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장(醬)은 한국 음식 맛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조미식품이다. 소금과 마찬가지로 음식에 짠맛을 부여하는 동시에, 콩의 단백질과 지방이 분해⋅발효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아미노산에서 오는 감칠맛과 복합적 풍미를 더함으로써 곡물과 채소 위주의 식단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맛과 영양의 공백을 메워 왔다. 저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한 높은 염도는 부가적 기능으로 저장식품 제조에도 널리 활용되어 장아찌⋅자반⋅김치류 등 다양한 발효식품의 발달도 견인하였다. 그만큼 장 제조사는 장(醬) 자체의 변천뿐 아니라 관련 식품의 발달 과정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은 장의 원료인 콩의 기원지이자 주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고대부터 장류문화가 발달해 왔음을 추정하게 하는 유물과 기록이 확인된다(Choi 2020;Park YM 2023). 평안도 덕흥리 벽화무덤 묘지명(408년)의 염시(鹽豉), 삼국시대 신문왕 3년(683)의 폐백 품목에 포함된 장(醬)과 시(豉), 중국 『Xindangshu (신당서)』(11C)에 보이는 발해 책성(柵城)의 시(豉), 『Goryeosa (고려사)』에 구황민에게 시(豉)와 장(醬)을 지급하였다는 기록(1018, 1052) 등은 한국 장류 문화의 오랜 역사성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로는 장류 문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제조 방식과 장의 형태 등 한국 장의 제조사적 특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가공 방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된 조리서의 분석이 필수적인데, 지금까지 제조법과 발효 원리 등 장의 실체에 천착한 연구로는 Chang (1969;1974)의 작업이 사실상 유일하다. Chang (1969;1974)은 중국 및 일본과 차별화되는 한국 장(醬)의 제조사적 정체성을 콩 단독 원료로 만든 ‘간장⋅된장 병용장(倂用醬)’으로 규정하였으며, 속성장 제조문화는 소수의 예외적 사례로 간주하였다. 이 견해는 이후 오랫동안 답습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착⋅보편화된 방식을 중심으로 한 견해로서, 그 이전 시대의 장 제조에 관한 자료의 부족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실제로 장 제조사뿐 아니라 음식문화 전반에서도 18세기는 뚜렷한 전환점에 해당하므로, 그 이전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7세기 이전 기록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Chang (1969;1974)의 연구 이후 50여 년 동안 조선시대 조리서가 상당수 추가 발굴되면서 각 조리서에 나타나는 장류 제조법을 소개⋅분석한 성과들은 축적되었으나(Kim & Lee 2004;Choi et al. 2007;An & Woo 2012;Han & Kim 2020), 제조사적 특이성과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적 특성, 나아가 발효 원리의 규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각 조리서마다 서로 다르게 표기된 장류 명칭으로 인해 정체 및 계통 분류의 혼선도 적지 않다. 따라서 고조리서의 발굴이 매우 제한적이던 1970년대에 수행된 기존 성과에, 새로 확인된 자료를 반영한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2000년대 이후 새로 발굴된 네 권의 조선 전기 조리서에 나타난 장 제조법⋅명칭⋅형태 기록을 토대로, 한국 장류 제조 기술의 변천 과정을 재구성하고, 여러 장류의 형태적⋅기능적 특성과 상호 연관성을 고려한 새로운 한국 장 분류 체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아울러 채소의 담금원으로서 김치류 제조사에서 장(醬)이 수행한 역할도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중국 및 일본과 차별화되는 한국 장류의 독자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발현되는지, 사회문화의 변동에 따라 장류의 명칭⋅재료⋅제조법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계승되고 무엇이 쇠퇴하여 오늘날의 장 제조문화로 남게 되었는지, 또 여러 장류 제조법을 공통으로 묶어낼 수 있는 특징과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제조사적 관점에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I. 연구 대상 및 방법
현 시점에서 한국 장 제조 기술의 변천 과정과 분류 체계를 정립하는 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장 제조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인 18세기 이전 조선 전기의 장 제조에 관한 실상을 밝히는 일이다. 조선 후기 조리서 또한 상당수 새로 발굴되었으나(Park 2023), 제조 특성과 전반적 경향이 대체로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1766)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Yoon 2000;Yoon 2007;Kim & Lee 2004), 조선 후기 이후 장 제조사에 대해서는 장지현의 연구 성과와 대체로 부합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16세기 이전 편찬된 『Sangayorok (산가요록)』(1450), 『Suunjapbang (수운잡방)』(1540), 『Gyemiseo (계미서)』(1554),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16C) 4종의 조리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대상을 이 네 권으로 한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전 조리서가 부재한 고려시대부터 1600년대 이전까지 문화적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선행 연구에서 17세기 이전 장류 제조법을 분석한 결과와도 일치한다(Choi et al. 2007;Choi 2017).
둘째, 『Gyemiseo(계미서)』와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은 각각 2017년과 2018년에 추가 발굴된 자료로, 특히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의 장 제조법 분석은 한 번도 다루어진 바 없다. 이들 문헌에는 『Sangayorok (산가요록)』과 『Suunjapbang (수운잡방)』에 보이지 않는 속성장 제조법과 명칭이 포함되어 있어, 기존 기록의 모호한 부분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상호 보완적 정보가 담겨 있다.
셋째, 16세기 이전 조리서가 4권이나 확보됨으로써 조선 전기 장류 제조문화에 관한 사례가 보다 풍부해졌으며, 이 시기 장 제조법의 주요 특징에 따른 제조 계통의 분류와 담금원으로써 상호 연결된 김치 문화와의 연관성까지 함께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분석 대상 조리서의 장류 항목을 토대로, 콩을 발효시키는 방식과 메주의 형태, 재료의 구성에 따라 주류 장류의 제조 계통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난장(卵醬)⋅태각장(太殼醬)⋅청근장(菁根醬)⋅도토리장 등 기타 장류도 존재하나, 이들은 장을 대체하거나 응용한 제품의 성격이 강하다. 다시 말해 비지⋅콩껍질⋅콩잎⋅밀가루 등 대체 원료를 활용한 임시 방편적 산물이므로, 본 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보다 상위 개념의 장류 발효 기술 계통을 분류하는 데 핵심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총 분석 대상 방문 수는 34항목이다. 메주(末醬)는 장 제조에 필요한 덩어리 메주 제조법 기록은 『Sangayorok (산가요록)』과 『Gyemiseo (계미서)』 두 군데만 보이고, 독립 장류 계통이라기보다 장(醬) 제조를 위한 원료에 해당하므로 장 항목에 포함시켰다. 또한,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에는 한글 방문인 <즙쟝>이 하나 더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한문으로 기록된 <즙저우방1>을 한글로 옮겨둔 것으로 내용은 동일하므로 하나의 방문으로 묶었다.
본 고에서는 조선 전기 조리서에 등장하는 용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장(醬)’은 조리서 항목명으로서의 협의의 개념으로 한정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상위 범주는 ‘장류(醬類)’로 칭한다. 제조 과정에서 추출되는 산물 중 액체즙은 ‘액장(液醬)’, 남은 건더기는 ‘장재(醬滓)’, 이를 건조한 것은 ‘건장(乾醬, 마른장)’으로 정의한다.
또한 제조 기간에 따라 1개월 이하의 ‘속성장(速成醬)’과 3개월 이상의 ‘장기숙성장(長期熟成醬)’으로 구분하며, 메주의 형태에 따라 낱알 형태인 산국(散麴)과 덩어리 형태인 병국(餠麴)으로 나눈다. 원료 구성상 콩 100%인 ‘순두장(純豆醬)’과 밀기울 등을 섞은 ‘혼합장’, 그리고 최종 활용 방식에 따라 즙만 활용하는 ‘단용장(單用醬)’과 즙 이외 부산물을 다른 용도로도 쓰는 ‘병용장(倂用醬)’으로 구분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1. 조선 전기 장류(醬類)의 4가지 유형
문헌을 분석한 결과, 조선 전기 장류는 크게 ‘전시(全豉), 청장(淸醬), 즙장(汁醬), 장(醬)’의 네 가지 유형인데 이를 속성형과 장기숙성형 두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속성형 장 계열
가. 전시(全豉)
① 제조법
전시는 100%를 통 콩알만을 써서 낱알 메주(산국 散麴)를 만들고, 이를 볕에 말려 법제(法製)한 뒤 소금물과 누룩을 더해 완성하는 여름철 속성장이다. 제조 시기는 음력 7~8월의 한여름이며, 전체 소요 기간은 한 달 이내이다. 산국(散麴) 완성에는 대체로 2주가 걸리는데, 콩 이외에 기울을 첨가하지 않으며, 콩알을 으깨거나 분쇄하지 않고 낱알 그대로 황국균(Aspergillus)의 생성을 유도하는 형태이다. 발효는 말똥이나 두엄을 이용한 고온 환경(30~60℃)에서 진행된다. 발효 기간은 통상 2주이나, “더운 때는 1주 이내, 서늘한 때는 3주”로 기온에 따라 조정하라는 기술 내용은 당대인들이 발효 속도와 온도의상관성을 정밀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② 용도 및 활용
전시(全豉)는 건조하여 건장(乾醬)으로 보관했다가, 다시 소금물을 부어 시즙(豉汁)을 만들어 조미액으로 활용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시(豉) 계열은 4종 조리서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며, 제조법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그 명칭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다. 『Sangayorok (산가요록)』의 <전시>, 『Suunjapbang (수운잡방)』의 <전시>⋅<봉리군전시>, 『Gyemiseo (계미서)』의 <전시>⋅<전시2>⋅<향시>,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의 <전국(全麴)> 등이 확인되며, 이는 시(豉) 계열이 조선 전기 전반에 걸쳐 안정적으로 전승된 장류의 한 축이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전시(全豉)⋅향시(香豉) 등 시(豉) 자를 명시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은, 이 시기 ‘시(豉)’가 ‘장(醬)’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자적 범주로 인식되었음을 어휘 차원에서 입증한다. 다만 말똥이나 두엄에서 고온 발효한 뒤 초출(初出) 시즙을 액장으로 쓰기도 한 사례가 『Sangayorok (산가요록)』의 <전시>와 『Gyemiseo (계미서)』의 <전시2>에 소개되어 있어, 실제 활용에서는 융통성이 발휘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 청장(淸醬)
① 제조법
청장(淸醬)은 전시(全豉)와 더불어 여름철 속성장 계열에 속하나, 원료 면에서는 콩에 밀기울(麩)을 혼합한 낱알 메주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최종 산물 측면에서는 다량의 맑은 액장을 추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전시와 명확히 구별된다. 청장의 제조 시기는 시와 동일하게 7~8월이며, 전체 소요 기간 역시 한 달 이내라는 점에서 전시(全豉)와 같은 속성형 장이다. 그러나 메주 원료의 구성에서 결정적 차이를 보이는데, 통 콩알만을 사용한 전시(全豉)와 달리, 청장은 콩에 밀기울을 혼합하여 산국(散麴) 형태로 띄운다. 밀기울의 첨가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밀기울의 전분 성분은 당화(糖化)를 촉진하고, 이 당화 산물이 발효 과정에서 일부 잔류하여 청장 특유의 단맛을 형성하는 등 풍미가 향상된다.
둘째, 가속화된 당화는 황국균의 생장 속도를 높여 메주의 완성 기간을 1~2주로 단축시키며, 이는 전시(全豉)의 2주보다 짧고 총 4종의 장류 가운데서도 빠른 것이어서, 청장은 속성발효를 위한 기술을 메주 단계에서부터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밀기울은 풍미 향상과 가공 효율성 확보 효과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② 용도 및 활용
청장의 명칭이 시사하듯, 이것의 일차적 제조 목적은 순수하고 맑은 액장을 대량으로 획득하는 데 있다. 조리서의 기술에 따르면 청장은 즙을 걸러 물을 추가하여 달이는 공정을 거친다. 여기에 밀기울 첨가로 부여된 단맛이 결합하여, 청장은 ‘맑음(淸)’과 ‘단맛’이라는 이중의 풍미를 갖춘 액장으로 기능하였다. 대개 액체 추출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찌꺼기를 제거해 맑은 간장만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Gyemiseo (계미서)』의 <청장>과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의 <청장>을 보면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추출한 맑은 액장을 한 번 끓여 내고 있어, 보다 고도화된 제조법도 확인된다. 한편 『Sangayorok (산가요록)』의 <기울청장>은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덩어리 메주를 빚었으며, 『Sangayorok (산가요록)』의 <청장2>와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의 <청장2>에는 건더기를 재활용하여 2차⋅3차 액장을 재추출하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제조법이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는 점은 청장 제조문화의 층위가 다변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이해된다.
다. 즙장(汁醬)
① 제조법
즙장(汁醬)은 시⋅청장과 더불어 여름철 속성장 계열에 속하나 소형 덩어리메주(餠麴)를 사용하고 즙과 건더기를 분리하지 않은 채 채소 절임의 담금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위 두 계열(전시⋅청장)과 뚜렷이 구별된다.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에는 동일한 방문을 한자로 기록한 뒤, 마지막에 한글로 풀이해 두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월 20일께 콩 한 말을 벌레 먹은 것 없게 하고 물에 담가 사흘 만에 기울 세 말로 섞어 쪄서 찧어 메주를(손에) 쥐어 하루만 볕에 말려 공석 위에 붉나무 잎 닥나무 잎 두터이 깔고 그 위에 메주를 벌려 놓고 또 잎과 베로 두터이 덮어 이레 만에 고양이 털 모양으로 털 나거든 내어 반만큼 따라 2~3일만 말려 가루 만들어 팔월 보름께 가지 1동이에 빻은 가루 한 말, 소금 네 홉씩, 물과 섞어 독에 넣고 굳게 봉하고 흙을 발라 새 거름에 묻어 7일 만에 열어보면 가지 안에 반은 희고 반은 붉었거든 도로 독을 발라 서늘한 데 두었다가 21일 만에 쓰라. 가지, 동화, 외 섞어 담아도 좋다. 또 물이 적으면 마르니라.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즙저우방1>과 동일 내용의 한글 <즙쟝>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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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즙장용 메주】콩 침지(3일) + 기울 3말→찌기→한 손으로 쥐어 덩어리 만듦→햇볕에 말림(1일)→천금목, 닥나무잎 덮어 띄움(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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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법제】볕에 말림(2-3일)→가루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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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즙장 만들기(造醬)】메주가루(麴末) 1말 + 소금 4홉 +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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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즙저 만들기】즙장 + 가지 1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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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말똥에 14일간 숙성
콩에 밀기울을 혼합한다는 점에서는 청장과 유사하나, 메주의 형태에서 결정적 차이를 보인다. 즙장은 형태상 병국(餠麴)에 속하지만 그 크기를 엄지손가락에서 아이 주먹 정도로 매우 작게 빚는다.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즙저우방1>의 경우 한 손에 쥐어 뭉쳐 만든다고 되어 있다. 이는 표면적/부피 비를 산국(散麴)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보함으로써, 병국 형태이면서도 곰팡이 우점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설계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즙장용 메주의 완성 기간은 1주 내외로 장류 4종 가운데 가장 짧다. 조장(造醬) 단계에서는 메줏가루(麴末)와 소금물을 기본으로 하되, 『Sangayorok (산가요록)』의 <즙저3>처럼 누룩을 추가한 사례도 있다(An & Moon 2015).
② 용도 및 활용
즙장의 용도는 4종의 장류 가운데 가장 독자적이다. 시⋅청장이 액장과 건더기를 분리하여 운용하는 데 비해, 즙장은 즙과 건더기를 분리하지 않은 혼합체 그대로 채소를 절이는 담금원으로 사용한다. 즙이 분리되지 않아 묽은 즙장에 채소를 넣어 만들면 즙저(汁菹)⋅즙지히가 되는 것이다.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인 ‘저(菹)’ 또는 순우리말인 ‘디히>지히>지’가 붙었다는 사실은, 즙장이 단독 소비를 위한 장이 아니라 김치(沈菹) 등 채소절임의 발효를 유도하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았음을 시사한다. 즙장 계열은 4종의 장류 가운데 사료적 분포가 가장 풍부하다. 『Sangayorok (산가요록)』의 <하일즙저>⋅<즙저1~3>, 『Suunjapbang (수운잡방)』의 <즙저>⋅<조즙>⋅<즙저우법>, 『Gyemiseo (계미서)』의 <즙저>⋅<가지즙저>⋅<즙저법>,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의 <즙저방>⋅<즙저우방1⋅2>⋅<가지즙저> 등 총 14개에 달하는 방문(方文)이 이 계열에 속한다. 제조법이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향유 이력이 오래되었고 그 사용층 또한 폭넓었음을 의미한다.
라. 소결
이상의 속성형 장 3종을 분석하면, 원료와 메주 형태에 차이가 있으나 제조 원리와 공정이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Sangayorok (산가요록)』<전시> 말미에는 “그 즙에 소금을 넣고 끓이면 청장이 된다(其汁添鹽烹之可爲淸醬).”고 되어 있으며, 『Sangayorok (산가요록)』<즙저>에는 “전시를 만들 듯이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Gyemiseo (계미서)』의 “전시에 생가지⋅오이⋅동과를 넣어 즙저를 만든다”는 기록도 그 근거에 해당된다.
속성장의 세 가지 유형을 제조 프로세스와 형태적 측면으로 보자면, 우선 메주에 소금물을 넣고 고온 발효시키면 반고체형 페이스트상의 속성장이 된다. 이를 ① 장기보관을 목적으로 이를 건조시키면 전시(全豉), ② 찌꺼기를 제거하고 소금물을 가하여 맑은 액체만 추출하면 청장, ③ 액체와 찌꺼기를 분리하지 않고 채소를 넣기 전 상태가 즙장이 되는 것이다.
다시 용도 활용 측면에서만 본다면, ① 건장(乾醬) 상태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 시 액장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제조하는 것이 전시(全豉), ② 액체를 다량 추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청장, ③ 액체를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채소절임에 사용하기 위한 매개체가 즙장이었다. 다만 최종 산물의 생산 효율과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콩에 밀기울을 섞거나, 조장(造醬) 시 누룩을 첨가하거나 말똥이나 두엄에서의 고온 숙성 기간을 조정하는 방식을 함께 동원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 전기까지 주축을 이루었던 속성장(시⋅청장⋅즙장)이 하나의 원류에서 출발하여, 최종 용도에 맞추어 분화되어 갔음을 시사한다.
한편 청장, 즙장, 장의 경우 모두 ‘콩을 찧어서’ 만드는 데 비해 전시는 유일하게 콩알을 통째로 써서 만든다. ‘전시(全豉)’라는 이름은 콩알을 온전한(全, whole grain) 형태로 담근다는 뜻이거나, 반고체형 페이스트 상태 온전히(全) 말려 저장해 둔다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된다.
2) 장기숙성형 장(醬)
장(醬)은 속성형 3종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별도 범주를 이룬다. 한겨울에 제조되어 3개월에 걸쳐 장기숙성되며, 복합 미생물의 작용으로 발효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여름철 곰팡이 주도형 속성장(시⋅청장⋅즙장)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① 제조법
장의 제조 시기는 음력 1~2월의 한겨울로, 시⋅청장⋅즙장의 7~8월과 정반대이다. 전체 소요 기간은 3개월로, 한 달 이내의 속성 계열에 비해 약 3배 이상의 장기 발효를 요구한다. 제조법은 『Sangayorok (산가요록)』의 <합장법>⋅<간장>, 『Suunjapbang (수운잡방)』의 <수장법>, 『Gyemiseo (계미서)』의 <침장법>⋅<수장침법>⋅<합장> 등에 나와 있으나, 모두 병국을 완성한 이후 소금물에 담그는 단계부터 서술하고 있다. 장의 원료인 메주를 만드는 법은 『Sangayorok (산가요록)』과 『Gyemiseo (계미서)』의 <말장(末醬)>⋅<말장훈조(末醬薰造)> 항목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병국 메주인 말장의 원료는 콩 100%로 시(豉)와 동일하나, 콩알 형태가 아니고 으깬 후 대형 덩어리로 뭉쳐 만든 메주(餠麴)로 표면적이 넓다. 따라서 돌려 가며 표면을 건조시켜야 하며, 시(豉)의 산국(散麴)과 명확히 구별된다.
장의 발효 주체가 되는 미생물은 황국균에 더하여 효모(Saccharomyces spp.)와 세균(Bacillus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이는 대형 덩어리 메주가 형성하는 표면(호기)–내부(반혐기)의 미세환경 분화가 Aspergillus (표면)⋅Bacillus (내부)⋅효모(후숙기) 등의 시⋅공간적 시차 우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Chang 1969;Chang 1974;Min 2023). 조장(造醬) 단계에서는 병국에 소금물을 더하고, 발효는 상온에서 장기간 진행된다.
② 용도 및 활용
장의 용도는 액장을 얻는 것이 1차 목적이지만, 건더기(醬滓)는 콩알 좌반(佐飯)이나 두부구이용 양념으로 활용된다(①~ ③). 즉 액체와 건더기 모두를 활용하되 다른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는 병용장(倂用醬)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시나 청장의 경우 건더기 또한 다시 액장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이 건더기가 조선 후기의 된장과 같은 용도로 쓰였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를 온전한 ‘간장⋅된장 병용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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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Sangayorok (산가요록)』<간장(艮醬)> 먹을 때는 즙(汁)을 슬쩍 끓이며 거품(泡)을 걷어내고 그릇에 담가 단단히 봉한다. 두부(豆泡)를 구울(炙) 경우 새 콩비지(泡滓) 한 두 수저에 파(蔥), 생강(姜), 형개(荊芥)를 조금 넣어 끓이 면 맛이 좋다. 콩은 말려(乾) 반찬(佐飯)을 만들고, 또는 광주리(筐)에 담아 물기를 빼고(去汁) 쪄서(蒸) 즙(汁)을 얻어 맑은 장(淸豉)으로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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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Suunjapbang (수운잡방)』<수장법(水醬法)> 두부(泡)를 구울 때(炙) 즙을(汁) 사용하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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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Gyemiseo (계미서)』<합장(合醬)> 평상시 법대로 담근다. 쓸 때는 먼저 윗부분(액장)을 쓰고, 나중에는 콩을 말려(乾) 반찬(作佐飯)을 만든다. 즙액(汁)은 한 번 끓으면 그 위의 거품(泡)을 걷어내고 그릇에 담아 밀봉해 쓴다. 만약 두부(豆泡)를 구울 때(炙)는 생콩가루(生細太末)를 섞어 합하여 삶아(合烹) 쓴다. 또 혹은(건더기) 콩을 광주리(筐)에 얹어 즙을 낸 뒤(取汁), 그것을 쪄서(蒸) 청장(淸醬)을 만든다. 그 콩은 반찬(佐飯)으로도 쓴다.
2. 제조법과 용도에 따른 조선 전기 장류 특징
1) 속성장과 장기숙성장 문화의 공존
조선 전기 장류를 제조법의 측면에서 보면, 전시(全豉)⋅청장(淸醬)⋅즙장(汁醬)은 곰팡이 주도형 속성장으로, 장(醬)은 세균⋅효모가 가세하는 장기숙성장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시와 청장은 낱알 형태의 산국(散麴)을 제조하고, 즙장은 병국(餠麴)에 속하되 그 크기를 엄지손가락 또는 아이 주먹 정도로 매우 작게 빚어 곰팡이 생장 시간을 단축하였다. 즉 즙장은 형태상 병국이지만, 표면적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산국(散麴)과 같은 공정 원리를 따른다. 세 계열 모두 음력 7~8월 여름철에 제조되고, 말똥이나 두엄의 발효열을 이용한 고온 조건에서 짧은 시간 안에 장을 완성하는 속성 발효장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속성장 계열의 주발효 주체가 Aspergillus 속의 노란 곰팡이(황국균)였음은 사료에 보이는 황모(黃毛)⋅생모(生毛)⋅고양이털(猫毛, 굇거리) 등의 곰팡이를 묘사한 표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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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經二七日, 生黃毛為上 『Suunjapbang (수운잡방)』 <전시(全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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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待七日生毛 『Suunjapbang (수운잡방)』<즙저(汁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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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太色黃而生毛 『Gyemiseo (계미서) 』<향시(香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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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經二七日, 生黃毛出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 <전국(全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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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經七日, 猫毛起生 닐웨안내 굇거리 닐어든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즙저우방1>과 <즙쟝>
메주에 털이 일고 누런 곰팡이가 피는 현상은 발효의 성패를 판단하는 직접적 지표였으며, 이는 당대의 제조자가 곰팡이 생성 여부를 공정 관리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음을 보여 준다. 특히 여름철 고온 환경은 황국균(Aspergillus)의 증식에 유리하였고, 말똥을 이용한 고온 발효는 미생물의 발효 효과를 더욱 증폭시켰다. 따라서 전시⋅청장⋅즙장은 계절 조건⋅메주 형태⋅미생물 생태를 결합하여 발효 시간을 의도적으로 단축한 공정 체계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세 유형은 황국균 배양 속성장이라는 공통 기반 위에서 계통이 나뉜다. 청장은 메주 제조 단계에서 기울을 섞어 당화를 촉진하는 대신, 조장(造醬) 단계에서는 소금물만을 넣어 맑은 액장을 얻는 데 초점을 두었다. 기울은 전분과 효소를 함유하고 있어 당화력을 높인다.
반면 전시는 메주를 콩 100%로 만들고, 조장 단계에서 누룩을 더하여 이미 당화된 당분을 바탕으로 발효력을 보강하였다. 즉 청장이 메주 단계의 당화 강화형이라면, 전시는 조장 단계의 발효 강화형이라 할 수 있다. 즙장은 콩과 기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청장과 가깝지만, 액장과 건더기를 분리하지 않은 채 최종적으로 채소 절임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별도의 계통을 이룬다.
이에 비해 장(醬)은 한겨울인 음력 1~2월에 대형 병국을만들어 상온에서 장기 발효시키는 체계이다. 장의 메주는 굴려 가며 겉면만 말리는 방식을 취하므로, 표면과 내부의 발효 환경이 달라진다. 초기에는 표면의 황국균이 작용하더라도, 후숙 단계에서는 내부를 중심으로 효모와 세균이 점차 가세하는 복합 발효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장은 여름철 ‘곰팡이 우점형 속성장’과 구별되며, 조선 전기 장류 문화가 하나의 단일한 제조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생물 운용 원리를 지닌 두 전통이 오랫동안 공존해 왔음을 보여 준다.
2) 액장 중심 운용과 장재(醬滓)의 활용
조선 전기 장류는 전체적으로 액장(液醬)의 확보가 1차 목표였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러나 장재(醬滓)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며, 이 차이가 곧 각 장류의 기능적 성격을 드러낸다.
전시는 건조하여 건장(乾醬) 형태로 보관하였다가, 다시 소금물을 부어 2차⋅3차 액장을 만드는 것이 주된 용도였다. 물론 전시 제조 시 『Sangayorok (산가요록)』의 <전시>⋅『Gyemiseo (계미서)』의 <향시>처럼 초출(初出) 부산물인 시즙(豉汁)을 청장으로 활용하거나, 『Gyemiseo (계미서)』의 <전시2>와 같이 장재(醬滓)를 말리지 않고 그대로 두부구이 양념 소스로 사용한 예외적 사례도 있기에 절대적 기준은 아니었으며,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발휘된 여지가 보인다.
청장은 이와 달리 건더기를 걸러 내고 물의 양을 가감해 끓임으로써 다량의 맑은 액장을 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명칭의 ‘청(淸)’이 시사하듯, 이 계열은 장재를 최소화하고 맑고 단맛이 도는 액장을 얻는 데 초점이 있었다.
반면 즙장은 액장과 장재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사용하였다. 따라서 즙장은 장 자체를 조미료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즙과 건더기를 포함한 상태 그대로 ‘채소의 담금원’으로 쓰이도록 설계된 장류였다.
장(醬) 역시 장기숙성형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일차적 목표는 액장의 확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조리서 기록에 따르면 그 즙은 간장으로 활용되며, 남은 건더기는 콩좌반이나 두부구이용 소스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된장처럼 장재를 독립된 장류로 인지하고 별도로 구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곧 장의 건더기는 반찬이나 소스 재료로 제한적으로 쓰였을 뿐, 후대의 ‘간장⋅된장 병용장’ 체계처럼 간장과 된장을 동시에 완비된 형태로 생산하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조선 전기까지 우리 장 문화에서 된장으로서의 활용도는 미미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된장’이라는 어휘가 처음 확인되는 기록이 “盤醬 된쟝(『Yeogeoyuhaebo (역어유해보)』1775), 盤醬 된쟝 (『Bangeonyuseok (방언유석)』1778), 盤醬─속언 頓醬(된장) 또는 土醬(토장)(『Myeongmulgiryak (명물기략)』1870)” 등 18세기 이후라는 사실과도 상응한다.
반면 『Yeogeoyuhae (역어유해)』(1690)에 보이는 ‘건장(乾醬, 마른 장)’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중엽까지 액장을 추출한 뒤 남은 장재가 별도의 된장으로 소비되기보다는, 말려 두었다가 다시 소금물을 부어 액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당시 문화를 입증하는 근거이다. 이를 종합하면, 조선 전기 장류 문화는 후대의 간장⋅된장 병용 체계와 동일한 구조라기보다, 액장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면서 장재를 재추출⋅제거⋅혼용⋅
보조 식용으로 차등 활용한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장 제조에서 액장 추출이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점은, 각종 구황서의 구황용 장 제조법을 비롯해 비지장(난장)⋅태각장(콩껍질)⋅급조청장(볶은 밀가루+감장) 등 액장 추출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 장 제조법이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다양하게 전승되었다(Choi et al. 2017)는 점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3. 조선 후기 변화상과 그 의미
조선 후기에 이르면, 조선 전기와 비교하여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그 변화의 방향은 크게 속성장 계열의 분화⋅재편과 대형 병국 기반 장기숙성형 장의 주류화로 정리할 수 있다.
1) 속성장 계열의 분화와 재편
조선 전기에 황국균 주도 속성형 장류(전시⋅청장⋅즙장)는 조선 후기로 가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화⋅재편된다. 전시(全豉)는 명칭과 실체가 재편되면서 일부 계통은 세균 발효형 청국장으로 변형되고, 청장(淸醬)은 독립된 제조 공정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장기숙성형 장에서 추출되는 액장과 통합되며, 즙장(汁醬)은 채소 절임용으로 본격 분화⋅다양화된다.
가. 시- 명칭의 재편과 청국장의 분화
조선 전기의 전시(全豉)에 해당하는 제조 방식은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1776)의 ‘급조장법(急造醬法)’으로 이어진다. 콩과 밀가루로 산국(散麴)을 만들어 황국균을 띄운 뒤 소금물에 담가 1주일 만에 장을 완성하는 방식이며, 『Imwongyeongjeji (임원경제지)』(19C)에서는 이를 10일 만에 담근다는 의미로 ‘순일장(旬日醬, 10일장)’이라 명명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전시(全豉) 계통 속성장이 명칭은 달라졌으나 후기에도 여전히 존속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밀가루 첨가로 당화력과 발효력을 높인 부분은 기술적 고도화가 엿보이는 지점이나 주류 문화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조선 전기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황국균이 아닌 세균(Bacillus) 발효 속성장이 등장한다.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 『Imwongyeongjeji (임원경제지)』(19C) 등에 보이는 ‘전시장(煎豉醬)⋅전국장(戰國醬)⋅수시장(水豉醬)’ 등이 그것이다. 100% 콩만을 3일간 온돌에서 세균 발효시킨 뒤 찧어 채소를 넣고 왕겻불에서 숙성시켜 완성한 순두장(純豆醬)이다(Choi et al. 2007). 원료와 제조의 큰 틀은 조선 전기 전시와 동일하나, 발효 주체가 곰팡이(毛)에서 세균(絲)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이다(①~③). 청태콩으로 만드는 ‘청태전시장(靑太煎豉醬)’도 같은 청국장 계통이며, ‘수시장(水豉醬)’은 ‘각지젼국장’이라 하여 2~3일 만에 세균 발효시킨 뒤 찧어 보관⋅식용하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즉 명칭에 시(豉)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관여하는 미생물의 종류와 제조법이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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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造煎豉醬法> 따듯한 온돌에 3일간 두어 실이 생기면(絲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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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水豉醬法> 2-3일을 기다리면 실이 나온다(生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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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Imwongyeongjeji (임원경제지)』<水豉醬法> 2-3일을 기다리면 실이 나온다(出絲取出)
종합하면, 조선 전기의 ‘시(豉)의 제조법’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① 곰팡이 주도형 속성장(순일장 계열)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 일부 잔존함과 동시에, ② 세균 주도형 반고체장(청국장 계열)이 새로이 등장하며 조선 전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속성장 문화가 펼쳐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시(豉)’라는 명칭은 더 이상 속성장이 아니라, 조선 후기 주류 제조법인 장기숙성형 장의 원료, 즉 덩어리 메주(餠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게 된다. 『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의 <조시법(造豉法)>에서는 시를 말장⋅훈조와 동의어, 곧 병국 메주로 규정하고 있다. 수박만 한 크기로 빚어 반달 모양으로 두 조각을 낸 뒤 황국균을 띄우며, “향촌에서는 둥글게 만들어 방 안에서 띄우는데 덩어리 속이 마르지 않아 품질이 나쁘다”는 언급도 덧붙이고 있어, 이때의 시(豉)는 낱알 메주가 아닌 수박 절반 크기의 대형 병국임을 알 수 있다.
『Myeongmulgiryak (명물기략)』(1870)의 “훈조(燻造)─장시(醬豉)이다. 며주라고 한다.”라는 기록 역시 조선 전기까지 산국(散麴) 기반 속성장류였던 시(豉)가 대형 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화하였음을 알려 주는 단서이다. 명칭은 동일하나, 실체는 전혀 다른 식품이 된 것이다.
나. 청장(淸醬) — 독립 공정의 소멸과 장기숙성형 장으로의 흡수
조선 전기에 독립된 제조 공정을 갖추고 있던 산국(散麴) 기반 속성 청장(淸醬) 제조법은 조선 후기 조리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청장은 콩과 기울로 빚은 산국(散麴)에 소금물을 부어 맑은 액장을 얻는 방식으로, 메주 단계의 당화를 강화한 액체 조미료를 추출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대형 병국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산출되는 액장이 일상적 액체 조미료로 자리 잡으면서, 별도의 산국(散麴)을 띄워 청장을 빚는 공정의 효용은 급격히 축소된다. 그 결과 ‘청장(淸醬)’이라는 명칭 자체는 후대 문헌에서 대형 병국 장에서 추출되는 맑은 액장(곧 간장)을 가리키는 용어로 의미가 옮겨 가게 되고, 조선 전기적 의미의 청장인 ‘산국(散麴) 기반 속성 액장’은 독립된 제조 공정으로서는 사실상 소멸하기에 이른다.
다만 액장의 신속한 확보를 목적으로 했던 청장 제조의 필요성으로 인해,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구급간장 제조법으로 부분적으로 잔존하였다. 밀가루⋅콩껍질⋅콩잎⋅굴젓 등을 활용한 후대의 구급간장 처방들은(Kim & Lee 2004), 대형 병국 장이 주류화된 이후에도 초단기간에 액장을 얻고자 하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다. 즙장(汁醬) — 채소 절임용 장으로 확고한 입지
조선 전기의 즙장(汁醬)은 처음부터 액장과 건더기를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채소 담금원으로 활용된다는 데 그 특징이 있었다. 이 계통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시⋅청장 계열이 위축되거나 재편되는 흐름과는 달리 오히려 위상이 강화되고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인다(An & Moon 2015;Park 2014). 다양한 채소를 즙장에 담그는 처방이 후기 조리서에서 늘어나며, 지역과 가문에 따른 변형도 활발히 나타난다(Yoon 2007).
즙장의 이러한 존속⋅확장은 그 기능적 위상이 다른 속성장 계열과 본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시와 청장은 액체 조미료(시즙⋅액장)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후기의 장기숙성형 장과 기능적으로 중첩되어 위축⋅흡수되는 길을 걸었던 반면, 즙장은 ‘채소 절임용 매체’라는 고유한 기능을 지녔기 때문에 장기숙성형 장이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독립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곧 즙장은 한국 장류 문화에서 채소 발효식품과 장 발효식품을 매개하는 가교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위상은 김치 제조사와 장 제조사가 한국 음식문화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얽혀 발전해 온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 조선 전기의 속성장 계통은 다음과 같이 재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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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시(全豉)→황국균 기반 순일장(旬日醬)으로 잔존 + 세균 기반 청국장(전시장⋅전국장)으로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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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청장(淸醬)→장기숙성형 장에서 추출되는 액장으로 통합, 독립된 제조 공정으로서는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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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즙장(汁醬)→채소 절임용 장으로 존속⋅다양화
2) 대형 병국 기반 장기숙성형 장의 주류화
조선 전기에는 여름철 고온 환경을 활용하여 짧은 기간 안에 제조할 수 있는 속성형 장 제조가 활발하였던 반면,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겨울에 대형 병국을 빚어 상온에서 3개월 이상 장기숙성시키는 장(醬) 제조법이 점차 주류로 자리 잡는다. 속성장과 장기숙성장의 공존 구조 자체는 유지되었으나, 시대에 따라 그 비중이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장기숙성형 장은 제조 기간이 긴 만큼 제조자 입장에서 원료와 노동이 장기간 묶이는 초기 매몰 비용이 크고, 황국균⋅효모⋅세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발효 실패의 위험도 높다. 따라서 이러한 제조법의 확산은 단지 기호의 변화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장기 발효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제조 기술의 축적, 발효 관리 경험의 누적과 관련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장기숙성형 장 제조법에 택일과 금기 조항이 더욱 세분화되어 나타나는 현상(Kim & Lee 2004;Yoon 2000;Yoon 2007) 역시 주류 장 제조문화의 변화 및 이러한 위험 관리와 기술의 고도화⋅정교화라는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대형 병국 장기숙성형 장의 주류화는 액체 조미료의 공급 구조에도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 전기에는 시(豉)에서 시즙을 우려내거나 청장(淸醬)에서 맑은 액장을 얻는 등 속성장 계열을 통해 액체 조미료를 별도로 산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대형 병국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본 공정 안에서 곧바로 간장과 된장을 동시에 산출하는 병용장(倂用醬) 체계가 자리 잡는다. 액체 조미료(간장)가 장기숙성형 장의 본 공정 안에서 안정적으로 확보됨에 따라, 종래의 시즙⋅청장 운용은 사실상 효용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앞 절에서 살펴본 속성장 계열의 분화⋅재편이 일어난 결정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된장’이라는 어휘가 처음 확인되는 기록이 18세기 이후(『Yeogeoyuhaebo (역어유해보)』(1775), 『Bangeonyuseok (방언유석)』(1778), 『Myeongmulgiryak (명물기략)』(1870))라는 점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조선 전기의 장(醬)에서 액장을 추출하고 남은 장재(醬滓)는 콩좌반이나 두부구이용 양념으로 제한적으로 쓰였을 뿐, 오늘날의 된장처럼 독립된 장류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대형 병국 장기숙성장이 주류화되고 간장과 장재를 의도적으로 함께 산출하는 병용장 체계가 정착하면서, 비로소 반고체 페이스트 장재(醬滓)가 ‘된장’이라는 독립된 명칭과 위상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조선 후기 한국 장류의 주류적 변화는 단순히 제조 기간이 길어진 것에 그치지 않고, ① 액체 조미료 공급 구조의 일원화(시즙⋅청장→대형 병국 간장), ② 장재(醬滓)의 독립 식품화(된장의 성립), ③ 속성장 계열의 위축 또는 기능 분화(시→청국장, 즙장→채소 절임용 매개체)라는 장류 체계 전반의 구조적 재편을 동반한 변화였다.
4. 중국 시⋅장 문화와 비교를 통해 본 한국 장의 독자성
조선 전⋅후기를 통틀어 살펴본 한국 장 제조 기술의 특징은 동시기 중국의 시(豉)⋅장(醬) 체계와 견주어 볼 때 그 독자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의 사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Huang (2000)에 따르면 중국의 콩 발효조미료는 ① 낱알 형태의 발효 콩인 시(豉), ② 반죽형 발효 페이스트인 장(醬), ③ 이들로부터 전개된 액체 조미료인 장유(醬油)의 세 갈래로 발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중 양국의 장 제조문화를 비교해 보면, 양국은 시(豉) 문화를 공통 기반으로 공유하면서도, 이를 계승⋅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주류 제조법과 활용 체계상의 명확한 차이를 드러낸다.
1) ‘장(醬)’ 개념의 범주 차이
중국에서 장(醬)은 본래 콩만이 아니라 고기⋅생선⋅곡물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발효 페이스트를 포괄하는 광의의 범주에서 출발하였다. 주나라(BC 1049-BC 256) 때 의례서인 『Zhouli (周禮)』와 『Liji (禮記)』에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장은, 선진(先秦) 시대 장이 다양한 동물성 재료까지 포괄하는 일반 명사였음을 보여 준다(Huang 2000). 콩이 장의 주재료로 자리 잡은 것은 마왕퇴(馬王堆) 한묘 출토 『Wushierbingfang (五十二病方)』(BC 168)에서 ‘숙장(菽醬, 콩장)’이 처음 확인된 이후이며, 이때부터 ‘장(醬)’이라는 단독 표기는 점차 콩장을 지칭하는 의미로 좁혀졌다(Huang 2000). 즉 중국의 장은 본래 광의의 발효조미료에서 점차 콩 중심으로 의미가 축소되어 가는 경로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초기 장 관련 기록은 처음부터 콩 발효식품을 가리키는 맥락에서 나타난다. 408년 덕흥리 벽화무덤 묘지명의 염시(鹽豉), 신문왕 폐백 품목의 장(醬)⋅시(豉), 『Goryeosa (고려사)』구휼 기록의 시와 장은 모두 장과 시가 처음부터 콩을 원료로 한 식품으로 정착한 상태에서 운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한국 장 개념의 출발 조건은, 동물성 재료를 포괄하는 광의의 장에서 콩장으로 의미가 축소되어 온 중국의 경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중국 시(豉)와 조선 전기 속성장 문화의 유사성과 상이성
중국에서 시(豉)는 마왕퇴 1호 한묘 출토 죽간(B.C. 168 이전)에 그 실물이 확인될 만큼 이른 시기부터 발달하였으며, 『Jeminyosul (제민요술)』에 그 제조법이 네 가지나 상세히 기록할 정도로 한대(漢代)부터 위⋅진 시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콩 발효조미료의 지위를 누렸다(Choi 2020).
중국의 시는 콩알갱이의 형태를 유지한 채 발효시킨 뒤, 이를 건조⋅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 그대로 쓰거나 시즙(豉汁)으로 우려 사용하는 알갱이형 속성 발효조미료였다. 콩알갱이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점, 황국균 주도 발효라는 점, 여름철 단기 속성장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시는 조선 전기의 전시(全豉)와 그 기본 원리가 대동소이하다.
완성된 시(豉)의 활용 방식 또한 양국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 중국에서는 발효가 끝난 시(豉)를 햇볕에 충분히 말려 낱알 그대로 장기보존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직접 반찬⋅약재로 쓰거나, 끓는 물에 우려내거나 끓여서 시즙(豉汁)을 얻어 각종 요리의 조미료로 활용하였는데, 『Jeminyosul (제민요술)』의 요리 방문 26곳 이상에서 활용된 것이 확인된다(Yoon 2007;Choi 2018;Choi 2020).
한국의 전시(全豉) 역시 조선 전기 조리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발효를 마친 뒤 햇볕에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시즙을 우려내어 음식에 사용하는 운용 방식이 주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예외적으로 메주를 띄운 직후 소금물에 담가 초출두즙(豆汁)을 얻어 활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보이나, 이는 보조적⋅부분적 활용에 머무르며 전체 운용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말려 두었다가 시즙으로 우려 쓰는’ 방식에 있었다. 즉 시의 본 단계 공정뿐 아니라 그 후속 운용 방식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동일한 계통 위에서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시의 제조 공정과 활용 방식에 관한 한 양국은 동아시아적 시 문화를 공유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장문화의 특징은 속성형 시(豉) 제조원리를 공유하면서도, 그것과 별도로 청장(淸醬)과 즙장(汁醬)이라는 분화 계열을 함께 발달시켰다는 데에 있다. 액장을 별도로 제조⋅보존⋅소비하는 청장과 같은 방식은 『Jeminyosul (제민요술)』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채소 절임을 위한 시의 응용 장(醬)으로서 즙장이 별도 계열로 분화한 양상 또한 한국에서 한층 뚜렷하게 관찰되는 특징이다. 곧 양국이 시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그 운용을 확장하는 양상에서는 이미 조선 전기부터 한국적 분화의 단초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3) 조선 후기 반고체 페이스트형 장 제조 기술의 독자 경로
중국의 시와 두장은 제조 원리와 최종 성상에서 이미 분명히 구별되었으며, 양자는 단순한 명칭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발효 조미체계를 구성하였다. 시가 콩알갱이의 형태를 유지하는 발효콩이었다면, 두장은 콩을 삶거나 찐 뒤 탈피하고, 밀가루 등 전분질 재료를 섞어 발효시킨 다음 소금물 속에서 숙성시켜 묽은 반고형 페이스트를 형성하는 장이었다. 즉 시가 알갱이형 발효콩으로서 필요 시 시즙을 우려내는 체계라면, 두장은 처음부터 반죽과 숙성을 거쳐 페이스트 상태를 지향하는 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두장(豆醬)의 공정은 『Jeminyosul (제민요술)』에 그 원형이 기록되어 있으며, 당말 『Sasichanyo (사시찬요)』(996)를 거치면서 단축⋅표준화된 뒤 원⋅명⋅청대 농서와 식보에 널리 계승되었다(Huang 2000). 그 공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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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삶은 콩에 밀가루를 다량 섞어 분말 또는 반죽 상태로 만든 뒤 얇게 펴서 1차 발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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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첫 번째 발효 단계에서는 별도로 만들어 둔 누룩(황의(黃衣)⋅황증(黃蒸)⋅여국(女麴) 등)을 접종하여 황국균을 빠르게 증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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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이렇게 얻은 곰팡이 콩가루(장황 醬黃 또는 황자 黃子)를 소금물에 풀어 30일 안팎의 2차 발효를 거치면, 손으로 쥐었을 때 즙이 배어 나오는 묽은 반고형 페이스트가 완성된다. 명대 이후에는 첨면장(甜麵醬)⋅면장(麵醬)⋅잠두장(刀豆醬)⋅유인장(榆仁醬) 등 다양한 변종이 발달하였다(Huang 2000;Lee 2016).
이러한 중국 두장의 공정은 한국의 장 제조와 두 가지 점에서 구조적으로 구별된다.
첫째, 메주의 형태와 크기가 다르다. 중국 두장은 콩껍질을 벗기고 밀가루를 다량 섞어 분말 또는 얇은 반죽 형태로 펴서 발효시키므로 표면적이 극대화되고 곰팡이 우점형 발효가 이루어진다. 즉 조선 전기의 속성장 계열(전시⋅청장⋅즙장)이 산국(散麴) 또는 소형 병국을 사용한 원리와는 부분적으로 닮아 있다. 반면 조선 후기 장의 주류가 되는 수박만 한 크기의 대형 병국(餠麴)은 한반도 특유의 형태이다.
둘째, 인공 종균의 사용 여부가 다르다. 중국 두장은 『Jeminyosul (제민요술)』이래 별도로 배양한 누룩(麴)을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한국의 대형 병국은 미리 배양한 종균을 접종하지 않고 메주 자체를 띄우는 동안 야생 미생물군이 자연스럽게 정착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형 병국에서는 표면의 황국균 외에 내부에서 효모(Saccharomyces 등)와 세균(Bacillus 등)이 함께 자라며, 곰팡이 우점형인 중국 두장과는 다른 복합 미생물군집에 의한 후숙(後熟) 발효가 일어나게 된다.
요컨대 중국의 반고체 페이스트형 두장은 ① 콩껍질을 벗기고 밀가루를 섞어, ② 인공적으로 종균을 배양한 누룩을 접종하여, ③ 곰팡이 단독 발효로, ④ 30일 내외에 완성되는 묽은 페이스트인 반면, 한국 장(조선 후기의 대형 병국장)은 ① 콩을 통째로 삶아, ② 자연접종 방식으로, ③ 곰팡이⋅효모⋅세균의 복합 발효를 거쳐, ④ 3개월 이상 장기숙성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체계이다.
5. 명칭의 정립과 김치 제조사와의 연관성
1) 시(豉) 계통 명칭의 변천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시(豉)’는 시대에 따라 그것이 지칭하는 음식의 실체가 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Samguksagi (삼국사기)』, 『Goryeosa (고려사)』, 조선 전기 조리서에 나타나는 시(豉)는 황국균으로 발효시킨 산국(散麴) 형태의 속성장을 가리킨다. 조선 전기 조리서와 어학사전류(①~③)에는 이를 한글로 ‘전시’, ‘전국’이라 표기하고, 한자로는 ‘豆豉’, ‘全豉’ 등으로 적고 있다. 중국의 시 또한 콩알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제조한 것이 다른 장류와 구별되는 특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Huang 2000), ‘전시⋅전국’이라는 명칭은 ‘통알곡을 으깨지 않고 온전한(全) 상태로 발효시켰다는 뜻에서 붙여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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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豉化蓴絲熟. 젼구기 노니 蓴ㅅ 시리 닉고. ―『Dusieonhae (두시언해)』(1481 초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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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豆豉【젼국】 ―『Gugeupganibang(구급간이방)』(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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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豉 젼국 시. 俗呼豆豉. ―『Hunmongjahoe(훈몽자회)』(1527)
그런데 ‘전국’의 한자 표기를 ‘全麴’으로 적은 사례는 『Jucochimjeobang(주초침저방)』이 유일하다. 이 자료가 발굴되기 전까지는 ‘전국’의 어원을 분명히 밝히기 어려웠고, 그 결과 『Jeungbosallimgyeongje』(1766)의 “전시장(煎豉醬) 속칭 전국장(戰國醬)”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이를 “전쟁 시(戰時)에 단기 숙성으로 만든 장이므로 전국장이라 한다”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통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Lee 1984;Kim & Lee 2004). 그러나 『Jeungbosallimgyeongje』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속칭(俗稱)’으로서의 한자 표기를 적어 둔 것일 뿐, ‘戰國醬 [전국장]’이 곧 ‘전시(戰時)에 만든 장’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료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명칭상의 오해는 조선시대에도 이미 존재하였는데, 이규경(1788-1856)은 『Ojuyeonmunjangjeonsango (오주연문장전산고)』(19C)에서 당시 속설을 언급하며 이를 직접 일축한 바 있다.
시(豉)는 지금 세속에서 청국장[戰國醬]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물건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서 나라에 전쟁이 있을 때 군중(軍中)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했다고 하는데, 대개 근거 없는 설이다. ―『Ojuyeonmunjangjeonsango』
즉 『주초침저방』의 발견을 통해 한글 ‘전국’의 어원이 ‘全麴’임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戰國醬[전국장]’이라는 한자 표기는 한자어 차용 과정에서 형성된 와전(訛傳)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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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豆豉淸湇醬俗傳 쳥국장. ―『Myeongmulgiryak (명물기략)』 (1870)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 ‘全豉[전시]⋅全麴[전국]’이라는 표기는 사라지고 ‘煎豉[전시]⋅水豉[수시]⋅戰國[전국]’ 등의 표기가 새로 등장한다. 또한 조선 후기 문헌인 『Myeongmulgiryak (명물기략)』(1870)에는 ‘두시(豆豉)’를 ‘청국장’으로 풀이하고 있다(④). 이러한 근거들을 종합하면, 시(豉)⋅전시⋅전국⋅청국장 사이에는 적어도 명칭상의 연속성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의 계보를 근거로 조선 전기의 시와 조선 후기의 청국장을 동일한 음식으로 이해하는 것(Chung 2018)은 무리가 있다. 조선 전기 이전의 시(豉)⋅전시(全豉)와 조선 후기의 ‘청국장(煎豉⋅水豉⋅戰國醬 등)’은 식품학적으로 서로 다른 발효 계통에 속하기 때문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콩알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 상태에서 속성 발효시킨다는 점에 있으나, 그것만으로 동일한 식품이라 할 수는 없다. 앞 장에서 서술하였듯이, 조선 전기까지의 전시(全豉)는 곰팡이 우점형 산국(散麴)으로서, 콩에 핀 곰팡이의 상태를 황모(黃毛)⋅생모(生毛)⋅괴털(猫毛, 고양이털)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조선 후기의 청국장(煎豉⋅水豉⋅戰國醬 등)은 찐득한 ‘실(絲)이 생긴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관여 미생물이 세균, 곧 Bacillus subtilis 계열임을 시사한다.
이러한묘사의 차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의 변화가 아니라 실제 발효 산물의 형태적(macroscopic morphology) 차이를 반영한다. 황국균(Aspergillus oryzae 등)은 균사 끝에 분생포자(conidiospore)를 형성하여 메주 표면에 황색⋅회백색의 솜털 또는 분말 형태의 균총을 만드는 반면(Machida et al. 2008), 고초균(Bacillus subtilis)은 점성 다당체(γ-polyglutamic acid 등)를 분비하여 콩알 사이에 끈끈하게 늘어지는 실 모양의 점질물을 형성한다(Yoon et al. 2000;Ashiuchi & Misono 2002;Ahn et al. 2019;Ji et al. 2008). 즉 ‘모(毛)’와 ‘사(絲)’는 서로 다른 미생물군이 만들어 내는 발효 산물의 외형적 특징을 당대인이 정확히 관찰⋅기록한 결과이며, 두 식품이 식품학적으로 상이한 발효 계통에 속함을 보여 주는 객관적 지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戰國醬[전국장]’은 조선 전기까지 존재하였던 속성장인 전국(全麴)⋅전시(全豉)의 문화가 점차 소멸하는 과정에서, ‘젼국’이라는 음(音)만이 잔존하여 후대의 유사한 제조 공정을 지닌 발효식품에 차용되면서, 그 한자 표기가 ‘戰國[전국]’으로 바뀐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즙장(汁醬)과 즙저(汁菹)의 구분 — 장류와 채소 절임의 경계
앞서 제조 과정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전시(全豉)와 즙장의 제조법은 콩을 찧어서 만드는지와 그리고 그 콩에 기울을 첨가하는지 여부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다. 앞 장에서 서술하였듯이 실제로 『Sangayorok (산가요록)』과 『Gyemiseo (계미서)』에는 전시와 즙장이 서로 통하는 계열임을 시사하는 단서가 나타난다. 전시는 건조시켜 보관해 두고 액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며, 즙을 추출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즙장이 되며, 이는 오롯이 채소절임을 위한 담금원이므로 여기에 채소를 함께 섞어 고온 발효시키면 즙저(汁菹)가 된다.
조선 전기 조리서에서는 최종 산물인 ‘즙저’ 또는 ‘즙디히’를 항목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면 즙저를 즙장으로 혼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게 되며, 오늘날에는 ‘즙장’이라는 명칭이 장류의 범주로 고착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즙장은 ‘채소를 넣기 위해 만든 장’을, 즙저는 ‘채소까지 넣어 완성한 채소절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용도의 측면에서 채소까지 섞어 발효시킨 즙저는 반찬으로만 쓰이고 조미료로 활용되지 않으므로, 장류라기보다는 채소절임, 곧 넓은 의미의 김치류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별도의 조리 없이 바로 먹는 반찬으로 활용되었기에 19C 이후에는 꿀을 타서 단맛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제조법이 변화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①~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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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알맞추어 하면 술안주나 반찬 다 좋으니 쓸 적에 꿀 타 쓰라. 『Emsikbangmun (음식방문)』(19C) <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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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먹을 때 꿀을 넣으면 맛이 좋다. 『Ojuyeonmunjangjeonsango (오주연문장전산고)』(19C) <제즙장법(製汁醬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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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4일만에 내서 꿀을 타 먹는다. 『Buinpilji (부인필지)』(1908) <즙장법>
한편 다음 글(④)은 “신충의(辛忠義)가 즙저(汁菹)를 거듭(繼) 보내서(奉送) 옻칠한 부채(漆扇)로 사례하다(謝)”라는 제목의 시이다. 신충의는 동국(東國)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이 두 번째로 강화도에 부임해 있던 시기(1628~1631)에 빈번히 교류했던 지역 인사인데, 그가 즙저를 거듭 보내준 데 대해 단오 무렵 사대부들 사이에서 주고받던 격조 높은 칠죽선으로 답례는 내용이다. 즙저가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선물용 반찬으로 활용되었음을 알려 주는 단서이다.
④ 『Dongakjip(동악집)』권 18 <강도후록> 작년엔 세 말 술(去年三斗酒) 오늘은 한 동이 즙저로구나(今日一缸菹) <중략> 호남의 칠죽선(湖南漆竹扇)이 우군(右軍)의 글(書)에 못 미침이 부끄럽고 미안하다네(愧欠).
즙저가 선물용 반찬으로 쓰인 사례는 The Independence Hall of Korea(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 개인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Fig 2). 옥천군청에 근무하던 후쿠무라 겐지(福村兼治)가 즙저를 보내준 보은의 최충근에게 보낸 편지로, “진미가 밥상에 올라 식사를 배(培)로 많이 하게 되니 식량 소비 규정에 어긋나게 되었습니다.”라는 농담이 적혀 있다.
3) 최초 김치 기록 <가포육영> 속 장김치의 정체
한편, 이러한 장을 활용해 만든 채소절임의 정체 역시 보다 명확히 규정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전기 속성장 3종(전시⋅청장⋅즙장)이 모두 하나의 원류에서 출발하여 각기 용도에 따라 분화⋅제조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속성장에서 추출한 액장으로 만든 장김치와, 즙장에서 발효시킨 즙저 역시 적어도 고려시대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속성장의 제조 특성상, 이러한 장을 활용한 장김치류 또한 여름철과 긴밀하게 결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得醬尤宜三夏食 장에 넣으면 한여름(三夏)에 먹기 좋고 漬鹽堪備九冬支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九冬)을 넘긴다 이규보, 『Donggukisanggukhujip (동국이상국후집)』 卷4 <가포육영> 중 무(菁)
이 시구는 현존하는 김치 관련 최고(最古) 기록인 고려시대 이규보(1169-1241)의 <가포육영> 중 무를 읊은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나오는 여름철 장김치 정체는 지금까지 모호하게 다루어져 왔다. 종래 연구에서 ‘장(醬)’은 후대의 대형 병국 기반 장기숙성장에서 추출된 간장 또는 된장으로 해석되어 왔고, 이에 따라 이 구절의 음식 역시 무장아찌로 비정하는 경향이 있었다(Lee 1984).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13세기에 이미 후대의 병용장 체계가 정착되어 있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고가 앞서 살펴본 조선 전기까지의 속성장 중심 장 제조사에 정합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볼 때 <가포육영>의 여름철 장김치는, 속성장으로 만든 장물김치(醬菹) 또는 즙장에서 발효시킨 즙저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Sangayorok (산가요록)』에서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에 이르는 조선 전기 조리서에 장류를 담금원으로 한 김치가 두 가지 유형으로 존재하였다는 점을 통해서도 입증된다(Table 3). 하나는 액체장에 채소를 담그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속성형 장인 즙장에 채소를 넣어 발효시키는 즙저 유형이다. 이들 모두가 여름철 김치로 <가포육영>의 “삼하(三夏)에 먹기 좋다”는 구절과 일치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은 『Sangayorok (산가요록)』의 <하일가즙저(夏日假汁菹)>라는 항목이다. 제조법을 보면 “푸른 오이를 반나절 볕에 말려 세 갈래로 칼집을 내고 그 속에 생마늘, 향유, 분지 잎을 넣어 장(醬)에 담가(沈) 하룻밤을 두었다 먹는다.”고 되어 있는데, 즙장에 채소를 넣어 발효시킨 즙저가 아니라, 액장에 채소를 넣어 만든 장김치인 것이다. 곧 <하일가즙저>의 ‘가(假)’는 진짜 즙저는 아니지만, 여기에 사용된 장(醬)이 즙저와 같은 속성장인 전시에서 추출한 액장이거나, 속성으로 만든 청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여름철 속성장’을 매개체로 담근 이 두 형태의 채소절임을 당대 사람들이 동일한 범주로 인식하였다는 의미로 짐작된다.
결국 조선 전기 장류의 명칭 체계는 단순한 어휘상의 차이를 넘어, 각 장류가 어떠한 제조법과 용도를 지녔는가를 반영하는 역사적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시(豉)와 장(醬), 전시(全豉)와 전국(全麴)⋅청국장, 즙장과 즙저의 구분을 통해서야 비로소 장류 제조사와 김치 제조사가 공유하는 발효문화의 연속성을 보다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그동안 사료의 부족으로 밝히지 못했던 조선 전기 이전의 장류 제조 기술과 명칭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Sangayorok (산가요록)』⋅『Suunjapbang (수운잡방)』⋅『Gyemiseo (계미서)』⋅『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 등 4종의 조선 전기 조리서에 나타난 장 제조법과 용도, 명칭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조선 후기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한 한국 장 제조 기술의 원류 및 계보를 규명하고 독자성을 확인한 시도이다. 아울러 담금원 관계로 연결된 김치류와의 기술적, 문화적 연관성도 살펴보았다.
본 고의 결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조선 전기 장류 제조문화의 다층적 계통을 규명함으로써 그 시대별 제조 기술 및 형태 변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문헌 분석 결과, 조선 전기 장류는 속성장(전시(全豉)⋅청장(淸醬)⋅즙장(汁醬))과 장기숙성형 장(醬)의 두 계통으로 분류되며 각각 제조 원리와 용도에서 4가지 유형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속성형은 여름철 고온 환경을 활용한 곰팡이 주도형 계열이고, 장기숙성형은 겨울철 대형 병국을 바탕으로 세균⋅효모가 가세하는 복합발효 계열에 속한다. 즉 조선 전기 장 문화는 속성장과 장기숙성장이 공존하는 구조였으며, 속성장이 결코 비주류 문화가 아니었다. 이 시기 장류 제조의 주된 목적은 액장의 확보와 활용에 있었으며, 건더기는 후대의 된장과 같이 독립 소비되기보다 건장(乾醬) 형태로 남겨져 액장의 재추출에 활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한국 장의 제조사적 정체성을 ‘간장⋅된장 병용장’으로 규정한 종래의 통설(Chang 1969;Chang 1974)이 사실상 조선 후기 이후의 양상을 일반화한 것이며, 그 이전시기에는 ‘액장 중심의 다층 분화의 속성장 체계’가 병존하고 있었음을 사료에 입각하여 새롭게 밝혀낸 것이다. 후기에 들어 속성형 장에 재편이 일어나 전시와 청장은 쇠퇴하고 전시는 청국장이라는 식품학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변모하였으며, 즙장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한다. 액장의 추출은 대형 병국을 이용하여 간장⋅된장을 함께 얻는 병용장 공정으로 흡수되고, 된장이 독립된 식품으로 자리 잡아 갔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청국장의 어원으로 알려진 ‘전국장(戰國醬)’의 실체를 두 차원에서 새롭게 규명하였다. 먼저 어학 사전류와 『Jucochimjeobang (주초침저방)』을 통해 ‘전시(全豉)’가 ‘全麴[전국]’과 동일어임을 확인하였으며, 후대에 음(音)만 유지되고 한자어가 변형되어 ‘전시(煎豉)⋅전국(戰國)’으로 표기되면서 전국장(戰國醬)을 전쟁 때 단기 숙성으로 만든 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인하였음을 입증하였다. 다음으로 식품학적 차원에서, 조선 전기 ‘전시(全豉)’의 발효는 곰팡이에 의한 ‘모(毛)’, 조선 후기 전국(戰國)은 세균에 의한 ‘사(絲)’ 라는 산물을 만들어 낸다는 묘사 차이를 직접 대비함으로써, 조선 전기 전시⋅전국과 조선 후기 청국장이 식품미생물학적으로 다른 계통에 속함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청국장을 조선 전기 시(豉)와 동일한 한국 고유의 발효식품으로 동일시해 온 기존 선행 연구의 오류를 교정하는 동시에, 조선 전기 속성장 중심의 장류 문화가 조선 후기 장기숙성장 중심의 장류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명칭의 잔존과 실체의 단절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사료적⋅미생물학적 근거로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장 제조문화의 복원을 토대로 김치 문화와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해명하였다. 특히 이규보의 <가포육영>에 보이는 최초의 장김치 기록을 후대의 장기숙성 장에 담근 무장아찌로 해석해 온 종래 학설에서 벗어나, 조선 전기까지 널리 운용된 속성장에서 추출한 액장으로 만든 장물김치(醬菹), 또는 속성형 즙장에 채소를 함께 넣어 발효시킨 즙저 계열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함을 논증하였다. 이는 장김치의 초기 형태를 조선 후기 병용장 체계에 의해 설명해 온 기존 인식을 수정하고, 고려⋅조선 전기 김치문화가 당대의 장 제조문화, 특히 속성장 문화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아울러 즙장⋅즙저 사이의 명칭 혼선을 제조법과 용도의 차원에서 재정리함으로써 장류와 채소절임류의 경계를 보다 정밀하게 정의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였다.
결국 우리 전통 장문화가 지금까지 통설로 받아들여져 오던 단일한 병용장 체계가 아니라, 속성장(전시⋅청장⋅즙장)과 장기숙성장이 공존한 다층적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으며, 문화 급변기인 18세기를 전후하여 대형 병국과 더불어 ‘간장⋅된장 병용형’ 장 체계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장류 제조 기술의 구조와 계통을 통시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는 점이 본 연구의 주요 성과이다. 아울러 전통 장류 기술의 변화 과정 속에서 장김치와 같은 초기 김치 문화와의 상호 연관성을 밝혀냄으로써 다층적 발효문화사로 통합하여 읽기 위한 하나의 구체적 출발점을 제시함으로써 후속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 또한 큰 성과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