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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5 No.1 pp.14-27
DOI : https://doi.org/10.7318/KJFC/2020.35.1.14

Study on the 16th century Noble Lineage’s Rites and Seasonal Food Recorded in the Shaemirook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The Research Institute for Basic Sciences, Hoseo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Hoseo University, Hoseo ro 79-20, Asan, Chungnam 31499, Korea Tel: +82-41-540-9663 Fax:+82-41-540-5638 E-mail: Kimmihye92@hoseo.edu
November 19, 2019 December 26, 2019 December 31, 2019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document Shaemirok, which recorded the daily lives of people from Jangsoo (長水), Junrado to Pyeongang (平康), Gangwondo, from 1591 to 1601. This book represents the mid Josun dynasty Noble Lineage’s diary together with Muk-Jae (默齋日記). This study analyzed the Shaemirok of Noble lineage’s seasonal food and traditional Korean food through the lens of the Shaemirok. The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節祀) and Julshik (節食) during the spring, as follows: Sakil (中和節) five times on February 1, Dapchungil (Samjiknal) six times on March 3, Hanshikil five times on March 8, and Deungsuk (Chopile) three times on April 8. Samjiknal on March 3, which is mentioned six times, is the spring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The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and Julshik during the summer, as follows: Danyang (Danoh) eight times on May 5 Youdoojul six times on June 15, Chilsuk five times on July 7, and Bakjoong five times on July 15. Dangohjul on May 5, which is mentioned eight times, is the summer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The Shaemirok’s author recorded Julsa and Julshik practiced in the autumn eight times annually. Joongangjul, which is mentioned six times, is the autumn Julsa and Julshik that show up most frequently within the Shaemirok’s records. Shaemirok recorded that Josun people practiced the Julsa and Julshik during the winter, as follows: Dongji during November, Sul on January 1, and Daebohrum on January 15 Dongji and Sul, Daebohrum are mentioned eight and seven times, respectively, in the Shaemirok. The people of the Four Main Families of the mid-period Josun practiced more Julsa and Julshik in the winter than in any other season. The Josun people stored the most food during winter, thus had the highest abundance of food. This seasonal factor explains Dongji and Sul, Daebohrum’s unusual frequency with which they were celebrated.



「쇄미록(鎖尾錄)」에 기록된 16세기 사대부가 절사(節祀)와 세시음식(歲時飮食) 연구

김 미 혜*
호서대학교 생명보건대학 식품영양학과 및 기초과학연구소

초록


    I. 서 론

    최근 한국전통음식의 정체성 확립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 기 위한 콘텐츠 소재로서 조선시대 일기형식 고문헌의 가치 가 주목되고 있다(Cha 2007;Kim 2007;Joo 2017). 일기류 는 개개인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생활에 관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대 음식생활의 특징을 더 설 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Shin 2010).Seungjeongwonilgi (承政院日記),Ilseonglok (日 省錄)등 일기류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조선 시대 기록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Kim 2013). 한 사람이 특정한 음식을 선택하여 먹고 마시려는 행위 속 에는 그가 속한 집단의 수많은 문화적 상징과 규칙이 담겨 져 있다(Joo 2006). 따라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식생활 기록 을 분석해 봄으로써 당시대의 음식문화 정보를 읽어 내는 것 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조선 중기 생활 사의 보고(寶庫)로써 사대부들의 삶과 생각이 구체적으로 기 록된Shaemirok (鎖尾錄)의 가치가 주목 받고 있다. Shaemirok (鎖尾錄)원본은 모두 7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선조 24(1591)년 11월 27일부터 시작하여 선조 34(1601)년 2월 27일까지 만 9년 3개월간의 기록이다. 각 책의 수록기간 과 분량은 각각 다르나, 1책부터 3책까지는 거의 1년 동안 쓴 일기로 되어 있고, 4책은 2년 1개월, 5책은 7개월, 6책은 1년 4개월 그리고 7책은 2년 2개월 동안 쓴 일기로 구성되 어 있다(Chung 2003).Shaemirok (鎖尾錄)이라는 제목은 일기 마지막 부분에서 밝히듯이 ‘쇄혜미혜(鎖兮尾兮)’의 줄 임말로 난리 중에 피란하느라 고생하던 피란록(避亂錄)이다. 저자 오희문(吳希文 15391601)의 학문은 뛰어났으나 관직을 하지 않은 사대부였다.Shaemirok (鎖尾錄)은 거의 매일 의 일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개인일기이면서 생활일기 로서 16세기 당시 생활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Shin 2012).

    1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 특정한 날을 가려서 관습적, 반 복적으로 행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 의 삶의 모습이 잘 응축되어 있다(Kim 2010). 세시풍속은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 발생하였거나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 류를 통하여 유입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풍토와 배경에 맞게 독자적인 특색을 가지고 형성되었기 때문에 세시풍속을 통 하여 한 시대의 역사성과 그 지역의 독특한 생활풍습을 인 식 할 수 있다. 반복된 생활습관은 오랜 시간을 경과하면서 다양한 문화로 고찰될 수 있다. 세시풍속에서 빼 놓을 수 없 는 요소가 바로 음식인데, 세시음식(歲時飮食)은 친화력을 높 이고 집단의 동질성, 소속감, 화합의 매개체로서 그 효과가 크다(Lee 2012). 세시음식에 관한 기록은 주로 조선시대 후 기 세시기(歲時記)를 통하여 전해졌다. 또한 그 동안 조선시 대 세시음식에 관련된 연구는 주로 19세기 초반에 저술된 GyeongdoJapji (京都雜誌)(Yudeukkong (柳得恭), 1800’s), Yeolyangsesigi (列陽歲時記)(Kimmaesun (金邁淳), 1819), Dongguksesigi (東國歲時記)(Hongsekmo (洪錫謨), 1849) 와 같은 세시기류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19세 기 서울 위주의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조선시대 전 체의 것으로 확대하는 것은 비판되고 있고 최근 17세기 일 기 분석을 통한 당시 사대부가의 세시음식을 고찰하는 연구 가 발표되었다(Joo 2017). 반면Shaemirok (鎖尾錄)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 일기에 나타난 꿈의 기록과 의미 연구 (Shin 2015), 조선시대 사노비의 사역영역과 사적영역 연구 (Chung 2011), 조선중기 가족부양으로 본 장자의 역할과 가 의 범위 연구(Park 2007),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 족의 생활문화 연구(Kim 2007), 16세기 동물성 식품의 소비 현황 연구(Cha 2007), 조선 후기 의약생활의 변화 연구(Sin 2006) 등 16세기 생활사의 전반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는 연 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생활 풍속 중 가장 중요한 위치와 비중을 차지하는 세시음식에 관한 고찰은 전무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전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591년 부터 1601년 10여년 기간 동안 전라도 장수(長水)에서 강원 도 평강(平康)까지 장소를 이동하며 거의 매일의 일상을 기 록한 16세기 생활사의 보고인 Shaemirok (鎖尾錄)분석 을 통하여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세시음식을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대상

    Shaemirok (鎖尾錄)은 16세기 사대부인 오희문(吳希文 1539~1601)이 쓴 개인일기로써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2년 에 한국 사료총서 제 14집으로 간행하였고, 1990년 해주오 씨 추탄공파 종중에서 번역문과 활자화한 원문을 덧붙여 2 책으로 간행하였으며, 1991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 1096호로 지정되었다(Chung 2003). 본 연구 분석 사료는 원 본을 중심으로 해주(海州) 오씨 가문에서 지원하고 비영리사 단법인에서 번역 발간한 국역 Shaemirok (鎖尾錄)(Lee MS ed. 2014) 2권을 2차 자료로 사용하였다.

    Shaemirok (鎖尾錄)은 피난 생활을 중심으로 만 9년 3 개월 동안의 생활상을 일기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Shin 2012). 1591년 11월 서울을 출발하여 경기도 용인, 양산, 충 청도 목천을 거쳐 전라도 순천, 강진, 장수, 무주, 곡성, 순청, 보성, 영암, 화순, 남원 등 남도지역 일대를 혼자 여행하다가 산속에 피신하게 되고, 이후 가족과 만나 전라도 장수와 충 청도 홍주, 임천 그리고 강원도 평강에서 피난생활을 하며 일기를 기록하였다. 오희문의 피란 이동경로는 <Figure 1>과 같다. 임진왜란을 맞아 오희문은 안전하면서도 연고가 있던 지역을 중심으로 피난 생활을 하였다. 피난 장소와 거주 기 간을 중심으로Shaemirok (鎖尾錄)구성을 살펴보면 <Table 1>과 같다.

    2. 연구 방법

    Shaemirok (鎖尾錄)문헌 고찰 연구방법은 내용분석 (Contents Analysis)을 통하여 이루어졌다(Anderson et al. 2001;Thayer et al. 2007;Park & Woo 2012). 내용분석은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표면적 정보의 기술이 아닌 그 이면의 심층 내용을 추론해 내고자 하였으며, 이 추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와 과 정을 거치는 것이다(Poldner et al. 2012). 따라서Shaemirok (鎖尾錄)문헌연구는 국역으로 번역된 2차 사료를 분석하 여 원문을 통하여 검증하였고, 일기에 기술된 절사(節祀)일 을 중심으로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모든 식품과 음식을 추 출하여 절기별로 분류 하였다. 추출된 식품과 음식명을 중심 으로 일기에 기록된 사건을 참고하여 해석하였으며, 관련 시 대적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그 이면의 심층 내용을 추론 해 내고자 하였다.

    III. 결과 및 고찰

    Shaemirok (鎖尾錄)에는 계절에 따른 절기를 속절(俗節) 혹은 가절(佳節)이라고 표현하였고, 주로 누구와 제사를 지 냈다고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속절에 제사를 지 내게 된 연유를 Choi(2017)는 16세기 이언적(李彦迪)의 Bongsunjabeui (奉先雜儀)내용을 빌어 ‘속절 제사는 인 정(人情)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예(禮)를 정하는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시속의 명절이나 절기가 돌아오면 후손은 우선 조 상을 생각하여 그때의 시식(時食)을 마련해 올린 후 잔치를 열어 즐기는 것을 바른 도리로 삼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일기 대부분의 기록들이 제사를 위한 제수(祭需)와 제물(祭物)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조리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절일(節日)에 기록된 제물(祭物)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조선 중기 절사와 세시풍속 음식을 고 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봄(春 2-4月) 절사(節祀)와 세시음식(歲時飮食)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1593년부터 1600년까지 의 오희문가 절사(節祀)와 절식(節食)은 <Table 2>와 같다. 1593년부터 1600년 사이 봄철 절사의 절식은 2월 1일의 삭 일(中和節)이 5회, 3월 3일의 답청일(삼짇날)이 6회, 3월 8일 한식일이 5회, 4월 8일 등석(초파일)이 3회 기록 되었다. 봄 철 명절 중 3월 3일 삼짇날의 세시음식이 가장 많이 기록되 어 삼짇날이 봄철의 손꼽히는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2월 1일 삭일(朔日)은 ‘중화절(中和節)이라 하여 중 국 당나라에서 하던 일을 정조(正租) 병진년(1756)부터 본떠 서 시행하는 것’이라고 19세기 풍속서인Dongguksesigy (東 國歲時記)에서는 표현하였다(Choi DL ed.Donggooksesigy (東國歲時記)2008). 하지만 그보다 200년 앞선 시기 기록 인Shaemirok (鎖尾錄)에 의하면 1595(乙未)年 二月 初 一日에는 ‘떡과 탕과 구이를 가지고 신위 앞에 술을 올렸다 (作餠與湯炙, 奠盃神位前)’고 하여 16세기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미 2월 1일에 절사(節祀)로 지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96(丙申)年 二月 初一日에도 ‘오늘은 곧 속절이다. 관청에 서 약밥과 국수와 떡, 술과 안주를 대접했다. 또 노래하는 관 비를 불러 혹 술을 마시고 혹 노래를 부르다가 밤이 깊어서 파하고 잤다(今日乃俗節, 官供藥飯餠酒肴, 又招唱歌官婢, 或 飮或歌, 夜深而罷宿)’고 하여 조선 중기 삭일 절사 풍습은 특 정 가문만의 행사가 아닌 관청에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연회를 베푸는 지역 공동체 축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특히 사대부들의 친목도모 형식의 성격이 짙은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즉Dongguksesigy (東國歲時記)기록과는 달리 2월 1일 삭일 절사(節祀)와 명절 풍습은 16세기 이전부터였 음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초의 일기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의InJeilrok (忍日錄)에서는 2월 1일 향교에 서 석존(釋尊)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Joo 20017). 따라서 16-17세기 삭일(朔日) 음식 나눔 풍습은 관청이나 향교 등 사 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유림들의 공동체 강화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1595년부터 1596 년의 삭일 절식(節食)으로는 떡, 탕, 구이, 술, 국수, 안주, 약 밥 정도가 되겠다. 약밥(藥飯)은 정월대보름의 대표 절식이 지만, 대보름 당일에만 먹는 것이 아니라 2월 삭일의 절식으 로도 기록된 바와 같이 1, 2월 한겨울의 별식인 것임을 알 수 있다. 1597년 2월 1일은 오희문의 막내딸인 단아가 사망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에 1598년부터 1600년까지 2월 1일 삭일의 음식과 관련된 기록은 세시음식이라기보다는 딸 의 제사 음식을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

    Shaemirok (鎖尾錄)에서 3월 3일을 삼삼가절(三三佳節) 이라 표현하였는데, 1600(庚子)年 三月 初三日 ‘오늘은 곧 가 절이라 떡을 만들어 신주께 차례를 지내는데 윤해의 집 식 구도 역시 와서 모였다(今日乃佳節也, 造餠行茶禮于神主前, 生員(允諧)一家亦來會)’, 1599(己亥)年 三月 初三日 ‘삼삼가 절인데 다만 술, 떡, 꿩 구이와 대구로 안주를 해서 신주께 드렸다(三三佳節, 而只以酒, 餠, 雉炙, 又以大口爲肴)’, 1598 (戊戌)年 三月 初三日 ‘오늘은 곧 속절이어서 떡을 가지고 신 주께 제사를 드렸다(今日乃俗節, 設餠奠神主前)’, 1597(丁酉) 年 三月 初三日 ‘답청가절이다. 관아에서 준비한 떡과 면, 삼 색실과와 편육, 노루고기 적 등 제물을 먼저 신주 전에 바치 고 차례 후 과일과 떡, 국수를 소반에 받쳐 상하 식구들과 같이 먹었다(踏靑佳節, 官備餠, 三色實果及切肉, 獐肉炙等物, 先奠神主, 茶禮後, 又供盤果餠, 上下共之)’고 하였다. 이와 같 이 16세기 삼월 삼짇날 조선 사대부 집안에서는 절사(節祀) 를 지냈으며 온 가족이 모여 음식 나눔 행사를 하는 큰 명절 풍습이 있었다. 삼짇날 제수(祭需)로는 병어, 대구와 같은 해 산물과 과실류, 꿩고기와 같은 수조육류 등이 기록되어 있 고, 제물(祭物)로는 떡, 절병, 면, 국수, 편육, 노루고기 적, 방 어구이, 대구 안주 등이 있다. 삼짇날 대표적 세시음식으로 는 Dongguksesigy (東國歲時記)의 ‘이날 진달래꽃을 따 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花煎)이라 한다(Lee 2012)’는 기록과 같이 화 전(花煎)이 있다. 하지만Shaemirok (鎖尾錄)에서는 1593 년부터 1600년까지의 삼짇날 절식(節食)으로 화전(花煎)을 언 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1596(丙申)年 三月 十八日 ‘이광춘의 사랑으로 갔더니, 마침 화전을 지져 대접하므로 또 백주 각 각 3잔씩을 마시고 파했다(因就李光春科廊, 適花煎饋之, 又 飮白酒, 各三盃而罷散)’, 1599(己亥)年 三月 二十五日 ‘화전 을 부쳐서 천신한 후 상하가 함께 먹었다. 다만 기름 얻기가 몹시 어려워서 겨우 얻어서 천신했다(煎花奠薦後, 上下共之, 但得油極難, 僅得以薦神)’와 같이 16세기 중엽 화전(花煎)은 삼월 삼짇날 명절에만 먹는 특정 음식이라기보다는 봄에 먹 는 대표적인 별식(別食)으로써 인식됨을 알 수 있다.

    한식(寒食)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동지를 기준으로 정한 명절이기 때문에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한 식 절기는 모두 다른 날이나 보통 2월 말부터 3월 초 무렵 이다. 한식에 관한 유래는 크게 개자추설, 개화 의례설, 화재 예방설 등으로 세분할 수 있는데(Lee 2013), 모두 불을 금하 는 명절이라는 뜻이다. 1596(丙申)年 三月 初八日 기록에 의 하면 ‘한식절이다. 윤해가 광주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지 모르겠다. 또한 평강에서 제물을 마련해 보내는지 모르겠 다. 이곳에서는 쑥떡을 만들어 올리고, 뱅어, 숭어탕, 위어, 숭어, 생치구이로 신위 앞에 제사를 지내고, 나머지는 일찍 이 죽고 자식이 없는, 공이 있는 노비들의 제사도 지내 주었 다(寒食節也, 生員(允諧)未知往祭廣州墓所耶, 抑未知平康祭物 備送耶, 此處作艾餠, 白魚秀魚湯及葦魚, 秀魚, 生雉炙, 行茶 禮, 于神位前, 餘及曾死無子息有功奴婢等處’고 하였다. 위의 기록처럼 한식은 자식이 없는 조상이나, 공이 있는 노비들의 제사까지도 지내주는 포용성이 큰 명절이라 하겠다. 한식의 세시음식으로Sesipungyo (歲時風謠)(Lim GJ ed. 1993) 에서는 ‘송편을 찌고 막걸리를 처음 거르며(松蒸白酒初)’와 같이 송편을 꼽고 있다. 하지만 16세기Shaemirok (鎖尾錄) 에서는 한식의 절식으로 송편이 아닌 애병(艾餠 쑥떡)을 기 록하고 있다. 1599(己亥)年 三月 十一日 ‘한식이다. 첫닭이 울 때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께 올리고, 다 음으로 아버님께 올리고, 다음으로 죽전 숙부 양위분께 올리 고, 뒤에 죽은 딸에게 지냈다. 그런 후에 기구를 거두어 가 지고 동쪽 집으로 가서 차례를 올리는데 찬이 없어서 다만 면, 떡, 밥, 국, 삼색실과, 두 가지 육탕, 소탕(素湯), 삼색어 육구이, 채소구이와 채소로 지냈다(寒食節日也, 鷄初嗚行祭, 先奠祖考, 次奠先君, 次奠竹前叔主兩位, 後及亡女, 然後撤器 具, 移東家而行奠, 但無饌物, 只餠, 飯羹, 三色實果, 兩毛肉湯, 一色素湯, 三色魚肉炙, 一色素炙, 凡盤批菜物爲奠矣)’ 하였다. 조선 중기 사대부가에서 한식에는 신위 앞에서 제사를 지내 고 산소를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는 묘제(墓祭)를 지냈다. 묘 제(墓祭)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지내는 제사이다. 16세기 Bongsunjabeui (奉先雜儀)에서 이언적(李彦迪)은 당시의 시속으로 정조, 한식, 단오, 추석에 모두 묘제가 이행되고 있 음을 언급하였다.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새벽에 사당에 가 서 음식을 올린 뒤 묘소 앞에 나아가 전(奠)을 올리고 절을 한다. 만약 묘소가 멀다면 이삼일 전에 묘소에 가서 재계하 고 잠을 잔 뒤에 전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도 괜찮다(Choi 2017)고 하였다.Shaemirok (鎖尾錄)에서는 1596(丙申)년 부터 1600(庚子)년까지 매해 한식날 절사(節祀)에 대해 기록 하고 있으며, 제수(祭需)로는 쌀, 찹쌀 등의 곡류와, 대구, 청 어, 숭어, 절인방어, 뱅어, 위어와 같은 생선류, 꿩(생치, 건 치), 우심과 같은 육류, 삼색실과와 같은 과일류, 채소류, 간 장, 꿀과 같은 양념류, 잣, 개암과 같은 견과류 등이 있다. 제 물(祭物)로는 면, 국수, 밥, 국, 떡, 쑥떡, 술, 닭탕, 삼색탕, 어탕, 소탕, 숭어탕, 생치구이, 삼색어육구이, 생선구이, 포, 노루포 등이 기록되었다.

    4월 속절 행사로 대표적인 날이 등석(燈夕)이다. 사월 초파 일은 부처님 오신 날로 삼국시대부터 전승되고 있으며 등불 을 켜므로 등석이라 한다(Lee 2012).Shaemirok (鎖尾錄) 에서는 1596(丙申)年 四月 初八日 기록에 ‘속절이어서 엽병 을 쪄서 천신했다. 마침 임참봉의 종 복금이 생도미 1마리를 보내서 탕을 만들어 함께 올렸다(俗節, 烝葉餠薦新, 適林參奉 婢福今送生道味魚一尾, 作湯而幷薦)’고 하였다. 1598(戊戌)年 四月 初八日 ‘오늘은 곧 속절이다. 떡을 만들어 먼저 아버님 께 제사 지내고 다음으로 죽은 딸에게 지냈다. 어육탕에 어 육구이, 생전복구이로 제사를 지냈다(今日及俗節, 造餠, 先奠 先君, 次及六女, 兩色魚肉湯, 魚肉炙, 生鰒炙薦之)’ 하였다. 이 와 같이 등석 절식에 대표는 증엽병(烝葉餠)으로 이는 찐떡 이다. 당귀싹인 승검초를 제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19 세기 말엽 조리책인Siuijeonseo (是議全書)(Lee HJ ed. 2004)에 승검초편은 ‘맨 쌀가루에 꿀물을 진하게 타서 버무 려 도드미로 쳐서 승검초 가루를 섞어 안치는데 켜를 매우 두껍게 하고, 고명은 대추와 밤을 채쳐 많이 뿌리며 잣도 뿌 린다’ 하였다. 엽병은 승검초이외에도 봄에 흔히 구할 수 있 는 쑥도 자주 이용 되었다.Shaemirok (鎖尾錄)1599(己 亥)年 四月 初七日 ‘현의 문안이 왔는데 제사에 쓸 중계를 만 들어 보냈다. 녹두가루 2되도 역시 보내왔다. 내일은 곧 절 일이요, 죽은 딸의 담사이기 때문에 찬을 준비하여 제사 지 내려 한다(縣問安人入來, 祭用中桂造送, 菉豆末二升亦來, 明 日及節日, 而又且亡女日, 故備饌欲奠爾)’고 기록되었다. 중박 계는 17세기 조리서인Umsikdimibang (閨是議方)(Han BR et al ed. 2004)에 등장하는 유밀과의 한가지로 밀가루를 꿀 또는 조청과 기름으로 반죽하여 긴 네모꼴로 베어 기름에 지 져 만들며 흔히 제사에 쓰이고 중계(中桂), 중계과(中桂果)라 고 한다. ‘듕박겨(중배끼) 맛질 방문-중배끼는 가루 한 말에 꿀 한 되, 기름 한 홉, 끓인 물 칠 홉을 합하여 무지근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Shaemirok (鎖尾錄)사월 초파일 제수(祭需)로는 햇고사리, 고사리, 당귀초와 같은 새 싹 채소류, 여항어와 같은 생선류, 꿩, 닭과 같은 가금류가 기록되었다. 제물(祭物)로는 떡, 엽병, 중박계, 생도미탕, 제 주, 어육탕, 어육구이, 생전복구이가 기록되었다. 대표적 등 석 음식으로는 봄에 나온 새싹을 넣어 찐 엽병과 유밀과인 중박계를 꼽을 수 있다.

    2. 여름(夏 5-7月) 절사(節祀)와 세시음식(歲時飮食)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여름 절사와 절식은 <Table 3>과 같다. 1593년부터 1600년 사이 여름 세시음식 에 관한 기록은 5월 5일 단양(단오)절 8회, 6월 15일 유두절 6회, 7월 7일 칠석 5회, 7월 15일 백중이 5회 기록되었다. 이를 통하여 5월 5일 단오절이 여름철 가장 중요한 명절이 었음을 알 수 있다.

    단오(端午)는 모내기를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 아 즐기는 명절로 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여 겼다(Lee 2012). 단오는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로 지역과 집안에 따라 약초를 채취하고 떡을 만들어 제사를 지 낸다. 이때에 뜯은 쑥은 약용과 함께 식용으로 쓰이며, 특히 단오절식인 쑥떡의 재료로 활용된다(Kim 2018).Donggooksesigy (東國歲時記)(Choi DL ed. 2008)에 의하면 ‘단오를 수리날(戌衣日 술의일)이라고 부른다. 이날 쑥을 뜯어 절구 에 찧어 멥쌀가루에 넣고 초록색이 나도록 반죽을 하여 수 레바퀴 모향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이 날을 수리 날이라고 한다’ 하였다.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5 월 5일 단양절 제수로는 차좁쌀, 목미 등의 곡류, 잣, 개암과 같은 견과류, 문어, 조기, 대구, 해삼, 가자미와 같은 생선류 그 밖에 채소류가 있다. 제물로는 떡, 면, 국수, 술, 현주, 감 주, 포, 혜, 뱅어젓, 새우젓, 민어구이, 반갱, 삼색 어육탕, 삼 색 실과, 송편, 삼색어육구이, 천어구이, 천어탕 등이 있다. 이처럼 오희문은 단오 세시음식을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 으나 보통의 차례처럼 제수를 장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1600 (庚子)年 五月 初四日 기록에 의하면 ‘인아가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 90여 마리를 잡았는데 내일 차례에 탕과 구이를 만 들련다(麟兒持魚綱, 獵得九十餘尾, 明日茶禮, 欲爲湯炙矣)’고 하였다. 五月 初五日 기록에 의하면 ‘단양절이다. 다만 저민 고기, 천어로 탕과 구이를 만들어 차례를 지냈다(及端陽節也, 家無饌物, 只以切肉, 川魚, 湯炙行茶禮)’고 하였다. 이와 같이 단오절에는 냇물에서 민물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천렵(川獵) 풍속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유두(流頭)는 ‘동류두목욕(同流頭沐浴)’에서 유래하며 신라 시대부터 전해오는 풍속이다(Lee 2012).Shaemirok (鎖尾 錄)에 기록된 6월 15일 유두 제수로는 밀가루, 찹쌀, 팥, 참 보리 등의 곡식류와 꿩, 새끼노루와 같은 육류, 오이와 같은 채소류, 청참외 등과 같은 여름철 과일, 토장, 꿀과 같은 양 념류 그리고 송화가루 등이 있다. 제물로는 술, 소주, 포, 식 혜, 탕, 노루고기탕, 육탕, 구이, 어육구이, 꿩구이, 닭찜, 떡, 과일(청참외), 토장수단, 수단, 상화병, 전병 등이 있다. 유두 를 기록하고 있는 6회 모두 유두 세시음식으로 수단(水團)을 기록하고 있다. 1596(丙申)年 六月 十五日 ‘오늘은 계절 따 라 차례를 올리는 속절이다. 간신히 얼음 덩어리를 구해서 수단을 만들어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고 차례를 올렸다(及俗 節也, 艱得氷f神主)’. 18세기 서울의 문신 이었던 조운종(趙雲宗; 1783~1820)이 지은 Sesigysok (歲 時記俗)에서도 ‘이 날은 쌀가루를 쪄서 둥글게 만 다음 가 늘게 썰어 꿀물에 넣고 얼음을 띄우니, 이를 수단(水團)이라 하고 사당에 올린다’고 하였다.Shaemirok (鎖尾錄)1597 (丁酉)年 六月 十五日 ‘속절이다. 관에서 상화병 1행담을 쪄 왔다. 이곳에서도 역시 토장수단(吐醬水丹)과 포, 식혜, 탕, 구이, 과일 등을 갖추어 신주 앞에 차례를 지내고 상하가 같 이 먹었다(俗節也, 官備床花餠一蒸來, 比處亦備吐醬水丹, 脯, 湯, 炙, 奠果等物, 行茶禮于神主前後上下共之)’ 하였다. Shaemirok (鎖尾錄)에는 유두절 절식으로 토장수단이 등 장하는데 15세기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Sangayorok (山家要錄)(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ed. 2004)에 토장에 관한 기록이 있다. 토장(吐醬)은 ‘밀가루 1되와 싸라 기 1홉, 녹두가루 1홉을 물에 반죽하여 판에서 민다. 길이 2 치에 너비 1치 반으로 자른 다음 대광주리에 담아 끓여서 익 으면 물에 헹구어 차갑게 식힌다. 들깨즙과 간장에 여러 향 채, 기름진 고기, 계란, 편으로 썬 표고를 음식에 넣어서 먹 는다’고 하였다. 조선 중기 유두절의 절식으로 또 다른 음식 은 상화병이다. 상화병(霜花餠) 만드는 법은Kyuhapchongseo (閨閤叢書)(Jung YW ed. 2008)에 따르면 ‘밀가루를 깁체 에 곱체 쳐라. 삭임을 만들려면 밀기울 죽 쑤어 가루 누룩 두줌 버무려 전날 저녁에 넣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걸러라. 이렇게 만든 삭임을 가루에 서로 반씩 섞어 그릇에 담아 더 운데 놓고 두껍게 덮고 바람을 들이지 말라. 이렇게 반일을 하면 부풀어 많아지고 벌의 집 같거든 양념한 거피팥 꿀소 를 넣되 위는 두껍게 덮고 밑은 얇게 빚어라’고 하였다.

    칠석(七夕)은 견우와 직녀의 사랑과 이를 만나게 하려는 오작교에 관한 민담이 있는 속절로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칠석날, 고려시대 왕은 견우와 직녀성에 제사를 올 렸고 관리들에게는 휴가를 주었고, 민가에서는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에게 길쌈과 바느질을 잘하게 해 달라고 비는 걸 교(乞巧) 풍속과 옷을 말리는 풍속이 있었다(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2003). 지역에 따라 칠석제, 용왕 제 같은 제사를 지내거나 가정에서는 사당에 천신하며 밀국 수, 밀전병, 제철과일 등 시절음식으로 안주 삼아 술을 갖추 고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하였다(Park 2017).Shaemirok (鎖 尾錄)에 기록된 7월 7일 칠석 제수로는 가지, 두부, 참기름, 닭, 갈비, 절육, 꿩, 노루, 수박, 참외, 과일 등이 있고, 제물 로는 술, 소주, 떡, 절병, 생선구이, 목말전병, 닭구이, 닭탕, 집돼지찜, 찐닭, 노루고기탕 등이 기록되어 있다. 1597(丁酉) 年 初七月 七日 ‘오늘은 가절이어서 관에서 꿩, 닭 각각 2마 리씩을 보냈으므로 즉시 탕을 만들고 구웠다. 또 이곳에서 목말로 전병을 만들어 먼저 신주에 올리고 상하가 나누어 먹 었다(今日及佳節也, 官備采花及雉, 鷄各二首而來, 作湯炙, 又 於比處, 以木末煎憑餠, 先奠神主後, 上下分喫)’. 이와 같이 칠 석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닭탕, 목말전병(메밀전병) 등이 있 는 것을 알 수 있다. 1597년은 오희문 가문이 강원도 평강에 머무른 시기로서 강원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메밀로 전 병을 지져 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메밀가루를 이용하여 떡을 만든 기록은 조선시대 전기 Sangayorok (山家要錄) 에 잡병이 소개되어 있고, 조선중기에는Domundaijac (屠 門大嚼)의 석이병과Umsikdimibang (飮食知味方)젼화 법,Joobangmun (酒方文)의 곳전, 겸절편법 등이 있다 (Oh 2009).

    백중(百中)은 불교적 요소가 강한 명절로서 Donggooksesigy (東國歲時記)에 ‘우리나라 풍속에서 15일을 백중날 이라 일컫는다. 이로써 사람들은 이날 저녁 달밤에 채소, 과 일, 술, 밥을 갖추어 놓고 죽은 어버이의 혼을 부른다’고 하 였다(Choi DL editor. 2008).Shaemirok (鎖尾錄)에 기록 된 7월 15일 백중의 제수로는 중미, 당미, 밀가루, 율무와 같 은 곡식류와 외, 수박과 같은 과실류, 가지와 같은 채소류, 꿩과 같은 수조육류 등이 있다. 제물로는 술, 떡, 송편, 전 병, 구이, 탕, 실과, 오이지, 상화병, 수단 등이 있다. 그 중 오이지는 문헌상으로는 15세기에 들어서 여름철 절임으로 오 이지가 기록되었다(Jo & Choi 2014).Jeungbosanlimkyungjie (增補山林經濟)에는 오이김치를 만드는 다양한 방 법이 소개되어 있다. 오이를 소금에 재워 먹는 법, 늦 오이 를 삶아 소금에 절이는 법, 오이를 겨자에 재우는 법, 술지 게미에 재우는 법 등 다양한 종류의 오이김치법이 나온다 (Yoon SJ ed. 2007). 이와 같이 백중은 여름철 절기로서 채 소, 과일이 풍성하여 제철 수확한 채소, 과일과 떡을 주로 천 신한 것으로 보인다.

    3. 가을(秋 8-10月) 절사(節祀)와 세시음식(歲時飮食)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가을철 절사와 절식은 <Table 4>와 같다. 가을 절사에 관한 기록은 8월 15일 추석 과 9월 9일 중양절이다. 1593년부터 1600년 사이 추석에 관 한 기록은 8회로 매년 기록되었으며, 중양절은 6회 기록되어 추석 명절이 조선 중기에 대표 명절임을 알 수 있다.Donggooksesigy (東國歲時記)에 ‘15일을 우리나라 풍속으로 추 석이라 일컫으며 가배(가윗날)이라고도 하고 신라풍속으로부 터 비롯되었다. 시골농촌에서는 일년중 가장 중대한 명절로 삼는다’ (Choi DL editor. 2008)고 하였다.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8월 15일 추석 제수로는 찹쌀, 백미, 목미, 햇기장 쌀, 떡쌀과 같은 곡식류, 꿩, 닭과 같은 수조육류, 홍합, 해삼, 대구, 문어 마른 전복, 절인 전 복, 생송어, 마른 망어와 같은 어패류, 잣, 호두, 밤과 같은 견과류, 꿀, 감장, 간장과 같은 양념 등이 있다. 제물로는 떡, 제주, 탕, 양색탕, 닭탕, 대구탕, 닭구이, 양색구이, 구이, 대 구 적편, 두부, 술, 찹쌀술, 과일, 포, 노루포, 삼색실과, 생율, 나물 등이 있다. 1596(丙申)年 八月 十四日 ‘평강에서 가져 온 제물은 떡과 밥 지을 쌀 3두, 목미 1두, 말린 꿩고기 4마 리, 문어 1마리, 노루포 10가닥, 잣 4되, 호두 3되, 꿀 5합, 장 5되, 간장 2되, 술 4선인데 제사에 쓰고도 남음이 있으나 탕적(湯炙)거리가 모자란다. 또 베 1필도 보내왔는데 내가 서 울을 가게 되면 이것을 팔아서 어육을 사 가지고 오겠는데 비 때문에 상격을 못했다. 세만이 미련해서 역시 못 사 가지 고 왔으니 대구 1마리를 물에 적셔서 적편(炙片)을 만들고 또 2마리는 탕을 끓여서 제수로 올릴까 한다(具平康來祭物 餠飯米三斗, 木米一斗, 乾雉四首, 文魚一尾, 獐脯十條, 栢子四 升, 實楸子三升, 淸五合甘, 醬五升, 艮醬二升, 祭酒四鐥, 比及 有餘用之, 而但湯炙之次不足, 又送布一疋, 吾若上京, 則可以 比貿魚肉, 而因雨不得上京, 世萬迷劣, 亦不貿來, 只以大口一 尾, 債水作片爲炙, 又二尾爲湯而奠之爲料)’. 이와 같이 추석 절식은 매우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음을 알수 있다. 수확의 계절 가을에 추수된 풍성한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 수 있었 기 때문에 이처럼 추석은 가장 중요한 명절로 삼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추석의 대표 음식하면 송편을 가장 먼저 떠올 린다. 하지만 Shaemirok (鎖尾錄)에는 추석 제물로 송편 이나 특별한 세시음식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Dongkuksesigy (東國歲時記)(Choi DL ed. 2008)에도 추석 때 송편을 세 시음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Shaemirok (鎖尾錄) 1596(丙申)年 八月 十五日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개기를 기 다렸다가 묘사를 올리려고 하였으나 늦게까지 비는 그치지 아니하여 부득이 묘소에 올라가서 돗자리로 상석 위를 가리 고 제물을 차렸다(自曉下雨, 欲持晴行祭, 而晩後猶不止, 又無 晴徵, 不得己上山, 以草席盖床石上, 設奠物)’와 같이 조선 중 기 사대부가는 추석에 수확한 풍성한 물산으로 제물을 만들 어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가 묘제를 지내는 세시행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94(甲午)年 八月 十五日 ‘금일은 추석이다. 겨우 술과 밥 을 준비하여 조부모 및 죽전 삼촌에게 제사를 지냈다. 하부 랑 이수록이 와 봄으로 윤겸이 큰 잔으로 찹쌀술 석 잔을 대 접했다(今日及秋夕也, 只備酒飯, 遙奠祖父母及竹前三寸, 夏部 郞李綏祿來見,奉饋粘酒三大杯)’. 이처럼 추석에는 찹쌀로 빚 은 점주(粘酒)를 올렸다. 15세기 조리서인Sangayorok (山 家要錄)(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ed. 2004)에 따 르면 점주(粘酒)는 멥쌀 1되를 깨끗이 씻어 가루를 내고 구 멍떡 3개를 만들고 물 1사발(鉢)로 삶아 익힌다. 식으면 곱 게 만든 좋은 누룩가루 1되와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달인 물로 앞에서 남은 것을 합쳐 넣는다. 4일 후에 찹쌀 1말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 하룻밤 두었다가 쪄서 식으면 밑술 과 섞어 덧술하여 항아리에 넣는다. 익으면 술주자에 담아두 되 생수나 쇠그릇을 삼간다‘고 하였다.

    음력 9월 9일은 중구,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는 9가 겹쳤다 는 뜻이고 중양은 홀수인 9가 겹쳤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는 예부터 홀수를 길수(吉數)로 보았으며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다.Shaemirok (鎖尾錄)에서는 중 양절 제수(祭需)로는 중미, 백미, 찹쌀, 보리, 콩과 같은 곡식 류, 대구, 문어, 생해어, 생전복, 마른전복, 미역과 같은 해산 물, 꿩, 닭, 쇠고기, 노루고기, 갈비, 천엽, 계란과 같은 육류, 꿀, 참기름, 감장, 간장, 과 같은 양념류, 수박, 배, 홍시와 같 은 과실류, 젓, 개암, 호두, 밤와 같은 견과류, 송이와 같은 버섯류 등이 있다. 제물(祭物)로는 술, 청주, 소주 떡, 국수, 각색실과, 삼색실과, 닭탕, 익힌 닭, 닭구이, 절육, 썬 고기, 구운 고기, 송화다식, 잣떡, 삼색실과, 약과, 도라지정과, 포 도정과, 두부 등이 있다. 중양절의 대표 세시음식하면 국화 꽃으로 지진 화전을 꼽는다.Donggooksesigy (東國歲時記) (Choi DL ed. 2008)에 ‘노란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만든 다. 이것을 화전이라 한다. 날 배와 유자와 석류와 잣을 함 께 잘게 썰어 꿀물에다 탄 것을 화채라 한다. 아울러 시절음 식으로 제사에 쓴다’와 같이 조선 후기 많은 세시 풍속서에 서는 중양절 절식으로 화전을 언급한다. 하지만, 16세기 Shaemirok (鎖尾錄)에서는 삼짇날 절식으로 화전은 기록 되어 있으나 중양절 절식으로 화전의 기록은 없다.Shaemirok (鎖尾錄)1597(丁酉)年 九月 初九日 ‘백미 2두, 찹쌀 2되, 보리 1두 5되, 꿀 2되, 참기름 1되, 약과 20덩어리, 소 동계 3되, 대구 3마리, 문어 1마리, 꿩 2마리, 병아리 5마리, 청주 6병, 소주 6병, 생전복 40개, 마른 전복 44개, 감장 5 되, 간장 2되, 노루 앞, 뒷다리 각 1, 갈비 2짝, 노루고기 2, 내장 전부, 배 40개, 밤 3되, 계란 20개, 도라지 정과 1되, 포도 정과 2되, 잣 2되 7홉, 개암 1되 8홉, 호두 1되 5홉, 수박 2개, 송이 30개가 들어왔으니, 이것은 밖에서 들어온 물 건이다’와 같이 중양절 절식으로 도라지정과와 포도정과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1766년 기록된Jeungbosanlimkyungjie (增補山林經濟)(Yoon SJ ed. 2007)의 도라지전법(桔梗煎 法)과 산포도전법(山葡萄煎法)으로 그 조리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도라지를 골라 쌀뜨물에 담가서 껍질과 물컹한 것을 버리고, 물에 삶아 쓴맛을 없앤 다음 꺼낸다. 이것을 꿀에 넣 어 약한 불에서 꿀이 다 마를 때까지 졸이고 다시 꿀에 담갔 다가 햇볕에 말리는데 꿀이 다 마를 때까지 말린다’ 그리고 ‘잘 익은 산포도를 가져다가 시루에 쪄서 말린 다음 꿀과 물 을 반반씩 섞어서 약한 불로 졸이고 말린다. 따로 달인 꿀을 넣어 졸여 낸다’고 하였다. 중양절의 또 다른 절식으로 Shaemirok (鎖尾錄)에서는 잣떡(柏子餠) 기록하였다. 1595 (乙未)年 九月 初九日 ‘구구가절(九九佳節)이다. 술과 썩, 삼 색실과를 갖추고 닭 두 마리를 잡아서 탕과 구이를 장만해 서 신주께 제사를 올렸다. 식사 후에 성민복과 함께 술을 가 지고 산성에 올라가 가절(佳節)을 즐기면서 몹시 취해 가지 고 어둠을 타고 돌아왔다. 윤겸에게서 중박계 80개, 송화다 식 70개 및 잣떡, 말린 꿩 9마리, 차조 1두 4되, 꿀 3되를 보내왔다(九九佳節也, 備酒餠三色實果, 屠兩, 作爲湯炙, 奠神 主, 具食後與成敏復携酒, 共登山城, 遊賞佳節, 極至醉飽, 又平 康(允謙)問安人亦到, 爲備中朴桂八十葉, 松花茶食七十介及柏 子餠, 乾雉九首, 粘粟米一斗四升, 生淸三升送)’. 17세기 조리 서인Yorok (要錄)(Yoon SJ ed. 2008)에 따르면 백자병 (柏子餠) 만드는 법은 ‘잣 1말을 종이 포대 위에 담고 구워 서 속껍집을 벗긴다. 꿀 2되와 섞어서 그릇에 담아 놓는다’ 고 하였다. 잣떡은 현대의 강정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Shaemirok (鎖尾錄)에는 등고(登高) 풍속을 기록하였 는데, 산을 오르는 등고(登高) 풍속은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 대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고려시대에는 왕실중심행사로 더 뚜렷한 절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Seo 2018).

    4. 겨울(冬 11-1月) 절사(節祀)와 세시음식(歲時飮食)

    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겨울철 절사와 절식은 <Table 5>와 같다. 겨울 절사에 관한 기록은 11월 중의 동지, 1월 1일 설과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이다. 1593년부터 1600 년 사이 동지 절식에 관한 내용은 8회, 설과 대보름은 각각 7회 기록되어 겨울철 절식이 다른 계절의 절식보다 기록횟 수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겨울철에는 가을에 수확된 곡식이 저장되어 있고, 농한기를 맞아 여유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절기 음식 나눔 행사가 조금 더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는 음력 11월 들어 있 어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한다. 일년 중 낮이 가장 짧 고 밤이 가장 길다.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동지 제수(祭需)로는 백미, 찹쌀, 팥, 콩과 같은 곡식류, 꿩과 같은 육류, 조기, 건민어, 민어, 숭어, 홍어, 정어리와 같은 생선류 , 뱅어젓, 새우젓과 같은 양념류, 홍시 등의 과일 등이 기록 되었다. 제물(祭物)로는 술, 탁주, 막걸리, 양색어육, 저민 고 기, 탕, 구이, 면, 떡, 포, 식혜, 팥죽, 생선구이, 두부 등이 있 다. 동지의 세시음식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팥죽(豆粥)이 다. 1593(癸巳)年 十一月 二十七日 ‘송노를 부여에 보냈다. 내일이 팥죽 먹는 속절인데 집에는 한되의 팥도 없고 또 얻 을 곳도 없어, 아이들의 청으로 부여군수에게 팥을 빌어다가 죽을 쑤어 먹기 위해서다(送宋奴於扶餘 乃明日豆粥俗節、而 家無豆升、又無得處、因兒息之請、乞豆於扶餘、欲煮粥)’, 十 一月 二十八日 ‘부여군수가 붉은 팥 1두, 하미 1두, 조기 1 묶음을 보내왔다(扶餘送赤豆一斗, 下米一斗, 石首魚一束), 十 一月 二十九日 ‘팥 7되를 죽을 쑤어서 상하가 나누어 먹었다 (煮豆七升、上下分喫 )’고 하였다. 팥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너도 나도 팥을 보내주어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도 와주는데, 이와 같이 16세기 조선시대 동지에 팥죽은 꼭 먹 어야 하는 세시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총 8회 동지 절사 중 팥죽은 6회 기록되었다. 18세기 초반 세시풍속서인 Yeolyangsesigy (列陽歲時記)(Lee SH ed. 1991)에 따르면 동지에 팥죽 먹는 풍습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붉은 팥이 지 닌 벽사의 의미를 통하여 단순한 절식이 아니라 액막이와 기 원의 신앙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보통 민가에서 는 동짓달 초승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애동지에는 팥 죽을 쑤지 않고 팥 시루떡을 하였다고 한다.

    1월 1일은 설 명절이다. 설날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설날의 술을 세주(歲酒)라 하여 데우지 않고 마시는 것은 봄 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Lee SH ed.Kyongdojapji (京都雜誌)1991).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설의 제수(祭需)로는 조기, 전복, 생전복, 은어, 말린 은어, 생 대구, 여항어, 마른 문어, 방어, 대구알, 송어알, 굴과 같은 해 산물, 꿩, 동우심, 노루, 쇠고기와 같은 육류, 새우젓, 참기름, 법유, 식초, 감장, 간장과 같은 양념류, 도라지와 같은 채소 류, 잣, 개암, 호두와 같은 견과류, 배, 모과, 침과에 같은 과 실류 등이 있다. 제물(祭物)로는 술, 청주, 소주, 면, 반갱, 만 두, 떡만두국, 떡국, 구운 고기, 쇠머리 삶은 고기, 삼색육탕, 탕, 사색어육구이, 어육구이, 포, 혜, 볶은 콩, 두부, 떡, 팥떡, 오색실과, 각색좌반, 식혜, 김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1595(乙 未)年 正月 初一日 ‘날이 밝자 일어나서 어머님께 가 뵙고 다 락 위에 올라가 아버님 신주 앞에 절하고 나서 차례를 올렸 다. 가난해서 찬을 준비하지 못하니, 겨우 만두를 넣은 떡국, 구운 고기 한 그릇, 탕 한 그릇에 잔을 올렸을 뿐이다(啓明 而起, 進省母主, 因登樓上, 展拜先考神主前, 因奠茶禮, 只以饅 豆湯餠, 炙一器, 湯一器奠盃而己, 貧不能備饌)’. 이와 같이 설 세시음식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떡국(湯餠)이다. 떡국은 서 울, 경기를 비롯한 중부 이북지역에는 떡만두국 형태로 먹는 데, 서울 사대부가였던 오희문가에서는 만두를 넣은 떡국(饅 豆湯餠) 형태로 세시음식을 즐겼다. 떡 만둣국은 주로 꿩고 기를 이용하여 만두를 빚거나 육수를 내었는데, 조선초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식이요법서인 Sikryochanyo (食療 纂要)(Kim JD ed. 2006)에도 꿩고기를 이용한 만두음식이 기록되었다. ‘비위의 기가 허약하여 장활이 있고 음식을 내 려 보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려면 꿩(野) 1마리를 요리하는 방법과 같이 잘게 갈고 귤피, 산초, 파, 소금, 간장을 넣어 만 두를 만든 다음 푹 삶아 공복에 먹는다’고 하였다.Shaemirok (鎖尾錄)속 설날 떡국에 관한 기록은 많다. 1597(丁 酉)年 正月 初一日 ‘시열의 어머니가 떡국으로 이른 아침을 우리 상하에게 준다. 우리 집에도 또한 더운밥을 만들어 노 비 및 평강사람에게 각각 1사발씩 주고 또 술 1동이를 주었 다. 오늘은 곧 대명일인 때문이다(時說母氏, 作湯餠早飯, 饋 余上下, 余家亦作溫飯, 饋奴婢及平康人等各一鉢, 又饋酒一盆, 及大名日故也)’. 1597(丁酉)年 正月 初二日 ‘정서방댁이 떡국 을 마련해 이른 아침식사를 대접한다(鄭書房宅, 作湯餠, 早朝 饋之).’ 1597(丁酉)年 正月 初三日 ‘시열의 어머니가 떡국을 만들어 이른 아침에 보내서 처자들과 함께 먹었다(時說母氏. 作湯餠早飯而送, 妻子共食). 1597(丁酉)年 正月 初四日 ‘시열 의 어머니가 또 떡국을 만들어 아침밥으로 보냈다(時說母氏. 又作湯餠, 朝飯送之)’. 1597(丁酉)年 正月 初七日 ‘오부장 집 에서 만두와 술과 실과를 준비해 보냈다(吳部將家, 爲備饅豆, 酒果送之)’. 1597(丁酉)年 正月 初八日 ‘오부장의 누이 원서 방댁이 만두 한상을 차려 보내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具吳 部將妹氏元書房宅, 爲備饅豆一盤而送, 與兒輩共之)’ 이와 같 이Shaemirok (鎖尾錄)기록에 의하면 탕병(湯餠)은 16세 기 말경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도 대접 받는 정조 세찬 중 가 장 기본 음식이었다. 반면 17세기 조극선(趙克善)의Injae Ilrok (忍齋日錄)에서는 정조 세시음식으로 만두가 가장 많 이 등장하였다(Joo 2017). 이에 Joo(2017)는 17세기까지 만 두가 세찬의 주요 음식이었고 이후 만두에서 병탕으로 세찬 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정제되지 않은 밀 가루로 빚은 만두피 색보다 떡국떡의 색이 희고 좋아서였다 고 하였다. 하지만,Shaemirok (鎖尾錄)에서 탕병(湯餠)과 함께 절병(切餠)에 관한 기록은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다. 조 선 중기 이후 절병을 이용한 탕병이 세찬으로 더 많아진 이 유는 만두보다 절병이 보관이 간편하고, 장기 저장이 가능하 며, 세찬 선물로써 거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두를 빚기 위해서는 많은 고기가 필요한데, 떡국은 약간의 고기로 국물맛을 내어 떡을 넣으면 쫄깃한 식감으로 한 끼를 든든 히 먹을 수 있는 더 효율적이며 실용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1월 15일은 대보름이다. 제수(祭需)로는 쌀, 마태 등과 같 은 곡식류, 생치, 건치와 같은 수조육류, 건은어, 방어와 같 은 생선류, 호두, 잣과 같은 견과류, 꿀, 감장, 말장과 같은 양념류 등이다. 제물(祭物)로는 떡, 청주, 탁주, 소주, 술, 안 주, 약밥, 은어구이, 꿩구이, 꿩탕, 생선탕, 차조밥, 저민고기 등이 있다.Shaemirok (鎖尾錄)1598(戊戌)年 正月 十五 日 ‘이른 아침에 약밥, 주과, 꿩구이, 꿩탕으로 신주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다음은 죽은 딸에게 지냈다. 또 쌀 두어 말로 밥을 해서 노비들에게 나누어 먹였다. 약밥은 실과를 얻지 못해서 겨우 조금씩 주었고, 찹쌀도 역시 적어서 겨우 차례 에만 쓰고 말았다(早朝備藥飯, 酒果, 雉炙, 雉湯, 奠茶禮于神 主前, 次及亡女, 具炊稻數斗餘, 分喫奴婢等, 藥飯則實果不得, 只以少許交之, 粘米亦少, 僅用茶禮時)’. 1599(己亥)年 正月 十 五日 ‘오늘은 곧 속절이다. 약밥을 조금 만들고 저민고기, 탕, 구이 등으로 차례를 지내고 또 죽은 딸에게도 지냈다. 또 차 조밥을 지어서 노비들에게 먹였다(及俗節也, 作藥飯小許, 肉 切, 湯炙等物, 行茶禮, 又及亡女, 又作粟粘飯, 饋奴婢等)’. 1600(庚子)年 正月 十五日 ‘속절이어서 약밥을 만들어 차례 를 지내는데 꿩 2마리로 탕과 구이를 만들어 지냈다. 집에 찹쌀과 실과가 없어서 겨우 조금 얻어서 다만 신주에게 올 렸을 뿐이다. 또 차조밥을 지어 한 집안 계집종들에게 나누 어 먹였다(及俗節也, 爲造藥飯, 行茶禮, 兩雉作湯炙奠之, 家 無粘米, 實果, 僅得些少, 只奠神主而己, 又造粘粟飯, 分饋一家 婢輩)’. 이와 같이 대보름을 대표하는 절식은 역시 약밥이다. 총 8년의 상원(上元) 기록 중 절식 기록이 거의 없는 전쟁 직후인 1593년과 1594년을 제외하고, 안정기인 1595년 이후 에는 매년 대보름 차례 음식으로 약밥을 기록하고 있다. Shaemirok (鎖尾錄)과 비슷한 시기인 임진왜란 이후에 기 록된 허균(許筠)의Domoondeajac (屠門大嚼)에서도 약밥 이 기록되었다. ‘경주에서는 보름날 까마귀에게 먹이는 풍습 이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해서 배워서 해 먹는데 이름을 고 려반이라 부른다(藥飯 ‘十五一飼烏. 東京舊俗. 華人好之. 效 而造食, 名曰 高麗飯)고 하였다(Oh 2009). 약밥은 세시음식 중 그 역사와 전통이 가장 오래된 절식이며 오늘날까지도 보 름날 절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8세기 세시풍속을 노 래한 이덕무(李德懋)의Seshijabyoung (歲時雜詠)에서는 약밥을 ‘수많은 단사 알갱이 하나로 모은 듯(萬粒丹砂共一 團) 가난한 사람들은 맛보기 어렵다네(貧家稀罕得珍餐)’(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2003)로 노래하고 있다. 약밥은 귀한 찹쌀, 대추와 참기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 난한 사람들은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하지만Shaemirok (鎖尾錄)에서 보듯 16세기 사대가에서는 전쟁 직후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보름에는 약밥을 지어 신주께 올리고 가족들 이 함께 나누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양이 넉넉하 지 않아 노비들에게는 차조밥을 대신하여 먹인 것으로 기록 되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전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591년부터 1601년 10여년 기간 동안 거의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16세기 생활 사의 보고인Shaemirok (鎖尾錄)분석을 통하여 조선 중 기 사대부가의 세시음식을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Shaemirok (鎖尾錄)에 기록된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절사(節祀)의 제 물(祭物)과 절기음식(節氣飮食)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593년부터 1600년 사이 봄철 절식은 삭일(中和節)이 5회, 답청일(삼짇날)이 6회, 한식일이 5회, 등석(초파일)이 3회 기 록 되었다. 봄철 명절 중 삼짇날의 세시음식이 가장 많이 기 록되어 삼짇날이 봄철의 손꼽히는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었 다. 먼저, 삭일(朔日) 절식으로는 떡, 탕, 구이, 술, 국수, 안 주, 약밥이 기록되었고, 삭일은 특정 가문만의 행사가 아닌 관청에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연회를 베푸는 지역 공동 체 축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삼짇날 제물로는 떡, 절병, 면, 국수, 편육, 노루고기 적, 방어구이, 대구 안주 등이 있었 다. 그 중 화전(花煎)은 삼월 삼짇날 명절에만 먹는 특정 음 식이라기보다는 봄에 먹는 대표적인 별식(別食)으로써 인식 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식의 제물로는 면, 국수, 밥, 국, 떡, 쑥떡, 술, 닭탕, 삼색탕, 어탕, 소탕, 숭어탕, 생치구이, 삼 색어육구이, 생선구이, 포, 노루포 등이 기록되었다. 절식으 로 송편이 아닌 애병(艾餠 쑥떡)으로 기록하고 있음이 특징 적이었다. 등석(燈夕)의 제물로는 떡, 엽병, 중박계, 생도미탕, 제주, 어육탕, 어육구이, 생전복구이가 기록되었다. 등석 대 표 절식으로는 봄에 나온 새싹을 넣어 찐 엽병과 유밀과인 중박계를 꼽을 수 있었다.

    여름 세시음식에 관한 기록은 단양절 8회, 유두절 6회, 칠 석 5회, 백중이 5회 기록되었다. 이를 통하여 단오절이 여름 철 가장 중요한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양절 제물로는 떡, 면, 국수, 술, 현주, 감주, 포, 혜, 뱅어젓, 새우젓, 민어구 이, 반갱, 삼색 어육탕, 삼색 실과, 송편, 삼색어육구이, 천어 구이, 천어탕 등이 있었다. 이처럼 오희문은 단오 세시음식 을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보통의 차례처럼 제수를 장 만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단오절에는 냇물에서 민물고 기를 잡으며 즐기는 천렵(川獵) 풍속을 즐겼다. 유두 제물로 는 술, 소주, 포, 식혜, 탕, 노루고기탕, 육탕, 구이, 어육구이, 꿩구이, 닭찜, 떡, 과일, 토장수단, 수단, 상화병, 전병 등이 있었다. 유두를 기록하고 있는 6회 모두 세시음식으로 수단 (水團)을 언급하여 유두의 대표음식이 수단임을 알 수 있었 다. 칠석 제물로는 술, 소주, 떡, 절병, 생선구이, 목말전병, 닭구이, 닭탕, 집돼지찜, 찐닭, 노루고기탕 등이 기록되어 있 었다. 이와 같이 칠석의 대표적인 음식인 목말전병(메밀전 병)은 오희문 가문이 강원도 평강에 머무른 시기로서 강원도 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메밀로 전병을 지져 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중의 제물로는 술, 떡, 송편, 전병, 구이, 탕, 실과, 오이지, 상화병, 수단 등이 있었다. 백중은 여름철 절 기로서 채소, 과일이 풍성하여 제철 수확한 채소, 과일과 떡 을 주로 천신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을 절사에 관한 기록은 추석과 중양절이었다. 추석에 관 한 기록은 8회로 매년 기록되었으며, 중양절은 6회 기록되어 추석 명절이 조선 중기에 대표 명절임을 알 수 있었다. 추석 제물로는 떡, 제주, 탕, 양색탕, 닭탕, 대구탕, 닭구이, 양색구 이, 구이, 대구 적편, 두부, 술, 찹쌀술, 과일, 포, 노루포, 삼 색실과, 생율, 나물 등이 있었다. 추석 제물로 송편이나 특별 한 세시음식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추석에 수확한 풍성한 물산으로 제물을 만들어 묘제를 지내는 세시행사가 있었음 을 알 수 있었다. 중양절 제물로는 술, 청주, 소주 떡, 국수, 각색실과, 삼색실과, 닭탕, 익힌 닭, 닭구이, 절육, 썬 고기, 구운 고기, 송화다식, 잣떡, 삼색실과, 약과, 도라지정과, 포 도정과, 두부 등이 있었다. 반면 삼짇날 절식으로 화전은 기 록되어 있으나 중양절 절식으로 화전의 기록은 없었다.

    겨울 동지 절식에 관한 내용은 8회, 설과 대보름은 각각 7 회 기록되어 겨울철 절식이 다른 계절의 절식보다 기록횟수 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겨울철에는 가을에 수확된 곡식이 저장되어 있고, 농한기를 맞아 여유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절기 음식 나눔 행사가 조금 더 활발했던 것으로 보여졌다. 동지 제물로는 술, 탁주, 막걸리, 양색어육, 저민 고기, 탕, 구 이, 면, 떡, 포, 식혜, 팥죽, 생선구이, 두부 등이 있었다. 동 지의 가장 대표적인 절식은 팥죽(豆粥)이었다. 설의 제물로 는 술, 청주, 소주, 면, 반갱, 만두, 떡만두국, 떡국, 구운 고 기, 쇠머리 삶은 고기, 삼색육탕, 탕, 사색어육구이, 어육구이, 포, 혜, 볶은 콩, 두부, 떡, 팥떡, 오색실과, 각색좌반, 식혜, 김치 등이 기록되었다. 설날은 탕병(湯餠)과 함께 절병(切餠) 에 관한 기록이 빈번했다. 대보름 제물로는 떡, 청주, 탁주, 소주, 술, 안주, 약밥, 은어구이, 꿩구이, 꿩탕, 생선탕, 차조 밥, 저민고기 등이 있었다. 대보름 대표 음식은 약밥이었다.

    이와 같이 16세기말 10여 년 간의 일상기록인 쇄미록(鎖 尾錄)을 살펴 본 바 조선 중기 사대부가에서는 전시상황임에 도 불구하고 매년 명절이나 절기가 돌아오면 우선 조상을 생 각하여 그때의 시식(時食)을 마련해 제(祭)를 올린 후 가족과 이웃 간 음식 나눔 행사를 통하여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졌 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2월 삭일에는 관청에서 연회 를 베풀어 유림(儒林)들을 중심으로 사대부가의 결속력을 다 졌다. 16세기말 사대부가의 대표 세시풍속에는 봄철 삼짇날 진달래로 화전을 지지고, 한식에는 애병, 등석에는 엽병과 중 박계, 여름 단오 무렵에는 천렵을 즐겼으며, 유두에는 수단, 칠석에는 목말전병, 백중에는 제철 채소와 과일을 올려 절사 를 지냈으며, 가을 추석에는 묘제를 지냈으며, 겨울 동지에 는 팥죽, 설날에는 탕병과 절병, 대보름에는 약밥 등의 대표 절식을 준비하여 절사를 지내고 세시음식을 나눴다. 따라서 쇄미록(鎖尾錄)은 사대부가의 일상 식생활뿐만 아니라 16세 기말 조선 중기 세시음식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임 을 확인하였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2018년도 호서대학교의 재원으로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며(과제번호:20180311) 이에 감사 드립니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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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 Refugee Movement via the Ohheemoon

    Table

    War Refugee Life Recorded in the Shaemirok

    Jehsu (祭需) and Jehmul (祭物) of the Spring Jeolsa (節祀)

    Jehsu (祭需) and Jehmul (祭物) of the Summer Jeolsa (節祀)

    Jehsu (祭需) and Jehmul (祭物) of the Autumn Jeolsa (節祀)

    Jehsu (祭需) and Jehmul (祭物) of the Winter Jeolsa (節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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