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소장처나 저자가 확인된 조선시대 조리서는 대부분 영남권과 충청권에 집중되어 있어 전통시대 호남권의 음식문화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Han et al. 2016). 다행히 최근『Eumsikbo (飮食譜)』 진본이 나주 풍산홍씨 종가에서 발굴되고(Yoo 2022) 그에 대한 연구결과가 학계에 발표됨으 로써(Park 2023) 그동안 소장처와 필자에 대한 정보가 불분명하였던『Eumsikbo』 가 1756~1801년 사이 나주 풍산홍씨 종부들이 대를 이어 집필한 현전 최초 호남 조리서임이 확인되었으며, 정확한 원문 판독으로 내용의 해제는 물론 음식 사료로서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음식문화사적 관점에서『Eumsikbo』가 갖는 가치는 음식명칭, 재료, 조리법 일부에서 지역적 특색이 확인되었다는 점으로 이를 통해 비로소 전통시대 음식문화의 지역적 특색 비교연구의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한 조리서의 지역적 편중성 해소와 연구의 심도를 더하기 위해서는 호남지역 조리서 발굴이 추가로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전남 담양 창평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홍주송씨(洪州宋氏) 이요당공파(二樂 堂公派) 하심당(下心堂) 종가에서 파본 상태로 전해져 오던 한글 조리서를 확인하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Hasimdangga Umsikbeop (下心堂家 飮食法)』으로 명명한 이 조리서는 일부가 훼손되어 있어 온전한 서책의 형태를 갖추지 못 한데다가 수록된 음식의 항목수도 적고 집필 배경이 확실하지 않아 온전한 조리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으나 호남지역에서 발굴된 두 번째 조리서라는 희소성을 지닌데다 소장처가 확실하기에 우선 학계에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원문의 충실한 소개와 현대어 풀이에 중점을 두었으며, 그 정확도를 제고하기 위해 다른 조리서와의 비교 작업을 병행하였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조리서이므로 여러 연구자들이 활용 또는 검증할 수 있도록 내용의 충실한 소개에 목적을 두었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대상 문헌 소개
크기 가로 17.5 cm×세로 24 cm, 총 7장으로 된 이 필사 본 조리서는 표지와 앞부분, 그리고 뒷부분이 소실된 채 가운데 일부분만 남은 것이다. 앞의 6장은 앞면(a)과 뒷면(b)이 모두 기록되어 있으나 마지막 장은 훼손된 채, 앞면(a)만 남아 있어 기록된 분량만으로는 13면(面) 이다. 끈으로 묶는 사철제본(絲綴製本) 방식으로 장정(裝幀)한 흔적이 있으나 사철은 윗부분만 남아 있어 아래쪽은 모두 분리된다. 그마저 ‘칠일주’로 시작되는 첫 면은 낱장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데 표지와 앞의 몇 장이 함께 유실되고 이 부분부터 남은 것으로 보인다<Figure 1>.
본 조리서의 소장자인 송영종(족보명 宋熙天, 1948~ )은 담양 홍주송씨(洪州宋氏) 이요당공파(二樂堂公派) 시조 송준 (宋駿, 1477~?)의 22세손이자 이요당의 10세손으로 현 하심당(下心堂) 종가의 파조인 송광길(宋光吉, 1546~1619)의 12세손이다. 몇 년 전 종택을 개보수하던 중 소장하고 있던 여러 문서 사이에 끼워져 있는 본서를 발견하여 소장해 왔다고 한다.
사용된 종이의 재질이나 가공 방식 그리고 한글 표기의 양상으로 미루어 집필 시기는 1800년대 후반 이후로 추정된다 (Paek 1997;Paek & Song 2012). 족보를 통해 이 무렵 조리서를 필사했을 만한 집안의 여성을 추적해 보면 현 종손의 6대조 송문욱(宋文昱, 1802~1844)의 부인 경주김씨(1789 ~1861), 고종(高宗) 때 당상관인 중추원의관을 지냈던 5대조 송성묵(宋性黙, 1822~1908)의 부인 숙부인 동복오씨(1823~ 1893), 현 종택인 하심당을 세운 4대조 송재호(宋在鎬, 1847 ~1871)의 부인 장흥고씨(1847~1900), 3대조 송택진(宋宅鎭, 1881~1941)의 부인 행주기씨(1881~1924)로 좁혀진다(Hongju Song Clan Association 1999).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단서를 확보할 수 없어 필자를 특정하기 어려운데다가 표지 소실로 표제도 알 수 없어 소장자인 종손과 가문 구성원들의 동의 하에 종가의 당호를 따서 『Hasimdangga Umsikbeop (下心 堂家 飮食法)』이라 명명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정보는 표기에 나타나는 국어학적 특징, 서지 정보, 문중의 이력에 대한 추가 연구를 통해 향후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본고는 이 음식법의 내용을 다루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추후 활용 또는 검증할 수 있도록 원문 전체를 수록 순서대로 판독하여 그대로 옮기고 현대어로 풀이 작업을 하되 가급적 의역을 배제하였다. 또한 판독과 해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하여 다음의 방법으로 연구를 수행하였다.
첫째, 판독이 모호한 글자에 대하여 동일 글자의 필체 대조를 통해 보완하였다. 그럼에도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 를 달아 표시하였다.
둘째,『Hasimdangga Umsikbeop』의 음식과 동일한 항목이 수록된 조선시대 음식서들과 내용을 비교‧대조함으로써 제조법이나 서술상의 유사‧상이성을 분석하였다.『Hasimdangga Umsikbeop』는 19세기 이후의 음식서이나 이전 시대로부터 전승 및 변화 양상을 포괄한 분석이 필요하므로 15세기 『Sankayolok (山家要綠)』부터 『Suunjapbang (需雲雜方)』 (16C),『Juchanbang (酒饌方)』(16C),『Juchochimjeobang (酒 醋沈菹方)』(17C),『Guhwangchwaryo (救荒撮要)』(1660), 『Eumsikdimibang (飮食知味方)』(17C),『Mincheonjipseol (民天集說)』(1752),『Eumsikbo (飮食譜)』(18C),『Sallimgyeongje (山林經濟)』(18C),『Haedongnongseo (海東農書)』(18C), 『Onjubeop (蘊酒法)』(18C),『Jeungbosallimgyeongje (增補 山林經濟)』(1766),『Gyuhapchongseo (閨閤叢書)』(19C), 『Imwongyeongjeji (林園經濟志)』(19C),『(Kimseungjidaek) Jubangmun (金承旨宅酒方文)』(1860),『(Seungburian) Jubangmun (陞付吏案 酒方文)』(1813),『Eumsikbangmun (飮食方文)』 (1880),『Eumsikbeop (饌法)』(19C),『Juchan (酒饌)』(1855), 『Nongjeonghoeyo (農政會要)』(19C),『Siuijeonseo (是議全書)』 (19C),『Sulbinneunbeop (술빚는법)』(19C),『Ueumjebang (禹飮諸方)』(19C), 그리고 20세기『Jusiksiui (酒食是義)』까지 유사방문을 찾아 모두 대조해 보았다.
이를 통해 글자 표기가 이상하거나 훼손된 부분, 설명을 건너뛰거나 누락하여 원문 그대로는 내용 파악이 어려운 부분을 보완하여 현대어 풀이에 반영하였다.【 】표시한 곳이 여러 조리서를 참조하여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문맥에 맞게 글자를 추가하거나 보완하여 재구성한 부분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 방법에 의해 파악된 조리서 내용을 토대로 『Hasimdangga Umsikbeop』에 나타나는 특징을 도출 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1. 구성 체계
앞부분의 유실된 면을 제외하고 총 14개 항목만 남겨져 있다. 이 중 술이 7개 항목(칠일주, 삼일주, 효주삼해주, 이적선 효주, 석탄주, 소곡주, 두견주), 음식이 7개 항목이다. 음식을 다시 분류하면, 과정류 2개(약과 동아정과), 김치류 2개(배추 김치, 동치미), 찜 1개(준어찜), 만두류 2개(천엽만두, 어만두)로 책에 기록된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 <Table 1>이다. 맨 마지막 면(7b)도 찢어져 있어 이면에 기재된 <두견주> 방문은 온전하지 못하다.
2. 항목별 내용 소개
1) 칠일주
<원문> 미 한말
말
여
탕수 아홉되랄 식여 누룩 두되 섯거 오일 후 찹살 셔되 무류이
식여 누록 닷홉 섯거 칠일 후
면 청주 세병 탁주 한동
되난이라
<현대어> 쌀 1말을 가루 내어 찐다. 끓인 물 9되를 식혀 누룩 2되에 섞으라. 5일 후 찹쌀 3되를 무르게 쪄서 식힌 후 누룩 5홉과 섞어라. 7일 후에 뜨면 청주 3병 탁주 1동이가 되느니라.
칠일주는『Sankayolok (山家要綠)』(Jeon 15C),『Eumsikdimibang (飮食知味方)』(Jang 17C)『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 林經濟)』(Yu 1766),『Eumsikbo (飮食譜)』(Jinwon Oh 18C) 등 여러 문헌에 방문이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인 속성주의 하나이다. 밑술을 만든 뒤 덧술을 섞어 발효시키면 7일 만에 완성되므로 칠일주라 한다. 책마다 재료 분량이나 방문도 상이하고 하나의 책에 여러 방법이 동시에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경험지식이 다양하게 축적되어 있어 다른 책과의 유사도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마지막에 채주(採酒) 양이 ‘청주 3병, 탁주 1동이’라고 한 부분은 앞서 언급한 문헌의 칠일주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다만 <칠일주>의 하나인 『Imwongyeongjeji (林園經濟志)』<급수청방> (Seo 19C) 마지막에 ‘ 7일 후 술이 익으면 청주 7-8병, 탁주 1동이를 얻을 수 있다’고 한 전례가 있으나 원재료 투입량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 삼일주
<원문> 찹살 한말 셰
야 물 말 서되예 누록 두되 섯거 이 틋날 다시 헤워 밥
고 물
려 밧타
흘후 스라
<현대어> 찹쌀 1말을 깨끗이 씻어 【두라】 물 1말 3되에 누룩 2되를 섞어【둔다】 이튿날【전날 씻어둔 쌀을】 헹궈 밥을 찌고 물 끓여【식힌 다음 물에 담가둔 가루 누룩을 이 물에 치대어】 걸러 【밥과 섞어 두었다가(술을 빚어)】 3일 후에 쓰라
*【 】는 연구결과 토대로 글자 추가 및 재구성
삼일주는 『Eumsikbangmun (飮食方文)』을 비롯 『Yorok (要綠)』, 『Jubangmun (酒方文)』, 『Sallimgyeongje (山林經 濟)』, 『Yeokjubangmun (歷酒方文)』, 『Gosasibijip (攷事十 二集)』, 『Imwongyeongjeji (林園經濟志)』, 『Yangjubang (釀 酒方)』,『Sulmandeuneunbeop (술만드는법)』,『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Siuijeonseo (是議全書)』,『Sulbinneunbeop (술빚는법)』 등 수많은 문헌에 등장하는데 술을 빚어 넣으면 3일 만에 익는 속성주류의 하나로 단양주가 대부분 이다(Park 2005b).『Hasimdangga Umsikbeop』 <삼일주>는 기술 내용만으로는 제조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재료의 분량과 제조과정이 가장 유사해 보이는『Eumsikbangmun (飮 食方文)』(Anonymous 1880)의 <삼일주>에 “끓인 물을 식혀 한 말에 누룩가루를 두 되 담가 하룻밤이 지나면 백미 한 말을 깨끗이 씻어 시루에 쪄서 식히고 누룩을 담은 것을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그 물에 섞어 두었다가 삼일만에 써라” 라고 되어있으므로, 이를 참고해 생략된 부분을 찾아내고 모호한 방문의 문장을 재구성하여 현대어로 풀이하였다.
3) 효주삼
주라
<원문> 정월 망전의 찹살 닷되나 서되하진 누록 간간이 여쌀과 갓치 너력지나 항이나 너허
두엇다가 삼월의 비저 되 한말의 누록 서되식
고 밋술 한복자시 너허 오일만의 고난 이라
<현대어> 정월(1월) 보름 전 찹쌀 5되나 3되로 하되 누룩을 간간이 찧어서 쌀과 같이 너럭지(소래기)나 항아리에 넣어 찬데 두었다가 3월에 빚어서 1되 1말에 누룩 3되씩 하고 밑술 한 복자 넣어 5일 만에 고으나니라
효주는 소주를 말하는 것으로 이 방문은 삼양주인 삼해주를 고아서 증류주인 소주를 만드는 법이다. 현전 조리서에서 삼해주법은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증류한 소주삼해주법은 사례가 매우 드물다.『Jeungbosallimgyeongje (증보산림경제)』 <삼해주> (Yu 1766) 방문은 끝에 ‘이 술을 고아 소주(露酒)로 만들면 맛이 좋고 독하다’고 덧붙여 둔 경우이고, 대전 동춘당가의 주서(酒書)인『Ueumjebang (禹飮 諸方)』(Anonymous 19C)에는 <소주삼해주>라는 독립된 항목명으로 존재한다.
『Ueumjebang (禹飮諸方)』의 <소주삼해주> (Anonymous 19C)를 보면 “1월에 찹쌀 3되를 밥 질게 지어 섬누룩 3되에 버무려 넣어 한 데 두었다가 2월 첫 돼지날에 쌀을 되는대로 얼마든지 고두밥으로 쪄서 1말에 섬누룩 5되식 술 빚듯이 물을 훈운이 해서 찬데 둔다. 3월에 쌀 되는대로 그 밑술과 함께 버무려 두었다가 5월에 소주를 곤다. 2월 덧술 할 때 떡 2말 했으면 3월에 4말을 한다. 배로 하지 않아도 맛은 한 가지다”라고 하여 정확히 1월부터 3월까지 세 번의 해(亥, 돼지날)일에 밑술과 덧술을 총 3회 만든 후, 5월에 소주를 증류하는 과정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에 비해,『Hasimdangga Umsikbeop』의 <소주삼해주> 방문은 내용이 소략하다. 2월에 덧술하는 법이 빠져있고, 삼해주를 완성한 후 소주로 만들기까지의 기간이 5일에 불과하다. 원래 삼해주는 마지막 덧술을 3월에 빚어 넣은 뒤부터 2~3개월 후인 버드나무 필 즈음에야 걸러 마시는 장기발효주이다. ‘버들개지가 날릴 때쯤 마신다고 하여 유서춘(柳絮 春)’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Imwongyeongje resch. 2020). 이에 비추어 『Hasimdangga Umsikbeop』은 완성된 삼해주를 소주로 고았던 기본법에서 벗어나 있다. 원래의 방문을 따랐다면 ‘ 5일 만에’가 아닌 ‘ 5월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온전한 삼해주를 빚지 않고 만들었을 수도 있다. 소주 증류를 5일 만에 하는 사례는『Jeungbosallimgyeongje (增補 山林經濟)』(Yu 1766)의 <소주다취로법>,『Imwongyeongjeji (林園經濟志)』(Seo 19C)의 <소맥로주방(小麥露酒方)>과 <절 주방(切酒方)> 등에도 있기에 이 방문대로 소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엄밀히 <소주삼해주> 본디 제조법에는 부합하지 않으므로 제조법이 잘못 전승‧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서 조리도구로 사용한 ‘너력지’는 소래기의 전라도 방언(NIKL 2024)으로 지역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4) 이젹선효주법이라
<원문> 믹 한되 닷홉을
세
야 하로밤 지
훈 작말
야
린물의 죽쓔어
거든 조흔 가리누록 서되랄 한
섯거 독의 비져 여람은 사흘이오 겨울은 닷
만의 찹쌀 한말
세
야 밤자여
서 본술의 셧거 그 독의 비저 익거든 고흐먼 한 말의 너되식 나니 합
야 말 엿되나고 마시 죠흐니라
<현대어> 백미 1되 5홉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지낸 후 가루 내어 끓인 물에 죽을 쑤어 식거든 좋은 가루누룩 3되를 한데 섞어 독에 빚어 여름엔 3일, 겨울엔 5일 만에 찹쌀 1말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재운 뒤 쪄서 본술에 섞어 그 독에 빚어서 익거든【소줏고리에】 고으면 1말에【소주가】 4되씩 되나니 【모두 모아】 합하면 1말 6되가 만들어지고 맛이 좋으니라
*【 】는 연구결과 토대로 문맥에 맞게 글자 추가
‘적선(謫仙)’은 중국 시인 이태백을 일컫는 말로 적선소주 (謫仙燒酒)는 ‘이태백이 좋아한 소주, 이태백을 위해 빚은 소주’로 해석하고 있다(Park 2006).『Hasimdangga Umsikbeop』에서는 일반적인 명칭인 적선소주 앞에 이태백을 지칭하는 ‘이 (李)’를 덧붙여 <이적선소주법>이라고 한 것으로 추측된다. 적선소주법은 한글 조리서인『Onjubeop (蘊酒法)』 (Anonymous 18C)과『(Kimseungjidaek)Jubangmun (金承旨宅 酒方文)』 (Anonymous 1860)을 비롯하여 한자책인『Guhwangchwaryo (救荒撮要)』(Sin 1660),『Juchan (酒饌』(Anonymous 1855), 『Sallimgyeongje (山林經濟)』 (Hong 18C),『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Yu 1766),『Haedongnongseo (海東農書)』 (Seo 18C) 등 여러 책에 다수 소개되어 있다.
이들을 대조해 본 결과, 한자책의 경우는 원전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인용 출처를 명기하고 있는 『Sallimgyeongje (山林經濟)』를 살펴본 바,『Gosachwaryo (攷事撮要)』와『Guhwangchwaryo (救荒撮要)』를 원전이라 표기해 두었는데 실제로『Gosachwaryo (攷事撮要)』(Eo 1674) 및『Guhwangchwaryo (救荒撮要)』(Sin 1660) 중 『Guhwangboyubang (救荒補遺方)』편에서 <적선소주> 방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Guhwangchwaryo (救荒撮要)』에는 한문을 한글로 풀이한 한글방문도 병기되어 있어 한글 필사본과 대조가 가능한데 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한글로 기록된『Guhwangchwaryo (救荒撮要)』「Guhwangboyubang (救荒補遺方)」(Sin 1660)의 <謫仙燒酒方>에는 “흰 된 닥곰을
번 씨서 밤디난 후의
밍 그라
힌믈 너말의 쥭을 쑤어
거든 됴흔
누록 서되
석거 독의 비저 녀름은 사흘이오 겨을흔 닷샌만의
말을
번 씨서 밤재여
셔 본술의 섞거 그 독의 비저 닉거든 네 희
환 고오되
이예 너되식 나니
야 말 엿되나니 마시 됴흐니라”,『Onjubeop (蘊酒法)』(Anonymous 18C) <젹션쇼듀>에는 “
미 서되 가옷
셰
야 담가 일야 후 작 말
야 탕슈 너말의 쥭 쑤어 국말 서되 섯거 하지와 더위
삼일 겨을은 오일의 뎜미 일두
셰
야 일야
담가
와 밋술의 섯거 닉거든 네 번의
화 고으면
번의 네
식 합
야 열녓
야
고 마시 됴흐니라”,『(Kimseungjidaek) Jubangmun (金承旨宅酒方文)』(Anonymous 1860) <젹셩쇼 쥬법>에는 “
미 일승 오홉
세
여
루
허 물 너말의 쥭 쑤어 사
허거든
로누룩 서되를 그 쥭의 합
여 너허 여름이면 사(나?)흘 겨울이면 오일 후의 졈미 일 두
셰
여 물이 붓거든 닉게
본밋
너허닛거 거
래 네 희
환 쇼쥬 고으면 넉 되식 나니 합
면 열여섯 복
요 마시 죠흐니라”라고 되어 있다.
한글 자구(字句)만을 보았을 때 한문 서적과 달리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기별 한글표기가 다르고 필사자의 언어습관에 의한 변형이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동일하므로 한자‧한글책을 막론하고 동일한 저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임은 분명하다<Table 2>. 한글필사본인『Hasimdangga Umsikbeop』은 모든 적선소주법의 원전격인『Guhwangchwaryo (救荒撮要)』(Sin 1660) 한글방문과 가장 흡사하다. 가문이나 본인의 경험이 반영되었다면 원재료, 분량, 제조방법에 변형 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적선소주’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Onjubeop (蘊酒法)』(Anonymous 18C) 의 경우에만 백미의 분량만 3되로 다른 조리서 대비 2배 분량에 해당되는데 나머지 재료량이 모두 동일하므로 오기(誤 記)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5) 석타양주법이라
<원문> 미 여답되
세 작말
애 물말엿되
려 가리 주려 익거든 퍼 두엇다가 차거든 가리누록 너되 고로 셧거 두엇다가 나흘만의 찹살 너말 담갓다가 붓거든 물루게
식거든 그 밋술의 섯거 두어다가 칠일만의 탕수 너말 부엇다가 칠일만의
면 청주 독
고 달고 향
나난이라
<현대어> 백미 8되 깨끗이 씻어 가루 내어 물 1말 6되 끓여 가루를 주물러 익거든 퍼 두었다가 식거든 가루누룩 4되 고루 섞어 둔다. 4일 만에 찹쌀 4말 담갔다가 불면 무르게 쪄서 식힌 후에 그 밑술에 섞어 두었다가 7일 만에 탕수 4말 부었다가 7일 만에 뜨면 청주가 독하고 달고 향내가 나느니라
‘석타’는 ‘석탄’의 오기이다. ‘삼키기(呑) 애석(惜)할 만큼 향(香)이 좋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인데『Mincheonjipseol (民天集說)』(Anonymous 1752)과『Imwongyeongjeji』(Seo 19C)는 석탄향(惜吞香),『(Seungburian) Jubangmun』 (Anonymous 1813)은 <셕향쥬>,『Juchanbang (酒饌方)』(Anonymous 17C)은 <셜
향쥬>,『Siuijeonseo (是議全書)』(Anonymous 19C)는 <성탄향(聖嘆香)>하고 있으며,『Juchan (酒饌)』 (Anonymous 1855)에는 동일한 방문을 <석탄향(石炭香)>과 <백탄향(白灘香)>이란 이름으로 두 번이나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삼키기 애석하다’는 본뜻을 상실한 명칭들이 생겨났지만 재료의 분량 및 만드는 법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Hasimdangga Umsikbeop』은 다른 음식서와 차이가 있다. 밑술에서 쌀과 누룩의 분량을 다른 조리서의 4배에 달할 정도로 많이 잡고 있다. 그에 비해 유독 물의 양은 1.6배에 불과하다. 대신 밑술을 한 후 4일 만에 덧술을 하고, 그로부터 3일이 지난 7일 만에 추가로 물을 4말(=40되)이나 더하는 후수(後水) 방식으로 만든다는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물의 총량이 56되로(쌀8:물56=1:7)로 통상적인 석탄주가 1:5 (쌀2:물10)의 비율인 것과 비교해 물이 조금 많은 셈이다.
이와 같이 후수(後水) 방식으로 제조한 석탄주의 사례는 『Eumsikbangmun (飮食方文)』(Anonymous 1880) <셕탄향>에서 유일하게 확인되는데, “백미 2되를 곱게 가루를 내고 범벅을 만들어 반은 설고 반은 익게 한 다음 차게 식으면 누룩가루 1되를 섞는다. 겨울에는 7일, 봄과 가을에는 5일, 여름에는 3일 만에 찹쌀 1말을 백 번 씻어 물에 담갔다가 익게 쪄 차게 식히고 끓인 물 1말과 술밑을 함께 섞어 두었다가 7일 후에 쓴 다”고 되어 있으나 쌀:물의 비율이 다른 책과 동일하게 1:5이기 때문에『Hasimdangga Umsikbeop』과 차이가 있다.
또한 대부분 덧술과 섞는 시기가 계절에 따라 3일부터 7일까지 다른 것과 달리『Hasimdangga Umsikbeop』은 계절에 무관하게 4일로 되어있다. 다만 최종 덧술 이후 7일 뒤에 채주하는 방식은 다른 주방문들과 동일하다. 실제 종가 구성원들 중에는 과거 하심당가의 종부가 담갔던 석탄주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고 하니(2023.8.19. 종손 인터뷰) 이 방문이 문자 기록상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대로 제조된 석탄주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제조한 것과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지 대하여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Table 3>.
6) 소곡주법이라
<원문> 미 한말
세 작말
애 범벅처로 쑤어
거든 가리 누록 너되 고로섯거 두엇다가 칠일만의
미 너말 담갓다가 붓 거 물루이
식거든 죠죵하여 물
려 차거든 그 밋슬
고 탕수
고 고로 섯거 그 탕수난
기 죠흘만치 붓고 잘 호여 독의 담아두엇다가 칠일만의 탕수 너말 부어 칠일만
나 난이라 삼 칠일만니먼 먹난이라 청주비시 괴 눈갓고 독
고 달고 죠흔니라 <현대어> 백미 1말 깨끗이 씻어 가루내어 범벅처럼 쑤어 가루 누룩 4되 섞어 두라. 7일 만에 백미 4말을 물에 담갔다가 무르게 쪄 식거든 조종하여 물 끓여 식거든 그 밑술과 탕수를 고루 섞어 탕수는 하기 좋을 만치 붓고 독에 붓고 잘 덮어 두었다가 7일 만에 탕수 4말 부어 7일만에 나느니라. 21일 만이면 먹느니라. 청주가 괴면 빛이 눈 같고 독하고 달고 좋으니라.
『Nonggawollyeongga (農家月令歌)』(Jung 19C)의 1월령 에 ‘며느리는 잊지 말고 소국주 밑술 하여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조선 후기 널리 빚어 마시던 술이었던만큼 여러 주서(酒書)에 빚는 법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통상 정월이나 그믐에서 2월 사이에 만드는 경우가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데 계절에 무관한 사절소곡주도 있으며 대개 이양주로 빚지만 더러 삼양주로 빚는 경우도 있다(Park 2005a). 같은 호남 음식서인『Eumsikbo (飮食譜)』(Jinwon Oh 18C)가 이양주로 빚어 총 15일째 채주하는 것과 달리『Hasimdangga Umsikbeop』은 밑술에 덧술을 1번 빚어 넣고, 다시 탕수를 1번 추가한 후 21일째 채주하는 방식이다. 5)의 석타양주법과 마찬가지로 7일 만에 후수를 하는 것이 특이하다.
전북 고창의 우리술학교 이상훈에 따르면(2024.2.28. 인터뷰) 완성된 술을 한번 떠낸 후 물을 추가하는 것을 후주법 (後酒法), 초기 변패 위험을 낮추기 위해 우선 고체 발효를 시킨 뒤 나중에 물을 부어 술을 완성시키는 것을 후수법(後 水法)이라 하는데 후수법은 주로 기후가 더운 지역에서 나타나는 제조방식이라고 한다. 해남의 진양주(전남 무형문화재)가 대표적이며 물을 추가하는 시기는 보통 7일 전후라고 한다.
7) 약과법이라
<원문> 진말 한말의 셜되 드나이라
을
열
와 한되 집 쳥두고 두되와 참기름 칠홉과 조흔 ⓐ쳥슈 칠홉한
항(합?)익 여
글면 빗시 곱고 죠흐니라 ⓑ졈나지 안켸
고 살지져야 (?) 조흐니라
<현대어> 밀가루 1말에 꿀 3되가 드느니라. 꿀을 끓여 차게하여 1되는 즙청용으로 두고, 꿀 2되와 참기름 7홉, 좋은 ⓐ청수 7홉을 한데 섞어 (밀가루와) 이겨서 만들면 빛이 곱고 좋으니라. 【반죽이】 ⓑ끈끈해지지 않게 하고 살살 지져야 좋으니라.
*【 】는 문맥에 맞게 글자 추가
약과는 밀가루 반죽에 청주나 소주 등의 술을 소량 넣는 경우와 물만으로 반죽하는 방법이 있는데(Cho & Lee 1987) ⓐ 쳥슈는 다른 면의 글자와 비교하면 ‘쥬(酒)’가 아닌 ‘슈(水)’ 로 읽힌다. 통상 술은 소량을 첨가하고 반죽의 된 정도를 꿀 이나 참기름, 물을 가감하여 조정하는 방식인데 7홉이나 들어간 것으로 보아 물(淸水)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조리서에서 약과 제조 시 중시했던 점은 약과가 딱딱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Cho & Lee 1992). 그래서 반죽의 된 정도와 치대는 횟수, 불에 지지는 기술을 중요시했다. ‘졈’은 밀가루의 글루텐에 의해 점성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는데(Park 2006;Paek & Hong 2019) 이를 그대로 따르면 ⓑ ‘졈나지 안켸’ 는 ‘밀가루 반죽을 너무 치대서 글루텐이 많이 생성되어 끈끈해지면 결국 약과가 단단해지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을 듯하다.
8) 동화정과라
<원문> 늘근 동와을 겁질 볏기고 속 글거 발리고 석회의 무더 가 삼일만의
여 짐작하여 싸흘라 ⓒ물
지말고
컬든
큼 들쳐 여려번 들쳐
여 그졔야
여 동화을 너허 다리면 빗시 고으니라
<현대어> 늙은 동아의 껍질 벗기고 속을 긁어 버리고 석회에 묻었다가 3일 만에 꺼내어 짐작하여 썰으라. 물 꼐지(?) 말고 【꿀이】 끓거든 냉큼 들쳐 여러 번 들쳐 내어 그제야 {?}여 동아 넣어 달이면 색이 고우니라
*(?) 부분 해석 불가, 【】는 문맥에 맞게 글자 추가
동과(冬瓜, 동아 또는 동화)는 저장성이 낮아 소금절임이나 당절임으로 만들어 널리 사용해왔기 때문에(Cho & Lee 1992) 여러 책에 엇비슷한 방법으로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Hasimdangga Umsikbeop』의 경우 설명이 소략한 데다가 ⓒ‘물을 지말고 ~ 그졔야
어’까지가 무슨 의미인지 난해하다. 정과를 만들려면 꿀에 재우거나 끓는 꿀에 졸여야 하는데 꿀이라는 말이 없어 문맥을 통해 판단하기도 어렵다. 동아정과는 만드는 법이 조리서마다 각양각색이라 참조하기도 쉽지 않은데 마침 호남 조리서인 『Eumsikbo (飮食譜)』 (Jinwon Oh 18C)의 <동아정과법>에 꿀과 물을 합하여 동아를 졸이는 법이 있다. 방문을 보면 “가장 선(鮮) 동아 푸른 겁질 없이 속 연한데 없이 하여 사회(沙灰)에 뭍어 3일 만에 노랗게 되면 재 빼고 꿀 잠깐 뿌려 두었다가 겨울에나 정과 쓸 때에 좋게 씻어 껍질 가시 벗겨 양(?)과 같이 썰어 찬물에 담갔다가 자주 물을 갈아 이틀이나 우려 다시금 손보아 씻어 동아를 썰으니 1사발이면 청밀 1되 물 3되 넣어 숯불에 달이면 빛도 좋고 삭삭하거든 쓰라”고 되어 있어 『Hasimdangga Umsikbeop』의 ‘
다’를 ‘끼얹다’로 해석해 보았다. 확언하기 어려우나 ‘물을 먼저 끼얹지 말고 꿀이 끓거든 여러 번 뒤적였다가 이때 물을 끼얹고 동아를 달이면 색이 곱다’로 풀이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9)
차 짐채법이라
<원문> 조흔 차랄 시쳐 물
지거든 소금물
계
여
려 식거든 담가
여독의 넉코 ⓓ
을 잘 지들너 그늘에 노와다가
차 몸의 간들만
거든
숭 가득 부어 익은 후
여 쓰면 시지 아니
니라
<현대어> 좋은 배추를 씻어 물이 빠지거든 소금물 짜게 해서 끓여 식거든 (이 소금물에 배추를) 담갔다가 내어 독에 넣고 ⓓ 탕개를 잘 질러 그늘에 놓았다가 배추 몸에 간이 들면 냉수 가득 붓는다. 익은 후 내어 쓰면 시지 아니하니라
배추를 짠 소금물에 담가두었다가 간이 어느 정도 배면 냉수를 부어 염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만든 물김치이다. 재료의 분량, 소요 시간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너무 일상적이고 익히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상세한 제조과정은 생략하고 맛과 저장성 향상에 도움되는 사항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Sankayolok (山家要綠)』(Jeon 15C) <침백채(沈白菜)>의 “깨끗이 씻은 배추 한 동이에 소금 삼 홉을 뿌려 하루를 재운다. 다시 씻어 먼저처럼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는다. 다른 채소절임과 똑같이 한다”에서 ‘다른 채소절임과 똑같이 한다’,『Juchochimjeobang (酒醋沈菹方)』<몬지김치(毛 隱止沉菜)> (Anonymous 17C)의 “9월 서리 내리기 전 줄기가 좋은 무뿌리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소금에 절였다가 건져 씻고 항아리에 담는다. 항아리에 물 1동이 소금 2홉 섞어 넣고 익기를 기다린다. 배추김치(背菜沉菜) 역시 이와 같다” 는 방문에서 ‘배추김치 역시 이와 같다’,『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Yu 1766) <침저법(沉菹法)>의 “서리가 한번 내린 후 배추를 일반법(如法)과 같이 거두어 싱건지를 담는다. 항아리에 넣고 뚜껑 덮어 땅에 묻어 기가 새지 않도록 하고 이듬해 봄에 꺼내보면 색이 신선하고 맛도 시원하다”라는 방문에서 ‘일반법과 같이’ 등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배추를 양념 없이 소금물에만 절여 김치로 만드는 방문은 조선 초기 조리서에서부터 출현한다. 대개 염수의 농도에 변화를 주지 않거나 추후 소금을 추가해 염도를 높여가는 방식인데 비해(Park 2023),『Hasimdangga Umsikbeop』은 고농도의 소금물에 먼저 담가 간을 세게 들이고 나중에 냉수를 부어 염도를 낮추는 형태라는 점이 특이하다. 19세기 이후 조리서의 배추김치는 ‘고추-향신채소-해산물’이 들어가는 석박지형 또는 장김치형이 높은 비중이었던 현상과(Park 2019) 대조적으로 여전히 소금물에 담가 익힌 형태만 수록해 둔 점도 의아하다.
또한, 김치를 항에 담은 후 공기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문헌들에서 위에 박초, 우거지 등을 덮거나 돌로 누르고 입구를 막는 등의 방식을 택하였던 것과 달리, 『Hasimdangga Umsikbeop』에는 ⓓ ‘탕개를 잘 질르라’고 되어있어 독특하다.
예를들어 『Suunjapbang (需雲雜方)』(Kim 16C) <파김치 (蔥沈菜)>법에는 “박초(朴草)로 독의 입구를 막고 돌로 눌러 두고 익으면 쓴다.고 되어 있으며, <오이김치(老苽菹)>은 “할 미꽃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고 묵직한 돌로 눌러둔다.”고 되어있다.
『Gyuhap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 19C)의 <동지>의 경우는 “단단히 봉하여 그릇을 덮어 굳게 묻었다 가~”, <어육김치>는 “위를 두껍게 덮고”라고 되어 있다. 또, 『Juchan (酒饌)』(Anonymous 1885)의 <조서박저(早胥薄菹)> 는 “유지로 항아리의 아가리를 봉해 김이 새지 않도록 하며 ~”라고 하였다.『Jusiksiui (酒食是義)』(Anonymous 20C)의 <동가 침>“수수잎이나 견고한 잎을 두꺼이 덮고 돌로 누른 후”, <셕박지>에는 “우거지를 많이 덮는다”고 되어 있다.
탕개는 물건에 동여맨 줄을 조일 때 쓰는 도구인데 탕개 줄과 이를 지탱하도록 고정시키는 나무인 탕개목이 있다 <Figure 3>. 여기서는 탕개목으로 배추김치 위를 누르라는 의미로 짐작된다. 지게나 톱의 줄을 죄기 위해 탕개목이 들어가는데 톱에 비해 지게용 탕개목의 길이가 길어 항아리 입구에 얼추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10) 동침지ⓔ
<원문> 잘고 연문을 시셔 독의 넉코 연한 외와 가지
고 한 가지로 담가 약간 울여 바리고 ⓕ 전쵸
강마늘
다려 넉코
숭 부은 후 머리 지두고(?) 그 우흐로 소금 가리 조히
여 짐
되소보나(?) 가지 한되나 되닷홉이나 너허 그늘의 찬
두어 익은 후먼 맛시 연
고 조흐니라
<현대어> 잘고 연한 무를 씻어 독에 넣고 연한 오이와 가지하고 같이 담가 약간 우려내고 ⓕ 천초, 생강, 마늘 다져 넣고 냉수 부은 후 머리 【윗부분】을 {지질러두고} 그 위로 소금 조금 뿌려 김치 만들되【오이】나 가지 1되나 1되 5홉이나 넣어 그늘 찬데 두어 익으면 맛이 연하고 좋으니라.
*(?) 판독 모호,【 】는 문맥에 맞게 변경 및 추가
ⓔ 의 ‘동침지’는 ‘동침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글씨체를 비교하였을 때 ‘지’가 분명하다<Figure 4>. ⓕ ‘전쵸’ 즉, 전초는 천초(=산초)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 전기의 동치미는 소금물만을 넣어 만들었던 것과 달리(Park 2022) 조선 후기부터는 향신채소가 다양하게 쓰이며 제철에 미리 수확 해 소금에 절여두었던 채소절임을 함께 넣어 익히는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Table 4>. 향신채소로는 마늘 생강, 파, 천초와 함께 고추까지도 사용되었다. 1700년대 중~1800년대 초 조리서인『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Yu 1766), 『Juchan (酒饌)』(Anonymous 1885)에 천초만 넣은 사례가 등장하는데 『Hasimdangga Umsikbeop』은 훨씬 후대의 기록임에도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11) 쥰어
<원문> 한 쥰치랄 두미 죄절
여 진갈이 만이 뭇처노고 달루고(?) 기름 두홉자 처 익게
되 살히 연
고 겁질도 연
니 상
기 쉬우니 넙은 술노 가만이 뒤집어 노
익거던
여 식근 후 도막 벼힌
랄 손으로 만지면
잇난
로
집게로
먼 잔가시 거의 업나니 ⓖ
마
(?) 가시
지 말고 단단
게 너코
말 (?)을 잘게 절어(?) 솟
바지잔케
고 진유 두어 죵자
고 미나리 세자여 국
길만치
여 여러 슌 컬img든 진말
고 익은 후
여
강 호쵸가리 비여 쓰라
<현대어> 생 준치를 2마리 모두 잘라 밀가루 많이 묻혀놓고 【솥을】 달구어(?) 기름 2홉자 쳐 익게 쪄서 내되 살이 연하고 껍질도 연하여 상하기 쉬우니 넓은 숟가락으로 가만히 뒤 집어 놓아 익거든 내어 식은 후 도막 자른 데를 손으로 만져 보아 뼈 있는 데를 족집게로 뽑으면 잔가시 거의 없어지나니 ⓖ배마디의 가시는 뽑지 말고 단단하게 넣고 대막대기(?) 잘 걸어(?) 솥에 빠지지 않게 하고【삶은 준치 살을 걸러낸 뒤 뭉쳐서 빚는다】 참기름 두어 종지 넣고 미나리 3자 넣어 국 잠길만큼 하여 여러 번 끓거든 【빚은 준치】와 밀가루 넣어 익은 후에 내어 생강, 후춧가루 뿌려 쓰라.
*(?) 판독 모호, { } 판독 불가 및 결락 부분, 【】문맥에 맞게 추가
준치찜이라고 되어있으나 내용을 보면 한번 쪄낸 후 국물을 건더기가 잠길정도만 넣어 끓이고 있어 최종 형태는 국물 양이 자작한 형태의 찜으로 보인다. 한글 조리서 중에서는『Eumsikbangmun (飮食方文)』(Anonymous 1880), 『Gyuhap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 19C)에서만 보이며, 한자책 중에는『Sallimgyeongje (山林經濟)』 (Hong 18C)에서 확인된다.『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 林經濟)』(Yu 1766) 및『Nongjeonghoeyo (農政會要)』(Choi 19C)는 이를 인용한 것이므로 논외로 한다. 하심당가 인근 창평지역에 소재한 장흥고씨 학봉 종가의 대표 내림음식이 준치탕인 것으로 미루어(NAS 2016) 출현 빈도가 그리 높지 않은 준치찜이 이 집안의 조리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은 상당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Hasimdangga Umsikbeop』의 준치찜은 제조상 중요한 과정이 상당히 누락되어 있다. 특히 ⓖ ‘마
(?) 가시는 ~
말 (?)을 잘게 절어(?)’라는 부분이 매우 난해하다. ‘
말 ’을 ‘대
(竹馬)’(NIKL 2024)로 볼 경우 어떤 목적에서 솥에 대나무 막대기를 걸었는지 설명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알 수 없다. 이 부분을 “준치를 깨끗하게 씻어 크게 토막을 내서 솥에 넣고 물을 많이 부어 푹 삶는다. 꺼내어 대나무 체(竹篩)에 올려놓고 주물러서 체 밑의 고기를 받아 손으로 뭉쳐 납작한 반대기(片)를 만들고 녹말로 옷을 입힌다. 끓는 국물에 넣고 기름, 장, 생강, 파 따위의 양념들을 넣고 다시 삶아 먹으면 가시가 하나도 없어서 그 맛이 매우 맛있다.”고 한『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 濟)』(Yu 1766) <준치찜>을 참조하여 재구성해 보면 ‘삶아서 잔가시를 제거한 준치살을 체나 베보자기에 담아 솥에 걸쳐 둔 대나무에 받쳐 걸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걸러낸 살을 다시 뭉쳐서 빚는 과정도 빠져있어 현대어 풀이에서 보완하였다. 미나리를 재료로 사용한 기록도 특이하다.
12) 천엽만두
<원문> 천엽을 시셔 마리고 엽게 흐라 가온
결 에워 한 편은 부튼
두고 어만두 소갓치
여 너허 녹말 뭇처 데처
여
강 자
다려 너쵸 지령의 쓰라
<현대어> 천엽을 씻어 말리고 엷게 썰어 가운데 결을 에워서 한 편은 붙은 채 둔다. 어만두 소 하듯이 속을 넣은 후 녹말을 묻혀 데쳐 낸다. 간장에 생강, 잣 두드려 넣어서 곁들여 쓰라.
소의 내장 중 위장인 양이나 창자로 만두를 만드는 법은 종종 소개되어 있으나 천엽으로 만두를 만드는 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Juchan (酒饌)』과『Eumsikbeop (饌法)』 정도이다.『Juchan (酒饌)』(Anonymous 1885)의 <천 엽만두(千葉饅頭)>는 “천엽의 길이와 너비를 양 만두처럼 썰어서 고명을 소로 하여 싼 후 녹말을 묻혀서 실로 가장자리를 꿰매어 여미고 일상의 방법에 따라 삶아서 쓴다”고 하였으며,『Eumsikbeop (饌法)』(Yoon 19C) <어만두법>은 “처 녑은 쪼개어 소를 넣고 가를 실로 호고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서 얇게 저미고 소를 넣어서 배를 맞추어 가는 바늘과 실로 시쳐라”고 설명되어 있다. 천엽의 길이와 너비를 양 만두처럼 썰어서 고명을 소로 하여 싼 후 녹말을 묻혀서 실로 가장자리를 꿰매어 여미고 일상의 방법에 따라 삶아서 만드는 방식이다.
의궤 기록을 통해 궁중잔치 음식으로는 상당이 높은 빈도로 이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Oh 2014). 사실 어만두, 양만두(양소편), 쇠창자찜 모두 만두처럼 소를 만들어 껍질에 싼 음식으로 밀가루나 메밀껍질을 대체해 생선, 소내장 부산물을 쓴 것이라 동일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독 천엽을 만두피로 사용한 사례가 반가 조리서에서도 흔치 않으며 궁중잔치 기록에 쏠려 있다는 점, 그 가운데『Hasimdangga Umsikbeop』에 독립된 음식항목명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다만, 천엽은 위장이나 창자처럼 주머니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소를 넣은 뒤 실로 꿰매는 작업이 동반되는데 『Hasimdangga Umsikbeop』에는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다.
13) 어만두
<원문> 큰 엉을 시셔 물기 업거든 드날 칼노 엽게 점예고 소난 만두소갓치
여 녹말 뭇처 더쳐
여 초지렁의
강 자
다려 너허 쓰라
<현대어> 큰 생어(生魚)를 씻어 물기 없어지면 잘 드는 칼로 엷게 저미고 소는 만두소같이 하여 녹말 묻혀 데쳐 내어 초간 장에 생강, 잣 두드려 넣어 곁들여 쓰라
어만두는 생선을 껍질 삼아 안에 소를 넣고 익힌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궁중의궤를 비롯한 여러 조리서에 등장할 정도로 활용도가 높은 음식이었다(Oh 2016). 만드는 법이 대동소이하더라도 기재 방식은 제각각인 데『Eumsikbangmun (飮食方文)』 <어만두>에 “크고 결 좋은 생선을 얇게 저미는데 껍질을 등에 가늘게 부쳐 소를 맛있게 잘해서 껍질에 소를 싸서 녹말을 묻히고 만두 모양으로 잘 만들어 삶아 찬물에 건져 초간장에 생강, 파, 잣가루를 넣어 쓰라”고 되어 있어 이와 가장 유사한 편이다.
14) 두견주
<원문> 정월 첫 일의 모쌀 말 두되 닷홉을 히게 실어 머리 소사(?) 소
에 담아
피탕 열두
접반을 부어 조합
야 진 풀갓치
여 식쿼 가리누룩 되 두홉을 너 잘 치
여 독에 담아 음
청의 긴봉
여 두어다가 두견화 만발
거든 모쌀 말 가웃 찹쌀 말가옷하게 실어 익게
서
피탕 잘{000}접을 미 리 '려(술밥에 부어 진밥 갓거든 식쿼 두견화 삼가 두을
고 몬저 독의 담아 술밥 담은 후에
우의 덥고 ⓗ 동도지을
겅다 가온
질우고 진봉
여 음냉처
두엇다가 ⓘ 이십니 일 만
ⓙ 용시 질너 삼닐만의
고 ⓚ 쵸국다
훈 물 열 그릇 부으면 ⓚ 쵸국의 다람업 {결락}
<현대어> 정월 첫 돼지날에 멥쌀 1말 2되 5홉을 희게 쓿어(껍질 벗기고 희게하여) 머리솟은 소래에 담가 백비탕 12대접 반을 붓고 섞어 진득한 풀같이 식혀 가루누룩을 1되 2홉 넣어 잘 치대어 독에 담아 그늘진 찬 곳에 단단히 봉해 두었다가 두 견화가 만발하거든 멥쌀 말가웃(1말 반쯤의 분량을 의미) 찹쌀 가루 1말 반쯤 씻어 익게 쪄서 백비탕 {000}접을 미리 끓여 술밥에 부어 진밥같이 되거든 식혀 두견화 깔고 먼저 독에 담아 술밥 담은 후에 또 위에【두견화】 덮고 동도지(東桃枝)를 꺾어다가 가운데 지르고 단단히 봉하여(堅封) 그늘진 찬 곳에 두었다가 21일 만에 용수 질러 삼일만에 뜨고 초국을 떠낸 후 물 열그릇 부으면 초국과 다름없{이하 결락}
*(?) 판독 모호, { } 판독 불가 및 결락 부분,【 】 문맥에 맞게 변경
<두견주>방문은 뒷부분은 아예 사라진데가 남은 면도 찢겨져있어 온전한 해독이 어려웠으나 구겨진 원본을 재확인 한 결과 ⓗ 동도지, ⓘ 이십니일, ⓚ 쵸국 등의 글자를 판독 할 수 있었다.
두견주는 도화주와 방문이 거의 같아 진달래꽃을 넣으면 두견주, 복숭아꽃을 넣으면 도화주라 했다(Bingheogak Lee 19C). 다만 도화주 방문에는 대부분 주술적 의미를 지닌 ‘동 도지(東桃枝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를 꺾어 술독에 꽂 아두는 빈도가 많은데 비해 두견주의 경우는 동도지를 쓴 경우가 거의 없는데 『Juchan (酒饌)』(Anonymous 1885)에서 는 두견주에도 동도지를 쓰고 있다(Choi et al. 2009). 두견 주는『Gyuhapchongseo (閨閤叢書)』를 비롯『Sulbinneunbeop (술빚는법)』(Anonymous 19C),『Siuijeonseo (是議全書)』 (Anonymous 19C),『(Kimseungjidaek)Jubangmun』 (Anonymous 1860),『Juchan (酒饌)』 등 많은 책에 다양한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데(Choi et al. 2006) 이 중에서『Juchan (酒饌)』의 내용이『Hasimdangga Umsikbeop』과 가장 흡사하다. 재료에 밀가루를 사용한 경우와 넣지 않는 2가지 유형이 보이는 데『Hasimdangga Umsikbeop』 두견주는 밀가루를 넣지 않고 만들고 있어 이 부분에서는 『Juchan (酒饌)』과 차이가 난다. ⓘ ‘이십니일’은 ‘이십일일’의 오기, ⓙ ‘용시’는 ‘용수’, ⓚ ‘초국’은 용수를 박은 뒤 처음 괸 청주를 지칭하는 지역 방언에 해당된다. 이 집안에서는 여전히 처음 떠낸 청주를 초국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2024.1.13. 차종손 송지호).
3.『Hasimdangga Umsikbeop (下心堂家 飮食法)』의 특징
1) 다른 조리서와의 관계
『Hasimdangga Umsikbeop』은 어법이 맞지 않거나 생략 또는 반복되는 문장이 나타나는 등 구어를 문자로 기록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여성이 쓴 필사본 조리서일 가능성이 높다(Paek 2006). 현전 조리서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재료의 분량, 용어 및 문장구조의 유사도가 낮아 이들을 그대로 모사(模寫)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같은 호남의 조리서인 『Eumsikbo (飮食譜)』(Jinwon Oh 18C)와의 유사성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군데 교정의 흔적이 있어 완전한 창작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책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문자화되어 있던 것들을 옮겨 썼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Eumsikdimibang (飮食 知味方)』(Jang 17C)의 권말에 저술자 안동장씨 부인이 ‘출가한 딸들은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하지 말고 베껴 가라’ 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여성의 문자생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원본을 본댁에 잘 보존해 두기 위한 목적으로 동일 문중이나 혈족(血族)들 사이에서 필사본을 만들어 간수했던 사례들이 확인된다(Paek 2006).
『Hasimdangga Umsikbeop』 역시, 전라도 지역어가 등장 하며 다른 조리에 없는 경험지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저 본(底本)이 있었다 하더라도 가문 내의 것이거나 적어도 인근 지역 혈족의 것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혹은 소략한 설명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모본(模本)을 문자 그대로 베꼈다기보다 필자 나름 소화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둔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가필 및 교정 흔적
본서를 완전한 창작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은 교정 흔적들 때문이다<Figure 5>.
1) 글자 순서가 바뀐 사례
㉠㉡
글자 위에 위치가 아래(下) 위(上)로 바뀌었다는 표시가 되어있다.
2) 먼저 쓴 글자를 삭제하고 제 글자로 교체한 사례
㉢ 누록→주려 ㉣ 탕수→섯거
아예 전혀 다른 글자가 들어가면서 내용에 오류가 생겼기에 잘못된 부분에 선을 긋고 원래 들어갔어야 할 글자를 우측에 써두었다.
3) 비슷한 글자로 오기한 것을 수정한 사례
㉤ 녈말 → 너말
잘못 쓴 ‘녈’이라는 글자에 선을 긋지는 않고 우측에 ‘너’ 를 병기만 했다.
4) 누락된 글자를 삽입한 사례
㉥ 가로 담가 → 가지로 담가
가지의 ‘지’자가 누락되어 있어 중간 위치에 삽입하였다.
(3) 전라도 지역색이 드러나는 부분
‘효주’, ‘모쌀’, ‘쵸국’, ‘너럭지’, ‘동침지’ 등은 전라도 방언이고 ‘배차’, ‘식쿼’, ‘용시’는 사투리 음가가 반영된 것이다<Figure 6>. 이는 같은 호남 조리서인 『Eumsikbo (飮食 譜)』 (Jinwon Oh 18C)에서 모쌀(멥쌀), 모쟝(숭어새끼)과 같은 명사의 방언형만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효주는 소주의 전라도 지역 방언으로 알려져 있다(Park RD 2022). 다만 그 유래가 발효를 의미하는 효(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증류주를 일컫는 소(燒)가 비슷한 글자형을 효(曉)로 독음하면서 와전된 현상으로 보인다. 효주삼해주와 적선효주 모두 발효주[酵]가 아닌 불에 고아서 만든 증류주 [燒]이기 때문이다.
모쌀은 같은 호남지역 조리서인 『Eumsikbo (飮食譜)』에서도 볼 수 있는데 멥쌀의 방언이다(Park 2023). 너럭지는 소래기와 같은 넓은 질그릇의 방언이며(NIKL 2024), 동침지의 ‘지’는 전라도 지역에서 여전히 김치룰 뜻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짐채의 경우『Hanbuljajeon (한불자뎐)』(Les Missionaires de Corre 1880) ‘갓짐’,『Mulmyeongchan (物 名纂)』(Yu 1890)의 ‘짐채져리다’ 등 1900년대 초에도 표준어로 분류되고 있었기에 방언으로 규정짓기는 어렵고 오히려 본서의 집필시기 추정의 근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본고는 우선 지역색이 눈에 두드러지는 부분만을 추출한 것으로, 추후 국어학적 연구를 통해 추가 사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IV. 요약 및 결론
호남 최초 조리서인 『Eumsikbo (飮食譜)』에 이어 두 번 째로 호남지역에서 발굴된『Hasimdanggaeumsikbeop (下心 堂家 飮食法)』는 1800년대 후반~1900년 초반 사이 홍주송씨가 종부에 의해 필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실된 부분을 제외하고 총 7장에 걸쳐 술 7개(칠일주, 삼일주, 소주삼 해주, 적선소주, 석탄주, 소곡주, 두견주)와 일반음식 7개(약과, 동아정과, 배추김치, 동치미, 준어찜, 천엽만두, 어만두)로 총 14가지 방문이 실려있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본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전하는 타 조리서들을 모본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곳곳에 고쳐 쓴 교정 흔적으로 보아 온전한 창작물로 여겨지지 않으나 적어도 기존 수도권‧충청‧영남권 소재 필사본 조리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은 분명히 확인하였다. 이에 현전하지 않는 미발굴 조리서, 전라도지역의 조리서를 모본으로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그 근거는 제조법, 재료 분량 및 서술방식이 기존의 조리서들과 많은 부분에서 상이함은 물론이고 본서에서 초출한 ‘탕개’, ‘대말’, ‘점나지 않게 ’, ‘여’, ‘초국’, ‘효주’, ‘모쌀’, ‘동침지’, ‘너럭지’, ‘배차’, ‘ 용시’ 등과 같은 특이한 용어나 지역 방언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본서가 홍주송씨 문중에 가전(家傳)되어 왔거나 인근지역에 존재하였던 ‘조리서 또는 구전 조리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였다.
둘째, 서책으로서의 불완전성, 기록된 음식의 항목수가 적다는 점 외에도 조리과정 설명에 대한 누락이 심하고(삼일주, 소주삼해주, 준어찜) 재현성이 미심쩍은 항목(석탄주)이 보이는 것 등은 본서가 조리서로서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는 데 장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초로 발굴된 호남 조리서인 『Eumsikbo (飮食譜)』와 집필시기 및 내용면에 차별성을 지니는 데다가 지역문화가 반영된 독특한 용어와 내용은 그 자체로 희소성이 있으므로 호남음식문화 관련 기록자원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일정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우선『Hasimdangga Umsikbeop (下心堂家 飮食法)』 내용 소개에 중점을 둔 것으로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지속 보완되고 전통시대 지역음식문화 비교연구의 토대로 활용‧확 장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