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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41 No.2 pp.87-95
DOI : https://doi.org/10.7318/KJFC/2026.41.2.87

Jeotgal Culture in Baekje and Silla from Archaeological Evidence

Yeonkwang Kim1, Yookyung Kim1*
1Department of Human Ecology, Graduate School, Korea University, Seoul

†These authors contributed equally to this work.


* Yookyung Kim, Department of Human Ecology, Graduate School, Korea University, 145 Anam-dong, Seongbuk-gu, Seoul, 02841, Republic of Korea Tel: +82-2-3290-2328 E-mail: yookyung_kim@korea.ac.kr
April 7, 2026 May 4, 2026 May 4, 2026

Abstract


Jeotgal, a traditional Korean salt-fermented food, has received insufficient research attention in its early stages because of the limited historical records before the Joseon period. This study explored ancient jeotgal culture by analyzing archaeological evidence from Baekje (Pungnap Toseong) and Silla (Wolseong district and Anapji). The findings revealed a highly organized system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ritual use. At the Baekje site, various fish species were stored in large glazed vessels within underground royal facilities, suggesting large-scale, fermentation-based preservation. In Silla, Anapji wooden tablets (mokgan) document systematic management, including detailed production information. Regarding the terminology, Silla’s own words (Idu notation) ‘Josa (助史)’ used alongside ‘Hae (醢)’ identified jeotgal as a distinct food category, while the records of ‘Jusu-Josa (猪水助史)’ indicated that liquid-type jeotgal had already emerged as an independent product. Furthermore, the records of jeotgal transported from coastal areas to the capital revealed a state-led supply chain. Finally, fish remains in royal tombs, and ritual sites suggest that jeotgal had a significant ceremonial function beyond daily consumption. These results show that in ancient Korean society, jeotgal was strategically managed and integrated into the royal administrative and ritual systems.



출토유물로 살펴본 백제⋅신라시대의 젓갈문화

김연광1, 김유경1*
1고려대학교 대학원 생활과학과 식품영양학전공

초록


    I. 서 론

    젓갈은 김치, 장류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발효식품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젓갈은 독립적인 반찬으로서 소비될 뿐만 아니라, 김치를 비롯한 다른 식품에 첨가되어 풍미를 증진시키고 발효를 촉진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한다(Jung et al. 2018).

    젓갈문화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반에서 확인된다. 6세기 중반에 편찬된 중국의 농서 「Qiminyaoshu (齊民要術)」(Choi DK ed. 2018)에는 8종의 생선젓갈(魚鮓)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Choi 2022). 일본에서도 8세기 초 황실의 진상 기록 중 젓갈(鮨·鮓)이 발견되었고, 밥과 생선을 발효시킨 나레즈시(熟れ鮨) 문화가 형성되었다(Ishige 1995;Shoda 2021). 그러나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던 젓갈문화는 오늘날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점차 쇠퇴하여 일부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남아 있으며, 일본에서는 17세기 말 나레즈시가 오늘날 초밥의 원형인 하야즈시(早鮨) 문화로 발전했고, 젓갈은 시오카라(塩辛) 등 한정적으로만 남았다(You 2012;Kim 2020;Chung 2021).

    이렇듯 동북아시아 전반의 젓갈문화와 비교할 때 한국의 젓갈문화는 독자적인 특성을 보인다. 한국의 젓갈은 다양하게 분화·발전하여 오랫동안 그 다양성을 유지해왔으며, 한국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차별성은 한국에서 젓갈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그 기원이 되는 고대 젓갈문화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한국 젓갈문화의 출현을 살펴보면, 삼국이 형성된 이후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곡물 생산과 비축이 증가하고, 젓갈·장과 같은 발효식품이 사회 전반에 정착하였다(Han 2005). 한국에서 젓갈에 관한 최초 문헌 기록은 「Samguksagi (三國史記)」(Kim Busik (金富軾), 1145)의 신라본기에서 확인되는데, 신문왕 3년(683) 왕비를 맞이하는 폐백 품목에 젓갈(醢)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식문화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Kang 2000). 그러나 이후 수백 년간 관련 문헌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Goryeosa (高麗史)」(Jeong Inji (鄭麟趾) et al., 1451), 고려 문종 원년(1047)에 “가뭄을 맞아 왕이 도축을 금하고 포와 젓갈만을 사용하였다(止用脯醢)”는 기록이 등장하며 젓갈(醢)이 다시 확인된다. 이는 문헌상 약 360여 년의 큰 공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의 단절은 고대 젓갈문화의 실제 양상과 지속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그러나 문헌 기록에는 공백이 존재하는 반면, 삼국시대 식생활은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신라 월성·월지(안압지) 지역에서 출토된 목간(木簡)과 동물유체, 한성백제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도기와 어골(魚骨) 자료는 젓갈문화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이다. 1975년 월지 지역에서 출토된 신라 목간에는 젓갈의 생산 및 저장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며(Lee 2007b), 풍납토성 196호 유구에서는 어골이 항아리 내부에서 발견되어 수산물 가공의 가능성을 시사한다(So 2012). 이러한 자료는 문헌 기록의 한계를 보완하며, 고대 젓갈문화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관련 연구는 젓갈의 이화학적 특성을 비롯한 식품학적 측면에 집중되어 왔으며, 고고학 연구 역시 개별 유적 단위의 분석에 머물러 젓갈을 식문화 체계로서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출토 유물과 문헌 기록을 종합하여, 고대 백제와 신라에서 나타난 젓갈의 생산 방식, 저장 구조, 그리고 왕실에서의 유통과 의례적 활용 양상을 통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분석 대상의 정의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이 되는 젓갈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젓갈의 제조 방식은 크게 원재료와 소금만 혼합하는 염해(鹽醢) 방식과 원재료와 소금·곡물을 혼합하는 식해(食醢) 방식으로 구분되며(Suh 1987;Kim et al. 2024), 현대 식품위생법상 젓갈은 ‘어류, 갑각류, 연체류, 극피류 등에 식염을 가하여 발효·숙성한 것 또는 이를 분리한 여액’으로 수산물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문헌에서 젓갈류를 지칭하는 용어는 보다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기원전 3세기경의 고대 문헌인 「Erya (爾雅)」와 「Zhouli (周禮)」에서는 젓갈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醢), 자(鮓), 지(鮨) 등이 나타나며, 각 용어는 제조 방식과 재료에 따라 구분되는데, 해(醢)는 누룩, 소금 등으로 동물, 날짐승, 생선 등을 염장 발효시킨 식품을, 자(鮓)는 주로 어류에 곡류와 채소를 혼합하여 염장 발효한 것으로 오늘날의 식해와 유사한 형태로 판단되고, 지(鮨)는 밥 속에 생선을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중국의 어장(魚醬) 제조법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Choi 2012;Lee 2021). 이를 통해 고대의 젓갈은 주재료와 제조방식에서 현대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토 목간 자료에서는 醢의 기록이 다수 발견되었으며 고대의 젓갈문화를 종합해 볼 때 그 범주는 현대보다 폭넓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젓갈은 醢·鮓·鮨의 의미와 출토 내용을 포괄해 단순 수산물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 수조육류(獸鳥肉類)까지 염장발효한 모든 식품을 의미한다.

    2. 연구 분석 대상

    본 연구는 삼국시대 젓갈문화를 분석하기 위한 1차 자료로, 백제의 「Pungnap Toseong XII: Gyeongdang District No. 196 Report(풍납토성 XII: 경당지구 196호 유구 보고서)」(Kwon et al. 2011)와 신라의 「Excavation Report on Anapji (안압지출토보고서)」(CHA 1978), 「Gyeongju Donggung and Wolji III: Excavation Report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보고서)」(GNRICH 2019), 「Excavation Report of the Wolseong Moat VI(월성 해자 발굴조사 보고서 VI)」(GNRICH 2024a)를 활용하였다. 안압지는 2011년 이후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자료의 출처와 용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Excavation Report on Anapji」를 기반으로 한 내용에 대해서는 ‘안압지’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에서 고고학적 자료(동물유체, 도기, 목간)와 문헌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질적 분석(qualitative analysis) 방법을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자료에 나타난 젓갈 관련 정보와 맥락을 체계적으로 추출하고, 의미 단위별로 범주화하여 해석하였다.

    분석 과정에서는 젓갈문화의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분석 범주를 설정하였다. 첫째, 생산 방식은 원료 구성과 가공 방법, 발효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둘째, 저장 구조는 저장시설의 형태와 도기 특성, 저장 환경을 기반으로 검토하였다. 셋째, 유통 체계는 목간 기록과 출토 맥락을 통해 생산지와 소비지 간 이동 및 공급 방식을 분석하였다. 넷째, 의례적 기능은 문헌 기록과 출토 맥락을 종합하여 젓갈의 제례적 활용 가능성을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분석 틀을 바탕으로 각 유적에서 확인된 출토유물, 동물유체 자료를 범주별로 비교·해석하였으며, 이를 한국음식사 관련 연구문헌 및 역사자료와 대조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1. 백제 풍납토성 내 경당지구 196호 출토 유물

    1) 유구의 특징과 성격

    한성백제의 핵심인 풍납토성 내 경당지구는 제사와 왕실의 물자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던 장소였다. 이 중 196호 유구는 내부에서 다수의 도기가 바닥에 세워진 채 발견되었고, 생활용품이 확인되지 않은 점에서 식품을 저장하던 시설로 추정되며, 이후 전소되어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Park 2016).

    고대 백제의 창고는 기능에 따라 국영창고와 왕실창고로 구분된다(So 2012). 국영창고는 전쟁이나 대민 지원 등 국가의 일시적인 수요에 대비하여 곡식 등 주요 물자를 저장하기 위한 시설로, 대체로 원형 구조를 보인다. 반면 왕실창고는 왕실이 주된 수요층으로, 목곽(木槨, 나무로 짜 만든 틀) 구조를 갖춘 장방형 저장시설이 주로 나타난다. 196호 유구는 장방형 목곽고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왕실창고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 출토 도기 및 어골의 특징

    196호 유구에서는 중국제 시유도기, 백제토기 등 도기류 117점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시유도기는 유약을 발라 구워 낸 도기로 3–4세기 전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Park 2016), 한반도에서는 8–9세기 이후, 시유도기 생산이 이루어졌으므로 출토품은 모두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시유도기의 크기는 54–60 cm로 대형에 속하며 평균 용량은 약 90 L이고, 중국에서는 물·곡식·주류 등을 보관하는 저장 용기로 사용되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Han 2011).

    도기 중 일부에서는 어골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서해안 등지에서 어획된 참돔 및 기타 어류를 저장해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Lee & Kim 2011). 특히 어골이 도기 안에서 수습되었다는 점은 이들이 식품으로 보관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인근 9·101호 등의 유구에서는 소·말·멧돼지·사슴 등 육상동물의 유체만 나타나는 반면, 196호 유구에서는 어골만 발견되어, 해당 유구가 수산 가공품을 보관하던 특정 목적의 저장시설이었을 거라 보고 있다(Kwon 2011).

    출토된 어골의 종류는 출토보고서의 결과를 기반으로 <Table 1>에 제시하였다. 출토 위치는 도기(1, 4, 5, 35, 36, 37) 내부와 유구의 남서 모서리 및 서벽 구간으로 총 18종이 확인되었으며 구체적으로 확인 가능한 어종은 참돔(Red Sea Bream)과 복어(Pufferfish)이며, 어류임은 분명하나 종 수준의 동정(同定)이 불가능한 유체가 다수 존재한다. 확인된 부위는 두개골(Cranium), 하악골(Mandible), 새개골(Operculum), 척추골(Vertebra) 등으로 머리와 몸통을 포괄하는 주요 골격 요소가 포함된다(Lee & Kim 2011).

    3) 젓갈 가공의 가능성

    문헌 기록을 보면 고대 시기부터 동물성 식재료를 장기 보존하는 방법으로 젓갈(醢)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젓갈은 「Samguksagi (三國史記)」에서 포(脯)와 함께 처음 등장한 이후, 「Goryeosa (高麗史)」등 후대 사서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 당시 대표적인 저장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Choi 2022). 젓갈은 어류뿐 아니라 여러 수조육류를 원료로 삼는 식품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Sangayorok (山家要錄)」(Jeon Sunui (全循義), 1450)에서도 돼지껍질(豬皮), 도라지(桔梗) 등 다양한 재료를 식해의 원료로 사용한 사례가 확인된다.

    196호 유구에서 발견된 도기와 어골의 양상을 종합하면, 이곳에 저장된 어류는 건조보다는 젓갈과 같은 발효 식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능성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뒷받침된다. 먼저 유구의 환경적 특징이다. 출토보고서에 따르면 196호 유구 주변 토양은 사질점토층이다. 저장시설은 일반적으로 일정한 저온을 유지하며, 점토층의 보습 특성과 결합하여 내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습도를 유지하는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조 육류(脯)는 습한 환경에 놓일 경우 수분을 흡수하여 미생물 번식이 용이해지므로, 196호 유구의 환경 조건은 건조 육류 보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반면 염장 발효로 가공된 젓갈은 이러한 습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므로, 196호 유구에서 젓갈을 생산하거나 보관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다음으로 출토된 도기의 특징이 주목된다. 시유도기는 일반적인 도기보다 방수성과 내염성이 높아 발효 식품의 보관 용도로 적합하다(Han 2011). 또한 출토된 어골의 어종 구성에서도 주목할 만한 양상이 확인된다. <Table 1>에 제시된 바와 같이 다양한 어종이 혼재된 양상으로 출토되었다. 도기별로 특정 어종만을 선별적으로 저장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점은 단일 어종이 아닌 다양한 어종을 함께 저장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Kwon 2011). 특히 1번과 36번 도기와 같이 한 도기 내에서 여러 부위의 뼈 부분이 함께 수습된 사례는 생선 대가리를 포함한 온전한 형태 또는 대형 토막 상태로 용기에 투입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어체(魚體)를 절단하지 않고 도기에 넣어 가공하는 젓갈 제조 방식과 부합하는 양상이다. 도기 내부에서 확인된 어골이 경조직만 남은 상태라는 점 역시 장기간의 저장 또는 발효 과정에서 연부조직이 분해·소실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Kwon 2011).

    따라서 196호 유구의 환경적 특성, 시유도기의 물리적 특성, 그리고 출토된 어종의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출토된 어류는 건조 육류가 아닌 젓갈로 가공되어 보관되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4) 젓갈의 생산과 유통

    196호 유구에서 출토된 어류 가공품의 생산지와 제조 방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첫 번째는 백제의 해안 지역에서 제조된 후 한성으로 반입되었을 가능성이다. 계절에 따라 바다에서 포획한 수산물을 한성까지 운송하는 과정은 부패 위험이 컸을 것이므로, 젓갈과 같은 장기 보존 식품으로 가공한 뒤 운송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었을 것이다(Oh & Hwang 2012).

    어골이 출토된 시유도기 자체는 중국제이나 그것이 곧 내용물까지 외래품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용기는 중국에서 수입 후 왕실 주방 또는 저장시설에서 식품을 보관⋅가공하는 데 재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Kwon 2011). 당대 중국의 대형 시유도기는 술의 휘발과 기벽 흡수를 방지하는 특성으로 인해 주로 술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시유도기를 제작한 중국 남조의 도읍 건강성(建康城, 현 난징)은 양조 문화로 유명하였다. 이에 백제 왕실과 귀족층이 선호하는 술이 시유도기에 담겨 백제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며, 술이 비워진 후 빈 용기가 젓갈 제조 목적으로 재사용되었을 가능성 또한 고려할 수 있다(Oh & Hwang 2012).

    두 번째는 중국에서 완제품으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다. 현재 중국 남방에서 젓갈 문화는 일부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남아 있으나, 「Qiminyaoshu (齊民要術)」 등 고대 문헌을 통해 고대 중국에도 어류 발효 문화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효⋅숙성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젓갈의 특성상, 중국에서 백제로 이동하는 기간 동안 자연 발효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Choi 2012;Kwon 2011).

    2. 신라 왕경 유적 출토 유물

    1) 월성지구의 역사⋅공간적 위상

    신라의 왕궁이었던 월성지구는 약 600년간 왕권의 중심지로 기능하였으며, 신라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월성 주변에는 월지(안압지), 동궁, 월성해자 등 신라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밀집하고 있어 이를 통해 왕경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GNRICH 2024a).

    목간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동궁 남쪽에는 신라의 궁중 요리를 담당한 포전(庖典)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포전은 국가적 연회와 의례 및 일상적인 음식 조달·관리를 위해 설치된 신라 관청으로, 왕실 식생활의 실무를 담당한 핵심 기구였다(Lee 2007b).

    이 일대에서 발굴된 목간과 동물유체는 신라 왕실의 식생활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안압지 목간은 197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목간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Park et al. 2006), 목간에는 소비된 식재료와 식품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월성해자에서 출토된 동물유체는 왕경의 실질적인 식품 소비 양상을 뒷받침한다(Hong 2013;GNRICH 2024b). 두 자료를 함께 검토함으로써 신라 젓갈 문화의 실상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2) 출토 목간의 분석 및 특징

    안압지에서 발굴된 목간 중 젓갈과 관련한 기록은 <Table 2>와 같으며, 출토보고서의 결과를 기반으로 제시했다. 해당 목간은 물품의 보관을 중심으로 품목이나 수량을 표시했으며, 당시 보관·공급·소비 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된다.

    목간의 기록은 ‘연·월·일+제조법+동물명+가공방식+용기’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연·월·일은 제작 일시를 나타내며, 날짜를 기입한 것은 발효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Hashimoto 2007). 다만 기록의 정밀도는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209번은 연도만, 188번은 월만 기록된 반면 나머지는 일까지 기재되어 있어, 재료와 품목의 특성에 따라 기록 방식이 달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목간에 기재된 간지(辛卯年 751년, 庚子年 760년, 甲辰 764년, 丙午年 766년)를 통해 최소 15년 이상에 걸쳐 젓갈이 지속적으로 생산·관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조법에는 ‘作’과 ‘治’가 나타난다. 이는 가공을 의미하는데, 治는 우리말의 ‘담그다’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해석된다(Kwon 2014). 作이 사용되는 품목은 동물 전체인 반면 治가 나타나는 재료는 내장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두 표기가 재료의 부위에 따라 구분되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Lee 2007a).

    동물명 뒤에 기재되는 가공방식으로는 醢와 助史가 확인된다. 183·188·211·212·215·222 번에 나타나는 ‘助史’는 Hashimoto(2007) 연구에서 처음으로 젓갈을 지칭하는 표기로 밝혀졌으며 신라 이두문자로 ‘젓’을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Hashimoto 2020). 특히 助史는 醢와 동일한 위치에 기재되고 두 표기가 한 목간에 함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식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병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Kwon 2012).

    용기명은 용기의 종류와 크기를 나타내며 목간을 분석해보면 瓷, 瓮, 缶 총 세가지가 나타난다. 195번 목간의 ‘朔三日作□醢瓮百’ (초사흘에 어떤 젓갈 100항아리를 제조) 기록을 통해 젓갈이 왕실 차원에서 대규모로 생산·관리되었음을 보여준다.

    3) 목간 및 동물유체로 본 젓갈 재료

    목간에 기록된 동물명으로는 加火魚(가오리, 188번), 鳥(새, 216번), 獐(노루, 222번), 猪(돼지, 211·212번), 犭(개, 194번) 등이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다양한 재료로 젓갈을 담갔다고 알 수 있다. 포유류의 경우 목간에 獐(노루), 猪(돼지), 犭(개) 등이 젓갈 재료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월성해자 및 동궁에서 노루, 돼지, 개 등의 뼈가 출토되어 이를 뒷받침한다. 삼국시대에는 가축 이용이 본격화되는 시기로, 개, 소, 말, 돼지 등이 주요 사육 동물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개와 멧돼지의 전신 골격이 고르게 출토된다는 점은 이들이 주요 육류 공급원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Kim 2024). 이 가운데 犭는 개(犬)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나, 소(牛)를 간략하게 표기하거나 돼지(猪)를 변수만 쉽게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Lee 2007a). 조류의 경우에도 목간의 鳥 기록과 함께 동물유체에서 꿩, 가마우지 등이 확인되어 재료로 활용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어류의 경우 목간에는 加火魚(188번)가 기록되어 있다. 加火魚는 가물치, 가오리, 가자미로 해석되어 왔으나(Lee 2007c;Choi 2022), 가오리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중세국어 음운 해석에 따르면 加火魚는 ‘가브리’로 발음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으며(Lee 2007c), 목간에서 4월 젓갈 제조 기록이 가오리의 제철과 부합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Hashimoto 2007). 또한 조선시대의 「Seonghosaseol (星湖僿說)」(Lee Ik(李瀷), 1740)에서 홍어와 가화어를 구분한 기록 역시 가화어가 가오리를 지칭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목간에서 가오리가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토 동물유체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데, 이는 연골어류의 특성상 어골이 잔존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Kim 2024). 오히려 이러한 점이 加火魚를 가오리로 해석하는데 무게를 더한다.

    목간에서는 특정 식재료가 제한적으로 기록되지만, 월성해자에서는 상어, 방어, 넙치, 복어, 다랑어가, 안압지에서는 고등어, 청어, 전갱이, 복어, 상어 등이 출토되어 당시 소비된 어종의 범위를 보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해양어종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주목된다(Kim 2024). 한편 서봉총에서도 청어, 복어, 망상어 등 총 69마리의 어골이 확인되었으며, 월성지구 출토 어종과 비슷한 구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 왕경에서 소비된 어종이 전반적으로 유사했음을 시사한다(Kim 2020).

    4) 저장 용기 크기와 저장시설

    목간에 기록된 용기명으로는 瓷, 瓮, 缶 총 세 가지가 확인된다. 이 중 瓮의 크기는 월성해자 신5번 목간의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해당 목간에는 쌀 34말이 하나의 瓮에 담겼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시대 1되(升)를 약 350 ml로 환산할 경우 1瓮은 약 120 L에 해당하는 대형 용기였음을 알 수 있다(Yoon 2000;GNRICH 2024a).

    또한 용기와 젓갈이 함께 기재된 사례로는 183번 猪水助史(瓷), 195번 醢(瓮), 211번 猪助史(瓮) 등이 확인되며, 이는 젓갈이 대형 항아리를 이용해 제조·보관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183번 목간의 “策一瓷[行]一入”은 ‘첫째 줄에 항아리 하나를 넣는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이는 창고 내 발효식품이 일정한 배열과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음을 보여주며, 다수의 대형 용기를 수용하기 위한 별도의 저장 공간, 곧 저장시설로 이해할 수 있다(Lee 2021).

    이와 같은 저장 방식은 실제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동궁 포전의 경우 3.5 m 폭의 긴 회랑을 갖춘 구조로, 젓갈이나 장 등 발효식품을 담은 항아리를 대량으로 보관·관리하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평가된다(Lee 2007b). 또한 성건동 500-18 창고유적에서 약 1 m 크기의 대옹 55개가 발굴되었으며, 일부 옹은 같은 자리에서 4번에 걸쳐 재사용된 흔적이 확인되어 저장시설로서 지속적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Lee 2021).

    Lee (2021)는 대옹이 지면을 굴착해 고정된 형태로 발굴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해당 시설이 술보다 젓갈 저장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Qiminyaoshu (齊民要術)」에 따르면 술은 땅속에 저장할 경우 흙내가 나므로 초가집에 보관할 것을 권장하고 있어, 지면을 굴착한 저장 방식은 술보다 젓갈 등 발효식품 보관에 더 적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Lee 2021). 도기 내부에서 청동 국자와 쌀겨가 출토되고 인근에서 토제 깔때기가 확인된 점은, 이 시설이 단순한 저장 공간을 넘어 젓갈·장류 등 발효식품의 제조와 유통이 실제로 이루어진 장소였음을 보여준다(Lee 2021). 더불어 「Samguksagi (三國史記)」에 왕실 혼인 예물로 135수레 분량의 젓갈의 기록이 있어, 이 정도 규모의 젓갈을 저장·관리하기 위한 전용 저장시설이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Cha 2021).

    5) 젓국 사용 시기의 재검토

    젓갈 관련 표기 외에도 196번과 209번 목간에서는 汁이라는 용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Lee (2007a)는 汁의 훈이 ‘국’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젓국일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Kwon (2014)은 목간에 上汁과 二汁이 구분되어 있는 점에 주목하여, 上汁은 두장(豆醬)에서 가장 먼저 뽑아낸 맑은 장, 二汁은 두 번째로 뽑아낸 장으로 분석하였으며, 「Samguksagi(三國史記)」에 나타나는 장(醬)의 기록이 신라시기에 장류 제조 체계가 존재했음을 뒷받침하고 설명했다. 고려 시기에도 장으로부터 맑은 액을 분리한 것을 장즙(醬汁)이라 불렀으며(Na et al. 2020), 목은 이색의 「Mogeunjip (牧隱集)」(Lee Saek(李穡), 1300s) 중 “仍塗醬汁火邊燒(장즙을 발라 굽다)”라는 내용을 통해 간장을 汁으로 표기하는 용례가 후대까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종합할 때 汁은 젓국보다는 장류에서 추출된 액상, 즉 간장으로 볼 수 있다.

    汁이 간장을 의미한다면 젓국의 표기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3번 목간을 보면 ‘猪水助史’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Kwon (2012)은 이 ‘水助史’를 물이 있는 젓갈, 즉 ‘猪水助史’을 돼지젓국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7세기 당나라의 「Shangshuzhengyi (尚書正義)」(Kong Yingda (孔穎達), 642)에 따르면 猪水는 돼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모아 저장한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猪水助史는 돼지젓국보다는 다양한 젓갈에서 나온 젓국을 모아 보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보인다. 이처럼 猪水助史가 젓국 계열의 품목으로서 汁과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신라 시기 젓국이 독립된 품목으로 관리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猪水助史를 젓국으로 본다면 한국 식문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미료로서 젓갈의 쓰임은 15세기 기록에서부터 확인되나, 당시 젓갈은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품목이었으며(Park & Kwon 2017), 젓국이 독립적인 품목으로 구체적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다. 「Yeoyudangjeonseo (與猶堂全書)」(Jeong Yagyong (丁若鏞), 1800s)에서는 젓갈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즙을 젓국이라 설명하고 있고(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Kyuhapchongseo (閨閤叢書)」(Pinghugak Lee (憑虛閣 李氏), 1809)에서는 조기젓국·굴젓국 등 다양한 젓국의 활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압지 목간의 猪水助史는 이러한 문헌 기록보다 수백 년을 앞서는 것으로, 신라 시기 왕실의 식재료 관리 체계에서 이미 젓국이 독립된 품목으로 존재했고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3. 백제⋅신라시대 젓갈의 종합적 고찰

    앞서 분석한 백제와 신라의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하여, 생산 및 저장 체계, 유통 구조, 의례적 기능의 세 가지 범주를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분석하였다.

    1) 생산 및 저장 체계

    백제와 신라의 자료를 종합하면, 젓갈은 일정한 생산과 보존을 전제로 한 발효식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에서는 풍납토성 경당지구 196호 유구의 대형 시유도기와 저장시설을 통해 대규모 저장이 이루어진 흔적이 확인되며, 다양한 어종이 혼합된 어골의 출토 양상은 발효를 전제로 한 가공 방식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신라 역시 안압지 목간을 통해 젓갈의 생산 시점, 재료, 수량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생산과 관리 과정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두 지역 모두 대형 용기와 저장시설이 확인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젓갈이 장기 보존을 전제로 생산된 식품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백제의 습윤한 저장환경과 신라의 지면 고정형 대옹은 발효식품의 생산 및 저장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음을 시사한다.

    2) 유통 구조

    양 지역의 자료는 젓갈이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된 상태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라에서는 185번 목간의 '□遺急使條高城醢缶' 기록을 통해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젓갈이 경주 왕궁으로 운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Lee 2007c;Kim 2014). 사신을 통해 조달되었다는 점은 해당 과정이 왕실 주도 하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며, 이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되었으며, 왕실의 필요에 따라 식품이 조달되는 유통 구조를 반영한다. 백제의 경우에도 해안 지역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한성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젓갈로 가공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Oh & Hwang 2012).

    이처럼 두 지역 모두에서 젓갈은 단순한 지역 생산품이 아니라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된 상태에서 이동하는 식품이었으며, 특히 신라에서는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유통 과정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점은 젓갈이 일정한 유통 체계 속에서 생산된 식품이었음을 시사한다.

    3) 의례적 기능

    젓갈의 기능은 일상적 섭취에만 머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Yili (儀禮)」의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에 따르면 고대 사회에서 음식 섭취는 신과의 교감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례적 행위였으며, 젓갈 역시 이에 포함되는 음식이었다(Kim 2012).

    이러한 전통은 백제에도 이어져, 제사 음식에 육포, 젓갈 등 다양한 저장 발효식품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보인다(Oh & Hwang 2012). 백제시대 제례에서 어류가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도 확인된다. 무령왕릉의 제대 위에 놓인 청동접시에서는 은어뼈 3개체가 확인되었고, 청주 봉산리 유적에서도 생선뼈와 조개껍데기 등 음식 공헌의 흔적이 발견되어 제례 목적으로 어류가 사용되었음을 뒷받침한다(Kang 2016). 경당지구가 제사를 수행하던 장소라는 것을 비춰봤을 때 196호 유구에서 발견된 어골은 진설을 목적으로 저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방식은 젓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에서는 194번 목간의 오장(五藏) 기록이 주목된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석전(釋奠)이 시행되었으며, 녹해⋅담해⋅토해⋅어해 등이 제물로 사용되었다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Han 2010). 고대 일본에서도 동물 오장과 녹해⋅어해 등을 석전에 사용한 기록이 확인되는바,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면 해당 목간은 의례용 젓갈의 실체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근거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서봉총에서는 청어, 복어, 망상어 등 최소 69개체의 어골이 출토되었으며(Kim 2020), 이들 어종이 안압지⋅월성해자 출토 어종과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왕실 식재료 체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제례용 식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삼국시대 젓갈은 단순한 저장식품을 넘은 의례적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백제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도기⋅어골 자료와 신라 월성⋅안압지 지역에서 출토된 목간⋅동물유체를 기반으로 삼국시대 젓갈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백제 풍납토성 196호 유구는 어류 가공품을 보관하던 왕실 저장 시설로 추정되며, 도기 내부에서 다수의 어골이 출토되었다. 저장시설의 환경, 도기의 물리적 특성, 어종 구성을 종합할 때, 출토된 어류는 젓갈로 가공⋅저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 안압지 목간에서는 젓갈의 생산과 관리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확인된다. 목간 자료를 통해 젓갈이 15년 이상 지속적으로 생산⋅관리되었으며, 한 차례에 100항아리 규모의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산물과 수조육류가 모두 젓갈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신라에서는 젓갈을 한자 醢와 이두 표기 ‘助史’로 기록하여 자체적인 기록 체계를 갖추었다. 이는 신라 사회에서 젓갈이 하나의 독자적 식품 범주로 인식⋅관리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猪水助史’의 기록은 조선 후기 문헌에 보이는 젓국의 선례로, 신라 시기에 이미 젓국이 독립된 품목으로 분화되어 관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 지역의 자료를 종합하면, 백제와 신라의 젓갈은 단순한 저장식품의 차원을 넘어, 왕실이 주도하는 생산⋅유통⋅관리 체계 속에서 운용된 식품이었다. 백제와 신라 모두 특정한 저장 공간에서 젓갈을 체계적으로 생산⋅저장하였으며, 원거리 유통을 통해 왕궁으로 공급되었다. 또한 젓갈은 일상적 소비뿐 아니라 의례적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문헌 기록의 공백이 큰 삼국시대 젓갈문화를 출토유물이라는 물질적 증거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젓갈을 단순한 전통식품이 아닌 고대 국가 운영 체계 속의 식문화 자원으로 재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목간, 도기, 동물유체 등 고고학적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식문화 연구의 방법론적 확장에 기여한다.

    저자 정보

    김연광(고려대학교 대학원 생활과학과 식품영양학전공, 박사과정, 0009-0008-3470-2277)

    김유경(고려대학교 가정교육과, 교수, 0000-0002-8438-0121)

    Conflict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Figure

    Table

    Pottery and Fish Bone Findings from Gyeongdang District Site 196
    *Not specified
    Records of wooden tablet in Anapji
    *Not Applic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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