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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30 No.2 pp.158-169
DOI : https://doi.org/10.7318/KJFC/2015.30.2.158

Food Culture of Koryo Dynasty from Viewpoint of Marine Relics of Taean Mado Shipwreck No. 3

Kyung-Hee Koh*
Department of Food Science and Nutrition, College of Human Ecology,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Correspondence to: Kyung-Hee Koh,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43-1, Gibong-ro, Wonmi-gu, Bucheon-si Gyeonggi- do, 420-743, Korea Tel: 82-2-2164-4313 Fax: 82-2-2164-6583 verokoh@catholic.ac.kr
February 24, 2015 April 20, 2015 April 20, 2015

Abstract

Tean Mado Shipwreck No. 3 is presumed to have been shipwrecked between 1260 and 1268. It departed from a Southern costal area of Yeosu in Jeonnam Province to Ganghwa Island, its final destination at which the temporal regime of Koryo Dynasty was located. In the shipwreck, a total of 35 wooden tablets were found, and forwarding places, senders, receivers, descriptions, and quantities of freight were written on the wooden tablets. The names of receivers included Kim Jun, who was influential in the late Musin Era of the Koryo Dynasty, and key institutions such as Junmin and Sambyulcho of the Musin force. Twenty wooden tables had lists of food items such as barley, abalone, salted-fermented abalone, mussel, dried mussel, salted fermented mussel, dried shark meat, fish oil, pheasant, and dried dog meat. The food items in the late 13th century were systematically examined using scientifically determined food organic remains and records of wooden tablets among the marine relics of Mado Shipwreck No. 3.


태안 마도3호선 해양유물 중심으로 본 고려시대 음식문화

고 경 희*
가톨릭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전공

초록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I.서 론

    한반도 전래 발효음식은 곡주(穀酒)와 식초를 제외하고 대부 분 염장(鹽藏)식품이다.「Samguksagi (삼국사기, 三國史記)」 (Heo SD ed. 2004)에서 젓갈(image1.gif)은 신라 신문왕의 혼례음식 으로 폐백이 15수레, 쌀(米)·술(酒)·기름(油)·꿀(蜜)·장 (醬)·메주(豆支)·포(脯)·젓갈(image1.gif)이 135수레, 조(租)가 150 수레(納采幣帛十五轝米酒油蜜醬豆支脯image1.gif一百三十五轝租一百 五十車「三國史記」卷第八 新羅本紀 第八 神文王 三年春二 月, 683)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최근 경주 안압지에서 젓 갈(image2.gif)로 기록된 통일신라의 목간이 발견되었다(Lee 2012; Kwon 2012; Kwon 2014). 고려의 수도인 개경이 최종 목적 지인 태안 마도1, 2호선 해양유물의 목간에는 젓갈(image2.gif)로 표 기되어 있다(Lim 2010; Lim 2011). 그 외에도 말장(末醬), 고등어해(古道image2.gif), 게젓갈(蟹image2.gif), 어해(魚image2.gif), 누룩(麴)과 같 은 발효음식명이 기록된 목간이 발견되었다. 특히 젓갈은 고 려 왕실의 의례음식에서 서민계층까지 폭넓게 이용되었다. 그 외에도 마도2호선에서는 참기름(眞)과 꿀(精蜜)이 기록된 목 간과 청자매병이 함께 인양되어 이들 음식은 청자매병에 담 길 정도로 귀한 음식임을 알 수 있다(Koh 2014). 고려시대 에는 소금을 국가에서 통제하였다.「Goryosajeoryo (고려사 절요, 高麗史節要)」(Lee JH et al. ed. 1977)에서 태조 때 최승로에게 염분(鹽盆, 소금가마솥)을 주어(年十二 太祖 召見 使讀論語 甚嘉之 賜鹽盆 「高麗史節要」第2卷 成宗 己丑 8 年, 989) 중앙집권적 체제로 관리하였다(Park 2008). 군사적 으로도 소금은 필수적인 재료로 서경에 있는 몽고 군사들에 게는 쌀 1천 석, 잡곡 5백 석과 소금 1백석을 주었다(西京蒙 軍,來請席島倉米, 乃給米一千碩,雜穀五百碩,鹽一百碩. 「高麗史節要」 第十八卷 元宗一, 1270)라는 기록이 있다. 경 제적으로 고려는 소금 생산지인 경상도와 전라도에 염세별 감(鹽稅別監)을 두어 소금생산에 따른 세(稅)를 징수하는 역 할을 하였다(遣鹽稅別監於慶尙,全羅道. 「高麗史節要」 第 二十一卷 忠烈王三, 1295). 그 후 도염원(都鹽院) 등의 염분 (鹽盆)을 국유화하고 은(銀) 1근에 64석(碩), 은 1냥에 4석, 베 1필에 2석의 가격으로 의염창(義鹽倉)에서 팔게 하였다 (今將內庫, 常積倉, 都鹽院, 安國社, 及諸宮院, 內外寺社, 所有 鹽盆, 盡行入官, image3.gif價銀一斤六十四碩, 銀一兩四碩, 布一匹二 碩, 以此爲例, 令用鹽者, 皆赴義鹽倉和買, 「高麗史節要」第 二十三卷 忠宣王 元年, 1309).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져 있는 지형으로 고려의 풍부한 어류자원은 소금 보급의 안 정화로 염장법, 조리법의 변천이 큰 시기로 다양한 저장기술 이 발달하게 되었다(Kang 1989).

    최근 2011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馬島) 해역에서 인 양된 태안 마도3호선의 수중발굴보고서가 2013년 국립해양 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되었다. 마도3호선의 목간 연구에서 마도3호선은 1260-1268년 사이 침몰한 선박으로 최종 목적 지는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이었을 가능성을 제 시하였다(Lim 2012). 태안 마도3호선에 관한 연구는 목간 연 구 이외에도 식물류(Kim 2012b), 동물류(Kim 2012a; Koh 2012), 목재·죽재·초본류 수중분석(Nam & Cha 2012)과 도기(Shin 2012) 등의 연구가 보고 되었다. 본 연구는 태안 마도3호선에서 인양된 음식과 관련된 목간과 동·식물류, 그 리고 발효음식 등을 담았던 도기를 중심으로 13세기 후반 고 려시대의 음식문화를 고찰하였다. 이는 차후 한반도의 음식 사 연구에서 통일 신라와 조선시대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고려시대의 귀중한 실물자료로 생각되어 정리하였다.

    II.연구 내용 및 방법

    연구내용은 태안 마도3호의 보고서인 「Taean Mado shipwreck No. 3 underwater excavation (태안마도3호 수중 발굴보고서)」(NRIMCH, National Research Institut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2012)를 중심으로 해양유물인 목간, 도기항에 나타난 고려후기의 음식문화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고려전기 시기의 태안 마도1, 2호선 해양유물 보고서 인「Taean Mado shipwreck No. 1 underwater excavation (태안마도1호 수중발굴보고서)」(NRIMCH, 2010)와「태안 마도2호 수중발굴보고서」(NRIMCH, 2011)를 통하여 고려 전·후기의 음식을 비교하였다.

    연구방법은 13세기 후반 고려음식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 하여 선학들의 한국음식사 관련 연구 문헌과 역사관련 자료 를 중심으로 태안 마도3호에서 인양된 해양유물을 고찰하였 다. 첫 번째로 한국음식사 관련 문헌은「Korean diet history (한국식생활사, 韓國食生活史)」(Kang 1989),「Korean social food history (한국식품사회사, 韓國食品社會史)」(Lee 1992), 「Study on the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food fermentation (한국전래 발효음식사연구, 韓國傳來醱酵食品史硏究)」(Chang 1989),「Study on the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fat and oil (한국전래 유지류사연구 韓國傳來油脂類史硏究)」 (Chang 1995),「Study on the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noodles (한국전래 면류음식사연구, 韓國傳來image4.gif類飮食史硏究)」 (Chang 2004) 등을 활용하였다. 두 번째로 고려음식에 관한 역사문헌으로「Samguksagi (삼국사기, 三國史記)」(Heo SD ed. 2004.),「Koryeosa (고려사, 高麗史)」(Heo SD ed. 1998) 는 KRpia의 Korean DB의 자료를 인용하였고,「Goryosajeoryo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Lee JH et al. ed. 1977), 「Gaolitujing (고려도경, 高麗圖經)」(Cha JH et al. ed. 1977)과「Chungjanggwanjeunse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Shin HY et al. ed. 1978-1982)는 한국고전번역원의 DB자 료를 활용하여 고찰하였다.

    III.결과 및 고찰

    1.마도3호선 목간 기록 음식

    마도3호선에서는 총 35점의 목간이 발굴되었다. 음식과 관 련된 목간은 20점으로 보리(麥), 겉보리(皮麥), 전복(生鮑), 전 복젓갈(生鮑image2.gif), 말린홍합(乾image5.gif), 홍합젓갈(image5.gifimage2.gif), 상어(沙 魚), 어유(魚油), 꿩(雉), 개고기포(image6.gif 脯)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 음식을 담아 운송한 68점의 도기호도 인양되었다. <Table 1>에 제시한 마도3호선 목간의 해독과 해석은 Lim (2012)의「태안 마도3호선 수중발굴보고서」의 내용을 수정 없이 정리하였다.

    <Table 1>에서 보리는 피맥(皮麥)과 보리(麥)로 2점의 목 간이 있다. 목간115는 여수현(呂水縣)의 부사심댁에 피맥(皮 麥) 일곱말(柒斗)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여수현은 현재의 전 라남도 여수시이며 피맥은 밀기울(밀을 빻아 체로 쳐서 남은 찌거기)이라는 뜻도 있지만, 겉보리로 볼 수 있다. 목간122 의 보리(麥)는 수량이 한 섬(壹石)으로 스물세 말(斗)이다. 송 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Gaolitujing (고려도경, 高麗圖經)」 (Cha JH et al. ed. 1977)에 따르면 “고려에는 보리(大麥)과 밀(小麥)인 이맥(二麥)이 있고 쌀은 멥쌀(米)이 있으나 찹쌀 (image7.gif)은 없고, 쌀알이 특히 크고 맛이 달다(二麥 其米有image8.gif而 無 image7.gif 粒持(特)大而味甘,「高麗圖經」 第二十三卷 雜俗二 種 ). 밀(小麥)은 수확량이 적어 중국에서 수입하고 밀로 만 든 면(麵)이 매우 귀한 음식이다(國中少麥 皆賈人販自京東道 來 故麵價頗貴.「高麗圖經」卷第二十二 雜俗一 鄕飮)”라고 기록하였다. 밀(小麥)이 귀하여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형편 이고, 삼국시대로 부터 내려온 북 소맥(北 小麥)·남 대맥(南 大麥)의 농업의 구조적 체계로 고려는 밀 생산 보다는 대맥 위주의 보리 생산이 지배적으로 생각된다(Chang 2004). 이 런 관점에서 마도3호선 목간의 맥(麥)은 보리(大麥)로 해석 할 수 있다.

    전복(生鮑)에 관한 기록은 3점이 있다. 목간95의 전복(生 鮑)은 모두 전출(田出)로 바쳤으며, 뒷면의 발송자는 사자+ 선재(使者善才)이다. 수취인의 개인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선 재(善才)라는 인물을 표시한 것이다. 목간97은 전복의 수량 은 네 항아리(肆缸)이며 발송자는 사자선재(使者善才)이다. 목간124와 <Figure 1-①>의 수취인은 김시랑(金侍郞)으로 한 항아리에 전복 백 개(一缸入百介)를 담았으며 발송자는 현례 (玄image9.gif)이다. 생복(生鮑)과 관련된 목간으로는 경주 안압지에 서 길이 20.8 cm, 폭 2.2 cm, 두께 1.1 cm인 통일신라의 목 간 190호가 발견되었다. 묵서의 내용은 생복으로 전복과 관 련된 것으로 보인다(앞면: 生鮑十□仇□□□□□□, 뒷면: 郞 儒□道□, Kwon 2012).「Gaolitujing (고려도경, 高麗圖經)」 (Cha JH et al. ed. 1977)에서 “고려 풍속에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ㆍ전복ㆍ조개ㆍ진주조개ㆍ왕 새우ㆍ문합ㆍ붉은게ㆍ굴ㆍ거북이다리ㆍ해조ㆍ다시마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구어 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 이 짜 오래 먹으면 싫어진다(細民 多食海品 故有魚酋鰒蚌珠母 蝦王文蛤紫蟹蠣房龜脚 以至海藻昆布 貴賤通嗜 多勝食氣「高 麗圖經」卷第二十三 雜俗二 漁; Chang 1989)”라고 기록되 어 있다. 전복은 고려의 서민들이 널리 식용하던 해산물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전복젓갈(生鮑image2.gif)은 4점이 있다. 목간98은 전복 젓갈과 꿩 세 마리인데 모두 답출(畓出)이라고 명시했다. 뒷면에는 발 송자인 사자 선재가 적혀 있다. <Table 1>의 목간107과 <Figure 1-②>는 마도3호선의 침몰 년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목간이다. 전복젓갈 한 항아리를 신윤화시랑(辛允和 侍郞)에게 보낸다고 적혀있다. 수취인의 성명+관직 순서로 표기하였다.「Goryosajeoryo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Lee JH et al. ed. 1977)에서 신윤화는 원종 원년(1260)에 몽골에 사신으로 다녀오는데 그때의 관직은 장군(將軍)이다(將軍辛 允和「高麗史節要」第十八卷 元宗一 庚申元年, 1260). 장군 과 시랑은 모두 4품으로 마도3호선이 1260년 이후 시기인 것을 알 수 있는 목간이다. <Table 1>의 목간116은 전복젓 갈(을 담은) 고내지 하나이다. 고내지(古乃只)는 운두가 높고 아가리가 넓은 도기호를 이르는 또 다른 말로 고내지에 담 아 운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취인 유승제(兪承制)는 유씨 성을 가진 승제라는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 승제(承制)는 고 려시대 왕명 출납을 담당한 승선(承宣)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목간에 등장하는 유승제는 유천우(兪千遇)와 연 결시킬 수 있다.「Goryosajeoryo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 (Lee JH et al. ed. 1977)에서 유천우는 1263년 추밀원좌승 선(樞密院左副承宣)이었다(兪千遇朴倫爲樞密院左右承宣「高 麗史」第二十五卷 元宗一 癸亥四年, 1263). 1265년에는 지 주사(知奏事兪千遇,「高麗史節要」 第十八卷 元宗一 乙丑6 年, 1265)였고, 1273년에는 중서시랑평장사(以兪千遇 爲中書 侍郞平章事,「高麗史節要」第十九卷 元宗二 癸酉十四年, 1273)가 된다. 목간123은 전복 젓갈로 수량이 적힌 부분은 결락되어 알 수 없고, 발송인은 사자(使者)만 남아 있다.

    말린홍합(乾image5.gif)은 3점으로 목간101의 담(image5.gif)은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홍합을 담치라고 부른다. 이는 고려시대 홍합을 의미하는 한자를 같은 소리음을 가진 글자를 선택해서 표현 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수량은 한 섬(壹石)으로 수중(水中)에 서 발견 당시 홍합을 담은 초섬(草image10.gif) 또는 볏섬에 목간이 위와 아래로 묶여 있었다. 초섬의 용도는 중국에서 포대를 쓰는 것과 같으며, 그 형태는 망태기 같은데 풀을 엮어 만든 다. 주로 쌀ㆍ밀가루ㆍ땔나무ㆍ숯 등을 초섬에 담는다. 산길 을 갈 때 수레가 불편하므로 흔히 초섬에 담은 것을 마필에 싣고 간다(草image10.gif之用 猶中國之有布囊也 其形如絡 結草爲之 凡米麵薪炭之屬 悉用以盛 山行不利車 多以image11.gif馬 裝載而行, 「高麗圖經」卷第三十二 器皿三 草image10.gif, Cha JH et al. ed. 1977). 말린 홍합을 초섬에 담아 간편하게 이동한 것으로 보 인다. 목간105의 수취인은 우삼번별초(右三番別抄)에 올린다 고 적혀있다. 마도3호선 목간에서 수취인이 관청인 경우 댁 宅)이 적혀 있지 않고 상(上)으로 표기되는 공통점을 나타내 었다. 즉, 전민(田民, 마도3-100), 도(都, 마도3-105)에서 모두 뒤에 댁(宅)이 없고 상(上)만 적혀 있다. 뒷면에는 마른 홍합 한 섬으로 음식의 종류와 수량이 적혀 있다. 목간120의 수취 인은 목간116과 마찬가지로 유승제(兪承制) 즉 승선 유천우 (承宣兪千遇)에게 마른 홍합 한 섬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홍합젓갈(image5.gifimage2.gif)은 2점이 있다. <Table 1>의 목간117과 <Figure 1-③>의 앞면에는 수취인으로 사심 김영공(事審金令 公)이 적혀 있다. 뒷면은 화물 종류와 수량은 홍합젓갈과 묵 서 판독이 진행 중인 생□를 담은 다섯 항아리(伍缸)라고 적 혀 있다. 맨 마지막의 현례(玄image9.gif)는 발송인이다. 수취인 사 심 김영공의 영공(令公)은 제왕(諸王)에게만 쓰이던 극존칭 이다. 그 시기 영공(令公)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무인집정 김준(金俊)에 한정되어 있다. 김준은 1265년 부(府) 를 개설하고 해양후(海洋候)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영공(令公) 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冬十月冊金俊爲 海陽侯.「高麗史節要」 第十八卷 元宗 乙丑6年, 1265, Lee JH et al. ed. 1977). 마도3호선의 목간에 등장하는 수취인들 은 목간101의 신윤화, 목간116의 유천우, 목간117의 김준 세 명의 수취인의 관력(官歷)과 입부(立府)시기를 고찰하면 침 몰시기가 1260-1265년 이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목간119 의 수취인은 사심 김영공은 앞에서 밝혔듯이 무인집정시기 의 김준(金俊)이다. 화물종류는 홍합젓갈로 한 항아리에 세 말(一缸入三斗)을 담았으며 발송자는 현례이다.

    상어(沙魚)에 관한 목간112와 <Figure 1-④>의 수취인은 우삼번별초(右三(番)別抄)의 도령(都領)으로 시랑(侍郞)이다. 화물종류는 상어(沙魚)로 상자에 가득 담았다고 기록되어 있 다. 음식으로 저장이나 운반을 고려한다면 상어는 말린 상태 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상자에 담긴 상어 수량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으나. 대바구니가 하나 출수되었고(Nam & Cha 2012), 그 내부에 동물뼈 분석 결과 곱상어와 상어과 뼈 가 확인되었다(Kim 2012a). 따라서 상어를 담은 상자는 여 러 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Gaolitujing (고려도경, 高 麗圖經)」(Cha JH et al. ed. 1977)에서 상어는 식용 외에도 가죽은 패검의 장식은 모양이 길고 날이 예리한데 백금과 오 서(烏犀 검은 무소뿔)에 사이사이 어긋나게 해사어피(海沙魚 皮)를 섞어 칼집을 만들었다(佩劍之飾 形長而刃利 白金烏犀 間錯 海沙魚皮 以爲image12.gif 旁爲環細 貫以采組 或以革帶 以象玉image13.gif 琫珌之屬 亦古之遺制也 門衛校尉中檢郞騎 皆佩之,「高麗 圖經」卷第十三 兵器 佩劍)는 기록이 있다.

    어유(魚油)는 총 4점이다. 목간100은 물고기 기름 한 항아 리이다. 수취인은 전민(田民)으로 적혀 있는데, 「Goryosajeoryo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Lee JH et al. ed. 1977)에서는 원종10년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 1269)과 충혜왕 시기 에 전민추쇄도감(田民推刷都監, 1343) 등 토지 겸병을 개혁 하기 위한 임시 기구를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된다(置田民辨 正都監「高麗史節要」第十八卷 元宗一 己巳十年 1269; 置 田民推刷都監「高麗史節要」第二十五卷 忠惠王 癸未四年 1343). 그동안의 연구에서 언급한 1269년 전민변정도감 설치 시기보다 앞선 시기로 마도3호선은1260-1268년 사이 침몰한 선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민변정도감은 일종의 임시기구 로 역사자료에서 원종10년(1269)에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전에도 종종 설치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도3호선 목간 의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가 수취인이 개인이 아닌 기구 와 관청이 나온다는 점이다. 마도1, 2호선의 판독 결과로 본 다면 수취인은 모두 개인이나, 마도3호선 목간에서는 전민 또는 변정도감, 중방(重房), 우삼번별초((右三番別抄) 등 관청 명이 나오고 있어 매우 특징적이다. 목간118의 수취인은 전 민(田民)은 전민변정도감의 축약명칭으로, 화물종류는 어유 한 항아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뒷면에는 발송인으로 남경지 (男景池)가 적혀 있다. 목간125의 수취인은 盧□□이고, 화물 종류는 어유이고 수량은 한 항아리이다. 목간127 화물의 수 취인은 사심□□이고, 수량은 어유 한 항아리이다.

    어유의 경우 목간100과 118은 전민(전민변정도감)이라는 관청이고, 목간125과 목간127은 노□□와 事審□□로 개인 이다. 원종14년(1273) 달로화적(達魯花赤)이 함경도 지방과 경상도지방에 가서 고래기름(鯨魚油)인 신루지(蜃樓脂)를 구 하였다(達魯花赤以中書省牒 往東界及慶尙道 求蜃樓脂「高 麗史」卷二十七 世家 元宗 14年, 1273, Heo SD ed. 1998). 고래기름은 당시 불을 밝히는 원료로 쓰였으나, Chang(1995) 은 고려시대에 고래기름을 채유(採油)하는 방법과 고래의 껍 질과 기름을 볶아서 기름을 얻었으므로 이는 용융법(溶融法) 으로 채유하였을 것이 분명하며 식용유로도 활용하였다는 것 을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Table 1>의 목간98과 <Figure 1-⑤>는 생복과 꿩(雉) 세 마리를 답출로 바친다는 내용이다. 꿩과 관련된 기록으로 현 재의 경기도 파주(坡州)인 임진현(臨津縣)에서 흰 꿩을 바쳤 다(臨律縣獻白雉「高麗史節要」 卷之二 光宗7年, 956, Lee JH et al. ed. 1977).「Koryeosa (고려사, 高麗史)」(Heo SD ed. 1998)에서는 원나라에 낭장 황서(黃瑞)를 보내 야생 꿩(野雉) 및 탐라도의 쇠고기를 금화옹기(金畵甕器)와 함께 바쳤다(遣 郞將黃瑞如元, 獻金image14.gif甕器·野雉及耽羅牛肉,「高麗史」卷 三十一 忠烈王 23年, 1297). 서민층에서 토끼, 사슴, 멧돼지 노루, 꿩과 같은 야생동물도 식용하였다(Kang 1989). 그 외 에도 꿩고기는 제례, 궁중의 수라상과 향연에 진설되었으며 보양식으로도 이용하였다(Kim 1996).

    <Table 1>의 목간111과 <Figure 1-⑥>의 견포(image6.gif 脯)는 개고기를 말려 포를 뜬 것을 말한다. 두 개의 다른 종류의 물건을 합쳐서(合) 하나의 상자에 담았다(盛)라고 기록에서 대나무 상자에 두 가지를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삼별 초에 보내는 개고기포이다. 기록에 보면 서민층은 개고기를 식용하고 개 굽는 기록이 있다(Lee 1992; Kang 1989; Ann 1999).「Gaolitujing (고려도경, 高麗圖經)」(Cha JH et al. ed. 1977)에서 “고려인은 음식상에 고기포(魚肅月昔)와 어채(魚采)가 잡연하게 많이 차려놓고 많다고 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魚肅月昔魚菜 雖雜然前進 而不image15.gif月典 「高麗圖經」卷 第二 十二 雜俗一 鄕飮; Kang 1989).「Chungjanggwanjeunse (청 장관전서, 靑莊館全書)」(Shin HY et al. ed. 1978-1982)에서 송나라 오격(吳激)이 고려의 풍속을 읊은 시에서 “귤 껍질 담궈 맛진 술 빚고 계피에 절인 녹포(鹿脯)를 만들며”라는 구절에서 생선뿐만 아니라 사슴도 포(脯)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潰橙糖釀旨 滋桂鹿脩 「靑莊館全書」第三十二卷 淸 脾錄一; 姜 1987).「Koryeosa (고려사, 高麗史)」(Heo SD ed. 1998)에서 고려 왕실은 길례대사(吉禮大事)인 환구(image16.gif 丘), 사 직(社稷), 태묘(太廟)와 길례소사(吉禮少事)인 풍사·우사· 뇌신·영성(風師·雨師·雷神·靈星)때 어포(魚脯)와 육포 (肉脯)를 사용하였다. 변(image17.gif) 1열에 건어포(魚魚肅), 3열에 사슴 포(鹿脯)와 같은 어포와 육포를, 두(豆) 2열에는 어해(魚image2.gif) 를 진설하였다(「高麗史」 第五十九卷 第三 禮一 吉禮大事一; 第六十卷 第十四 禮二 吉禮大事二; 第六十三卷 第十七 禮五). 가뭄이 오면 도살을 금하고 포와 젓갈만 사용(以自春不雨避 殿輟常朝斷屠宰止用脯image2.gif令中外慮囚,「高麗史節要」第四卷 文宗元年, 1047)하라고 하였다.「Goryosajeoryo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Lee JH et al. ed. 1977)에서 문종 2년에는 모 든 주와 현에서는 어포를 바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制自今 諸州縣勿貢魚脯,「高麗史節要」第五卷 文宗二年, 1067). 어 려운 상황에도 젓갈은 금지되지 않고 꾸준히 제례음식으로 왕실에서 서민층까지 사용되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2.마도3호선 음식물품 수취인과 발송인

    <Table 2>는 마도3호선 목간에 기록된 물품, 단위, 수취인, 수취인의 지위, 발송인 그리고 마도3호선 동식물 유존체의 동정 결과를 정리한 표이다. 목간115와 122의 보리는 피맥(皮 麥)과 맥(麥)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도 3호선에서 수습된 곡 물류는 벼(Oryza sativa L), 메밀(Fagopyrum esculentum Moench)과 피(Echinochloa crus-galli Beauv.)가 동정되었다 (Kim 2012b). 전복(生鮑)과 전복젓갈(生鮑image2.gif)는 항아리와 고 내지(古乃只)에 담아서 사자선재(使者善才)가 주로 담당하였 다. 전복젓갈의 수취인은 김시랑(金侍郞), 신윤화시랑(辛允和 侍郞), 유승제(兪承制)이다. 사자선재는 主□房□을, 현례(玄 image9.gif)는 김시랑의 물품을 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말린홍합(乾 image5.gif)은 우삼번별초 기관과 유승제(兪承制)에게 한 섬(壹石)씩 초섬(草image10.gif)에 넣어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홍합젓갈(乾image5.gifimage2.gif) 은 항아리에 넣어 사심김영공(事審金令公)에게 보내었으며, 현례가 담당하였다. 마도3호선 목간에서 현례가 발송자로 나 오는 경우는 목간117, 119, 124가 있다. 수취인은 모두 김영 공(金令公)인 김준(金俊)이다. 다른 목간의 예에 비추어보면 동일한 발송자의 경우 현례(玄image9.gif)는 김영공(金令公)과 김시 랑(金侍郞)에게 물건을 보내는 사람으로 수취인과 모종의 관 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어(沙魚)는 바구니에 가득 넣어 수취인은 우삼번별초(右 三番別抄)의 도령시랑(都領侍郞)이다. 마도3호선 선체 중앙 에서 상어류(Carcharhinidae gen.)의 뼈가 확인되었다(Kim 2012a). 어유(魚油)는 항아리에 넣어 전민(田民) 또는 전민변 정도감 기관에 운송하였고, 남경지(男景池)가 담당하였다. 마 도3호선의 대바구니 안에서 곱상어(Squalus acanthias)의 뼈 가 동정되었다. 곱상어는 기름이 많아 고기 자체의 맛이 떨 어지는 어류이므로 개경까지의 뱃길에서 기호 음식으로 강 화도까지 운송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생활에 유용한 기름을 제공하는 어종인 만큼, 비식용자원으로 선적되어 강 화도까지 운송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Kim 2012a). 꿩(雉) 세 마리는 답출(畓出)이며 수취인은 ×房□으 로 물품은 사자선재가 담당하였다. 마도3호선 목간에서 사자 선재가 발송자로 나오는 경우는 목간95, 97, 98, 123으로 수 취인은 모두 主房□이다. 개고기포(image6.gif 脯)의 경우도 작은 바 구니에 가득 넣었고 수취인은 우삼번별초이다. 마도3호선에 서 개(Canis lupus)로 동정된 것은 11점이며, 최소 개체수는 2마리로 생후 18개월 이상의 성숙한 개체와 생후 6-8개월 미 만의 어린 개체가 각각 최소 1개체씩 존재하였다(Koh 2012).

    3.마도3호선 도기호(陶器壺)와 잔존유기물 분석

    마도3호선에서 인양된 도기호(陶器壺)는 45점인데 상당수 는 젓갈과 같이 장기보관이 가능한 음식물 등을 담았던 선 적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수량은 중형군 도기호 (III유형)로 28점(62%)에 해당하며, 10L 내외의 물건을 담았 을 때 약 15 kg 정도 되어서 운반하기 적절하므로 수량이 많 은 것으로 생각된다(Shin 2012). <Figure 2>의 도기호12는 IIAb유형으로 내부에서 홍합 족사와 보리겨로 추정되는 곡 물류, 밤껍질(Castanea crenata Sieb. et Zucc.) 등이 수습되 었다(Shin 2012; Kim 2012b).「Gaolitujing (고려도경, 高麗 圖經)」(Cha JH et al. ed. 1977)에서 고려에는 여름철에도 맛있는 밤이 있는 것을 기이하게 여긴 서긍이 고려의 접반 원(接伴員)에게 물으니 “밤의 크기가 복숭아만 하여 맛이 달 고 좋다. 밤을 도기(陶器)에 넣어 흙속에 묻어두면 해를 넘 겨도 손상이 없고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栗大如 桃 甘美可愛 舊記謂夏月亦有之 嘗問其故 乃盛以陶器 埋土中 故經歲不損「高麗圖經」第二十三 雜俗二 土産條; Kang 1989). 고려의 밤과 곡물 등은 도기호에 넣어 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도기호28의 입구는 나무뚜껑으로 밀봉되었으며 내부에는 홍합족사와 식물의 잎이 수습되었다(Shin 2012). <Table 1>의 목간 101, 105, 120, 117, 119의 건조 또는 염 장발효한 홍합음식과 연관이 있으며 도기호 내부에서 홍합 족사가 많이 발견되었다. 도기호34에서는 다량의 작은 생선 뼈들이 수습되어 젓갈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Shin 2012), 전어(Konosirus punctatus) 뼈만 확인되어 특정 어종만을 골 라 젓갈로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Kim 2012a). 도기호35 의 내부 최상부에는 소량의 곡물이 있고 안에서는 다량의 생 선뼈가 수습되었으며, 생선젓갈을 담았던 항아리로 추정된다 (Shin 2012). 생선뼈는 청어(Clupea pallasi), 전어, 밴댕이 (Sardinella zunsai) 순서로 확인되었다. 도기호47은 대형(V) 의 유형으로 내부에서는 청어, 조기류(Larimichthys sp.), 밴 댕이순으로 소형의 어류 뼈가 뒤섞여 확인되었다(Kim 2012a). 밴댕이와 전어는 산패가 쉽게 일어나는 소형의 어류들과 함 께 넣어 염장하고 발효시켜 젓갈로 만든 잡젓이었을 가능성 이 크다(Kim 2012a; Shin 2012). 마도3호선의 목간에 기록 된 어류와 육류의 저장기술은 건조법와 염장법을 사용하였 다. 특히 젓갈음식의 보편화와 염장기술의 발달은 고려의 소 금보급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IV.요약 및 결론

    마도3호선의 해양유물은 고려시대 음식사 연구에 매우 귀 중한 자료들이다. 목간에는 화물의 발송지, 발송자, 수취인, 화물의 종류와 수량 등이 적혀있다. 수취인으로 나오는 신윤 화와 유천우의 관력(官歷)과 고려 무신집권 후반 권력자인 김준(金俊)의 입부(入府)를 종합하여 1260-1268년 사이에 침 몰한 선박이다. 그리고 여수현(麗水縣)을 포함한 김준이 사 심(事審)으로 관여하고 있는 지역에서 거둬들인 화물을 싣고 가던 중 태안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선박으로 최종 목적지 는 강화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하였다. 수취인은 무신 집권의 전민, 삼별초 등 무인세력이 주를 이루는 조직들이다. 마도3호선은 목간에 기록된 음식의 종류는 보리(麥), 전복(生 鮑), 전복젓갈(生鮑image2.gif), 홍합(image5.gif 菜), 말린 홍합(乾image5.gif), 홍합 젓갈((image5.gifimage2.gif)), 상어(沙魚), 어유(魚油), 꿩(雉), 개고기포(image6.gif 脯) 등이 있다. 이들 목간에 기록된 음식과 마도3호선 선체와 도 기항 내부의 동·식물· 어류 등의 유존체를 분류 동정된 결 과와 연결하여 마도3호선의 음식을 해석하였다. 그동안 막연 하게 추론되었던 13세기 후반 고려시대의 음식 재료의 학명 (學名)이 다수 확인되었다. 향후 목간과 동·식물류의 유존 체의 과학적 분석 등이 완료되면 고려시대의 음식사 연구를 좀 더 심도있게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Figure

    KJFC-30-158_F1.gif

    Food items of wooden tablet (WT) in Taean Mado shipwreck No. 3 (Below: infrared rays imaging) (continued)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KJFC-30-158_F2.gif

    Pictures found inside pottery jars of Teaean Mado shipwreck No. 3 H (Height); MD (Mouth diameter); BD (Bottom diameter); V (Volume); W (Weight)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Table

    Records of wooden tablet in Taean Mado shipwreck No. 3

    Records of food items and recipient in Taean Mado shipwreck No. 3

    Marks - (-): No record; □ : Still on deciphering; ■: Ink marks by infrared imaging; □ : Damaged; ◎ : Identification; *: Same wooden tab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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