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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29 No.2 pp.129-139
DOI : https://doi.org/10.7318/KJFC/2014.29.2.129

A Literature Review on the Mandoo in the Royal Palace of Joseon Dynasty

Soon-Duk Oh*
Department of Hotel Restaurant & Culinary Science, Seoul Yonhee Occupational Training College
Corresponding Author : Soon-Duk Oh, Department of Hotel Restaurant & Culinary Science, Seoul Yonhee Occupational Training College, 568-51,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Tel: 82-10-7153-1535, Fax: 82-2-337-9801,je0749@korea.ac.kr
September 24, 2013 January 17, 2014 March 4, 2014

Abstract


조선왕조 궁중음식(宮中飮食) 중 만두류(饅頭類)의 문헌적 고찰

오 순덕*
서울연희직업전문학교 호텔조리학부 교수

초록

This article examines the different types of Mandoo as recorded in 15 royal palace studies from the Joseon dynasty (1392-1909). The types of Mandoo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Byeongsi (餠匙), Mandoo (饅頭), EMandoo (魚饅頭), Rukmandoo (肉饅頭), Yangmandoo (月羊饅頭), Saengchimandoo (生雉饅頭), Golmandoo (骨饅頭), Dongkwamandoo (冬果 饅頭), Chaemandoo (菜饅頭), Chimchaemandoo (沈菜饅頭), and Saenghapmandoo (生蛤饅頭). The frequencies of the different Mandoo type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in the following order: Mandoo (29.8%), Emandoo (19.1%), Rukmandoo (14.9%), Byeongsi (12.8%), Yangmandoo (6.4%), Saengchimandoo (4.3%), Golmandoo (4.3%), Dongkwamandoo (2.1%), Chaemandoo (2.1%), Chimchaemandoo (2.1%), and Saenghapmandoo (2.1%). “Muja- Jinjakeuigwe (戊子進爵儀軌)” (1828년) gijumi (起酒米) is not used, suggesting that Koreans could see perched Mandoo. “Musin-Jinchaneuigwe (戊申進饌儀軌)” (1848) configurations of materials Mandoo, SoongChimchae (沈菜), Dupo (豆 泡), Nokdujangum (綠豆長音). Now, we enjoy mandoo's ingredients based documents materials. Further studies will be conducted on recipes and ingredients recorded in Euigwe in order to develop a standardized recipe for Mandoo.


    I.서 론

    전래의 만두하면 면식류(麵食類, 밀가루로 만든 음식류)에 포함되기도 하나 만두피(饅頭皮)의 종류에 따라 어육편(魚肉 片)을 이용하는 등 면식(麵食)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도 있다 (장지현 1993). 사전적 의미의 만두는, 만두는 밀가루나 메밀 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소를 넣고 빚어서 만든 음식(사전연구 실 1968)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두류가 성행된 시기는 고려시대의 승속과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고 려시대 이전으로 소급된다고 추정되고 있다(장지현 1993). 만두는 빈대떡과 더불어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음 식으로 서울만 하여도 설 무렵이나 조금 빚어먹을 뿐이며 중 부 이남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드물어(김광언 1992) 지는 지 역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훈몽자회」에서 만두에 대해 상화 만(饅), 상화 두(頭)라 하였다.「동국세시기」와「주방문」에는 상화를 이두(吏頭) 로 상화(霜花)라 적었고, 「역어유해」는 상화는 중국의 증 병(蒸餠)이라고 하였으며, 「성호사설」에는 상화는 기수(起 , 발효떡)라고 하였다(정혜경 2008).

    이성우(1985)는 상화를 만두와 다른 음식이라는 견해를 내 었으나, 아직도 굳어진 통설은 고쳐지지 않고 있으며 상화는 밀가루를 술이나 누룩을 섞어 부풀린 다음 꿀에 잰 팥소를 넣어 찐 음식으로 현재의 찐빵과 같은 것으로 오늘날의 만 두와는 다른 음식임이 분명하다(김광언 1992)고 하였다.

    궁중의 경사(慶事) 이를테면 왕, 왕비, 대비 등의 회갑, 탄 신, 사순(四旬, 40세), 망오(望五, 41세, 50대를 바라보는 나 이), 오순(五旬, 50세), 망육(望六, 51세, 60대를 바라보는 나 이) 등의 특별 기념일이나 이들이 존호(尊號)를 받았을때, 또 는 왕이 기사(耆社)에 들어갔을 때 궁중에서는 왕의 윤허(允 許)를 받아 큰 연회(宴會)를 베풀게 된다(Lee SW 1986).

    「이순록(二旬錄)」을 보면 ‘인조(仁祖)가 전복 넣은 만두 를 좋아하였으니 일찍이 그 생신날에 왕자(王子)는 그 비(妃) 와 함께 동궁(東宮)에서 친히 만두를 만들어 새벽에 일찍 문 안하고 올렸다’는 기록(이성우 1985)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만 두는 궁중음식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만두 또한 시식(時食)과 무관하지 않았으며 밀만두는 10 월, 6월(流頭) 시식(時食)으로 또 어만두는 4월의 시식(時食) 구실을 하여 왔거니와 제사음식으로도 보편화되어 왔다. 그 밖에도 메밀만두는 10월의 시식(時食)으로 사랑을 받아 왔으 나 오늘날에는 외식산업에 수용되어 때를 가리지 않고(장지 현 1993) 일상에서 즐겨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만두에 관한 문헌적 연구 가운데 ‘만두 고(考)’(김광언 1992)는 중앙아시아와 몽골 및 한국의 만두에 대해 고찰하였 으며, ‘만두 문화의 역사적 고찰’(정혜경 2008)은 세계인들이 즐기는 만두 문화의 이동루트를 추측하는 연구를 하였으며, ‘만두의 조리방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조선시대 만두의 종류 와 조리방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1400년대~1900년대까지)’ (Bok 2008)은 조선시대 만두에 대한 조리방법과 시대별 사 용된 식품재료, 조리도구 등을 분석하였다. ‘고 조리서에 수 록된 만두의 종류와 조리법에 관한 고찰-1600년대부터 1950 년대까지 발간된 고 조리서를 중심으로’(Kim 등 1999)는 우 리나라16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발간된 조리서에 기록된 만두에 대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 만두에 사용된 재료, 조 리방법, 크기와 모양, 양념과 고명 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고찰하였으며, ‘문헌에 기록된 만두 의 분석적 고찰’(이 & 조 1997)은 문헌에 수록된 만두에 대 해 그 종류, 재료, 조리법들을 고찰 하였다. 그러나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에 대한 문헌적 고찰은 보고되어 있지 않 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조(1392~1909)에 발간된 궁중의궤 15책,「기해 진연의궤(己亥 進宴儀軌)」(1719년),「원행을 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1795년),「정해 정례의궤 (丁亥 整禮儀軌)」(1827년),「무자 진작의궤(戊子 進爵儀 軌)」(1828년), 「기축 진찬의궤(己丑 進饌儀軌)」(1829년), 「무신 진찬의궤(戊申 進饌儀軌)」(1848년),「무진 진찬의 궤(戊辰 進饌儀軌)」(1868년),「계유 진작의궤(癸酉 進爵儀 軌)」(1873년).「정축 진찬의궤(丁丑 進饌儀軌)」(1877년), 「정해 진찬의궤(丁亥 進饌儀軌)」(1887년),「임진 진찬의 궤(壬辰 進饌儀軌)」(1892년),「신축 진찬의궤(辛丑 進饌儀 軌)」(1901년 5월),「신축 진연의궤(辛丑 進宴儀軌)」(1901 년 7월),「임인 진찬의궤(壬寅 進饌儀軌)」(1902년 4월),「임 인 진연의궤(壬寅 進宴儀軌)」(1902년 11월)를 대상으로 문 헌 고찰하였다.

    조선왕조 궁중의궤에 기록된 만두류의 종류를 분석 고찰 함으로써 우리음식문화의 우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한식 세계화 문화보급을 위한 자료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 대한다.

    II.본 론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는 궁중의궤 15책에 수록된 만 두를 고찰하였다. 조선왕조 궁중의궤에 소개되어진 만두류의 종류에는 병시(餠匙), 만두(饅頭), 어만두(魚饅頭), 육만두(肉 饅頭), 양만두(月羊饅頭), 생치만두(生雉饅頭), 골만두(骨饅頭), 동과만두(冬果饅頭), 채만두(菜饅頭), 침채만두(沈菜饅頭), 생 합만두(生蛤饅頭)로 모두 11종류였다. 만두의 명칭은 생긴 모 양에 따라 이름 붙여진 병시(餠匙)와 만두의 재료 가운데 특 색 있는 재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골만두, 어만두. 생합만두 등이 있었다. 궁중의궤에 소개된 만두류는 명칭에 따라 병 시, 만두, 어만두, 육만두, 양만두, 생치만두, 골만두, 동과만 두, 채만두, 침채만두, 생합만두로 분류하여 고찰하였다.

    1.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류의 종류

    조선왕조 궁중음식에 나타난 만두류의 종류는 <Table 1> 과 같다.

    조선왕조 궁중의궤「기해 진연의궤(己亥 進宴儀軌)」(1719 년)의 餠匙(병시)등 5종,「원행을묘정리의궤」의 魚饅頭(어 만두) 등 6종,「정해 정례의궤(丁亥 整禮儀軌)」(1827)의 餠 匙(병시) 등 3종,「무자 진작의궤(戊子 進爵儀軌)」(1828년) 의 餠匙(병시) 등 4종,「기축 진찬의궤(己丑 進饌儀軌)」(1829 년)의 餠匙(병시) 등 6종,「무신 진찬의궤(戊申 進饌儀軌)」 (1848년)의 饅頭(만두) 등 2종,「무진 진찬의궤(戊辰 進饌儀 軌)」(1868년)의 饅頭(만두) 1종,「계유 진작의궤(癸酉 進爵 儀軌)」(1873년)의 饅頭(만두) 1종.「정축 진찬의궤(丁丑 進 饌儀軌)」(1877년)의 饅頭(만두) 등 2종,「정해 진찬의궤(丁 亥 進饌儀軌)」(1887년)의 饅頭(만두) 등 2종,「임진 진찬 의궤(壬辰 進饌儀軌)」(1892년)의 餠匙(병시) 등 4종,「신축 진찬의궤(辛丑 進饌儀軌)」(1901년 5월)의 饅頭(만두) 1종, 「신축 진연의궤(辛丑 進宴儀軌)」(1901년 7월)의 餠匙(병 시) 등 4종,「임인 진찬의궤(壬寅 進饌儀軌)」(1902년 4월) 의 饅頭(만두) 등 3종,「임인 진연의궤(壬寅 進宴儀軌)」(1902 년 11월)의 饅頭(만두) 등 3종, 총 47종이 소개되었다.

    만두류의 종류로 ‘병시(餠匙)’는 6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 으며, 일반적인 ‘만두’는 14개의 문헌에서, 어만두(魚饅頭)는 9개의 문헌에서, 육만두(肉饅頭)는 7개의 문헌에서, 양만두 (月羊饅頭)는 3개의 문헌에서, 생치만두(生雉饅頭)와 골만두 ( 骨饅頭)는 각각 2개의 문헌에서, 동과만두(冬果饅頭), 채만두 (菜饅頭), 침채만두(沈菜饅頭), 생합만두(生蛤饅頭)는 각각 1 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만두류의 종류가 가장 많이 기록된 문헌은「원행을묘정 리의궤」(1795)와「기축 진찬의궤」(1829년)에서 6종 기록 되었고 그 뒤를 이어 「기해 진연의궤」(1719년)에서 5종, 「무자 진작의궤」(1828년)·「임진 진찬의궤」(1892년)· 「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에서 4종,「정해 정례의궤」 (1827년)·「임인 진찬의궤」(1902년 4월)·「임인 진연의 궤」(1902년 11월)에서 3종,「무신 진찬의궤」(1848년)· 「정축 진찬의궤」( 년)·「정해 진찬의궤」(1887년)에 서 2종, 「무진 진찬의궤」(1868년)·「계유 진작의궤」(1873 년)·「신축 진찬의궤」(1901년 5월)에서 1종순으로 나타났다.

    1)병시(餠匙)

    병시는「기해 진연의궤」(1719년),「정해정례의궤」(1827 년),「무자진작의궤」(1828년),「기축 진찬의궤」(1829년), 「임인 임진 진찬의궤」(1892년),「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 모두 6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2)만두(饅頭)

    만두류의 종류 가운데 일반적인 ‘만두’는 문헌 고찰한 궁 중의궤 15권 가운데「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를 제외 한 14권의 문헌에서 모두 소개되었다.「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년)에서는 만두의 명칭이 세밀하게 어만두, 각색만두, 양만두, 생치만두, 채만두, 침채만두라고 기록되어져 있었으 며 일반적인 ‘만두’란 표현은 사용되어지지 않았다.

    3)어만두(魚饅頭)

    어만두는「기해 진연의궤」(1719),「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무자진작의궤」(1828),「기축 진찬의궤」(1829), 「무신 진찬의궤」(1848),「임진 진찬의궤」(1892),「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임인 진찬의궤」(1902년 4월), 「임인 진연의궤」(1902년 11월) 모두 9개의 문헌에서 소개 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서는 어만두를 이용한 ‘어만 두탕’도 소개되었다.

    4)육만두(肉饅頭)

    육만두란 명칭은「원행을묘정리의궤」(1795)의 ‘각색만 두(各色饅頭)’라 소개되어 있는데 각색만두는 바로 ‘어육만 두’로서 육만두에 수어(秀魚)가 사용되어져 어육만두라 불리 어 진 것으로 보인다.

    육만두는「원행을묘정리의궤」(1795)의 ‘각색만두’를 비 롯하여「정축진찬의궤」(1877),「정해 진찬의궤」(1887), 「임진 진찬의궤」(1892),「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 「임인 진찬의궤」(1902년 4월),「임인 진연의궤」(1902년 11월) 모두 7개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5)양만두(月羊饅頭)

    양만두는「원행을묘정리의궤」(1795)와「정해정례의궤」 (1827),「기축 진찬의궤」(1829) 3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 고 그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6)생치만두(生雉饅頭)

    생치만두는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와 「무자진작의 궤」(1828) 2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7)기타

    우골(牛骨)로 만든 골만두(骨饅頭)는「기해 진연의궤」 (1719)와「기축 진찬의궤」(1829) 2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 다. 동과(冬果, 동아)로 만든「기해 진연의궤」(1719)의 동 과만두(冬果饅頭), 수근(水芹, 미나리)으로 만든 「원행을묘 정리의궤」(1795)의 채만두(菜饅頭), 숭침채( 沈菜, 배추김 치)로 만든「원행을묘정리의궤」(1795)의 침채만두(沈菜饅 頭), 생합으로 만든 「기축 진찬의궤」(1829)의 생합만두(生 蛤饅頭)는 각각 1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2.조선왕조 궁중음식 만두류의 재료구성

    1)병시(餠匙)

    조선왕조 궁중의궤에 소개된 병시(餠匙)의 만두피는 모두 진말(眞末, 밀가루)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시는 겨 울철에 만드는 만두로 숟가락 모양과 같은 떡이라고 하여 그 렇게 불리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병시(餠匙)의 재료구 성은 <Table 2>와 같다.

    병시(餠匙)는 진말(眞末, 밀가루)을 반죽하여 적당한 크기 로 얇게 밀어서 거기에 우심육(牛心肉, 소안심), 저육(猪肉, 돼지고기), 진계(陳鷄, 묵은 닭), 생치(生雉, 꿩) 등을 생총(生 蔥, 파), 생강(生薑), 간장(艮醬), 진유(眞油, 참기름), 호초말 (胡椒末, 후추가루), 실백자(實柏子, 잣)와 버무려서 만든 소 를 넣고 빚은 만두이다. 만두 속으로 돼지갈비를 사용한 문 헌은「기해진연의궤」(1719년)의 저갈비(猪乫非)와「기축 진찬의궤」(1829년)의 저갈비(猪乫飛)이다. 돼지갈비(猪乫飛) 를 만두 속으로 사용할 때 생산(生蒜, 마늘)을 사용한 것이 돋보였다.

    2)만두(饅頭)

    만두는「규곤시의방」(1670년경)의 만두법에서 조리방법 이 잘 나타나 있다. ‘메밀가루 장만하는데 마치 좋은 면가루 같이 가는 모시나 깁체에 쳐서 가루를 만들어 (중략) 간장에 볶아 넣어도 좋다. 밀로 상화가루(극히 고운 밀가루)를 만들 어 메밀 만두소와 같이 장만하여 초간장과 생강즙을 타면 좋 다’(황혜성 편역 1980)고 한 것으로 보아 만두피(皮)로 진말 과 목말이 1670년에 이미 사용되어 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왕조 궁중의궤「기해 진연의궤」(1719년)와 「무자진 작의궤」(1828년)에는 진말(眞末, 밀가루)이 사용되었고,「정 해 정례의궤」(1827년)와「기축 진찬의궤」(1829년) 에서 는 진말(眞末, 밀가루)과 목말(木末, 메밀가루)이 혼용되었다. 「무신 진찬의궤」(1848년)이후부터는 모두 목말(木末, 메밀 가루)이 사용되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饅頭)의 재 료구성은 <Table 3>과 같다.

    기해 진연의궤」(1719년)와「정해 정례의궤」(1827년)의 만두는 재료 구성상 진말(眞末, 밀가루)과 기주미(起酒米)를 사용하였다.「옹희잡지」에서는 ‘화인(華人)’은 만두를 병 과의 하나로 보고 있으나, 동인(東人)은 병과라고 하지 않고 잔치 상이나 제사상의 음식으로서 면식의 상두를 차지 한다 며 중국의 만두와 한국의 만두의 차이점을 설명하였다(정혜 경 2008).「기해 진연의궤」(1719년)의 만두에 기주미(起酒 米)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중국인의 발효식의 일부인 찐빵류 의 만두형태 즉 상화로 보여진다.「정해 정례의궤」(1827 년)의 만두는 두 가지 재료구성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중국 식 찐빵류인 상화 형태의 만두와 우리나라 면식 형태의 만 두의 조리법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무자진작의궤」(1828년) 이후에는 기주미(起酒米)가 사 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면식형태의 만두가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신 진찬의궤」(1848년)의 만두의 재료 구성은 숭침채 ( 菜, 배추김치), 두포(豆泡, 두부), 녹두장음(菉豆長音)이 다.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만두의 재료로 배추김치와 두부, 숙주나물의 사용하고 있는 문헌적 근거라 하겠다.

    만두의 속 재료로 사용된 육류는 주로 생치(生雉: 꿩), 우 내심육(牛內心肉, 소안심), 저육(猪肉, 돼지고기)을 사용하였 다. 특히 생치(生雉, 꿩)는 「무자진작의궤」(1828), 「기축 진찬의궤」(1829)를 제외한 문헌에서 생치(生雉)가 사용되었 다. 특히 1901년 이후의 문헌인「신축진찬의궤」(1901년 5 월),「신축진연의궤」(1901년 7월), 「임인진찬의궤」(1902 년 4월), 「임인진연의궤」(1902년 11월)에서는 생치(生雉, 꿩)대신에 진계(陳鷄, 묵은 닭)와 연계(軟鷄, 연한 닭)가 사용 되었다.

    정해 정례의궤」(1827년)의 만두(饅頭)는 생치(生雉, 꿩), 우내심육(牛內心肉, 소안심), 저육(豕者肉, 돼지고기)이 사용되 었다. 「증보산림경제」(1767년)의 猪肉作饅頭 則與 雉肉味 同(저육작만두 즉여 치육미동) 즉 돼지고기로 만두를 만들면 꿩고기와 맛이 똑같다(이강자 등 편역 2003)고 한 것으로 보 아 생치(生雉, 꿩)와 저육(豕者肉, 돼지고기)을 조리 배합에 같 이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만두의 속 재료로 사용된 녹두채(菉豆菜, 숙주나물)는 「무 신 진찬의궤」(1848년) 이후의 문헌에서 모두 사용되었고, 숭침채( 菜, 배추김치)는「무신 진찬의궤」(1848년),「정 축진찬의궤」(1877년),「정해진찬의궤」(1887년),「임진진 찬의궤」(1892년)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표고( 古, 표고버 섯)는「기해진연의궤」(1719년),「정해정례의궤」(1827년), 「무자진작의궤」(1828년),「기축진찬의궤」(1829년),「계 유진작의궤」(1873년)에서 사용되었다.

    3)어만두(魚饅頭)

    어만두는「규곤시의방」(1670년경)의 어만도법(어만두법) 에서 조리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생선을 아주 엷게 저며 소 는 석이, 표고, 송이, 꿩고기, 백자(잣)등을 한데 짓두드려 간 장과 기름에 볶아 생선 저민 것에 싸서 아무리고 녹말가루 를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쓴다(황혜성 편역 1980)고 하였다. 조 선왕조 궁중음식 중 어만두(饅頭)의 재료구성은 <Table 4>와 같다.

    어만두는 생선(주로 숭어)을 얇게 저며 소금에 잠시 절였 다가 소를 넣고 저민 어육편으로 단단히 싸말아 성형한 것 이다(장지현 1993). 어만두에 사용된 생선은 주로 수어(秀魚, 숭어)이다.「기해 진연의궤」(1719년)에는 대생선(大生鮮) 이 표기되었고,「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이후 문헌부터 는 수어(秀魚)라 표기되었다.

    「수운잡방」(1500년대 초엽)의 어만두(魚饅頭)는 날 숭어 를 얇게 저며 두고, 삶은 어육과 표고, 생강, 초피, 파, 기름, 간장, 깨를 함께 섞어 많이 두드려 이긴 것을 소로 해서 싸 고 가장자리를 여민다. 이것을 양만두처럼 삶아서 냉수에 넣 었다가 초장에 찍어 먹는다(윤숙경편역 1998)고 하였다.

    어만두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속 재료에는 진유(眞油, 참기 름), 녹말(菉末)임을 알 수 있었다.「기해 진연의궤」(1719 년)와「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서는 생치(生雉, 꿩) 가 사용되었고「무자진작의궤」(1828년)에서는 진계(陳鷄, 묵은닭)가 사용되었고,「기축 진찬의궤」(1829년)에서는 생 치(生雉)와 진계(陳鷄) 혹은 생치(生雉)와 연계(軟鷄)가 함께 사용되었으며「무신 진찬의궤」(1848년) 이후부터는 생치(生 雉)와 진계(陳鷄)가 사용되어지지 않았다.

    무신 진찬의궤」(1848년)의 어만두에 전복(全鰒)과 해삼 (海蔘)이 유일하게 사용되어진 문헌이며 「임진 진찬의궤」 (1892년)이후부터는 저육(豕者肉, 돼지고기)이 사용되었다.

    4)육만두(肉饅頭)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육만두(肉饅頭)의 만두피로 양령(月羊 領)과 천엽(千葉)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양만두와 천엽만두 로 보여진다. 그러나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와 「정 해정례의궤」(1827년)와 「기축진찬의궤」(1829년)에서 양 만두(月羊饅頭)라 명칭한 양만두의 재료구성은 만두피로 양을 사용하나 만두소로는 생치(生雉, 꿩)·연계(軟鷄, 닭고기)와 같은 가금류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양령(月羊領)을 만두피로 사 용하고 만두소로 저각(猪脚)·진계(陳鷄)·우내심육(牛內心 肉) 등과 같이 만두소 자체가 육류로 구성된 것을 육만두라 칭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육만두(肉 饅頭)의 재료구성은 <Table 5>와 같다.

    육만두에는 양(月羊), 천엽(千葉), 생총(生蔥), 호초말(胡椒末), 진유(眞油), 녹말(菉末), 실백자(實柏子)가 공통적으로 사용되 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의 각색만두(各色饅頭) 는 어육만두이다. 돌아오실때의 윤 2월 15일 주수라에는 연 계찜으로 한다고 하였다. 문헌상 육만두는「정축 진찬의궤」 (1877년)가 처음 소개된 것으로 보여지나 「원행을묘정리의 궤」(1795년)의 각색만두는 바로 어육만두로서 육만두에 수 어(秀魚, 숭어)가 사용되어져 어육만두라 불리어진 것으로 보 인다. 어육만두는「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서만 소개 되었다. 특히「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의 어육만두에는 생복(生鰒)과 장(醬)이 사용된 점이 특징적이었다.

    「수운잡방」(1500년대 초엽)의 처녑만두(千葉饅頭, 천엽 만두)는 처녑의 길이와 너비를 양만두처럼 썰어서 고명을 소 로 하여 싼 후, 녹말을 묻혀서 실로 가장자리를 꿰매어 여미 고, 일상의 방법에 따라 삶아서 쓴다(윤숙경편역 1998)고 하 였다.

    정축진찬의궤」(1877년)에서는 두포(豆泡, 두부)사용,「정 해진찬의궤」(1887년)에서는 황화채(黃花菜)사용,「신축진 연의궤」(1901년 7월)에서는 고초(苦椒, 고추)가 사용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와「정축진찬의궤」(1877년), 「정해진찬의궤」(1887년)에서는 진계(陳鷄, 묵은닭)가 사용 되었다.

    5)月羊饅頭(양만두)

    양만두의 조리방법에 대해서는「수운잡방」(1500년대 초 엽)에서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양만두(月羊饅頭)는 양을 튀하 여 안팎의 껍질을 벗기고, 길이와 너비가 각각 2치정도 되도 록 얇게 떠서, 칼날로 많이 두드려 놓았다가 녹말로 잠깐 이 긴다. 그런 다음, 여러 가지 소를 양념하여 어만두처럼 싸서 녹말에 굴려 손으로 가장자리를 여미거나 꿰맨다. 이것을 채 광주리에 담아 끓는 물에 삶아서 냉수에 넣었다가 양념한 초 장에 찍어 먹는다(윤숙경 편역 1998)고 하였고 1800년대 중 엽의「주찬」의 양만두는 양을 끓는 물에 데쳐 안팎의 껍질 을 제거한 후 칼날로 두드려 녹말로 살짝 이긴 다음 소로 양 념한 것을 녹말에 굴려서 삶았다(Kim 등 1999)고 하였다. 양만두는 양 자체를 만두피로 사용되어진 것을 알 수 있었 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양만두(月羊饅頭)의 재료구성은 <Table 6>과 같다.

    양만두는 「정해정례의궤」(1827년)와「기축진찬의궤」 (1829년)의 재료구성은 똑 같았다. 생치(生雉, 꿩), 연계(軟鷄, 닭고기), 표고( 古), 생강(生薑), 진유(眞油, 참기름), 간장 (艮醬), 초(醋)가 사용되었다.

    초(醋)가 사용되어진 만두로는 양만두와 골만두(원행을묘 정리의궤, 1795), 생합만두(生蛤饅頭)로 초간장으로 곁들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6)生雉饅頭(생치만두)

    생치만두의 조리방법에 대해서는「수운잡방」(1500년대 초엽)에서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생치만두(生雉饅頭)는 날꿩 을 삶아서 난도질하여 이긴 다음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둔 다. 또 삶은 무와 두부를 조금 체에 걸러서 어육, 간장, 기름, 생강, 파, 후춧가루를 섞어 이긴 다음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볶는다. 생강과 파는 세게 볶지 않으며 약간 볶아 내어 잣가 루를 섞어 넣고 이겨서 소를 만든다. 이것을 앞의 날꿩 고기 로 만두처럼 싸서 메밀가루를 묻히고 끓는 물에 잠깐 삶아 내어 양념한 초장에 찍어 먹는다. 닭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윤숙경편역 1998)고 하였고 1800년대 중엽의「주찬」에서 는 생치를 삶아 살을 잘게 다진 후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소 를 넣고 메밀가루를 묻혀서 삶았다(Kim 등 1999)고 하였다. 생치만두는 만두소는 볶아 익혀진 상태로 다진 생치살을 얇 게 만들어 소를 넣고 메밀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잠깐 삶아 내는 것이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생치만두(生雉饅頭)의 재 료구성은 <Table 7>과 같다.

    생치만두에는 목말(木末, 메밀가루)와 생치(生雉, 꿩), 진유 (眞油, 참기름), 실백자(實柏子, 잣)가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서는 진계(陳鷄, 묵은닭)와 숙저육(熟猪肉), 태포(太泡, 두부)가 사용되었고 「무자진작 의궤」(1828년)에서는 우내심육(牛內心肉), 저각(猪脚), 생강 (生薑), 생총(生蔥), 간장(艮醬), 호초말(胡椒末)이 사용되었 다. 즉「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의 꿩만두에는 닭고기 와 두부가 사용되었고 「무자진작의궤」(1828년)의 꿩만두 는 쇠고기와 저각이 사용된 점이 달랐다.

    7)기타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기타종류의 만두 재료 구성은 <Table 8>과 같다.

    골만두(骨饅頭)는 두골(頭骨, 머리뼈), 생치(生雉, 꿩), 연계 (軟鷄, 영계)는 다지고 표고( 古, 표고버섯)는 채썰고 생 강(生薑), 호초말(胡椒末, 후추가루), 진유(眞油, 참기름), 간 장(艮醬) 등으로 양념하여 밤톨 만하게 만들어 녹말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져낸다.

    동과만두(冬果饅頭, 동아만두)는 동과(冬果, 동아)를 얇게 썰어 만두피로 사용하고 생치(生雉, 꿩), 표고( 古, 표고버 섯), 생강(生薑), 호초말(胡椒末, 후추가루), 진유(眞油, 참기 름)로 만두소를 만들고 녹말을 씌워 솥에 쪄 낸다.

    채만두(菜饅頭)의 만두피는 목말(木末, 메밀가루)로 반죽하 고 생치(生雉, 꿩), 황육(黃肉, 소고기), 수근(水芹, 미나리)로 만두소를 만드는데 채소인 미나리를 사용한 것이 색달랐다.

    침채만두(沈菜饅頭)는 김치만두라고도 한다. 만두피는 멥쌀 가루와 메밀가루를 사용한 점이 돋보였으며, 만두 속 재료로 는 생치(生雉, 꿩), 황육(黃肉, 소고기), 저육(猪肉, 돼지고기), 숭침채( 沈菜, 배추김치), 태포(太泡, 두부)가 사용되었다.

    생합만두(生蛤饅頭)는 생합(生蛤)을 씻어 물기를 제거한 후 다진 다음 녹말가루와 버무려 끓는 장국물에 넣어 익혀 낸 다. 초(醋)간장으로는 간장(艮醬), 초(醋), 실백자(實柏子, 잣), 생강(生薑)으로 만들어 곁들인다.

    III.요약 및 결론

    조선왕조 궁중의궤「기해 진연의궤」(1719년),「원행을 묘정리의궤」(1795년),「정해 정례의궤」(1827년),「무자 진작의궤」(1828년),「기축 진찬의궤」(1829년),「무신 진 찬의궤」(1848년),「무진 진찬의궤」(1868년),「계유 진작 의궤」(1873년).「정축 진찬의궤」(1877`년),「정해 진찬의 궤」(1887년),「임인 임진 진찬의궤」(1892년),「신축 진찬의궤」 (1901년 5월),「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임인 진찬 의궤」(1902년 4월),「임인 진연의궤」(1902년 11월) 15책 에 수록되어 있는 궁중음식 중 만두류에 대하여 고찰한 결 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왕조 궁중의궤「기해 진연의궤」(1719년)의 餠匙 (병시) 등 5종,「원행을묘정리의궤」의 魚饅頭(어만두) 등 6 종,「정해 정례의궤」(1827)의 餠匙(병시) 등 3종,「무자 진작의궤」(1828년)의 餠匙(병시) 등 4종,「기축 진찬의궤)」 (1829년)의 餠匙(병시) 등 6종,「무신 진찬의궤」(1848년)의 饅頭(만두) 등 2종,「무진 진찬의궤」(1868년)의 饅頭(만두) 1종,「계유 진작의궤)」(1873년)의 饅頭(만두) 1종.「정축 진찬의궤」(1877년)의 饅頭(만두) 등 2종,「정해 진찬의궤」 (1887년)의 饅頭(만두) 등 2종,「임인 임진 진찬의궤」(1892년)의 餠匙(병시) 등 4종,「신축 진찬의궤」(1901년 5월)의 饅頭(만 두) 1종,「신축 진연의궤」(1901년 7월)의 餠匙(병시) 등 4 종,「임인 진찬의궤」(1902년 4월)의 饅頭(만두) 등 3종, 「임 인 진연의궤」(1902년 11월)의 饅頭(만두) 등 3종, 모두 47 종이 소개되었다.

      만두류의 종류로 ‘병시(餠匙)’는 6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 으며, 일반적인 ‘만두(饅頭)’는 14개의 문헌에서, 어만두(魚 饅頭)는 9개의 문헌에서, 육만두(肉饅頭)는 7개의 문헌에서, 양만두(月羊饅頭)는 3개의 문헌에서, 생치만두(生雉饅頭)와 골 만두(骨饅頭)는 각각 2개의 문헌에서, 동과만두(冬果饅頭)· 채만두(菜饅頭)·침채만두(沈菜饅頭)·생합만두(生蛤饅頭)는 각각 1개의 문헌에서 소개되었다.

      만두류의 종류가 가장 많이 기록된 문헌은「원행을묘정 리의궤」(1795)와「기축 진찬의궤」(1829년)에서 각각 6종, 「기해 진연의궤(己亥 進宴儀軌)」(1719년)에서 5종 순으로 나타났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류의 종류로는 만두(饅頭)가 29.8%로 가장 높았고, 어만두(魚饅頭) 19.1%, 육만두(肉饅頭) 14.9%, 병시(餠匙) 12.8%, 양만두(月羊饅頭) 6.4%, 생치만두(生 雉饅頭) 4.3%, 골만두(骨饅頭) 4.3%, 그 밖에 동과만두·채 만두·침채만두·생합만두가 각각 2.1%로 나타났다.

    2. 병시(餠匙)는 진말(眞末, 밀가루)을 반죽하여 적당한 크 기로 얇게 밀어서 거기에 우심육(牛心肉, 소안심), 저육(猪肉, 돼지고기), 진계(陳鷄, 묵은 닭), 생치(生雉, 꿩) 등을 생총(生 蔥, 파), 생강(生薑), 간장(艮醬), 진유(眞油, 참기름), 호초말(胡 椒末, 후추가루), 실백자(實柏子, 잣)와 버무려서 만든 소를 넣고 빚은 만두이다. 궁중의궤에 소개된 병시(餠匙)의 만두 피는 모두 진말(眞末, 밀가루)을 사용하였다. 또한 만두 속으 로 돼지갈비를 사용한 문헌은 「기해진연의궤」(1719년)의 저갈비(猪乫非)와「기축진찬의궤」(1829년)의 저갈비(猪乫 飛)이다. 돼지갈비를 만두 속으로 사용할 때 표고( 古)와 생 산(生蒜, 마늘)을 사용한 것이 돋보였다.

    3. 만두(饅頭)의 만두피 재료로는 진말(眞末, 밀가루)과 목 말(木末, 메밀가루)이 사용되었다.「기해 진연의궤」(1719 년)와「무자진작의궤」(1828년)에는 진말(眞末)이 사용되었 고,「정해 정례의궤」(1827년)와「기축 진찬의궤」(1829 년) 에서는 진말(眞末)과 목말(木末)이 혼용되었다.「무신 진 찬의궤」(1848년)이후부터는 모두 목말(木末)이 사용되었다.

      기해 진연의궤」(1719년)의 만두에 기주미(起酒米)를 사 용한 것으로 보아 중국인의 발효식의 일부인 찐빵류의 만두 형태 즉 상화로 보여진다.「정해 정례의궤」(1827년)의 만 두는 두 가지 재료구성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중국식 찐빵 류인 상화 형태의 만두와 우리나라 면식 형태의 만두의 조 리법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이다. 「무자진작 의궤」(1828년) 이후에는 기주미(起酒米)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면식형태의 만두가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었다.「무신 진찬의궤」(1848년)의 만두의 재료 구성 은 숭침채( 菜, 배추김치), 두포(豆泡, 두부), 녹두장음(菉 豆長音)이다.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만두의 재료로 배추김치 와 두부, 숙주나물의 사용하고 있는 문헌적 근거라 하겠다.

    4. 어만두(魚饅頭)에 사용된 생선은 주로 수어(秀魚, 숭어) 이다.「기해 진연의궤」(1719년)에는 대생선(大生鮮)이 표 기되었고,「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이후 문헌부터는 수 어(秀魚)라 표기되었다. 어만두 소에는 꿩, 닭, 쇠고기, 전복, 해삼 등이 사용되었다.「무신 진찬의궤」(1848년)의 어만두 에 전복과 해삼이 유일하게 사용되어진 문헌이며「임진 진 찬의궤」(1892년)이후부터는 저육(豕者肉, 돼지고기)이 사용되 었다.

    5. 육만두(肉饅頭)의 만두피로 양령(月羊領)과 천엽(千葉)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양만두와 천엽만두로 보여진다. 그러나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와「정해정례의궤」(1827년) 와「기축진찬의궤」(1829년)에서 양만두(月羊饅頭)라 명칭한 양만두의 재료구성은 만두피로 양을 사용하나 만두소로는 생 치(生雉, 꿩)·연계(軟鷄, 닭고기)와 같은 가금류를 사용하였 다. 그러나 양령(月羊領)을 만두피로 사용하고 만두소로 저각(猪 脚)·진계(陳鷄)·우내심육(牛內心肉) 등과 같이 만두소 자 체가 육류로 구성된 것을 육만두라 칭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6. 양만두(月羊饅頭)는 양 자체를 만두피로 사용하였으며 만 두소로는 생치(生雉, 꿩)·연계(軟鷄, 닭고기)·표고( 古, 표고버섯)·생강(生薑)·진유(眞油, 참기름)·간장(艮醬)· 초(醋)가 사용되었다.

    7. 생치만두(生雉饅頭)의 만두소는 볶아 익혀진 상태로 다 진 생치살을 얇게 만들어 소를 넣고 메밀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잠깐 삶아 내는 것이다.

    8. 골만두(骨饅頭)는 두골(頭骨, 머리뼈)·생치(生雉, 꿩)· 연계(軟鷄, 닭고기)는 다지고 표고( 古, 표고버섯)는 채썰고 생강(生薑)·호초말(胡椒末, 후추가루)·진유(眞油, 참기름)· 간장(艮醬) 등으로 양념하여 밤톨만하게 만들어 녹말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져낸다.

    9. 동과만두(冬果饅頭, 동아만두)는 동과(冬果, 동아)를 얇 게 썰어 만두피로 사용하고 생치(生雉, 꿩)·표고( 古)·생 강(生薑)·호초말(胡椒末, 후추가루)·진유(眞油, 참기름)로 만두소를 만들고 녹말을 씌워 솥에 쪄 낸다.

    10. 채만두(菜饅頭)의 만두피는 목말(木末, 메밀가루)로 반 죽하고 생치(生雉, 꿩), 황육(黃肉, 소고기), 수근(水芹, 미나 리)로 만두소를 만드는데 채소인 미나리를 사용한 것이 색달 랐다.

    11. 침채만두(沈菜饅頭)는 김치만두라고도 한다. 만두피는 멥쌀가루와 메밀가루를 사용한 점이 돋보였으며, 만두 속 재 료로는 생치(生雉, 꿩), 황육(黃肉, 소고기), 저육(猪肉, 돼지 고기), 숭침채( 沈菜, 배추김치), 태포(太泡, 두부)가 사용되 었다.

    12. 생합만두(生蛤饅頭)는 생합(生蛤)을 씻어 물기를 제거 한 후 다진 다음 녹말가루와 버무려 끓는 장국물에 넣어 익 혀 낸다. 초(醋)간장으로는 간장(艮醬)·초(醋)·실백자(實柏 子, 잣)·생강(生薑)으로 만들어 곁들인다.

      초(醋)가 사용되어진 만두로는 양만두와 골만두(원행을묘 정리의궤, 1795), 생합만두(生蛤饅頭)로 초간장으로 곁들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상과 같이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류에 대한 문헌적 고찰을 분석한 결과 만두류의 종류에는 병시(餠匙), 만두(饅 頭), 어만두(魚饅頭), 육만두(肉饅頭), 양만두(月羊饅頭), 생치만 두(生雉饅頭), 골만두(骨饅頭), 동과만두(冬果饅頭), 채만두(菜 饅頭), 침채만두(沈菜饅頭), 생합만두(生蛤饅頭)로 모두 11종 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의 종류 가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궁중의궤를 통한 음식 연구 를 통해 올바른 식문화의 자리매김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후속연구로서 이러한 문헌의 고찰을 토대로 하여 조선 왕조 궁중음식 중 만두류를 복원하며, 한식 세계화 문화보급 을 위한 자료로 식문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Figure

    Table

    Mandoo according to the Types of ingredi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Byeongsi'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E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Ruk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Yang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Saengchi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Other mandoo's material components (Joseon dynasty Royal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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