조리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농촌진흥 청에서 발간한 「한국의 전통향토음식」경상북도와 경상남 도 편에서 부편을 지역 향토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경북에 서는 찹쌀가루로 익반죽하여 콩가루와 계피가루를 섞은 소 를 넣고 1/4 등분한 대추 2조각을 고명으로 올려 쪄낸 다음 팥고물을 묻혀 만들고(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d), 경남에서는 찹쌀가루로 익반죽하여 녹두고물과 계피 가루를 섞은 소를 넣고 곶감 2조각을 올려 쪄낸 뒤 콩고물 을 묻혀 만든다(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e). 이처럼 부편은 경상도 지역의 떡이며 특히, 경남 밀양시에서 즐겨 먹는 떡이기도 하다(Yoon 1998; Kang et al. 2000;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b).
깨구리, 쑥구리
깨구리와 쑥구리는 영남 지역 5곳에서만 만들고 있었다. 깨구리를 사용하는 경북 안동시 ‘학봉 종가’와 ‘서애 종가’, 상주시 ‘우복 종가’, 영덕군 ‘갈암 종가’ 4곳과 쑥구리를 사 용하는 경남 함양군 ‘일두 종가’ 1곳의 재료 및 조리법을 재 정리하였다<Table 18>.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서 떡의 명칭 이 결정되기 때문에 깨구리에는 깨(흑임자), 쑥구리에는 쑥 이 사용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깨구리를 사용하는 4 종가의 조리법을 종합해보면, “익반죽→모양 빚기→찌기(삶 기)→고물 묻히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조리법은 앞서 밝 힌 일반적인 경단 조리법과 유사하다. 따라서 볶은 흑임자가 루를 고물로 묻힌 떡인 깨구리는 흑임자경단으로도 볼 수 있 다(Lee et al. 2015). 또한 ‘일두 종가’의 쑥구리는 찌고 친 후 소를 넣지 않고 고물을 묻혀 만드는데 일반적인 단자 조 리법과 소의 유무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경우에는 종가에 서의 조리법 변형으로 간주하고 쑥구리와 단자의 관계를 고 조리서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쑥구리는 18~19세기 부터 있었던 명칭이다. 1809년「Gyuhabchongseo (閨閤叢書)」 (Bingheogak Lee’s 1809)에 나온 ‘신감 단 (승검초단자)’ 조리법에 “쑥구으리 치 마(쑥구리 같이 삶아)”라는 한 글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이 지은「Ijogungjeongyolitonggo (李 朝宮廷料理通考)」(Han HS et al. 1957)에는 쑥구리를 단자 와 함께 붙여 써 ‘쑥구리단자’로 기록되어 있다. ‘-구리’ 앞 에 식재료 명칭이 붙어서 만들어진 떡을 고 조리서에서 살 펴보면, 1600년대 저자미상의 조리서인「Yolog (要錄)」 (Anonymous 1600s)(Yoon SJ ed. 2008)에 ‘쇄백자(碎栢子)’ 가 있는데, 이는 오늘날 잣구리에 해당된다. 깨구리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어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사 료된다.
인절미
인절미는 불린 찹쌀을 쪄서 안반이나 절구에 넣어 치대고 잘라 모양을 만든 다음 고물을 묻힌 친 떡의 일종으로(Yoon 1998), 겉에 묻히는 고물에 따라 세부 명칭이 달라진다. 인절 미를 사용하는 종가는 총 4곳으로 조사되었고, 콩고물을 묻 힌 콩고물인절미와 거피팥고물을 묻힌 거피팥고물인절미로 나눌 수 있다. 콩고물인절미는 경기도 의정부시 ‘서계 종가’ 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한훤당 종가’, 경남 함양군 ‘일두 종 가’에서 사용하고 있었고, 거피팥고물인절미는 ‘한훤당 종가’ 와 경북 경주시 ‘양민공 종가’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문헌에 정리된 각 종가의 인절미의 재료와 조리법을 표로 재정리하 였다<Table 19>.
종가의 인절미 조리법은 “찹쌀 찌기→치기(→고물 묻히기) →자르기(→고명 올기기) 고물 묻히기”로 요약할 수 있다. 각 종가별로 고명과 고물의 사용 여부는 차이가 있었다. 경기도 의정부시 ‘서계 종가’는 콩고물인절미를 방앗간에 주문해서 이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종가에서는 모두 직접 만들고 있었 다. 특히, ‘한훤당 종가’는 콩고물과 거피팥고물을 사용하여 두 종류의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찹쌀 반죽의 인절미 맛은 겉에 묻히는 고물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종가 에서는 고물을 묻히기 전에 대추와 밤을 고명으로 올려 맛 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더불어 영양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절편
친 떡의 일종인 절편을 웃기편으로 사용하는 종가는 영남 지역 4곳으로 조사되었다. 멥쌀가루로 만든 흰색 절편 외에 부재료로 쑥(靑), 모시잎(靑), 송기(赤)를 넣어 다른 색의 절 편을 만들고 있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한훤당 종가’는 흰 절편과 모시잎절편, 고령군 ‘점필재 종가’는 흰절편과 송기 절편, 경주시 ‘양민공 종가’는 흰절편과 쑥절편을 만들고 있 어 2개씩의 절편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덕군 ‘갈암 종가’는 쑥절편 1가지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Table 20>. ‘점필재 종가’와 ‘갈암 종가’는 방앗간에서 절편을 맞춰 사용하고 있 었고, ‘한훤당 종가’와 ‘양민공 종가’는 직접 절편을 만들고 있어 그 조리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멥쌀가루를 주재료로 하여 “찌기→치기→자르기→떡살 찍 기”로 2 종가 모두 같은 조리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쑥절 편과 모시잎절편은 끓는 물에 데치고 물기를 짜서 다진 쑥 과 모시잎을 반죽 치는 과정에 넣어 청색의 절편 반죽으로 만든다. 송기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댄 반죽을 자를 때 참기름을 묻혀가며 두께 1 cm, 폭 7 cm 크기로 잘라 떡 살로 문양을 찍어내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절편은 다른 웃 기편처럼 낱개로 되어 있지 않아, 편편한 시루떡 본편 다음 첫 번째 웃기편으로 쌓는 특징이 있다.
멥쌀가루로 만드는 절편의 가장 큰 특징은 떡살 모양을 내 는 것이다. 절편은 떡살을 찍으면서 그 자체로 떡이 완성되 지만, 떡살을 찍지 않으면 다른 떡으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즉, 절편의 기본형인 흰떡을 다른 떡으로 변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흰떡 반죽 안에 콩고물 또는 거피팥고물 소를 넣고 반으로 접으면 개피떡 또는 바람떡이 되고, 찐 콩을 고명으 로 올리면 경상남도 향토음식인 밀비지떡, 용트림 모양으로 만들어 용 입에 대추와 밤을 물리면 강원도 향토음식인 용 떡, 손가락 굵기로 잘라 기름을 바르면 오늘날 가래떡의 원 형인 골무편이 된다(Yoon 1998;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b, 2008e).
전
지진 떡의 일종인 전은 경기 지역 3곳, 충청 지역 3곳, 호 남 지역 1곳, 영남 지역 11곳에서 웃기편으로 사용하고 있다. 총 18곳으로 웃기편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떡이며 간단한 조리과정이지만 지역별로 재료와 형태, 조리법이 약간씩 차 이를 보인다<Table 21>.
경기 지역 종가와 충청 지역 종가는 “익반죽→모양 빚기(둥 글게)→지지기→고명 올리기” 순으로 조리법을 요약할 수 있 다. 종가마다 고명은 붉은 대추채와 청색의 미나리 잎 또는 쑥갓 잎을 선택해서 사용하였다. 충남 논산시 ‘명재 종가’는 대추채를 十자 모양 고명을 올렸으나 번거로워서 조사 당시 는 생략하고 찹쌀반죽을 익반죽하여 팬에 지져 익힌 후 설 탕을 뿌려 준비하였다. 또한 경기도 파주시 ‘방촌 종가’와 고 양시 ‘류씨 종중’은 지름 15~20 cm 크기로 전을 넓게 지지 는데, 이는 전을 본편 바로 위 첫 번째 웃기편으로 올려 시 루떡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덮는 역할을 한다.
호남 지역 ‘죽천 종가’의 전은 웃지지라 부르며 찹쌀가루 와 멥쌀가루를 8:2 비율로 섞은 익반죽을 기름 두른 팬에 올 려놓고 지름 10 cm 크기로 펴서 지진 후 一자로 가운데에 넣은 거피팥 소를 감싸도록 두 번 접어 위에 고명으로 당근 잎을 얹어 만든다. 이는 농촌진흥청이 발간한「한국의 전통 향토음식」서울·경기도(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a)와 전라남도(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c) 편에서 동일한 음식명으로 지역별 각기 다른 조리법을 가진 향토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선 서울·경기도 편에서 ‘웃 찌지’는 찹쌀가루에 쑥색(쑥즙), 분홍색(오미자물), 흰색(물) 으로 익반죽하여 둥근 모양으로 지진 뒤 곶감채, 대추채를 고명으로 얹어 만든 떡을 일컫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지진 떡인 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전라남도 편의 ‘웃찌지’는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둥근 모양으로 팬에 지지다가 팥소를 넣고 말아서 양끝을 눌러주고 대추채와 석 이버섯채로 고명을 붙이는 조리법이다. ‘죽천 종가’의 웃지지 는 전라남도 편의 향토음식 ‘웃찌지’와 조리법이 유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향토음식은 지역의 생활 행태나 의 례행사와 같은 지역적 특성이 바탕이 된 특유의 조리법을 전 승하기 때문에 전남 보성군에 위치한 ‘죽천 종가’의 웃지지 는 찹쌀가루에 멥쌀가루를 섞는 주재료와 고명의 종류 변화 외에 전남 고유의 조리법이 남아있는 지역 향토음식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지역 안동시 종가 5곳 모두 전을 사용하는데, 그 중 ‘농수 종가’는 2000년부터 다른 떡과 마찬가지로 방앗간에 주문하여 제사 당일 쌓기만 하였다. 이외 4곳의 조리법은 “익 반죽→모양 빚기→지지기→설탕 또는 꿀 바르기”로 요약할 수 있다. ‘보백당 종가’를 제외한 나머지 3곳에서 고명을 올 리는 대신 쌀가루를 익반죽할 때 대추 다진 것, 꽃 잎 다진 것을 함께 넣어 모양을 잡아 지진 떡을 전이라는 명칭 대신 ‘학봉 종가’와 ‘퇴계 종가’는 국화전, ‘서애 종가’는 화전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이 3 종가의 전은 경기, 충청 지역과 다 르게 지름이 4~6 cm로 작아서 익힌 후 서로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탕을 뿌리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반면, 일 반 쌀가루 익반죽을 모양 잡아 지진 후 대추채 고명을 올리 는 ‘보백당 종가’의 경우 경기도 파주시 ‘방촌 종가’와 같이 지름 20 cm로 넓게 지지는데, 설탕 대신 꿀을 바르고 쌓을 때 반달모양이 되게 반으로 접어 세 번째 웃기편으로 올린 다. 결국, 전을 넓게 만든 이유가 경기 지역과 같이 본편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덮기 위함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대 구광역시 달성군 ‘한훤당 종가’의 화전 또한 ‘학봉 종가’, ‘퇴 계 종가’, ‘서애 종가’처럼 익반죽에 노란 장미꽃잎을 넣어 6 cm 크기로 모양을 빚어 그대로 익히는데, 여기에는 경기, 충 청 지역 종가의 고명 올리는 과정과 영남 안동시 종가의 꿀 을 바르는 과정까지 앞서 설명한 조리과정을 모두 종합한 조 리법으로 볼 수 있다. 경주시 ‘양민공 종가’는 전 조리법 중 익반죽을 지지는 것 외에 삶고 치대는 과정이 추가되는데, 이는 단자 조리법과 일부 유사하며 식감을 조절하기 위해 선 택한 방법으로 사료된다.
주악
주악을 사용하는 종가의 재료와 조리법을 표로 재정리하 면 <Table 22>와 같다. 궁중에서 조악(造岳), 반가와 민가에 서 주악으로 불리는 이 떡은 기름에 지져서 익히는 지진 떡 의 일종이다(Yoon 1998; Jeong 2003). 주악을 웃기편으로 올리는 종가는 총 13곳으로 각 종가별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파주시 ‘방촌 종가’, 경북 영 덕군 ‘갈암 종가’, 고령군 ‘점필재 종가’, 성주군 ‘응와 종가’ 는 주악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영남 지역 중 안동시 5 곳과 상주시 1곳은 조약으로 부르고 있었으며, 충남 논산시 ‘사계 종가’, 경북 경주시 ‘양민공 종가’와 경남 함양군 ‘일두 종가’는 조악으로 부르고 있었다. 현재 표준어는 주악이며, 조악은 주악의 옛말, 같은 말로 조각(角), 각서(角黍)라 한다 (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a). 방앗간에 주문하는 안동시 ‘농수 종가’를 제외하고 12곳에서 는 직접 만들고 있었다.
종가 12곳의 조리법은 “익반죽→소 넣기→모양 빚기→지 지기(튀기기)→설탕 뿌리기(꿀 바르기)”로 요약할 수 있다. 소를 넣지 않는 ‘점필재 종가’를 제외하고 11곳에서는 거피 팥고물 또는 콩고물, 검은콩을 소로 넣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악은 반죽 안에 소를 넣어 모양을 빚는 떡인 송편과 유사 하지만 익히는 조리방법과 조리 후 보관 방법에서 차이가 난 다. 송편은 물에 삶는 습열조리방법으로 익히기 때문에 겉에 수분이 남아있어 부드러운 식감을 주는 반면, 주악은 기름에 지지는 건열조리방법으로 겉이 바삭하다. 또한 떡을 쌓기 전 에 잠시 보관할 때 서로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송편 은 참기름을 바르고 주악은 설탕을 뿌리거나 꿀을 바르는 특 징이 있다.
주악을 익히는 방법으로 11곳에서는 ‘지지다’는 표현을 사 용하였고, ‘사계 종가’ 1곳에서만 ‘튀긴다’는 표현을 사용하 였다. ‘지지다’의 조리법은 중·저온의 온도에서 적은 기름 을 가지고 조리하는 방법으로 ‘굽는다’는 표현과 유사한 것 으로도 볼 수 있는데(Lee et al. 2015), 더 정확하게는 다량 의 기름을 가지고 높은 온도에서 단시간에 조리하는 방법인 ‘튀김’의 조리법과 ‘굽기’의 중간 단계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앞서 설명한 전을 만드는 모든 종가의 조리법 에도 ‘지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기름을 사용하 여 조리를 하는 떡인 유전병류의 대표적인 조리용어로 정리 할 수 있다. 1924년「Joseonmussangsinsigyolijebeob (朝鮮無 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의 ‘주악(조각병, 角餠)’ 조리법에 “ 는 기름에 지지면 붓푸러 오르고(끓는 기름에 지지면 부풀어 오르고)”와 ‘대초주악(조조각병, 棗角餠)’ 조리 법에 “기름을 팔팔 리고 느어익히되(기름을 팔팔 끓이고 넣어 익히되)”로 1934년「Joseonyolijebeob (朝鮮料理製法)」 (Bang SY 1937)의 ‘주악’ 조리법에 “펄펄 끓는 기름에 넣고 지져내어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악과 대초주악의 조리법 에서 기름이 끓는 것과 떡이 부풀어 오르는 상태 그리고 팔 팔 끓는 기름에 떡을 넣어 익힌다는 설명은 고온의 다량 기 름으로 조리하는 ‘튀김 방법을 사용한 지진 떡’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기타 웃기편
기타 웃기편으로 분류한 백편과 증편은 편의 분류로 보면 본편에 해당하지만 가문에 따라 웃기편으로도 분류한다. 웃 기편으로 사용한 종가의 백편과 증편 조리법은 <Table 23> 에 재정리하였다.
백편을 사용하는 경북 안동시 ‘농수 종가’와 영덕군 ‘갈암 종가’는 방앗간을 이용하고 있어서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내 용은 문헌을 통해 알 수 없었다. 또한, 증편을 사용하는 종 가 중 경북 성주군 ‘응와 종가’도 문헌을 통해서 그 조리법 을 알 수 없었으며, 유일하게 직접 만들고 있는 경북 안동시 ‘서애 종가’의 증편 조리법과 특이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 다. 본편으로 증편을 사용하는 전남 해남군 ‘고산 종가’는 증 편틀에 넣어 넓게 쪄내는 반면, ‘서애 종가’에서는 웃기편으 로 사용하기 위해 숟가락을 이용하여 작은 크기로 떼어 쪄 내는 형태적인 차이점이 있다. ‘서애 종가’의 증편은 불린 멥 쌀에 소금을 넣어 가루로 빻고 설탕, 따뜻한 물을 넣은 후 막걸리를 부어 질척한 죽 형태의 반죽을 만든다. 25 에서 8 시간 정도 1차 발효시키고, 주걱으로 저어 거품을 빼준 후 실온에서 1시간 정도 2차 발효시킨다. 찜통에 베보자기를 깔 고 참기름을 바른 종지 위에 죽 형태의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담고 고명으로 대추채, 석이버섯채, 잣을 올려 쪄낸다. 익으면 종지를 떼고 초록색 감잎 위에 올려놓는다. 웃기편을 쌓을 때는 증편을 올린 감잎 그대로 쌓는 특징이 있다. 이처 럼 증편을 ‘고산 종가’처럼 틀에 넣어 한 번에 찌지 않고, ‘서 애 종가’처럼 묽은 반죽을 숟가락으로 작게 떠서 찌는 조리 법은 1800년대 「Gyuhab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s 1809)의 ‘증편’, 1827년「Imwonsibyugji (林園十六志)」 -Jeongjoji (鼎俎志)」(Seo YG 1827)의 ‘증병방(蒸餠方)’, 1854년「Yoon’s Eumsigbeob (尹氏 飮食法)」(Anonymous 1854) 의 ‘증편’, 1924년「Joseonmussangsinsigyolijebeob (朝鮮無 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의 ‘방울증편(영증병, 鈴蒸騈)’과 유사하다. 또한, ‘서애 종가’는 증편 반죽에 소를 넣지 않지만, 4개의 문헌에 기록된 증편 조리법에는 모두 소 가 들어가는데 팥고물, 계피가루, 후춧가루, 꿀을 기본으로 섞고,「Gyuhab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s 1809) 에는 생강가루를 추가로 넣어 볶은 후 동그랗게 모양을 만 들어 사용하였다. 볶은 거피팥 소를 넣는 방법도 독특하지만 소를 넣어 모양을 잡는 방법도 특이하다. 송편처럼 반죽에 소를 넣고 모양을 빚는 형식이 아니라 묽은 증편 반죽을 찜 통에 깔린 베보자기 위에 숟가락으로 떠 놓고 그 위에 소를 올린 후 다시 숟가락으로 증편 반죽을 떠서 덮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든 증편을 찜통에 찌면, 넓게 퍼진 납작한 증편 가 운데에 소가 도드라져 있는 모양이 완성된다. 이는 오늘날 만들어지는 방울증편과 유사한 ‘서애 종가’의 증편과 형태적 으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현장 조사를 통한 사례 연구
1)경기도 파주시 ‘장수 황씨 방촌 황희 종가’
종가 소개
‘방촌 종가’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49년 벼슬에서 물러 날 때까지 19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황 희(黃喜, 1363-1452) 선생을 중시조로 한다. 황희 선생의 본 관은 장수(長水), 호는 방촌(村), 시호는 익성공(翼成公)으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후세에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후에 세종의 묘정에 배향된 종묘배향공 신이며 국불천위(國不遷位)에 해당된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8b). ‘방촌 종가’는 경 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에 위치해있으며, 현재 종택은 남 아 있지 않고 황준하씨(21대, 종손과 6촌간)가 가택에서 생 활하며 제사 봉행과 묘소 관리를 하고 있다. 가택 옆에 자리 잡은 사당인 방촌황선생부조묘(村黃先生不廟)에서 음력 2월 8일(양력 2015년 3월 27일)에 황희 선생 불천위제사가 거행 되며 21대 종손 황두하씨, 묘하종중 회장 황재하씨(21대, 종 손과 6촌간) 등 후손들에 의해 봉행되었다. 기제사이기 때문 에 기일(정재일, 正齋日) 자정(0시)에 지내야 하지만 근래에 와서 참석하는 제관들의 편의를 위해 입재일(入齋日, 정재일 전날) 23시로 변경하였으며, 2015년에는 22시로 변경하여 제 사를 지냈다.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 비교
2015년 현장 조사의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은 <Table 24>에 제시하였고 2003년 문헌 고찰 결과와 비교하면 다음 과 같다. 본편인 거피팥시루떡은 방앗간에 주문하였고, 웃기 편인 전과 주악은 종가에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우선 거피팥시루떡을 편틀에 켜를 올릴수록 넓어지게 7켜 쌓는 다. 다음 15 cm로 넓게 펴서 번철에 지진 8개의 전을 4개는 4각 꼭지, 4개는 4면에 반쯤 걸쳐 얹고, 마지막 1개를 가운 데에 펴서 본편 위를 모두 덮어준다. 다음 거피팥고물 소를 넣은 주악을 기름에 지지고 설탕을 뿌린 후 전 가운데에 둥 글게 돌려서 1켜 담는다. 문헌조사 후 12년이 지난 현재에도 본편, 웃기편 모두 같은 종류의 떡과 형태로 만들고 있었다. 제사와 음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제관과 참여자들에게 는 떡과 과실 꾸러미를 만들어 하나씩 주었다.
2)전남 해남군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
종가 소개
‘고산 종가’는 조선 중기 문신이며 국문학의 대표 시조 시 인으로 본관은 해남(海南),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시호는 충헌공(忠憲公)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선생을 1725년부터 국불천위로 모시고 있다. 고산 선생의 고조부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1476-1543) 선생이 강진에서 해남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본관을 해남으로 삼았다. 종택 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남 윤 씨 녹우당’으로 사적 제167호이다. 녹우당 옆으로 고산 선생 과 어초은 선생의 불천위 위패를 서로 다른 사당에 모시고 있다. 어초은 선생은 문중불천위, 고산 선생은 국불천위에 해 당한다. 현장 조사를 위해 찾은 2015년 7월 26일은 음력 6 월 11일로 고산 선생의 불천위 제사일이다. 멀리서 참석하는 제관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18시 30분에 14대 종손 윤 형식씨를 중심으로 봉행되었다. 고산 선생은 성리학을 정통 으로 전수받은 학자는 아니지만 고조부 어초은 선생으로부 터 영남 유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서인(西人)들의 지역 적 기반인 호남에 거주하지만 학파적 성격은 남인(南人)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성향에 대하여 현대 역사학자들은 지역과 학파에 대한 차별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Lee 2006).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 비교
2015년 현장 조사의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은 <Table 25>에 제시하였고 2003년 문헌 고찰 결과와 비교하면 다음 과 같다. 일반적으로 제례음식은 음복하는 제관의 수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특히 떡은 하루가 지나면 굳어버리는 특성 때문에 제사 당일 참석하는 제관의 수에 맞춰 준비하는 음 식 중 대표적이다.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의 조사에 따르면 30여 년 전 ‘고산 종 가’는 떡을 한번 제사 지낼 때 쌀 1가마니를 사용하였고 떡 의 고임 높이는 3자(약 91 cm)였다고 한다. 또한 떡을 높이 고이기 위해 편틀 각 모서리에 대나무를 세워 기둥을 만든 후 떡을 고였으며, 제일 상단에 웃기편으로 ‘주악’을 올렸다 고 한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 편틀 모서리에 대나무 기둥을 세운 것은 대나무 가 잘 자라는 전남 지역 특산품을 식문화에 적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c).
2015년에는 본편으로 사용하는 설기떡과 콩고물인절미를 방앗간에서 구입하였고 본편 기정떡과 웃기편 모시잎송편은 제사에 참석하는 제관 중 한 사람이 전남 화순군과 영광군 의 전문 떡집에 주문하여 직접 가져온 것을 사용하였다. 이 로써 모든 ‘편’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제물 준비 과정의 간 소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본편으로 설기떡 2켜, 콩고물인절 미 2켜, 기정떡 2켜를 쌓고, 웃기편으로 모시잎송편 1켜를 쌓 았다. 문헌과 12년이 지난 현재는 본편에 설기떡이 추가되었 고, 웃기편은 송편에서 모시잎송편으로 그 종류가 바뀌었다. 콩고물인절미와 기정떡은 동일하였다. 제사가 끝나면 제관과 참석자가 한 자리에 모여 제례음식을 나눠먹는 음복이 일반 적이지만, 2015년에는 종부가 거동이 불편하고 일손 부족으 로 음복 과정을 생략하기로 제관들이 합의하여 결정하였다.
3)경북 안동시 ‘진성 이씨 퇴계 이황 종가’
종가 소개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은 조선 중기 주자학의 조선화 된 조선주자학, 즉 성리학을 집대성한 문신으로 영남학파의 수장이며,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 溪), 퇴도(退陶), 도수(陶),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이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d). 이언적 (李彦迪),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와 더불어 뛰어난 현인(賢人)을 뜻하는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불린다. 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상계에 자리 하고 있다. 현장 조사를 위해 찾은 2015년 1월 27일은 음력 12월 8일로 퇴계 선생 국불천위 444주기 되는 제사였다. 안 채 옆에 위치한 별당형 정자인 ‘추월한수정’은 제청으로 사 용되며 제사 시작 전 13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퇴계 선생 의 경(敬) 사상에 대한 강의를 듣고, 18시에 종손 이근필씨 를 중심으로 제사를 봉행하였다.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 비교
2015년 현장 조사의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은 <Table 26>에 제시하였고 2005년 문헌 고찰 결과와 비교하면 다음 과 같다. 1999년 이황 선생 불천위제를 조사한 Bae(1999)의 연구에서 ‘편’은 본편으로 본편(시루떡), 맞편(짝편), 당귀떡, 찰편, 웃기편으로 경단, 부편, 잡과편, 전, 조약 순으로 나타 났다. 이후 고찰 문헌의 조사 시점인 2005년은 찰편 대신 녹 두편, 웃기편에 송기송편이 추가되었다. 2015년 고임 순서와 종류를 살펴보면, 본편으로 본편 7켜, 찰편, 쑥편, 맞편 각 1 켜씩 사용하였고, 웃기편으로 쑥구리, 잡과편, 부편, 송기송 편, 꽃전, 조약 순으로 각 1켜씩 쌓아 총 16켜의 편을 완성 하였다. 2005년과 2015년 모두 본편 4종류, 웃기편 6종류로 떡 수는 같았고, 본편에서 당귀편과 녹두편이 찰편과 쑥편으 로 변경되었다. 2005년은 떡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고물을 이용하여 다양한 떡으로 응용이 가능하였지만, 2015 년에는 방앗간에 주문하면서 겉에 묻히는 고물이 콩고물로 획일화되어 종류가 변하였다. 웃기편은 거피녹두고물을 묻힌 쑥경단에서 콩고물을 묻힌 쑥구리로 부르는 명칭과 고물이 변경되었고, 부편과 잡과편의 순서를 변경함으로서 청(靑, 쑥 구리)-적(赤, 잡과편)-백(白, 부편)-적(赤, 송기송편) 순으로 색 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처럼 순서가 바뀐 것은 고임을 하는 사람이 바뀌어서 생긴 결과이다. 2005년 남자 유사들이 만 들던 떡을 2015년에는 차종부가 만들었다. 또한 2켜 올렸던 송기송편을 1켜로 줄이고, 다진 국화 대신 다진 당귀를 넣어 전을 만들고 그것을 꽃전이라 부르고 있었다. 2015년 제사 에는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를 구할 수 없어서 송기송편을 제 외하려 했지만, ‘학봉 종가’의 종부 이점숙씨(‘퇴계 종가’ 종 녀)가 송기를 구해줘 송기송편을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웃기 편의 조리 과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제사에 사용하는 편 은 그 종류가 정해져있지만 고임 방법에 관한 규칙은 떡을 괴는 사람이 나름의 방식에 따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으 며, 이러한 현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과정 중 하나 로 사료된다. 제사가 끝난 후 음복을 위해 완성된 편을 종류 별로 나누어 개별 접시에 담아 제관들에게 제공하였다.
4)경북 안동시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
종가 소개
‘학봉 종가’는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성리학자로 퇴계 이 황의 학맥을 이어 주리론(主理論)을 계승하고 영남학파의 중 추적 역할을 한 김성일(金誠一, 1538-1593) 선생을 국불천위 로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어 의병장들과 협력하여 진주성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혁혁한 공 을 세웠다. 김성일 선생의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학봉(鶴 峯),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 계리에 종택이 남아있다. 종택에는 15대 종손 김종길씨와 종 부 이점숙씨가 생활하고 있으며, 안채 뒤 사당에 불천위와 4 대조 신주를 별도로 모시면서 봉제사와 접빈객을 실천하고 있다. 음력 4월 29일(양력 2015년 6월 15일)은 김성일 선생 의 불천위제로 고위 제사이지만, 비위도 함께 모시고 있다. 이는 합설(合設)의 형식이면서 고위와 비위의 제사상을 별도 로 모시는 각설(各設)의 형태, 즉 병설(竝設) 배치이다. 원래 기일 자정(0시)에 제사를 지냈지만, 2014년부터 문중에서 협 의를 거쳐 입재일 20시로 변경하여 2015년에는 약 80여명의 제관들이 제사를 봉행하였다.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 비교
2015년 현장 조사의 ‘편’ 고임 순서 및 조리법은 <Table 27>에 제시하였고 2002년 문헌 고찰 결과와 비교하면 다음 과 같다. 13년이 지난 현재, 형태의 변화는 없었지만 직접 만 들었던 본편을 방앗간에 주문하였고, 웃기편만 종가에서 직 접 만들었다. 본편으로 본편 13켜, 쑥편 1켜, 찰편 1켜, 백편 1켜를 쌓았다. 웃기편에 사용하는 떡은 7종으로 종류의 변화 는 없었다. 또한 웃기편 만드는 조리법도 변화가 없었으며 가마솥과 찜기 도구를 이용하여 전통 방법 그대로 떡을 만 들고 있었다. 쑥경단, 송기송편, 부편, 잡과편, 국화전, 조약, 깨구리 순에서 쑥경단, 부편, 잡과편, 송기송편, 국화전, 조약, 깨구리 순으로 송기송편을 2켜 위로 쌓아 순서가 바뀌었다. 또한 색깔이 같은 송기송편(赤)과 잡과편(赤)을 겹쳐서 쌓았 다. 제사 봉행이 끝나면 높게 쌓은 ‘편’을 각각 나누어 과실 과 함께 제사에 참여한 제관 수만큼 꾸러미를 만들어 나누 어 주었다.
IV.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3~2008년 에 걸쳐 발행한「종가의 제례와 음식」을 통해 25 종가의 제례음식 ‘편(떡)’에 대하여 문헌 고찰하고, 10여년이 지난 2015년 4곳의 종가를 직접 방문하여 고임과 조리법의 전승 과정에 대하여 비교·분석하였다.
떡은 다양한 곡물 가루를 이용하여 조리법을 달리한 음식 으로 1600년대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자 병(餠), 고 (), 이(餌)를 사용하였고, 1600~1700년대에 순한글 ‘편’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800년대에 등장한 ‘’은 1900년대 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의 된소리 통일 방법에 따라 ‘떡’으로 변화하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 한글로는 ‘떡’, ‘편’, 한자로는 ‘병(餠)’, ‘편()’, ‘편(片)’이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본 연구에서 한자 사용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 에 속하는 국자(國子)이면서 떡을 점잖게 부르는 말인 ‘편 ()’으로 통일하였다.
문헌 고찰 25 종가의 지역별 분포에 따라 ‘편’ 형태를 분 류하여 그림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Figure 1>. 지역에 따라 경기 지역 7곳, 충청 지역 4곳, 호남 지역 2곳, 영남지 역 12곳으로 분류할 수 있고, 학파에 따라 경기, 충청, 호남 지역을 기호학파 13곳, 영남 지역을 영남학파 12곳으로 분 류할 수 있다. 지역별 분류에 따라 경기 지역은 웃기편 없이 본편만 쌓는 형태와 웃기편을 쌓을 경우 본편으로 시루떡을 사용하고 그 모서리를 웃기편인 전으로 덮는 형태로 나뉜다. 충청 지역은 시루떡을 본편으로 사용하고 지진 떡 1종류만 웃기편으로 사용하였고, 호남 지역은 본편 2종류, 웃기편 1 종류를 사용하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영남 지역은 본편으로 여러 종류의 시루떡을 사용하였고, 웃기편 종류도 22종으로 다양하고 화려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학파별 분류에 따라 기호학파는 사용하는 본편과 웃기편의 종류가 다양하 지 않을 뿐만 아니라 13 종가 중 ‘탄옹 종가’, ‘고산 종가’를 제외하고 11곳의 본편은 방앗간에 맞춤떡을 주문하여 사용 하고 있었다. 반면, 영남학파는 12 종가 중 방앗간을 이용하 는 ‘농수 종가’, ‘우복 종가’, ‘갈암 종가’, ‘응와 종가’를 제 외한 8곳에서 직접 본편인 시루떡을 만들고 있었다.
이와 같이 종가 제례음식의 중요한 분석 기준을 지역과 학 파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한 가문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제 물인 ‘편’ 고임 형태와 조리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 로 나타났다. 실리를 추구하는 학풍인 기호학파에 속하는 경 기, 충청, 호남 지역의 종가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화에 순응하는 실용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급자 족적 삶의 기반과 도덕적 명분을 중시하는 영남학파에 속하 는 영남 지역의 종가들은 보수성이 강한 것으로 사료된다.
현장 조사가 이루어진 2015년에는 떡을 직접 만들던 영남 지역 ‘퇴계 종가’와 ‘학봉 종가’에서도 방앗간을 이용하면서 현장 조사를 수행한 4곳 모두 방앗간에 주문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고산 종가’는 본편과 웃기편 모두 방앗간과 전문 떡 집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3곳은 웃기편만 예전과 같은 조리법으로 종가에서 직접 만들고 있었다. 또한 고임 형태도 변하지 않았다.
방앗간을 이용하는 종가가 늘어나는 것은 근대화되어 가 는 시대적 환경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종부를 비롯하여 함께 음식을 만드는 부녀자들의 고령화와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종가의 노동력 부족을 중요한 원인 으로 꼽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례음식 ‘편’을 준비하기 위 해 방앗간이나 전문 떡집에서 구입하는 행태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현상은 보수성이 강 한 영남 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편, 방앗간 이용 으로 인해 종부에서 차종부로 내려오는 가문의 특색 있는 전 통 떡 조리법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제수 준비 시 간 절약과 떡 품질의 일관성, 노동력 절약 등의 실용적인 장 점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소득수준의 증가와 생활환경이 나아지면서 삶의 형태가 다 양화 되는 현실에서 우리의 전통 종가는 현재 변화하는 과 정에 놓여있다. 오래된 종가의 고유한 제례음식은 우리나라 에서 지속적으로 유지·계승해야하는 문화적 가치이며 보존 해야하는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우선 제3자가 아닌 역사 적, 문화적으로 상징성을 갖는 종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 심과 지속적인 참여가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이를 현실화 하려면 현 시점에서 고령의 종부가 제례음식을 전해주기 위 한 문서화된 기록과 차종부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 기이다. 이러한 기록 없이 다음 세대의 무관심으로 이어지 면, 결과적으로 제례음식은 물론이고 종가의 전통 내림음식 의 단절과 나아가 종가가 갖는 문화적 가치의 소멸은 급격 히 진행될 것이다.
고찰한 문헌의 조사 대상 가문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어 지 역별 ‘편’ 고임 형태에 대한 개략적인 경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5곳의 결과를 해당 지역과 학파의 특징으로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조사 종가가 영남 지역에 다수 밀집 되어 있는 것과 강원 지역과 제주 지역의 종가가 조사되지 않 은 것은 연구의 한계점으로 볼 수 있다. 추후 지역과 학파에 따른 균형 있는 분류 체계를 통해 종가를 선정하고 ‘편’의 변 화 양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면 역사적 사료와 연결되는 응 용 연구가 될 것이다. 또한 문헌조사 시에 ‘편’을 만든 사람 과 2015년 현장 조사 시 ‘편’을 만든 사람이 크게 바뀌지 않 았다. 즉, 제례음식을 담당하는 종부가 같아서 고임 형태와 조 리법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종부가 한 가 문의 음식 연속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다. 따라서 가문 고유 음식의 전승과정을 기록하고 변화 양상 을 비교하려면 종부에서 차종부로 한 세대가 넘어가는 시점 의 기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