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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9 No.5 pp.235-245
DOI : https://doi.org/10.7318/KJFC/2024.39.5.235

A Study on the Primitive Pottery Culture of the Korea Strait littoral

Cherl-Ho Lee*
Department of Food Technology, Korea University
* Corresponding author: Cherl-Ho Lee, Department of Food Technology, Korea University, #109A, College of Life Science and Biotechnology (East Bldg.), 145 Anam-ro, Seongbuk-gu, Seoul, 02841 Korea Tel: +82-2-929-2751 Fax: +82-2-927-5201 E-mail: chlee@korea.ac.kr
August 19, 2024 October 21, 2024

Abstract


In archaeology, the discovery of pottery is treated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human civilization, and the history of human development is divided according to its form and pattern. However, through the eyes of a food scientist, mankind's first bioreactor can be seen in earthenware. The oldest pieces of pottery ever discovered (before 10,000 BC) are being excavated in Northeast Asia, and the author is asserting the hypothesis that the coast of the Korea Strait of the Korean Peninsula could be a birthplace of the Primitive Pottery Culture. The use of earthenware marks the beginning of boiling culture and fermentation technology, and is the origin of the Korean people’s traditional food culture including Tang and Jjigae (stew) culture and kimchi and jeotgal (fermented fish) culture. Among the three Northeast Asian countries (China, Korea, and Japan),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for inferring that Korea Strait is a birthplace of primitive pottery culture. These are discussed with a focus on the unique food culture of the Korean people.



대한해협연안의 원시토기문화에 관한 소고

이철호*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초록


    I. 서 론

    고고학에서 토기의 발견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지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형태와 문양에 따라 인류 발달사를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식품학자의 눈에는 인류최초의 생물반응기(bioreactor)를 토기에서 보게 된다. 토기는 인류가 발명한 물을 담아 끓일 수 있는 최초의 용기이다. 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단단하거나 영양저해요소가 함유된 식재료(씨앗, 줄기, 뿌리, 물고기, 조개, 해초)를 물과 함께 끓여(boiling) 부드럽고, 안전하고, 소화가 용이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리(cooking)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토기를 사용하면서 수분함량이 높은 음식을 저장 보관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한 발효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미생물이 생육한 저장음식은 특이한 냄새를 발생하며 이를 통해 부패와 발효를 일차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끓임기술(boiling technology)과 발효기술(fermentation technology)의 발전은 인류의 가용 식량(food availability)의 폭을 크게 확대하였으며 식량의 저장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이로써 인류는 신석기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에 식량의 저장 가공기술을 가지게 되었으며 한 지역에서 비교적 오래 머무르는 정주생활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본다.

    토기의 제작과 이용이 인류 문명의 발달과 음식문화의 전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 크게 거론되고 있지 않다. 본고에서는 토기의 최초 제작·이용과 전파경로에 대해 조사하고, 대한해협(Korea Strait) 연안의 원시토기문화와 발효기술의 발전에 대해 상술하고, 한반도 대한해협 연안이 동북아시아 발효문화의 발상지로 추론되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II. 본 론

    1. 토기의 제작과 전파경로

    고고학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조각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되고 있다(Lee 2021). 남중국 양쯔강 연안의 우선 암동굴(于禅岩)에서 발견된 기원전 13,000년대의 토기조각을 비롯하여 광시성 증피암동굴(甑皮岩, 기원전 9,000년), 북중 국 허베이성 후두량유적(虎頭梁, 기원전 12,700년)과 남장두 유적(南庄头, 기원전 9,000년)등이 중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Liu & Chen 2012). 한편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아무르강 유역의 가시아유적(Gasya, 기원전 9,000년)과 쿠미유적(Khummy, 기원전 8,000)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조각들이 발굴되었다 (Zhushchikhovskaya 1997). 대한해협 연안에서는 일본 남부 큐슈의 후꾸이(福井)동굴과 시고꾸(四國)의 가미꾸로이와(上 黑岩)동굴에서 기원전 10,000년대의 토기조각이 발견되었으며(Barnes 1993), 한국에서는 제주도 고산리유적(기원전 8,000년)과 강원도 오산리유적(기원전 6,000년) 등에서 원시 토기들이 발굴되었다(Lee 2017). 남해안의 동삼동유적(기원전 7,000년), 상노대도유적(기원전 6,000년) 등 조개무덤에서는 원시 토기조각이 출토된 아래층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토기 부스러기 흙이 발견되어 더 오래된 토기들이 흙으로 환원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Han 1974). 일반적으로 조개무덤에 묻힌 토기조각은 동굴에서 발견된 토기조각보다 빠르게 흙으로 환원되므로 중국, 극동러시아, 대한해협 등지에서 발굴되는 원시 토기조각들은 동시대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바뀌는 기원전 10,000 년경에 이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토기들이 만들어 졌다고 본다(Lee 2022).

    독일의 고고학자 헤르만 파르징거(Hermann Parzinger)는 최근 전 세계 지역별 선사 유적지의 발굴 현황을 비교 분석한 대작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를 발표했다(Parzinger 2020). 이 책에 근거하여 각 지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토기의 발굴 현황을 지도에 표시하면 <Figure 1>과 같다. 파르징거는 신석기 농업의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포함한 중동지역에서 7,000년대에 토기의 제작이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동북아시아의 10,000년대 초기 토기 제작과는 연관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발굴되는 초기 토기유적들은 각종 무늬와 채색을 한 토기들이어서 동북아에서 원시 무문토기가 제작된 후 약 3,000년이 경과한 이후에 발전한 토기들이 서양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파경로는 <Figure 1>에 표시한 바와 같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바이칼호와 우랄산맥 사이의 북아시아 지역을 경유하여 유라시아와 북유럽으로 전파되는 북방경로와 남중국에서 북인도와 페루산악지대 사이를 거쳐 근동지역과 이집트·수단의 나일강유역으로 전파되는 2개의 경로를 상정할 수 있다. 남방경로는 남중국에서 북인도로 전파된 후 중동지역으로 전파되고 다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그리스와 서유럽과 북아프리카로 전파된 경로와 북인도에서 이집트와 중서아프리카의 차드분지로 이어지는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반도와 극동 러시아의 원시토기는 연해주를 지나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대륙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중국에서 베트남과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로의 토기문화 이전은 열대 우림의 영향으로 훨씬 늦은 시기인 기원전 3,000 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2. 대한해협연안의 원시토기문화

    중국의 초기 원시토기 유적지는 대부분 내륙의 강가에 위치한 반면 대한해협 연안의 토기 유적은 해안에 위치한 조개무덤에서 발견되고 있다<Figure 2>(Lee 2021;Lee 2022).

    김건수(Kim 1999)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발견된 패총은 총 164개소이며 두만강 하류 동북지방(서포항 패총 등)에 18개소, 서북지방 (신암리 유적 등)에 9개소, 서해안 중부지방(암사동 유적 등) 38개소이며 나머지 96개소는 남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 남해안의 동삼동유적과 상노대도유적, 서포항유적에서는 빗살무늬(즐문) 토기층보다 더 오래된 아래 쪽에서 원시(Primitive 또는 Initial/Early) 무문토기와 세선 융기문토기가 출토되고 있다(Han 1974). 한반도 동남해안과 일본 큐슈 북서해안은 마지막 빙하기에 해수면의 하강으로 대한해협이 좁아져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근접 지역이 되므로 대한해협연안의 동삼동유적, 상노대도유적, 오산리유적, 서포항유적은 일본의 후쿠이동굴이나 가미쿠로이와 동굴의 토기유적과 동시대 동일 문화권의 유적으로 봐야 한다.

    동삼동유적의 방사성 탄소 연대에 의한 제작연대를 추산한 결과를 보면 원시무문토기는 기원전 6,000년 이전, 융기 문토기는 기원전 6,000-5,000년, 지두문토기는 기원전 5,000- 4,500년, 압인문토기는 기원전 4,500-3,500년, 태선어골문토 기는 기원전 3,500-2,500년, 후기무문토기는 기원전 2,500- 1,5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Lim 1983). 기원전 6,000년대 이전에 이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 토기는 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로 한반도 남해안의 동삼동 유적, 상노대도유적, 신암리유적, 동해안의 오산리유적 등에서 볼 수 있다 (Shin 1982, 1983). 이들 조개무덤에서 발굴되는 원시 토기들은 층위에 따라 토기 제작가술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Table 1>은 연세대 신숙정 박사의 상노대도 토기 연구보고(Shin 1982)에 근거하여 출토 토기의 층위별 제작 특징을 분석한 내용이다(Lee 1999;Lee 2022).

    초기의 원시토기는 손으로 빚은(수날법, 手捏法) 두껍고 움푹한 그릇으로 노지에 피운 불 위에서 구워낸 것으로 보인다. 가열온도가 낮으므로 단단하지 못하고 흡수율도 높아 물기 많은 음식을 오래 담아둘 수 없었을 것이며, 가열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용기로도 적합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초기 토기는 오랜 기간 동안 땅속에 파묻혀 습기를 먹으면 원래 토양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로 환원되므로 유적으로 발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기원전 1만 년경의 원 시토기가 조개무덤에서는 발굴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상노대도의 가장 오래된 최하층 부위인 제X층에는 토기의 부스러기만 관찰되고 있다. 기원전 6,000년대에는 권상법(捲上 法, 흙 반죽을 가래떡처럼 만들어 쌓아올리는 방법)이 사용되어 기벽이 얇고 형태가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 졌으며, 굽기 온도도 높아져 그 파편이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원시형태의 토기가마(kiln)가 그 시대에 고안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기원전 3-4,000년경에 다시 굽기온도가 700-750°C로 높아지면서 획기적인 기술발전을 하게 된다.

    기원전 4,000년까지는 주재료인 바탕흙으로 점질의 함철 염토가 주로 쓰였으나 그 이후 커다란 변화를 보여 모래질의 함철염토를 주로 쓰게 된다. 이러한 바탕소재의 변화는 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형태의 변화와 파손율을 낮추는 기술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비짐은 토기 만드는 기술이 덜 발달했던 때에 그릇을 보강하기 위해 넣었던 것으로 화강섬록 암을 깨뜨려낸 조각과 유기물 가루를 염토에 섞어 썼다. 그러나 기원전 3-4,000년경에 오면 조가비의 사용이 시작되며 그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조가비는 탄산칼슘이 주성분 이므로 700°C 부근에서 녹아 토기의 공극을 메우고 재결정 되므로 토기의 흡수율을 낮추고 밀도와 강도를 높여준다. 성형 방법도 물레를 돌려 쌓아 올리는 윤적법(輪積法)이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 사람들이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주목적이 물기 있는 음식을 담아 저장하고 불에 올려 끓이는 조리용 기구였음을 토기의 발전 양상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토기의 재료, 제작기술 및 형태의 변화를 분석해 보면 더 단단하게, 물이 스며들지 않게, 불에 잘 견디게, 더 크게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기원전 6,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는 기벽의 두께가 4-12 mm 범위로 다양하나 기원전 4,000년 이후에는 6 mm 수준으로 균일화된다. 토기의 형태는 전 기간 동안 둥근밑(圓底)과 납작밑(平底) 토기가 모두 발굴되고 있는데 작은 그릇에 서부터 대접, 반쪽계란형 용기, 자배기까지 다양하다. 초기단 계에는 입술지름 12-24 cm 정도의 작은 그릇이나 대접모양의 용기가 주로 보이나 후기로 갈수록 크기가 켜져 입술직경이 48 cm 되는 것도 있으며 끝은 겹입술로 처리되고 있다. 토기의 크기에 따라 소형은 주로 가열 조리용으로, 대형은 곡물 저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며, 중형은 오늘날의 항아리와 유사한 크기로서 채소절임을 비롯한 발효 용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해협 연안에서 출토되는 원시토기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그 용도를 분류하면 가열 조리용 뚝배기(cooking pot), 발효용 항아리(fermentation crock), 마른 곡물이나 식량을 저장하는 독(storage jar)으로 구분할 수 있다(Lee 2021;Lee 2022)<Figure 3>. 조리용 뚝배기는 입구의 지름이 6-12 cm, 또는 12-24 cm 정도의 크기를 가진 비교적 작은 그릇으로 흡수율이 낮고 밑부분이 둥글거나 원추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발효용 항아리는 4-17 L의 용량을 가진 중간크기의 항아리로 흡수율이 낮고 밑부분이 좁고 원추형을 가진다. 저장용 독은 17-56 L 크기의 대용량 독으로 흡수율이 크고 밑부분이 둥글거나 평평한 형태이다.

    상노대도에서 출토된 토기의 대부분이 직경 24 cm 정도의 대접모양 용기로 보이며 이들은 주로 한 가족의 한 끼 음식을 조리하는 데 적당한 크기로 보인다. 개인용 식기는 소형 토기와 더불어 나무 조각이나 나뭇잎으로 만든 용기, 조개껍질 등이 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후기로 오면서 이들 그릇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가족 수의 증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

    3. 대한해협연안이 원시토기 음식문화의 발상지인 근거

    1) 지정학적 조건

    한반도 남해안과 일본 남서해안에는 수많은 패총과 원시 토기 유적지들이 발굴되어 이 지역이 신석기 초기의 중요한 해상통로이며 문화 중심지임을 시사하고 있다(Han 1983).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 대륙과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육교(land-bridge)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와 주변 동북아시아의 구석기유적 발굴지를 지도에 찍어보면 동·서해안에 위 치한 유적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지리산에서 태백산맥을 거쳐 묘령산맥으로 다시 장백산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험준한 육로 주변의 강가에 주로 위치하고 있다<Figure 4> (Lee 2001).

    한반도 동남해안과 일본 규슈 북서해안을 포함하는 대한 해협 연안이 원시토기문화의 주요 발상지가 되는 지정학적 근거는 이 지역이 <Figure 4>에서 보인바와 같이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통한 동북아 이동통로를 가로막는 바닷길이라는 것이다. 기원전 1만 년경은 홍적세의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Würm) 제4빙기의 끝부분으로 발해만과 황해 바닥 대부분이 아직 육지로 남아 있었으며, 대한해협은 현재보다 좁아서 한반도 남해안에서 대마도를 거쳐 북규슈 연안까지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고 본다.

    홍적세(Pleistocene)가 끝나고 현신세(Holocene) 또는 충적세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서서히 높아져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들은 이 통로를 따라 한반도를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 고산지대로 이동하고, 겨울철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먹이감을 따라 이 지역의 구석기인들도 이동하므로 한반도 동남해안과 규슈 북서해안에는 대한해협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해안에 모인 사람들은 자연히 들짐승의 사냥보다는 조개류를 채취하거나 물고기를 잡아 식량으로 사용하게 되고 점차 어로 채집이 주요 산업이 되었을 것이다(Lee 2001). 한반도 동남해안에는 기원전 5,000년대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포항 인비리, 경주 석장리, 남해 상주리, 여수 오림동 등 20여 곳에서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문양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 암각화가 한반도 동남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 지역이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체류한 곳으로 원시 토기문화시대의 이동통로로서 선사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Lee 2021).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으로 대한해 협연안은 신석기 초기 원시토기문화의 발상지로 추정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Lee 1999;Lee 2001).

    2) 끓임기술(Boiling technology)의 필요성

    구석기시대 말기까지 동북아시아인들은 주로 이동성 수렵 채집에 의한 식생활을 영위하였고 그들의 주요 먹잇감은 사슴, 멧돼지, 들소, 노루의 고기와 내장, 혈액 등이었으며 도토리, 밤, 머루, 다래, 칡, 더덕과 같은 식물성 음식을 보조식 품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Lee 1998, 2021). 건조에 의한 식품저장기술이 사용되고 전에 사용한 주거지 부근에서 비교적 풍부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점차 일정지역에서의 거주 기간이 길어지고 주변의 풀씨, 피, 기장, 메콩 등을 채집하여 식량에 보태게 된다. 또한 점차 물과 친숙하여져서 강변이나 해변에서 조개를 채집하거나 개구리, 달팽이 등의 연체동물을 먹잇감으로 이용하게 된다.

    박구병(Park 1965)에 의하면 이 시기의 패총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물건은 조개껍질로 특히 굴껍질이 가장 많다고 한다. 어류로는 도미, 삼치, 상어의 유골이 많이 발견되며, 해조류도 많이 채취되었을 것으로 유추되나 이들 재료는 쉽게 분해되어 유물로는 남겨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들 수산자원은 자기소화(autolysis)에 의하여 빨리 부패 변질하고 쉽게 건조되지 않아 채집한 자리에서 즉시 소비해야 함으로 식량자원으로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 한 때에 토기의 발명은 구석기인들의 식생활을 크게 바꿔놓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동해안의 오산리유적이나 서포항유적에서는 초기 신석기인들이 어로에 사용했던 세석기와 석촉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남해안의 동삼동유적에서는 국부 마제석기가 출토되 었다. 이러한 도구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어획량을 증가시키며, 계절별로 다량 채집되는 조개와 갑각류의 저장이 절실히 요구되었을 것이다. 특히 물고기나 조개와 같은 수산물은 빨리 부패 변질하므로 신속히 가열 조리하거나 저장하는 도구와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농경문화 이전에 어로채 집문화가 정착된 대한해협 연안에서 토기의 제작과 사용이 다른 지역보다 일찍 시작된 것으로 본다(Lee 2001, 2023).

    4. 찌개문화의 기원

    해변의 채집인으로 토기를 사용하면서 이제까지 동물의 혈액이나 내장에서 섭취하던 미네랄과 염분을 수산식품에서 주로 공급받게 되고 점차 짠맛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짠맛은 식물성 음식을 많이 섭취할 수 있게 하므로 수렵이 어려워 육류를 획득하지 못했을 때에도 식물성 대체식품으로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짠맛을 알게 되고 그 획득방법을 터득한 동북아의 원시 토기인들은 해변에 거주하면서 바닷물과 해산물을 토기에 담아 끓이고 여기에 들판에서 채집한 채소와 풀씨와 나무뿌리, 견과류를 함께 끓여 먹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음식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뚝배기 찌개문화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토기에 바닷물과 해변에서 채취한 조개와 물고기, 해초, 들판에서 수집한 풀과 뿌리를 섞어 끓이면 지금 우리가 먹는 뚝배기 찌개가 된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멀건 된장국(미소시르)과 구분하여 건더기가 많이 들어간 한국식 찌개를 한국어를 인용하여 “찌 개”라고 부르고 있다.

    찌개는 해산물을 생식하는 것보다 위생적이고 오래 저장하면서 먹을 수 있다. 한 가족이 토기에 끓여 놓은 찌개그릇에 둘러앉아 퍼먹는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찌개문화에는 퍼먹는 숟가락이 필요했고 나무나 뼈 조각을 깎아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들 식사도구는 비교적 빠르게 분해되어 그 유적을 찾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한· 중·일 삼국 중에서 한국인만이 숟가락을 필수 식사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찌개문화의 오랜 전통을 나타내는 증표이다.

    Kwak et al. (2017)은 금강 연안의 송국리유적(2,900- 2,400 BP)에서 발굴된 토기조각에서 유기물의 잔존 여부를 GC-MS로 분석한 결과 27개 시료 중 18개에서 유기물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유지성분이 최고 59 mg/g (평균 33 mg/ g)이 검출되었다. 이들 유지성분의 대부분이 팔미트산(C16:0)과 스테아르산(C18:0)으로 구성되어 있어 동물성 식품이 포함된 음식을 끓인 토기그릇(찌개그릇)으로 확인되었다.

    끓임문화가 발전하여 농경시대로 들어오면 물을 끓여 밥을 짓고 찌개나 탕을 끓여 함께 먹는 한민족 고유의 음식문화가 정착된다. 한국인은 지금도 투박한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는 된장찌개를 밥상에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지는 조리법이 우세하고 일본인은 생선회나 초밥 등 생식에 가까운 음식을 선호하지만 한국인은 탕과 찌개가 음식의 기본이 된다. 또한 김, 미역 등 해초를 가공하여 식품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음식문화는 기원전 6,000년경 한반도에 보편화된 원시토기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Lee & Kim 2016).

    5. 식염 제조기술의 기원

    토기에 수산물을 담아 가열 조리하는 과정에서 식염(食鹽)의 존재를 곧 알게 된다. 식염의 제조역사가 언제까지 올라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수산물이나 바닷물을 토기에 담아 끓이면 점점 짠맛이 증가하고 나중에는 대단히 짠맛이 강한 하얀 가루가 남는다는 것은 원시토기의 사용 초기부터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Ishige (1995)에 의하면 일본에서 토기에 해수를 넣어 끓인 토기제염법이 고고학적 물증으로 확인된 것은 죠몬시대 후기, 즉 기원전 500년 전후의 관동지방 유적에서 제염용 토기가 발견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 이라고 한다. 그는 식염의 생산과 소비가 본격적으로 된 것은 고도의 농업사회가 된 이후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원시 토기가 대한해협연안에서 기원전 8,000년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이 토기를 이용하여 찌개를 끓이고 짠맛에 길들여졌다면 바닷물을 이용한 식염의 제조는 이미 원시토기문화시대의 이른시기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Lee 1999;Lee 2021).

    한반도 지역에는 암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 지역의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물의 내장이나 혈액에서 나트륨을 공급 받았을 것이다. 후기 구석기말이나 신석기 초기에 강이나 해변으로 생활터전이 바뀌면서 나트륨의 공급은 주로 해산물에서 얻게 된다. 수렵생활에서 해변의 채집인으로 발전한 것은 나트륨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 해수의 짠맛을 알고 토기에 찌개를 끓이면서 그릇 주변에 돋아나는 소금 결정을 관찰하면서 식염의 제조기술은 이 시대 사람들의 필수적인 생활 지혜가 되었을 것이다. 대한해협의 채집인들이 토기를 이용하여 해수에서 소금을 제조하면서 자반, 젓갈, 장류 등 염장(鹽藏)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식량자원의 장기저장이 가능해져 곡류와 근채류를 중심으로한 식물성 식사체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6. 식품발효기술의 기원

    1) 김치발효

    배추나 무와 같은 채소를 3 % 내외의 식염용액이 든 용기에 넣고 용액에 잠기도록 눌러 놓으면 3 -4일 후에는 신맛을 내는 젖산 발효가 진행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은 원시토기시대 사람들이 들판에서 채소를 채집하여 바닷물(식염농도 3 %)이 담긴 토기에 넣어두었을 때의 조건이며 그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젖산발효로 나타난다(Son 2022). 자연계의 무수한 미생물 중에서 이러한 조건에서 생육할 수 있는 균은 Leuconostoc mesenteriodes균이며, 거의 예외없이 이 균에 의해 대부분의 채소 유산균 발효가 시작된다(Lee 1997). 이 세균은 젖산과 초산을 동시에 생산하는 이종발효(heterofermentative) 유산균으로 pH 4.8 이상의 약산성에서만 생육한다. 이들 유산균이 초기 단계에 우세하게 자라서 약산성의 조건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부패균이나 유해세균의 생육이 저해되고 그 뒤를 이어 동종발효(homofermentative) 유 산균으로 젖산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Lactobacillus plantarum 과 같은 세균들이 우점종이 되어 채소절임을 pH 3.0 이하의 아주 강한 산성 식품으로 만들어 놓는다(Lee 2009)<Figure 5A>.

    이러한 현상은 자연계 어디서나 비슷한 조건이 형성되면 일어나는 자연 발효현상이며 원시토기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 지역에는 자연발효에 의한 유산균 발효 식품이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대표적인 전통식품으로는 한국의 김치를 비롯해서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베트남의 다무이(dhamuoi), 태국의 닥과동(dakguadong), 필리핀의 부롱머스탈라(burong mustala) 등이 있다(Lee 1994;Lee 2009).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유산균 발효채소는 식염절임을 병용하고 있으며 강한 신맛을 내지 않는다. 이 사실은 한반도의 유산균 발효채소는 토기를 이용하여 바닷물과 함께 절이는 방법(침채, 沈菜)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채소를 바닷물과 섞어 버무려 두는 초기의 채소 발효법은 자칫 잡균의 오염으로 부패 변질하기 쉽다. 따라서 식염의 농도가 점점 높아지게 되고 기원전 1,000년대의 역사시대에 오면 고농도의 식염을 사용하는 소금절임(지, 漬)의 형태로 변형된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김치의 특징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고유의 저염 유산균 발효를 유지하고 여기에 갖가지 채소와 향신료를 첨가하여 유산균의 증식을 돕고 다른 잡균의 증식을 억제하면서 맛의 조화를 이루어 냈다는 데 있다(Lee 2001).

    2) 젓갈/식해의 기원

    대한해협 연안의 구석기인들이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이 지역에서 계절적으로 다량 채집되는 수산물을 신속히 가열, 조리하고 저장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형태의 해산물 저장기술이 있었을 것 이다. 원시토기시대의 이른 시기에는 아직 오늘날의 젓갈이나 어장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식염이 풍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패류를 토기에 담아 장기간 저장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앞에서 설명한 유산균 발효채소나 매실과 같은 신맛을 내는 과 실을 해산물과 함께 버무려 두는 것이다. 부패하기 쉬운 어패류를 김치와 같은 유산균 발효채소와 버무려 pH를 4.5 이하로 낮추면 유해 미생물의 번식을 막을 수 있으므로 장기간 저장하면서 식용이 가능하다(Lee 1997;Lee 1999) <Figure 5B>.

    이러한 조건에서는 낮은 식염농도 때문에 어패류의 내장과 체내 효소에 의하여 자기소화(autolysis)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강한 분해취를 낸다. 이 때 형성되는 냄새와 맛은 현대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강한 부패취로 느껴지겠지만 원시토기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도토리나 식물뿌리, 풀씨 등으로 조리한 음식과 섞어 먹을 때 동물육이나 내장에서 맛볼 수 있는 구수한 맛을 연상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동남아의 어장은 한국인에게는 너무 강한 냄새와 맛을 가지며, 일부 어장 제품은 먹을 수 없는 부패취가 느껴지는 것도 있다. 따라서 유해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는 조건에서 부패와 발효는 인류 집단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어장, 젓갈, 김치, 치즈, 요구르트 등 모든 발효식품은 전통적으로 먹어 온 집단에게는 더없이 좋은 음식이나 그 외의 집단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패물이 될 수 있다(Lee & Kwon 2003).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윈시토기문화시대의 유산균 발효 채소와 함께 버무려 만든 저장 어패류는 육식에서 채식으로 옮겨가는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 조미식품이었으며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식해(食醢), 젓갈류의 원형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어체의 분해와 이를 동반한 냄새의 발현이 지나쳐 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계속 가해졌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식염의 농도가 점차 높아졌을 것 으로 보인다.

    3) 누룩의 제조와 양조 발효의 기원

    고온 다습한 지역에서 토기에 채집한 풀씨나 벼, 기장, 피, 조 등의 낱알이나 전분질의 견과류나 구근류를 충분히 건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담아 두면 곰팡이가 자라게 되고 여기에는 라이조프스 속(Rhizopus sp.) 같은 강력한 생전분 분해 효소를 가진 곰팡이들도 있다(Son 2022). 이들 곰팡이는 빠른 속도로 전분질을 분해하여 당으로 전환시키며, 이것은 곧 자연 중에 있는 효모에 의하여 알코올로 변한다. 토기에 넣어둔 풀씨나 뿌리들에 곰팡이가 자랐을 때 물을 좀 가하여 2-3일 놓아두면 냄새가 좋은 방향성 알코올음료가 만들어진다. 이것을 먹어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또 먹고 싶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원시토기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쉽게 관찰될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Lee 1999)<Figure 5C>.

    이때 토기에 넣어둔 풀씨나 낟알에 곰팡이가 자란 것이 오늘날 동북아 지역에서 발효 스타터로 사용하는 누룩이며, 이들을 물과 섞어 토기에 담아 발효시킨 것이 막걸리이고, 맑은 액만 분리해 내면 청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곡주(穀酒) 발효는 무증자(無蒸煮) 알코올 발효였을 것이며 토기의 사용은 이와 같은 복발효에 의한 곡류 양조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Lee & Kim 2016).

    시경(詩經, 기원전 1,100-600년)에 요주천종(堯酒千種)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禹)의 시대보다 훨씬 앞선 요 순시대에 이미 수많은 종류의 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술은 이미 기원전 3-4,000년대의 동북아 신화시대(神話時代)에 보편화된 음료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한 신화들이 무수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렇게 보면 기원전 6,000경 원시토기 문화 이른시기에 대한해협 연안에서 토기의 사용과 함께 곡물을 이용한 술이 만들어져 동북아 전역에 전파되었다는 가설은 시간적으로 타당성이 있다(Lee 2021). 일본의 역사서 고지기(古事記)에 의하면 3세기 응신천황 시절에 백제인 인번(仁番)이 양조기술을 일본에 전하였다고 하며, 일본 경도의 마쓰오다이샤(松尾大社)에는 신라인 진(秦)씨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양질의 술을 빚었다 하여 주신(酒神)으로 모시고 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 신라명주가 당나라에 수출된 기록이 있어 곡주 제조의 기원지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Lee & Kwon 2003). 한국인은 지금도 원시형태의 막걸리를 전통주로 애용하는 특이한 민족이다.

    7. 대한해협연안 원시토기문화의 인류사적 의의

    토기의 사용과 더불어 발전한 찌개문화와 발효기술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 주민들의 영양 상태와 사회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韓)민족이 동북아 국가형성기에 한반도와 남만주에 웅거한 동이족(東夷族)으로 고조선을 창건하고 한족(漢族)과 자웅을 겨루는 선진문명으로 부상한 것은 토기음식문화에 의한 식량영양공 급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 끓이는 찌개 조리법은 영양적으로 보다 균형 잡힌 음식을 제공할 수 있으며 위생적으로도 진일보한 음식문화이다. 소금물로 간을 맞춘 음식을 만들게 되면서 음식의 맛이 향상되고 종전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식물성 재료를 섭취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발효기술에 의하여 부패하기 쉬운 어패류나 채소류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고 음식맛의 증진도 기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기술발전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에 비하여 원시토기 인들의 영양 상태를 크게 향상시켰을 것으로 보이며, 수명의 연장, 출산율의 증가로 인하여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발전은 기원전 3,000년대 농업의 시작과 부족국가의 형성을 촉진하였을 것이며, 군장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동북아 거석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할 동이족(東 夷族, Eastern Archers)을 키워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Lee 2022). <Figure 6>은 전설속의 초기 부족공동체 환국(桓 國)과 배달국(倍達國)에 이어 단국왕검에 의한 초기 국가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 ,3 3 3으)로 이어지는 동이족의 발전역사에서 기원전 7,000년대에 대한해협 연안에서 발흥한 원시 토기문화인들의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Lim 1986).

    동북아시아인의 원시 토기 사용은 인류의 음식문화를 구이(roasting)문화와 끓임(boiling)문화로 양분하는 분기점이 된다. 유목민족의 후예인 서양인의 구이문화는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로 발전하였고, 토기를 사용한 동양인은 단단한 곡물이나 식물조직, 뿌리 등을 물에 불려 끓여먹는 채식문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Lee 2023;Lee 2024)<Figure 7>.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농업 이전의 해변의 채집인(littoral foragers)으로 어로 채집 기술이 발달하여 해산물과 함께 끓여 먹는 찌개문화가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의 이른 시기에 이미 정착되었다고 본다. 원시토기문화는 농업 이전에 상당한 수준의 정주생활이 동북아 지역에서 이루어 졌음을 시사한다.

    III. 맺는말

    한국의 고고학 연구는 유럽이나 미국보다 150년 늦게 시작 되었으며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반세기 가량 늦게 출발했다. 그 사이 동양사회의 선사시대는 유럽에 뒤쳐진 것으로 굳어졌고 동북아 선사시대 역사에서 한민족의 족적은 철저히 가려졌다. 특히 동양사회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던 19세 기말과 20세기 초에 일본의 침략으로 수난을 격은 한민족은 찬란했던 고대사의 대부분을 망실하고 식민사관으로 변조 왜곡되는 불운을 겪었다(Seo 1986;Kim 2011;Choi 2023). 일제 강점기의 천재 사학자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 에서 “후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살라 없애버렸다” 고 한탄하였다(Shin 2006). 다행히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한국 고고학계의 눈부신 연구 성과에 힘입어 잃어버린 한국 고대사의 일부가 복원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러시아의 파빌로프(N.I. Vavilov, 1887-1943)가 주장했던 쌀의 인도 기원설은 중국의 고고학 연구에 의해 중국에서 쌀의 재배가 시작되었음을 증명했고(Ho 1975), 최근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2,500년으로 추산되는 재배벼 소로리 볍씨가 발굴되면서 단립벼의 기원이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 졌다(Lee 2014). 신용하(Shin 2018)는 비옥한 남한강유역과 금강유역에서 가장 먼저 쌀과 기장의 재배가 시작되었음을 고증하고, 토인비(A.J. Toynbee)의 고대 6대 독립문명에 고 조선문명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외 10개국 40명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을 신석기 초기인 9,181년 전 서요하지역으로 보고, 6,811 년 전에 원시알타이어족(Proto-Altaic family)인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로 분화하였으며, 4,491년 전 몽골-퉁구스어족, 5,458년 전 일본-한국어족으로 분화하였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황하문명과 서요하(홍산)문명과는 언어·유전학적으로 연관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Robbeets et al. 2021). 따라서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요서지역 홍산문화(4,500 BC-3,000 BC 경)를 중국문명의 원형이자 기원으로 삼아 중국사를 재편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반박했다(Lee 2023;Lee 2024).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식민사관에서 배척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초기 한민족 역사를 복원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으며 한단고기가 주장하는 기원전 7,000년대의 환국(桓國) 신화마저도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인류사에서 토기의 이용이 가져온 문화사적 기여와 중요도는 크게 거론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제한적이다. 파르징거(Parzinger 2020)도 인류 최초의 토기제작이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전파 경로나 메소포타미아나 초기 인도문명의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 선점한 고고학과 사학계는 인류사에서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음식문화의 일대 변혁을 가져온 토기의 제작과 이용역사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토기의 제작과 이용으로 구이문화(roasting culture)에서 끓임문화(boiling culture)로 발전하여 식량의 가용성과 위생 및 영양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인류사적 업적이 동양사회에서 구석기말에서 신석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에 이루어 졌으며 그 중심에 대한해협 연안의 신석기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의 남다른 관심을 자극 하기에 충분하다.

    감사의 글

    본 연구는 (재)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한강문화유산연구원 신숙정 박사님을 비롯한 한국 고고학계의 토기문화 발굴노력에 감사드리며, 서울대 시회학과 신용하 교수님의 고조선문명 연구에 힘입은바 크다.

    Conflict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저자정보

    이철호(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명예교수, ORCID No.)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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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rly production and distribution route of Neolithic 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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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mitive Earthenware Excavation Sites in Northeast Asia (Le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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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ages and Characteristics of Primitive Pottery (Le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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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leolithic Sites in Northeast Asia and Migration Routes of Paleolithic People (Lee 2001)*

    *The original figure is revised to erase the paleolithic sites in Japan, reflecting the fraud incident of Shinichi Fujimura, deputy director of the Tohoku Paleolithic Research Institute in Japan, which was revealed by the Mainichi Newspaper in November 2000. Fujimura fabricated and announced the excavation of approximately 160 Paleolithic sites in Japan from 1981 to the late 1990s. It became inevitable to revise the Paleolithic history of Japan published before 2000. (https://en.wikipedia.org/wiki/Shinichi_Fuji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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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tural fermentation of traditional Korean fermented foods (Le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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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ise and development path of the Dongyi people of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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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ealogy of development of world food culture (Lee 2024)

    Table

    Chronology and Manufacturing Characteristics of Pottery Excavated at Sangnodaedo (Lee 1999, Le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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