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이번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학회지에서 「한국과 일본」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차경희 회장이 필자에게 「한일 식문화 연구의 교류」에 대해 기고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연구 교류를 논하는 데 일본 식문화 연구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이시게 나오미치(이하 경칭 생략)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시게 나오미치는 1937년에 태어나 지난 2025년 11월 30일에 미수 축하연을 맞이하였다. 그는 ‘식(食)은 문화다’라는 관점을 제창하였으며, 현재도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수많은 연구 업적은 2011년부터 2013년에 걸쳐 간행된 「이시게 나오미치 자선저작집(石毛直道自選著作集)」에 거의 망라되어 있다.
이 가운데 이시게 나오미치의 한반도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한반도의 식(朝鮮半島の食)」은 제1권 「세계의 식문화 탐험(世界の食文化探検)」에, 「이시게 나오미치, 식문화를 말하다(石毛直道 食の文化を語る)」는 제2권 「식문화 연구의 시야(食文化研究の視野)」에, 「면의 문화사(麺の文化史)」 중 「4. 한반도의 면(朝鮮半島の麺)」은 제3권 「면⋅유⋅두⋅차와 커피(麺⋅乳⋅豆⋅茶とコーヒー)」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어장과 나레즈시의 연구(魚醤とナレズシの研究)」 중 「한반도」, 「어개류의 발효식품에 관한 연구(魚介類の発酵食品に関する研究)」 중 「한반도(朝鮮半島)」, 「동유라시아의 증류기(東ユーラシアの蒸留器)」 및 「한반도의 증류기(朝鮮半島の蒸留器)」는 제4권 「생선 발효식품과 술(魚の発酵食品と酒)」에, 「식탁문명론(食卓文明論)」 중 「동아시아의 가족과 식탁(東アジアの家族と食卓)」은 제5권 「식사와 문명(食事と文明)」에, 그리고 「주막과 김치용 냉장고(酒幕とキムチ用冷蔵庫)」는 별권(제12권)에 수록되어 있다(石毛 2013).
II. 이시게 나오미치와 한국 - 연보를 중심으로
「자선저작집」 별권(제12권)에 수록된 연보에서 이시게 나오미치와 한국의 관계에 대한 기록을 발췌해 보자(石毛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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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한국 식문화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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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9월: 한국 식문화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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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12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식문화학회에서 기념강연으로 「식문화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발표한 후, 한국 각지에서 식문화 조사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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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8월: 한국 식문화 조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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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식문화학회에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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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8월: 한국 식문화 조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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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식문화학회에서 「세계의 유(乳) 이용 역사」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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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한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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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전 한양대학교 교수 이성우 박사 추도집회에서 기념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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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9월: 서울에서 종합연구개발기구(NIRA) 주최 ‘일본⋅한국⋅중국 정책연구기관 심포지엄’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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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 동아시아식생활학회에서 기념강연 「동아시아 식사문화의 공통성과 다양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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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학술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 경주시 명예시민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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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경기도립박물관 특별전 ‘몽골전’에 국립민족학박물관이 출품한 개막식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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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전’ 개막식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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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식생활문화학회에서 「동아시아 식문화 연구의 시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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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조선왕조 궁중요리 전승자이자 한국의 인간문화재, 그리고 국립민족학박물관 객원교수였던 고 황혜성 여사의 법요식에 참석한 후 한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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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대전보건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면문화의 역사와 미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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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전라북도 순창에서 순창군과 서울대학교가 공동 개최한 ‘장수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건강식으로서의 일본식」을 발표하고, 서울에서 개최된 제13회 중국음식문화연구회에서는 「일본에서의 중국요리의 지방화와 글로벌화 - 면류 요리를 사례로」를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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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한국 여행
III. 이시게 나오미치와 한국 식문화 연구의 제1세대
한국 식문화 연구의 제1세대에 대해서는 모리야 아키코(守屋亜記子)가 「동아시아 및 한반도의 식문화에 관한 선행연구」의 개요를 제시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이시게 나오미치와의 관련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국 식문화 연구의 제1세대로는 강인희(姜仁姫)도 거론할 수 있다(守屋 2024a).
1. 이성우(李盛雨, 1928–1992)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경북대학교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이후 오사카부립대학교(大阪府立大学)와 교토대학교(京都大学)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체류 중 시노다 오사무(篠田統)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시게 나오미치와도 교분을 맺었다. 1981년 아지노모토(味の素)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귀국 후 친분 있는 연구자들을 모아 식문화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후 한국영양식량학회, 한국식문화학회(현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한국차문화학회, 동아시아식생활학회를 잇따라 설립하였다(守屋 2024a).
이시게 나오미치에게 이성우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지노모토 식문화센터의 ‘이시게 나오미치 식문화 아카이브’의 ‘식문화 연구 조감도’에는 「식문화 연구의 선구자⋅친구들」이라는 항목 아래, 동아시아 식물사 연구의 개척자인 시노다 오사무, 이시게가 교토대 재학 시절 소속되었던 탐험부의 지도교수이자 조엽수림문화론(照葉樹林文化論)을 제창한 나카오 사스케(中尾佐助), 교토대 탐험부 후배이자 민족학박물관의 동료였던 요시다 슈지(吉田集而)와 함께 이성우의 이름이 올라 있다. 거기에는 「이성우와 이시게 나오미치의 추억」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회고가 실려 있다(味の素食の文化センター).
“내가 기획한 아지노모토 주최 1981년 국제식문화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식문화’에서 이성우 선생에게 「한반도의 식문화」라는 주제로 발표를 부탁하였다. 그 전해에 발표 의뢰를 위해 다나카 세이이치(田中静一) 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이 선생을 만났고, 그 이후 식문화 연구의 동지가 되었다. 일본 식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식문화와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식문화에 대해서는 시노다 선생의 뛰어난 연구가 있었지만, 한반도의 식생활사는 아직 미개척 상태였다. 이 선생은 그 개척자가 되어 한국에서 연구 조직을 설립하고 제1인자가 되었다. 나는 이 선생과 친숙한 관계가 되어 매년처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구를 상의하였고,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과도 알게 되었다. 1992년 이 선생이 별세했을 때, 서울에서 열린 추도집회에서 나는 기념강연을 하였다.”
또한 「이시게 나오미치 자선저작집(石毛直道自選著作集)」 제1권의 「해설-한반도의 식(解説-朝鮮半島の食)」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石毛 2011).
“일본 식문화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한반도 식문화의 역사를 이해하고, 동아시아 식문화의 공통점과 일본이 독자적으로 형성한 전통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 식문화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성우 선생이 사사한 시노다 오사무의 위대한 업적이 있지만, 한반도의 식생활사는 이성우 선생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는 거의 미개척 상태였다. 나는 동아시아 식문화 연구를 매개로 이성우 선생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고, 매년처럼 두 사람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구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이성우 선생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훌륭한 식문화 연구자들과도 교류를 맺게 되었다. 주간아사히백과(週刊朝日百科) 「세계의 음식(世界の食べ物)」중 「한반도 1⋅2(朝鮮半島1⋅2)」두 권의 대부분의 글은 이성우 선생과 그의 문하 연구자들이 집필하였다.”
이처럼 그는 이성우와의 교류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성우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는 정대성과 사사키 나오코가 번역한 이성우의 「한국요리문화사(韓国料理文化史)」「일본어판 출간에 부쳐」에서 이시게 나오미치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Lee 1999).
“내가 이성우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대 후반, 시노다 선생의 자택에서였다. (중략) 어느 날 평소처럼 시노다 선생의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안쪽 서고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 인물을 ‘한국의 이성우 군이네’라고 소개받았다. 그때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을 뿐, 이성우 박사는 곧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시노다 박사가 ‘이성우 군은 인문과학연구소와 우리 집 서고에 틀어박혀 식생활 관련 한적(漢籍)을 읽고 있다. 이렇게 공부 열심인 사람은 드물다’고 평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2. 황혜성(黃慧性, 1920–2006)
황혜성은 조선왕조 궁중요리 연구의 제1인자이며, 조선왕조 궁중음식 제2대 기능보유자이다(초대는 한희순 상궁). 공주여학교를 졸업한 뒤 교토여자전문학교(현 교토여자대학교)에 진학하여 가정학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숙명여자전문학교(현 숙명여자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으로부터 궁중요리를 배웠다. 그때까지 구전으로 전해지던 궁중요리를 계량화⋅수치화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守屋 2024a).
이시게 나오미치는 황혜성과의 공저인 「한국의 식(韓国の食)」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Hwang & I 1988).
“1986년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일본학술진흥회가 초청한 외국인 연구자로서 황 선생이 일본을 방문하여 내가 소속된 국립민족학박물관에 체류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식문화를 비교 연구하였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선생과 대담을 진행하였고, 그 기록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또한 이시게 나오미치는 앞서 언급한 「해설-한반도의 식」에서 황혜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황혜성 교수는 한국 식문화사 연구의 개척자인 이성우 박사와도 가까운 사이였으며, 조선왕조 궁중요리 기술을 전승한 한국의 인간문화재이자, 한국 각지의 향토음식에 대한 기록 연구를 수행한 여성 연구자이다.”
황혜성과 이시게의 만남에 대해 황혜성의 셋째 딸인 한복진은 「일본의 식문화사(日本の食文化史)」의 「옮긴이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Han 2017a).
“이시게 교수님과 우리 가족의 인연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수님께서 한국 음식문화 연구를 위해 방한하셨을 때, 어머니 황혜성 교수님을 만나면서 교류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식문화, 특히 장, 술, 김치, 젓갈 등 발효음식과 면요리 조사 등을 위해 20여 차례 한국을 방문하시며 어머니와 지속적으로 학문적 교류를 이어오셨다. 이시게 교수님이 총괄한 1981년 도쿄의 ‘동아시아의 식문화’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어머니가 ‘한국의 궁중음식’을 주제로 발표하였고, 만찬에서는 약 400인분의 궁중음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때 황혜성이 한국에서 가져온 수라상 세트는 아지노모토 식문화센터 창고에서 30여 년간 소중히 보관된 뒤, 도쿄의 한국문화원에 기증되었으며, 현재는 한국 식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守屋 2024b). 또한 1987년 황 교수님이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객원교수로 초청되었을 때, 이시게 교수님과 함께 「한국의 식(韓国の食)」을 집필하여 한국 식문화를 일본 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3. 윤서석(尹瑞石, 1923–)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현재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61년부터 중앙대학교 가정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84년 6월부터 9월까지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동아시아 식사문화의 비교연구’의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였다.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식생활문화의 역사(韓国食生活文化の歴史)」는 2005년에 출판되었으며, 한반도 음식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양서이다(守屋 2024a).
윤서석은 1995년에 「한국의 식문화사(韓国の食文化史)」를 일본에서 출판하였는데, 이 책의 「후기」에서 “도메스출판사의 가시마 편집장과 약속을 한 지 벌써 9년이 되었습니다. 망설이기만 하다가 마침내 한국 식문화사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이시게 나오미치 교수님을 비롯하여 신세를 진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50년 만에 쓴 일본어 문장이라 서툴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여,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Yoon 1995).
또한, 1999년에 한국어로 집필된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역사」(Yoon 1999)도 2005년에 일본에서 「한국식생활문화의 역사(韓国食生活文化の歴史)」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윤서석은 “1984년에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4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당시 이시게 나오미치 조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로부터 이 분야의 연구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라고 적고 있어(Yoon 2005), 이시게와의 오랜 학문적 교류를 느끼게 한다.
또한 윤서석은 이시게 나오미치의 「문화면류학 입문(文化麺類学ことはじめ)」을 윤숙경, 조후종, 이효지, 안명수, 안숙자, 서혜경, 윤덕인, 임희수 등 많은 연구 동료들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책 제목은 「문화면류학의 첫걸음」이다(Yoon et al. 2000). 이 책에서는 이시게 나오미치에 대하여 “일본의 식생활문화연구를 앞서서 개척한 제1인자인 석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식생활학회, 동아시아식생활문화학회에서 초청강연을 여러 번 하신 바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4. 정대성(鄭大聲, 1933–2025)
일본 교토부 출생. 재일한국인 조선요리 연구가이다. 야키니쿠 도라지(焼肉トラジ) 고문, 전 전국야키니쿠협회 고문, 시가현립대학교 명예교수, 이학박사이다. 모란봉 맛연구소 소장 재임 중 야키니쿠 양념 ‘장’을 개발하였다. 저서로는 「식문화 속의 일본과 조선(食文化の中の日本と朝鮮)」(Chung 1992), 「한반도의 음식과 술(朝鮮半島の食と酒)」(Chung 1998), 「야키니쿠⋅김치와 일본인(焼肉⋅キムチと日本人)」(Chung 2004)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조선의 요리서(朝鮮の料理書)」(Chung 1982), 「한국요리문화사(韓国料理文化史)」(Lee 1999) 등 다수가 있다.
정대성은 「이시게 나오미치 자선저작집」출판기념집 「이시게 나오미치 씨와 나(石毛直道さんとわたし)」(2013)에서 「민박 연구회, 30여 년간의 교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石毛直道さんとわたし出版をすすめる会 2013).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시작된 이시게 씨 주최의 ‘동아시아 식사문화의 비교연구’ 공동연구자로서 1981년부터 참가하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나는 모란봉 주식회사의 연구소장으로서 야키니쿠 양념장과 김치 등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었다. 연구회에서는 한반도 식문화를 담당하여 음식이 매워지게 된 역사, 술 제조법의 특징, 일본과의 관련성 등에 관한 조사⋅보고를 하였는데, 매우 많은 공부가 되었던 일을 지금도 즐겁게 떠올린다. 연구회가 끝난 뒤의 즐거움은 술자리였는데, 각자가 가져온 술을 맛보며 연구회의 이야기를 다시 나누곤 하였다. 모란봉 주식회사 주최로 요코하마항에서 호화여객선 퀸 엘리자베스 2호를 전세 내어 ‘식문화 심포지엄’을 개최했던 일도 잊을 수 없다. 이시게 선생이 그 유명한 고마쓰 사쿄(小松左京) 씨를 설득하여,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였다. 참가자는 모두 모란봉의 거래처 관계자들이었는데, 행사가 끝난 뒤에는 선내에서 식사를 하고 1박을 하였으며, 다음 날에도 선내를 견학하고 많은 기념품을 받았다. 이러한 인연을 계기로 나는 1986년부터 오사카경제법과대학교 교수, 1995년부터는 시가현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식문화론 등의 강의를 맡게 되었다.”
IV.이시게 나오미치 저작의 번역 등
한국에서 일본 식문화 연구와의 교류를 담당한 제2세대는 이시게의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 김상보(金尚寳, 1950–2024)
김상보는 이성우의 한양대학교 시절 제자이며, 이시게 나오미치의 「어장과 나레즈시의 연구(魚醤とナレズシの研究)」를 번역하였다. 그 번역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Kim 1995).
“역자는 1993년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외국인 객원교수로 1년 동안 근무하면서 보다 가까이에서 이시게 나오미치 교수를 지켜볼 수 있었다. 각 민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생의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 그리고 각 민족의 식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김상보는 이시게 나오미치가 1992년부터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3년간 수행한 공동연구에 참여하였으며, 그 성과로 출판된 「논집 술과 음주의 문화(論集 酒と飲酒の文化)」에 「동아시아의 의례적 향연」을 집필하였다(石毛 1998).
2. 한복려⋅한복선⋅한복진(韓福麗, 韓福善, 韓福眞)
황혜성의 세 딸 역시 어머니와 함께 이시게와의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셋째 딸 한복진은 이시게와의 인연을 앞서 언급한 「음식의 문화를 말하다」의 「옮기면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Han 2017b).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07년 나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일본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의 객원교수로 초청되어 ‘세계의 식문화 박물관’을 주제로 연구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때 1년간 이시게 교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이시게 교수는 2003년 정년퇴임 후에 자택 근처에 개인 연구실을 마련해, 팔순이 넘은 지금도 매일 연구실에 출근해 저술과 외부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다.”
한복진 역시 그 멤버의 한 사람으로 있는 동아시아식생활학회 연구회에서 이시게의 「세계의 문화지리(世界の文化地理)」를 「세계의 음식문화」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하였는데,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 역자 대표 우경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East Asian Society of Dietary Life Research Group 1999).
“이 책의 번역은 동아시아식생활학회 회원으로서 고 이성우 박사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있었던 연구회 모임이 중심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이 모여 번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를 함께 공부하면서 최근 2년간 열심히 모여 이루어낸 결실이다.”
한국의 궁중음식을 일본에 소개한 것은 드라마《대장금》이었는데,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 자문을 담당한 인물이 황혜성 선생의 장녀 한복려였다. 또한 일본에서는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장금이’의 한국 궁중요리」도 출판되었다. 덧붙여서 여담이긴 하지만, 한복려는《대장금》이 일본 NHK에서 방영될 당시 일본어판 감수자 중 한 사람으로 아사쿠라를 추천해 주었고, 그 이후 NHK의 한국 역사드라마 일본어판 대부분은 아사쿠라가 감수를 맡고 있다.
또한 한복려는 자신의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김치 백 가지」의 일본어판인 「キムチ百科(김치백과)」의 「일본어판을 위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Han 2005).
“이 일본어판을 출간에 요리계의 대선배이신 조중옥 선생께서는 일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원고를 감수해 주신 커다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중략) 그리고 일본어 번역에서는 이제 한국인보다 김치 문화에 더 박식해진 모리야 아키코 씨가 수고해 주셨고, 이를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아사쿠라 도시오 선생께서 감수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황혜성의 차녀 한복선도 한국에서 2007년 초판에 이어 2022년 개정판이 출간된 「엄마의 밥상」을 「한복선의 엄마의 식탁(ハン⋅ボクソンのオンマの食卓)」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황혜성-나의 어머니이자 스승입니다. 나는 55년 전 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어머니의 수업을 받았습니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였고, 집 밖에서는 교사였던 어머니는 2006년 12월에 세상을 떠났기에, 지금은 사진 속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라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술회하고 있다(Han 2024).
3. 안명수(安明秀)
안명수는 스승으로 받드는 윤서석과 항상 행동을 함께했는데, 이시게 나오미치의 「식탁문명론(食卓文明論)」을 한국어로 번역한 「식탁문명론」을 출간하였다. 「출간사」에서 윤서석은 다음과 같이 썼다(Ahn 2008).
“안명수 교수와 저자인 이시게 나오미치 박사는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교류하고 인간적으로 신뢰를 갖는 선후배로서 20여 년의 친분이 있었는데, 이번에 안 교수가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식탁문명론」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이 책에서 안명수 역시 「번역을 마치고」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 출판의 경위를 밝힌 바 있다).
“2006년 초여름, 오사카에서 이시게 나오미치(石毛直道) 선생님을 만나 뵈었고, 그 자리에서 이시게 선생님의 저서 가운데 식생활문화의 연구 방법과 결과 해석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는 책을 번역하여 본인의 정년기념 저서로 남기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린 바, 그 자리에서 이 「식탁문명론」을 주셔서 받게 되었다.”
V. 이시게 나오미치를 잇는 일본인 연구자들
이시게 나오미치는 「식문화에 관한 민족학적 연구의 동향(食文化に関する民族学的研究の動向)」이라는 제목으로 「vesta」 제10호에 게재된 원고를 「이시게 나오미치 자선저작집」 제6권 「일본의 식(日本の食)」의 해설에 재수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1. 아사쿠라 도시오(朝倉敏夫)
아사쿠라 도시오의 전문 분야는 한국 사회와 재외 코리안의 생활문화 연구인데, 아사쿠라 도시오에 대해서는 「일(日) 인류학자의 한국 생활문화 추적, 그 반생(半生)의 기록」(Heo 2026)에 소개되어 있다.
식문화 연구로는 1986년에 모리에다 다쿠시(森枝卓士)와 함께 「식은 한국에 있다(食は韓国あり)」(森枝 & 朝倉 1986), 1994년에 「일본의 야키니쿠, 한국의 회(日本の焼肉 韓国の刺身)」(朝倉 1994), 2005년에 「세계의 식문화 한국(世界の食文化 韓国)」(朝倉 2005)을 출판하였다. 또한 국립민족학박물관을 정년퇴직하기 전해인 2015년에 특별전 ‘한일식박(韓日食博)’을 개최하고 도록으로 「한국식문화독본(韓国食文化読本)」을 간행(朝倉 et al. 2015)하였다. 그 후 2016년부터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으로 옮겨 식매니지먼트학부 설립에 힘썼으며, 2018년 초대 학장이 되었고, 2021년 퇴직하였다. 그 사이 자신의 식문화 연구를 정리하여 2022년에 「식의 인문학 노트(食の人文学ノート)」(朝倉 2022a)를, 한국어판으로 「일본음식인문학연구노트」(朝倉 2022b)를 간행하였는데, 그 한국어판에는 영광스럽게도 이시게 나오미치, 윤서석, 한복진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현재는 일본 시가현(滋賀県) 평화기념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아사쿠라 도시오의 한국 식문화 연구자들과의 교류는,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된 「식탁 위의 한국사(食卓の上の韓国史)」의 저자인 주영하와는 그가 풀무원 김치박물관 학예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알게 되었는데, 많은 연구자들을 이시게 나오미치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는 「이시게 나오미치 씨와 나―한국식 연구자들과의 교우(石毛直道さんとわたし―韓国食研究者との交友)」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石毛直道さんとわたし出版をすすめる会 2013).
“나는 1988년부터 국립민족학박물관에 근무하였다. 그 이후 이시게씨가 관장으로서 민박(民博)을 떠난 뒤에도 계속 신세를 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를 ‘식(食)’을 통해 바라보려 했던 나에게는, 이시게 씨가 서로 존경하던 이성우 선생을 뵙지 못한 것만이 아쉽지만, 많은 한국의 식문화 연구자들과의 만남을 만들어 주셨다.”
특히 윤서석, 조후종, 안명수와는 2000년 국립민족학박물관의 한반도 문화 전시 리뉴얼 때부터 알던 친구인 현영길 사장과 함께 아사쿠라가 방한할 때마다 만나 왔으며, 2025년 8월에는 아주식학포럼의 평생공로상을 윤서석께 수여하기 위해 조영광 회장과 함께 서울에서 시상식을 진행하였다.
국립민족학박물관 시절에는 한국식생활문화학회 2002년 춘계대회 ‘한국과 일본의 식생활문화’에서 「현대 일본 속의 한국 음식⋅한국 문화」를, 2014년 창립 30주년 기념대회 ‘Traditional Foods: Culture Meets Science’에서 「전통의 유지와 미각 기호의 변화-한국에 ‘아지노모토’가 오다」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였다. 또한 김치와 김장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2013년에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최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절임 식문화와 김장 문화」를, 세계김치연구소 주최 「김치학」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쓰케모노와 한국의 김치」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또 국립민족학박물관 사업을 통해 이효지의 딸인 허문경과도 알게 되었다.
리쓰메이칸대학으로 옮긴 뒤에는 한국에서 아주식학포럼을 개최하면서 조미숙의 도움을 받았고, 학생 연수여행에서는 한국미식관광협회의 김현숙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세계김치연구소의 박채린의 요청으로 2024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콜로키엄을 개최했을 때 오지은, 정서진, 조우균 등과도 알게 되었다.
2. 모리야 아키코(守屋亜記子)
모리야 아키코는 종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아사쿠라 도시오를 지도교수로 하여 박사학위논문 「한국에 있어서 노인의 식(韓国における老人の食―老人福祉施設を中心に―)」를 집필하였다. 이후 가와사키의료복지대학(川崎医療福祉大学)을 거쳐 2011년부터 조시에이요대학(女子栄養大学)(2026년에 일본영양대학(日本栄養大学)으로 명칭 변경)에 재직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리야 아키코는 자신의 식문화 연구의 시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민박에는 한국문화 전문가가 있습니다. 한번 상담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998년 늦가을, 이시게 선생님으로부터 도착한 한 장의 엽서. 그 엽서가 나에게 한국 식문화 연구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아사쿠라 도시오 선생 퇴직기념문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朝倉敏夫先生退職記念事業会 2016).
“메이지대학(明治大学) 석사과정을 마치고 안동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 한국의 식문화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져 이시게에게 편지를 썼고, 아사쿠라를 소개받았다. 이후 시가현립대학의 정대성 밑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2002년부터 국립민족학박물관을 기반기관으로 하는 종합연구대학원대학 박사후기과정에서 수학하였으며, 박사논문으로 「한국에 있어서 노인의 식-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를 집필하였다. 2002년 여름,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일행이 국립민족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박사논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그 후 윤서석과 안명수는 마치 손제자처럼 대해 주셨으며, 안명수의 제자인 우나리야와는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2022년도 아지노모토 식문화포럼 ‘한반도의 식’의 코디네이터를 맡았으며, 그 성과를 2024년에 「한반도의 식(朝鮮半島の食)」으로 출판하였다(守屋 2024b). 그 책에는 1981년 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식문화’의 개요에 이어, 궁중요리에 대해서는 정라나,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는 주영하, 근대의 요리서에 대해서는 한복진, 평양 지역에 대해서는 이애란, 안동찜닭에 대해서는 배영동, 일본 출생 한국인의 음식에 대해서는 고우 시즈코(コウ静子), 한국 식문화의 변천에 대해서는 정혜경이 논고를 집필하였고, 궁중의 조리도구와 열원에 대해서는 이소영, 다문화가정의 음식에 대해서는 송애진이 칼럼을 집필하였다.
또한 모리야 본인에게 문의한 결과, “조후종, 이종미, 정혜경, 조미숙, 주영하에게는 대학원생 시절 필드워크를 위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큰 도움을 받았다. 궁중음식연구원에 자주 다니며 한복선에게는 요리연구가의 시각에서 한국 식문화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한복진에게는 연구자로서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지도를 받았다. 또한 정길자에게 궁중 떡과 과자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라나, 이소영과 알게 되어 지금도 좋은 친구로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윤지현과 호서대학교 우나리야를 통해 현재 한국식생활문화학회와 동아시아식생활학회의 해외이사로서 학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VI. 맺음말 - 향후의 전망
일본에서는 이시게 나오미치의 식문화 지도(圖)<Figure 1>가 보여 주는 식문화 연구를 전개하는 장으로서, 2018년에 리쓰메이칸대학에 식매니지먼트학부가 설치되었고, 또한 와쇼쿠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교토부립대학에 2019년 문학부 와쇼쿠문화학과(2024년에 농과학부 와쇼쿠문화과학과로 개편)가 개설되었다. 또한 2018년에는 와쇼쿠문화학회도 설립되었고, 2027년에는 교토여자대학이 식과학부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니, 식문화 연구는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일본조리과학회 회장인 마나베 마리코(真部真里子)도 「일본조리과학회가 개척하는 ‘조리과학’의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眞部 2026).
“조리과학 분야의 연구 대상은 식재료의 특성에서부터 조리 조작, 음식의 기호성, 나아가 음식의 지역적⋅역사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식’과 관련된 모든 현상을 포괄하고 있다. 이는 조리가 단순한 조리 행위에 그치지 않고, 식사 계획에서 제공에 이르기까지의 종합적인 활동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에는 식품학이나 영양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가족관계학, 환경학, 방재학, 역사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의 지식이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조리과학에서도 식품학⋅영양학뿐 아니라 생활문화의 하나로서 학제적 연구의 매력과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바로 1990년에 ‘한국식문화학회’가 ‘한국식생활문화학회’로 명칭을 변경한 것과도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이시게와 한국 연구자들의 교류의 발자취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 한일, 더 나아가 아시아의 식문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본고를 집필하면서 6월 22일 오후 오사카의 JR 이바라키역 근처에 있는 이시게 연구실을 방문하여 이시게 선생께 서술상의 오류가 없는지 확인받았다. 또한 연구실 비서인 후쿠시마(福島) 씨가 ‘한국식문화학회’라는 파일을 찾아 주었다. 한국식문화학회 설립에 힘썼던 이성우는 이시게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하는데, 그 파일에는 “초청 목적: 1985년 11월 16일 본 학회의 ‘식 심포지엄’에서 ‘식문화 연구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강연과 토론”이라고 한국식문화학회 회장 이성우가 이시게 앞으로 자필로 쓴 1985년 10월 20일자 초청장도 들어 있었다. 더욱이 「자선저작집(自選著作集)」에 기록된 2011년 이후에도, 2013년 11월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동양과 서양의 궁정 식문화 비교」라는 주제로 강연하였고, 2014년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 ‘김치학 심포지엄’에서 「세계의 전통 절임 음식」을 강연하는 등 두 차례 정도 방한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2014년 서울에서 나 역시 이시게 부부와 현영길 사장, 네 사람이 함께 아침부터 복어요리집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일본의 저명한 작가 고마쓰 사쿄(小松左京)가 붙여 준 ‘대식헌명정(大食軒酩酊)’이라는 아호가 있을 정도로 이시게는 술을 좋아했는데, 내가 이시게에게 “히레소주를 드시겠습니까?” 하고 눈짓을 보내자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식탁에 히레소주가 나오자 부인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건가요?” 하고 나무라셨다. 그러자 현 사장이 “한국에서는 세트 메뉴에 히레소주가 함께 나옵니다”라고 재치 있게 대답해주었다.
그날도 점심에 일본술을 곁들이면서, 이시게는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으로 친숙하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시게와 한국 연구자들의 교류를 통해, 직접 만나 오랜 관계를 이어 가는 교유의 방식이 비록 온라인 시대라 하더라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배우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연구 교류가 활발히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