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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0 No.3 pp.296-312
DOI : https://doi.org/10.7318/KJFC/2015.30.3.296

Study on Donggot-tteok of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Changhyeon Lee1,2, Young Kim1*, Jinyoung Lee1, Minsook Kang1
1National Academy of Agricultural Science,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Department of Convergence Technology for Food Industry, Wonkwang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Kim Young, National Academy of Agricultural Science,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166 Nongsaengmyeong-ro, Iseo-myeon,Wanju-gun, Jeollabuk-do, 565-850, Korea Tel: 82-63-238-3574 Fax: 82-63-238-3842 kimyoung@korea.kr
March 24, 2015 May 13, 2015 June 2, 2015

Abstract

This study conducted a literature review, field study, and in-depth interview on the build order, cooking method, and origin of ‘Donggot-tteok (rice cake)’, which was the ritual food for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in Bonghwa, Gyeongbuk, who deifies Chungjae Gwon Beol as Bulcheonwi. Donggot-tteok of ChungjaeJong-ga is classified as one kind of Bonpyeon (Janjeolpyeon) and 11 kinds of Utgipyeon, and assumes a unique circle build shape.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e literature review data in 2004 and 2010 with field study data in 2014, the build order, materials, and cooking method were maintained without large changes. With regard to Utgipyeon with which Donggot-tteok is topped, CheongjeolpyeonMilbiji, Songgisongpyeon, Gyeongdan, Ssukdanja, Bupyeon, Japgwapyeon, Jeon, Sansim, Jo-ak, and Kkaeguri were heaped in each layer, and the beauty of obangsaek (five colors) was well harmonized. Besides, with regard to the origin of Donggot-tteok, which was presented without elaborating sundry records, we examined the possibility of being introduced from the royal court through old paper and the Jokbo (family tree) that Jong-ga owns.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의 동곳떡에 관한 연구

이 창현1,2, 김 영1*, 이 진영1, 강 민숙1
1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2원광대학교 식품산업융복합학과

초록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I.서 론

    조선조 유교사상과 성리학을 중심으로 학문이 뛰어난 인 물들의 학행(學行)이나 공적(功績)을 기리기 위해 임금의 명 으로 시호(諡號)를 내렸다. 시호를 받은 인물 사후에 자손들 은 신주를 별도 사당에 모시고 4대(代)가 지나도 그 위패를 옮기지 않았다(Lee 2000). 이를 ‘옮기지 않는 신위(神位)’, 즉 불천위(不遷位)라 한다(Kim 2010). 조상이 불천위가 되어 중 시조(中始組)가 되면 그의 후손은 종가(宗家)를 형성하게 된 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13). 이를 학계에서도 16~17세기 이후 형성된 사족(士族)을 배경 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학문이 뛰어나고 높은 직위를 가졌 던 조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Kim 2009; Joo 2011). 이렇게 구성된 종가는 우리의 역사적 산물이며, 시작점에 따라 대종가와 소종가(파종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로써 시조(始祖)로부터 대를 이어 종자(宗子)에게 계승된 우 리나라 전통 가문이 된다(Lee 2000;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4).

    한편 종가에서는 조상에게 예를 갖춰 음식을 올리고, 조상 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참석한 제관들과 손님을 대접하는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이 연중행사처럼 이어져 종 가의 큰 의무이자 역할이 되었다(Lee 2000). 이러한 역할로 종가에서는 자연스럽게 제례음식과 손님맞이 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Kwon et al. 2014). 특히, 제례음 식은 의례 절차에 한 부분을 담당하고 의식이 끝난 후 참여 한 제관들에게 음식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일반식과 구분되 기 때문에, 음식의 전통과 풍속을 탐색하기 위한 측면에서 제례음식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Yoon 1999).

    제례와 관련해서는 1970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 유교 제 례에 대한 인류학 및 민속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종가를 대상으로 한 제례문화와 음식 연구는 1990년대 말부 터 본격적으로 현지조사를 통해 수행되었다(Kim 2008). 전 국에는 1,153개(482개 불천위) 종가가 있으며 경상북도에 가 장 많은 434개(206개 불천위) 종가가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 Advanced Center for Korean Studies 2014). 경상북도는 종가 수에 비례하여 종가와 관련된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 루어져 왔으며, 현지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종가의 제례음식 연구가 보고된 바 있다(Yoon 1996ab; Kim 2005; Park et al. 2012; Jang 2012). 그러나 연구된 제례음식의 경우 제례 과정과 함께 진설되는 전체의 제수를 소개하고 있어 특정 제 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없는 실정이다.

    현 시대에는 종손, 종부의 고령화와 참여하는 제관의 수 감소 등의 이유로 수백 년을 이어온 종가의 제례문화와 음 식이 점차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제례문화와 정신이 함께 전승되는 제례음식은 조선 중기 이 후 음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므로 현 상 태에서의 지속적인 현황 조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종가가 밀집되어 있는 경상북도에서 불천위제사를 지내는 종 가를 선정하고 그 종가의 제례음식 중 고임의 높이와 종류 로 가문을 상징하는 ‘편(떡)’을 선정하여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편’은 켜켜이 쌓아 높게 고이는 떡을 나타내는 제례음식 용어로(Yoon 1982; Ahn 2009) 크게 본편과 웃기편으로 구 성되며 해당되는 각각의 떡은 일반적으로 찐 떡, 친 떡, 삶 은 떡, 지진 떡으로 분류한다(Jeong 1975; Hwang 1976; Yoon 1980; Mang & Lee 1988; Yoon 1998;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1). 떡과 관련된 문헌을 살 펴보면 떡류, 병이류, 병과류(병이류와 과정류)와 같이 떡을 구분하는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여 조선시대 의궤(Lee & Yoon 1985; Lee & Yoon 1986; Park 2009), 고(古)문헌 (Lee & Maeng 1987; Yoon & Cho 1993; Park 1994; Yoon 1996ab; Kim & Lee 2002; Bok & Ahn 2007; Won et al. 2008; Kim 2009; Oh & Lee 2010ab; Kim et al. 2012)과 더불어 종가에서 전해지는 고(古)조리서(Kwon et al. 2014)에 수록된 내용을 떡의 정의, 분류, 조리법에 대하 여 고찰한 연구들이 다수 보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 부분의 연구방법이 문헌고찰에 그치고 있고 형식적인 면에 치중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문의 깊이 있 는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조사연도가 다른 두 개의 문헌에서 불 천위제사 음식 중 ‘편’이 모두 소개된 한 종가를 선정하여 고 임 및 조리법을 고찰하고, 더불어 현장조사를 통해 ‘편’을 직 접 만들어 보면서 고임 형태와 만드는 법을 기록하였다. 마 지막으로 종가 구성원과 심층면접을 진행하여 이야기의 실 체가 정확하지 않은 ‘편’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Table 1>. 이러한 연구방법은 종가음식을 연구하는 데 새롭게 시도되는 형식으로 그중 제례음식을 중심으로 한 가문에서 변화 또는 유지되는 과정을 심도 있게 추적할 수 있으며, 연구자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탐색이 아닌 정보제공 자의 입장에서 경험을 공유하며 직접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 는 기회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는 종가의 제례음식 ‘편’의 고임 및 조리법 변화와 전승(傳 承)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고 연구자들에게는 종가 제례에 진설하는 음식에 관한 후속 연구의 또 다른 방향성 을 제시하는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II.연구 내용 및 방법

    1.문헌고찰

    본 연구에서 문헌고찰을 위해 활용한 자료는 2002년 조사 를 시작하여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 구소에서 기획·발행한⌈종가의 제례와 음식⌋(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 2005a, 2005b, 2006, 2007, 2008)과 농촌진흥청에서 2010년≪종가· 명가음식 전시회≫ 자료집으로 발간한⌈내림에서 나눔으로, 종가와 종가음식(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 을 선정하였다.⌈종가의 제례와 음식⌋은 총 16권이며 경기 지역 7곳, 충청 지역 5곳, 호남 지역 2곳, 영남 지역 13곳으 로 총 27 종가의 제례와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종가의 전통 제례 봉행과정과 제사음식의 종류, 조리과정 등을 그림과 사 진으로 표현하였고, 한문과 함께 한글을 쉽게 풀어씀으로써 종가 제례문화 실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내림에서 나 눔으로, 종가와 종가음식⌋에서는 ‘발길 붙잡는, 솜씨 자랑하 는 음식’ 4곳, ‘정성껏 차곡차곡 쌓은 불천위 제사 음식’ 2 곳, ‘기다림의 깊은 맛, 향기 가득한 술상차림’ 4곳, ‘마음에 서 마음으로, 계절이 담긴 밥상차림’ 5곳으로 분류하여 총 15 종가·명가의 내림음식으로 제례음식과 손님맞이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2.조사대상 종가 선정

    1)종가 소개

    두 개의 문헌에서 공통으로 제례음식을 소개하고 있으며 불천위제를 지내고 제사상에 독특한 ‘편’을 진설하는 경북 봉화의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이하 ‘충재 종가’)’를 선 정하였다.

    충재 종가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오늘날 부총리 급에 해 당하는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충재( 齋) 권벌(權木發, 1478- 1548) 선생을 중시조로 한다. 충재 선생은 기묘사화로 파직 당하고 어머니 파평 윤씨 묘소가 있는 유곡리 달실마을로 귀 향하여 터를 마련하였다. 이후 달실마을은 안동 권씨 집성촌 으로써 삼남지방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꼽히며 마을을 둘러 싼 산세의 형국이 “금닭이 알을 품은 듯”하여 금계포란(金鷄 抱卵) 지형으로도 유명하다. 달실마을에는 충재박물관, 청암 정, 석천정사, 삼계서원, 추원재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 와 문화재가 많이 있다. 충재 선생은 1548년 71세에 세상을 떠난 후 43년째 되는 1591년에 국가에 큰 공헌을 한 공신이 나 충신에게 내리는 국불천위(國不遷位)로 추대되었으며, 이 로써 후손들에게 가문의 높은 영광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

    2)종가 선정 배경

    선정 배경은 첫째, 가문 내 종부에서 차종부로 전해지는 종가 음식문화의 연속성 고찰을 위해 적합한 종가로 판단하 였다. 둘째,⌈종가의 제례와 음식⌋에 소개된 27 종가의 ‘편’ 중 유일하게 다른 종류의 떡과 고임 형태를 갖고 있다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 2005a, 2005b, 2006, 2007, 2008). 충재 종가에서는 제례음식 ‘편’의 기본이 되는 시루떡을 사각형 편틀에 고이 지 않고, 절편을 가공하여 원형 편틀에 고여서 만들고 있다. 이처럼 종류와 형태가 독특한 떡이기 때문에 20여 년 전부 터 각종 서적과 논문에서는 충재 종가의 ‘편’에 대하여 출처 가 불명확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의 목적인 특정 제수의 깊이 있는 연구와 새로운 연구 방향 제 시를 위하여 전해지는 이야기의 사실여부와 그에 대한 명확 한 뒷받침 자료의 확보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3.현장조사

    ‘편’의 고임과 조리법 현황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현장 조사를 수행하였다. 충재 종가는 음력 3월 26일(정재일; 2014년 4월 25일) 자정(0시) 종택 내 갱장각(羹牆閣)에서 충 재 선생의 불천위제사가 거행되기 때문에 2014년 4월 24일 제수 준비부터 25일 제사 봉행과정까지 참여하였다. 연구자 는 차종부 권재정씨와 ‘편’을 함께 만들면서 고임 및 조리법 현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였다.

    4.심층면접

    심층면접은 일방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가설 검증, 분 석 평가를 목적으로 두지 않고 상대방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생활 속에 놓여 질 때 의미가 더욱 더 명확해진다(Patton 1990; Lee 2002). 두 개의 문헌을 통해 분석한 ‘편’의 고임과 조리법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서 현재 와 다른 점에 대해 자유롭게 구술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동의에 의한 녹음과 사진촬영을 병행하였다. 심층면접은 2015 년 2월 6일에 달실마을 충재박물관에서 이루어졌으며 차종 손(종손의 아들) 권용철씨(19대), 차종부(종부의 며느리) 권 재정씨(19대)를 대면하였다.

    III.결과 및 고찰

    1.동곳떡의 고임 순서와 켜 수 연도별 비교

    충재 종가에서는 제례음식 ‘편’을 동곳떡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이 동곳떡의 고임 순서와 켜 수를 살펴보고자 2004 년, 2010년 문헌자료와 2014년 현장조사 결과를 비교하여 <Table 2>에 제시하였다. 동곳떡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상투 를 튼 후 고정시키기 위해 꽂는 장신구인 ‘동곳’을 닮아 붙 여진 이름으로 본편과 웃기편으로 분류한다(Kim 2013) <Figure 1>.

    1)본편

    본편은 흰 절편을 사용하고 손가락 굵기로 ‘잘게 썰어진’ 뜻의 잔절편이라 부른다. 2004년은 19켜, 2010년은 10켜, 2014년은 15켜로 연도별 켜 수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는 오래전에 잔절편을 불천위 고위(考位, 충재 선생) 25켜, 불천위 비위(女比位, 충재 선생의 부인) 23켜를 쌓았지만(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 해가 갈수록 참여하는 제관의 수 감소와 제삿날 떡의 찰기 정도에 따라 조절하는 까닭이다. 2010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종가·명가 음식 전시회≫에 전시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잔절편을 10켜로 맞춰 쌓았다고 하였다.

    2)웃기편

    웃기편은 ⌈종가의 제례와 음식⌋에서 조사된 종가 중 가 장 많은 종류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 2005a, 2005b, 2006, 2007, 2008). 본편으로 잔절편을 쌓고 바로 위 부터 청절편, 밀비지, 송기송편, 경단, 쑥단자, 부편, 잡과편, 전, 산심, 조악, 깨구리 순으로 1켜 씩 모두 11켜 쌓아 준비 한다. 웃기편의 쌓는 순서와 켜 수는 2004년, 2010년, 2014 년 조사에서 모두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각각 의 떡을 세는 단위인 ‘켜’는 수량을 표현하는 말 뒤에 붙어 “포개진 물건 하나하나의 층을 세는 단위”로 정의된다(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 이 단위 는 켜켜이 쌓는 시루떡을 셀 때 사용하는데, 충재 종가에서 는 ‘켜’ 대신 ‘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의 표준국어대사전 을 살펴보면, ‘불’은 ‘벌’의 경상도 방언으로 “상투를 짤 때 고( )를 돌려 감는 가닥을 세는 단위”라는 뜻으로 이는 동 곳떡의 명칭을 지을 때, ‘켜’로 부르는 시루떡이 아닌 절편 을 사용한 떡이며 상투처럼 돌려서 쌓는 방법을 보고 영남 지역에서 ‘불’이라는 방언으로 바꿔서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3)동곳떡의 고임

    동곳떡을 만들 때는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제삿날 시간에 맞춰 떡을 쌓으려면 최소 8명 이상이 필요하다. 우선 몇 명이 쌀반죽에서 지름 1 cm, 길이 5 cm 크기로 자르고, 다른 몇 명은 떼어낸 반죽을 손으로 밀어 머리가 굵고, 꼬리 가 가는 ‘동곳’ 모양의 잔절편을 만들어 최종적으로 쌓는 이 에게 넘겨준다. 사각형이 아닌 지름 28 cm, 높이 8 cm 크기 의 원형 편틀에 ‘동곳’의 둥근 부분이 밖을 향하게 하고 가 느다란 부분을 안으로 향하도록 한 후 가운데를 눌러 고정 시켜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쌓는다. 이때 편틀의 가장자리 를 1~1.5 cm 정도 남겨두는데, 잔절편 켜 수가 많아질수록 떡이 밖으로 밀리는 것을 미리 염두하고 만들기 때문이다.

    동곳떡을 다 쌓으면 그 높이가 2004년 당시 약 54 cm로 ⌈종가의 제례와 음식⌋에 소개된 27 종가의 ‘편’ 중 가장 높 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3, 2005a, 2005b, 2006, 2007, 2008).

    떡을 편틀에 쌓는 역할은 보통 종부 또는 종부의 지도를 받은 차종부가 맡아서 하는데, 경우에 따라 종가 구성원이 참여하기도 한다<Figure 2>. 조사 연도별 동곳떡을 만든 주 체를 살펴보면, 2004년도 문헌에서는 조사 당시 종부 류한 규씨(17대)가 연로하여 차종손(권종목씨, 18대)의 종숙모 송 재규씨가 참여하여 만들었고, 2010년 문헌에서는 차종부 권 재정씨(19대)가 주관하여 동곳떡을 만들었다. 또한, 2014년 현장조사에서도 차종부 권재정씨가 만들었다<Table 1>. 권 재정 차종부는 경북 예천군의 ‘예천 권씨 초간(草澗) 권문해 (權文海, 1534-1591) 종가’의 딸로 태어나 제례음식 떡에 대 해 많이 알고 있었으나 시집왔을 때 처음 본 동곳떡의 화려 한 웃기편과 독특한 모습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동곳떡을 만들 때는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떡을 일정한 모양으로 빚을 수 있습니다. 모양이 일 정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쌓을 수 있습니다.”(차종부 권재정)

    한편, 동곳떡의 고임이 높은데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주변사람들은 떡과 떡 사이에 이쑤시개 또는 꼬지를 꽂아 세 웠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동곳떡을 고일 때 떡 외에 다른 도구는 사용하지 않아요. 본 편은 잔절편의 찰기로, 웃기편은 각 떡의 켜 별로 방향을 다르 게 겹쳐 고임으로써 단단한 형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차종 부 권재정)

    이렇게 완성된 동곳떡은 제사상에 진설하기 전까지 형태 유지와 쓰러짐 방지를 위해 비닐을 두른 후, 베보자기로 돌 려 감아 대청마루 기둥에 묶어 둔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d. 2005b) <Figure 3>.

    동곳떡은 오방색(五方色, 靑·白·赤·黃·黑)이 차례대 로 들어가서 색의 조화가 아름답고, 이는 조상들이 후손들에 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체가 모여 한 개의 우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 충재박물관에는 충재 선생의 불천위 제사에 올렸던 25켜의 동곳떡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예전에 높았던 고임의 원형을 살펴 볼 수 있다<Figure 4>.

    2.동곳떡의 재료와 조리법 연구

    연도가 다른 두 개 문헌의 재료와 조리법을 표로 재정리 하였고<Table 3, 4>, 2014년 현장조사 결과와 각 종류별 떡 과 관련된 고문헌을 함께 고찰하여 분석하였다.

    1)본편

    본편의 잔절편은 멥쌀가루를 이용해서 찌고 쳐서 동곳 모 양을 만드는 조리법을 2004년, 2010년, 2014년 모두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절편은 찜통에 익힌 멥쌀반죽을 치대고 떡살로 문양을 찍어 만드는 도병(搗餠)의 일종으로 흰떡(백병, 白餠)이라하며 예부터 “절구질로 친 흰 떡은 제사에 안 쓴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온다(The National Folk of Museum of Korea 2009). 이 때문에 제례음식으로 사용할 때는 쇠나 돌로 만든 절구보다 나무로 만든 안반(案 盤)으로 치대어 사용하였다. 한편, 절편은 재료를 찌는 과정 후 치는 과정이 더해져 제례 떡의 기본형인 시루떡보다 한 단계 더한 조리법을 적용하고 있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고려시대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2009).

    충재 종가에서는 잔절편이라는 용어 외에 골비떡으로도 불 렀다. 골비떡은 가래떡을 나타내는 경상도 방언이며, 표준어 는 1800년대 말 저자미상의⌈Siuijeonseo (시의전서, 是議全 書)⌋(Lee HJ ed. 2004)와 1948년⌈Urieumsik (우리음식)⌋ (Son JG (손정규, 孫貞圭), 1948)을 통해 골무편(떡)이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Yoon 1998).

    2)웃기편

    웃기편에는 오방색이 모두 포함된다. 잔절편 바로 위에 1 켜 쌓는 청절편은 청색(靑)을 나타내며 단오의 절식이다(Lee & Maeng 1987). 청절편의 조리법을 살펴보면 소다를 넣고 삶은 쑥을 멥쌀반죽과 함께 쳐서 만든다. 두께 0.5 cm 정도 납작하고 가로, 세로 4 cm 마름모 모양으로 만든 후 문양을 찍어 참기름을 발라둔다. 쑥을 삶을 때 소다(중조, 重曹)를 넣는 것은 색을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음 올라가는 밀비지는 쳐서 만든 흰 절편 반죽 안에 볶 은 콩가루에 물엿을 섞어 둥글게 빚은 소를 넣고 술잔이나 주전자 뚜껑으로 밀어 찍어서 만든 떡이며 백색(白)을 나타 낸다. 밀비지는 경상도 지방의 떡이지만 ⌈한국의 전통향토 음식 경상북도·경상남도 편(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08ab)⌋의 조리법을 살펴보면, “멥쌀반죽을 얇게 밀어 설 탕에 버무려 찐 콩을 뿌려 쪄낸 떡”으로 다른 형태의 조리법 으로 떡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한 밀비지떡은 밀대로 ‘밀어서 빚는다’는 의미에 적합한 떡이지만 충재 종가에서 사 용한 소를 넣어 도구로 밀어 만든 밀비지와는 반죽 성형과 정에서 차이가 있다. 충재 종가에서 사용한 조리법은 ⌈Siuijeonseo (시의전서, 是議全書)⌋(Lee HJ ed. 2004)에서 “흰 떡을 쳐서 거피한 팥고물로 소를 넣어 만들고, 쑥개피떡은 쑥으로 소를 넣어 작은 접시로 떼서 만든다.”고 한 개피떡의 조리법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명칭에 대한 전래과 정이나 정확한 사실은 종가 구성원을 통해서 알 수 없었다.

    웃기편에 세 번째로 올라가는 송기송편은 소나무 속껍질 인 송기에 소다를 넣고 무르게 삶아 다진 것을 찹쌀가루와 함께 섞어 적색(赤)의 반죽을 만든 후 볶은 콩가루 소를 넣 어 끓는 물에 삶아 낸 떡이며 삶은 떡(단자병, 團餠)으로 구분된다. 청절편과 송기송편에 들어가는 쑥과 송기를 삶을 때 색을 진하게 하고 부드럽게 삶기 위해 소다를 첨가한다. 조사연도인 2004년, 2010년, 2014년 모두 소다를 사용한 것 으로 보아 종가에서는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차 종부 권재정씨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하고 있어서 소다 를 처음 사용한 시점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2014년 현 장조사 당시 차종부의 시어머니는 고인이 되었기에 그 시점 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경단은 찹쌀반죽을 지름 4 cm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 삶아 낸 후 볶은 콩고물을 묻혀 만든 떡으로 황색(黃)을 나타낸다. 쑥단자는 경단과 만드는 방법이 동일하지만 쑥을 삶아 다져 넣어 반죽을 만드는 대신 소를 넣지 않고 반죽의 크기를 지 름 7 cm로 만들어 반을 접은 다음 삶아내며 청색을 나타낸 다. 경단과 단자의 차이는 찹쌀반죽을 둥글게 빚어서 삶은 떡에 고물을 묻히면 경단이 되고, 삶은 후 쳐서 만든 반죽에 고물을 묻히면 단자가 된다. 즉, 경단은 삶은떡이고 단자는 친떡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충재 종가의 쑥단자는 삶은 후 치지 않고 고물만 묻히는 조리법으로 경단에 가깝지만 단자 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2004년에는 쑥 단자를 삶아서 카스텔라를 비벼 만든 고물에 묻혔지만, 2010 년과 2014년에는 거피한 녹두를 쪄낸 후 가루를 만들어 쑥 단자의 고물로 사용하였다.

    부편은 찹쌀반죽에 콩고물 소를 채우고 둥글게 빚어 겉에 굵 은 대추채(1/4등분)를 2개 붙여 쪄낸 후 카스텔라 고물을 묻혀 내며 백색을 나타낸다. 부편의 카스텔라 고물도 쑥단자처럼 2010년과 2014년에는 거피녹두고물로 바꿔 만들었다. 2004년 당시 차종손 권종목씨(18대)의 종숙모인 송재규씨가 일손이 부 족하여 준비하기 쉬운 카스텔라를 사용했지만, 2010년과 2014 년에는 차종부 권재정씨가 거피녹두고물을 준비하였다.

    일곱 번째로 올라가는 잡과편은 적색을 나타내며 찹쌀반 죽을 지름 4 cm 크기로 빚어 끓는 물에 삶아낸 후 얇게 채 썬 대추를 고물로 묻힌다. 대추채가 잘 붙을 수 있게 찜통에 베보자기를 깔고 살짝 쪄낸 후 참기름을 발라둔다. 조선시대 부터 근대까지의 문헌을 통해 잡과병과 관련된 조리법을 고 찰한 Kang(2013)의 연구를 살펴보면, 잡과편은 1450년경 어 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지은⌈Sangayorok (산가요록, 山 家要錄)⌋(Han BR ed. 2011)에 ‘잡과병(雜果餠)’으로 처음 등 장하며 여기에는 친 떡의 종류인 인절미를 만들어 대추 대 신 여러 가지 과일을 고물로 사용하였다. 이후 17세기 경상 북도 지역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1670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집필한⌈Eumsikdimibang (음식디 미방, 飮食知味方)⌋(Baek DH ed. 2006)에서 반죽을 끓는 물에 삶아 밤, 대추, 곶감, 잣을 짓두드려 묻힌 떡인 ‘잡과편 법’이 기록되어 있어 충재 종가의 잡과편에 한 종류의 고물 이 올라가는 것 외에 조리법이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 쪄서 친 떡의 일종인 인절미 형태에 고물을 묻힌 떡은 ‘잡과병’으로, 반죽을 삶아 익히는 경단류에 고물 을 묻힌 떡이 ‘잡과편’으로 기록되어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명칭이 다르게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적으로 보아 경상북도 북부지방인 봉화에서 1591년에 시작된 충재 선생 의 불천위제사에는 쪄서 친 떡의 ‘잡과병’ 조리법(15세기)보 다 삶아서 만든 ‘잡과편’ 조리법(17세기)에 더 가까웠을 것 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는 400여 년 동안 이어진 충재 종 가의 제례음식 조리법을 기록한 자료가 없고 종부에서 차종 부로 구술에 의해 전해진 조리법과 명칭이기 때문에 몇 가 지 근거로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잡과편 위로 지진 떡(유전병, 油前騈)의 종류인 ‘전’, ‘산심’, ‘조악’이 차례로 1켜씩 올라가며 모두 백색을 나타낸다. 우선 ‘전’은 다진 대추를 찹쌀반죽에 넣고 지름 6 cm 크기로 둥글 고 납작하게 만들어 기름을 두른 팬에 지진 뒤 설탕을 뿌려 준비한다. ‘전’은 위에 올리는 고명에 따라 ‘화전’ 또는 ‘꽃 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진달래꽃, 장미꽃, 국화꽃 등에 서 만드는 계절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찹쌀반죽 위에 올려 지져낸 것이다. 꽃이 없을 때는 대추를 길이로 채 썬 것과 쑥, 미나리, 쑥갓 등 녹색 잎을 크기에 맞게 잘라 고명으로 붙여 사용하였다(Lee & Maeng 1987).

    다음으로 산심은 찹쌀반죽을 5 cm 크기로 둥글고 납작하 게 만든 후 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서 익히고 설탕을 뿌려 전 위에 쌓는다. 이 조리법은 다진 대추를 넣지 않고 크기가 약 간 작은 ‘전’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산심이라는 명칭에 대해 서는 종가 구성원뿐만 아니라 다른 문헌에서도 알 수 없었 지만, 방언 또는 전래과정에서 변형된 명칭일 가능성에 초점 을 두고 고조리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Siuijeonseo (시 의전서, 是議全書)⌋(Lee HJ ed. 2004), 1938년 조자호(趙慈 鎬)가 지은 ⌈Joseonnyoribeop (조선요리법, 朝鮮料理法)⌋ (Jeong YW ed. 2014)에 얇게 민 찹쌀반죽을 둥글게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인 ‘(생)산승’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산승’은 현대로 오면서 문헌상 기록에서 사라졌지만(Jeong 2003),⌈종가의 제례와 음식⌋에 소개된 종가 중 충재 종가 에서 산심이라는 명칭으로 현재에도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충재 종가의 아홉 번째 웃기편 인 산심은 ‘산승’의 명칭이 지역적 방언과 전승과정에서 변 경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사료된다.

    조악의 명칭에 대해 Yoon(1998)이 궁중에서는 조악(造岳), 반가와 민가에서는 주악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고하였다. 충 재 종가에서는 조악을 만들 때 찹쌀반죽을 지름 7 cm 크기 로 떼어 둥글고 납작하게 만든다. 여기에 콩고물 소를 넣고 반을 접어 조개모양이 되도록 만든 후 기름을 두른 팬에 지 진 다음 서로 달라붙지 않게 설탕을 뿌린다. 주악의 조리법 은 일반적으로 “찹쌀가루 반죽에 대추, 밤, 팥 등의 소를 넣 어 송편처럼 빚어 기름을 두른 팬에 지진 떡”으로(Kim et al. 2007; Choi 2008) 여기서 떡을 지지는 것은 기름을 적게 두른 팬에 ‘굽는다’는 표현과 같다. 반면 은 주악을 유전병류로 분류하고 “화전처럼 기름에 지 지는 것이 아니고 튀기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용기(李用 基)가 1920년 편찬한⌈Joseonmussangsinsingnyorijebeop (조 선무쌍신식요리제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Han BR ed. 2001)의 떡 만드는 법에 주악(조각병, 米造角餠)과 대추주악(조 조각병, 棗米造角餠)이 소개되어 있는데 조리법을 살펴보면 주 악은 “끓는 기름에 지진다.”로 대추주악은 “기름을 팔팔 끓 이고 넣어 익힌다.”로 기록되어 있어 기름의 양이 적지 않았 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름을 이용해서 지지 거나 튀겨서 만든 주악은 모두 유전병류에 속한다. 그러나 기름의 양에 따라 ‘지진다’는 표현의 모호함과 조리법의 해 석상 차이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현대에 오면서 기름의 양을 점차 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추가적으로 유 전병류에 사용하는 기름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해 보 인다.

    마지막으로 웃기편 중 제일 상단에 올라가는 깨구리는 흑 색(黑)을 나타낸다. 경단을 만드는 방법과 동일하며 소를 넣 지 않고 삶은 후에 흑임자를 고물로 묻혀 만든다. 떡의 조리 법만 살펴보면 경단과 같아 깨구리보다 깨경단 또는 흑임자 경단이라는 명칭에 더 가깝다. 깨구리는 깨굴리의 경상북도 안동지역의 방언으로 찹쌀반죽을 찜통에 쪄낸 후 팬에 볶은 흑임자고물을 겉에 묻힌 떡으로 고조리서에는 등장하지 않 는다. 쪄낸 찹쌀반죽에 묻히는 고물 이름 뒤에 ‘-굴(구)리’라 는 명칭이 붙는데, 쑥굴리, 잣굴리, 대추굴리 등이 있다(Ahn 2009). 그 중 흑임자고물 대신 삶은 쑥을 넣어 색을 내고 거 피팥고물을 묻힌 떡으로 1924년⌈Joseonmussangsinsingnyorijebeop(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Han BR ed. 2001)에는 ‘쑥굴리(애경단, 艾瓊團)’, 1934년 ⌈Ganpyeonjoseonnyorijebeop (간편조선요리제법, 簡便朝鮮 料理製法⌋(Lee 2000)에는 ‘소를 넣은 쑥경단’이라는 뜻의 유사한 용어로 ‘보풀떡’이 기록되어 있다(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 2015). 한편,⌈종가의 제례와 음 식⌋에 소개된 영남 지역 13 종가 중 충재 종가를 포함하여 6 종가(안동 4곳: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 풍산 류씨 서 애 류성룡 종가, 안동 김씨 보백당 김계행 종가, 광산 김씨 농수 김효로 종가, 봉화 1곳: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 영 덕 1곳: 재령 이씨 갈암 이현일 종가)에서 ‘깨구리’라는 명칭 으로 예전에 사용했거나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문헌에 조사된 경기, 충청, 호남 지역 14 종가의 웃기 편에는 깨구리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경상북도 안동 지역 의 향토음식으로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Lee & Park 2002).

    3.동곳떡의 음복 사용

    제사가 끝난 후, 참여한 제관과 손님들에게 제사에 사용한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을 음복(飮福)이라 하며 제례 의 한 절차이다. 이것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자손과 돌아가 신 조상이 신이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신인합체의 례(神人合體儀禮)라 부른다(Lee 1998). 웃기편의 켜 수가 10 여 년간 동일한 것과 달리 본편인 잔절편 켜 수는 음복하는 제관의 수에 따라 매년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불천위제사가 끝나고 동곳떡은 잔절편 1/4켜, 웃기편 11종류 각 1개씩 제관 수에 맞게 작은 접시에 담아 1인분씩 나누었 다<Figure 5>. 숙채(熟菜)를 넣은 비빔밥과 탕을 준비하고 하 나의 접시에 한과, 과일, 다식, 밤, 대추, 땅콩 등을 담고, 또 다른 접시에 1인분씩 담은 동곳떡과 제주(祭酒)를 올리면 음 복 1인상이 완성된다<Figure 6>. 예전에는 1인 1개 교자상 으로 독상(獨床)을 차렸지만, 2014년 현장조사에서는 교자상 이 몇 개 남지 않아 주요 제관들만 한 개의 교자상에 두 명 씩 앉아 음복하였다.

    4.동곳떡의 유래와 해석

    충재 종가는⌈종가의 제례와 음식⌋에 소개된 종가 중 유 일하게 원형의 고임 형태를 띠고 시루떡이 아닌 절편을 사 용하고 있다. 특히, 다양하고 화려한 웃기편을 많이 올리는 영남 지역 중에서도 독특한 모습을 지닌 동곳떡은 오래전부 터 그 유래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소문에 따르면 몇 대 종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루떡을 찔 때마다 “뜸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또는 “제사 시간까지 떡이 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삿날 목을 매 자살을 했고, 이러한 사연 때문에 종 가에서는 자체 개발한 동곳떡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Yoon 1996a, 1999; Lee 2001; Kim 2005, 2013). 그러나 문헌에서는 정확한 근거와 출처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종가 구성원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다.

    1)소문에 대한 문제 제기

    차종손 권용철씨(19대)는 경북의 모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박물관에서 근무하다가 젊은 나이에 후손의 역할 을 다하기 위해 종가로 돌아왔다. 조사 당시 충재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안내 역할도 하는 그는 문 헌에 실린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문 제 제기를 하였다.

    “그동안 책에 나왔던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동곳떡의 본편 인 잔절편은 동곳 모양처럼 손으로 밀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 에 펴서 모양을 찍는 일반적인 절편의 최종 단계라고 생각합 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인원이 동원되기 때문에 종부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하기엔 근거 가 부족합니다. 또한 저희는 집 건물과 가정을 수호하는 성주 신(城主神)에게 집안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성주 고사(城主告祀, 음력 1월 24일)를 지내는데, 그 상에는 지금도 시루떡을 올리고 있습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후손들 은 성주고사에서도 시루떡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차종 손 권용철) <Figure 7>

    2)궁중 유래 가능성과 검토

    권용철씨는 예전부터 이러한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 소문에 대해 집안 어르신들과 상의도 했지만 어르신들의 만 류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이 지속되 자 권용철씨는 족보를 재차 확인하였고, 그 결과 동곳떡이 궁중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연구진과의 심층 면접 이전에 한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권용철씨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부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문에 대해) 만약 그런 일이 있 었다면 족보에 어느 종부가 제삿날이나 그 다음날에 별세한 사 실이 기록돼 있을 것인데, 그런 조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종가 에서는 충재 할아버지 손자 배필로 공주가 시집을 왔는데, 그 공주 며느리가 충재 선생의 제사음식을 마련하면서 궁중에서 배운 솜씨를 발휘해 민가에서는 볼 수 없는 ‘편’을 만들어 올 리면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차종손 권용철) (영남일보, 2014. 06. 26)

    권용철씨는 위 인터뷰 내용의 근거로 안동 권씨 충정공파 족보를 연구진에게 제시하였다<Figure 8>. 이 족보에는 충재 선생의 손자 권래(權來, 2대, 1562~1617) 선생의 둘째 부인 이 조선 왕족의 성씨인 완산이씨(전주이씨)이고(배숙인완산 이씨, 配淑人完山李氏), 93세(1663년, 계묘년, 癸卯年)까지 살 아계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선조신사생계묘구월팔일졸향 년구십삼, 宣祖辛巳生癸卯九月八日卒享年九十三). 이를 근거 로 충재 종가에서는 완산 이씨 부인을 궁중에서 시집 온 공 주로 추정하고 있다.

    3)종부의 시대적 위치와 역할

    오늘날 종가의 제례음식을 모두 도맡아 준비하는 종부와 는 달리 조선 중기 종부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그 당시 가문 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한다. 이는 충재박물 관에 소장되어 있는 ⌈충재권벌종손가소장고문서( 齋權木發 宗孫家所藏古文書)(보물 제901호, 1986. 11. 29 지정)⌋를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안동 권씨 가문의 족벌과 경제사정이 나와 있으며, 그 중 분재기(分財記)를 통해서 충 재 선생의 어머니 파평 윤씨 남매의 노비분금(奴婢分衿)도 확인할 수 있다<Figure 9>.

    “子(자) 司果(사과) 汝弼衿(여필금) ... (중략) ... / 女子(여자) 生 員權士彬妻衿(생원권사빈처금) / 婢由尼二所生奴(비유니이소생 노) 則同(칙동) 年二十三(년이십삼) / 奴小斤二所生奴(노소근이 소생노) 白萬(백만) 年三十(년삼십) / 四所生婢(사소생비) 莫今 (막금) 年十八(년십팔) / 五所生奴(오소생노) 莫山(막산) 年十四 (년십사) / 婢孝今一所生婢(비효금일소생비) 康德(강덕) 年十(년 십) / ... (중략) ... / 婢孝今二所生婢(비효금이소생비) 七今(칠금 ) 年二(년이) / 伊喜同年(이희동년) 三所生小奴(삼소생소노) / 婢 白萬良妻所生婢(비백만량처소생비) 於里(어리) 年四(년사) / 奴 金伊萬良妻所生婢(노김이만량처소생비) 五月(오월) 年二(년이) / 婢今音德所生奴(비금음덕소생노) 莫同(막동) 年(년) ... (후략) ...”⌈충재권벌종손가소장고문서( 齋權木發宗孫家所藏古文書), 분재기(分財記), 내용 요약⌋

    충재 선생의 어머니 파평 윤씨(生員權士彬妻, 생원권사빈 처)는 중종(조선 제11대 임금) 비(妃)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 조선 제12대 임금 인종의 어머니)의 아버지 윤 여필(尹汝弼, 1466~1555)과 남매(장경왕후의 고모)로 왕실과 연관이 많았으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노비가 많은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17세기 이전의 시대적 상황은 장자 상속이 정착되기 이전으 로 자녀 균분(均分) 상속이 가능한 시기였기 때문에 충재 선생 의 어머니 파평 윤씨도 많은 노비를 상속받았습니다.” (차종손 권용철) <Figure 9>

    이처럼 충재 종가에서 거느리는 노비가 많았기 때문에 종 부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고, 전체적인 지시와 관리를 한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로 조선시대에 여성의 치마 여밈 방 향을 고려할 수 있다. 당시 좌, 우로 여미는 방향에 따라 신 분과 당파를 구별하기도 했는데 양반은 왼쪽, 기녀와 서민층 은 오른쪽으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치마 여밈 은 일률적인 규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Sim & Yun 2000). 이는 지역에 따라 충남지역 양반 여인은 왼쪽(좌임, 左)으로 여미고, 경북지역 양반 여인은 오른쪽으로 여미 는 특징이 있다는 보고가 이를 뒷받침해준다(Cho 1998; Lee 2009).

    “옛날부터 영남지방에서 양반 부녀자들은 치맛자락의 왼쪽 섶 (옷자락)을 오른쪽 섶 위로 여미는 우임(右)을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치마 자락을 오른손으로 잡는 것(우임)은 직접 일 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노비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종부가 직접 떡을 만드는 일보다 지휘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따라서 현 시대의 종부가 직접 떡을 괴는 모습을 보고 옛날에도 종부가 모두 했 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 다.” (차종손 권용철)

    이러한 근거 자료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종부가 시루떡을 직접 만들다가 실패해 목을 매 자살 했다는 소문 은 더욱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4)동곳떡의 시대 추정

    충재 선생의 2대 후손인 권래 선생과 궁중에서 시집온 공 주 며느리로 추정하고 있는 둘째 부인 완산 이씨의 혼인 연 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동곳떡이 처음 만들어진 시대를 예 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첫째 부인 선성 김씨가 세상을 떠난 연도(몰년, 沒年)가 기록되어 있어 부재모상을 치른 이 후에 완산이씨와 혼인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충재 종가 에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충 재 선생이 국불천위로 추대된 1591년 첫 불천위제사를 동곳 떡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Figure 10>.

    “족보에 나온 첫째 부인 선성 김씨(現 예안 김씨)가 1602년(임 인년, 壬寅年) 세상을 떠나 부재모상(父在母喪)을 최소 1년 치 렀다고 가정했을 때, 1603년 둘째 부인 완산 이씨(現 전주 이 씨)와 혼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희는 불천위제사의 시 작을 동곳떡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차종손 권용철)

    5)문화적 갈등과 해소에 따른 부정적 해석

    여러 문헌에서 근거와 출처 없이 잘못 전래된 소문의 원 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구전에 의해 전파되기 쉬운 설화 와 전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심층 조사를 수행하였다. 조사 결과,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1998년 발간한 ⌈영양군지⌋의 마을이름과 유래에 대한 전설을 소개한 지면에서 동곳떡의 소문과 유사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경북 영양군 청기면 산운리와 일월면 주곡리 경계 지점에 있는 ‘줏재(주현)’라는 지명의 전설로서, 주곡리에 위치한 한양 조 씨(漢陽 趙氏) 옥천 종택의 며느리가 제삿날 자정이 지나도 시루떡에 김이 오르지 않아 재(岾, 고개)에 올라가 목을 매 자진(自盡)했다는 제보가 기록되어 있다(제보 최○○, 62세). 훗날 가엾은 며느리의 마음을 기리는 뜻으로 ‘줏재’라고 하 였다 한다(Yeongyang-gun 1998). 이는 영남 지역에서 유일 하게 시루떡을 사용하지 않는 충재 종가의 동곳떡을 보고 사 람들이 봉화군과 인접한 영양군의 지명 전설과 연결하여 동 곳떡의 전설을 허위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 다. 즉, 문화적 접근에서 갈등과 갈등해소 관계를 놓고 보면, 사람들이 ‘줏재의 전설’에 나온 갈등을 독특한 형태의 ‘동곳 떡 탄생 이야기’로 해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충재 종가의 여러 뒷받침 자료를 살펴보았을 때, 영양군의 ‘줏재의 전설’이 구전에 의해 잘못 연결되어 전래된 것으로 보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다.

    IV.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의 제례음식 동곳떡 을 2004년, 2010년 문헌고찰과 2014년 현장조사를 통해 시 대별 고임과 조리법 변화, 전승과정에 대하여 분석하였고, 2015년 종가 구성원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그 유래와 의미 를 파악하였다.

    충재 종가에서는 ‘편’을 동곳떡이라 부르며, 본편 1 종류 와 웃기편 11 종류로 분류한다. 조사 문헌 중⌈종가의 제례 와 음식⌋에 소개된 27 종가 중 유일하게 원형의 고임 형태 를 띠고 있으며 가장 많은 종류의 웃기편을 쌓고, 가장 높이 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2010년 문헌고찰과 2014년 현장조사 결과, 동곳떡의 고임 형태, 본편과 웃기편의 떡 종 류, 순서, 조리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2004년과 달리 2010년, 2014년에 참여하는 제관의 수와 떡의 찰기 정도에 따라 연도별 본편의 켜 수가 달라졌으며, 떡을 만드는 종부 가 바뀌면서 웃기편 중 쑥단자와 부편의 고물이 카스텔라에 서 거피녹두고물로 바뀌었다.

    동곳떡의 본편인 잔절편은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쌓고, 웃 기편으로 쑥절편(청), 밀비지(백), 송기송편(적), 경단(황), 쑥 단자(청), 부편(백), 잡과편(적), 전(백), 산심(백), 조악(백), 깨 구리(흑)를 순서대로 각 1켜씩 쌓아 오방색의 조화를 이루었 다. 떡의 조리법 분류에 따라 찐 떡에 부편, 친 떡에 쑥절편, 밀비지, 지진 떡에 전, 산심, 조악, 삶은 떡에 송기송편, 경단, 쑥단자, 잡과편, 깨구리가 있어 다양한 조리법을 사용한 것 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곳떡의 높은 고임에도 불구하고 쓰러 지지 않는 이유는 본편인 잔절편의 찰기와 웃기편으로 올라 가는 각 떡을 종류별로 방향을 달리하여 겹쳐서 쌓았기 때 문이다.

    제례 떡의 기본형인 시루떡 대신 절편을 사용하여 만든 독 특한 고임 형태 때문에 오래전부터 여러 문헌을 통해 제삿 날 종부가 자결을 해서 동곳떡을 자체 개발했다는 소문이 전 해져왔다. 그러나 잔절편은 찜통에 찐 후 치는 과정과 일반 절편 반죽을 손으로 밀어서 동곳 모양처럼 가공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따라서 차종손 권용철씨는 편이성을 고려한다면 시루떡보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과 많은 노동력 이 요구되는 동곳떡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였다. 한 편, 동곳떡을 처음 만들어진 시대는 가문의 족보와 박물관에 소장된 고문서를 근거로 2대손 권래 선생이 궁중과 관련이 깊은 둘째부인 완산 이씨와 혼인한 1603년(추정연도) 이후로 추정 할 수 있으나 종가에서는 통상적으로 충재 권벌 선생이 국불천위로 추대된 1591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가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큰 종부가 스스로 자결했다는 자극적인 소문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 가문의 자랑이 되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제례음식에 대하여 깊은 이해와 조사 없이 주관적 판단과 하 나의 흥미 요소로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잘못은 종가음식 연 구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이 소문의 근원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달실마을이 안동 권씨 집성촌이라는 이유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장조사에서는 직접적인 종가 구 성원들과의 자료 공유와 객관적인 수집이 바탕이 되어야 하 지만, 집성촌이라는 이유로 종가 외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종가에 관한 이야기를 객관화하여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 는 타 종가의 연구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이며, 연구자 의 주관적 판단으로 인해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음식관광 활성화를 위해 종가음식의 관광 상품화와 산업화를 위해 정부 부처 간(Jeongchaekbriefing 2013) 그리 고 정부와 기업체 간의 협약이 체결되었다. 협약의 일환으로 시작되는 종가음식과 고택 관광 상품화는 새로운 부가가치 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자원 발굴이라는 기대 속에서 종가 와 종가음식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Gyeongbukdominilbo 2014).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종가의 의미는 한 가문의 역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지 켜 나가야 할 문화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향후 종가음식 연 구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며 주관적 견해 의 서술보다 객관적인 자료와 가문의 내력을 구성원과 공유 하여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곧 가문의 명예가 달린 기록이며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종가음식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특정 종가의 음식에 대하여 현장조사와 심 층면접을 통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것이 한계점으로 지 적되어 왔다(Kwon 2013).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문을 선정 하고 문헌고찰과 현장조사, 심층면접까지 체계적인 연구 방 법을 진행하여 제례음식 떡의 시대별 고임 및 조리법 변화 와 전승과정을 분석한 본 연구는 종가음식 연구의 새로운 방 향을 제시하는 한편, 종부에서 차종부로 전해지는 가문의 음 식문화를 구성원과의 깊이 있는 공감을 통해 기억에서 기록 으로 남긴 시도로서 큰 의의를 갖는다.

    연구자가 바라본 충재 종가는 비교적 젊은 차종손, 차종부 내외가 종택을 지키고 오랫동안 내려온 종가의 역사, 문화, 음식 등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는 종가 구성원들의 고령화, 재정 및 노동력 부족, 종택과 주변시설 노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종가의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마찬가지로 충재 종가도 불천위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일손이 예전에 비해 줄었다고 한다. 젊은 종부라 할지라도 소수의 종가 구성원 몇몇의 도움으로 제례음식을 준비하고 제관들에게 대접하는 것은 시대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서 함께 도와주시는 마을 부녀자들이 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고령으로 작고(作故)하 시는 경우에는 종가 문화의 계승 측면에서 그 한계의 크기 는 증가할 것이며 종가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축소될 것 이 분명하다. 종가의 대표적 특성인 봉제사와 접빈객 문화의 유지가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제례문화와 함께 사라져가는 제례음식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서 가문의 과 거, 현재, 미래 전반에 걸친 깊이 있는 이해와 역사, 문화 등 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기록이 시급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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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got (a top-knot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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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cess of Janjeolpyeo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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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pared Donggot-tteok, 2004

    KJFC-30-296_F4.gif

    Donggot-tteok product mode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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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got-tteok for 1 perso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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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mbok (飮福) table setting for 1 person, 2014

    KJFC-30-296_F7.gif

    Seongjugosa (城主告祀) table setting (Lunar 01. 24.), 2015

    KJFC-30-296_F8.gif

    Jokbo (族譜) of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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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ave ownership paper (分財記) of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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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timated start of the Donggot-tteok by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Table

    Study methods synopsis

    Donggot-tteok build order of Chungjae Gwon Beol from the Andong Gwon clan Jong-ga

    1))In 2010, Janjeolpyeon had a small number of layers because it was made for display in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Jong-ga · loyal family food exhibition>> (not bulcheonwi ritual)

    Ingredients and recipe to「Jerye and food of Jong-ga」 by NRICH, 2004

    Recipe to 「From naerim to nanum, Jong-ga and Jong-ga food」 by RDA, 2010

    *Photos source: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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