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서 론
현전하는 음식관련 기록물들이 많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자료의 발굴은 하나하나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조선 전기의 조리서가「Sangayorok (山家要錄)」(Jeon SU (전순 의) 1450s),「Suunjabbang (需雲雜方)」(Kim Y 1540s), 「Choi’s Eumsikbeop」(The Woman of Haeju Choi’s Cran (정부인 해주 최씨) Previous 1660),「Eumsikdimibang (飮食 知味方)」(Jang GH (장계향) 1670),「Yorok (要錄)」 (Anonymous (저자 미상) 1680)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라 해 당 시기의 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특히 김치 제조사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던 고춧가 루 사용이 1600년대에 시작된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에 집필 된 조리서는 고려시대 이래 조선 전기까지의 김치 제조 문 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례를 들자면, Yoon (1986)은 수운잡방의 발굴을 통해 조선 전기 김치 제 조 방식과 원료를 처음으로 소개하였고, Han(2003), Han (2005)는「Sangayorok」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조선 전기 김 치류에 할미꽃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었 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또, 조선 시대 문집인「Songpajip (松坡集)」(Lee SU (이 서우) 1600s)에서 이서우(1633-1709)가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었다는 내용이 확인되면서(Park 2012), 고춧가루 넣 은 김치의 제조시기에 대한 근거가 「Somunsaseol ( 聞事 說)」(Lee SP (이시필) 1657~1724)의 ‘무석박지(菁)’, 「Jeungbosallimgyeongje (增補山林經濟)」(Ryu JL (유중림) 1766)의 ‘황과함저법(黃瓜菹法)’ 보다 대략 한 세대 가량 앞당겨지기도 하였다. 2015년에는 아산지역 신창 맹씨 가문 의 최씨부인이 1660년 이전에 쓴「Choi’s Eumsikbeop」이 최초 한글조리서로 학계에 밝혀지면서 김치에 맨드라미를 넣 는 제법 역시「Jeungbosallimgyeongje」에 비해 기록상 100 여년 앞선 조선 전기부터 존재해 왔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하 였다(Park 2015).
이와 같이 김치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새로운 고조 리서의 발굴은 김치의 발달과정을 조명하는데 큰 기여를 해 왔다. 이번에 소개하는 「Juchochimjeobang (酒醋沈菹方)」 (Anonymous (저자 미상) 1500s or Early 1600s)의 경우, 책의 지질 및 한글 표기 양상과 음식의 제법에 나타나는 특 성을 분석한 결과 16세기 조리서로 추정되는데다가 김치와 채소류 저장법을 다수 수록하고 있어 조선 전기 김치 및 채 소절임 문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 서는「Juchochimjeobang」의 내용이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 는 것인 만큼 김치류 제조법의 원문을 그대로 소개하고, 17 세기 이전에 집필된 조리서들과 비교를 통해 조선 전기의 김 치 제조 문화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II.연구 대상 및 방법
1.연구 대상 문헌 소개
1)서지 고찰 및 연대추정
「Juchochimjeobang」은 전북 고창에서 전통주를 연구하는 이상훈씨가 소장하고 있는 고조리서로 경북대학교 백두현 교 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는 것이다. 권 두와 권말 모두 없어져 책명(冊名)을 알 수 없으나 책의 주 된 내용으로 술, 식초, 김치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 여「Juchochimjeobang」이라는 가칭을 붙였다.
「Juchochimjeobang」은 크기 가로 22.0 cm, 세로 26.0 cm에 1책 31면(장수로 15.5장)만 남아 있는 필사본이다. 이 책은 31면에 걸쳐 양주법, 양초법, 김치법 등의 여러 가지 음식조 리법을 기록해 놓았다. 표지 서명이나 권두 서명도 없고 권 두와 권말 모두 낙장 된 부분이 있어서 표지서명과 필사기 등을 확인할 수 없는 작자미상의 책으로, 백두현은 원래 서 명이 남아 있지 않은 이 책의 이름을 다음 2가지 이유를 들 어「Juchochimjeobang」이라 명명하였다.
첫째, 3면에 ‘釀酒方’(술방문), 10면에 ‘釀醋方’(초방문), 12 면부터 15면 등에 ‘沈菜’(침채) 혹은 ‘菹’(저)가 들어간 방문 명이 17개나 출현한다. 둘째, 내용적으로 볼 때도 술에 관한 것이 64개 방문으로 가장 많고, 초에 관한 것 7개, 김치(‘沈 菜’ 혹은 ‘菹’)에 관한 것이 20개가 수록되어 이 책의 주 내 용이 술, 초, 김치에 관한 것이다.
백두현은 실사를 통해 이 책의 지질(紙質)과 한글 문장의 표기 및 언어를 분석해 본 결과 16세기 혹은 늦어도 17세기 전기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근거는 이 문헌 의 맨 마지막에 기재된 한글 방문 중 ‘즙장’법에 쓰인 3자 합용병서 ‘ㅴ, ㅵ’이다. ㅴ와 ㅵ는 중세국어적 특징으로 ‘ ’ (時)는 15~16세기 문헌에 주로 쓰였고, 17세기 초기 문헌에 도 보이지만 15세기 초간본을 중간한「Junggandusieonhae (杜詩諺解)」(Oh S(오숙) 1632)에 일부 나타난다. ‘ 려’(析) 는 15세기 문헌「Gugeupbangeonhae (救急方諺解)」(Anonymous (저자 미상) 1466) <1466년본 상:27a> 등에 나타나서 17세 기 초의「Eonhaetaesanjipyo (諺解胎産集要)」(Heo J (허준) 1608) <1608년본 43b>까지 발견된다. ‘ 릴’은「Sinjungyuhap (新增類合)」(Yu HC(유희춘) 1576) <초간본>과 그 후에 간 행된 이 책의 중간본에 나타나 있다(Oh 1996; Kim 1999; Lee 2005). 이 3자 합용병서는 지금까지 공개된 한글 조리서 에서는 볼 수 없던 15세기 국어표기법으로 이 문헌의 필사 연대를 15~16세기로 볼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Baek 2017).<Figure 1><Figure 2>
마지막 30면과 31면에 기록된 집장, 벽한주, 녹파주, 경장 주, 절주라는 다섯 가지 조리법만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고 그 외 본문이 반듯한 정자체의 한문으로 붓글씨에 매우 능 한 남성의 필체인 점, 방문의 기술 방식이 상당히 독창적이 라는 점, 방문 곳곳에 간간이 본인의 생각을 덧붙인 주석을 달거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교정 표기해 둔 점으로 보아 음식 조리 지식에 식견이 높은 남성이 집필하거나 필사하였 을 가능성도 높다.
2)구성 체계
본서에는 총 120항목에 126개의 방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김치류는 17항목(20개 방문), 채소저장법은 7항목(7 개 방문), 실과(實果)저장법은 4항목(4개 방문), 과자 및 떡 류 11항목(11개 방문), 식초 7항목(7개 방문), 술은 61항목 (64개 방문), 장류 및 기타 음식 11항목(11개 방문), 식해가 2항목(2개 방문)으로 각 면에 실려 있는 항목명은 <Table 1>과 같다.
2.연구방법
본 논문에서는「Juchochimjeobang」의 126개 방문 중 김 치류 20개 방문을「Sangayorok」,「Suunjabbang」,「Yorok」, 「Choi’s Eumsikbeop」,「Eumsikdimibang」 등 17세기 이전 조리서의 동일 항목의 방문과 비교 대조함으로써 동시대적 유사성을 살피고, 본서만이 지니는 특징과 가치를 밝히고자 한다<Table 2>.
한편, 양념형 김치가 발달하지 않은 조선 전기에는 소금, 장류에 담가(沈) 만드는 김치와 장기 보관을 위한 저장(藏)법 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2가지 방법 모두 궁극적으로 는 반찬으로 활용도가 높았던 가지, 오이, 동아 및 각종 채 소류를 원료를 구할 수 없는 시기도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 해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 서는 실과류를 제외한 채소류 저장법 7개 항목도 포함하여 소개하려 한다.
III.결과 및 고찰
1.「주초침저방(酒醋沈菹方)」의 김치 방문 소개 및 유사시 기 제법들과의 비교
1)즙저류
즙저는 콩을 기울과 함께 쪄서 즙저 전용 메주를 만든 뒤, 말려 가루로 만들어 소금, 물과 섞어 죽처럼 만들고 여기에 가지, 동아, 외(현재의 오이와 품종이 다르기에 ‘외’로 표기 함)를 섞은 뒤 두엄이나 말똥에 묻어 고온 속성 발효시킨 음 식으로 ‘즙디히’, ‘즙장’, ‘집장’ 등으로도 불렸다.
명칭의 혼재에서 알 수 있듯이 즙장을 장류로 분류할 것 인지 채소절임식품으로 광의의 김치로 볼 것인지 모호한 부 분이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이전까지 즙장, 즙저 제조법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즙장을 온전히 장(醬) 자체를 먹기 위한 용도로 만들기보다 채소류를 발효 저장시키기 위한 목적으 로 제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Park 2014).
예를 들어,「Somunsaseol」의 즙장법(汁醬法)을 보면 “소 금 7홉 섞은 물을 가루에 넣어 율무죽처럼 섞어 잘게 썬 동 아와 가지를 즙장 사이에 펼쳐지게 넣는다.” 고하여 항목명 은 즙장법이나 실제 동아와 가지를 넣은 즙저 방문이다. 「Jeungbosallimgyeongje」즙장법(造汁醬法) 역시 “가지와 늙은 오이를 따로 준비하여 자르지 말고 통째로 꼭지를 따 서 씻고 즙장 사이에 넣고 다 마치면 기름종이로 주둥이를 봉하고 질뚜껑을 덮는다.”고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즙저 만 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Jusikbangmun」 (Anonymous (저자 미상) End of 1800s),「Onjubeom (蘊酒法)」 (Anonymous (저자 미상) End of 1700s),「Eumsikbangmun」 (Anonymous (저자 미상) 1880; Cha & Yu 2014) 등에 수 록된 즙장법도 즙장을 완성한 후 다시 가지 오이, 동아를 넣 고 급성 숙성시키고 있어 결국 즙저를 만들기 위한 방문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Jung & Park(1999)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인 즙장 제조 방법을 장아찌식 담금 형태, 즙장메주로만 담그는 묽은 된장 형태, 별도의 즙장메주에 채소를 담그는 형태로 분류하였다. 장아찌식 담금 형태는 따로 즙저 전용 메주를 만들지 않고, 간장 혹은 된장에 밀기울을 섞어 채소를 묻고 마분이나 풀 더미 속 고온에 단시간 숙성 시키는 방법으로「Jeungbosallimgyeongje」하절즙장법(夏節造汁醬法)이 대표적이다. 즙 장메주로만 담그는 묽은 된장 형태는 메주가루, 물, 소금으 로 담가 7~14일 후 먹는 것으로 된장 담그는 형태로 「Jeungbosallimgyeongje」조즙장국법(造汁醬法)이 대표적 이다. 별도의 즙장메주에 채소를 담그는 형태는 즙저 전용 메주(즙장) 제조, 즙저 담금·숙성 단계로 나뉘며「Jeungbosallimgyeongje」조즙장국법(造汁醬法) 별법이 대표적이다. 3가지로 나누긴 하였으나 장아찌식·묽은 된장 형태 즙장을 별도로 만든다는 점을 착안하면 즙저 제조법은 1차 즙장 제 조, 2차 즙저 제조로 나뉠 수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즙저를 만들기 위한 사전단계의 전용 장(醬)을 ‘즙 장’, 채소류까지 넣어 완성시킨 단계를 ‘즙저’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대부분 즙장은 즙저를 만들기 위한 용도에서 별도 로 만들고 있기에 크게 김치류에 포함시켜도 무방한데, 본 조리서의 즙장 방문도 가지, 동아, 외를 넣어 즙저를 만들기 위한 것이므로 김치류에 포함시켜 분석하였다.
특히 고추, 생강, 마늘 젓갈 등이 모두 들어간 양념김치류 가 발달하기 전, 소금절임식 짠지류 김치문화 발달 단계인 17세기까지 조리서를 보면 즙저 방문이 여러 가지 담금법으 로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즙저가 그 만 큼 일상 반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는 것으로 풀 이된다.
본서에는 한문으로 표기된 즙저 방문 3개, 가지 즙저 1개 와 한글로 표기된 즙장 1개로 총 5개의 즙저류 방문이 수록 되어 있다. 한글로 된 즙장 방문의 경우 한문 즙저 방문 3개 중 1개와 내용이 동일하다. 숙성기간이 각각 3주와 2주로 차 이가 날 뿐, 재료의 종류와 분량이 모두 같지만 분석에는 모 두 포함시켰다.
「Juchochimjeobang」의 즙저 방문은 큰 틀에서 ‘즙저 전용 묽은 메주 반죽(즙장) 제조+여러 채소와 교합(交合)→밀봉 →고온 속성 발효’라는 전형적인 즙저 제조법을 따르고 있다.
①즙저(汁菹方)
<원문> 太二斗, 浸水經二日, 拯出軟蒸, 以麥末(其火)二 斗, 合搗又蒸, 如末醬造法 以麻葉, 或千金葉木, 厚盖之. 待熟 出乾細末, 如常合醬和, 擇苽茄軟好者四斗, 交入缸封, 埋 新馬糞, 經三七日, 取出用之. 又末醬亦可
<번역문> 콩2말을 물에 담가 이틀이 지난 뒤 건져내어 연 하게 질게 쪄서 거친 보리쌀(기울) 2말을 합하여 찧고 또 쪄 서 말장(末醬 메주) 만드는 법과 같이 하여 삼 잎으로 혹은 천금목(붉나무) 잎으로 두툼하게 덮는다. 숙성되면 꺼내어 말 려서 곱게 가루를 내어 상시처럼 장과 소금을 합하여 섞고 연하고 좋은 외와 가지 4말을 섞어 항아리에 넣고 봉하여 싼 다음 새 마분(馬糞, 말똥) 속에 묻어 두고 14일이 지나 꺼내 어 쓴다. 또 말장도 또한 가하다.
②또 다른 즙저 방문(又方)
<원문> 七月念時, 太一斗, 去損者, 沈水三日. 三斗交 蒸砧, 如手拳作彌造, 一日曝乾. 於空石上 厚布千金木葉楮 葉, 彌造列置其上. 又以千金木葉楮葉厚覆, 經七日, 猫毛起生, 乃出半折, 曝乾二三日作末, 八月望時, 茄子每一盆, 汁末一斗, 四合式, 以水交合, 納瓮堅封, 以泥塗瓮口, 於新馬糞埋之, 經 六七日, 開見, 茄子內半白半紅, 還塗瓮置凉處. 經二七日用之. 所入茄子冬瓜子, 亦不妨. 水小則乾燥
<번역문> 7월 생각날 때에 콩 1말을 벌레 먹고 상처 입은 것을 제거하고 3일 동안 물에 담가둔다. 보리 3말을 쪄서 절 구로 찧어 주먹만 하게 두루 만들어 하루 동안 햇볕에 말린 다. 공석 위에 천금목잎과 닥나무잎(楮葉)을 두껍게 펼친 다 음 만들어 놓은 것을 그 위에 벌려 놓는다. 또 천금목 잎과 닥나무 잎을 두텁게 덮고 7일이 지나 고양이털이 일어나듯 싹이 나면 곧 꺼내어 반쯤 잘라 2~3일 햇볕에 말려 가루를 만든다. 8월 보름에 가지 한 동이에 즙말 1말과 소금 4홉씩 을 물에 섞어 항아리에 넣고 단단하게 봉한 다음 진흙으로 입구를 바르고 새 말똥에 그것을 묻는다. 6~7일이 지나 열어 보고 가지의 안이 절반이 희고 절반이 붉으면 도로 항아리 를 바르고 서늘한 곳에 둔다. 14일이 지나면 쓴다. 가지와 동 아를 섞어 넣어도 좋다. 물이 적으면 마른다.
③또 다른 즙저 방문(又方)
<원문> 八月上旬, 黃太, 去損, 沈水三日拯出, 與其火 三斗, 交蒸正, 作彌造塊如小兒拳甚堅. 艾葉, 千金葉, 楮葉, 於空石交布, 寸如次列彌造塊. 又布葉, 又列塊次, 布列結, 向陽下安置. 厚覆三葉於上下, 經七日, 起毛半折, 陽乾一日, 還入如舊置. 自乾後, 曝陽去風作末, 一升五合交合, 以水 和之, 手指間不摘(滴)爲度. 擇茄子一盆, 於瓮底, 先布汁末, 次 列茄子次交沈. 油紙封口 盖磁瓮器泥塗. 於盛蒸馬糞中埋置, 經七日, 熟用之. 甘酸得中, 色味俱好. 水多則酸, 茄子多則 亦酸. 松茸生, 薑兒, 冬苽, 交沈亦好. 此一劑推之, 則雖造百劑 無妨(摘恐當作滴)
<번역문> 8월 상순에 황충태(黃太)와 벌레 먹어 상처 입은 것을 제거하고 3일 동안 물에 담가 건져내어 기울 3말 과 함께 쪄서 찧은 다음 어린아이 주먹처럼 덩어리를 단단 하게 만들어 놓는다. 쑥잎. 천금목잎, 닥나무잎을 공석에 펼 쳐 놓은 다음 조금씩 만들어 놓은 덩이를 늘어놓는다. 또 잎 을 펼치고 또 덩어리를 차차 올려 늘어놓는다. 펼쳐 늘어놓 고 묶어 싸서 양지 바른 처마아래에 안치해 둔다. 세 종류의 잎을 위아래도 두툼하게 덮은 다음 7일이 지나 기모가 반쯤 꺾이면 하루 동안 햇볕에 말려 도로 이전과 같이 싸둔다. 저 절로 건조한 뒤 햇볕에 쪼이고 거풍한 것을 가루를 내어 소 금 1되 5홉을 섞어 물을 탄 다음 손가락으로 섞어 방울지지 않게 죽처럼 만든다. 가지 1동이를 택하여 항아리에 먼저 죽 처럼 만든 메주를 깔고 차례로 가지를 담아 서로 섞이어 잠 기게 한다. 유지로 입구를 봉하고 뚜껑을 덮고 진흙을 바른 다. 마분(馬糞, 말똥) 속에 묻어 두고 익혀 7일 지나 겨우 익 으면 쓴다. 달고 신맛이 알맞고 색과 맛이 다 좋다. 물이 많 으면 시고 가지가 많아도 또한 시다. 생송이(松茸), 생강(薑 兒), 동아(冬苽)를 섞어 담가도 또한 좋다. 이 한 가지 조제 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백가지 조제를 만들어도 무방하다.
④가지즙저 (茄子汁)
<원문> 六七月, 太一斗, 石展磨沈水, 三日拯出, 其火二斗, 交 蒸搗作彌造於空石. 內典千金楮葉交入, 厚盖石, 經二七日. 生黃毛, 曝乾細末一斗, 五合, 茄子一盆 交沈. 油紙封口, 盖 器泥塗, 埋盛蒸新馬糞, 經二七日. 其火不蒸亦可
<번역문> 6~7월에 콩 1말을 맷돌에 갈아 물에 불려 3일 만에 건져내고 기울 2말을 섞어 쪄서 찧어 공석에 두루 만 들어 둔다. 천금목과 닥나무 잎으로 두껍게 겉을 싸고 뚜껑 덮어 14일을 둔다. 곰팡이가 피면 볕에 말려 가루로 만들어 가루 1말에 소금 5홉 가지 1동이를 서로 섞는다. 유지로 입 구를 단단히 봉하고 덮개를 진흙으로 발라 새 마분(馬糞, 말 똥) 속에 묻어 두고 익혀 14일 지낸다. 기울에 묻어 익히지 않아도 가하다.
⑤즙장
<번역문> 7월 20일째 콩 한말을 벌레 먹은 것 없게 하고 물에 담가 사흘 만에 기울 3말로 섞어 쪄서 더하며 주조야 하루만 볕에 말려 공석 위에 붉나무잎 닥나무잎 두터이 깔 고 그 위에 메주를 벌려놓고 또 잎과 베로 두터이 덮어 이레 만에 굇거리 익거든 내어 반만큼 따라 2~3일만 말려 가루 만 들어 팔월보름께 가지 1 동이에 가루 한 말, 소금 네 홉씩, 물과 섞어 독에 넣고 굳게 봉하고 흙을 발라 새 거름에 묻어 7일 만에 열어보면 가지 안에 반은 희고 반은 붉었거든 도로 독을 발라 서늘한 데 두었다가 21일 만에 쓰라. 가지, 동화, 외 섞어 담아도 좋다. 또 물이 적으면 마르니라.
즙저의 방문은 조리서마다 즙저 전용 묽은 메주 반죽인 즙 장을 만드는 방법과 재료들의 전처리 과정 및 배합비, 숙성 방식 등에서 소소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크게 4가지 측면 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콩의 전처리 방법에서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생콩 을 그냥 쓰거나, 2일 이상 불린 콩, 혹은 찐콩에 밀이나 보 리기울 등을 섞는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찐콩을 이용하는 빈 도가 높아진다. 콩은 껍질부분의 수분 억제력이 크기 때문에 콩이 지닌 단백질과 탄수화물 성분을 조리에 잘 활용하기 위 해서는 오래 불려 물이 콩 속으로 충분히 침투되도록 해야 하는데, 삶으면 더 용이해 진다. 특히 생콩의 경우 단백질 분 해억제제(Protease inhibitor)인 렉틴을 함유하고 있는데 가열 하면 렉틴이 불활성화 되므로 익혀야 영양가치가 올라간다 (Harold McGee 2014). 조선 초기에는 날콩이나 불린 콩을 사용하다가 후기로 갈수록 찐콩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 었다는 것은 조리에 관한 민간지식이 그만큼 축적되어 전수 된 결과라 짐작된다.
둘째, 메주 모양으로 만든 뒤 띄울 때 사용하는 엽(葉)의 종류가 다양하다. 조선 전기에는 붉나무(천금목 혹은 북나 무), 닥나무잎이 주류를 이루다가 후기로 가면서 쑥, 짚, 솔 잎 등이 사용되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후기로 가면서 즙장의 제조시기가 여름철에만 한정되지 않으면서 활용 가 능한 엽(葉)의 종류에 관한 정보가 점차 추가되었기 때문으 로 유추된다. Ann et al.(2015)의 연구에 따르면 즙장을 띄울 때 엽(葉)을 사용한 이유는 나뭇잎의 미생물을 이용해 메주 를 쉽게 띄우기 위함인데, 얽혀진 나뭇잎 사이로 공기가 원 활히 통할 수 있어 미생물의 활동에 필요한 공기를 보충함 과 동시에 세균에 의한 부패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 에 주로 만드는 즙장의 특성상 닥나무, 붉나무, 콩잎, 뽕잎 등 여름철에 구하기 쉬운 잎을 이용한 사례가 다수이나 가 을철이 되면 잎이 떨어져 쓸 수 없어 가랑잎, 짚, 솔잎과 같 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잎으로 대체된 것이라 하였다.
셋째, 17세기 조리서에서는 양념을 별도로 넣지 않다가 조 선 후기로 가면서 마늘, 파, 간장, 참기름, 간장, 천초가루, 꿀 등의 양념을 추가하기 시작하는데, 보존성 향상과 더불어 맛 에 대한 기호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점차로 추가되는 과정 을 보여주고 있다. 마늘, 파, 천초 가루 등 천연 항균물질들 이 포함된 향신채나 향신료를 사용함으로써 풍미 증진에 기 여하는 한편, 발효음식의 숙성이나 저장성을 도모하였던 것 으로 생각된다(Kim MJ 2002).<Table 3>
넷째, 말똥(혹은 두엄)에 묻어 고온발효시키는 과정이 점 차 달라지는데, 조선 전기에는 온도가 높은 새말똥에 그대로 숙성시키는 방식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반복적으로 자주 물 을 뿌려 발열시간을 연장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선시 대 즙장발효에 필요한 고온숙성 조건은 말똥이나 분뇨를 볏 짚과 섞어 만든 두엄을 이용해 만들었다. 말똥은 말을 사육 하는 관가, 역원, 군대 근방에서야 얻을 수 있었기에(Ann et al. 2015) 두엄의 재료로 보편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두엄이 잘 부숙(腐熟)시켜 좋은 퇴비로 만들려면 미생물의 생육에 필요한 수분과 적절한 온도유지가 필수적이며, 미생물의 영 양원인 두엄 속 탄소질과 질소질의 적절한 배합비 조절이 필 요하다(Lee et al. 2001; Rynk et al. 1992).
따라서 즙장발효에 알맞은 고온조건을 장시간 유지하기 위 해서는 새로운 말똥이나 두엄을 추가해 주는 것이 가장 이 상적이겠으나, 한정된 자원으로 높은 효율을 고려하다보니 분뇨 속 질소질과 볏짚의 탄소질 배합비가 적절하여야 했고 (Yun et al. 2012) 따라서, 부숙 과정에서 감소하는 수분(Lee et al. 2002)을 보충함으로써 효율적으로 고온을 유지하는 방 법을 터득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리할 때처럼 별도의 열 원을 마련하지 않고도 농사에 필요한 퇴비도 확보하면서 즙 장 제조에 필요한 기능까지 얻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었 던 것으로 판단된다.
「Juchochimjeobang」 즙저는 5개 방문 모두 불린 콩을 사용해 만드는데 위 4가지 분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모두 조선 전기 즙저 방문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17세기 이전 조 리서인 「Sangayorok」,「Suunjabbang」의 즙장 방문과 가 장 흡사한 방식인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조리법의 설명과 표현 방식은 독창적이어서 기록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고스 란히 담은 것임을 짐작케 한다.
2)무김치류
「Juchochimjeobang」에 실린 무를 이용한 김치 방문은 모 두 소금물로 간을 한 물김치 제조법이다. 총 3개의 항목(4가 지)의 동치미 방문이 소개되어 있어 즙저류 다음으로 김치류 중 차지하는 비중이 큰 유형임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1600 년대 이전 조리서를 보면「Sangayorok」에 5개의 동치미와 1개의 나박김치,「Suunjabbang」과「Yorok」에 각각 3개의 동치미 방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2015년에 본 학회지 를 통해 최초 소개된 바 있는 현전 최초 한글 조리서인 「Choi’s Eumsikbeop」에 1개의 동치미 방문이 실려 있는데 (Park 2015), 각 조리서에 김치류 중 항목 수, 기록의 순서 등에 있어 무 물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것 을 짐작할 수 있으며,「Juchochimjeobang」 3종의 무동치미 법 제조 방식에서 각각「Sangayorok」,「Yorok」,「Choi’s Eumsikbeop」의 동치미법과 유사한 부분이 확인된다.
①동치미 (凍沈)
<원문> 冬月, 蔓菁削皮, 置器中, 令極凍沈盛瓮, 汲井花水注 之. 封口置乍溫房, 待熟用之. 且用時, 於其水下小許, 其味 甚好
<번역문> 겨울에 순무[蔓菁]를 껍질을 벗겨서 그릇 속에 담아두었다가 아주 잘 얼었으면 항아리에 담고 정화수를 붓 는다. 주둥이를 봉하고 따뜻한 방안에 두었다가 익은 다음 먹는다. 또 먹을 때에 동치미 국물에 소금을 조금씩 넣어 먹 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
「Juchochimjeobang」 ‘동치미(凍沈)’ 방문을 보면 아래 「Sangayorok」,「Yorok」의 ‘동치미’ 방문과 서로 필사라도 한 듯 문구가 대동소이하다.
-
○ <동침(凍沈)> 冬月, 蔓菁削皮, 置器中, 極凍 盛瓮, 冷水 注之. 封口置溫房, 待熟 嘗味可食. 用時, 裂之, 盛匙貼 沈水 貼鹽小許, 其味甚好.「Sangayorok」
-
○ <동침(凍沈)> 冬月, 蔓菁根削皮, 浸宿棄水, 極冬凍 冷水 注之. 其口置作溫房, 待堅. 用時, 裂之以匙 取鹽小許, 則其味 甘好.「Yorok」
무를 얼렸다가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다시 따듯한 곳 에서 해동하며 익힌 뒤 먹을 때 소금을 타서 먹는 동치미법 은 지금까지 「Sangayorok」과「Yorok」에서만 볼 수 있던 흔하지 않은 제법으로 금번「Juchochimjeobang」의 발굴로 인해 총 3개의 방문이 확보 된 것이다.「Juchochimjeobang」 역시 1500년~1600년대 조리서로 추정되므로 무를 얼렸다가 만드는 동치미법은 17세기 이전까지 활용되던 방식이었을 것 으로 짐작해 볼 수 있겠다.
②모은지 김치(毛隱止沈菜)
<원문> 九月霜降前, 莖好眞菁根, 削皮割裂沈, 拯洗入瓮. 水一盆二合, 和注待熟 背沈菜, 亦如此. 又方 採眞菁根, 削 皮去莖端 廣葉, 淨洗下如霜. 着新蒿鞋 踏之. 盛槽經宿, 更 洗水淸爲度, 盛瓮暫之, 下味適. 水過節注之
<번역문> 9월 서리 내리기 전 줄기가 좋은 무뿌리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소금에 절였다가 건져 씻고 항아리에 담는다. 항아리에 물 1동이 소금 2홉 섞어 넣고 익기를 기다린다. 배 침채(背沈菜) 역시 이와 같이 좋다. 또 한 방법은, 무를 캐서 껍질을 깎고 줄기와 끝이 누런 잎을 제거하고 씻어서 서리 내린 것 같이 소금을 뿌린다. 새 짚신을 신고 밟는다. 통에 채우고 하룻밤 지낸 뒤 다시 맑은 물에 씻어 항아리에 담고 잠시 두었다가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춘다. 물이 지나치면 알 맞게 따라낸다.
모은지침채법(毛隱止沈菜)은 1개 항목에 2가지 방문이 기 록되어 있으며, 큰 틀에서는 소금물로 간을 맞추었기에 동치 미의 방문과 대동소이하지만 무에 소금을 뿌린 뒤 짚신을 신 고 밟아 준다는 설명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또, ‘배침채(背沈菜)’나 ‘모은지(毛隱止)’ 등 특이한 차자표 기의 어휘들이 보이는데 유사한 용례가 없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모은지 김치(毛隱止沈菜)’는 방문의 내용 을 보면 무를 소금물에 담가 만든 동침이인 것이 분명하다. ‘모 은지(毛隱止)’는 이전 문헌에서는 볼 수 없던 차자(借字) 표기 로 이를 차음 표기자로 읽으면 ‘몬지’가 되는데, 원료인 참무 (眞菁根)를 부르는 고유어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추 후 연구를 통해 명확히 밝혀야 할 숙제로 남는 부분이다.
‘배침채(背沈菜)’의 경우, ‘背(배)’의 중세국어 한자음은 ‘ ’ 였고(背 등 「Hunmongjahoe (訓蒙字會)」(Choi SJ (최세 진) 1527) <존경각본上:27b>)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는 ‘ ’( 숑「Hunmongjahoe」<<존경각본上:14a>) 라 고 썼으니 ‘배추김치’를 의미할 가능성도 있으나, 무동치미 를 ‘몬지김치(毛隱止沈菜)’라는 호칭으로 기록한 것과 더불 어 아직까지는 타 문헌에 등장한 적이 없는 유일한 사례이 기 때문에 향후 더 정밀한 연구와 추적 조사가 필요한 부분 이라 생각된다.
③무깨즙김치 (唐菁根荏汁沈菜)
<원문> 貌好唐菁根, 九月初, 生採之, 去毛葉淨洗, 水沈三日, 拯出暫之, 入氣遝洗入缸. 眞荏煮汁, 淡味適中注入, 置不 寒不熱處, 待熟用之
<번역문> 모양 좋은 당청근을 9월초에 생으로 캐서 털과 잎을 제거하고 물에 깨끗이 씻어 3일간 담갔다가 건져낸다. 소금을 넣어 뒤섞고 씻은 다음 항아리에 넣는다. 참깨 볶은 즙에 간을 알맞게 맞추고 넣는다. 항아리를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에 두었다가 익혀 먹는다.
당청근은 당근(唐根 또는 胡蘿)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Figure 3>에서 보다시피 무의 일종으로「Hyangyakjipseongbang (鄕藥集成方)」(Yu HT (유효통), No JR (노중례), Park YD(박윤덕) 1433)에 따르면 댓무보다 크기가 큰 무를 뜻하며(萊音蔔 鄕名唐菁根) 동치미를 만들 때 깨소금을 헝 겊에 싸 항아리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무를 쌓아 깨의 풍미가 무에 배어들게 하여 만든다. 이와 유사한 방법은 「Choi’s Eumsikbeop」의 ‘딤채(딤 )’ 방문에서도 확인된다(Park 2015). 감장과 볶은 깨를 섞어 베주머니에 넣고 항아리에 깐 뒤 그 위에 무를 올려 두었다가 감장과 깨의 풍미가 무에 밴 후 이튿날 물을 부어 동치미를 만드는 방식이다.
무동치미를 만들 때 볶은 깨로 무의 간을 들이는 방식 역 시 조선시대 김치제법을 통틀어 흔하지 않은 방법이다(Cho 2010). 1600년대 이전 조리서 중에서는「Juchochimjeobang」 과「Choi’s Eumsikbeop」에 수록된 방문 단 2건이 확인될 뿐이며, 그로부터 200여년 지난 1800년대 말 조리서인 「Jusikbangmun」 <노가재공댁본>의 ‘쉿무오 김치’ 방문에 1 건만이 추가로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제법이다.
-
○ <딤채(딤 )> 무 뿌리와 잎 고운 것을 시든 잎 없게 하되 무 몸이 상하지 않게 모두 씻어 간하여 세 동이에 좋은 감장 한 사발을 흰깨(백임자) 한 되 반 볶아 함께 찧어서 가 는 베 주머니에 넣어 독 밑에 담고 무를 씻어 간을 잠깐 하 여 독에 넣은 이튿날 정화수를 가득 부어두면 맛이 각별히 좋으니라「Choi’s Eumsikbeop」
-
○ <쇳무오 김치(쉿무오 김 )> 순무를 많이 큰 것은 한 치 길이씩 내어 열십자로 쪼개고, 잔 것은 그냥 열십자로 깨 뜨려 넣는다 생강을 저며 넣고 간을 하여 잠깐 뒀다가 간이 들면 항아리에 넣는다 깨소금을 베 헝겊에 싸 항아리 밑에 넣은 후 그 위에 간을 친 무를 넣어 소금국을 알맞게 하여 붓는다 잘 익으면 맨입에 아무리 먹어도 싫지 않다 「Jusikbangmun」
3)외·가지 김치류
배추가 김치의 원료로 정착되기 전, 외와 가지는 무와 더 불어 가장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김치의 핵심 재료였다. 「Sallimgyeongje (山林經濟)」(Hong MS (홍만선) 1700s) 를 보면 과(苽)는 ‘호과 또는 황과 외라고 한다(或稱胡瓜或稱 黃瓜외)’는 부연설명이 있는데 과숙되면 색이 노랗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00년대 일본의 「Seikeizusetsu (成 形圖說) No. 27」(Hashira S. (白尾國柱) 1804)의 호과 그림 <Figure 4>과 신사임당이 그린 외<Figure 5>를 보면 지금의 오이에 비해 훨씬 굵고 짧아 모양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담 정( 庭) 김려(金金慮 1766-1821)의 시에는 “호과는 요즘 항 상 먹는 오이다. 늙은 것을 황과라고 한다. 또 다른 종은 흰 색인데 월과라고 부른다(胡瓜今常食瓜子 老曰黃瓜 又一種色 白 名越瓜).”고 하였고,「Imwonsibyukji (林園十六志)」(No & Kim ed. 2010) <灌畦志>에서도 황과를 호과 또는 월과 (一名胡瓜 一名越瓜)라고 하고 있어 조선시대 외는 다양한 품 종을 폭넓게 지칭한 것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즙저류의 주재료도 외와 가지였지만 그밖에 다양한 김치 방문에 외와 가지가 두루 사용되었다. 17세기 이전에는 소금물에 담근 물김치와 간장에 절인 장김치 두 가 지 유형이 주를 이룬다.
「Juchochimjeobang」에서 외와 가지를 재료로 하는 방문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즙저 제조 5종, 김치류 8종(물김치 5 종, 장김치 2종, 젓갈김치 1종), 장기저장법 4종으로 구성되 어 있다. 이 중 즙저와 젓갈김치 및 저장법은 별도 항에서 소 개하므로 물김치와 장김치 총 7종의 방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1)물김치류
외김치1 (苽)
<원문> 苽子洗正待乾, 山椒實及注之. 花根莖洗之正鹿, 交合於瓮中. 先入苽子, 次椒實花根莖, 次次交入. 苽子一, 盆 三升式, 入水三盆一沸湯, 待冷瀉之. 水若未傳瓮口, 則雖非 時, 冷水加注, 色味俱好經年可. 用時, 瓜椒洗正冷水沈用, 尤妙
<번역문> 외를 씻어 물기를 말린 다음 산초 열매를 넣는 다. 꽃 뿌리와 줄기를 씻어서 썬 다음 항아리에 섞어 넣는다. 먼저 외를 넣고 다음에 산초열매 꽃, 뿌리, 줄기를 차례차례 넣는다. 외 1동이 소금 3되씩에 물 3동이를 넣고 한번 끓여 식혔다가 붓는다. 물이 만약 항아리 입구에 아직 오지 않았 다면 비록 때가 아니라도 냉수를 더 넣으면 색과 맛이 갖추 어져 해가 지나도 좋다. 먹을 때 외와 산초를 씻어 냉수에 담가 먹으면 더욱 맛있다.
외김치2 (苽)
<원문> 摘苽洗淨, 陽乾半日, 納瓮. 水一盆五升和, 沸 半冷注入. 山椒靑實與葉, 塞口. 多香味到春如初
<번역문> 외를 따서 씻어 반나절 볕에 말린 다음 항아리 에 넣는다. 물 1동이 소금 5되를 섞어 끓여서 반쯤 식힌 다 음 붓는다. 산초 푸른 열매와 잎으로 입구를 막는다. 향과 맛 이 좋아 봄이 되어도 처음 담은듯하다.
외김치3 (水苽)
<원문> 八九月間, 晩苽洗乾入缸, 淡水注之. 淡則如常 味
<번역문> 팔구월사이 늦 외를 씻어 말려 항아리에 넣고 심 심한 소금물을 붓는다. 간이 들면 늘 변함없이 맛이 좋다.
외김치4 (苽造法 法再考)
<원문> 八月間, 摘新苽洗正. 陶一盆, 鹽四升式計數苽, 及瓮 先洗乾無濕氣. 瓮中先排苽, 隔於薄草席. 又排苽, 又隔席, 又排苽, 又隔席, 盈盛然後, 水量入其瓮與鹽, 同煎極熟注瓮, 待 熟用之. 其味軟好, 經春不變
<번역문> 8월에 새 외를 따서 씻는다. 질그릇 1동이에 소 금 4승씩 외의 수에 따라 알맞게 한다. 항아리는 먼저 씻어 서 햇볕에 쬐어 말리고 습기를 없앤다. 항아리 안에 외를 먼 저 펼친 다음 얇은 초석(草席 짚으로 친 자리)으로 깔아준다. 또 외를 펼치고 초석으로 덮은 다음 또 외를 펴 넣고 초석으 로 덮어 가득 채운 연후에 물과 소금을 팔팔 끓여 항아리에 붓고 익으면 먹는다. 그 맛이 부드럽고 좋아 봄을 지나도 변 하지 않는다.
가지김치 (茄子)
<원문> 茄子一盆, 三升式交沈
<번역문> 가지 1동이 소금 3승씩 섞어 담근다.
17세기 이전 조리서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은 무에 비 해 상대적으로 저장성이 떨어지는 외로 물김치(담저)를 만들 때 산초, 형개, 여뀌, 향유, 할미꽃 등 항균성이 강한 식물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459년 조리서인 「Sangayorok」 을 살펴보면 다양한 제법의 과저(瓜菹)를 오래 저장하는 방 법으로 할미꽃, 여뀌잎, 형개 등을 첨가한 것을 볼 수 있으 며(Han 2003) 이를 토대로 한 Han & Jo(2005)의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할미꽃의 사용은 오이지의 연부를 막고 저장 성을 증가시킨다고 하였다. 또한 Ahn & Shim(1997), Han & Sim(1997), Shim et al.(2001)의 연구에서는 산초와 할미 꽃을 오이지에 첨가함에 따라 오이지의 pH와 산도를 저하시 켜 오이지의 이화학적, 물리적 특성의 변화를 늦추는 것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항균성이 강 한 식물을 이용하는 물김치 제법은 18세기「Jeungbosallimgyeongje」 이후부터는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거나 소금물을 순환시키는 방식을 활용하게 되면서 거의 사라진 제법이다.<Table 4>
(2)장김치류
외장김치1(汁苽)
<원문> 五月後熱時, 和水醬一升, 眞油一合, 待交煎冷. 兒 瓜上下端割取. 又割十字 生薑蒜片, 交入十字間小. 缸瀉 醬 汁, 油紙封口, 經七日用之
<번역문> 5월이 지나 더울 때 물에 간장 1되, 참기름 1홉 섞어 달여 식힌다. 어린 외 아래 위의 끝을 자른다. 또는 십 자로 자르고 생강, 마늘 편을 십자로 벌어진 틈사이로 조금 씩 넣는다. 항아리에 간장 즙을 부은 뒤 유지로 입구를 봉하 고 9일 뒤에 먹는다.
외장김치2 (靑苽)
<원문> 靑童苽, 洗而多著, 經一, 遝洗 乾, 裂 一面. 生薑·生細切 眞油· 醬·胡椒末交合, 裂苽入, 生麻外 結. 又眞油· 醬, 和注入缸. 熱時則二日後, 用之
<번역문> 푸르고 어린 외를 깨끗이 씻어 소금을 많이 넣 고 하루를 지낸 다음 뒤집어 씻고 불에 건조시켜 1면에 칼 집을 낸다. 생강과 마늘을 가늘게 저미고 참기름 간장 후춧 가루를 섞은 다음 칼집 낸 외에 넣고 생마로 바깥을 동여맨 다. 또 참기름과 간장을 섞어 항아리에 넣는다. 더울 때에는 2일후에 쓴다.<Table 5>
달인 장에 외를 넣고 숙성시키는 장김치는 소박이형 김치의 초기형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외에 먼저 칼집을 낸 뒤 절단면에 마늘, 생강 및 기타 양념류를 삽입함으로써 육질에 맛과 향이 잘 배어들면서 물성은 오래 유지되도록 꾀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Juchochimjeobang」의 ‘즙과’와 ‘청과저’는 「Sangayorok」의 ‘과저’와 ‘하일가즙저’,「Suunjabbang」의 ‘향과저’의 방문과 가장 유사한 형태이다.
-
○ <과저(瓜)> 오이를 깨끗이 씻어 하루 동안 햇볕에 말렸다가 항아리에 담는다. 향유 한 겹, 오이 한 겹씩 차곡 차곡 놓으면서 항아리를 가득 채운다. 그 위에 끓인 소금물 을 차게 식혀 붓고, 백두옹(白頭翁, 할미꽃) 풀로 덮는다. 또 다른 방법은 오이를 1치 정도로 잘라 끓는 물에 재빨리 데 쳐 파랗게 만든다. 오이에 형개, 산초 잎, 생강, 마늘을 섞어 항아리에 담고 참기름에 달인 장즙을 부어 하룻밤 지나서 쓴 다. 또 다른 방법으로 오이를 1치 정도로 잘라 팔팔 끓는 물 에 재빨리 데쳐 파랗게 되면 여뀌 잎과 섞어 소금물에 절이 면 맛이 아주 좋다. 또 다른 방법으로 오이를 1치 정도로 잘 라 동아 꼭지, 형개, 여뀌 잎이나 열매를 섞고 소금물에 절 이면 아주 좋다. 또 다른 방법으로 어린 오이를 팔팔 끓는 물에 재빨리 데쳐 파랗게 되면 3 조각으로 잘라서 간장에 담 가서 바로 먹는데 아주 연하다. 또 다른 방법으로 5~6월에 채취한 오이를 씻어 물기를 없애고 햇볕을 쬔다. 백두옹(白 頭翁, 할미꽃) 뿌리나 줄기가 연하도록 찐 뒤 오이 사이사이 에 넣어 항아리에 담는다. 끓인 소금물을 뜨거울 때 가득 붓 고 입구를 덮어 진흙을 발라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가을이 나 겨울이 되면 쓴다.「Sangayorok」
-
○ <하일가즙저(夏日假汁)> 오이를 반나절 햇볕에 쬐어 말려 세 갈래로 칼집을 내서 그 속에 생마늘, 향유, 분디잎 을 넣어 장에 담가 하룻밤 지나 쓴다.「Sangayorok」
-
○ <향과저(香苽)> 어린 오이를 골라 천으로만 닦아서 잠깐 햇볕에 말리고 위아래 끝을 잘라버리고 수직방향으로 세 가닥 쪼갠다. 생강, 마늘, 후추, 향유기름 한 숟갈, 간장 한 숟갈을 함께 섞어 지져 쪼갠 오이의 사이에 넣는다. 새지 않는 항아리에 물기가 없이 바싹 말려 먼저 소를 넣은 오이 를 담고 기름과 간장 등을 함께 넣고 달여 식기 전에 항아리 에 붓는다. 다음 날이면 쓸 수 있다.「Suunjabbang」
4)젓갈을 넣은 김치류
김치 제조에 젓갈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으로 고춧가루 이용시기와 중첩되어 있는데 조 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 사례는 1700년대 문헌인 「Somunsaseol」의 ‘무깍두기(菁)’와「Jeungbosallimgyeongje」의 ‘새우젓외김치(외술지게미김치법(糟黃瓜法) 뒷부분 에 부연)’ 항목이다. 물론 본격적인 사용 이전인 1500년대에 도 젓갈이 들어간 김치가 존재하였다는 정황은 조리서 외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Park 2013) 일상화되었다고 보 기는 어렵다. 1700년대 이전까지 젓갈은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가치재였으므로 조리서에 기록해 두고 종종 만들어 먹 을 수 있을 정도로 통용되던 김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짐 작된다. 망어업 기술의 발달로 어획량이 크게 증가하고 건제 품, 염장제품, 젓갈 등의 가공 기술이 크게 발달함에 따라 내 륙지방까지 음식에 어육제품을 다소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이다(Kim 2004; Kim & Jung 2016). 더 불어 고춧가루는 젓갈의 비린 맛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김 치에 젓갈의 사용은 더 활발해 질 수 있었다(Lee 1986; Kim & Jung 2016).
따라서 신규 발굴된 1600년대 조리서인「Juchochimjeobang」 에 백하젓과 자하젓을 넣은 김치의 레시피가 2종이나 실려 있다는 점은 이 조리서가 지닌 사료적 가치를 제고시키기에 충분하다.
①동아새우젓섞박지 (冬苽白蝦交沈菹)
<원문> 切冬苽一盆, 鹽六升, 白蝦一斗, 交合納瓮
<번역문> 자른 동아 1동이, 소금 6되, 새우젓(白蝦) 1말 을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동아는 박과에 속하는 일년생 동굴성 초본으로 마치 무등 산 수박처럼 길죽하고 과육은 희고 두터우며 현재는 재배량 이 적어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나 「Eumsikdimibang」, 「Siuijeonseo」등에서 동아선, 동아적, 동아돈채 등과 같이 다양한 음식의 식자재로 사용되었다(Choi 2013; Jung et al. 2015).「Juchochimjeobang」의 경우는 동아를 그냥 잘게 썰 고 소금과 새우젓으로만 담은 김치이다. ‘교침저(交沈菹)’는 우리말로 ‘섞박지’라 부르는데 향신양념 없이 젓갈만 넣었음 에도 교침저로 불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양 의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을 부어 담았던 김치와 달리 젓 갈을 넣으면서 버무리는 작업이 추가되면서 명칭에 분화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동아로 만든 김치에 젓갈을 넣어 만든 섞박지형 김치가 본 격화된 후의 모습은「Imwonsibyukji」: 젓갈,「Gyuhapchongseo (閨閤叢書)」(Bingheogak Lee (빙허각 이씨) 1809): 조 기젓,「Siuijeonseo」: 조기젓,「Jusiksiui (酒食是義)」(Yeonan Lee (연안 이씨) End of 1800s): 조기젓,「Ojuyeonmunjangjeonsango (五洲衍文長箋散稿)」(Lee GG (이규경) 1800s): 민어젓국 등 1800년대 이후 조리서부터 확인된다. 섞박지형 김치의 표기는 한문 조리서에서는 ‘해즙저( 汁菹)’ 및 ‘서 박저(胥薄菹)’, 한글 조리서에서는 ‘셧박지’ 및 ‘셕박지’ 등으 로 쓰여 있다.
19세기 이후 동아젓갈김치는 동아의 꼭지부분을 베어 내 고 속을 파낸 뒤 그 안에 젓국과 갖은 양념(생강 천초, 참깨, 청각, 파, 고추 등)을 붓고 다시 위 뚜껑을 덮었다가 양념과 젓갈이 동아 살에 배어들면서 익으면 썰어 먹는 형태이다. “여러 가지 젓갈(雜)과 채소(菜)를 섞어 담근(沈) 것을 교 침채(交沈菜)라 한다(五洲衍文長箋散稿 經史篇 經傳類 禮 經).”는 이규경의 설명으로부터 19세기 섞박지의 재료는 17 세기 이전의 것과 비교해 상당히 풍성해졌음을 알 수 있다. 「Juchochimjeobang」의 동아섞박지는 만드는 방법이나 재 료가 매우 소략한 초기형태라 할 수 있겠다.
②감동저 (甘動 곤쟁이젓섞박지)
<원문> 童子苽摘取, 沈水經一宿, 拯 出半乾, 紫蝦交 沈. 兒苽曝湯, 半乾交沈, 亦可
<번역문> 어린 외를 따서 소금물에 하룻밤 재웠다가 꺼내 반건조시킨 후 자하젓과 섞는다. 어린 외를 매우 끓는 물에 데쳐 반건하여 섞어 담가도 좋다.
15~16세기 문인들이 남긴 문집 속 기록을 통해 대략의 형 태만을 짐작해 왔던 곤쟁이젓섞박지의 레시피를 동일 연대 조리서로부터 온전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조 리서에 수록된 ‘감동저(甘動)’ 방문은 김치제조사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자하는 크기가 작고 가느다란 자색 새우로 한자어로는 ‘紫蝦(자하)’, 한글로는 ‘권쟝이(「Mulmyeonggo (物名攷)」(Yu h(유희) 1820))’, ‘권뎡이(「Sallimgyeongje」)’ 또는 ‘감동이(「Jaemulbo (才物譜)」(Lee MY (이만영) 1798))’라 불렀고, 한글 발음을 한자어로 차자 표기할 때 권 쟝이는 ‘袞貞(곤정)’ 또는 ‘權停(권정)’, 감동이는 ‘甘動’ 또는 ‘甘冬’ 이라 썼다. 조선시대 자하젓은 왕실 진상품목에 올라 있었는데 중국 사신도 선물로 요구할 만큼 인기 있는 물품 이었다. 따라서 자하젓에 대하여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지리지 를 비롯해 문인들의 일기, 시 등에 상당히 많이 언급되어 있 지만 자하젓으로 담근 감동저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기사는 다음에 소개하는 두 개의 글이다.
첫 번째, 기묘사화로 인해 낙향해 있던 이자(李, 1480~ 1533)에게 감동저를 보내며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을 곤쟁 이(袞貞)젓으로 비유한 일화를 담은 김정국(金正國 1485~ 1541)의 ‘ 言(척언)’에는 “곤쟁이(권정 權停)와 푸른 외로 만든 섞박지를 속칭 감동겸(感動兼)이라 하는데 너무 맛있어 감동(感動)할 것이라는 농담에, 실없는 농담은 그만두라(권정 權停)”고 대꾸하는 동어 반복적 해학이 기록되어 있어 감동 저의 재료와 맛, 명칭에 대한 실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ark 2013).
두 번째,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이 지은 시 ‘연안 부사 오여완 영감이 보내온 자하젓외섞박지 한 항아리에 감사하 며(奉謝延安吳府使汝完令公以紫蝦靑瓜菹交沈一缸見惠)’, ‘자하와 푸른 외 함께 소금에 담가(蝦紫瓜靑共漬鹽) 한 항아 리에 담았다 꺼내니 대단히 맛이 있네(一缸盛出十分添)’라는 구절이 있어 이안눌이 받은 외, 자하젓, 소금을 원료로 한 선 물용 고급 김치가 바로 감동저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여완(汝完)은 조선 중기 문인 오준의 자(字)로 오준이 연안 부사를 역임한 것이 1627년~28년이니(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이 기간 중 곤쟁이젓섞박지 를 선물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두 글에서 감동 형태를 대략 짐작할 수는 있으나, 금번 발굴된「Juchochimjeobang」을 통해 16~17세기 감동저는 외를 소금에 절이거나 데쳤다가 물기를 어느 정도 제거한 후 젓갈과 섞어 만드는 방식이었다는 구체적인 제조 절차를 확 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Juchochimjeobang」 발굴 이전까지 젓갈로 담근 김치에 대한 기록은 100여년 이상 후대의 문헌인「Jeungbosallimgyeongje」와「Somunsaseol」이 가장 앞선 것이었다.
「Jeungbosallimgyeongje」 <치선(治饍)·上·채소제품(菜 蔬諸品)편> ‘조황과법(糟黃瓜法)’ 항목 말미를 보면 ‘황과 늙 은 것을 즙장이나 장에 담그거나 소금에 절였다가 새우젓국 을 부어 먹으면 좋다(黃瓜未老者 同沈汁醬中 或 沈醬瓮中 或 鹽淹取出 投蝦汁 中 皆可)’ 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다. 별 도의 방문명 없이 추가 기재된 탓에 김치제조변천사 연구에 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Juchochimjeobang」 발굴 전까지「Somunsaseol」의 무깍두기인 ‘청해(菁)’와 함께 이것이 젓갈이 사용된 최초의 김치제법 사례로 파악되어 왔 다. Jang(1996)은 이를 ‘장황과(醬黃瓜)’로 명명하였으나 필 자는 젓갈을 사용한 김치제법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 ‘황과 해저(黃瓜菹)’로 명명한 바 있다(Park 2013). 황과를 즙저 또는 장김치로 만들거나 소금에 절였다가 새우젓을 넣어 젓 갈김치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으로 새우젓이 백하젓(白蝦 汁)인지 자하젓(紫蝦汁)인지 따로 구별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Jeungbosallimgyeongje」에는 황과해저(黃瓜菹) 외에 젓갈김치 방문이 한 가지 더 존재하는데 대다수의 김 치 방문이 수록된 <채소제품(菜蔬諸品)편>이 아닌 <어품류 (魚品類)>에 기록되어 있었던 탓에 인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치선(治饍)·下·어품류(魚品類)> ‘자하(紫蝦)’ 항목을 보면 젓갈 담는법(沈 其法)이라고 서두를 시작하 고 있으나 실제로는 김치 제법임을 알 수 있다.
-
○ <젓갈 담는법(沈 其法)> 자하는 젓갈로만 담을 수 있다. 먼저 전복, 소라, 외, 4조각으로 자른 무를 모두 소금 에 절여 저장한다. 자하 잡을 철이 되면 앞의 4가지 재료의 소금기를 조금 남기고 퇴렴한다. 자하에 소금을 뿌리고 앞의 4가지 재료와 함께 항아리에 층층이 담는다. 다 담고 나면 유 지로 입구를 봉하여 땅에 묻는다. 위는 소래기로 꼭 덮고 입 구 가장자리에는 잘 태운 재를 뿌려두면 벌레와 개미, 비, 습 기를 막을 수 있다. 오래 두었다 먹으면 더 맛있다.「Jeungbosallimgyeongje」
감동저라고 명명하고 있지 않으나 자하와 절인 외가 주재 료라는 점에서 감동저임이 분명하다. 17세기 이전 「Jucho chimjeobang」의 감동저에 비해 전복, 소라 등의 해산물이 추가되었고, 채(菜)류로는 외만을 사용하다가 무가 더해져 훨 씬 화려한 형태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Jeungbosallimgyeongje」 이후에 집필된「Imwonsibyukji」,「Gyuhapchongseo」,「Ojuyeonmunjangjeonsango」,「Siuijeonseo」 속 의 젓갈김치는 동아·배추·무·가지 등의 채품(菜品) 및 전복·소라·낙지 등의 어품(魚品)을 사용하였다. 더불어 조 기젓·민어젓·백하젓·밴댕이젓·준치젓 등 다양한 젓갈, 그리고 마늘·생강·고추 등의 향신료를 모두 동시에 사용 하는 복잡한 형태의 섞박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절인 외 와 자하젓만으로 담근 17세기 이전의 감동저와는 격차가 있다.
5)그 외 김치류
①동아김치 날채 (日乙菜)
<원문> 最先結冬苽, 冬初摘取, 切之小着, 素灰埋, 經七八 時, 淸水, 淨洗十餘沈, 更洗拯出去露. 切與交合入瓮, 用時細切用之, 和芥用則可經孟春
<번역문> 가장 먼저 열린 동아를 겨울 초에 따서 썰어서 소금을 조금 묻히고 석회에 묻어 7~8시간 동안 놔둔다. 청감 수에 10여 차례 깨끗이 씻고 담가두었다가 다시 씻고 건져 내어 물기를 제거한다. 썬 마늘과 소금을 섞어 항아리에 함 께 넣고 먹을 때 잘게 썰어서 쓴다. 겨자와 섞으면 맹춘까지 도 지낼 수 있다.
동아를 주재료로 마늘 혹은 겨자를 넣어 담근 김치는 <Table 6>에서 보는 바와 같다. 수분이 많은 동아를 절이거 나 데치는 등 전처리를 먼저 하고 나서 겨자를 섞은 개채(芥 菜)나 마늘을 넣는 산채(蒜菜) 방식이다.
날채(日乙菜)라는 ‘日乙菜’는 표기방법만으로 보자면 날 채 소 즉, 생채(生菜)의 이두식 차자표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방문의 내용을 보건데 데치는 전처리 과정이 있어 날 채소 를 뜻할 가능성이 없었다. 차자표기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Imwonsibyukji」<灌畦志>에서 해답을 얻게 되었다. <灌畦志>의 겨자(芥)편을 보면 겨자를 ‘일명 랄채 (辣菜)라 한다’고 되어있는데,「Nongjunghoeyo (농정회요)」 (NAAS ed. 2007)에서 ‘그 맛이 매워서 지조가 있다는 뜻이 다’라는 의미의 부연 설명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겨자로 인 한 매운맛(辣味)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Juchochimjeobang」의 ‘날채(日乙菜)’는 바로 동아날채의 ‘랄채’의 우리 음 ‘날채’ 발음에 따라 다시 한자어로 차자표기 하였던 것이 다.「Sangayorok」에도 동아에 겨자를 넣어 만든 ‘동아침채 (冬苽沈菜)’ 방문에 바로 뒤이어 ‘동아랄채(冬苽辣菜)’라는 항 목명이 나온다. 방문을 보면 겨자가 누락되어 있는데도 불구 하고 항목명이 랄채라고 되어있는데 다른 조리서의 동아김 치 조리과정을 비교해 볼 때 기록자가 겨자를 실수로 빠뜨 린 것으로 짐작된다.<Table 7>
②토란김치(吐蘭沈菜)
<원문> 冬則吐蘭莖絶一斗 一合 春用則二合
<번역문> 겨울이 되면 토란줄기를 자른 1말에 소금 1홉을 넣어두면 봄에 먹을 수 있는데 2홉이 된다.
-
○ <우침채(芋沈菜): 토란대김치> 서리 내리기 전 줄기를 베어 깨끗이 씻고 쪼갠 토란대 한 말에 소금 한 줌씩을 넣고 버무려 통에 담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짚으로 뚜껑을 덮 는다. 반나절 후에 양손으로 물기를 꼭 짠 후 곧 항아리에 넣고 손으로 눌러 담은 후 입구를 막는다. 물이 들어가지 않 게 하고 절대 바람도 타지 않게 한다.「Sangayorok」
-
○ <토란경침조(芋莖沈造): 토란대김치> 토란대를 가늘게 썰어 한 되당 소금 한 줌씩을 뿌려 잘 섞어 항아리에 담고 매일 손으로 눌러가며 작은 그릇에 옮겨 담는다. 익을 때까 지 이렇게 한다.「Suunjabbang」
-
○ <토란김치(토란딤 )> 토란줄기를 모두 씻어 작두에 썰어 한말에 소금 한줌씩 넣어 간 칠 때도 두 손으로 힘껏 치고 항아리에 넣을 때도 매우 다져서 넣고 익어서 가라앉 아 삭거든 점점 다지고 다른 항아리의 것이라도 더 퍼서 넣 어 써라 (양이) 적거나 성기게 하면 무르느니라.「Choi’s Eumsikbeop」
토란김치의 제법을 보면 겨울에 소금에 짜게 절여 변패하 지 않도록 보관하였다가 봄에 먹기 위해 마련해두는 채소절 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투압 작용으로 토란의 수분 이 빠지면서 부피가 줄면 계속 다독이며 눌러 공기를 차단 하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조선 전기에는 아직 양념형 김치가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장기보존을 위한 단순 장법(藏法)과 김치를 담그는 침법(沈法)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상당히 있 다. 17세기 이전 조리서에 수록된 침법과 장법의 제법을 토 대로 굳이 엄밀히 추론해 보면 침법은 퇴렴만 한 뒤 김치처 럼 그 자체로 반찬이 될 수 있는 경우를, 장법(藏法)은 무침 등 다른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할 경우로 구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글조리서인 「Eumsikdimibang」의 경우 침법(沈法)은 ‘담 법’으로, 장 법(藏法)은 ‘가숏 법(간수하는 법)’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란의 경우 단순 소금절임(鹽漬)임에도 제법이 기록된 모 든 조리서에서 이를 김치로 인식하였던 것을 보면 이 자체 를 반찬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Jeungbosallimgyeongje」의 ‘겨울가지김치법( 冬月茄菹)’에 겨울철 가지 와 소금에 절인 토란을 함께 넣어 김치로 만들어 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어 이와 같은 추론에 참작이 된다.
-
○ <겨울철 가지김치 만드는 법( 冬月茄菹法)> 먼저 토 란대를 취하여 세치 길이로 썰어 반나절 정도 소금에 절인 다. 어느 정도 절여지면 소금물을 꼭 짜내고, 다시 앞처럼 소 금 치고 꼭 짜서 숨죽이고 또 소금을 친다. 가지는 꼭지 떼 고 문질러 씻어 작은 항아리에 넣고 소금에 절인 토란대를 위에 덮은 뒤, 맨드라미를 많이 넣되 물은 많이 넣지 않는다. 음지에 두되 추울 때에는 얼지 않는 곳에 두었다가 겨울철 에 꺼내면, 가지 빛이 붉어 먹음직하니 찢어 꿀을 발라 먹는 다. 물을 넣지 말라 했으나 시험해봐야 한다.「Jeungbosallimgyeongje」
6)채소류 장기저장법
예부터 한국인의 전통적인 식생활에서 채소음식은 빠질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였으며, 이에 따라 나물, 생채 등과 같이 바로 취식할 수 있는 찬부터 김치, 장아찌 등과 같이 장기저 장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안해왔다. 고려시대 문헌인 「Donggugisanggukjip」(Lee GB (이규보) 1241)의 자신의 채마밭에 심은 6가지 채소(육영)에 대해 시로 쓴 ‘가포육영 (家園六誠)’을 살펴보면 오이, 가지, 무, 파, 아욱, 박에 대해 쓰여 있으며 가지는 생이나 익혀서 섭취하였고, 파는 양념용 이나 술안주로, 무의 경우 소금에 절여 겨울동안 저장했다고 쓰여 있다(Cho 2003). 상고시대 이래 마늘·쑥 등이,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이후 가지·오이·상추 등이, 고려시대 이 후 무·순무·죽순·토란·우엉·파·부추·미나리 등이, 조선시대 이후 고추·호박·토마토·양배추 등 다양한 채 소를 섭취하였으나(Cho 2003) 채소들의 저장성이 떨어져 이 를 잘 저장해 원료를 구할 수 없는 시기에 먹을 수 있도록 장만해두는 것이 살림을 맡은 여성들에게는 큰 과제였다. 자 연히 조리서에 이들 원료의 저장법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다음에 소개할 항목은 장기보관 목적의 저장과 단순 저장 목 적의 염지(鹽漬)에 해당되는 방문으로 외, 가지, 동아, 고사 리, 취나물을 다루고 있다.
①외저장법1 (藏生苽法)
<원문< 堀地若干多小任意藏之. 不滿虛五寸許, 以木物覆之. 其上以沙土埋之, 隔二三朔 不變色
<번역문> 굴을 파서 분량에 상관없이 저장해둔다. 5치 정 도를 채우지 않고 비운 후 나무로 위를 덮는다. 그 위에 모래 와 흙을 덮어 묻어 두면 두 서너 달이 지나도 변색이 없다.
②외저장법2 (藏靑苽法)
<원문> 七八月中, 摘靑苽埋鹽. 冬節, 浸柳木水, 退鹽用之. 又九月, 靑苽俱摘取, 柳木斫伐, 邊引剖爲盖, 下邊錯中爲槽, 盛靑苽, 合其蓋, 塗其隙, 置無大氣. 土宇不凍不熱, 古道魚鹽裏 埋之, 翌年, 二月三月烹用, 則如初
<번역문> 7~8월 중에 푸른 외를 따서 소금에 묻는다. 겨 울철에 버드나무물(柳木水)에 담갔다가 소금기를 빼고 먹는 다. 또 9월에 푸른 외의 꼭지를 딴다. 버드나무 줄기를 베어 덮개와 통을 만들고 푸른 외를 담은 다음 뚜껑을 덮고 그 틈 을 바르고 대기(大氣)가 없는 곳에 둔다. 흙집은 얼지도 덥 지도 않으니 옛날에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 싸서 묻어놓고 다 음해 2~3월에 쪄서 먹으면 처음과 같다.
③가지저장법1 (藏生茄子法)
<원문> 茄子, 霜前摘取, 盛於瓮中. 先下過半埋置, 其色 不變
<번역문> 가지는 서리 내리기 전에 따서 항아리에 담는다. 먼 저 꼭지를 떼고 반 이상을 묻어 두면 그 색이 변하지 않는다.
④가지저장법2 (藏茄子法)
<원문> 眞菁根大者, 種土宇, 用串衝靑根中作穴, 茄子不 傷者, 揷之. 又生柳木二尺許 斫切半埋, 土宇二端蓋土, 勿令建 燥. 其木上用針作穴, 茄子不傷者, 揷之
<번역문> 참무[眞菁根] 큰 것을 움(土宇)에 심어놓는다. 꽂 이를 써서 청근 가운데를 찔러 구멍을 내고 가지 꼭지 상하 지 않는 것을 꽂아놓는다. 또 버드나무를 2자쯤 베어 반쯤 묻고 움(土宇) 두 끝을 흙으로 덮고 두 끝을 흙을 덮고 마르 지 않게 한다. 그 나무 위에 침을 써 구멍을 내고 가지 꼭지 상하지 않는 것을 꽂는다.
김치류 재료로 외와 가지를 활용하는 빈도가 높았던 만큼 신선하게 장기 저장하는 방법도 상당수 밝혀져 있다. 보관 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꼭지 부분까지 따서 그 부위가 마르거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었던 것으 로 보인다. 1600년대 이전 조리서를 보면 가지 보관 시 꼭지 부위를 재에 묻거나 무 또는 나무에 꼭지를 꽂거나 밀랍을 발라 두기도 하고 아예 가지 전체를 잿더미에 묻어두는 방 법을 취하고 있는데<Table 8>,「Juchochimjeobang」의 경우 버드나무를 활용한 점이 다른 조리서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 이다.
버드나무는 한방에서 버드나무 각 부분을 유화(柳花; 꽃), 유서(柳絮; 씨), 유지(柳枝; 가지), 유엽(柳葉; 잎)이라고 부르 며 진통 및 해열제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아스피린(Aspirin) 의 주성분인 살리실산(Salicylic acid, ─酸)을 버드나무 껍질 에서 추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The Academy of Korea studies; Park 2017). 살리실산은 뛰어난 방부효과를 지니고 있어 한 때 청주·과실주(1 L당 0.25 g), 식초(1 L당 0.0 6g) 의 방부제로 쓰이기도 했으나(Sehwapub.) 현재는 독성이 문 제되어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Table 9>
예로부터 버드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수분이 많 은 토양에서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줄기는 잘 부러지지 않고 쉽게 휘는 성질이 있어 엮어서 그릇으로 만들어 활용하거나 조리도구로 활용하 기도 하였다. 고조리서에서도 버드나무를 활용한 예가 있는데 술밥 만들 때 젓는 도구로(「Kimseungjidaek jubangmun (金 承旨宅廚方文)」(Anonymous (저자 미상) 1860s)), 조청을 만 들면서 쌀죽을 거르는 거름대로(「Leessi jubang (李氏 酒方)」 (Anonymous (저자 미상) Early 1800)), 즙장용 메주를 띄우 는 그릇으로(「Jusikbangmun」<노가재공댁본>) 쓰인 사례 가 보인다.
한편, 버드나무의 물리적 성질을 이것이 아니라 화학적 성 질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예도 있는데, 장의 쓴맛을 없애 기 위해 버드나무를 말뚝모양으로 길게 깎아 장에 박거나 (「Hasaengwondaek jubangmun (河生員酒方文)」(Anonymous (저자 미상) End of 1600s), 장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버 들가지를 꽂았다(「Gyuhapchongseo」). 또한 밤과 은행 껍 질을 쉽게 벗기기 위한 용도로 삶을 때 버들가지를 넣은 경 우도 있다(「Sulbinneunbeop」(Anonymous (저자 미상) End of 1800s)).
절임 채소류와 관련하여 버드나무를 활용한 사례는 「Hasaengwondaek jubangmun」의 팀고사리법( 蕨法)으로 소금에 절였던 고사리를 퇴렴할 때 ‘버 나모 믈(버드나무 물)’을 쓰라고 되어 있어「Juchochimjeobang」에서 오이지 를 유목수(柳木水)에 퇴렴하라고 한 것과 동일한 방법임이 확인된다. ‘유목수(柳木水)’가 ‘버드나무물’임은 분명해졌으 나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겨울철 퇴렴 할 때 썼다는 점, 그리고 장류 보관 시 가지를 사용했 던 점으로 보아 잎이나 꽃보다는 가지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버드나무 가지를 물에 담그거나 혹은 삶게 되면 버드나무 의 수액 및 껍질의 성분이 물에 침출되므로 버드나무가 지 닌 효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 가지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사 용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버드나무의 기능 성 물질로는 살리실산이 지닌 소염, 해열, 방부 기능성과 연 관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지만 보다 정확한 검증을 위 해서는 장류의 보존과 방충 및 절임 채소 퇴렴 과정 중 버드 나무의 어느 부위와 성분이 어떠한 작용 기작을 통해 영향 을 준 것인지 밝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⑤동아저장법 (藏冬苽法)
<원문> 最先結不朽冬苽, 臨霜降, 收蔓覆冬苽, 又蓋空石. 秋 沈霜厚, 摘不傷, 空石盛灰置冬苽, 又覆灰結, 置不寒不熱 無火氣土宇內
<번역문> 가장 먼저 열매 맺어 오래가는 동아는 상강이 되 었을 때에 넝쿨을 거두어 동아를 덮고 또 가마니를 덮는다. 가을에 서리가 수북이 내려 적시면 꼭지가 상하지 않게 따 서 공석에 재를 담고 동아를 놓는 다음 또 재를 덮고 묶어 싼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화기가 없는 움 속에 둔다.
-
○ <슈박 동화 가숏 법(수박 동아 간수하는 법)> 수박과 동아를, 깊은 농(欌籠, 광주리)에나 큰 독에 겨를 넣고, 거기에 묻어 얼지 않는 방에 두면 썩지 않느니라.「Eumsikdimibang」
동아는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지, 외와 마찬가지로 여러 방식의 저장방법 소개에 높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Juchochimjeobang」에서는 재(灰)에,「Eumsikdimibang」 에서는 겨(穀皮)에 저장할 것을 추천하였다.
「Juchochimjeobang」을 제외한「Sangayorok」,「Yorok」, 「Eumsikdimibang」에는 동아의 침법도 소개하고 있는데 껍 질 벗긴 동아의 살만 소금에 짜게 절였다가 봄에 퇴렴하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동아는 18세기 섞박지의 재료로 주로 활 용된 기록이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다른 요리의 재료로 쓰이 는 것인지, 그 자체로 취식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록이 거 의 없다. 16세기 조리서인 「Suunjabbang」만이 퇴렴한 뒤 굽거나 겉만 익혀 먹으라(동아절임)는 구체적인 취식 방법까 지 설명해주고 있다.
⑥고사리 저장법 (藏蕨法)
<원문> 擇蕨肥軟者, 埋鹽還出, 柳木水沈經一宿, 退鹽味. 又 缸內布鹽一件, 布蕨一件, 次次交沈入盛, 置冷處待冷. 柳木灰 水沈退鹽, 九列一件, 蕨一件, 列置注水, 則亦無鹽味
<번역문> 고사리는 살찌고 연한 것을 골라 소금에 묻었다 가 도로 꺼낸다. 버드나무물(柳木水)에 하룻밤 담갔다가 소 금기를 없앤다. 또 항아리 안에 소금 한 켜를 뿌리고 고사리 한 켜를 펼쳐 차곡차곡 섞어 담고 차가운 곳에 두고 차갑게 한다. 버드나무물(柳木水)과 잿물에 담가 소금기를 없앤다. 9 열 마다 한건 고사리 한 건씩 줄지어 놓고 물을 부으면 또한 소금 맛이 없어진다.
-
○ <고사리절임(팀고사리법 蕨法)> 고사리를 다듬은 후 삶아 식으면, 그 물에 소금을 많이 넣는다. 이를 항아리에 넣 어 단단히 봉하고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버드나무물(버 나 모 믈)에 퇴렴하여 쓴다.「Jubangmun」
고사리의 경우 토란과 마찬가지로 소금에 짜게 절였다가 퇴렴(退鹽)하여 먹었는데「Juchochimjeobang」에서는 이를 장법(藏法)으로 분류하였다. 소금에 절였다가 퇴렴하는 과정 을 2차에 걸쳐 반복하는데 최종 먹기 직전에 퇴렴할 때는 버 드나무물과 잿물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Jubangmun」의 고사리 저장법에서도 퇴렴할 때 버드나무물을 사용하고 있 는데 앞서 설명하였듯이 버드나무가지에서 침출된 살리실산 성분을 이용하여 고사리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쓰인 것으 로 유추되나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Sangayorok」(沈蕨(침궐)),「Yorok」(沈蕨(침궐)), 「Eumsikdimibang」(고사리 담는법(고사리 법)) 모두 퇴렴법은 언급하지 않고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과정까지 만 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금에 절이는 것이라 모두 침법(沈法) 이라 표기 한 것으로 판단된다.
「Sangayorok」에서는 침법 외에도 염지(鹽漬)를 하지 않 고 삶은 고사리에 마른 재를 뿌려 말린 것을 ‘장법(藏蕨)’으 로 추가 소개하고 있다. 장법은 먹을 때 다시 별도 조리를 하기 위해 저장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국을 끓이는 방법이 소 개되었는데 ‘파와 기름과 장을 넣고 끓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
○ <고사리 저장법(藏蕨)> 연한 고사리를 쪄서 마른 재에 섞어 말린다. 재는 씻어버리고 다시 햇볕에 바짝 말려둔다. 쓸 때는 끓는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파, 기름, 장을 넣 어 익힌 뒤 쓰면 맛이 아주 좋다.「Sangayorok」
⑦취나물 저장법 (乾蔬法)
<원문> 四月, 擇摘軟靑者, 蔬古音月外水傲, 暫烹乾, 正盛入 空石, 置烟氣處, 至冬, 更沈湯水, 用之. 時節靑蔬無異 (靑疑卽 菁字靑蔬俗呼취).
<번역문> 4월에 연하고 푸른 것을 골라 딴다. 소(蔬)의 고 음(古音)은 月外水傲, 살짝 데쳐서 말린 다음 공석에 담아 연 기(烟氣)가 있는 곳에 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끓는 물에 담가 쓴다. 철마다 나는 푸른 채소도 다를 것이 없다(‘靑’은 의심컨대 ‘菁’자다. 靑蔬는 세속에서 ‘취’라 부른다.).
-
○ <채소저장법(藏蔬)> 4~5월 사이에 줄기가 연한 채소를 가려서 줄기째 구리그릇 안에 담고 끓여서 풋기를 없앤 뒤 온돌 위에서 음건(陰乾)하고는 흙비[ ]가 내리지 않는 곳에 다 저장하여 겨울에 쓴다.「Sangayorok」
취나물은 데쳐서 건조시켜 보관한다는 점에서는「Sangayorok」 의 방문과 유사하나 공석에 담아 연기를 쬐는 간접 훈연 방 식이 독특하다. 훈연은 음식물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연기 속에는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산, 유기산들이 함유 되어 pH 2.5의 낮은 산도를 지니기 때문에 훈연을 통해 미 생물의 증식이 억제되며 연기 속 석탄산 화합물들의 항산화 효과는 산패를 방지하여 보존성을 높여 줄뿐만 아니라 나무 의 유기물들이 연소되면서 발생되는 휘발성 물질들은 음식 에 스며들어 풍미도 높여준다(Harold McGee 2014). 훈연은 연료 등의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는 방식이었던 만큼 대체적 으로 생선, 고기와 같은 동물성단백질 저장법에 많이 이용되 었으며, 채소·과일 저장에 이용한 경우는 흔하지 않았던 것 으로 보인다.
일본 아키타현(秋田縣)의 특산품인 이부리갓코(いぶりがっ こ)가 드물지만 채소훈연 저장법의 대표적 사례로, 소금이나 밀기울에 절인 무를 표면이 찻잎색 혹은 검은 빛깔이 되도 록 연기를 쬐어 훈제향을 입힌 독특한 맛을 내는 절임식품 이다(Akita Tsukemono Association). 아키타현이 다른 지방 보다 눈이 빨리 와서 무를 충분히 말릴 시간이 없어 실내에 서 연기를 피워 말리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Ogachino Kimuraya).
우리나라도 채소과일류 훈연저장 사례는 찾기 어려운 가 운데 매실을 훈연하여 약재로 활용한 경우가 있다.「Sallimgyeongje」를 보면 푹 익은 황색 매실을 검은 빛깔이 돌때 까지 훈연하여 검은 색의 오매(烏梅)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만들어 보관해둔 오매는 여름철 갈증을 가라앉히는 제호탕 의 주원료로 활용되었다.
-
○ <매실(梅實)> 5월에 황색(黃色)의 매실(梅實)을 따서 불 에 쬐어 말리거나 또는 연기에 쐬어 검은 빛이 나게 만든다 (오매 烏梅). 염쇄(鹽殺)하거나, 또는 볕에 말려 그릇 안에 저 장하여 백매(白梅, 매실을 변색이 되지 않게 말린 것)를 만 든다. 생열매는 치아와 뼈를 손상시키니 많이 먹는 것은 좋 지 않다.「Sallimgyeongje」
이처럼 현전 조선시대 조리서 중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 는 훈연방식의 색다른 저장 방법이 「Juchochimjeobang」 에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 조리서의 가치를 되짚어 볼 만 하다.
한편, 취나물 설명 중에 ‘소의 고음은 月外水傲(달래소)’라 고 한 부분이 있다. ‘月外水傲’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 쓰던 중 ‘달외’와 ‘수오’가 합쳐진 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 게 되었다.「Sallimgyeongje」를 보면 곰취를 한자어로 ‘웅 소(熊蔬)’, 속명으로 ‘곰 라’ 하였다. 달래는 원래 산마늘 (野蒜)을 뜻하는 우리말이지만 웅소를 의미 단위로 끊어 한 글로 표기하면 웅(熊)은 ‘곰’, 소(蔬)는 ‘ ’에 대응되는 셈 이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Juchochimjeobang」에서 소 의 고음(古音)이 달래소라고 한 부분이 불완전하게나마 설명 된다.
2.김치문화사에서 신규 발굴 조리서인「주초침저방(酒醋沈 菹方)」의 사료적 가치와 의의
신규 발굴 조리서인「Juchochimjeobang」은 한글 표기와 표현법 그리고 유사시기 조리서들과의 방문 비교분석 결과 를 토대로 1500년대에서 늦어도 1600년대 초반 이전의 조리 서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한국 김치의 독창적 발달과정을 설명하는데 김치의 원료로 젓갈과 고춧가루가 활용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대한 논점이 된다. 따라서 17세기 이전 조리서 인「Juchochimjeobang」에 젓갈을 넣은 김치 방문이 있다 는 것은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포함해 본서가 김치 제조사 연구 분야에 끼친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현전하는 조리서 중 감동저라는 이름으로 김치제법 을 수록하고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조리서이다. 감동저라는 이름은 1400~1500년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제법은 문집 기록과 유사 연대의 조리서로 추정되는 「Juchochimjeobang」이 처음으 로 알려주고 있다.
둘째,「Juchochimjeobang」에는 자하젓을 넣은 감동저 외 에도 백하젓으로 담은 동아김치의 제법이 동아새우젓교침저 (冬苽白蝦交沈菹)라는 항목명으로 수록되어있는데 현전 조 리서 중 가장 앞선 기록에 해당된다.「Juchochimjeobang」 의 동아섞박지의 방문은 소금과 백하젓만으로 담근 소략한 방식인데, 이후 동아섞박지 방문은「Gyuhapchongseo」에서 야 찾아 볼 수 있는데다가 생강, 파, 고추 등의 양념이 들어 가는 형태여서 본서의 동아새우젓교침저(冬苽白蝦交沈 菹)와 차이를 보인다.
특히 상기 두 가지 젓갈김치 방문은 15~17세기경의 교침저 의 정체를 구체화해주고 있어 섞박지의 발달·분화과정 추적 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본서에서 새우젓과 소금만으 로 담근 동아새우젓김치를 교침저로 명명하고 있고, 유사 시 기 문집에서 오이자하젓교침저라 한 김치가 본서를 통해 소 금과 자하젓만으로 담근 감동저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즉, 지금까지 한자어 교침저를 통상 섞박지라는 한글 명칭 으로 혼용해왔지만 17세기 이전까지는 젓갈과 주재료를 물 리적으로 힘을 가해 섞어(交) 만든 교침(交沈)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여러 가지(雜) 재료를 섞어(交) 만든 잡저(雜菹) 형태 의 섞박지는 현전 기록으로는 19세기 「Gyuhapchongseo」 에 이르러야 나타난다. 조선후기의 섞박지 형태는 이규경이 「Ojuyeonmunjangjeonsango」에서 “여러 가지(雜) 젓갈( ) 과 채소(菜)를 섞어(交) 담근(沈) 것을 교침채(交沈菜)라 한다.” 고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셋째, 17세기 이전 조리서가「Sangayorok」,「Suunjabbang」, 「Yorok」,「Choi’s Eumsikbeop」,「Eumsikdimibang」으로 제 한적인 가운데 「Eumsikdimibang」은 별미김치만 4종(생치 김치 3종, 산갓김치 1종)을 소개하고 있어 이 시기 일상용 김치류 형태를 확정하기에 근거 자료가 너무 소략한 상황이 었다. 2015년「Choi’s Eumsikbeop」의 소개에 이은 본서의 발굴은 조선 전기 김치의 모습을 한층 구체화하는데 기여하였 다. 동치미, 무깨즙김치, 토란김치, 산초 활용 외지, 동아랄채 등의 제법에서「Sangayorok」과「Suunjabbang」,「Yorok」, 「Choi’s Eumsikbeop」의 17세기 이전 김치류 방문에서만 나 타나는 특징적 형태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제법에서는 유사성이 보이는 가운데에서도 표현이나 설명 방식에서는 독창적인 부분이 있고, 다른 조리서에서 보 이지 않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 사례도 있다. 즉, 다른 조 리서를 인용하기보다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저자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조리서로서의 가치와 차별성 을 지닌다.
IV.요약 및 결론
서명이 없는 본서의 이름에 「Juchochimjeobang」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김치류 방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 는데, 지금까지 17세기 이전 조리서가 5권에 불과했던 데에 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음식방문을 싣고 있는「Eumsikdimibang」에는 아쉽게도 꿩김치와 산갓김치와 같은 별미김 치법만 4종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본 조리서의 신규 발굴 로 17세기 이전 상용김치의 모습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Juchochimjeobang」은 책의 작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로 술과 식초, 김치류 방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김 치제조 변천과정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 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첫째, 조선시대 각종 기록을 통해 감동젓(곤쟁이젓 혹은 자 하젓(紫蝦))을 넣은 섞박지(甘動菹)가 16세기에 존재하였 고,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담아 먹던 귀한 김치였다는 점을 확인한 바는 있으나(Park 2012) ‘감동저(甘動菹)’라는 명칭으 로 16세기 이전 감동저의 구체적인 레시피를 수록하고 있는 조리서는 신규 발굴된 「Juchochimjeobang」이 유일하다.
둘째,「Juchochimjeobang」이 16세기경 집필된 것으로 추 정됨에 따라, ‘감동저’를 포함해 ‘새우젓동아김치(冬苽白蝦 交菹)’ 와 같은 젓갈김치 레시피가 수록된 현전 최고 (最古)의 기록이 된다. 이전까지 젓갈김치가 수록된 가장 앞 선 기록은 18세기 문헌인「Jeungbosallimgyeongje」와「Somunsaseol」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Juchochimjeobang」의 발 굴을 통해 김치제조 변천사 연구에 또 한 번의 전기(轉機)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 외에 조리 유형별로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즙저류는 조선 전기 문헌인「Sangayorok」과「Suunjabbang」의 방문과 가장 흡사하지만, 이 두 조리서에서는 생 콩이나 불린 콩, 찐 콩 을 이용한 방식이 상호 병행되고 있 는 반면,「Juchochimjeobang」은 모든 즙저 방문에 콩을 쪄 서 만들고 있어 기술적으로는 좀 더 진보된 형태의 방문만 을 취했다는 차이를 보인다.
둘째, 동치미의 경우 총 3가지 방문이 나오는데 첫 번째 방문은「Sangayorok」,「Yorok」과 필사라도 한 듯 유사하 지만, 두 번째 방문인 모음지침채법은 그 명칭의 표기가 전 무후무하다. 세 번째, 무깨즙김치는 깨를 헝겊에 싸서 간을 베어들게 한 것이 조선시대 조리서를 통틀어「Choi’s Eumsikbeop」의 팀채법「Jusikbangmun」<노가재공댁본>의 쉿무오김치법과 함께 단 3군데에서만 확인되는 흔하지 않은 제법이다.
셋째, 외물김치의 경우 17세기 이전 조리서에서 보이는 전 형과 유사하게 보존기간 향상을 위해 산초 열매, 뿌리, 꽃, 줄기 등을 활용하였다.「Sangayorok」,「Suunjabbang」, 「Choi’s Eumsikbeop」에서 할미꽃, 형개, 향유잎, 여뀌, 박 초, 산초(분디) 등이 사용되었는데 본서에서는 산초만을 활 용하였다. 18세기 이후부터는 마늘, 고추 등이 활용되면서 점 차 사라져간 방법이다.
넷째, 외장김치는 칼집을 낸 뒤 마늘, 생강 등을 넣어 소 박이형태로 만든 뒤 장과 참기름에 졸여 만든 단기저장 김 치이다. 근대 이후 숙장아찌라고 부르는 형태와 유사한데 1700년대까지 김치류로 분류되어 왔으며, 여름철에 만들어 먹었다는 점에서 겨울철 채소 갈무리 차원에서 만들어졌던 다른 김치류들과 구별된다.
다섯째, 토란김치는 토란의 줄기를 장기저장하기 위한 목 적에서 단순히 소금에 절여 만들었던 것으로 이 역시 17세 기 이전 조리서에 보이는 김치유형이다. 18세기 「Jeungbosallimgyeongje」에서는 토란을 절였다가 다른 김치의 부재료 로 활용한 예가 보이지만 그 이후 조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여섯째, 젓갈김치 2종은 본서의 발굴이전까지 젓갈김치 방 문이 기록된 기존 조리서의 집필연대가 1700년대 중반이었 기 때문에 젓갈김치의 존재 근거를 적어도 100년 이상 앞당 겨 주었다. 문인들이 남긴 시와 편지에서 대략의 형태를 짐 작할 수 있었으나 구체적인 담금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 최초의 기록이자 감동저라는 명칭으로 소개된 유일한 방문 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마지막으로, 각종채소저장법에서는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버드나무라는 특이한 재료를 저장성 향상을 위한 용도 로 활용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신규 발굴 조리서인「Juchochimjeobang」 중 채소류 저장 및 절임법만을 다루었으나 가장 많은 비중 을 차지하고 있는 술과 식초류는 물론 떡, 정과, 엿, 약밥, 두 부 만드는 법 및 안동다식과 같이 특정 지역의 음식 등의 비 교고찰을 통해 조선 전기(前期) 음식문화를 가늠하는 연구가 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