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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8 No.1 pp.26-37
DOI : https://doi.org/10.7318/KJFC/2023.38.1.26

Perceived Characteristics of Grains during the Choseon Dynasty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The Research Institute for Basic Sciences, Hoseo University
* Corresponding author: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Hoseo University, Hoseo ro 79-20, Asan, Chungnam Korea, 31499
Tel: +82-41-540-9663 Fax: +82-41-540-5638 E-mail: Kimmihye92@hoseo.edu
January 17, 2023 February 21, 2023 February 22, 2023

Abstract


This study applied the text frequency method to analyze the crops prevalent during the Chosunwangjoshilrok dynasty, and categorized the results by each king. Contemporary perception of grains was observed by examining the staple crop types. Staple species were examined using the word cloud and semantic network analysis. Totally, 101,842 types of crop consumption were recorded during the Chosunwangjoshilrok period. Of these, 51,337 (50.4%) were grains, 50,407 (49.5%) were beans, and 98 (0.1%) were seeds. Rice was the most frequently consumed grain (37.1%), followed by pii (11.9%), millet (11.3%), barley (4.5%), proso (0.8%), wheat (0.6%), buckwheat (0.1%), and adlay (0.05%). Grain chronological frequency in the Choseon dynasty was determined to be 15,520 cases in the 15th century (30.2%), 11,201 cases in the 18th century (21.8%), 9,421 cases in the 17th century (18.4%), 9,113 cases in the 16th century (17.8%), and 6,082 cases in the 19th century (11.8%). Interest in grain amongst the 27 kings of Choseon was evaluated based on the frequency of records. The 15th century King Sejong recorded the maximum interest with 13,363 cases (13.1%), followed by King Jungjo (8,501 cases in the 18th century; 8.4%), King Sungjong (7,776 cases in the 15th century; 7.6%).



조선왕조실록 텍스트 빈도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곡물에 관한 인식 특성 고찰
조선왕조실록 자료를 이용한 텍스트 빈도 분석 적용 연구

김 미 혜*
호서대학교 생명보건대학 식품영양학과 및 기초과학연구소

초록


    I. 서 론

    곡물(穀物)은 식량이 되는 쌀,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밀, 옥수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곡물에 물을 부어 지으면 밥이 되는데 밥은 한국 음식의 핵심이며 한국인들에게 그 의미는 매우 크다(Chung 2015). 곡물 중 쌀을 제외한 식량 작물을 잡곡(雜穀)이라 하며 잡곡은 혈압강하, 당뇨병 및 고혈압 예방, 면역력 증가, 항산화 효과 등의 다양한 생리활성을 가지고 있어 기능성 식품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Kim & Lee 2006). 현대인들에게 잡곡밥 섭취는 권장되고 있는데, 이는 잡곡에 들어있는 풍부한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 식이 섬유소와 파이토케미컬 때문이다(Kim et al. 2017). 제7기 국민건강영양조사(2016-2018) 자료를 활용한 한국인의 주요 식품선정에 관한 연구에서는 쌀밥과 잡곡밥의 에너지 기여도가 20% 이상으로 나타났고, 탄수화물의 30% 이상 기여도를 보였으며, 이외 단백질, 식이섬유, 인, 칼륨, 철, 비타민B1, B2, 니아신의 경우 잡곡밥이 5-10.5%로 가장 높은 영양소 섭취 기여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Lee et al. 2021).

    한반도에서 농업이 시작된 것은 신석기 중기 경에 잡곡 농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농업의 개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주거지에서 발견된 농업 용구와 탄화 된 낟알, 평안남도 온천군 운하리 궁산 유적에서 발견된 농업 용구 등이며, 원시 농업 시기 주작물은 기장, 조, 피, 콩, 팥 등이 재배된 것으로 본다(Yoon et al. 2002). 한국 음식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그 외의 국이나 반찬들을 부식으로 먹는 주·부식형의 식사 관습이다(Chung 2015). 이때 밥은 주로 곡식 전체를 넣은 잡곡밥을 이야기하며 오곡밥, 잡곡밥 등은 1800년대의 문헌에 등장한다(Han et al. 1998).Jeungbosallimgyeongie (增補山林經濟)(Yoon SJ ed. 2007)에서는 아직 누렇게 되지 않은 보리로 보리쌀을 만들어 멥쌀과 섞어 밥을 지으면 그 맛이 매우 좋고, 좁쌀과 기장, 멥쌀, 청양미, 붉은팥, 검정콩을 서로 섞어 밥을 지으면 매우 달고 향기롭고 숭늉도 맛있다고 하였다.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Lee et al. ed. 2007)에서 조선시대 의서(醫 書)인 식물본초(食物本草)를 인용하여 오곡(五穀)은 하늘이 사람을 낳고 기르는 것이며 삶을 도와주고 집안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하였으며, 남쪽 지방은 메벼, 북쪽 지방에서는 조를 많이 심어 먹는데, 곡류는 이익을 생각지 말고 오직 사람을 기를 수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여 많이 심어 먹으면 좋다고 하였다.Dongguksesigi (東國歲時記)(Choi DL ed. 2008)에 의하면 정월 상원(上元)에 보름날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잡곡밥을 지어 먹는데 이것을 오곡밥이라고 하며 이것을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는다고 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농민들은 곡식을 신성시하여 섬기고 모시면 집안이 풍요롭고 평안해진다고 인식하여, 곡식을 넣은 단지를 집을 다스린다는 가신(家神)으로 모셨다(Bae 2009)고 한다. 이처럼 곡식은 인류의 생존을 돕는 장기 보존형 식재료였으며 특히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그 의미는 영양원을 넘어 생명력의 상징이었으며, 마음을 나누는 매개체였고,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는 신이었다.

    최근 조선시대 식생활사 연구는 다양한 문헌 기록을 토대로 역사학적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고고학 자료가 발굴조사 되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식생활 양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유적 출토 인골에 대한 안전 동위원소분석을 통하여 잡곡과 쌀을 함께 섭취하던 삼국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잡곡 섭취량은 감소하고 쌀의 섭취량이 증가하여 쌀을 주식으로 활용하였음이 확인되었다(Shin et al. 2015). 조선시대 기록물 중 조선왕조실록은 500년 이 상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유일한 연대기로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며,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 자료이다(Kang 2015). 지금까지 조선왕조실록의 식생활사 연구는 과학 계량적 분석을 통한 채소류의 통시적 고 찰(Kim 2021a),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과실류 특성 연구(Kim 2021b), 수산물 현황과 가공품 특성 연구(Kim 2022a), 조선시대 식중독에 관한 연구(Kim 2022b) 등이 시행됨으로써 방대한 데이터량이 종합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성과 의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음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곡류에 관한 통시적 고찰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텍스트 빈도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조선왕조실록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곡류군 물종 현황과 왕조별 기록 현황과 대표 곡식류를 중심으로 워드 클라우드 분석해 봄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곡류에 관한 인식 특 성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음식문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대상 및 자료수집

    본 연구는 조선시대 전체 기간의 곡식 관련 기록을 분석 하기 위해 태조실록부터 마지막 왕인 순종실록까지 조사 범주에 포함시켰다(Kim 2021a: Kim 2021b).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순종실록까지 27명의 왕이 재임한 총 518년의 기록 1,968권 948책을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본과 번역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에서 웹 크롤링을 통해 수집하였다.

    웹 크롤링 소프트웨어는 phython 3.8 언어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모든 한자와 한글 원문을 자동으로 수집하였다. 웹 크롤링 결과 <Table 1>과 같이 한글 원문 384,565건, 한자 원문 384,567건이 수집되었고, 0.01%의 소실률을 나타냈다.

    2. 연구 내용 및 방법

    자료 분석 절차는 <Figure 1>과 같다. Phython 3.8을 이 용해 해당 사이트에서 연도별 월별로 구분 되어 있는 각각의 자료들을 생성한 다음, 필요한 문장을 찾고 이 과정에서 모든 페이지에서 URL을 추출하여 필요한 내용의 리스트를 생성하였다. 구축한 웹 크롤러는 생성된 URL을 통해 탐색 하면서 관련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추출 후 저장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곡식류 관련 기사를 분석하기 위하여 웹 사이트 기록 분류체계 중 식재료와 관련 가능성이 높은 경제-재정-공물과 진상, 경제-농업-권농, 농업기술, 농작, 임업, 축산, 과수원예와 특용작물, 경제-재정-수산업-어업과 염업, 사회-식생활-주부식, 주류, 기호식품, 사회-풍속-풍속과 연회 카테고리 내 기사를 읽고, 곡류 관련 한자를 추출하고 분류 하였다. 추출된 곡류 단어 빈도는 전체 자료 및 왕대별 특성에 따라 분류된 자료에서 얼마나 특정한 단어가 자주 등장 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빈도가 높을수록 해당 단어가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핵심적인 단어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연구 절차를 통해 의미 있는 단어에 대한 빈도 분석(frequency analysis)을 시행하여, 전체 자료에서 왕대별 특성에 따라 단어의 빈도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빈도는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가시화하였다. 워드 클라우드는 각 단어의 크기가 빈도 또는 중요성을 나타내는 텍스트 데이트 시각화 기술이다. 즉 워드 클라우드는 문서의 키워드, 개념 등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 단어를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많이 언급될수록 단어를 크게 표현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기법 등이 있다. 주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다루는 빅데이터(big data)를 분석할 때 데이터의 특징을 도출하기 위해 사용한다(Lee 2020). 출현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크게 표시되고 각각의 단어들은 색상이 다르게 표시하였으며, 여기서 출현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중요도가 크거나 관심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Lee et al. 2020).

    III. 결과 및 고찰

    1. 조선시대 곡류군 물종 현황 및 특성

    조선시대 곡류군 물종 현황과 그 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곡물 관련 단어를 수집, 분류하였다<Table 2>.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체 곡물 출현 빈도는 101,842건이며, 곡류 51,337건(50.4%), 두류 50,407건 (49.5%), 종실류 98건(0.1%)으로 곡류와 두류 출현 비율이 50.4:49.5%로써 거의 비슷한 비율로 출현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중기 개인 일기를 분석하여 두류 수급 현황을 고찰한 Kim(2019)의 연구에서도 곡류와 두류의 생산량이 41:59%로 조선시대 식생활에서 두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고, 한국 음식문화에서 두류가 차지하는 중요 성을 유추할 수 있다.

    곡류 중 穀(곡), 雜穀(잡곡), 兩麥(양맥), 黍粟米(서속미)는 단일 물종이 아닌 일반적인 곡물을 지칭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곡류가 혼합된 복합명사로서 세부 물종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집합명사(whole collective noun)로 분류하였으며, 집 합명사는 총 17,240건으로 전체 곡류 중 33.6%를 차지하였 다. 세부 물종 중 鬼麥(귀맥, 귀리)은 6건, 白黍(백서), 黍(서), 新稷米(신직미), 野稷(야직)은 모두 기장을 뜻하는 것으로 406 건(0.8%), 蕎麥(교맥), 木麥米(목맥미)는 메밀로 73건(0.1%), 麵(면), 小麥(소맥), 眞麥(진맥)은 밀을 뜻하는 한자로서 299 건(0.6%), 麥(맥), 麥芽(맥아), 瑞麥(서맥), 小米(소미), 新麥(신 맥) 등은 보리이며 2,292건(4.5%), 쌀과 관련된 한자는 粳米 (갱미), 落庭米(낙정미), 大米(대미), 稻米(도미), 米(미), 米穀 (미곡), 米KJFC-38-1-26I1.gif(미면), 細粳米(세갱미), 御飯米(어반미), 儲置米 (저치미), 造米(조미), 中米(중미), 玄米(현미) 등이며 19,067 건(37.1%)이었다. 薏苡(의이)는 율무로 21건(0.05%), 晩粟(만 속), 租(조), 糶(조), 粟(속), 租米(조미), 早粟(조속), 秫(출) 등은 조와 관련된 한자이며 5,805건(11.3%), 稷(직)은 피이며 6,128건(11.9%)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곡류 세부 물종 중 가장 많이 기록된 품목은 쌀(37.1%)이었으며, 피(11.9%), 조 (11.3%), 보리(4.5%), 기장(0.8%), 밀(0.6%), 메밀(0.1%), 율 무(0.05%) 순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곡류 중 쌀이 주식류의 대표 곡물임을 확인할 수 있겠다. 고대 우리 조상들의 주식은 稷(직,피)이었으나(Jin 2006), 삼국시대 이후 수리시설 확충 및 농업기술 증진 등 적극적인 국가 정책으로 미곡 증산이 거듭되어 조선시대에는 쌀이 제1위 곡류로써 주식을 대표하는 곡물이 되었다.

    두류 중 乾豆(건두), 豆(두), 太(태), 太豆(태두)는 모두 콩을 뜻하는 집합명사로 분류하였으며 집합명사는 49,748건 (98.7%), 菉荳(녹두)는 1건, 대두를 뜻하는 大豆(대두), 黃豆 (황두)는 547건(1.1%), 靑太(청태)는 4건, 小豆(소두, 팥)는 107건(0.2%)이었다. 두류를 표현하는 단어는 세부 물종보다는 태나 두인 집합명사로 기록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 중 太(태)가 43,877건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조선 중기 (1593년부터 1600년까지) 8년간 두류 수증 현황을 기록한 쇄미록에도 黃太(황태), 黑太(흑태), 靑太(청태), 馬太(마태), 赤 豆(적두), 綠豆(녹두) 등 태와 두의 물동량이 많았음을 확인 할 수 있다(Kim 2019).

    종실류는 들깨를 뜻하는 荏子(임자) 82건, 연잎의 열매인 蓮子(연자) 9건, 참깨인 眞荏子(진임자) 7건이었다. 조선시대 잡곡명에 대한 어휘 체계사를 분석한 연구에서 荏(임, ?)은 깨를 표현하며 하위어는 眞荏(진임, 참깨), 水荏子(수임자, 들 깨)로 2개의 항목을 제시하고 있고 깨가 전통적으로 곡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Shin 2014).

    <Figure 2> The appearance of the grain group with the times

    조선시대 세기별 흐름에 따른 곡류군 출현 빈도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Figure 2>. 다만 1대 태조(1392- 1398)와 2대 정종(1399-1400)대 데이터는 15세기에 포함시켰으며, 26대 고종(1900-1906)과 27대 순종(1907-1910)대 데이터는 19세기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곡류 관련 단어 기록은 총 51,337건이었으며, 그 중 15세기 15,520건(30.2%), 18세기 11,201건(21.8%), 17세기 9,421건(18.4%), 16세기 9,113건(17.8%), 19세기 6,082건(11.8%)으로 기록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15세기 기록을 제외하면, 18세기와 17세기 곡류 기록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Kim(2015) 연구에 따른 16 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조선은 전쟁과 기후변화, 기근으로 피폐해져 곡물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17세기 말에는 토지 결수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여서 조선 전기 수준까지 거의 회복하였으며, 조정의 능동적인 대응책인 대동법으로 화폐와 환곡이 세제 변동과 연동됨으로써 곡류 생산과 유통량이 한층 증가한 결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수산물 관련 기록물의 세기별 특성을 분석한 Kim(2022a)의 연구에서도 9,536건 중 15세기 4,789건(50.2%), 18세기 1,697건 (17.8%), 16세기 1,488건(15.6%), 17세기 984건(10.3%), 19 세기 578건(6.1%) 순으로 15세기 다음으로 18세기에 수산물 관련 물종 출현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류 관련 단어 기록은 총 47,407건이었으며, 그 중 15세기 15,520건(32.7%), 17세기 10,645건(22.5%), 18세기 8,141건 (17.2%), 16세기 8,099건(17.1%), 19세기 5,002건(10.5%) 순으로 15세기 기록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17세기 순으로 나타났다. 15세기 기록인 농사직설(農事直設, 1429년)에는 대두와 소두 및 녹두의 재배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반해 17세기 허균의 한정록(閑精錄, 1610년경)에는 대두, 소두, 녹두, 홍두, 적두와 백편두 등 다양한 대, 소두의 재배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17세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대, 소두가 재배되었다는 사실과 그 수요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Choi 2003). 즉, 15세기 조선왕조실록에 두류 기록 빈도가 월등히 높은 이유는 현물 공납제 시행에 따른 생산 물자 파악을 위 한 기록문화 발달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Bae 2004), 17 세기 두류 출현 빈도의 증가는 수요 증가, 두류 종류와 재배 지 확장에 따른 두류 활용의 증가라고 볼 수 있다.

    2. 조선시대 왕대별 곡물 관심도(GII)

    조선시대 27대 왕들의 곡식류에 대한 관심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 분석한 결과는 <Table 3>과 같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곡류와 관련된 단어들의 총 출현 빈도는 전체 101,842건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은 곡류 기록 빈도수가 생성된 왕대는 15세기 세종 13,363건(13.1%), 18세기 정조 8,501건(8.4%), 15세기 성종 7,776건(7.6%), 16세기 중종 7,751건(7.6%), 18세기 영조 7,663건(7.5%) 등으로 이들 5대 왕이 전체의 44.2%를 차지하였다. 다음으로 선조(4,944건), 고종(6,961건), 숙종(3,277건), 태조(5,191건), 인조(4,672건), 현종(4,035건), 광해군(3,506건), 세조(3,144건), 명종(2,848건), 선조(2,786건), 연산군(1,109건), 효종(2,425건), 단종(986건), 명종(968건), 순종(542건), 태조(524건), 예종(507건), 경종 (507건), 정종(505건), 헌종(473건), 철종(353건), 인종(123건) 순으로 나타났다. 조선왕조실록 속 곡류군에 관한 기록은 주로 15세기와 18세기에 그 출현 빈도수가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15세기에 곡물 출현 빈도가 높은 것은 조세 자료의 근간이 된 물산 지리지로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그 이유로 들 수 있으며(Kim 2017), 15세기 비교적 안정된 기후 특성과 국가 주요제도 정비와 과학적 농법 도입(Lee 2012) 등을 원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또한 18세기 곡류 기록 빈도 수가 높은 것은 환곡이라 불린 국가적 곡물 저장체계가 잘 유지되어 곡물 소비의 안정을 가져왔기 때문이다(Park 2009). 이는 조선왕조실록 왕대별 채소류 출현 빈도수를 분석한 Kim(2021a)의 연구에서도 17세기 말 18세기 초 숙종, 18세기 영조, 15세기 세종, 15세기 성종, 18세기 정조 등의 순으로 18세기와 15세기 채소류 출현 빈도수가 높아 곡류와 채소류는 비슷한 출현 양상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곡식류 기록 빈도수는 왕들의 재위 년과 기록된 전체 기사 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재위 년과 기사수로 보정하여 왕들의 곡류 관심도(Grains Interest Index)를 수식화하여 절대치로 나타냈다. 곡식에 대한 관심도가 높게 나타난 대표 적인 6대 왕은 18세기 영조(0.906), 15세기 세종(0.868), 17 세기 숙종(0.845), 18세기 정조(0.833), 19세기 고종(0.794), 16세기 선조(0.765) 순이었으며, 다음으로 정종, 태종, 현종, 효종, 인조, 중종, 순종, 순조, 선종, 단종, 문종, 세조, 예종, 명종, 연산군, 태조, 광해군, 경종, 인종, 헌종, 철종 순이었다. 즉, 조선시대 왕대의 곡류에 대한 관심도는 5세기에 걸쳐 고루 분포함을 알 수 있다. Kim(2021b)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 시대 왕대별 과실류 관심도는 주로 16세기와 15세기에 높았으며, 이는 과실류가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제례와 의례 용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왕대별 식품에 관한 관심도는 시대적 상황과 식품에 관한 인식 특성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곡류 관심도(GII)가 가장 높은 왕은 조선 후기 중흥을 이끈 21대 왕인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였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산업의 근간인 농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며 사치풍조를 억제하고 소식 과 검소함을 실천한 왕이었다(Jung 2020).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영조 4년(1728년) 4월 22일 亦令廟堂 移 給還穀 那移軍器 與夫勞來安集 撫恤軍民等事 各別商確以稟 分付道臣及御史擧行 (묘당으로 하여금 환곡을 옮겨 지급하게 하고 군기도 전용하게 하라. 그리고 백성들을 위로하여 안집 시키고 군민들을 무휼하는 등의 일에 대해 각별하게 상의하여 품지해서 도신과 어사에게 거행하도록 분부하라)’고 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Park(2009) 연구에 의하면 저장 곡물이 17세기 후반 500여만 석이었으나 18세기 크게 증가하여 쌀과 각곡을 합하여 천만 석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통한 왕권 강화와 균역법 등 세 금개혁을 통한 민생안정을 기반으로 환곡이라 불린 곡물저 장체계를 잘 유지시켜 지역 간 교역체계도 활발하게 작동시켜 안정적 국정운영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18세기 잦은 봄 가뭄과 그에 대응할 수 없는 농법으로 곡물 생산이 불안정하였으나 안정적 곡물 저장과 교역체계로써 식량 난을 극복한 것으로 사료된다.

    두 번째 높은 곡류 관심도(GII)를 보인 왕은 15세기 세종 (世宗, 재위 기간 1418-1450) 이었다. 세종은 과학적 농업기술과 농서의 편찬과 보급으로 농업생산력을 향상시켰다(Yeom 2021). ‘세종 11년(1429년) 5월 16일 以五方風土不同 樹藝之 法 各有其宜 不可盡同古書 乃命諸道監司 逮訪州縣老農 因地 已試之驗具聞 又命臣招 就加詮次 臣與宗簿少尹臣卞孝文 披 閱參考 祛其重複 取其切要 撰成一編 目曰 農事直說 (오방의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이 있어, 옛 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주현의 노농들을 방문하게 하여, 농토의 이미 시험한 증험에 따라 갖추어 아뢰게 하시고, 또 신초에게 명하시어 그 까닭을 더하게 한 다음 신과 종부시 소윤 변효문이 낱낱이 살피고 참고하게 하시어 그 중복된 것을 버리고 그 절요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 이라고 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Kim (2010) 연구에 따르면 1429년 출간된 농사직설은 수도(水道)를 목차의 맨 앞에 내세우고 있는 수전 작물 중심의 농서로써 당시 농업기술 수준이 매우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곡류 관심도(GII)가 세 번째 높은 왕은 17세기 제 19대 왕인 숙종(肅宗, 재위 기간 1674-1720)이었다. 숙종은 현물로 징수하는 공납제도를 쌀, 포, 동전으로 단순화 시키고, 국가 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인(貢人)을 통해서 구입하여 사용하는 대동법(大同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어 조선 후기 화폐 경제 발달을 촉진하였다(Um 2021). ‘숙종 즉위년(1674 년) 12월 2일 引見大臣 備局堂上 許積言 湖西大同 定以一結 十二斗 而自頃以來 或以年凶 或以溫幸減之 以至貸用他司 常 患艱乏 至有革罷之議 湖西之民聞之 願加定二斗而勿罷 朝廷 依其願 (대신과 비국의 당상을 인견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호서의 대동법은 1결에 12두로 정했는데, 몇 해 전부터 혹은 흉년으로 온행으로 감해 주어 타사에서 대용까지 하고 있는 데도, 궁핍함을 걱정하던 나머지 혁파하자는 의논이 있기까지 하였는데 호서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듣고 2두를 더 정 하고 혁파하지 말 것을 청원하여 조정에서 그 원에 의해 하도록 하였습니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Choi(2019) 연구에 의하면 대동법은 광해군 즉위(1608년) 후 경기도를 시작으로 숙종 34년(1708년) 황해도까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100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시행과 관련하여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그 반대를 극복하고 백성의 편안 한 삶을 위해 성공시키려는 왕들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대동법 이외에도 17세기 곡식 관심도가 높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숙종 23년(1697년) 4월 22일 不料亢旱之慘 又至於此 凄風毒霧 殆浹三旬 大地焦 赤 萬姓啜泣 失今不雨 人類將盡 代犧桑林 誠切自焚 而微誠 未格 視天夢夢 噫 倉庫罄而私蓄竭 將立視其死耶(가뭄의 참 혹함이 여기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찬바람과 독기 서린 안개가 거의 한 달 동안 잇달아 대지는 붉게 타고 모든 백성들은 훌쩍훌쩍 울고 있다. 지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인류가 모두 죽을 것이다. 상림에서 대신 희생이 되어 자신을 태우려고 한 탕 임금과 같은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나 미미한 정성이 하늘의 감응을 이르게 하지 못해 하늘을 보니 흐릿하기만 하도다. 아 창고의 곡식도 다 떨어지고 개인의 비 축도 거덜이 났으니, 장차 그들이 죽는 것만을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이처럼 17세기는 역사상 가장 큰 기근인 을병(乙丙) 대기근이 있었다(Kim 2009). 이들 시기에는 냉해, 한발, 홍수 같은 각종 자연재해가 집중되었으며, 그 결과 전염병이 돌았으며 전체 인구의 10%가 감소되기도 하였다(Kim 1997).

    네 번째 곡류 관심도(GII)가 높은 왕은 18세기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였다. 정조대는 논농사 농법이 직파법을 대신하여 이앙법으로 전국적 보급 완료된 시기였으며, 수리시설 확대로 수전(水田)이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직전제(職田制) 를 확대 적용하여 안정적인 벼농사를 위해서 수리시설을 확대시켜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가 부강을 도모하였다(Yeom 2010). ‘정조 19년(1795년) 11월 24일 第一貧富咸一條 限田 名田 固好 今之疇塍 異於古之井畝 所以橫渠說之只傳於紙上 予每曰 我國職田之制 推廣於士庶 則三代可(四)(빈부를 균등 하게 하자는 것으로 말하건대, 한전과 명전의 내용이 물론 좋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토지 사정을 보면 옛날 정전 법을 시행하던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래서 장횡거의 주장이 단지 종이로만 전해져 오게 된 것이다. 나는 늘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직전제(職田制)를 사서에까지 확대 적용한 다면 삼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곤 한다)’. ‘정조 22년(1798 년) 11월 15일 況今民習趨便 專尙移秧 而頻歲旱乾 輒致歉荒 有備無患之道 尤當盡心講究爲先 更飭諸道 着意擧行 亦自本 司考察勤慢 期有實效 (지금은 백성들의 습속이 편리한 것만 좇아 전적으로 이앙법만을 좋아하고 있는데 가뭄이 드는 해가 잦아서 번번이 흉년이 들곤 합니다. 그러니 유비무환의 방도에 있어서 마땅히 더욱 더 마음을 다해 강구하여야만 합니다. 우선 먼저 여러 도에 다시 신칙해서 착실히 거행하게 하고, 본사에서도 부지런함과 태만함을 살펴서 기어이 실제적인 효과가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정조의 강력한 이앙법 보급 정책은 단위당 토지생산성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증대된 농업생산성은 사회적으로 파급되어 상업적 농업발전의 촉진제가 되었고 자본주의 주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앙법은 17세기 소빙기 극에 달한 가뭄과 같은 기후 악조건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확대 보급되어 오히려 농업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Kim 2010).

    다섯 번째 높은 곡류 관심도(GII)를 나타낸 왕은 19세기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이었다. 고종은 통리기무아문 등 특별기구를 설치, 수리시설의 축조와 진전의 개간, 서양의 선진적 농업기술의 수용을 중심으로 농업 진흥책을 실시하 여 조선의 변화를 시도하였다(Lee 2016). ‘고종 1년(1864년) 1월 11일 見今東作方始 樂事興功 亶由乎勸相有方 簡其稼器 修其稼政 竝力以相助 假貸以相救 以至整溝洫闢汙萊 駿發爾 私 (지금 농사철이 시작되었으니 일을 즐기고 풍년을 일궈내는 것은 오직 권장하고 도와주는 데에서 말미암을 뿐이다. 농사짓는 기구를 갖춰놓고 농사일을 정비하며, 힘을 모아 서로를 돕고 빌려주고 빌려 씀으로써 서로를 구원하여 도랑을 정비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까지 해야 할 것이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3.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곡류에 관한 인식 특성

    1) 穀(곡식)에 관한 사회적 이슈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 穀(곡식)과 연관된 기사의 전체 명사수는 3,223개였고, 어휘 밀도(vocabulary density)는 0.426, 가독성 지수(readability index)는 –2.935였다<Figure 4>. 곡식과 연관된 대표적인 주제어와 빈도는 穀(곡)(145), 禾 穀(화곡)(86), 백성(43), 錢穀(전곡)(36), 손상(33), 米穀(미곡) (29), 금년(17), 나라(14), 경기(14), 고을(13), 호조(12), 출납 (12), 제사(12), 의정부(12), 수령(12), 폐단(11), 물(11), 한재 (10), 신(10), 수재(10), 손실(10), 바람(10), 경상도(10) 순으 로 나타났다.

    곡식과 연관된 주제어 중 직접적으로 곡이 들어간 글자는 화곡, 전곡, 미곡이 있다. 화곡이란 벼과 한해살이풀로서 이 삭을 수확하는 곡류이며 쌀, 보리, 밀, 귀리, 수수, 조 등이 있다. 전곡은 재화를 뜻하며, 미곡은 쌀이다. 즉, 조선시대 곡 식은 곧 돈인 재화의 개념이었으며, 가장 대표 곡식은 쌀이 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곡식이 직접 들어간 명사를 제외하고는 손상(33), 물(11), 한재(10), 수재(10), 손실(10), 바람 (10)과 같이 한재, 수재, 바람, 물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의 손상, 손실이 많아 백성들의 세금 탕감을 요청하는 기사가 많았다. ‘태종 4년(1,404년) 9월 25일 減江原道今年 田租之數 觀察使上言 本道田地瘠薄 禾穀之實 不及他道 故水 田一結 糙米二十六斗五升 旱田一結 收麥二十五斗 倉庫宮司 田租 以油蜜布貨 自願輸納 古例也 自壬午年 收租之數 乃以 他道之例 水田一結收米三十斗 旱田一結收麥三十斗 民甚苦之 今年又因大風大水 傷損甚多 願以在前科式收租 布貨油蜜 亦 以自願輸納 以慰生民 允之 (강원도의 금년 전조의 수량을 감하였다. 관찰사가 상언하였다. 본도의 전지가 척박하여 화곡의 결실이 다른 도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수전 1결에 조미 26두 5승을, 한전 1결에 보리 25두를 거두고, 창고 궁사의 전조는 유밀과 포화를 자원하여 수납하게 하는 것은 고례입니다. 임오년부터 조세를 거두는 수량을 이에 다른 도의 예로 하여, 수전 1결에 쌀 30두를 거두고, 한전 1결에 보리 30두를 거두니, 백성들이 심히 괴로워합니다. 금년에 또 큰 바람과 큰물로 인하여 손상이 심히 많으니, 원하건대 전에 있었던 과식대로 수조하게 하고, 포화·유밀도 또한 자원에 따라 수납하게 하여, 생민을 위로하게 하소서. 임금이 이를 윤 허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조선은 전제(田制)개혁을 통하여 등장한 왕조이며, 실물 경제 세원은 토지였으며 세목을 전세로 하는 대표적 농업 국가였다(Kim & Shin 2007). 조선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체제 근간인 농업은 기후변동과 자연재해에 밀접한 영향을 받고,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의 손상과 소출의 감소는 백성들의 조세 저항과 국가 체제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조선시대 곡식에 관한 인식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탄수화물 급 원으로서 의미를 넘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품이자, 가정과 국가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재원(財源)으로서 인식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쌀(米)에 관한 사회적 이슈

    조선시대 穀(곡) 중 가장 대표적인 米(쌀)과 연관된 기사의 전체 단어 수는 4,092개였고, 어휘밀도(vocabulary density)는 0.350, 가독성 지수(readability index)는 –3.018이었다<Figure 5>. 쌀과 연관된 대표적인 주제어와 빈도는 米(191), 석(77), 豆(55), 백성(45), 米穀(37), 사람(34), 戶(33), 품(32), 필(27), 저화(27), 연호미(27), 임금(26), 결(22), 祿米(20), 정포(20), 말(20), 둔전(19), 고을(17), 자(16), 값(16), 조미(15), 법(15), 창고(14), 주포(14), 수납(14), 곡식(14), 종이(12), 원망(11), 호조(10), 폐단(10) 등이었다. 쌀과 연관된 주요 곡물은 豆(콩) 이었으며, 쌀과 콩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곡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빈도가 높은 단어 중 석(石), 호(戶), 품(品), 필(必), 결(結), 말(斗) 등은 세금 부과를 위한 과세단위이거나 곡류 를 측량하기 위한 부피 단위이다. 한 석(石)은 열 말(斗)을 뜻 한다. 저화(楮貨,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돈), 녹미(祿米, 현 미), 정포(正布, 모시로 짠 옷감), 주포(紬布, 명주 견직물), 조미(造米, 속겨를 벗기지 아니한 쌀) 등은 세금을 내던 화폐에 관한 용어들이다.

    그 외 쌀과 관련된 중심어에는 연호미(煙戶米)(27)와 둔전 (屯田)(19)이 있다. ‘태종 6년(1,406년) 7월 20일 丁未 立屯田 烟戶米法 初 上求言 令議政府採擇施行 願復前朝屯田 烟戶米 法 以屯田所出 給船軍食 以煙戶米 備凶年賑貸者數人 政府以 其言爲便 請行之 (둔전과 연호미의 법을 세웠다. 처음에 임금이 구언 하여 의정부로 하여금 채택 시행케 하니, 전조의 둔전, 연호미의 법을 복구하기를 원하여, 둔전의 소출로는 선군의 식량으로 주고, 연호미로는 흉년에 진대할 것으로 대비하자고 하였다. 정부에서 수인이 그 말을 편하게 여겨, 이것을 시행하기를 청한 것이었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조선 초기 조선왕조는 미곡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 황에서 관료의 녹봉 지급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 되자 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재정 구조 개혁 및 국고 확보 에 매진하였다(So 2021). 연호미는 흉년을 대비한 진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각 호마다 거두던 미곡이었다.

    3) 콩(豆)에 관한 사회적 이슈

    조선시대 米(쌀)과 연관된 가장 밀접한 곡식은 豆(콩)이었다. 豆(콩)과 연관된 기사의 전체 명사수는 1,650개였고, 어 휘 밀도(vocabulary density)는 0.422이며, 가독성 지수 (readability index)는 –2.920이었다<Figure 6>. 콩과 연관된 대표적인 주제어와 빈도는 豆(85), 米(76), 석(64), 임금(14), 사람(14), 종이(13), 부의(13), 계(13), 진제(12), 병(12), 黃豆 (10), 품(10), 천(10), 말(10), 호조(9), 근(9), 고을(8), 창고 (7), 장(7), 자(7), 쌀(7), 필(6) 순이었다. 콩과 관련된 가장 밀접한 단어는 쌀(米)임을 알 수 있고 그 외 석(石), 품(品), 말(斗), 근(斤), 장(張), 필(必), 병(甁) 등과 같은 과세나 곡류 등을 측량하기 위한 부피 단위들도 빈도수가 높아 콩과 밀접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콩의 종류 중 대두(黃豆)가 대표임을 알 수 있다.

    곡식 측량 단위 이외 콩과 밀접한 핵심단어는 종이(紙), 부의(賻儀), 진제(賑濟, 흉년 때 굶주린 사람에게 곡물을 무상으로 지급하던 정책)이다. ‘태종 5년(1405년) 2월 12일 判恭 安府事金乙貴卒 停朝三日 賜賻米豆幷五十石 紙一百卷 (판공 안부사 김을귀가 졸하니,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부의로 쌀과 콩 50석과 종이 1백 권을 내려 주었다). 태종 11년 (1411년) 11월 25일 豐海道監司報以各官所儲陳豆五百石 合 醬以賑飢民 從之 (풍해도 감사가 보고하였다. 각 고을에 쌓여 있는 묵은 콩 5백 석으로 장을 담가서 굶주리는 백성을 진제하겠습니다.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Kim(2019)의 연구에서도 조선중기 콩은 두부, 다양한 두장(豆醬)의 원료일 뿐만 아니라 피란과 흉년 상황 속에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며, 길을 이동할 때 쓰는 노 자(路資)로 이용되었고, 소액 물품을 결제할 수 있는 화폐로 도 활용되었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 속 콩은 공동체 결속을 위한 화폐로써 부의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가장 기본 필수품인 진제를 위한 곡물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에서는 텍스트 빈도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조선왕 조실록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곡류군 물종 현황, 왕조별 기록 현황과 대표 곡식류를 중심으로 워드 클라우드 분석해 봄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곡류에 관한 인식 특성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체 곡물 출현 빈도는 101,842건 이며, 곡류 51,337건(50.4%), 두류 50,407건(49.5%), 종실류 98건(0.1%)으로 곡류 중 穀(곡), 雜穀(잡곡), 兩麥(양맥), 黍粟 米(서속미) 등 집합명사는 총 17,240건으로 전체 곡류 중 33.6%를 차지하였고, 세부 물종 중 가장 많이 기록된 품목 은 쌀(37.1%)이었으며, 피(11.9%), 조(11.3%), 보리(4.5%), 기장(0.8%), 밀(0.6%), 메밀(0.1%), 율무(0.05%) 순이었다. 두류 중 집합명사는 49,748건(98.7%)이었고, 종실류는 荏子 (임자) 82건, 蓮子(연자) 9건, 眞荏子(진임자) 7건이었다. 세기별 곡류 출현 빈도는 15세기, 18세기, 17세기, 16세기, 19 세기 순이었고, 두류 출현 빈도는 15세기, 17세기, 18세기, 16세기, 19세기 순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곡류 기록 빈도수가 생성된 왕대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정조, 15 세기 성종, 16세기 중종, 18세기 영조 등으로 이들 5대 왕이 전체의 44.2%를 차지하였다. 워드 클라우드를 통한 곡류와 연관된 주제어 빈도를 분석한 결과 穀(곡)(145), 禾穀(화곡) (86), 백성(43), 錢穀(전곡)(36), 손상(33), 米穀(미곡)(29) 순이었고, 쌀과 연관된 대표적인 주제어 빈도는 米(191), 석(77), 豆(55), 백성(45), 米穀(37), 사람(34), 戶(33), 품(32), 필 (27), 저화(27), 연호미(27) 순이었다. 콩과 연관된 대표적인 주제어 빈도는 豆(85), 米(76), 석(64), 임금(14), 사람(14), 종이(13), 부의(13), 계(13), 진제(12), 병(12), 黃豆(10) 순 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실록 텍스트 분석을 통하여 조선시대 곡류와 두류 출현 비율이 50.4:49.5%로써 조선시대 식생활 에서 두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고, 한국 음식 문화에서 두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곡류 세부 물종 중 쌀의 출현 빈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 조선시대 곡류 중 쌀이 주식의 대표 곡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 다. 왕조별 기록 현황을 살펴보면 15세기 곡류, 두류 모든 곡 류군의 출현 빈도가 가장 높았으며 이는 15세기 비교적 안 정된 기후 특성과 국가 주요 제도 정비와 과학적 농법 도입 그리고 현물 공납제 시행에 따른 생산 물자 파악을 위한 기 록문화 발달 등을 원인으로 찾을 수 있었고, 두류의 출현 빈도는 17세기에 두 번째로 높았으며, 이는 두류 수요 증가, 종류의 다양화, 재배지 확장에 따른 활용의 증가라고 볼 수 있었다. 곡류 출현 빈도는 18세기에 두 번째로 높았으며, 이는 조정의 능동적인 대응책인 대동법으로 화폐와 환곡이 세제 변동과 연동됨으로써 곡류 생산과 유통량이 한층 증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왕대의 곡류에 대한 관심도는 5세기에 걸쳐 고루 분포함을 알 수 있었다.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통한 곡류 관련 사회적 이슈들을 시각화하였는데,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곡식은 쌀(米)과 콩(豆)이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 곡식은 곧 돈(錢)이며, 국가 체계 유 지를 위한 근본적인 재원(財源)으로서 인식이 우세하였다. 농업사회인 조선은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의 손상, 소출의 감 소로 인한 백성의 곤궁, 조세 저항으로 인한 국가 체제 위협을 가장 염려하고 있었으며, 콩(豆)은 쌀과 함께 대표 곡물로 인식되었으며, 공동체 결속을 위한 화폐로써 부의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가장 기본 필수품인 진제를 위한 곡물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2022년도 호서대학교의 재원으로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2022-01910001)이며 이에 감사드립니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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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earch analysis proced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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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ppearance of the grain group with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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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ins Interest Index (GII) by kings during Ch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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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d cloud on grain (穀) in Choseonwangjosil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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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rd cloud on rice (米) in Choseonwangjosilrok

    KJFC-38-1-26_F6.gif

    Word cloud on bean (豆) in Choseonwangjosilrok

    Table

    Data collection by web-crawling

    Classification and frequency of grains inChoseonwangjosilrok

    Components and Grains prevalence inChoseonWangjoSilrok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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